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청을 찢는 듯한 목소리에도 맨발로 서 있는 여자는 꿈쩍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매혹적인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전 이곳에서 인연이 있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에요. 그것도 안 되나요?”‘뭐?’“인연이 있는 사람을 기다린다고? 이렇게 추운 날씨에?”박천후는 점점 더 이상함을 느꼈다.맨발의 여성은 계속 웃으면서 윤구주를 바라보며 말했다.“그럼요. 그거 알아요? 제가 기다리고 있는 그 사람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영웅이에요! 게다가 우리 화진의 왕이라고 해요.”그 말에 박천후의 표정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여자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람은 누가 봐도 윤구주였기 때문이다.“당신은 대체 누구지? 어떤 저의로 이곳에서 우리 저하를 기다린 거야?”박천후의 목소리는 우레와도 같았다.강한 현기가 음파를 통해 맨발의 여자에게 전해졌다.그러나 여자는 박천후의 음파 앞에서 꿈쩍하지 않고 킥킥 웃으며 말했다.“저의라뇨? 솔직하게 얘기해도 믿지를 않네요. 연약한 제가 인연이 있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데 무슨 저의가 있겠어요? 전 그저 단순히 얘기를 나누고 싶을 뿐이에요.”“헛소리! 마지막으로 물을게. 당신은 대체 누구야?”박천후는 화가 난 상태였다.요염한 여자가 말했다.“제 이름을 알고 싶은 건가요? 안타깝게도 당신은 그럴 자격이 없어요. 저와 인연이 있는 사람을 제외하면 아무도 제 이름을 알 자격이 없죠!”“건방지군! 그렇다면 어디 한 번 시험해 봐야겠어!”박천후는 그렇게 말하자마자 곧바로 움직였다.윤구주가 아끼는 10대 장수 중 한 명이었던 박천후는 절정 강자였다.게다가 그는 무려 절정 삼중천이었다.박천후는 여자를 향해 다가가며 주먹을 쥐었다.무시무시한 권의가 강렬한 강풍을 띤 채 여자를 습격했다.박천후의 권법을 본 요염한 여자는 입꼬리를 올리며 하늘로 훌쩍 날아올랐다.그녀는 아주 빠르게 움직였는데 마치 연기 같았다.“제가 당신을 두려워할 것 같나요?”말하는 사이, 요염한 여자는 빠르게 움직이면서 손을 움직였고 곧 그녀의 부드러워
지면에 균열이 생겼고 곧 굉음과 함께 땅이 뒤흔들렸다.청색을 띤 무홍의 기운이 엄청난 기세와 함께 하늘로 솟구쳤다. 박천후의 두 주먹은 마치 용과 같았고 그의 주먹에 권의가 모이기 시작했다.“노용권!”마치 푸른 용 같은 권의가 나타나는 순간, 박천후는 마치 하늘까지 부술 듯한 기세로 요염한 여자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응? 정말로 진심을 다해서 싸우려 하네요? 그렇다면 저도 제대로 놀아주죠!”요염한 여자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그녀의 미간에 붉은색의 룬 문자가 나타났다.그 룬 문자가 빛나기 시작하자 여자의 몸 주변에 옅은 핑크색의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곧이어 그녀는 손을 움직였고 거미줄 같아 보이는 기운으로 이루어진 실이 그녀의 손에 나타났다.그녀가 손가락을 튕기자 아주 많은 양의 실이 마치 거미줄처럼 박천후를 뒤덮었다.박천후는 비록 권법은 대단했지만 요염한 여자의 기괴한 공법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는 빠르게 몸을 뒤로 물렸지만 무시무시한 실들이 그의 두 팔을 꽁꽁 감쌌다.박천후는 벗어나려고 애썼지만 그 실들은 마치 금강석처럼 더없이 단단해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박천후가 여자에게 당하자 검을 빼 드는 소리가 하늘을 갈랐다.