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야? 나 너무 배고파. 우리한테 밥도 안 주고... 무서운 개랑 같은 데 가둬두고... 개한테 여러 군데 물리기까지 했어. 나 너무 아프고 무서워. 흑...”극북빙양, 거대한 전장에서 수많은 함선들이 전투를 벌이고 있다.그중 붉은색 드래곤이 코팅된 함선의 지휘실 수화기에서 이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온 것이다.하지만 아이의 애절한 목소리에도 염구준의 표정은 여전히 차갑기만 하다.“잘못 거셨습니다.”“아니야! 우리 엄마가 날 속였을 리가 없어. 내 이름은 염희주야. 염구준의 딸 염희주라고! 엄마가 그렇게 말해 줬단 말이야.”쿠궁!행여라도 전화를 끊을가 싶어 다급하게 내뱉는 여자아이의 목소리에 염구준의 눈동자가 드디어 흔들리기 시작한다.염희주?“정... 정말 내 딸이라고?”하지만 그의 질문에 대답 대신 들려오는 건 찢어질 듯한 따귀 소리와 여자아이의 처참한 비명소리였다.“이 계집애가, 발칙하게 몰래 전화를 걸어?”“아,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그러니까 때리지만 말아주세요!”여자아이의 애원을 마지막으로 전화는 끊겨버리고 다시 걸어봐도 묵묵부답.딸이 위기에 처했음을 인지한 염구준은 다급한 마음에 붉은 피를 왈칵 쏟아냈다.“주군!”깔끔한 군복차림의 여자가 다급하게 그를 부축했다.하지만 거칠게 그 손을 뿌리친 염구준이 포효했다.“어서 전세기 준비해. 지금 당장 청해로 돌아간다!”“알겠습니다!”잠시 후, 거대한 전세기가 하늘을 뚫고 사라지고... 수많은 병사들이 수십 척의 함선갑판을 가득 메운 채 무릎을 꿇었다.“안녕히 가십시오, 주군!”다음 날, 청해 교외, 손씨 가문 저택.저택 밖에 선 염구준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5년 전, 가문에서 쫓겨나고 킬러들에게 쫓기다 교통사고까지 당했던 순간, 우연히 길을 지나던 소녀 한 명이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헤치고 중상을 입은 그를 구해냈었다.그녀의 정체는 바로 손씨 가문의 딸, 목숨을 구해 준 은혜를 갚기 위해 염구준은 기꺼이 데릴사위가 되는 조건
이에 다시 딸을 꼭 끌어안은 염구준이 아이의 뒤통수를 어루만졌다.“아니야. 엄마가 착각한 거야. 아빠 살아있어. 지금 바로 네 앞에 있잖아.”눈물의 부녀상봉을 마친 염구준이 물었다.“그런데 여기 말이야... 혹시 엄마가 보낸 거야?”염구준의 품에 얼굴을 파묻었던 염희주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아니야! 엄마가 날 이딴 곳에 보낼 리가 없잖아! 우리 엄마가 얼마나 착한데! 이모, 나쁜 이모가 날 여기 보낸 거야. 이모가 엄마랑 날 집에서 내쫓은 거라고...”‘이모?!’생각지 못한 단어에 염구준의 머릿속은 혼란 그 자체였다.‘손혜린 그 여자를 이모라고 부른다고? 그럼... 이 아이 엄마는 도대체 누구지? 나랑... 손혜린이 낳은 딸... 아니었나?’이 상황이 당황스러웠지만 염구준은 최대한 친절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아빠가 묻는 말에 솔직하게 대답해야 해. 이모 이름이 뭐야?”“이모 이름은 손혜린. 우리 엄마 사촌언니랬어. 그런데... 나쁜 이모가...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지도 말래. 이모가 내 엄마래! 어른들은 다 거짓말쟁이야. 그러니까 아저씨도 우리 아빠 아니지?”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던 염희주는 무언가를 떠올린 듯 눈을 반짝였다.“엄마가 그랬어. 아빠를 구하려다 성대를 다친 거라고. 그래서 말을 못 하는 거라고. 그래도 이건 가르쳐줬다?”염희주은 작은 손가락으로 염구준의 큰 손바닥에 삐뚤삐뚤하게 “염구준” 세 글 자를 적어보였다.“엄마가 가르쳐 준 거야. 아빠 이름은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나 제대로 쓴 거 맞지?”한편, 염희주의 말을 들으면 들을 수록 염구준은 경악스러울 따름이었다.‘날 구하려다 성대를 다쳤다고? 그날 날 구한 게 손혜린 그 여자가 아니었단 말이야? 손혜린 그 여자는 분명 말을 할 줄 알았었지... 그럼 그날 밤, 나랑 첫날밤을 보냈던 그 여잔 도대체 누구야?’“희주야.”전장에서 온갖 못 볼 꼴을 다 보며 살아남은 염구준이었지만 이 순간, 떨리는 목소리만큼은 차마 숨길 수 없었다.“엄마 이름이 뭐야?”그러
