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야? 나 너무 배고파. 우리한테 밥도 안 주고... 무서운 개랑 같은 데 가둬두고... 개한테 여러 군데 물리기까지 했어. 나 너무 아프고 무서워. 흑...”극북빙양, 거대한 전장에서 수많은 함선들이 전투를 벌이고 있다.그중 붉은색 드래곤이 코팅된 함선의 지휘실 수화기에서 이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온 것이다.하지만 아이의 애절한 목소리에도 염구준의 표정은 여전히 차갑기만 하다.“잘못 거셨습니다.”“아니야! 우리 엄마가 날 속였을 리가 없어. 내 이름은 염희주야. 염구준의 딸 염희주라고! 엄마가 그렇게 말해 줬단 말이야.”쿠궁!행여라도 전화를 끊을가 싶어 다급하게 내뱉는 여자아이의 목소리에 염구준의 눈동자가 드디어 흔들리기 시작한다.염희주?“정... 정말 내 딸이라고?”하지만 그의 질문에 대답 대신 들려오는 건 찢어질 듯한 따귀 소리와 여자아이의 처참한 비명소리였다.“이 계집애가, 발칙하게 몰래 전화를 걸어?”“아,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그러니까 때리지만 말아주세요!”여자아이의 애원을 마지막으로 전화는 끊겨버리고 다시 걸어봐도 묵묵부답.딸이 위기에 처했음을 인지한 염구준은 다급한 마음에 붉은 피를 왈칵 쏟아냈다.“주군!”깔끔한 군복차림의 여자가 다급하게 그를 부축했다.하지만 거칠게 그 손을 뿌리친 염구준이 포효했다.“어서 전세기 준비해. 지금 당장 청해로 돌아간다!”“알겠습니다!”잠시 후, 거대한 전세기가 하늘을 뚫고 사라지고... 수많은 병사들이 수십 척의 함선갑판을 가득 메운 채 무릎을 꿇었다.“안녕히 가십시오, 주군!”다음 날, 청해 교외, 손씨 가문 저택.저택 밖에 선 염구준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5년 전, 가문에서 쫓겨나고 킬러들에게 쫓기다 교통사고까지 당했던 순간, 우연히 길을 지나던 소녀 한 명이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헤치고 중상을 입은 그를 구해냈었다.그녀의 정체는 바로 손씨 가문의 딸, 목숨을 구해 준 은혜를 갚기 위해 염구준은 기꺼이 데릴사위가 되는 조건
이에 다시 딸을 꼭 끌어안은 염구준이 아이의 뒤통수를 어루만졌다.“아니야. 엄마가 착각한 거야. 아빠 살아있어. 지금 바로 네 앞에 있잖아.”눈물의 부녀상봉을 마친 염구준이 물었다.“그런데 여기 말이야... 혹시 엄마가 보낸 거야?”염구준의 품에 얼굴을 파묻었던 염희주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아니야! 엄마가 날 이딴 곳에 보낼 리가 없잖아! 우리 엄마가 얼마나 착한데! 이모, 나쁜 이모가 날 여기 보낸 거야. 이모가 엄마랑 날 집에서 내쫓은 거라고...”‘이모?!’생각지 못한 단어에 염구준의 머릿속은 혼란 그 자체였다.‘손혜린 그 여자를 이모라고 부른다고? 그럼... 이 아이 엄마는 도대체 누구지? 나랑... 손혜린이 낳은 딸... 아니었나?’이 상황이 당황스러웠지만 염구준은 최대한 친절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아빠가 묻는 말에 솔직하게 대답해야 해. 이모 이름이 뭐야?”“이모 이름은 손혜린. 우리 엄마 사촌언니랬어. 그런데... 나쁜 이모가...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지도 말래. 이모가 내 엄마래! 어른들은 다 거짓말쟁이야. 그러니까 아저씨도 우리 아빠 아니지?”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던 염희주는 무언가를 떠올린 듯 눈을 반짝였다.“엄마가 그랬어. 아빠를 구하려다 성대를 다친 거라고. 그래서 말을 못 하는 거라고. 그래도 이건 가르쳐줬다?”염희주은 작은 손가락으로 염구준의 큰 손바닥에 삐뚤삐뚤하게 “염구준” 세 글 자를 적어보였다.“엄마가 가르쳐 준 거야. 아빠 이름은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나 제대로 쓴 거 맞지?”한편, 염희주의 말을 들으면 들을 수록 염구준은 경악스러울 따름이었다.‘날 구하려다 성대를 다쳤다고? 그날 날 구한 게 손혜린 그 여자가 아니었단 말이야? 손혜린 그 여자는 분명 말을 할 줄 알았었지... 그럼 그날 밤, 나랑 첫날밤을 보냈던 그 여잔 도대체 누구야?’“희주야.”전장에서 온갖 못 볼 꼴을 다 보며 살아남은 염구준이었지만 이 순간, 떨리는 목소리만큼은 차마 숨길 수 없었다.“엄마 이름이 뭐야?”그러