“박천후, 조심해!”검을 빼든 사람은 다름 아닌 황성 금위군 통령 염수천이었다.마찬가지로 절정 삼중천의 실력을 갖춘 염수천이 검을 빼 들고 나서면서 박천후의 팔을 묶은 실을 베려고 했다.챙강!실은 염수천에 의해 잘리자 핑크빛 기운이 되어 요염한 여자의 곁으로 돌아갔다.“박천후, 괜찮아?”박천후가 거미줄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준 염수천은 서둘러 고개를 돌려 박천후를 바라보았다.박천후는 코웃음을 쳤다.“괜찮아. 조금 전에는 내가 적을 얕봤어.”그는 그렇게 말한 뒤 고개를 돌려 요염한 여자를 노려보았다.“거기 너, 다시 한번 붙어 보자!”맨발인 요염한 여자는 염수천이 나서자 싱긋 웃으며 말했다.“쯧쯧, 절정 실력의 두 사내들이 연약한 여자 한 명을 괴롭히려고 했으니, 소문이라도 나면 창피하
윤구주는 덤덤하게 말했지만 그 내용은 놀라웠다.화진의 6대종문 중 하나인 칠수방이라니!윤구주가 칠수방을 언급하자 박천후와 염수천의 안색이 순식간에 달라졌다.화진은 무공으로 나라를 세웠다.무도의 3대 서열은 화진에서 오랫동안 전승되었는데 3대 서열은 각기 문벌, 세가, 가장 강력한 종문이었다. 전에 윤구주는 서울에서 문벌과 세가를 처단했고 종문의 자제는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소문에 따르면 종문의 자제들은 아주 엄격한 규칙을 따라야 했기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아주 드물다고 한다.그런데 놀랍게도 이 엄동설한에 종문 출신의 사람이 나타날 줄이야!게다가 다름 아닌 화진의 6대종문 중 하나인 칠수방 출신이라니.윤구주가 단번에 자신의 종문을 알아맞히자 요염한 여자는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아름다운 눈을 깜빡이면서 놀란 표정으로 윤구주를 바라보았다.“맞아요. 단번에 제 무공을 알아보고 제 신분을 알아맞히다니, 제가 기다리던 사람은 역시 당신이 맞네요!”윤구주는 평온한 표정으로 말했다.“소문에 따르면 칠수방은 아름다운 여자만 제자로 삼는다고 하지. 그리고 종문 중에 삼절칠금채가 있다고 하던데 넌 그중 누구지?”윤구주가 칠수방의 상황을 읊자 요염한 여자는 상당히 놀란 듯 보였다.그러나 그녀는 이내 감정을 추스르고 대답했다.“정말 대단하네요! 우리 칠수방에 대해 이렇게나 상세히 알고 있다니, 놀라워요. 저랑 같이 지금 바로 칠수방으로 가는 건 어때요? 그러면 제가 굳이 나설 필요도 없고 당신도 다칠 필요도 없으니까요.”윤구주는 그 말을 듣고 웃었다.“날 잡으려고?”요염한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네!”“말해봐. 누가 날 잡으라고 시킨 거야?”윤구주가 고개를 들며 물었다.요염한 여자는 웃는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미안하지만 그건 알려줄 수 없어요. 대신 순순히 절 따라온다면 무사할 거라고 장담해요.”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가슴을 툭툭 쳤다.윤구주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칠수방 따위가
요염한 여자는 윤구주가 검으로 자신의 주사기법을 파괴할 줄은 몰랐는지 눈에 띄게 당황하면서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단번에 제 주사기법을 파괴하다니, 실력이 정말 엄청나네요! 그러면 이번에도 한 번 막아봐요!”요염한 여자는 두 손을 움직였다. 곧 그녀의 미간에 있는 기호는 점점 더 반짝이기 시작했고 그녀의 몸 주변을 둘러싼 핑크색 기운도 점점 짙어졌다.그녀는 손을 움직였고 그 순간 검은색의 사슬이 나타났다.그 사슬은 아주 강렬한 살기 파동을 뿜어댔는데 나타나자마자 음기가 물씬 느껴졌다.“멋진 오빠, 조심해요!”요염한 여자는 매력적인 미소를 짓더니 손목을 움직였다. 