혼인신고를 하고 맹세의 키스를 하고 서로의 부모님께 큰절로 인사를 올렸다.5년 동안 전장을 구르면서도 매일 밤 그리워했던 여자가 이 여자였다!하지만 그녀는 그가 그리던 그 사람이 아니었다. 손혜린은 그녀의 사촌언니이자 희대의 사기꾼이었다!결혼식마저 모두를 속이기 위한 사기극에 불과했다!그는 이제 모두를 두려움에 떨게 하는 전신전 군주 염구준이다!그런 그가 이 하찮은 여자에게 5년을 속았다니!“지금… 뭐 하자는 거야?”잠시 당황한 손혜린은 옆에 있는 서재원의 팔을 꽉 잡고는 의기양양한 말투로 말했다.“네 신분을 망각하지 마. 넌 우리 가문 데릴사위야! 어디 감히 내 앞에서 큰소리를 내?”염구준은 낮게 으르렁거렸다.“말해! 왜 나를 속였어?”“5년 전 나와 결혼한 사람이 너 맞아? 손가을은 누구야? 빨리 해명해!”손혜린은 흠칫 어깨를 떨더니 떨떠름한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설마… 다 알고 왔어?”알고 왔다니?염구준은 뿌드득 소리 나게 이를 갈았다.역시 그런 거였어!희주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가 예상했던 대로 그 결혼식은 가짜였다.손가을, 손씨 가문… 저들은 도대체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는 걸까?“혜린아.”여태 말이 없던 서재원이 냉랭한 미소를 지으며 거만하게 입을 열었다.“두려워할 것 없어. 저 자식이 진실을 알게 된들 뭘 할 수 있는데? 너 이제 곧 나랑 결혼할 거라고 솔직하게 말해! 저놈은 그냥 벌레야. 남한테 놀아난 줄도 모르는 가련한 버러지일 뿐이라고!”손혜린은 깔깔 웃더니 가면을 완전히 벗어 던졌다. 그녀는 서재원의 품에 안기더니 염구준을 향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어차피 너랑은 이혼할 생각이었으니까 거짓말할 필요도 없지! 넌 내가 널 살려준 은인인 줄 알았어? 내가 왜? 난 손가을처럼 멍청하지 않아!”과거, 손씨 가문은 데릴사위를 공개적으로 모집했다!4대째 내려온 가문은 이번 대에서 대가 끊길 위기에 직면했다. 손가을은 이 가문의 유일한 손녀였다. 결국 어르신은 친척인 손혜린을 호적에 입적시켰다. 손혜
“예전에 잘나갈 때 나도 잘해준다고 선물도 종종 가져다 주고 그랬는데 저 여자 나한테 시선 한번 안 주더라?”서석호는 두툼한 손으로 턱을 만지며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예전에는 도도하게 굴어도 어쩔 방법이 없었지만 지금은 다르지.”말을 마친 그는 손가을에게 손짓하며 자신의 허벅지를 툭툭 쳤다.“거기, 여기 와서 앉아! 오늘은 오빠가 예뻐해 줄게!”피아노 박자가 다소 빨라지더니 손가을은 두 손을 앞으로 공손히 모으고 휴게실에 있는 손님들을 향해 허리를 꾸벅 숙였다. 다시 고개를 든 그녀는 서석호를 향해 억지 미소를 짓고는 손가락으로 의사를 표현했다.5년 전 사고현장을 목격한 그녀는 목숨을 걸고 사람을 구하다가 뜨거운 일산화탄소에 성대가 손상되면서 다시는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되었다.그 뒤로 그녀는 수화를 몸에 익혔다. [죄송합니다. 저는 이제 퇴근해야 해서요. 재밌게 놀다 가세요.]수화로 의사를 전달한 그녀는 다급히 자리를 뜨려 했다.그녀가 서석호의 옆을 스쳐 지나갈 때, 그가 그녀의 옷자락을 우악스럽게 잡았다.“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 애 보러 가는 거야?”그는 야비한 미소를 짓더니 계속해서 말했다.“아, 넌 아직 모르겠구나? 네 딸 희주 있잖아? 손혜린이 걔를 우리 조카한테 보내주기로 했어!”“우리 조카 알지? 우리 누나가 애지중지하는 왕자님이잖아. 애가 좀 멍청하기는 해도 예쁜 여자애들이랑 노는 걸 좋아하더라고! 지난번에 걔랑 같이 놀라고 데려온 여자애가 베란다에서 떨어져 즉사했다지?”손가을은 움찔하며 충격 어린 표정으로 서석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맺히더니 소리 없이 흐느꼈다.서석호가 거짓말한 것 같지는 않았다. 손혜린은 이런 짓을 저지르고도 남을 애였다.그녀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딸 희주는 그녀에게 목숨과도 같은 존재였다.“왜? 마음 아파?”서석호가 입술을 감빨더니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딸 살리고 싶어? 간단해! 내가 평소에 너한테 어떻게 했는지 알 거야! 여기 사람