혼인신고를 하고 맹세의 키스를 하고 서로의 부모님께 큰절로 인사를 올렸다.5년 동안 전장을 구르면서도 매일 밤 그리워했던 여자가 이 여자였다!하지만 그녀는 그가 그리던 그 사람이 아니었다. 손혜린은 그녀의 사촌언니이자 희대의 사기꾼이었다!결혼식마저 모두를 속이기 위한 사기극에 불과했다!그는 이제 모두를 두려움에 떨게 하는 전신전 군주 염구준이다!그런 그가 이 하찮은 여자에게 5년을 속았다니!“지금… 뭐 하자는 거야?”잠시 당황한 손혜린은 옆에 있는 서재원의 팔을 꽉 잡고는 의기양양한 말투로 말했다.“네 신분을 망각하지 마. 넌 우리 가문 데릴사위야! 어디 감히 내 앞에서 큰소리를 내?”염구준은 낮게 으르렁거렸다.“말해! 왜 나를 속였어?”“5년 전 나와 결혼한 사람이 너 맞아? 손가을은 누구야? 빨리 해명해!”손혜린은 흠칫 어깨를 떨더니 떨떠름한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설마… 다 알고 왔어?”알고 왔다니?염구준은 뿌드득 소리 나게 이를 갈았다.역시 그런 거였어!희주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가 예상했던 대로 그 결혼식은 가짜였다.손가을, 손씨 가문… 저들은 도대체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는 걸까?“혜린아.”여태 말이 없던 서재원이 냉랭한 미소를 지으며 거만하게 입을 열었다.“두려워할 것 없어. 저 자식이 진실을 알게 된들 뭘 할 수 있는데? 너 이제 곧 나랑 결혼할 거라고 솔직하게 말해! 저놈은 그냥 벌레야. 남한테 놀아난 줄도 모르는 가련한 버러지일 뿐이라고!”손혜린은 깔깔 웃더니 가면을 완전히 벗어 던졌다. 그녀는 서재원의 품에 안기더니 염구준을 향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어차피 너랑은 이혼할 생각이었으니까 거짓말할 필요도 없지! 넌 내가 널 살려준 은인인 줄 알았어? 내가 왜? 난 손가을처럼 멍청하지 않아!”과거, 손씨 가문은 데릴사위를 공개적으로 모집했다!4대째 내려온 가문은 이번 대에서 대가 끊길 위기에 직면했다. 손가을은 이 가문의 유일한 손녀였다. 결국 어르신은 친척인 손혜린을 호적에 입적시켰다. 손혜
“예전에 잘나갈 때 나도 잘해준다고 선물도 종종 가져다 주고 그랬는데 저 여자 나한테 시선 한번 안 주더라?”서석호는 두툼한 손으로 턱을 만지며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예전에는 도도하게 굴어도 어쩔 방법이 없었지만 지금은 다르지.”말을 마친 그는 손가을에게 손짓하며 자신의 허벅지를 툭툭 쳤다.“거기, 여기 와서 앉아! 오늘은 오빠가 예뻐해 줄게!”피아노 박자가 다소 빨라지더니 손가을은 두 손을 앞으로 공손히 모으고 휴게실에 있는 손님들을 향해 허리를 꾸벅 숙였다. 다시 고개를 든 그녀는 서석호를 향해 억지 미소를 짓고는 손가락으로 의사를 표현했다.5년 전 사고현장을 목격한 그녀는 목숨을 걸고 사람을 구하다가 뜨거운 일산화탄소에 성대가 손상되면서 다시는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되었다.그 뒤로 그녀는 수화를 몸에 익혔다. [죄송합니다. 저는 이제 퇴근해야 해서요. 재밌게 놀다 가세요.]수화로 의사를 전달한 그녀는 다급히 자리를 뜨려 했다.그녀가 서석호의 옆을 스쳐 지나갈 때, 그가 그녀의 옷자락을 우악스럽게 잡았다.“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 애 보러 가는 거야?”그는 야비한 미소를 짓더니 계속해서 말했다.“아, 넌 아직 모르겠구나? 네 딸 희주 있잖아? 손혜린이 걔를 우리 조카한테 보내주기로 했어!”“우리 조카 알지? 우리 누나가 애지중지하는 왕자님이잖아. 애가 좀 멍청하기는 해도 예쁜 여자애들이랑 노는 걸 좋아하더라고! 지난번에 걔랑 같이 놀라고 데려온 여자애가 베란다에서 떨어져 즉사했다지?”손가을은 움찔하며 충격 어린 표정으로 서석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맺히더니 소리 없이 흐느꼈다.서석호가 거짓말한 것 같지는 않았다. 손혜린은 이런 짓을 저지르고도 남을 애였다.그녀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딸 희주는 그녀에게 목숨과도 같은 존재였다.“왜? 마음 아파?”서석호가 입술을 감빨더니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딸 살리고 싶어? 간단해! 내가 평소에 너한테 어떻게 했는지 알 거야! 여기 사람
“내가 잘못했어.”염구준은 죄책감 가득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내가 손혜린한테 속아서 5년이란 시간을 허비했어. 내가 속지만 않았어도….”“이것들이 지금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옆에서 듣고 있던 서석호가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며 염구준의 말을 잘랐다. 그는 염구준의 얼굴에 삿대질하며 욕설을 퍼부었다.“개 같은 자식, 누군가 했더니 너였구나? 손가네 데릴사위, 염구준?”“감히 내 일을 방해하려 하다니! 죽고 싶어? 내 이놈을 당장!”고래고래 떠들던 소리가 순식간에 사라졌다.염구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손아귀를 뻗어 서석호의 턱을 잡고 비틀었다.우드득!뼈마디가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상하 치아가 순식간에 맞물리며 서석호의 혀를 잘랐다!그 뒤에 이어진 발차기에 육중한 몸집을 자랑하던 서석호가 끈 떨어진 연처럼 공중을 날아 우당탕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추락했다. 