한편, 봉황국 연안 인공섬에 있는 김씨 가문의 성.성벽과 길목 곳곳에 경비원들이 무장한 채 돌아다니며 철통같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이곳은 평범한 성보다는 요새에 더 가까운 모습이었다.탁, 탁, 탁….이때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는 발걸음 소리가 파도와 바람 소리 사이에 들려왔다. 염구준이었다. 그가 무표정한 얼굴로 성 입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누구야?”“거기 서!”“여긴 개인 사유지다. 외부인의 출입은 금지되어 있어! 즉시 왔던 길로 돌아가라! 아니면 우리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경비병들이 손에 든 무기의 안전장치를 풀며 일제히 염구준을 향해 겨냥했다. 오늘은 그동안 미뤄뒀던 빚을 받으러 오는 날!염구준은 수많은 총구를 앞에 두고도 여유로운 미소를 띤 채 오른손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누구든 내 앞길을 막는 자, 죽음을 선사해주리! 성 입구, 피가 강을 이루었다!경비병들은 순식간에 비명도 못 지르고 자리에 즉사했다.“가, 가주님! 큰일 났습니다!”염구준이 성을 뚫고 들어오는 사이, 상황을 보고받은 두 남자가 김웅신이 있는 후원으로 달려갔다.“지금 염구준이 쳐들어왔습니다!”밀실 안, 가부좌를 틀고 있던 김웅신이 놀라 눈을 번쩍 떴다.‘그럴 리가 없어!’김웅신은 믿기지 않았다. 봉황국에 그의 손길과 눈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삼죽문 아래에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모두 김웅신의 손바닥 위에 있었다. 어디든 스파이가 있었고 그가 모르는 소식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그런데 염구준이 이곳에 오기까지 어떠한 보고도 없었다니,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삼죽문 내부에서 불화가 터져 왕종서의 딸이 잡혀간 것도 모자라, 제호 카지노를 지키던 4대 도박왕도 모두 죽었지.”김웅신은 천천히 자리에 일어나 밀실 문을 열고 나갔다. 연달아 일어난 불행, 그런데 하필이면 이때 염구준이 나타다니, 그는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눈치챘다.“눈에는 눈, 이에는 이. 당한대로 갚아준 건가?”김웅신이 높이 뜬 태양을 바라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공격할 기회도 없이 모두 당했다니!‘염구준… 그 천한 여자의 아들이 고씨 가문 옥패를 얻더니, 흑풍 존주도 꺼려할 만큼 무서운 존재가 되었구나!’“하지만 옥패라면 나도 있어….”김웅신은 두 주먹을 꽉 그러쥐며 가슴속에 넣어둔 옥패를 느꼈다. 그러자 불안이 꺼지고 속에서부터 자신감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그가 당당한 목소리로 사사들을 향해 명령했다.“앞장 서. 염구준 만나러 가야겠어!”김씨 가문 성 곳곳에 피냄새가 진동했다. 백여구가 되는 시신들이 사방에 널브러진 채 산을 이루었다. 이들은 모두 한때 실력이 출중하다고 인정받던 무도종사들이었다. 하지만 염구준에겐 파리 목숨같이 가치가 없는 존재들이었다. 배신자들에게 베풀 자비 따위 그에겐 없었다. 김씨 가문 성의 삼엄했던 경비는 불과 10 분도 되지 않아 염구준의 손에 철저히 무너졌다. 가히 전투의 신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어디에도 그를 막을 적수가 없었다! 이때, 갑자기 성 깊숙한 곳에서 날카로운 비수 세 개가 살기를 담은 채 염구준을 향해 날아왔다. 하지만 닿기도 전에 무형의 기운에 막혀 땅에 떨어졌다. 지금의 염구준에겐 이까짓 냉병기 따위는 아무런 생체기도 낼 수 없었다. 십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호랑이처럼 흉포한 시선이 염구준을 향했다. 시선의 주인은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김웅신이었다.“정말 후회스럽네.”잠시 대치 후, 김웅신이 한기가 서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그때 모든 것을 아끼지 않고 염씨 가문을 완전히 멸문시키지 못한 것이 너무 후회스러워. 아예 싹을 남기기 말고 잘라버렸어야 하는데, 네 놈을 살려둔 것이 천추의 한이다! 그랬더라면 이런 화를 입을 일도 없었을 텐데!”이제 와서 후회한들 의미가 없었다. 염구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김웅신을 훑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의 뒤를 따라온 한 사사를 향해 웃었다.“후회되는 일… 더 있을 것 같은데? 이를테면… 함부로 뒤를 내주는 일이라던가… 안 그래, 흑풍 존주?”흑풍 존주 명칭을 들은 순간 김웅신은 머리속에 무언가가