“내가 잘못했어.”염구준은 죄책감 가득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내가 손혜린한테 속아서 5년이란 시간을 허비했어. 내가 속지만 않았어도….”“이것들이 지금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옆에서 듣고 있던 서석호가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며 염구준의 말을 잘랐다. 그는 염구준의 얼굴에 삿대질하며 욕설을 퍼부었다.“개 같은 자식, 누군가 했더니 너였구나? 손가네 데릴사위, 염구준?”“감히 내 일을 방해하려 하다니! 죽고 싶어? 내 이놈을 당장!”고래고래 떠들던 소리가 순식간에 사라졌다.염구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손아귀를 뻗어 서석호의 턱을 잡고 비틀었다.우드득!뼈마디가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상하 치아가 순식간에 맞물리며 서석호의 혀를 잘랐다!그 뒤에 이어진 발차기에 육중한 몸집을 자랑하던 서석호가 끈 떨어진 연처럼 공중을 날아 우당탕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추락했다. 뒤에 있던 호화 안마의자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서석호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나뒹굴었다.손가을을 포함해 현장에 있던 모두가 경악했다.염구준의 품에 안긴 염희주마저 놀라서 울음을 터뜨렸다.190cm를 자랑하는 장신 서석호가 가볍게 나가 떨어져서 피를 토하는 모습은 모두를 경악하게 만들었다!“으… 윽….”놀란 손가을도 다급한 마음에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염구준의 팔을 밀쳤다.‘도망가. 빨리 도망가. 여긴 서가네 아지트야. 온통 서가네 사람들 뿐이라고!’“두려워하지 마.”염구준은 시선을 돌려 담담한 표정으로 손가을을 바라보며 말했다.“당신만 원한다면 저놈들을 싹 다 죽여 버릴 수 있어. 내 딸과 처를 괴롭힌 놈들은 죽어도 싸!”그냥 겁주기 위한 멘트가 아닌, 전신전 전주의 선전포고였다.어차피 사회의 암 같은 존재들뿐인데 좀 죽이면 어때서?"………" 손가을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가로저으며 눈물을 흘렸다.죽이면 안 돼, 죽이면 안 돼!당신이 군인이었다 하더라도, 무공이 뛰어나고, 서석호를 죽일 수 있고, 이곳의 많은 사람들을 죽일 수 있다 하
"가을아." 염구준은 다른 사람들을 아랑곳하지도 않고 손가을만 가만히 지켜보며 속삭였다. "두려워하지 마, 내가 있어!”그리고 손혜린을 돌아보며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손혜린, 이런 쓸데없는 말을 하려고 이 많은 사람을 데리고 온건 아니겠지?”"서재원의 경호원들 덤비라고 한 명령을 좋은 의도로 말렸을 이유는 없고……”"말해봐, 도대체 뭘 하자는 거니?!”서재원도 화를 억누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손혜린, 나도 묻고 싶다. 왜 경호원들을 말렸니?!”"재원 오빠, 화내지 마. 이 쓰레기 같은 놈과 이혼하려고 그랬어!" 손혜린은 서재원의 품에 안기어 염구준을 째려보았다. "구청에 가서 여러 번 조사했는데 이 쓰레기 같은 놈의 정보가 없었어. 만약 그가 탄 해선에서 연락이 오지 않았더라면 벌써 죽은 줄만 알았지!”"이제야 알았네. 전쟁터에 갔으니 혼인 정보가 군 시스템에 들어사서 내가 일방적으로 이혼 신청을 할 수 없었던 거야.”"염구준 본인이 동의가 있어야 해!”서재원은 인상을 찌푸리며 “흥” 하는 소리를 냈다."염구준, 당신이 전장에서 돌아온 것을 봐서 나랑 재원 오빠는 오늘 네 목숨을 살려 둘 거야!”"과거의 일도 묻어두지!”"대신 나랑 이혼해!”염구준은 웃었다.군인과의 혼인은 신성하다. 손혜린의 능력으로 쉽게 이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그리고….전신전 전주는 용제국 국주와 대등한 존귀한 신분이다. 청해 구청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 강대국의 정보 부서에서도 그의 정보를 찾아낼 수 없을 것이다.손혜린 이 우습고 어리석은 여자."이혼, 요구가 이렇게 간단하다고?" 염구준의 염희주를 안고 그의 양 갈 머리를 잡고 놀면서 손혜린에게 가볍게 웃었다. "나랑 이혼하고 싶다고? 나도 같은 생각이야. 공교롭게도 생각이 일치하네!”"그리고."“네가 비록 나를 5년 동안 기만했지만 그래도 양쪽 어르신들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했으니 이렇게 서면상의 혼인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지.”"그래서 한 번 더 묻는다. 정말 잘 생각하고 나랑