뒤에 있던 호화 안마의자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서석호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나뒹굴었다.손가을을 포함해 현장에 있던 모두가 경악했다.염구준의 품에 안긴 염희주마저 놀라서 울음을 터뜨렸다.190cm를 자랑하는 장신 서석호가 가볍게 나가 떨어져서 피를 토하는 모습은 모두를 경악하게 만들었다!“으… 윽….”놀란 손가을도 다급한 마음에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염구준의 팔을 밀쳤다.‘도망가. 빨리 도망가. 여긴 서가네 아지트야. 온통 서가네 사람들 뿐이라고!’“두려워하지 마.”염구준은 시선을 돌려 담담한 표정으로 손가을을 바라보며 말했다.“당신만 원한다면 저놈들을 싹 다 죽여 버릴 수 있어. 내 딸과 처를 괴롭힌 놈들은 죽어도 싸!”그냥 겁주기 위한 멘트가 아닌, 전신전 전주의 선전포고였다.어차피 사회의 암 같은 존재들뿐인데 좀 죽이면 어때서?"………" 손가을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가로저으며 눈물을 흘렸다.죽이면 안 돼, 죽이면 안 돼!당신이 군인이었다 하더라도, 무공이 뛰어나고, 서석호를 죽일 수 있고, 이곳의 많은 사람들을 죽일 수 있다 하
"가을아." 염구준은 다른 사람들을 아랑곳하지도 않고 손가을만 가만히 지켜보며 속삭였다. "두려워하지 마, 내가 있어!”그리고 손혜린을 돌아보며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손혜린, 이런 쓸데없는 말을 하려고 이 많은 사람을 데리고 온건 아니겠지?”"서재원의 경호원들 덤비라고 한 명령을 좋은 의도로 말렸을 이유는 없고……”"말해봐, 도대체 뭘 하자는 거니?!”서재원도 화를 억누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손혜린, 나도 묻고 싶다. 왜 경호원들을 말렸니?!”"재원 오빠, 화내지 마. 이 쓰레기 같은 놈과 이혼하려고 그랬어!" 손혜린은 서재원의 품에 안기어 염구준을 째려보았다. "구청에 가서 여러 번 조사했는데 이 쓰레기 같은 놈의 정보가 없었어. 만약 그가 탄 해선에서 연락이 오지 않았더라면 벌써 죽은 줄만 알았지!”"이제야 알았네. 전쟁터에 갔으니 혼인 정보가 군 시스템에 들어사서 내가 일방적으로 이혼 신청을 할 수 없었던 거야.”"염구준 본인이 동의가 있어야 해!”서재원은 인상을 찌푸리며 “흥” 하는 소리를 냈다."염구준, 당신이 전장에서 돌아온 것을 봐서 나랑 재원 오빠는 오늘 네 목숨을 살려 둘 거야!”"과거의 일도 묻어두지!”"대신 나랑 이혼해!”염구준은 웃었다.군인과의 혼인은 신성하다. 손혜린의 능력으로 쉽게 이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그리고….전신전 전주는 용제국 국주와 대등한 존귀한 신분이다. 청해 구청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 강대국의 정보 부서에서도 그의 정보를 찾아낼 수 없을 것이다.손혜린 이 우습고 어리석은 여자."이혼, 요구가 이렇게 간단하다고?" 염구준의 염희주를 안고 그의 양 갈 머리를 잡고 놀면서 손혜린에게 가볍게 웃었다. "나랑 이혼하고 싶다고? 나도 같은 생각이야. 공교롭게도 생각이 일치하네!”"그리고."“네가 비록 나를 5년 동안 기만했지만 그래도 양쪽 어르신들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했으니 이렇게 서면상의 혼인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지.”"그래서 한 번 더 묻는다. 정말 잘 생각하고 나랑
반지가 아니라 반짝이는 순금의 작은 토큰이였다. 정면에는 부조였고 뒷면에는 “G.J”라고 적혀있었다. 토근은 마치 수라장을 포위한 듯 살기가 넘쳤다.G.J 토큰!4대 전존을 통솔하고 7대 전왕을 거느리며 108명의 전장에 백만 전사를 지배하는 용제국 최고의 영예이자 전신전 전주가 세운 공을 상징하는 토큰이다. 전신전 전주를 대표하는 토큰이기도 하다. 아무것도 이 토큰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손가을은 입술을 깨물었고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청혼!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다. 아니, 5년간 무수히 환상을 해왔던 일이다!5년...그동안 너무 많은 억울함을 당했고 너무 많은 고난이 있었다!그날, 목숨 걸고 교통사고로 다친 청년을 구했다! 그날 저녁, 술에 취한 남자에게 몸을 바쳤다! 그리고 5년 동안, 그녀는 부드러운 목소리를 잃었고, 손씨 집안 맏딸의 자리를 빼앗겼고 심지어 부모님께도 피해를 끼쳐 집안에서 쫓겨나게 만들었다! 5년 사이, 그는 염희주를 낳았고 이별이 만남보다 많은 나날을 보냈다. 그나마 딸을 낳아서 다행히 모녀의 정은 지킬 수 있었다. 그렇게 오늘까지 기다렸다.오늘, 그녀의 남자가 돌아와 그들의 딸을 구하고 서석호 손에서 그녀를 구해줬다.