검은색 사슬을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윤구주를 향해 날아들었다.눈보라 속에 서 있는 윤구주는 덤덤한 표정으로 꿈쩍하지 않았다.촤라락!살기가 넘실대는 사슬이 윤구주를 묶었다.“너무 방심한 거 아닌가요? 제 거혼사슬에 묶인다면 3품 절정 강자라고 해도 벗어날 수 없거든요!”요염한 여자는 사슬로 윤구주를 옭아맨 뒤 키득거리며 웃었다.옆에 있던 박천후는 요염한 여자가 사슬로 윤구주를 옭아매는 걸 보고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여자를 공격하려고 했다.“바보야, 뭘 하려는 거야?”염수천이 박천후를 말렸다.“뭘 하긴? 저하를 도와야지!”박천후가 대답했다.염수천은 코를 킁킁거리면서 말했다.“멍청하긴. 넌 가만히 있어. 저하가 어떤 분이신데? 네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하지만...”“하지만은 무슨 하지만이야! 넌 그냥 얌전히 있어!”염수천은 욕을 한 뒤 박천후를 무시했다.다른 한편, 요염한 여자는 거혼사슬로 윤구주를 속박한 뒤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러면 이제 순순히 따라오도록 해요. 그렇지 않으면 정말 공격할 거니까요.”거혼사슬에 묶인 윤구주는 엷은 미소를 지었다.“겨우 이딴 걸로 날 잡으려고?”“흥, 말로 해서는 안 되겠네요! 이젠 절 탓하지 말아요!”요염한 여자는 표정이 차가워지더니 손을 움직여 수인을 맺어 거혼사슬을 가리켰다.“금법, 개시!”촤악!
“끝장이야!”여자는 천주검이 지닌 영혼을 갉아먹는 힘을 느꼈다.그 정도 힘이라면 그녀는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었다.“내가 이런 곳에서 죽을 줄은 몰랐는데.”요염한 여자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절망에 빠진 얼굴로 눈을 감았다.거대한 천주검이 하늘에서 내려왔다.그것은 엄청난 기세로 요염한 여자를 베려고 했다.요염한 여자가 천주검에 목숨을 잃을 뻔한 순간, 쿵쿵 소리와 함께 땅이 뒤흔들리면서 날뛰는 검기가 요염한 여자의 몸을 지나쳐 바닥에 꽂혔다.차가운 바닥에는 윤구주의 천주검에 의해 수십 미터에 달하는 깊은 골짜기가 생겼다.지면이 잘린 것만 같았다.“어... 절 죽이지 않는 건가요?”틀림없이 죽을 거로 생각했던 요염한 여자는 땅의 흔들림과 사방으로 넘쳐흐르는 검기를 느낀 순간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들어 윤구주를 바라보았다.눈보라 속 윤구주는 여전히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말해. 누가 날 잡으라고 지시한 거야? 그리고 넌 칠수방 삼절칠금채 중 몇 번째야?”요염한 여자는 윤구주가 자신을 죽이지 않자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미안하지만 제가 얘기해 줄 수 있는 건 많지 않아요. 전 삼절칠금채 중 셋째인 차비연이라고 해요. 하지만 누가 당신을 잡아 오라고 지시한 건지는 알려줄 수 없어요.”“얘기하지 않겠다는 거야?”윤구주는 싸늘하게 말하더니 허공에 대고 손을 움켜쥐었다. 그 순간 거대한 손이 나타나서 차비연이라고 스스로를 밝힌 요염한 여자를 허공에서 움켜쥐었다.“날 죽인다고 해도 그건 알려줄 수 없어요.”허공에 들린 차비연이 말했다.“그래. 그러면 죽여주지.”말을 마친 뒤 윤구주는 정말로 차비연을 죽이려고 했다.거대한 손은 조금씩 차비연의 몸을 움켜쥐기 시작했고 차비연은 온몸의 뼈가 바스러지는 듯한 엄청난 통증을 느꼈다.윤구주가 정말로 자신을 죽일 것 같자 허공에 들린 차비연은 진심으로 두려워졌다.“잘못했어요. 죽이지 말아줘요... 제발 살려줘요...”차비연이 살려달라고 애원하자 윤구주는 그제야 힘을 뺐다.“