반지가 아니라 반짝이는 순금의 작은 토큰이였다. 정면에는 부조였고 뒷면에는 “G.J”라고 적혀있었다. 토근은 마치 수라장을 포위한 듯 살기가 넘쳤다.G.J 토큰!4대 전존을 통솔하고 7대 전왕을 거느리며 108명의 전장에 백만 전사를 지배하는 용제국 최고의 영예이자 전신전 전주가 세운 공을 상징하는 토큰이다. 전신전 전주를 대표하는 토큰이기도 하다. 아무것도 이 토큰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손가을은 입술을 깨물었고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청혼!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다. 아니, 5년간 무수히 환상을 해왔던 일이다!5년...그동안 너무 많은 억울함을 당했고 너무 많은 고난이 있었다!그날, 목숨 걸고 교통사고로 다친 청년을 구했다! 그날 저녁, 술에 취한 남자에게 몸을 바쳤다! 그리고 5년 동안, 그녀는 부드러운 목소리를 잃었고, 손씨 집안 맏딸의 자리를 빼앗겼고 심지어 부모님께도 피해를 끼쳐 집안에서 쫓겨나게 만들었다! 5년 사이, 그는 염희주를 낳았고 이별이 만남보다 많은 나날을 보냈다. 그나마 딸을 낳아서 다행히 모녀의 정은 지킬 수 있었다. 그렇게 오늘까지 기다렸다.오늘, 그녀의 남자가 돌아와 그들의 딸을 구하고 서석호 손에서 그녀를 구해줬다.그리고 손혜린과 이혼을 하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녀에게 청혼을 했다.전부 가짜라고 해도, 염구준이 돈을 들여 섭외한 사람과 차라고 해도, 이 모든 게 거품같은 환상이라고 해도, 너무 행복했다. 염구준의 마음만 있으면 충분했다. “결혼해, 결혼해...”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주변에서 그들을 지켜보던 행인들이 박수를 보내며 흥분한 채 소리 질렀다. “결혼해, 결혼해...”염구준 뒤에있는 주작전존과 호위대들도 전부 오른손을 가슴에 놓고 소리쳤다. “결혼해, 결혼해...”결혼...손가을은 입술을 꽉 깨물고 터져 나오는 울음을 꾹 참았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염구준 손에서 G.J 토큰을 받았다! 무거운 G.J 토큰은 철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반지가 아니
“...”손가을 얼굴이 어두워졌다.아무 말도 없었지만 부모님의 태도는 너무 명확했다. 손씨 집안에 장가를 온다고 해도 염구준은 데릴사위에 불과하다. 제대했어도 돈은 받지 못했을 거다. 돈이 없으면 생활이 좋아질 리가 없다. 노동력은 많아졌지만 동시에 밥 먹는 입도 늘어난 셈이다.부모님은 이 사위가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가을아.” 손태석은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는 그릇에 담긴 밥을 다 먹고 나서야 고개를 들어 낮은 소리로 말했다. “너 몇 년간 일해서 모은 돈이 얼마나 되니? 희주 유치원 학비랑 돈 들어갈 거 다 빼면 50만원은 되니?”손가을은 얼굴이 하얘졌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나한테 줘봐.” 손태석이 젓가락을 내려놓고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집에서 쫓겨나고 아버지가 다시 집안으로 돌아가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너도 알 테다. 내일이 어르신 칠순 잔친데, 그 돈으로 제대로 된 선물 하나 준비하고 싶구나. 어르신이 마음에 들어 하셨으면...”손가을은 눈시울이 붉어졌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돈은 있다!손혜린이 그녀더러 사우나에서 일하라고 시키면서 갖은 모욕을 줬지만, 손님 등을 밀어주고 가끔 피아노 쳐주면 운 좋은 날은 팁도 받을 수 있어 돈은 적지 않게 벌었다. 몇 년 동안 일해서 손가을은 몇백만 원은 모았다. 하지만 손씨 어르신 마음은 얼음보다 차갑고 돌덩이보다 단단했다. 고작 몇백만 원의 선물을 드렸다고 절대 그들을 다시 받아주지는 않을 것이다!“돈...” 장인어른의 눈치를 보던 염구준은 무의식적으로 주머니를 만졌다. 헉.난처했다.그는 전신전의 전주다. 혼자 돈을 주고 무얼 사본 적이 없었다다.하찮게 여겼던 돈이지만 지금은 그를 난처하게 만들었다.주머니를 만지는 염구준을 보자 손태석은 눈이 반짝해졌다. 하지만 빈손인 걸 보자다시 낯빛이 어두워지더니 고개를 푹 수그리고 머리를 저었다. 그러고는 아무 말 없이 침실로 들어갔다.“...” 염구준은 하려던 말을 삼키고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멍하니