그리고 손혜린과 이혼을 하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녀에게 청혼을 했다.전부 가짜라고 해도, 염구준이 돈을 들여 섭외한 사람과 차라고 해도, 이 모든 게 거품같은 환상이라고 해도, 너무 행복했다. 염구준의 마음만 있으면 충분했다. “결혼해, 결혼해...”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주변에서 그들을 지켜보던 행인들이 박수를 보내며 흥분한 채 소리 질렀다. “결혼해, 결혼해...”염구준 뒤에있는 주작전존과 호위대들도 전부 오른손을 가슴에 놓고 소리쳤다. “결혼해, 결혼해...”결혼...손가을은 입술을 꽉 깨물고 터져 나오는 울음을 꾹 참았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염구준 손에서 G.J 토큰을 받았다! 무거운 G.J 토큰은 철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반지가 아니
“...”손가을 얼굴이 어두워졌다.아무 말도 없었지만 부모님의 태도는 너무 명확했다. 손씨 집안에 장가를 온다고 해도 염구준은 데릴사위에 불과하다. 제대했어도 돈은 받지 못했을 거다. 돈이 없으면 생활이 좋아질 리가 없다. 노동력은 많아졌지만 동시에 밥 먹는 입도 늘어난 셈이다.부모님은 이 사위가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가을아.” 손태석은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는 그릇에 담긴 밥을 다 먹고 나서야 고개를 들어 낮은 소리로 말했다. “너 몇 년간 일해서 모은 돈이 얼마나 되니? 희주 유치원 학비랑 돈 들어갈 거 다 빼면 50만원은 되니?”손가을은 얼굴이 하얘졌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나한테 줘봐.” 손태석이 젓가락을 내려놓고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집에서 쫓겨나고 아버지가 다시 집안으로 돌아가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너도 알 테다. 내일이 어르신 칠순 잔친데, 그 돈으로 제대로 된 선물 하나 준비하고 싶구나. 어르신이 마음에 들어 하셨으면...”손가을은 눈시울이 붉어졌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돈은 있다!손혜린이 그녀더러 사우나에서 일하라고 시키면서 갖은 모욕을 줬지만, 손님 등을 밀어주고 가끔 피아노 쳐주면 운 좋은 날은 팁도 받을 수 있어 돈은 적지 않게 벌었다. 몇 년 동안 일해서 손가을은 몇백만 원은 모았다. 하지만 손씨 어르신 마음은 얼음보다 차갑고 돌덩이보다 단단했다. 고작 몇백만 원의 선물을 드렸다고 절대 그들을 다시 받아주지는 않을 것이다!“돈...” 장인어른의 눈치를 보던 염구준은 무의식적으로 주머니를 만졌다. 헉.난처했다.그는 전신전의 전주다. 혼자 돈을 주고 무얼 사본 적이 없었다다.하찮게 여겼던 돈이지만 지금은 그를 난처하게 만들었다.주머니를 만지는 염구준을 보자 손태석은 눈이 반짝해졌다. 하지만 빈손인 걸 보자다시 낯빛이 어두워지더니 고개를 푹 수그리고 머리를 저었다. 그러고는 아무 말 없이 침실로 들어갔다.“...” 염구준은 하려던 말을 삼키고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멍하니
“네!”두 사람은 복장을 바로잡고 원래 위치에 서서 정지한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이 작은 일 때문에 감시실에서는 새로운 명령을 내렸다.“모든 사람 주의. 무슨 일이 생기지 않게 순찰 강화하고, 감시를 철저히 해.”니체르 공작은 여러 번 강조했었다. 한 명이라도 실수할 시 전부 다같이 생매장 시켜버리겠다고 말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높은 급여를 받지만, 그만큼 위험도 컸다. 외부요소가 아닌 내부요소 때문이었다. 한편, 이미 노엘테크놀로지 본사에 침입한 염구준은 감시와 순찰을 피하면서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찾기 힘드네. 건물이 40층이나 되는데 매 층마다 300평씩이나 되니까.”염구준은 저도 모르게 감탄하며 말했다.감시 카메라와 적외선 센서를 피해야 해서, 한 층을 모두 살펴보는 데에만 30분이 걸렸다.이 속도로 모든 층을 다 확인하려면 몇 일이 걸릴 것 같았다.그는 두 층을 더 살펴본 뒤, 구조와 장식이 비슷하다는 걸 알아챘으나 여전히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지하라면?’염구준은 지하에 비밀의 방이 있을 것 같다는 의심이 들어 지하 주차장을 한 번 돌아보았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여기에 갇혀있는 게 맞을까?’제일 간단한 방법은 니체르를 붙잡아 두들겨 패고 손중석의 행방을 묻는 것이었다.하지만 그 방법에는 단점이 있는데, 바로 상대방이 위협을 느끼고 증거를 없애기 위해 인질을 죽여버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역시 사람을 먼저 찾아야겠어.’