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주…”염구준도 그대로 멍해져있었다. 허약한 딸이 어떻게 이런 강력한 힘을 뿜어낼 수 있었을까!여우는 그녀를 잡으려고 했지만 희주가 갑자기 돌아보더니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여우는 앞니 두 개가 떨어졌고, 갑판에 부딪혀 더 이상 일어설 힘이 없었다.“신무 각성, 천인합일!”흑풍은 놀라서 외쳤다. 그는 팔황옥의 비밀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그의 외침은 폭주하던 희주의 이목을 끌어당겼고, 한 줄기 그림자가 스치더니 이미 날아간 뒤였다.“다 죽어야 돼!”희주는 흉악하게 웃으며 잔상이 되어 모두에게 무차별 공격을 가했다.친위 대원들은 비명을 지르고, 반격할 힘도 없이 7살짜리 아이에게 순식간에 죽임을 당했다.“희주야!”염구준이 몸을 날려 희주를 제지했지만 천인합일의 경지는 애초에 반보천인이 맞설 수 없었다.“윽…”염구준이 끙끙거렸다. 이미 희주에게 맞아 모래사장에 내리꽂힌 뒤였다.이렇게 강력한 실력을 듣도 보도 못한 염구준은 가슴이 답답하고 일어설 힘조차 없어 자신의 딸이 부하들을 학살하는 모습을 두 눈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빨리 배를 몰아!”숨통이 트인 흑풍이 재빨리 명령했다.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배 안에 있었다.흑풍의 화물선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희주는 엔진의 소리가 들리자 갑자기 공격을 멈추고 가만히 배 위에 서있었다.“희주야!”염구준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무력감을 느끼며 딸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한 용병이 희주를 기습하려 하자, 희주가 갑자기 뒤를 돌아보며 작은 손으로 그의 가슴을 찔렀다.용병을 처리한 희주는 그대로 갑판 위에 쓰러졌다. 마치 깊게 잠든 것 같았지만 아무도 감히 다가갈 수 없었다.화물선은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곳으로 사라졌고, 바다는 전신전 친위 대원의 시체로 가득 찼다.염구준은 몇 차례 깊은숨을 쉬고 나서야 천천히 몸을 일으켰고, 한 어린 여자아이에게 어떻게 이렇게 강력한 힘이 있을 수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전주님!”청룡이 바닷속에서 힘겹게 모래사장으로 올라
무인도의 어느 한 곳에서 두 사람이 상황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들은 흑풍의 사람이었다.“흑풍 형님이 맞았네요. 염구준이 그렇게 쉽게 죽을 리가 없어요.”“어린 여자애 하나가 하늘이 선택한 사람일 줄이야. 그래도 흑풍 형님의 손에 있으니 머지않아 온 세상이 우리의 것이 되겠네.”“4대 지존을 건드릴 각오만 한다면 흑풍이 설웅국과 연합해 북쪽에서 공격할 거야.”두 사람은 완벽한 계획을 상상하며 마치 염구준이 이미 손바닥 위에 있는 듯했다.“배를 물가에 멈춰!”염구준은 귀옥이 초조해하는 것을 느끼고, 문득 두 사람의 존재를 눈치챘다.그는 비록 무슨 이유인지 말은 못 했지만 이 모든 것이 희주의 폭주와 관련이 있다는 것은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그는 역시 팔황옥의 비밀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적었다.“너희들은 뭐 하는 놈들이냐?”염구준은 순식간에 두 사람의 뒤에 서서 그들의 환상을 깨부쉈다.“왔어?”두 사람은 당황하지도 않고 웃는 얼굴로 맞이했다.염구준은 낯빛이 돌변했다. 그가 손을 썼을 땐 이미 죽을 수 있을 정도의 힘이었고, 두 사람은 맞붙을 생각은 전혀 없는 듯 몸을 날려 뛰어올랐다. 갑자기 귀옥에서 신비한 힘이 솟아올랐다. 그러자 무인도에서 알 수 없는 힘이 호응했고, 윙윙하는 이상한 울음소리가 났다. 염구준은 마음이 복잡하고 정신이 없을 뿐이었다.“여긴 수라지옥인가?”염구준은 마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머릿속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던 과거의 전쟁 장면이 떠올랐다.“구준아, 팔황옥의 비밀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 용국의 정치 문제에도 개입해서는 안 돼!”귓가에는 낙성용의 목소리도 울렸다. 피의 힘이 솟아오르기 시작하자, 염구준은 극도로 조급해지며 시선이 핏빛으로 변했다.그는 자신의 몸이 약해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것 같았다.“수라귀의 그림자!”두 사람의 웃고 있더너 얼굴이 그대로 굳어졌다. 이런 결과는 생각해 보지 못했다. 흑풍의 계산이 틀렸다.“말도 안 돼. 귀옥의 힘을 컨트롤할 권한이 있는
“더러운 자식!”염구준은 짜증 난다는 듯이 손등의 진흙을 털어내며 이미 자신의 몸과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발견했다.“두 개 더!”흑인은 결과가 아주 만족스럽다는 듯이 진흙 인간 두 명을 더 만들었다. 염구준은 그제야 진흙이 사람의 몸을 차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는 더 이상 진흙 인간들과 싸우지 않고 거대한 바위 위로 뛰어올라가 더 좋은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진흙 인간도 똑같이 뛰어올라 따라갔고, 염구준은 진흙 인간의 몸을 걷어차버렸다.진흙 인간은 단번에 몸을 돌려 피했고, 비록 그의 허리에는 총이 없었지만 총을 꺼내는 자세를 취했다.“전신전 12식!”염구준은 깜짝 놀랐다. 진흙 인간이 전신전의 기술에 이렇게 능숙하다니, 이건 전왕 급의 수준이었다.“많이 놀랐어? 네가 데려온 두 부하도 벌써 진흙이 됐어!”흑인은 염구준의 마음을 읽고 이상한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염구준이 화물선을 바라보자 그쪽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말라버린 시체가 되어있었고, 그중에는 남, 북 두 명의 전왕도 있었다.“빌어먹을!”염구준은 뒤늦게 깨닫고 괴로워했다. 