부품으로 산산조각 나서 폐기 상태가 되었다.윙윙!스스로 데이터를 분석한 4번 로봇은 생존할 수 없게 되자 두 눈에서 빨간 빛을 발산했다.자폭하려는 것이다.퍽!그때 한 그림자가 빠른 속도로 로봇의 가슴에서 에너지를 꺼냈다.4번 로봇의 눈동자는 빛을 잃고 완전히 고철 덩어리가 되었다.그림자 정체는 염구준이었다.“세상에 고수들이 많아. 너희들 실력이 빠르게 상승하지만 태만해서는 안 돼.”“알겠습니다.”그의 충고에 부하들은 일심동체로 대답했다.여섯 명의 포위 작전만 봐도 평범한 반천인 고수와 싸울 자격을 이미 갖추었다.드디어 싸움이 끝나고 설씨 가족들도 전부 구출되었다.설구는 두 손을 모아 염구준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선생님, 전에 제가 보는 안목이 없었습니다. 혹시라로 무례하게 대했다면 부디 양해해 주세요.”“할 말이 있으면 하세요. 그런 인사치레는 안 해도 됩니다.”염구준은 속 좁은 인간이 아니라서 이 정도 일은 따지지 않았다.설구는 웃음을 머금고 실행 가능한 방법을 제시했다.“소주님한테서 선생님도 청목 존주와 원한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한테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주변에 분포된 우리 가문들도 청목 존주의 압박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 사람들까지 부르면 도움이 될 것 입니다.”일리가 있는 말 같지만 자세이 생각하면 머릿수가 많다고 해서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결국은 실력이 강한 고수들에게 의지해야 했다.“장로님, 싸울 실력이 없는 사람들을 불러도 도움이 안 됩니다.”백호는 속으로 웃었다.만약 그런 실력이 있었다면 설씨 가문도 청목 조직의 압박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원하는 대로 하세요. 그렇다고 굳이 나한테 말할 필요 없어요.”그런데 한참 생각하던 염구준은 그 방법에 동의했다.어떤 물건이든, 어떤 사람이든 모두 쓸모가 있기 때문이다.“지금 연락하러 갈게요.”설구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휴대폰을 꺼냈다.백호는 이해되지 않아 작은 소리로 물었다.“주상님, 왜 저 사람들을 불렀어요?”궁금한 건 참지 못하는 성
염구준이 명령을 내리자 전원 전신 영역을 펼쳐 공격을 막았다.설씨 가족들도 영역 아래서 보호받았다.작살이 영역에 부딪쳐서 탁탁하는 소리가 날 때마다 전기가 튀었다.이번 공격은 기세가 대단해도 한계가 있어 방어막을 뚫지 못했다.“경고, 상대방 실력이 강하여 신중하게 맞선다.”4번 로봇은 머리속에 대량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명령을 내렸다.모든 일은 데이터를 통해 분석하는 것이 개조 로봇의 최대 약점이다.만약 데이터가 완벽하지 않으면 오류도 발생했다.“저놈들을 쓰레기통에 처넣자!”정영 팀은 스노우모빌에서 내려 앞으로 돌진했다.“원격으로 공격해!”아직 적들과 맞붙지 않았는데도 기운을 발사했다.한바탕 공격을 퍼붓자 실력이 평범한 개조 로봇들이 순식간에 수십 대가 폐기되었다.거주지에 거의 도달했을 때 염구준이 임무를 안배했다.“너희 여섯 명이 제일 강한 놈을 상대하고 나머지는 나한테 맡겨!”실전으로 그들의 싸움 실력을 단련시켜 더 높은 경지로 이끌어주고 싶었다.개조 로봇은 반천인 실력을 갖고 있지만 실력이 약하고 원소의 힘도 사용하지 못했다.“네.”여섯 명은 각자의 무기를 꺼내 들고 4번 로봇을 향해 돌진했다.염구준이 생각해 주는 마음을 모를 리가 없었다.애송이들과 백 번을 넘게 싸워도 한낱 애송이 취급만 받을 것이다.설씨네 거주지에서 치열한 싸움이 벌여졌다.염구준 일행은 수백 대 개조 로봇과 감독관들을 포위하여 뒤를 쫓아다녔다.그런데 상대방의 실력이 너무 보잘것없어 싸울 의욕이 나지 않았다.4번 로봇은 지원하려고 싸움에 끼어들었지만 여섯 명에게 잡혀 빠져나오지 못했다.일방적인 공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싸울 준비를 마친 설구 일행도 끼어들 틈이 없어 가족들을 구하러 나섰다.“에휴. 저 사람들이 이렇게 강할 줄 알았다면 얼음 인간을 찾아가지도 않았어.”설구는 고개를 저으며 후회했다.힘들게 지하 궁전에 들어가서 얻은 것은 없고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드디어 싸움이 끝났다.염구준 일행은 기운을 거두고 주변을 둘