김웅신이 전신의 경지까지 이르기까지, 정말 쉽지 않았다. 옥패를 얻기 위해 그가 겪은 수많은 시행착오들, 아무도 모를 것이다. 겨우 강자들과 나란히 어깨를 하게 되었는데, 모든 것이 흑풍 존주의 일격에 물거품이 되었다. 앞에는 염구준, 뒤에는 흑풍 존주, 김웅신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옥패를 내놓으면 시신은 훼손하지 않으마.”흑풍 존주는 손가락을 까딱해 부하에게 염구준을 막아서게 한 다음, 김웅신 앞으로 다가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경고했다.“사람 번거롭게 하지 말고 알아서 좀 협조해.”하지만 말을 고분고분 들을 김웅신이 아니었다.“옥패가 가지고 싶다면 바다에 들어가서 찾아봐라!”그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 품고 있던 옥패를 성 밖, 먼 바다를 향해 힘껏 던졌다.슝! 빛이 번쩍하며 허공을 갈랐다.이것은 김웅신의 마지막 생명력이었다. 녹색 옥패는 마치 낙하하는 유성처럼 꼬리에 불꽃을 물고 순식간에 수천 미터 멀리 날아갔다. 그렇게 거의 30분, 날아가던 옥패의 속도가 서서히 줄어들며 파도 속으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김씨 가문 성으로부터 거의 10키로 떨어진 뒤였다.“열풍!”흑풍 존주가 짜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낮게 외쳤다.“가서 옥패 찾아와. 조류에 휩쓸릴 수도 있으니까, 어서!”그 즉시, 암호명 열풍이라 불린 사사가 염구준 앞에서 모습을 감추며 옥패가 날아간 방향을 향해 몸을 날렸다.“이 순간을 꽤 오래 기다렸겠네.”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염구준이 담담한 목소리로 흑풍 존주에게 말했다.“김웅신이 가지고 있던 옥패, 나에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야. 김웅신이 중상을 입은 마당에 수하까지 보내고, 네가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흑풍 존주, 죽음이 두렵지 않나?”아무리 흑풍 존주라도 죽음은 두려웠다. 하지만 아무리 강한 사람일지라도 인간인 이상 약점은 존재했다. 그리고 상대가 높은 곳에 있을수록 그 약점은 더 명확 해졌다. 흑풍 존주는 염구준의 치명적인 약점을 알고 있었다. 그건 바로 가족이었다! 이것이 그
염구준이 바로 그 유명한 전신전의 전주이자 세계 최강이라 불리는 초절정 고수였다니! 게다가 들어보니 은씨 가문하고도 뭔가 있는 것 같았다!김웅신은 그제야 자신의 의형제인 반보천인이 염구준을 만나러 간다더니, 갑자기 청홍방의 부하들을 데리고 종적을 감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은씨 가문의 반보천인조차 염구준의 상대가 안 되었던 것이다!“네가 어떻게 은씨 가문을?”흑풍 존주도 은둔 가문의 일원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은씨 가문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염구준도 그들과 접촉이 있었을 거란 생각은 못했었다. 그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물었다.“설마 그쪽이랑도 싸웠어? 그런데 어떻게 살아있을 수가 있지?”은씨 가문이 염구준을 봐줄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흑풍 존주는 믿기 싫었지만, 어쩌면 염구준이 그들보다 더 강한 무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씨 가문은 염구준을 안 죽인 것이 아니라, 못 죽인 것이다!“쓸데없는 얘기는 여기까지 하지.”흑풍 존주의 정체가 밝혀진 이상 염구준도 더 이상 주저할 것이 없었다. 그는 이 말과 동시에 신형을 흐트러뜨리며 흑풍 존주를 향해 맹렬한 주먹을 날렸다. 파바바박! 보이는 것은 일격이었지만, 실제로는 눈으로 따라갈 수 없는 20번에 가까운 공격이 가해졌다. 이것은 고씨 가문의 포복용권이라 불리는 권법이었다!“염구준….”물론 흑풍 존주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열풍이 옥패를 찾아오기 전까진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야 했다. 그는 온몸에 전의를 끌어 올리며 염구준의 공격에 맞섰다.퍽, 퍽, 퍼버벅!눈 깜빡할 사이, 두 사람의 주먹이 연달아 부딪히며 주변 공기가 거세게 요동쳤다. 공중엔 마치 소형 폭탄들이 연달아 터지는 것처럼 폭발음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그 여파로 김씨 성의 담벼락들이 덜그럭거리며 흔들리며 폭풍우가 휩쓸린 듯 먼지가 피어올랐다. 그렇게 잠시, 두 사람은 50번에 넘는 공격을 서로 주고받은 다음 각자의 자리로 물러섰다. 하지만 멀쩡한 염구준과 달리 흑풍 존주는 허리와 복부에 다섯번