흑인이 만든 가짜 인간들은 전부 반보천인의 경지라 염구준의 부하들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이 시체는 만물을 먹여 살릴 수 있고 모든 걸 삼킬 수도 있어!”더욱 의기양양해진 흑인은 두 손을 모으고 이상한 주술을 외우자 섬 전체가 점점 더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염구준뿐만 아니라 전체 섬이 흔들리고 있었고, 주변의 작은 섬들도 같이 흔들리며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알고 보니 이게 거경의 시체였구나!”염구준은 궁지에 몰렸지만 되려 침착해졌다. 자신의 몸 안에 새로운 힘이 생겨나는 것 같았다.“나와!”그가 화를 내며 소리치자 그 힘이 솟아 나와 하나의 영혼이 되어 진흙 인간 두 명을 잡았다.진흙 인간이 부서지고 영혼에 달라붙지 않자 흑인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귀옥을 컨트롤할 수 있어?”흑인은 겁에 질려 한 발짝 물러섰다. 그는 주술은 뛰어나지만 체술은 엉망이었기 때문
염구준은 먼 곳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그는 지금 전신의 모습이고, 수라의 모습을 컨트롤할 수 있었다.하지만 자신의 능력은 여전히 반보천인의 경지이며, 두 모습을 서로 바꿀 수는 있지만 합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반보천인도 세상에서 염구준 혼자만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그의 스트레스는 더욱 심해져 갔다.“낙성용 선배의 풍신옥패는 무슨 힘을 가지고 있는 걸까?”염구준은 3개의 옥패를 손에 넣었다. 낙성용은 그가 유일하게 존중했던 남자였다.‘팔황옥의 비밀은 용국 은세집안의 손에 있으니, 전신전은 영원히 정치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염구준의 머릿속에 낙성용의 유언이 떠오르기 시작했다.흑주, 가장 가난한 대륙.외부에서 온 사람들이 보기에 이곳은 곳곳에 황금이 있어 자원이 풍부한 곳이었다.화물선이 로그랑이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로그랑은 황금과 보석 같은 광석을 수출로 세계적으로 유명했다.흑주의 다른 풍요로운 땅처럼 외부에서 온 식민지 개척자들이 이곳의 주도자이고, 원주민들은 여전히 최하등 사람이었다.염구준이 도착하자마자 천차만별의 아가씨들이 그들을 맞이했다.그녀들은 특수 노동자가 아니라 각 여관에서 손님을 모집하기 위해 보낸 것이었다.염구준은 차갑게 그녀들을 밀어냈다. 손가을을 제외하고 이 세상에서 다른 여자는 볼 가치도 없었다.그의 목적은 명확했다. 데이몬드라는 회사에 가서 납품업자를 찾는 것이었다.데이몬드는 로그랑 최대 보석상이고 그의 회사 건물은 특히 눈에 띄었다.택시 기사 한 명이 그에게 다가왔고, 염구준은 차에 올라 앞에 보이는 가장 큰 건물을 가리켰다. 눈치 빠른 기사는 그의 목적지가 어딘지 바로 깨달았다.“레이먼 씨를 찾아왔습니다.”그렇게 도착한 염구준은 차에서 내려 곧장 자신의 블랙카드를 꺼냈다. 불필요한 실랑이를 벌이지 않기 위해서였다.눈치 빠른 응대 직원이 바로 염구준을 데리고 VIP 접대실로 향했다. 이 블랙카드는 원래 지존 신분의 상징이었다.“존경하는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곧 레이먼이 접대실에
“선생님 원하는 게 있으십니까?”레이먼은 살면서 거경골옥을 볼 줄 상상도 못했었다. 하여 그의 눈가에는 벌써 눈물이 맺혔다.“간단합니다. 손씨 그룹을 당신들 최고 고객 리스트에 추가해 주세요. 블랙카드 명단에요.”염구준은 레이먼을 아주 깊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이런 비즈니스에 대해 잘 몰랐고, 그저 자신의 블랙카드가 아주 좋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다른 게 또 있을까요?”레이먼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는 조건이 이렇게 간단할 줄 몰랐다. 겨우 고객 리스트라니.염구준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는 돈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손가을에게 성취감을 주고 싶었다.“문제 없습니다. 선생님!”레이먼은 염구준의 손을 잡고 진한 입맞춤을 했다. 염구준은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윽, 역겨워.’원석을 손에 넣은 데이몬드는 특별 연회를 개최했다.연회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자연스레 원석의 근원지를 알 수 있었다.인터넷이 발달한 시대에 손씨 그룹은 그렇게 단숨에 세계 주얼리의 정상에 올랐다. 겨우 이름만으로 벌써 보석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손씨 그룹의 주가는 갑자기 치솟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어떻게 등을 돌려야 할지 고민하던 주식투자자들도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벼랑 끝에서 다시 살아돌아온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구준 씨가 또 뭘 했나?”손씨 그룹 본사, 손가을이 부드럽게 말을 뱉었다. 그녀는 자신이 온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라고 생각했다.염구준의 능력은 무궁무진했다.“루카다 광산?”데이몬드 로비, 염구준은 조사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아 직접 루카다에 가보기로 했다.“전주님, 알 수 없는 무리가 화물선을 습격했습니다!”통신음이 염구준의 생각을 멈추었다. 그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아마 계속 누군가에게 감시당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감히 나 염구준과 힘을 겨룰 사람은 이 세상에 아직 없어!”그는 몸을 일으켜 데이몬드 회사 건물에서 뛰쳐나왔다. 옆에 있던 레이먼은 그대로 멍해졌다.“이게 바로 신비한 용국의 힘인가?”