그러나 두 층을 더 수색했지만, 여전히 별다른 성과가 없어 그는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오늘 밤에 노엘테크놀로지의 본사에 잠입해 얻은 게 없어보일지 몰라도 덕분에 급히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를 발견했다. 바로 이 건물의 설계도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설계도를 통해야만 건물의 숨겨진 곳을 명확히 알 수 있었고, 그런 곳이 사람을 숨기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일 가능성이 높았다.‘이런 건물을 설계할 수 있는 설계자가 많지 않을 거야. 그러니 찾는데는 어렵지 않겠지.’염
“공작님,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수하는 목을 긋는 제스처를 하며 말했다.“서두르지 마. 일을 하려면 전체를 봐야하는 법이니까. 흑풍은 아직 유용하니, 일단 놔둬.”니체르 공작은 흑풍 존주가 혹여나 배신할까 봐 걱정되어 그런 것이었지, 죽일 생각은 없었다.황실호텔은 이번 신에너지 토론회가 열리는 곳이었기 때문에 많은 국가의 대표들이 이미 머무르고 있었다.방 안에서, 손가을은 염구준을 호기심과 의혹이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만. 30분 동안 이렇게 보기만 한 거 알아? 할 말 있으면 바로 해도 돼.” 염구준은 손을 뻗어 아내를 품에 안으며 말했다. “내 실력이 당신보다 많이 부족하지?”손가을은 고개를 들어 남편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물었다.그녀도 무인의 경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반보천인이 남들보다 강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반보천인이라고 해도 헬기를 떨어뜨리는 건 무리라고 생각되었다.이렇게 강한 남편을 두었다는 게 기쁘기도 했지만, 동시에 걱정도 되어 그녀는 현재 마음이 복잡했다.“부족하기는. 내 실력이 곧 당신 실력이야. 그러니 너무 많이 부담 갖지마.”염구준은 고개를 숙여 아내의 이마에 입맞춤을 하며 다정하게 위로했다.그가 이 정도의 경지까지 갈고 닦은 건, 가족과 용하국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구준 씨, 당신 정말 얼마나 강한 거야?” 손가을은 남편의 목을 감싸며 물었다.“내가 얼마나 강한지 이미 알고 있잖아.”염구준은 대답하면서 약간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이에 빠르게 반응한 손가을은 염구준의 가슴을 가볍게 때리며 말했다. “미워!”“오늘 많이 피곤했으니까, 일찍 쉬자.”“응!”염구준은 대답하며, 아내를 들고 침대 쪽으로 걸어갔다....야심한 밤이 되자 시끄럽던 도시도 이제는 고요해졌다. 염구준은 아내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가을아, 난 좀 처리할 일이 있어 나가봐야 할 것 같아.”이에 손가을은 잠이 덜 깬 채로 일어나 그의 외
“정말 죄송합니다. 제 부하가 좀 경솔해서 민폐를 끼쳤습니다. 사실 저 녀석도 진심이 아니라 장난으로 한 말이었답니다.”항공모함 전투단이 바로 앞에 있었기에 에드로는 몸을 낮추고 바삐 설명했다. “하지만 방금 전에 저희에게 진짜 칼과 총을 들이댔는 걸요.” 그러나 손가을은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그녀는 말을 하면서 계속 염구준을 힐끔거렸다.비지니스 문제라면 문제 없지만 군사적인 문제는 어떻게 처리할지 몰라서였다.염구준은 아내가 난처해 한다는 걸 눈치채고는 그녀를 도와주었다.“가을아, 먼저 호텔에 가서 좀 쉬어. 이 문제는 내가 해결할게.”“응, 그럼 호텔에서 기다릴게.”손가을은 염구준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모두 참았다.방금 전에 그 강력한 기운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몸이 떨렸고, 남편의 능력을 다시 한 번 과소평가했음을 깨달았다.에드로는 눈치 빠르게 옆에 있는 부하에게 명령했다. “3팀장, 손님을 안전하게 호텔까지 모셔다 드려. 최선을 다해 경호하는 거 잊지 말고.”오스타국 입장에서는 이제 더 이상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되었다.사람들이 떠난 후, 에드로는 염구준을 조용한 곳으로 초대한 뒤, 이번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지 상의했다.“성함이 어떻게 되는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에드로가 먼저 입을 열었다.“제 이름은 염구준입니다. 하실 말씀있으시면 바로 하세요.” 염구준은 아무렇지 않게 이름을 알려줬다. 어차피 간단한 이름일 뿐이기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서였다.두 사람은 간단히 몇 마디를 주고받았고, 염구준은 상대방의 태도가 나쁘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염 선생님,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에드로는 매우 공손하게 물었다.이로써 주도권은 염구준에게 넘어갔다. 이것 또한 에드로의 성의였다.그러나 염구준은 방금 전의 일이 생각나 일부러 상대방을 놀래켰다.“선전포고를 이미 했으니 싸우지 않으면 투항할 수밖에 없죠. 다른 방법이 없잖아요.”“그건...”말을 들은 에드로는 난처한 표