“존주님!”그리고 마침 해수면 위로 잠수함이 떠오르는 순간, 번쩍하고 검은 신형이 그 위로 안착하는 것이 보였다.“무사히 옥패를 찾았습니다!”그 정체는 바로 다름아닌 열풍이었다!잠수함 입구에 서 있는 그의 손에 익숙한 물체가 보였다. 좀 전에 김웅신이 바다를 향해 힘껏 던졌던 바로 그 옥패였다. 열풍의 외침이 들려오는 동시에 해수면에 있던 잠수함이 순식간에 수직으로 상승하기 시작했다.반중력 장치, 수직 상승!“전략 삼급 공해 잠수함이라니, 네가 어떻게 이런 것까지?”염구준이 흑풍 존주를 차갑게 노려보며 위협을 담아 말했다.“전 세계에서 이 잠수함을 보유한 나라는 용하국과 성조국뿐일 텐데… 흑풍 존주, 네가 감히 성조국과 결탁을 하다니!”“성조국과 결탁한 것이 뭐 어때서?” 흑풍 존주가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염구준, 난 널 이길 수 없지만, 그렇다고 날 쉽게 죽일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안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열풍!”어느새 성 위로 전략 삼급 공해 잠수함… 아니 비행기가 완전한 모습으로 떠올랐다. 열풍은 자신의 이름이 불리는 순간, 망설임없이 허공을 갈라 흑풍 존주 앞으로 안착했다.“존주님!”열풍은 두 손으로 옥패를 흑풍 존주에게 건넨 다음, 몸을 돌려 염구준을 향해 전툰 태세를 취했다. 동시에 흑풍 존주의 몸엔 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거센 기운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옥패… 드디어 옥패를 손에 넣었다!”흑풍 존주는 옥패를 소중히 어루만진 다음, 천천히 고개를 들어 염구준을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 “염구준, 네가 아무리 대단한 실력을 가졌을지라도 수년간 내가 계획한 일은 망칠 수 없을 것이야! 열풍은 이미 전신 중기, 전신 정점과 큰 차이 나지 않는다! 아무리 네가 반보천인이라 할지라도, 일초에 죽일 수는 없을 터! 넌 결국 날 잡지 못할 것이다!”말을 마치는 동시에 흑풍 존주는 열풍만 남겨둔 채, 땅을 박차고 쏜살같이 하늘을 날아 비행선에 올라탔다.교토삼굴, 교활한 토끼가
쾅! 선광이 허공을 갈랐다!엄청난 돌풍과 강력한 광선이 공중을 가르며 그대로 비행선을 강타했다. 약 20키로 밖에서도 충격여파로 주변이 떨렸다. 세계 최고라 불릴 수 있는 최첨단 기술과 무학이 충돌하는 순간이었다.비행선의 금속 외벽이 함몰되며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이는 모습이 보였다. 붕괴된 비행선이 바다를 향해 빠른 속도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이뤄낸 결과라고 보기엔 너무나도 놀라웠다. 사람의 공격으로 천문학적 투자가 들어간 기체가 제대로 힘도 못 쓰고 무너졌다.흑풍 존주도 중상을 입고 비행선과 함께 바다로 추락했다.“흑충 존주….”하지만 염구준은 곧바로 그를 추격하지 않고 천천히 뻗었던 주먹을 내렸다.흑풍 존주의 기척이 갑자기 허공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좀 전의 일격으로 큰 부상을 입은 건 분명했지만, 염구준은 흑풍 존주가 겨우 이정도로 죽을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비행선이 바다로 추락하는 동시에 흑풍 존주의 기척도 없어졌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한가지뿐이었다.‘천기석!’전에 도천연이 들키지 않고 염씨 가문을 습격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이 천기석 때문이었다. 상황을 미루어 볼 때, 흑풍 존주는 김웅신으로부터 옥패를 빼앗아올 계획을 세웠을 때부터 최악을 대비했다고 볼 수 있었다.철저한 계략에 염구준은 다시 한번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천기석으로 기척을 가렸다면, 확실히 나라도 추적은 힘들겠네.”염구준은 아쉬웠지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흑풍 존주를 추적하는 것을 일단 포기했다. 대신 한쪽 바닥에 쓰러진 채 죽어가는 김웅신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아무리 도망쳐 봤자, 내 철조망에 걸린 새. 아무리 꽁꽁 숨는다고 한들, 결국 나한테 잡힐 신세… 김웅신, 당신은 흑풍 존주의 배경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나?”김웅신의 안색은 이미 붉게 변하다 못해 보라색을 띄고 있었다. 옥패를 바다 쪽으로 던지면서 가지고 있던 모든 진기를 다 소모해 회광반조의 단계에 접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상