종문은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아주 드물었는데 그것은 화진에서 관행 같은 것이었다.칠수방이 나섰다면 아마 다른 종문에서도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 것이다.윤구주의 질문에 차비연이 대답했다.“칠수방에서는 총 6명이 나섰어요. 저희 사숙조께서 사람들을 이끌고 있죠. 다른 종문이라면... 아는 게 많지 않아요. 현문의 사람이 서울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밖에 몰라요.”현문?그 두 글자에 윤구주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화진의 6대종문은 서요산 검종, 현문, 만불종, 칠수방, 천도궁, 자운각으로 이루어졌다.6대종문 중 하나인 현문은 당시 윤구주가 곤륜에서 왕이 되었을 때 사력을 다해 막으려고 했다.그러나 당시 국주령이 있었고 윤구주가 홀로 10국을 물리친 위대한 업적을 세워서 결국 윤구주는 곤륜에서 왕이 되었다.그러고 보면 현문과 윤구주는 그야말로 숙적이었다.그래서 현문의 사람이 서울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차비연의 말에 윤구주의 안색이 어두워진 것이다.“얘기해. 현문을 제외하고 모습을 드러낸 다른 종문은 없어?”윤구주가 다시 물었다.차비연은 고개를 저었다.“그건 몰라요. 사숙조의 말을 들어 보니 당신이 예전에 노룡산에서 많은 세가의 강자들을 죽였고 종문에서는 그 일로 당신에게 복수하려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해요.”“복수?”윤구주는 큰 목소리로 웃었다.“종문이 드디어 나섰네. 좋아, 아주 좋아!”윤구주가 광기 어린 표정으로 웃자 차비연은 아름다운 눈을 깜빡이면서 윤구주에게 말했다.“전 해야 할 말은 다 했어요. 흑흑, 이래도 절 죽여야겠다면 그냥 죽여요!”말을 마친 뒤 그녀는 정말로 눈을 감고 가슴을 내밀었다. 마치 죽이든 말든 마음대로 하라는 듯 말이다.윤구주는 그녀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오른손을 움직여서 거대한 손을 사라지게 했다.쿵!차비연은 허공에서 뚝 떨어져서 엉덩방아를 찧게 되었다.윤구주는 더는 그녀를 신경 쓰지 않았어.“어라? 절 죽이지 않는 건가요?”차비연은 자신을 속박하던 힘이 사라지자 엉덩이를 주무르면서
차비연이 떠난 뒤 박천후와 염수천이 빠르게 달려왔다.“저하, 화진 무도의 최강이라 불리는 종문에서 모습을 드러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설마 종문에서 저하를 상대하려고 하는 걸까요?”염수천은 윤구주에게 다가가서 물었다.“멍청하긴! 당연한 거 아니겠어? 당시 곤륜에서 왕이 되었을 때 많은 종문들이 우리 저하가 왕이 되는 걸 반대했어. 그런데 지금 종문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고 하니 당연히 우리 저하를 노린 거 아니겠어? 저하, 명령을 내려주신다면 지금 당장 북방군을 이끌고 가서 그놈들을 토벌하겠습니다!”박천후가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박천후처럼 용맹한 사람은 무서운 게 없었다.그에게 있어 윤구주를 공격하려는 사람은 모두 죽어 마땅한 사람이었다.그러니 대군을 이끌고 종문을 휩쓰는 일도 기꺼이 할 수 있었다.그러나 윤구주는 뜻밖의 얘기를 했다.“무도의 일은 당연히 무도로 해결해야지. 박천후, 이 일은 신경 쓰지 않아도 돼.”“하지만...”박천후는 뭔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했다.그러나 윤구주가 그를 제지했다.“6년 전 난 이미 종문을 혼쭐내주고 싶었어. 그런데 그들이 지금 다시 자발적으로 모습을 드러냈으니 오히려 좋아.”윤구주는 서늘한 눈빛으로 말했다.6년 전 곤륜에서 왕이 되었을 때, 당시 화진이 금방 평화를 되찾고 10개국과의 전쟁 때문에 휴식해야 하지 않았다면 윤구주는 그 당시 종문과 싸웠을 것이다.그러니 오히려 이것이 그에게는 좋은 기회였다.