이번에 강력한 4번 로봇이 적지 않은 개조 로봇을 데리고 와서 자신감이 넘쳤다.“백어. 사람은 다 체크했어?”4번 로봇의 기계 소리가 울렸다.“체크했는데 설씨 가문의 장로와 소주 그리고 열 명 넘는 가족들이 사라졌습니다. 그 외에 고수 2명도 보이지 않네요.”백어는 명단을 건네며 공손하게 대답했다.4번 로봇은 개조한 로봇이지만 조직에서 신분이 높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탁!로봇은 서류를 그의 면상에 던지며 무뚝뚝한 기계 소리로 말했다.“여기서 담화를 나누지 말고 당장 가서 찾아와.”“네, 지금 바로 찾아오겠습니다.”백어는 쩔쩔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솔직히 그는 청목 조직에서 개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다.로봇도 자신을 무시하자 씩씩거리면서 우리 앞에 다가가 한 사람을 노려봤다.“저 자식을 끌어내!”담이 작은 설씨 가족은 아직 고문도 하지 않았는데 전부 자백했다.“장로님과 소주는 외부인들 데리고 조력자를 찾으러 갔어요.”생각한 것과 정반대였다.만약 설씨 가족들이 반항하고 누구도 자백하지 않으면 한바탕 화풀이하려고 했는데 물거품이 되어버렸다.“어디 갔어?”설씨 가족은 상대방의 눈빛이 싸늘한 것을 보고 유용한 정보를 말했다.“상세하게는 몰라요. 근데 소주의 여동생 설무가 뭔가 알고 있을 겁니다.”물귀신이 따로 없었다.“아주 좋아.”백어는 칼을 들고 그 사람의 목을 베며 사악하게 웃었다.“자백해서 고맙다만 너한테 화풀이는 해야겠어.”그리고 설무의 앞에 다가와 싸늘하게 물었다.“네 오빠가 어디 있는지 말해!”“흥.”설무는 콧방귀를 끼며 고개를 홱 돌렸다.꽤 고집이 있게 생긴 설무를 보고 백어는 칼날을 혀로 핥았다.“말하지 않으면 10초마다 네 얼굴을 긁어서 못난이로 만들겠다.”이번 협박은 통했는지 설무가 원한이 서린 눈빛으로 쏘아보았다.“우리 오빠가 널 죽여버릴 거야!”“하하하. 얼마든지 와서 죽이라고 해.”백어는 소인배처럼 큰소리로 웃었다.부아앙!바로 그때 멀리서 엔진 소리가 들렸다.스노우모빌을 탄 일행이
온몸에 감도는 검기가 구자검에 스며들 때 검이 가볍게 소리를 내며 떨었다.‘좋은 검이구나.’위험한 기운을 감지한 봉유곡은 도끼에 두꺼운 얼음층을 형성해 자신을 보호했다.공격을 포기하고 방어를 선택한 것이다.생사를 결정하는 중요한 순간에 최후의 공격을 사용하지 않자 염구준은 이해할 수 없었다.우르릉!그는 천둥번개가 치는 검기를 휘두르며 공격했다.그때 도끼의 그림자가 보일 듯 말 듯해서 뭔가 이상했다.봉유곡에게 가까워질 때 상대방의 호흡에 변화가 발생한 것을 느꼈다.쾅!검이 얼음을 찌른 순간, 얼음은 사방으로 튕기고 봉유곡은 피를 발산하며 폭발했다.염구준의 검에 저항하지 못하고 죽어버린 것이다.“아니야. 이렇게 약하지 않아.”그는 믿지 않았다.아무리 순조롭게 검의로 공격해도 쉽게 당할 사람이 아니었다.주변을 자세히 관찰했더니 피를 흘린 흔적이 좁은 동굴 입구로 연결되었다.도망친 것이다.덤빌 용기도 없으면서 온갖 허풍을 널어놓고 도망을 치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고물들의 수법은 진짜 기가 막혔다.어렵게 물어볼 기회가 생겼는데 이젠 누굴 찾아야 할지 막막했다.우르릉 쾅!그때 땅이 흔들면서 방이 휘청거리고 천장의 고드름이 바닥에 우드득 떨어졌다.곧 무너질 것 같았다.염구준은 뒤쫓을 겨를도 없이 정영 팀과 함께 동굴 밖으로 뛰쳐나왔다.설씨 가족들이 발목을 잡지 않으니 빠른 속도로 왔던 길을 되돌아 빠져나갔다.동굴 입구에 아직도 펭귄들이 서성거렸지만 몸에 있던 이상한 무늬가 사라진 탓인지 전보다 온순했다.밖으로 나온 지 얼마되지 않아 위에서 눈덩어리가 굴러 떨어지며 궁전을 묻어버렸다.“염 선생님, 드디어 나오셨네요.”설구가 황급히 다가와 물었다.“갑시다. 다들 돌아가세요.”염구준은 무너진 동굴 입구를 바라보며 스노우모빌에 올라탔다.이번 행차에서 많은 정보를 얻었지만 아쉽게도 자세히 알지 못했다.“얼음 인간은 어떻게 되었어요?”그때 설구가 다가오더니 작은 소리로 물었다.얼음 인간을 구하면 자신들을 도와줄 줄 알
대결하는 두 사람을 제외하고 정영 팀만 방에 남았다.그들은 혹시나 다칠까 봐 전신 영역을 펼치고 지켜보았다.봉유곡과 염구준은 짧은 시간 내에 벌써 수백 번의 초식을 주고받았다.‘녀석 왜 이렇게 강해?’출관하자마자 강력한 고수를 만난 것이 너무 놀라웠다.방금 전에 오만했던 자신이 조금은 창피했다.“집중하세요!”염구준은 상대방이 멈칫하는 틈을 타 검에 모든 기운을 담아 상대방의 가슴을 공격했다.‘방심했다.’봉유곡은 재빨리 도끼로 가슴을 막고 두 손으로 가까스로 버텼다.오랫동안 싸우지 않았더니 실력이 떨어진 것이다.쿵!검광이 아래로 떨어진 순간 봉유곡의 몸이 뒤로 날아가며 한쪽 얼음 벽에 부딪쳤다.방심한 탓에 염구준의 공격을 미처 막아내지 못했다.“이겼어!”옆에서 지켜보던 주작이 기쁜 나머지 주먹을 불끈 쥐며 펄쩍 뛰었다.정영 팀도 도와주고 싶었지만 이런 규모의 싸움에 끼어들 틈이 없었다.“죽은 척하지 마세요.”염구준은 얼음 덩어리에 묻힌 봉유곡을 향해 소리 질렀다.비록 일격에 상대방을 쓰러트렸지만 우세를 차지한 것은 아니었다.상대방이 방심해서 운이 좋았을 뿐이었다.와르륵!봉유곡은 얼음 덩어리를 헤치고 당당하게 일어났다.찢어진 옷을 보니 전보다 더 미치광이 같았다.“하하하. 좋다. 날 열받게 하는데 성공했어.”한때 세상에 이름을 떨친 강자였는데 지금은 반천인 경지 애송이에게 당해서 수치스러웠다.“허풍은 그만하고 제대로 싸우죠.”염구준이 비아냥거렸다.“현체연혈!”갑자기 봉유곡이 기합을 넣더니 몸뚱이가 커지며 너덜너덜하던 옷을 완전히 찢어버렸다.기운은 변하지 않았는데 체력이 눈에 띄게 강해졌다.염구준은 육체를 강화하는 비술에 관한 기록을 본 적이 있었지만 구체적인 수련 방법은 몰랐다.그의 눈에 봉유곡은 실전된 무술을 많이 알고 있는 보물 같았다.산 채로 체포할 수 있다면 적지 않은 무술들을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휙!갑자기 봉유곡이 도끼를 들고 염구준을 향해 공격했다.속도가 너무 빨라 잔영이 스쳐지나는