만에 하나 은둔세가 중 하나라도 세상에 모습을 들어낸다면, 오대강국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흑풍 존주를 상대할 생각이라면, 반드시 그 여덟 옥패를 모두 얻어야 할 것이다.”김웅신은 꺼져가는 생명의 불꽃을 느끼며 힘겹게 품에서 손바닥만 한 작은 석판을 꺼냈다. 그리고는 힘 빠진 목소리로 무심한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염구준을 향해 말했다.“처음 옥패를 찾았을 때, 이 석판에 박혀 있었다. 난 수년간 이 부서진 석판의 비밀을 풀기 위해 노력했지만, 흑풍 조직의 표식만 알아봤을뿐, 다른 단서는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니, 변한다는 말이 사실인가 봐. 마지막으로 이 석판을 너에게 주마. 대신… 김씨 가문의 무고한 식솔들의 목숨만은 살려다오! 부탁… 한다….”이 말을 마지막으로 김웅신은 모든 생명력을 소진한 듯 몸을 늘어뜨렸다. 곧이어 그의 근육들이 뻣뻣해지며 피부색이 회색 빛을 띄었다. 그렇게 한시대를 풍미하던 별이 지었다.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변한다는 말에 김웅신도 해당될 줄은 예상치 못했다.염구준은 잠시 침묵한 뒤, 손을 휘저어 무형의 기운을 일으켰다. 김웅신의 손에 부서진 석판이 그의 손으로 안착했다. 염구준은 잠시 조각 안에 새겨진 단풍잎 그림을 쳐다보다가 자켓 주머니로 집어넣었다. 약 20분 뒤….“염 선생님!”멀리서 고해와 왕종서가 수백명의 금오분타 제자들을 대동하고 달려왔다. 그런데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김웅신의 시체와 멀리 추락한 비행선을 발견하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게….”손쓸 겨를도 없이 모든 상황이 끝나버렸다.“김웅신이 이미 죽은 마당에 굳이 또 목 벨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염구준이 사람들을 등진 채, 싸늘하게 굳은 김웅신의 시신을 바라보며 말했다.“오늘부터 김씨 가문은 완전히 멸문했어요. 생존자들은 해외로 모두 출국시키고 다시는 용하국으로 돌아올 수 없게 조치를 취해주세요.”말을 마친 그는 고해와 왕종서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무심히 자리를 떠났다. 김씨 가문의 멸망…
정말 놀랍게도 이 모든 성과는 염구준 단 한사람이 일주일만에 이루어 낸 것이었다. 앨리스는 과거 손씨 그룹과 협력관계를 맺기로 마음먹은 과거의 자신을 칭찬했다. 만약 그때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흐지부지 지나갔더라면, 엘 가문은 김씨 가문처럼 처참한 결말을 맞이했을지도 몰랐다.“염 선생님, 참 마음이 넓은 것 같아요.”여비서가 좀 전에 받은 이메일을 보며 앨리스에게 조용히 말을 건넸다.“저희 정보원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염 선생님께서 남은 김씨 가문 사람들을 죽이지 않고 해외로 추방 보냈대요.”강하고 단호하지만, 그 와중에 선함을 잃지 않다니… 염구준은 정말 놀라운 남자였다!복잡한 표정을 짓던 그녀가 결심한 듯, 주먹을 꽉 쥐더니 입을 열었다.“아버지께 오늘 당장 손씨 그룹과 전속 계약을 체결하라고 알려줘. 앞으로 우리 회사 제품을 내놓을 수 있는 대리점은 전세계에 손씨 그룹뿐일 거야. 그리고 손씨 그룹과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그게 무엇이든 손익을 따지지 말고 최대한 지원하라고 해. 그렇게라도 해서 최대한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수밖에 없어.”진지한 앨리스의 태도에 여비서도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다 문득 뭔가 떠오른 듯,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저희 정보원들한테 새로 들어온 소식이 있어요. 흑풍 존주가 염구준 선생님과 싸우다가 도주했는데, 지금 생사가 불분명하대요. 만약 살아 돌아왔는데, 저희와 염구준 선생님의 편의를 봐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보복이라도 한다면….”흑풍 존주를 떠올린 앨리스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그녀는 생각에 잠긴 듯, 의자에서 일어나 창가쪽으로 다가갔다. 앨리스는 염구준을 떠올리며 눈빛이 아득해졌다. 엘 가문이 염구준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흑풍 존주가 알게 된다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뻔했다.그래도 염구준과 싸우다가 도망친 것이라면 죽지 않았더라도 최소 큰 부상은 입었을 터, 당분간 큰 소란은 피우지 못할 것 같았다. 아마 지금쯤 어딘가에서 부상을 치료하고 있을 가능성이 더 컸