나머지 헬기 조종사들은 상황을 보고 즉시 공중으로 상승했다.“너희가 의지하는 힘, 내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야.” 염구준은 냉담하게 말했다.이때, 주작이 핸드폰을 확인한 후 얼굴에 안도감을 드러냈다.“용하국의 항공모함 전투단이 오스타국의 인근해역에 도착했다. 이제 얌전히 죽을 준비해.”사실 아까 염구준이 그녀에게 눈빛을 보냈을 때부터 그녀는 제일 가까이 있는 군사력을 찾고 있었다. 주작의 큰 목청이 주위에 울려 퍼지자 황실호위대의 병사들은 전부 그녀의 말을 똑똑히 들었다.순식간에 현장은 혼란에 빠져버렸다. 이 일 때문에 용하국에서 정말로 나설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할 거야? 그 강대한 용하국 앞에서 우리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야.”“이게 다 블룬더 때문이야. 왜 괜히 문제를 일으켜서 상황을 이렇게 만들어? 봐, 일이 더 복잡하게 됐잖아.”“항복하자. 그러면 살려줄 수도 있잖아.”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무력한지 잘 알고 있었다. 전투가 시작되면 몇 시간도 버티지 못할 거라는 것도 말이다. 싸움이 시작되기도 전에 그들은 이미 사기가 전부 떨어졌다.옆에서 황실호위대의 대화 내용을 들은 염구준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어때? 이제 이 상황도 네가 책임질 수 있겠어?”꿀꺽.블룬더는 침을 삼키며, 방금 전에 허세 부리려고 한 말이 실제로 용하국에 대한 선전포고로 이어졌음을 깨달았다.“너... 너 도대체 누구야? 이렇게 거대한 군사를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 거냐?”“네카일이 말했잖아? 날 건드리지 말라고. 난 당연히 너희가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이지.” 염구준은 자신의 정체를 말하지 않았다.블룬더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서였다. 애초에 장난으로 한 선전포고가 현실이 되어버린 것이 그는 제일 당황스러웠다.다다다.이때, 밖에서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곧 에드로와 나머지 팀장들이 나타났고, 그 뒤로 수만 명의 황실 호위대가 따라왔다.“후우.”블룬더는 구세주가 온 걸 보고 길
“하하, 내가 한 일은 당연히 책임질 테니 걱정마.”부사령관은 크게 웃으며 대답했다. 염구준이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자 그는 상대방이 더 이상 방법이 없을 거라고 생각해 기분이 더 좋아졌다.이 정도 규모로 큰 움직임은 곧바로 황실의 고위층과 많은 귀족들에게 전달되었고,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불과 몇 킬로미터 떨어진 제국빌딩의 최상층에서, 니체르 공작은 고배율 망원경을 통해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공작님, 저 미친 개를 막으러 갈까요?”옆에 있던 시종이 조심스레 물었다.“그럴 필요 없다. 이참에 염구준의 실력을 제대로 한 번 봐야겠어.”니체르 공작은 진지하게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는 흑풍 존주의 말을 완전히 믿지 않았었다.한편, 친왕의 성. 에드로는 막 잠에 들자마자 시종의 말소리에 눈을 떴다. “친왕님, 블룬더가 만 명을 동원하여 용하국의 사절단을 에워싸고 있습니다.”“뭐라고?”이 말을 들은 뒤, 에드로는 완전히 정신이 들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심장은 지금 터질만큼 빠르게 뛰었다.‘권력을 준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사고를 쳐?’상대방의 무단 행동에 비록 화가 났지만 그 권력을 쥐어준게 본인이니 그는 속이 타도 어쩔 수가 없었다.“지금 당장 공항으로 가게 빨리 다른 팀장들에게 연락해.”사태가 급박해지자, 에드로는 잠옷을 입고, 슬리퍼를 신은 채로 급히 성을 나섰다.반면, 시끄러운 밖과는 달리 왕궁 안은 여전히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지금의 국왕은 겨우 여덟 살이라 아직 놀줄 밖에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의 옆을 지키는 호위, 네카일은 얼굴에 걱정이 가득했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한편, 같은 시각에 공항.양측이 한참 대치하고 있을 때, 부사령관인 블룬더가 가장 먼저 인내심을 잃었다.“준비...”“주작, 사람들을 지켜!”염구준은 빠르게 달려나가 블룬더가 명령을 내리는 걸 막기 위해 검을 뽑아 들었다.‘지난번에 전력을 다한 게 아니었나?’블룬더는 상대방의 강렬한 기세에 놀라며, 눈앞의 사람이 보통의 반