염구준이 크고 거대한 해영국의 용병을 보며 농담을 던졌다.“듣자 하니 신비로운 용국의 힘이 있어서 전신전보다 더 강하다던데 맞아?”용병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그는 힘에 더 관심이 있는 게 확실했다.“전신전을 알아?”염구준이 의아해하며 묻자, 다른 사람들도 경각심을 가지기 시작했다.용국의 백성들도 전신전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으니 말이다.“응. 난 예전에 해영 정예 부대에 있었는데 전신전과 맞붙은 적이 있어.”용병은 솔직히 털어놓았다.금발과 하얀 피부를 가진 이들에겐 비밀이 없다는 듯.“전신전은 그저 전설 속의 얘기이고 저희는 그게 실존하는지도 확실히 알지 못합니다.”동방전왕이 앞으로 나아가 계속 접근하려는 용병을 막아섰다.“존재하지. 바람을 불 수 있는 낙성용이 그 당시에 우리 쪽 사람들을 많이 죽였어.”용병은 가볍게 말했다. 전우의 죽음에 그다지 감흥이 없는 듯했다.“낙 전주!”염구준은 깜짝 놀랐다. 이 용병이 낙성용을 알다니, 그럼 분명 홍룡 클라크의 부하일 것이다.“저기, 우린 이제 군인도 아닌데 같이 술이나 한잔할까?”염구준이 말을 이었다. 해영국의 병사들이 술을 좋아한다는 것은 그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그래. 난 로그랑의 화이트 맥주를 좋아하고, 친구를 사귀는 건 더 좋아하지.”용병은 스스럼없이 대답했다.“저기?”염구준은 길거리의 라파엘 술집을 가리키며 시험 삼아 물었다.용병의 눈에는 놀란 기색이 가득 차 믿을 수 없다는 듯 염구준을 쳐다보았다.“저기 제일 비싼 술집이야. 화이트 맥주 한 잔에 용국 화폐로 500불이라고!”용병은 난처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 환전을 하는 건 단지 저축을 위해서였고 이렇게 막 쓸 수는 없었다.“내가 사지. 용국 사람은 접대를 좋아하니까!”염구준은 살짝 웃으며 용병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그를 끌고 술집으로 들어갔다.전주와 함께 마시는 술이다보니 부하들은 아주 조심스러워했다.반면 트랑이라는 백인은 술 세잔을 마시자마자 염구준과 호형호제하기 시작했다.“비
염구준은 뭔가 더 묻고 싶었지만 까만 피부의 여자가 그의 말을 끊었다.여자는 바 테이블에 비스듬히 기대서서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염구준을 바라보고 있었다.염구준은 눈앞의 여자에게는 관심이 없었지만, 자신이 더욱 상인으로 보이도록 고개를 끄덕였다.여자는 화이트 맥주 한 잔을 달라고 했고, 맥주를 마시며 염구준에게 추파를 던졌다. 술을 음미하는 건지 남자를 음미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난 화장실 좀!”트랑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고, 염구준은 두 손가락으로 바 테이블을 두드렸다.“술 감사합니다.”여자는 컵에 있던 술을 한입에 다 마시고 염구준을 향해 예쁘게 웃었다.염구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조금 차갑게 보이고자 했다. 그는 이 여자에게 아무 감정도 없지만 미워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다.“그 백인이 당신 옥패를 훔쳐 갔어요. 선생님!”여자가 염구준의 귓가에 다가와 살짝 웃으며 말했다.