"끄아악!"브루언은 아파서 비명을 지르면서 바닥에서 뒹굴며 겁에 질린 채로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사람이 아니라 악마야.""퉤, 별 것도 아닌게 까불고 있어." 백호는 침을 뱉으며 말했다. 브루언을 채 해결하기도 전에 동굴에서는 또다시 욕설이 들려왔는데, 목소리를 들어보니 달무 일행이었다."X발, 브루언 그 새끼가 사람이야? 오랫동안 함께 해온 사이에 배신을 때려?""그 새끼가 계획을 망치지만 않았어도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지는 않았을 거야.""진짜 내 눈에 들키지만 마라. 보는 즉시 갈기갈기 찢어죽여버릴 테니까."말만 들어서는 쌓인 게 이만저만이 아닌 것 같았다.이윽고 달무 일행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들은 멀리서 서 있는 염구준 일행과 눈이 마주쳤다.지금 달무 쪽 일행은 총 여섯으로, 손실이 매우 막심했다. "살려줘!"그들의 모습을 본 브루언은 바닥에서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로 아주 작은 소리로 도움을 구했다.'뻔뻔하면 무적이라더니.'탕!달무는 앞으로 걸어가 일격으로 그를 죽인 뒤 웃으면서 염구준 등을 바라보았다."저희 대신 배신자를 처리해주신 거, 감사합니다."그는 전에 염구준이 도와주지 않았던 것은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감사인사를 했다.상대방이 손을 쓸 생각이 없다는 걸 눈치챈 염구준은 그를 신경쓰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백호, 네 일이나 잘해. "이 말을 들은 백호는 대문 앞으로 다가가 두 손을 문에 대고 팔에 핏줄이 보일 정도로 힘을 주었다."하압!"이 거대한 힘에 문 위에 있던 얼음은 전부 갈라져 땅에 떨어졌고 얼음이 없어지자 두꺼운 대문 역시 반응을 보였다.끼익.대문은 소리를 내면서 천천히 양쪽으로 움직였다.이 두 문은 가볍지 않았다. 백호조차도 이마에서 땀이 나올 정도로 힘이 들었으니까 말이다."후!"문이 완전히 열리자 백호는 힘을 거두고 탁한 기운을 토해냈다.안에는 약간의 빛이 있었는데, 내부 장식은 고대의 궁전처럼 보였다. 비록 오랫동안 얼어붙어 있었던 장소지만 이곳은 사람들에게 위엄있
가족들은 모두 초조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건 모두 염구준을 너무 신경 써서 그런 거였다.이에 염구준은 속으로 감탄했다. '비록 행복하긴 하지만 이건 모두 환상이야. 그림의 떡과도 같은 거지. 현실이 잔혹하긴 하지만 그래도 현실에서 살아가야 해.'무척 뛰어난 환각술이고 모두 그가 바라던 모습이긴 했지만 마음이 굳건한 사람만이 반보천인이 될 수 있던 탓인지 그는 환각술에 깊이 빠지지 않았다."깨져라."염구준이 작게 읊조리자 몸에서 기운이 흘러나오며 눈앞의 화면을 지웠다."구준아, 꼭 앞을 보며 달려야 한다."고유연은 점차 사라지면서 웃으며 말했다."네, 그럴게요!"그는 텅 빈 대문을 향해 대답했다.비록 환각술 때문에 마음속의 상처가 더 깊어지긴 했지만 오래된 바람을 이루었으니 그다지 나쁘지도 않았다.그러나 그와는 달리 나머지 사람들은 확고한 마음이 없어 전부 혼잣말을 하며 동굴 안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제발 아빠를 죽이지 마세요, 제발요.""아, 계속 채굴할 테니까 때리지 마세요.""전주님, 영원히 당신을 따를 테니 저를 버리지 말아주세요."이렇게 보니 염구준의 환각술만 아름다운 화면이고 나머지는 모두 고통스러운 것 같았다.'계속 이대로 내버려두면 큰 일 나겠네.'"깨어나!"염구준이 크게 소리 지르자 체내의 진기들이 사람들을 뒤덮었고, 이에 사람들은 몸을 떨다가 곧바로 눈이 맑아졌다. 그들은 전부 망연하게 주위를 둘러보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대단한 환각술이야."백호는 조금 두려워하며 먼저 입을 열었다. 전신 위 경지의 자신도 버티지 못한 걸 보아 방금 전의 환각술이 확실히 대단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주작은 방금 전에 한 말들이 생각 나 조금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였다. '전주께서 분명 다 들으셨을 거야. 아, 창피해.'"다들 빛을 보자마자 긴장이 풀어져서 환각술에 걸린 걸 거예요."염구준은 이렇게 설명했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사실 빛은 커녕 그저 얼어버린 굳게 닫힌 문 밖에 보지 못했었다. 동굴 안에 들어온
'도안?'설씨 가문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눈을 똑바로 뜨고 다시 벽을 쳐다보았고 곧 정말로 얼음층 뒤의 돌멩이에 아주 옅은 색으로 새겨져 있는 도안을 발견했다.도안이 양 끝으로 뻗어진 걸 보면 그들이 발견하지 못했을 뿐, 들어올 때부터 옆에 있었던 것 같았다."뭐야?"도안을 보면 볼 수록 낯이 익어 염구준은 끊임없이 회상하기 시작했다.'옥패!'이 도안들은 전에 복제판 옥패에서 본 것과 매우 비슷했다.이곳에 정말 옥패의 단서가 있다는 것에 대해 염구준은 솔직히 조금 놀랐다.한참 동안 들여다 보아도 무언가 확실한 걸 보아낼 수가 없어 그는 결국 안에 더 깊이 들어가 탐색해보기로 마음 먹었다."가죠. 이건 이따가 다시 나와서 보고요."그의 말에 사람들은 전부 뒤를 따랐고 또 한참을 앞으로 걸어가서야 빛을 볼 수 있었다. 아마 목적지에 도착한 것 같았다."다왔어요, 바로 앞에 있습니다!" 설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이에 염구준 등은 크게 기뻐하며 발걸음을 재촉하여 바로 빛이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바로 이때, 공간이 갑자기 변하더니 주위의 환경도 변했고, 같이 온 사람들도 전부 모습을 감추었다. '염씨 가문의 저택?'