아무말도 나오지 않아 팀원들에게 도움의 눈길을 보냈으나 다른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돌리고 그를 무시했다.바로 이때, 황실호위대가 다가와 염구준 일행을 둘러쌌다.“짐 검사를 위해 캐리어 좀 열어주십시오. 위험물질이 들어있는 것 같아서요.”모두가 겪을 거 다 겪은 사람들이었지만, 완전무장한 호위대 앞에서는 여전히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이번에 경호를 맡은 주작이 앞장서서 상황을 조율하려 했다. “저희는 이번 신에너지 토론회에 참여하는 용하국의 대표팀입니다. 아마도 오해가 있는 것 같네요.”하지만 호위대는 봐주지 않고 오히려 고함을 지르며 말했다.“모든 사람들을 검사하라는 명령이 있습니다. 특히 용하국인들을 말이죠. 즉, 당신들이 특별검사 대상이라는 거예요.”말을 이렇게 하기는 했지만 그들은 주위 사람들은 전혀 검사하지 않고 오직 주작 일행들만 검사했다. 함정수사인 게 틀림없었다. 호위대의 병사들은 아무런 허락도 받지 않은 상황에서 자각적으로 일행의 캐리어를 뒤지려고 했다.안에 상업기밀 등 중요한 문건들이 들어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쾅!“짐 뒤지는 사람 있으면 다 죽여버릴 거야.”주작은 강한 기운을 내뿜으며 호위대의 사람들을 전부 날려버렸고, 이에 그녀의 부하들도 즉시 싸울 준비를 했다.주작은 먼저 공격하는 성격이 아니었지만 가만히 참는 성격도 아니었다.“여기는 오스타국이다. 얌전하게 협조하는 게 좋을 거야.”이때, 부사령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도 어떻게 보면 부지런하다고 할 수 있었다. 친왕의 성에서 나오자마자 한시도 쉬지 않고 이곳에 와서 사고를 치려는 걸 보면 말이다.“여기가 어디든,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으면 두배로 갚아줄 거다.”염구준은 말을 하며 주작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눈빛을 보낸 뒤, 주위를 둘러보다가 네카일이 보이지 않는 걸 발견했다.‘상황이 변했나 보군. 지금은 부사령관의 말을 듣는 건가.’‘그럼 전에 했던 약속은 무효가 되겠네.’“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 했던가? 저번에는 운이 좋아서
“구준 씨, 일 보러 안 가도 괜찮아?”“가서 이야기하자. 이 며칠동안 되게 드라마틱한 일들이 많았거든.” 염구준은 혹시나 도청하는 사람이 있을까 봐 서둘러 말하지 않았다.“응!”손가을은 남편과 함께 하는 게 기뻐 상대방의 팔짱을 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모습을 보고있던 사람들은 염구준 부부의 애정 과시에 며칠이나 밥을 먹지 않아도 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제이든 역시 두 사람 사이에 끼지 않고 얌전히 그들의 뒤를 따랐다.그런데 바로 이때, 두 사람 뒤에서 단정한 옷차림에 비싼 수트를 입고 두꺼운 안경을 쓴 중년 남성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가을 씨, 이 남자는 누구죠?”그의 말투에는 불쾌한 기색까지 담겨 있었다.염구준은 상대방의 말을 듣자마자 화가 나서 손가을이 대답하기도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저는 가을이의 합법적인 남편입니다. 딸도 있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어요.”상대방이 멀리 꺼지게 하기 위해 염구준은 일부러 그의 신경을 건드리며 말했다.이를 눈치 챈 손가을은 잘 협조하기 위해 고개를 염구준의 어깨에 기대며 부부의 화목함을 자랑했다.그녀는 이미 안세환에게 질릴만큼 질렸다. 계속 다가와서 말을 걸어놓고는 또 오만한 태도를 보이니까 말이다.“그쪽은 뭐하는 분이시죠? 가을 씨 같이 좋은 와이프를 얻을 수 있는 분 직업이 궁금해서요.”안세환은 여전히 오만한 태도로 말했는데, 그의 표정에서는 약간의 경멸도 느껴졌다.용하국 신에너지 분야의 탑 연구원으로서 그는 이 업계에서 가장 유명했으며 연봉도 몇십억을 넘었다.“전 일 안하고 집에만 있어요. 다만 가을이는 이런 절 무척이나 사랑한답니다. 짜증나죠?”염구준은 말하면서 한 손으로 손가을의 어깨를 감싸며 친근감을 드러냈다.옆에 있던 주작은 웃음을 참으며 속으로 염구준이 매우 짓궂다고 생각했다. 상대방이 어떤 점에서 화가 날지 파악하고 일부러 자기 이미지를 구겼으니까 말이다.이 말을 들은 안세환은 역시나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는 두 사람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