슈우웅!붉은 빛이 스치더니 얼음 인간이 설구를 공격했다.그를 깨운 장본인을 갈갈이 찢어 죽이고 싶었다.쿵!염구준이 검을 들고 공포스러운 일격을 막았다.첫 공격이라 두 사람은 무승부였다.“구자검!”얼음처럼 차가운 남자의 눈에서 의아한 빛이 흘렀다.“어쩐지 네가 눈에 거슬린다 했어.”염구준은 콧방귀를 끼며 맞받아쳤다.“그건 나도 마찬가지거든요.”예로부터 정파와 사파는 대립했고 검을 사용하는 무술인은 정파에 속했다.두 사람은 공포스러운 기운을 발산하며 서로를 쏘아봤다.“선배님, 참 대단하세요. 얼음에 자신을 봉인해 죽은 척하면서 오랜 세월을 살아오셨네요.”염구준은 얼음 인간의 비밀을 밝혔다.이 수법은 숙면 장치와 흡사했다.“흥! 그때 변고가 없었더라면 나도 구차하게 살지 않았어.”얼음 인간은 계속 기운을 발산하며 오만하게 굴었다.염구준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질문했다.“그때 무슨 일이 있었어요? 그리고 옥패 8개는 무슨 용도가 있습니까?”남자의 말투를 보아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하하하.”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억지를 부렸다.“알고 싶어? 알려주기 싫은데. 영영 모른 채로 살 거라.”좋게 얘기하려고 했는데 상대방이 일부러 말하지 않아 염구준은 열받았다.“그럼 말할 때까지 무력을 써야겠어요.”그는 검을 가로 휘두르며 상대방을 물리쳤다.“고작 반천인 실력이냐? 본왕의 실력을 보여주마.”얼음 인간은 오만하게 말하며 기운을 반천인 경지로 억눌렀다.표정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하게 만들어서 어쩌면 천인 경지가 아닐 수도 있었다.“젠장. 실력을 낮췄어요?”염구준은 조소를 날렸다.“겉보기엔 강력한 기운을 발산하지만 진짜 실력은 그저 그렇네요.”똑같이 반천인 실력이라면 상대방을 쓰러트릴 자신이 있었다.“시끄럽다. 반천인 경지로 충분히 너를 죽일 수 있다.”얼음 인간은 자신의 실력에 자부심을 가졌다.말이 끝나자마자 도끼를 휘둘러 수많은 빙추를 발사했다.강력한 공격에 맞서, 염구준은 화염의 검기를 휘둘렀다.쿵!
“하하하, 옥패는 내 것이다!”달무가 미친듯이 웃으면서 왼쪽 팔에 기운을 모아 힘껏 공격했다.한 방에 딱딱한 얼음덩어리들이 사방으로 튕겼다.갑자기 돌변한 달무를 보고 모두 놀랐다.광폭 펭귄에게 포위되었을 때, 극한철충에게 공격당했을 때도 전혀 이런 실력을 발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여우 꼬리가 드디어 드러났네.”염구준은 달무의 뒷모습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방금 전에 달무가 보물에 욕심이 없이 통 크게 분배하는 것만 봐도 돈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이제 보니 옥패가 그의 진짜 목적이었다.“젠장. 위장해서 어부지리를 챙기려고 했어? 내 손에 죽을 줄 알아.”백호는 배신감에 열받아 씩씩거렸다.“급할 거 없어. 도망치는 것도 아닌데 일단 지켜보자.”염구준은 어깨에 멘 큰 가방을 내려 검갑을 꺼냈다.다년간의 전투 경험으로 보아 얼음 인간은 위험하다는 직감이 들었다.쿵!달무가 또 주먹을 날려 큰 구멍을 내고더니 얼음 인간의 목에서 옥패를 잡아당겼다.그런데 옥패를 확인한 순간, 그의 표정이 이내 굳어버렸다.“이거 가짜야!”염구준은 얼음 인간에게서 살인 기운을 느꼈다.“달무는 곧 죽겠구나.”말이 떨어지자마자 얼음 인간은 얼음을 깨고 손을 뻗어 달무의 목을 졸랐다.아주 오래되고 사악하고 강력한 기운으로 보아 강력한 고수가 틀림없었다.“개미 같은 인간아. 감히 나한테 무례하구나.”펑!남자가 기운을 발산하여 나머지 얼음을 부숴버리고 왕좌에서 천천히 일어섰다.온몸에서 발산하는 어마어마한 기운은 천인보다 더 강력했다.충격을 받은 염구준은 몸속에서 전의가 불타올라 숨이 가빠왔다.무서워서 이러는 것은 아니었다.“사… 살려줘.”달무는 숨이 막혀 발버둥을 치며 애원했다.“죽어라!”얼음 인간은 손에 힘을 주면서 달무의 목을 가볍게 비틀었다.그리고 달무의 힘과 혈액을 흡수해 자신의 기운을 상승시켰다.‘극악무도한 수법이구나.’염구준이 눈을 가늘게 뜨고 지켜봤다.다른 사람의 기운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줄은 생각도 못했다.