염구준은 주위의 환경을 보면서 곧바로 이곳이 그가 어릴 때 생활했던 곳이고 가장 아름다운 추억이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때까지는 그를 사랑하고 지켜주는 그의 어머니도 살아계셨다."구준아, 빨리 들어와서 밥 먹지 않고 뭘 멍 때리는 거니?"이때, 고유연이 안에서 나오며 자애로운 목소리로 외쳤다."엄마?"이에 염구준은 잠시 멍해져 있다가 곧 목이 멘 채로 입을 열었다. "너 요즘 업무 스트레스가 너무 큰 거 아니야? 왜 갑자기 말도 제대로 못해?"고유연은 관심 어린 어투로 말하면서 앞으로 나가 그의 손에 든 서류 가방을 가져갔다.염구준은 그제야 반응이 와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옷을 쳐다보았다. 그는 가격이 만만치 않은 양복을 입고 있었는데, 가슴에 있는 명찰에는 염호 그룹 회장이라고 적혀 있
"미친."염구준은 감탄하고는 미친 듯이 달려드는 펭귄들을 막으면서 제때에 도와주기 위해 대오 쪽으로 붙었다.'여기가 펭귄 집이야 뭐야. 끝도 없네. 무엇보다 이 펭귄들 너무 괴상해. 피냄새만 맡으면 포악해지면서 미친듯이 달려들잖아.'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와중 그는 바닥에 뿌려진 피들이 피안개로 변하며 동굴 안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안에 대단한 게 있는 게 분명해.'염구준은 더 많은 생각을 할 시간이 없어 사람들을 지키면서 달려오는 펭귄들을 물리쳤다."아악, 난 죽고 싶지 않아!"그러나 이때 설씨 가문의 사람 중 한 명이 겁에 질려 갑자기 진형 밖으로 돌진했다.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싸우고 있었던 터라 막지도 못하고 그저 그 사람이 뛰쳐나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X발, 괜히 말썽만 피우기는." 백호는 욕을 읊조리고는 도망친 사람을 구하러 가려고 했다."내가 갈 테니까 진형을 유지해."염구준은 큰 소리로 외치며 바로 앞으로 돌진해 방금 뛰쳐나간 사람을 공격하는 펭귄들을 물리쳤다.겨우 잠깐 사이에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걸 보면 펭귄들의 공격력이 매우 강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가!"염구준은 뛰쳐나간 사람의 옷깃을 잡고는 팔을 휘둘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동굴 입구에 던졌다.'이상해. 이 펭귄들 피냄새를 맡고 동굴 입구까지 쫓아갔으면서 정작 도착한 뒤에는 한 눈 보고 다시 돌아가잖아. 안에 있는 걸 이 펭귄들이 꺼리는 건가 보군.'염구준은 사람을 구하고 나서 다시 대오의 앞부분으로 돌아간 후 길을 열어 사람들이 성공적으로 동굴 입구쪽에 도착하게 도와주었다.동굴 안으로 들어갔으니 이제 그들은 안전한 셈이었다."너 이 자식, 네가 무모하게 뛰어다닌 바람에 하마터면 진형이 무너질 뻔 했잖아. 진형이 무너지면 다들 죽을 수도 있었어!"설구는 방금 전에 도망친 사람을 보자마자 발로 차버렸다.이미 오기 전부터 그는 말을 했었었다. 죽어도 다른 사람들까지 위험에 빠뜨리지 말라고 말이다. 하지만 방금 전 도망친 사람
펭귄의 몸에 있는 문양이 좀 익숙하긴 했지만 어디서 봤던 건지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그럼 계속 가나요?"설씨 가문의 사람들이 물었다.달무 등이 공격당하는 모습을 본 그들은 매우 겁에 질린 상태였다. 그들은 달무 일행처럼 펭귄에게 공격 당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의 질문에 설구는 매우 난감해 했다. 그 역시 자신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쩔 방법이 없어 강자인 주작과 백호를 바라보았지만 그들의 시선은 모두 염구준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상대방이 명령을 내리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말이다."이정도면 됐어."염구준은 달무 등이 포악한 펭귄들의 시선을 대부분 잡아둔 것을 보고 낮은 소리로 말한 뒤 주변의 몇 사람들을 바라보았다."내가 길을 열 테니까 백호가 뒤를 끊고 현무는 왼쪽을 책임지고 주작은 오른쪽을 책임져. 너희 셋은 설웅 일행을 지켜.""알겠어?""네!"정예 부대의 대원들은 이구동성으로 큰 소리로 대답했다. "자, 그럼 움직이자!"염구준이 말을 마치자마자 그들은 진형을 바꾸어 설씨 가문의 사람들을 가운데에 에워쌌다.설구는 이제서야 염구준이야말로 이 무리의 핵심이라는 것과 설웅이 그들과 이미 아는 사이라는 것을 눈치챘지만 상대방이 지금 신분을 숨긴 상태이기 때문에 딱히 말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자신들을 도와주기만 하면 상관없었다.전부 진형대로 선 뒤, 그들은 동굴 입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다들 조심해요. 이 펭귄들은 피를 좋아하기 때문에 죽이지 말고 그냥 쫓아내요."염구준은 주위를 떠도는 펭귄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앞에서 지금 겨우 저 펭귄들의 시선을 끌어주고 있는데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되지.'"대장, 저 녀석들이 들어가려고 하는 것 같은데?" 브루언은 바쁜 상황에서도 주변의 상황을 한 눈 보았다.지금 그들은 다른 사람의 앞길을 터준 셈이었다. 달무가 처음에 세웠던 계획과 완전히 반대라는 말이다."화기를 써!"달무는 끝내 더 이상 숨기지 않기로 마음을 먹고 가방에서 새 총을 꺼내