염구준은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벌떡 일어났다.“넌 또 누구야?”염구준은 손을 뻗어 여자를 잡으려 했지만, 여자는 미꾸라지처럼 염구준의 몸에 붙어 미끄러졌다.염구준은 여자의 정체이 너무 집착하고 싶지 않았다. 여자가 그를 놀리는 것은 분명 미리 준비한 것이다.이곳은 사람이 많고 복잡해서 애초에 손을 쓰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염구준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허리춤에 있는 옥패를 만지려 했지만 역시 보이지 않았다.그는 부하 두 명을 배치해 동방전왕을 돕게 하고 백인 용병을 막아나서게 했고 자신은 정체 모를 여자를 직접 상대하고 있었다.까만 피부를 가진 여자는 여전히 장난스럽게 그를 보고 있었다. 마치 염구준이 이제 어떻게 할 건지 궁금해하는 것 같았다.염구준은 콧방귀를 끼며 자기 영혼의 형태를 풀어냈고, 그 영혼은 여자의 뒤에 나타났다.곧이어 여자의 웃는 얼굴이 그대로 굳어지면서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손과 발이 알 수 없는 힘에 묶였고, 염구준은 일부러 그녀의 척추를 망가뜨렸다.여자가 바닥에 쓰러지자, 옥패 하나가 그녀의 목에서 떨어졌다. 알고 보
염구준은 놀라면서도 화가 났다. 자신이 완전히 다른 사람에게 조종당하고 있다는 것은 전신에게는 희대의 수치였다.“흑풍 형님이 그랬어, 뇌가 없는 애들은 오래 못 산다고.”“낙성용처럼 강하다 해도 흑풍 형님의 손은 못 벗어난 거 아니야? 그 사람은 똑똑한 사람이었잖아!”두 사람은 묻고 답하며 마치 일부러 낙성용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흘리는 것 같았다.“낙 선배 이름을 어떻게 너희 같은 쓰레기들이 함부로 입에 올려!”염구준은 화가 치밀어 두 사람에게 달려갔다. 두 사람은 마치 이제 염구준의 용의 영혼이 부리는 횡포가 두렵지 않은 듯 바로 맞섰다.심리적인 공포가 사라지자, 두 반보천인은 염구준에게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염구준도 속으로 놀랐다. 두 사람은 짧은 시간에 실력이 엄청난 속도로 늘어 벌써 반보천인의 중간 단계의 수준까지 이르렀다.“어떠냐? 흑풍 형님이 특별히 널 상대하라고 알려주신 전술이다.”대목은 차갑게 웃더니 이상한 기운을 내뿜었다. 그러자 검은 기체가 몸을 감쌌다. 철호도 똑같았다.“신무옥과 암무옥은 두 가지 상극의 힘이지. 누가 더 센지 보자고.”철호는 도발적인 얼굴이었다. 분명 그 흑풍이라는 놈이 이들에게 옥패의 힘을 준 것이 틀림없었다.염구준도 옥패의 힘을 어떻게 꺼내는지 알 수 없었다. 그의 난폭함은 옥패와 서로 반응하는 것에서 왔다.이만 봐도 염구준은 흑풍이 아주 무서운 사람이고, 절대 붙잡아둘 수 없다고 생각했다.검은 기체와 염구준의 용의 영혼이 서로 맞붙자, 원래 옥패의 힘을 가지고 있던 염구준은 절정에 이른 두 반보천인과 비슷했고, 이제 어느 한쪽도 우세하지 않았다.“내가 말해두는데, 이 세상에는 용국의 무신전만 있는 게 아니야. 흑풍 형님의 그림자 무신전은 용국보다 만 배는 더 강해!”대목은 계속 말로 염구준을 흥분시켜 그의 정신을 흩트려놓으려 했지만 염구준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염구준의 전신전이 없다면 그저 어릿광대일 뿐이다. 이 세상에는 오직 한 개의 전신전이 있는데, 그건 바로 용국의 전신전이다.