“저하, 조금 전 칠수방의 그 여자가 종문의 사람이 서울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했는데, 그러면 지금 바로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염수천이 물었다.윤구주는 고개를 들어 몰아치는 눈보라를 바라보았다.“아니. 서울에는 공수이와 민규현 등이 있으니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거야.”“네? 공수이요? 저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인데요?”염수천이 궁금한 듯 물었다.염수천은 당시 구주군 소속이었던 사람들을 전부 기억했다.그러나 조금 전 윤구주가 말한 공수이라는 이름
대도시든 작은 도시든 거리에는 축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그 광경은 설날보다도 더 떠들썩했다.그 순간, 흑여산맥에서 100여 킬로미터 떨어진 한 작은 마을에서도 축하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정말 좋아. 그 위풍당당하던 설국이 우리 화진의 속국이 되었다니. 하하, 얼마 전에 내 아내가 설국으로 여행 가고 싶다고 나한테 여권을 만들라고 했거든? 이젠 여권을 발급받을 필요도 없이 바로 가면 되겠어!”“그러게 말이야.”“내 동료들도 스키 타러 설국에 갈 거래.”“설국 국주가 갑자기 돌아가셨고 설국이 갑자기 우리 속국이 되다니,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변경 지역의 취사병인 우리 친척 형이 그러던데 설국이 우리 속국이 된 건 한 사람 때문이래.”“한 사람?”“그래. 우리 오빠의 말에 의하면 그 사람은 우리 화진의 왕이었대. 이름이 무엇인지는 얘기하지 않았지만 그 사람이 혼자 설국으로 가서 많은 설국 병사들을 죽이고 심지어 설국의 국주까지 단칼에 죽였대.”“그... 그게 가능해? 혼자서 한 나라를 굴복시킨다고? 오버가 너무 심한 거 아냐?”“오버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어. 어쨌든 설국은 이제 우리 속국이 되었잖아. 그렇지?”“응, 얘기를 들어 보니 그렇긴 해.”“그만해. 우리 같은 백성들은 나라의 큰일에는 신경 쓰지 말자고. 우리는 우리나라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는 것만 알면 돼.”“하하, 맞는 말이야. 자, 건배하자고!”음식점 안에서 사람들은 대화를 나누면서 술을 마셨다.그들이 기쁘게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그 옆에 사람 두 명이 앉아 있었다.그 두 사람의 앞에는 풍성한 음식이 놓여 있었다.온갖 산해진미가 다 있었다.가장 중요한 건 그 두 사람 중 한 명은 아주 뚱뚱하고, 다른 한 명은 대머리 스님이었다.자세히 보니 그 두 사람은 흑여산맥 접경지대로 향하던 정태웅과 공수이였다.“수이 동생, 들었지? 저 사람들 우리 저하 얘기를 하고 있어!”정태웅은 눈을 가늘게 뜨면서 옆 테이블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게
‘헐, 대박.’진동왕이 하늘을 우러러보며 윤구주를 신처럼 떠받들었다.‘이게 진짜 신이지. 곤륜에 있는 그 자식들은 모두 가짜 신들이었어. 허위적이기 그지없지.’오늘 밤 그는 여러 강자의 싸움을 직접 목격하고 강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문경우도 아주 강했지만 윤구주가 나타나자 문경우는 도망조차 제대로 치지 못하고 영혼마저 산산조각이 났다. 윤구주의 술법에 의해 영혼도 남기지 못하고 진정한 죽음을 맞이했다.승리는 결국 화진에게 돌아갔다. 화진을 무너뜨리려는 역적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윤구주는 자신의 힘으로 화진의 막강한 실력을 전 세계에 알렸다.