달무는 상대방의 태도에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저희 모두 안에 있는 보물을 위해 온 것 같으니 손을 잡는 게 어때요? 보물을 가진 뒤 절반씩 나누는 걸로 하죠."'보물?'설씨 가문 사람들은 상대방의 말에 의문이 어렸다. 분명 얼음에 봉인된 사람을 깨우려고 왔다고 들었는데 상대방이 보물 이야기를 꺼내니까 말이다."보물에는 딱히 관심이 없습니다. 저희는 한 물건만 가지러 온 거라서요."설구는 과감하게 거절했다.'신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는데 손을 잡기는 개뿔.'만약 결정적인 순간에 상대방이 뒷통수를 때리면 어떡하나. 그땐 후회를 해도, 울어도 소용없을 게 뻔한데 말이다."늙은이, 좋게 말할 때 듣지 그래?" 브루언은 좋지 않은 말투로 말하며 상대방을 손 봐주기 위해 앞으로 걸어갔다.이에 달무는 그를 막으면서 웃으며 말했다."그럼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각자의 능력에 맡기는 걸로 하죠."말을 마친 후 그는 사람들을 이끌고 동굴 입구로 걸어갔다.달무가 만만한 사람이라 브루언을 말린 것이 아니라 보물의 그림자도 보지 못한 상황에서 상대방과 싸우는 게 수지에 맞지 않다고 여겨서 그렇게 행동한 것 뿐이었다."우리도 가자!"설구는 늦게 가면 계획에 영향을 미칠까봐 얼른 앞으로 가려고 했다."잠시만요, 우선 저 펭귄들의 반응을 보죠."이에 염구준은 재빨리 제지했다. 이 말을 들은 설구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번에 대오를 이끄는 사람은 그인데, 옆에서 이래라저래라 하니 말이다. 그가 막 말을 하려고 할 때, 설웅이 서둘러 나섰다."저도 이 분의 말에 동의합니다. 이 시간을 아낀다고 해서 크게 변하는 것도 없으니 한 번 기다려보죠."미래 가주이자 족장이 하는 말이니 설구는 말을 억지로 삼키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제자리에 서서 달무 등이 펭귄 무리에게 점점 다가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길 막지 말고 저리 꺼져!" 브루언은 펭귄 한 마리를 발로 차면서 방금 전의 불만을 털어놓았다.솔직히 말해서 그는 방금 전
출발하기 전에 달무 등을 한 눈 더 쳐다본 염구준은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으로 보아 그들이 일반인도, 탐험가도 아니라는 걸 바로 눈치챘다.달무는 기름을 들고 돌아가며 웃으면서 말했다."운이 좋네. 기름 몇 통을 챙겼으니까 말이야."사실은 아직 기름이 부족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한 이유는 누군가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이 기회를 틈타 물재를 가져오기 위해서였다."굳이 이렇게 귀찮게 할 필요 있어? 그냥 다 죽이고 빼앗아 오면 되잖아."브루언은 독한 술을 마시며 대부분이 쓰는 일반적인 수법을 말했다.이에 달무는 고개를 저으며 엄숙하게 대답했다."안 돼, 방금 전 일행은 인원수가 적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겉모습이랑 챙긴 장비만 봐도 만만한 사람이 아닌 것 같으니까 말이야.""게다가 우리가 이번에 여기까지 온 건 임무가 있어서야. 겨우 이딴 일로 큰 일을 그르쳐서는 안 되지."말을 마친 뒤 그는 지도를 꺼내 위치를 보고 노선을 살펴보기 시작했다.자신들의 대장이 이렇게까지 말했으니 나머지도 더 이상 뭐라고 하지 못하고 그저 입을 다물었다. "자, 다들 충분히 쉰 것 같으니까 계속 전진하자."달무의 명령에 20여 명의 일행들이 스노모빌을 타고 끝없이 펼쳐진 눈길로 향했다.그들이 달리는 방향은 바로 설구 등이 떠난 방향이었다.계속해서 앞으로 달리고 있던 설구 등은 곧바로 뒤에서 울리는 엔진 소리를 들었다."장로님, 누군가가 따라옵니다. 방금 전에 만난 달무 일행이에요."설웅은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비록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제일 앞에 있는 사람의 방한복을 보면 달무임이 틀림없었다.'음?'상대방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설구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우선 멈추고 휴식하자. 다들 경계태세에 돌입해. 저들이 뭘 하려는 건지 잘 지켜보고."누군가가 뒤를 따라잡은 이상, 우선 상대방이 무엇을 하려는 건지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일행은 곧바로 멈추었고, 뒤에 있던 달무 등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을 따라