김대석이란 인물은 알고 있었다.손씨 그룹 산하 파트너인데 손가을의 눈치를 살피면서 밥벌이를 하는 사람이었다.“저기요. 여기 관장 있어요?”김영영이 큰소리로 물었다.“나다. 무슨 일이 있으면 말해.”원종은 거들떠도 보지 않고 제자리에 서서 말했다.그들이 신위무관에 들어오자마자 언성을 높여서 기분이 매우 언짢았다.“왕자 경지 무술인과 연습하고 싶어요. 가격을 부르세요.”김영영은 바로 가격으로 해결하려 들었다.“하, 돈거래는 자발적으로 나서야지 난 절대 강요하지 않아.”나이 있는 원종은 말을 재치 있게 받아 치면서 뜻을 확실히 전달했다.“알았어요. 그럼 훈련장을 내주세요. 그래줄 수 있죠?”김영영은 억지를 부리지 않고 순순히 따랐다.“한 시간에 5만 원이야. 편한대로 해.”원종은 말을 끝내고 더는 상대하지 않았다.그런데 김영영도 조급하지 않았다.그녀는 일행과 무관 내부를 관람하듯 천천히 둘러보았다.한참 둘러보더니 발걸음을 멈추고 손가을이 있는 훈련장을 가리켰다.“저기 마음에 드네. 저분한테 자리 비켜달라고 해.”저분이라고 말했지만 강도 짓이나 다름없었다.둘러보면 빈 훈련장이 많았는데 굳이 다른 사람 것을 빼앗으려고 했다.심보가 나쁘거나 시비를 거는 것이 틀림없었다.“알겠습니다. 성녀님.”김영영 곁에 서 있던 중년 남자가 대답하더니 번쩍 뛰어서 손가을에게 돌진했다.전신 경지 고수였다.쿵!남자가 허공에 떴을 때 예상치 못한 한 줄기 검기에 휩쓸려 피를 토하며 뒤로 날아갔다.바닥에 떨어진 후 아예 일어나지 못했다.“감히 내 아내를 건드려? 죽고 싶어?”반보천인의 기운이 사방으로 퍼지자 곁에 사람들은 숨을 쉬기 힘들었다.염구준은 엄청 화가 났다.“선배님, 일부러 그런 게 아닙니다. 부디 용서해 주세요.”당황한 남자는 바로 꼬리를 내렸다.이런 고수에게 함부로 대항할 수 없었다.하지만 김영영은 주제를 모르고 반보천인 고수 앞에서 당당하게 굴었다.“선배님, 저희 해치지도 않았는데 왜 이러는 겁니까? 게다가 저희 가문
눈만 마주쳤을 뿐인데 염구준은 아내가 무엇을 어려워하는지 알고 피식 웃었다.“당신은 운기만 해. 내가 인도할게.”염구준은 한 손을 손가을의 머리 위에 올리고 기운을 조금씩 주입하면서 운기하는 규칙을 가르쳤다.운기하는 회수가 늘어날수록 손가을은 자신의 운기에 점점 익숙해졌다.반보천인 고수가 직접 가르치니 옆에서 지켜보는 무술인들은 정말 부럽기 그지없었다.한 시간 뒤 손가을이 눈을 떴다.그녀는 피곤해 보였지만 그래도 환한 미소를 지었다.“구준 씨, 이제 혼자 할 수 있어.”염구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욕심내면 안 돼.”기운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며칠을 배워야 할 것이다.염구준은 옆에 있는 원종과 정경림에게 다가갔다.“혹시 강호에서 이런 문자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그는 본인의 휴대폰에서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어제 민씨 가문에서 가져온 서책을 사진으로 찍은 것이었다.그중에서 한 글자만 염구준이 직접 쓴 것이다.“못 봤어. 아마도 용하의 문자와 같은 맥락일 거야.”두 사람은 고개를 흔들었다.서책에 관한 옥패의 정보를 수많은 사람들에게 물어봤지만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이 일은 조급해 말고 천천히 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어차피 지금 한가하니 염구준은 두 사람과 무술에 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얼마나 습득할지는 본인에게 달려 있다.무관 내에서 모두 화기애애한 분이기에 각자 무술을 연습하느라 바쁘게 움직였다.바로 그때 한 여자의 목소리가 밖에서 들렸다.“실력이 좋은 무술인을 찾아서 연습해야 돼. 평범한 무술인은 일방적으로 맞는다니까.”“그럼요. 신위무관은 청해에서 가장 큰 무관이라서 다양한 무술인들이 있어요. 분명 적합한 상대를 찾을 겁니다.”한 남자가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열 명 정도 되는 일행이 위풍당당하게 신위무관에 들어섰다.“당신들 관장은 어디 있어? 나와보라고 해.”남자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건방지게 말했다.그 말에 무관에서 연습하던 무술인들이 동작을 멈추고 입구 쪽을 쳐