“장로님, 얼음 인간을 만나려면 얼마나 더 가야 합니까?”설구가 통로 안쪽을 가리키며 대답했다.“이 통로를 따라 계속 가면 만날 수 있어요.”염구준의 무공 실력을 본 이상 감히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가자. 설마 내가 부축해 주길 기다려?”염구준은 몇몇 사람들을 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지금은 책망할 때가 아니었다.정영 팀원은 그가 화났다는 것을 알고 고개를 푹 숙였다.통로로 이동할 때는 그나마 순조로웠다.안으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방한복을 입었는데도 엄청 추웠다.“맞습니다. 바로 이 느낌이에요. 거의 다 온 거 같습니다.”설구는 흥분하여 목소리가 떨렸다.뒤에서 따라가던 사람들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발걸음을 독촉했다.이번 행차의 목적은 결국 얼음 인간이었다.무리에 섞여 있던 달무의 눈에 서늘한 빛이 스쳐 지났다.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누구도 알지 못했다.통로 안으로 들어갈수록 온도가 급격히 하강해 설씨 가족들은 더는 버티지 못하고 중도에서 기다리기로 했다.또 한참을 걸어가자 통로가 점점 넓어지더니 방 하나가 나타났다.주변이 어두컴컴하여 손전등을 켜도 전부 비추지 못했다.“아아아.”염구준이 크게 소리를 치고는 귀를 기울여 메아리 소리를 기다렸다.방향판도 없으니 이 방법밖에 없었다.한참 뒤에야 메아리가 울려 퍼졌다.“여기 공간이 엄청 넓어서 조명탄을 사용하세요. 그리고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피웅!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조명탄이 위로 치솟으며 방을 밝게 비추었다.“사람 얼굴이다.”누가 주변을 살피다가 한쪽 벽에서 요귀의 얼굴을 발견한 것이다.다들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더니 정말 그곳에 있었다.그러나 거리가 있는 데다 조명탄이 소진되어 방은 또 다시 어둠에 잠겼다.“가까이 가서 봅시다.”염구준이 앞장서서 가더니 또 조명탄 하나를 쏘아 올렸다.이번에 똑똑하게 보았다.얼음 안에 빨간 옷을 입은 남자가 한 손에 커다란 도끼를 들고 왕좌에 앉아 있었다.자세히 보면 남자는 야릇한 미소를 짓고 눈동자는 내리
백호는 그의 모습만 봐도 강력한 초식을 사용한다는 것을 알아챘다.모든 사람들이 멀리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서야 염구준은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가만 있으니까 내가 우스워 보여? 타올라라!”체내의 기운을 빠르게 움직이자 온몸이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다.이어서 강력한 권영을 번쩍이며 빠른 속도로 공격했다.극한철충을 죽이겠다고 반천인 경지의 실력을 사용한 것이다.지속적인 공격을 퍼붓자 주변 온도가 계속 상승했다.남극 빙원에서 생존하는 생물들은 워낙 고온을 좋아하지 않아 염구준의 화염 공격을 피해 바닥과 벽 사이를 뚫고 들어가버렸다.“좋은 냄새 나네.”공격을 거두자 맛있게 구운 고기 냄새가 풍겼다.하지만 극한철충은 징그럽게 생겨서 식욕을 돋우지 못했다.한바탕 공격을 퍼부었더니 바닥에 죽은 벌레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겨우 살아남은 철충들은 다시는 나오지 않았다.그제야 염구준은 돌아서서 가운데 통로로 들어갔다.그 시각 얼음 인간은 그와 만나길 엄청 기대하고 있었다.먼저 간 일행은 한참을 달리다가 염구준이 오기를 기다렸다.뜨끈한 열기를 감지한 정영 팀은 그가 반천인 힘을 사용했다는 것을 알았다.“저기요. 저기 있는 분은 어떤 사람이에요?”달무가 궁금해서 물었다.“당신이 알 바가 아니야.”백호는 체면도 주지 않고 싸늘하게 대답했다.비굴한 목숨을 살려줬는데 정체를 캐묻자 정영 팀은 매우 불쾌했다.게다가 상황이 불리하면 바로 돌아서는 인간은 염구준의 신분을 알 자격이 없다 여겼다.“아, 네. 제가 괜한 소리했네요.”달무가 멋쩍게 웃으면서 옆으로 물러섰다.“안 되겠어. 주상님을 도와주러 갈 거야.”한참을 기다려도 염구준이 나타나지 않자 주작은 걱정되었다.“안 돼. 주상님의 명령대로 여기 있어야 해.”백호가 나서서 말렸다.그는 명령을 어기지 않고 지시한 때로 잘 따라서 염구준이 신뢰하는 부하였다.“비켜. 아니면 무력을 쓸 거야.”주작은 짜증이 났다.지금 그녀는 염구준에게 대한 걱정이 선을 넘어서 마음이 혼란스러웠다.“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