그들이 떠난 뒤, 남은 사람들은 두 그룹으로 나누어져 싸우기 시작했다.“적 앞에서 오스타국 황실의 위엄을 도전하는데도 싸우지 않고 물러서다니, 겁쟁이도 아니고 뭐하는 겁니까?” 부사령관은 자신의 뒷배경을 믿고 네카일을 질책하기 시작했다.“그건 오스타국을 위해서 한 행동이었어. 그리고 난 사령관이다. 말투 조심해.” 하지만 네카일은 물러서지 않고 기운을 내뿜으며 상대방에게 위압감을 주었다.그가 외부인이 아니었다면 이런 대우 따위는 받지 않았을 것이다.“위엄이 대단하시네요, 사령관님. 이 일 황실에 반드시 고발하고 말 테니, 기대하세요.” 이에 부사령관은 더 이상 정면으로 맞서지 못하고 자신의 편을 데리고 떠났다.한편, 오스타국 황실, 친왕의 성.성 안에는 금빛 궁정 의상을 입은 채로 황금 좌석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며 왕의 기개를 드러내는 노인이 한 명 있었는데, 그가 바로 황실에서 가장 권력 있는 친왕 중 한 명이자, 황실호위대의 책임자인 알렉스 에드로였다.“친왕님, 네카일이 비밀리에 용하국인과 결탁하여 동족을 해쳤습니다. 아마도 배신자인 것 같습니다.”그의 아래에서는 부사령관이 무릎을 꿇고 고자질을 하고 있었는데, 물론 모두 허무맹랑한 말들이었다.“그 용하국인의 이름이 뭐지?” 그러나 에드로는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물었다.그가 이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든 신중하게 처리하는 성격 때문이었다.“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좀 강해 보이긴 합니다만 두려워할 수준은 아닙니다.” 부사령관은 곧바로 대답했으나 일부 사실은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에드로가 자신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굳이 따로 조사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에드로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런 거짓말을 해도 벌을 받을까 봐 두려워하지 않았다. “역시 외부인은 외부인이군. 그렇게 잘해뒀는데도 배은망덕하기는. 그럼 이젠 네가 그 녀석 대신 사령관을 맡으렴.” 에드로는 말하면서 금빛 명패를 던졌다.부사령관은 재빨리 받으면서 크게 좋아하며 연신 감사인사를
염구준은 일어서서 먹다 남은 과일을 쓰레기통에 툭 던지고 밖으로 나갔다.지인이라는 말에 병사들은 다시 한번 충격을 받았다.염구준이 사령관과 지인일 줄은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밖에 나간 염구준은 전방을 둘러보았다.본부대에서 13명이 출동했는데 전부 사령관 출신들이었다.더 상세하게 말하자면 대장 한 명이 만 명의 병사를 거느렸으니 13만 명이 오스크국의 모든 전력이었다.“염구준?”사령관 네카일이 염구준을 보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왠지 머릿속이 복잡해 보였다.“제법이야. 당신도 반보천인 고수가 되었네.”염구준은 상대방의 기운을 감지하고 칭찬부터 했다.예전에 전쟁터에서 만난 네카일은 실력이 가장 약했던 일원에 속했다.“사령관님, 이 사람은 누굽니까?”한 대장이 두 사람의 관계가 심상치 않은 것을 보고 물었다.“너희들이 상관할 일이 아니다. 저 사람을 건드리면 안된다는 것만 기억해.”네카일은 정영병들이 충격을 먹을까 봐 케케묵은 옛날 이야기는 하지 않고 경고만 주었다.그때는 네카일이 오스크국에 오기 전이었다.어떤 분쟁으로 인해 그가 소속된 세력과 염구준이 전투를 벌였는데 거의 전멸되었다.지금 그는 떳떳한 반보천인 고수로 거듭났지만 감히 그에게 복수하러 가지 못했다.왜냐면 본인도 강해졌는데 상대방이라고 제자리 걸음을 한다는 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염구준은 그들의 대화를 무시하고 말했다.“오늘 확실하게 할 말이 있어서 당신들을 불렀어.”“듣고 있으니까 말해.”네카일은 기운을 거두고 대장들에게 공격하지 말라는 손짓을 보냈다.그에게 염구준이라는 존재는 평생 지울 수 없는 악몽에서 시달리게 한 악마와 같았다.그런데 이런 곳에서 또 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내가 정당방위로 사람 한 명을 죽이고 당신 대신 부하들을 참교육을 했어. 나랑 끝까지 싸우고 싶다면 지금 빨리 끝내자. 지금 싸우지 않겠다면 나중에 내가 떠날 때 귀찮게 할 생각하지 마.”염구준이 어떻게 나올지는 그들의 선택에 달렸다.지금 그는 킬러들에게 감시당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