“그럼 됐어. 전부 가르쳐줘.”손가을은 기뻤지만 아직 어떤 것들을 마주해야 할지 몰랐다.“그게… 가장 효율적인 것은 실전이야. 근데 쉽게 다칠 수 있어.”염구준은 약간 말을 더듬었지만 솔직하게 말했다.아내를 아껴줘도 부족한데 정말 손을 대기가 어려웠다.“괜찮아. 나 약하지 않아.”손가을은 남편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고 오히려 설득했다.잠깐 생각에 잠긴 염구준이 아내의 눈빛을 보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일단 시험해 보자.”그는 경계를 낮춰 똑같은 정진왕자 초기 단계로 맞추었다.이런 상황에서 봐줄 수도 없고 너무 경지를 낮춘다면 아내가 자존심이 상할 것이다.“알았어.”손가을은 공격 자세를 취했다.전에 염구준이 권법을 가르쳤지만 한번도 실전으로 사용한 적이 없었다.“가을아, 준비됐으면 자유롭게 공격해.”염구준이 말했다.“조심해.”손가을은 주의를 주면서 작은 주먹을 앞으로 무찔렀다.염구준은 두통이 지끈 아팠다.아내의 동작에 허점이 가득하고 보조와 자세가 너무나 엉성했다.하지만 같은 경지에서 기운은 약하지 않아 거칠게 사용했다.탁!염구준은 아내가 날린 주먹을 피해 옆으로 비키고 한쪽 발을 휘두른 것만으로 쉽게 넘어트릴 수 있었다.두 사람은 같은 경지지만 실전 경험이나 기술 차이가 천차만별이었다.염구준은 쏜살같이 달려가 두 손으로 아내의 허리를 감쌌다.“와우, 우리 실력 차이가 너무 나. 당신 기운을 전혀 느끼지 못 했어.”손가을은 충격을 먹었다.“아니면 실전 말고 노하우 몇 개를 알려 줄게.”염구준은 감히 손을 대지 못했다.눈앞에 있는 사람은 부하가 아니라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아내이기 때문이었다.“알았어. 당신 말 들을게.”손가을은 남편이 난감해하자 더는 강요하지 않았다.“앉아.”염구준은 작은 칠판을 가져와 현장에서 가르치려 했다.반보천인 고수의 수업은 흔히 들을 수 없으니 이미 전신 경지를 돌파한 원종과 정경림도 작은 공책을 들고 다가왔다.두 사람은 나이가 많아서 기회가 없다면 아마도 계속
“여보, 고마워. 내일 업무까지 끝내서 내일 시간 있어.”“무슨 말인지 알았어.”두 사람은 말을 마치고 이불속에서 밤 늦게까지 사랑을 속삭였다.이른 아침, 손가을은 잠옷을 입고 남편의 가슴에 엎드렸다.“구준 씨, 어제 사무실에서 갑자기 정진왕자 경지에 도달했어. 근데 아직도 기운을 사용하는데 서툴러. 당신이 가르쳐줄 수 있어?”용의 기운은 정말 대단했다.경지가 낮은 무술인에게 주입했더니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알아서 실력이 강해졌다.하지만 기운만 있고 싸울 줄 모른다면 같은 경지라도 최하 실력에 속했다.지금 손가을의 상황이 그랬다.만약 부부가 한 사람은 같은 경지에서 무적이고 다른 사람은 가장 실력이 약하다면 즐거운 일들이 수두룩할 것이다.“알았어. 이따가 무관에 가서 가르쳐줄게.”염구준은 거절하지 않았다.오늘 하늘이 무너져도 아내와 함께 있을 것이다.“당신이 최고야!”손가을은 남편에게 달콤한 키스를 하고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아침을 먹고 집안일을 마친 후, 부부는 제이든을 데리고 신위무관으로 향했다.탐문하러 간 초상비는 연락이 두절된 상태라 더는 소식이 없었다.염구준은 며칠 더 기다렸다가 정 안 되면 직접 오스타국에 찾아갈 생각이었다.“귀한 손님이 오셨네. 염 선생, 손 대표님. 어떻게 왔어?”입구 테이블에서 차를 마시던 원종과 정경림이 일어서서 반갑게 맞이했다.이 무관도 염구준이 세운 거지만 바지사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그러나 지금 무관의 수익은 따지지 않고 두 사람에게 맡긴 것 같았다.“그냥 보러 왔어요. 조용한 훈련장 있으면 빌려주세요. 아내랑 연습하고 싶어요.”염구준은 별생각 없이 두 사람에게 부탁했다.‘연습? 애정행각하는 건 아니고?’두 사람은 서로 눈빛을 마주치고 각자 다른 생각을 했지만 염구준에게 대놓고 말하지 못했다.“안으로 들어가. 연습할 공간은 얼마든지 있어.”두 사람 안내를 따라 염구준 부부는 무관으로 들어갔다.먼저 도착해서 무술을 연습하는 사람들이 많았다.신위무관은 청해에서 가장 큰
“사양하지 말고 가져가세요. 중요한 문서들은 복사본이 있습니다.”민현은 딴 소리하지 않고 흔쾌히 허락했다.“감사합니다. 그럼 갈게요. 시간이 되시면 청해에 놀러오세요”염구준은 나온 지 하루 만에 모든 일을 해결했으니 집에 돌아갈 때가 되었다.그의 태도가 단호하여 민현은 억지로 남기지 않았다.이번에 민씨 가문에 오면서 거록 존주의 행적을 찾지 못했지만 사술을 수련한 민씨 가문의 대장로를 처단하고 옥패에 관한 서책도 얻었으니 꽤 수확이 큰 편이었다.염구준은 민현과 작별 인사를 하고 가파른 길을 스쳐지나 주차한 곳에 도착했다.그리고 빠른 속도로 청해를 향해 달렸다.이 속도로 질주한다면 저녁에 도착할 것 같았다.바로 그때 붉은 장미에게서 연락이 왔다.“염 선생님, 좋은 소식입니다.”휴대폰 너머로 붉은 장미가 마치 경품에 당첨된 것처럼 격동하며 말했다.“무슨 일이예요? 거록 존주가 죽었습니까?”염구준은 추측한 것을 말했다.그러자 붉은 장미가 침묵하며 더는 흥분하지 않았다.“그놈이 쉽게 죽을 리가 없죠. 하지만 전국이 연합하여 거록 존주에게 현상금을 내렸어요. 그때면 어디도 도망칠 수 없어요.”“어쩌면 효과가 있겠죠.”염구준은 이런 방식은 별로 찬성하지 않았다.왜냐면 어떤 일은 돈으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말투를 들으니까 별로 찬성하지 않네요.”붉은 장미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꼭 그렇지는 않아요. 다만 그럴 가치가 있나 싶네요. 거록 존주를 찾으려면 상대방이 흘리고 다녔는지 따져봐야 하거든요.”염구준은 공동 현상금이라는 것이 우스웠다.“그렇군요. 제가 오늘 한 가지 발견한 것이 있는데 현상금 차트 1위가 누군지 아세요?”붉은 장미는 재미있는 일이 생각났는지 웃으면서 물었다.“내가 아닌가요? 내가 전신전의 주상이 될 때 현상금이 탑이었어요.”염구준은 어떤 감정 기복도 없이 태연하게 말했다.1위를 차지한 지 오래되어서 이미 습관이 되었다.“알면서 왜 철회하지 않아요?”붉은 장미는 의아했다.염구준이 세상에