고수들을 데리고 가문의 주둔지로 와 적들을 물리친 그는 지금 현재 암묵적인 가주였기 때문에 설구도 뭐라고 반박할 수가 없어 동의하고는 말을 덧붙였다. "그래요, 그럼 같이 가죠. 하지만 저희는 당신들의 안전을 책임지지 못합니다.""괜찮습니다. 저희의 몸은 저희가 잘 챙길 테니 걱정 마세요."염구준은 웃으며 대답했다.'가는 도중에 날 힘들게 하지만 않으면 다행이지.'이번에 임무를 맡은 정예 부대는 가장 약한 사람도 전신경지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그들은 장비를 점검하고는 스노모빌을 타고 설구의 인솔하에 그 신비한 곳으로 출발했다."다들 무사히 돌아와야 해요!"그들의 뒤에서 설씨 가문의 사람들이 크게 외쳤다.이번 임무에서 흑풍과 청목을 동시에 상대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염구준은 큰 가방 안에 구자검을 넣고 출발했다.어느 정도의 경지에 도달했는지 알 수 없는 반보 천인 앞에서 여유를 부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청목존주의 일은 그리 급하지 않았다. 미끼는 이미 던졌으니 상대방이 물기만을 기다리면 되었다.낚시를 하려면 인내심을 가져야 했다.넓은 눈밭에서 사람들은 거의 모두 최대시속으로 스노모빌을 탔다.제일 앞에서 달리는 설구가 마음이 급해서 빠르게 몰아서였다.그들이 달리던 중 대오에서 눈이 가장 좋은 염구준이 무언가를 발견했다. "앞에 사람이 있어요!"그의 말을 들은 설구는 집중해서 눈을 똑바로 뜨고 앞을 보았고 정말 누군가가 서 있는 걸 보았다. 그는 곧바로 경계심이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 정신 차려. 일 벌이지 말고."이 지역은 무인 구역이기 때문에 사람이 나타난다는 것 자체가 매우 비정상적인 일이었다.설구는 먼저 방향을 약간 바꿔서 돌아가려고 했으나 곧바로 가로막혔다."안녕하세요, 좀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그의 길을 막은 사람이 말했다.염구준은 앞에 있는 사람들을 한번 훑어보았는데, 금발에 푸른 눈, 그리고 오똑한 코를 가지고 있는 걸 보아 서양인 같아 보였다.심지어 그들 중 한 명은 전에 천랑성호에서 한
같은 시각에 설씨 가문 주둔지는 모닥불 파티를 연 탓에 매우 떠들썩했다.이 자리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람은 당연히 설씨 가문의 은인인 주작과 백호였다."이 술을 빌어 은인님들께 정말 감사하다고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들 덕분에 청목의 앞잡이들을 물리칠 수 있었어요.""이건 남극 빙원의 특산물인 크릴새우입니다. 한번 드셔보세요.""설웅이 여러분들같은 고수를 만난 건 저희 가문의 복입니다."설씨 가문 사람들도 매우 맛나게 먹었다. 이 음식들은 평소에 감독관들이나 먹는 것들이었다.사람들은 불을 에워싸고 춤을 추며 오랫동안 억눌려왔던 감정을 풀고 한껏 웃었다.설씨 가문 사람들의 열정에 주작과 백호는 적응이 되지 않아 염구준에게 도움을 청하는 눈길을 보냈으나 염구준은 웃으며 술잔을 들었을 뿐, 딱히 다른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그는 지금 속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어떤 일들은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해야한다는 것을 그도 잘 알고있었다. 너무 성급하게 굴었다간 허점이 많아지게 될 테고 그럼 신분이 들키게 될 테니까 말이다.'그쪽에서 놀라서 도망치면 이 모든게 헛수고가 되버리니까 천천히 해야 해.'모두가 기뻐하고 있을 때, 오직 설씨 가문의 장로, 설구만이 염구준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앉아 슬픈 눈빛을 하고서 눈썹을 찌푸리고 있었다."장로님, 나쁜 녀석들이 도망갔는데 왜 안 기뻐하세요?" 그의 이상함을 눈치 챈 설웅이 그의 옆으로 다가가서 물었다."에휴, 다시 돌아올 겁니다.""청목존주를 처리하지 않는 이상 다시 돌아올 거예요. 무엇보다 청목존주는 반보천인의 강자입니다. 누가 이길 수 있겠어요?"설구는 장로답게 다른 사람들보다 안목이 더 좋고 생각이 더 깊었다."가문 전체가 남극 빙원이 아닌 바깥으로 옮기는 건 어떨까요?" 그의 말을 들은 설웅은 공손한 태도로 물었다."바깥으로 갈 수 있었다면 이미 이사를 갔을 겁니다. 하지만 외부에는 강적이 있어요. 만나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죠."상대방의 질문에 설구는 천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