두 사람이 마지막에 폭발한 기운은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큰 소동을 일으켰다.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기운을 겨루다 갑작스럽게 거둔다면 오히려 반격하게 되니 힘을 발사해야 했다.한편 민현은 난감했다.염구준이 관문을 통과하러 들어간 것을 알고 있지만 다른 족인들은 모르고 있으니 가서 해명해야 했다.지하에서 두 사람은 기운을 거둔 후, 다시 공격하지 않았다.“어르신 기운은 나보다 순수하네요. 혹시 어르신의 기운이 이미 극치에 도달했습니까?”염구준이 공수하며 물었다.극한 반보천인에 도달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다.신체와 기운 그리고 의경 세 가지에서 한 가지라도 극치에 도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하하하, 극한은 그렇게 쉽게 도달할 수 없어. 아직 갈 길이 멀어. 그보다 자네 기운이 참 독특하구먼.”민철은 손을 흔들며 방금 염구준이 보여준 옅은 황금색 기운을 회상하며 칭찬을 늘어놓았다.“용의 기운을 융합하여 독특할 뿐입니다. 하지만 순도는 조금 떨어지죠.”염구준이 설명했다.두 사람의 기운은 막상막하라 같은 수준에 놓여 있었다.그러나 염구준의 수단은 워낙 많아서 전력으로 임한다면 민철을 쉽게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역시 대단해. 그럼 편한대로 둘러보고 난 계속 폐관하러 가겠네. 참, 나를 만난 일을 누구한테도 말하지 마.”민철은 말을 마치고 휠체어에 앉아 나왔던 곳으로 돌아갔다.만약 그의 측근이 염구준의 실력이 강한 것을 말하지 않았다면 나와서 겨루지도 않았을 것이다.“어르신, 옥패 8개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염구준이 기회를 잡고 바로 물었다.“내가 아는 것은 전부 서책에 있어. 자네가 모르는 것은 나도 모르네.”제꺼덕, 제꺼덕.민철이 동굴안으로 들어가자 벽이 천천히 닫히며 마치 나타나지 않은 것처럼 사라졌다.그제야 깨달았다.방금 체스를 통과한 다음 기관은 민철이 제거한 것이었다.염구준의 실력으로 그 기관들은 장식물에 불과하니 파괴하면 다시 고치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지하 공간이 다시 조용해지고 염구준 혼자 남아
염구준은 추측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그러다 민씨 가문에서 서적을 보관한 곳에 도착했다.한눈에 봐도 만 권, 적어도 팔천 권은 되는 것 같았다.그러나 모두 가지런히 진열되어서 별로 눈에 띄는 책은 없었다.오기 전에 누구에게도 묻지 않았고 민현도 특별히 주의할 점을 설명하지 않았다.“찾아보지 뭐.”그는 방향 없이 마구잡이로 찾기 시작했다.민씨 가문에서 보관한 책들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의학, 별자리, 지리에 관련된 책들도 있어서 아무 책이나 들고 나가서 팔아도 큰 돈을 받을 수 있었다.하지만 염구준은 돈이 부족하지 않아 그런 비열한 짓은 하지 않았다.“뭐야?”그때 책을 펼쳐보던 염구준은 이상한 낌새를 발견하고 돌아서서 벽을 바라보았다.끼익!벽 너머로 기척이 들리더니 천천히 열렸다.거기서 백발의 노인이 휠체어에 앉아 나타난 것이다.기운을 감지하니 절대 고수 틀림없었다.노인을 보는 염구준의 안색이 굳어졌다.여기에 사람이 숨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었다.하지만 이렇게 큰일을 민현은 언급하지도 않았다.어쩌면 그도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노인은 가까이 오더니 해맑게 웃으면서 먼저 입을 열었다.“하하하, 자네 염구준 맞지? 난 민천이야. 악의는 없어. 이미 민씨 가문의 일에 손을 뗀 지 오래되었어.”염구준은 지하에 내려오기 전에 위패에 적혔던 ‘민철’이라는 이름이 떠올랐다.민철은 죽은 척하고 여기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어르신, 왜 지금 나타나는 겁니까?”염구준이 직설적으로 물었다.“민씨 가문의 위협을 제거해줘서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자네가 원하는 물건을 가져왔어.”민철의 말에서, 비록 민씨 가문의 일에 간섭하지 않지만 항상 주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민씨 가문이 멸망할 위기에 처했다면 당연히 나서서 도와줄 것이다.“당연한 일입니다. 게다가 대장로를 살해한 것은 민씨 가문을 위해서가 아니라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드렸기 때문이지요.”염구준은 태연하게 대답했다.원래 사실이니 굳이 노인에게 거짓말할 필요가 없
“그럼 앞장서세요.”민현은 설득하지 못하자 어쩔 수 없이 길을 안내했다.두 사람은 어느덧 민씨 가문의 종묘 사당에 도착했다.민현이 기관을 돌리자 위패가 놓인 선반이 서서히 움직이면서 지하 통로가 나타났다.“가주님은 부상을 입었으니까 여기서 기다려요.”염구준은 한마디하고 혼자 지하로 내려갔다.아래에서 어떤 위험이 닥친다 해도 맞서야 했다.“네. 염 선생님, 조심하세요.”민현은 따라가도 도움이 되지 않으니 여기서 기다리려 했다.가는 길에 염구준은 작은 기관들을 가볍게 해결하고 곧바로 지하에 도착했다.펑!그는 전방을 보다 손바닥에 작은 불꽃을 피워 주변을 비추었다.지하공간은 민가진의 절반만큼 크고 금속으로 만든 체스들이 바닥에 놓여 있었다.이것들 중 하나가 기관일 것이다.“민현도 참 어이가 없네. 어떻게 해야 통관하는지 알려주지도 않고.”염구준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그때 붉은 체스 장군 위치가 비어 있는 것을 보고 가볍게 그 자리에 발을 딛었다.그러자 기관을 건드렸는지 모든 체스판은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였다.“폭탄.”그가 다음 수를 놓으려고 할 때 양쪽으로 사병이 이상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공격해 왔다.쿵!염구준은 두 손바닥을 벌여 다가오는 체스를 움직이지 못하게 억눌렀다.그 힘을 통해 그들의 충격력을 판단했다.제꺼덕, 제꺼덕.지하의 톱니바퀴가 계속 움직이자 쌍사의 힘도 따라서 증가하며 가운데 있는 염구준을 제압했다.“아직 힘이 남아 있네.”그는 어느 정도 힘을 모아 버텼지만 아무런 압력도 가하지 못했다.이러고 보니 민씨 가문의 기관은 참 엉터리였다.자기 주인을 치는 사병이 어디 있는가, 체스를 둘 줄 아는지 의심될 정도였다.바로 그때 중병마저 움직이더니 발바닥에 불꽃을 튕기며 염구준을 향해 돌진했다.세 체스가 공격해도 염구준은 힘만 더 사용했을 뿐, 꿈쩍도 하지 않았다.제꺼덕, 제꺼덕.장애물이 나타나자 체스는 미친듯이 톱니바퀴를 돌리며 염구준을 고기 전병으로 만들 기세로 돌진했다.“이제 한계에 도달했을
“미친, 철기둥 미궁이 이지경이 됐다고?”민씨 가문의 사람들은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철기둥들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철기둥 미궁은 대장로의 비장의 카드로, 가문의 최강자인 민현조차도 이 미궁 안에서는 한 번도 승리한 적이 없었다.다만 단점이 있다면 너무 무거워서 어디든 들고 다닐 수 없다는 것이었다.“염 선생님, 혹시 어디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민현은 서둘러 염구준에게 다가갔다.“별일 없습니다. 다만 민씨 가문의 이런 별난 수법들이 꽤 성가시더군요.”염구준은 진기를 풀며 담담하게 대답했다.만약 마술과 기문술이 아니었다면 대장로의 실력으로는 그와 이렇게 오랫동안 싸울 수 없었을 것이다.“그렇다면 다행입니다. 민가진 내의 문제는 이미 해결되었습니다. 모두 염 선생님 덕분입니다.”“염 선생님께서 민가진에 방문해 주신다면, 감사의 뜻을 제대로 전하고 싶습니다.”민현은 염구준의 실력을 완전히 인정했기 때문에 진심 어린 태도로 말했다.“그러죠. 마침 저도 물어볼 일이 좀 있습니다.”염구준은 말하며 앞으로 걸어갔다.옥패에 관한 일을 그는 계속 신경 쓰고 있었다.‘물어볼 일이 있다고?’이 말을 들은 민현은 순간 어리둥절했다. 일이 다 해결됐는데, 물어볼게 남았다고 하니까 말이다.그러나 주변에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는 더 이상 묻지 않고, 일족에게 대장로의 시신을 수습하라고 지시한 뒤 염구준을 따라갔다.대장로라는 악성 종양이 제거되어 민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기뻐했지만, 대장로파에 있던 사람들은 풀이 죽어 있었다.물론 대장로의 죽음에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잘못된 편에 섰다는 사실이 후회되었기 때문이었다.악마 같은 대장로를 맹목적으로 따르다가 하마터면 죽을 뻔했던 걸 떠올리면 그들은 등골이 오싹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대장로가 사라지자, 가문의 유일한 반보천인인 민현이 자연스럽게 새로운 가주가 되었다.염구준과 민현은 저녁 연회 후 밀실에서 중요한 대화를 나누었다.“이 물건, 본 적 있으시죠?”염구준은 손을 들어 네 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