문경우를 처단한 윤구주는 즉시 임정설의 치료에 돌입했다.“짐은 별일 없으니 먼저 왕숙과 네 친구를 치료해줘라.”임정설이 임성진과 청해를 가리키며 말했다.청해는 이미 정신을 차렸다. 비록 상처가 심해 반쯤 죽은 상태였지만 화진 국주에게 인정받은 첫 순간이었다. 묘한 영예감이 그의 마음을 꽉 채우며 날아갈 듯 기뻤다.“이 두 사람 모두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은 아닙니다. 오히려 국주님이 더 위험하십니다. 경지를 무리하게 넘어서셨고 섭혼번 아래서 정기를 너무 많이 잃으셨습니다. 지금 국주님의 기운이 안정하지 않으니 제 도움이 없다면 폭주 할수도 있어요. 그때가 되면 저도 방법이 없습니다.”윤구주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임정설은 결국 윤구주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도 자신의 몸 상태를 알고 있었다. 윤구주의 치료를 거부한 이유는 목숨을 내던질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황자급 경지에 오르긴 했지만 예전보다 죽음에 대한 집착이 강해져 있었다. 윤구주는 임정설에게 풀지 못한 원한이 있음을 눈치채고 치료를 해주며 화진으로 압박했다.“국주님께서 직접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는 걸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화진에게는 국주님이 필요합니다. 국주님은 30년 동안 화진을 지켜오셨잖아요. 지금 승부가 달린 이 중요한 시점에서 사적인 감정에 휘둘리시면 안 됩니다.”임정설
서울 삼천만 명의 목숨을 제물로 바치고 섭혼번이 작동되면 화진의 국운은 영원히 봉인될 것이다.“우리 문씨 가문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쇠퇴하지 않았으니 마땅히 화진의 주인이다. 감히 누가 복종하지 않겠느냐?”문경우는 하늘을 향해 큰소리로 웃어댔다.이때 하늘에서 천둥이 울리며 공간이 갈라지더니 한 남자가 시체 한 구를 밟고 서울에 강림했다.“웃기고 있네. 문씨 가문이 화진의 주인이 되겠다고? 문씨 가문 따위가 어디 감히 그런 꿈을 꾸는 것이냐? 나 윤구주가 용납하지 않겠다.”우르릉.우렁찬 목소리가 사방으로 퍼지자 문경우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졌다. 윤구주의 기운이 섭혼번 아래에 나타나며 음의 기운을 찢어버렸다.거대한 섭혼번이 관통당하자 전법이 무너지고 문경우는 피를 토해냈다.고개를 돌리니 윤구주가 허공에 우뚝 서 있었고 그의 발아래에는 아사 신전의 신주 오딘의 시체가 보라색 번개에 휩싸여 있었다.“이게 무슨? 네가 신왕 오딘을 죽였다고?”문경우는 오딘의 시체를 바라보며 벌벌 떨었다.“이 개 같은 자들이 여러 번 화진을 범했으니 죽이는 게 당연하지. 나는 오딘뿐만 아니라 아사 신족 전체를 멸했다. 이제 곤륜에 아사 신족은 존재하지 않는다.”윤구주가 공중에 우뚝 서서 음양의 기를 손아귀에 감아쥐었다. 그의 머리 위 갈라진 공간 너머로 아사 신전의 폐허가 보였다. 수만 신령이 죽어 아사 신족이 멸족한다는 종말이 예언이 현실이 된 것이다.문경우의 눈에 비친 윤구주는 무적의 화신이었다. 그는 윤구주와 싸울 용기도 내지 못하고 뒤돌아 도망치려 했다.“너희들이 내가 없을 틈을 타 화진의 기운을 봉인하려 했다고? 문씨 가문은 정말 개수작만 부리는군. 예전에는 나를 죽이려 온갖 더러운 수작을 다 부렸잖아. 내가 없는 틈만 노리는 걸 보니 이젠 내가 무서웠나 보지?”“팔기지, 술자결.”윤구주가 손짓하자 삼천만 생령이 국운 속으로 모여들었다. 백성들은 새 국운에 각자의 고마운 마음을 담아 보냈고 모두의 영혼이 육체로 돌아가며 위기가 해소되었다.“팔기지, 어
태양으로 변한 그 부적은 사악하기 그지없었다. 독한 태양 빛이 대지를 지지며 수많은 건물을 녹여버렸고 그 안에 있던 평민들도 산 채로 타죽고 말았다.“그만해. 화진의 백성들을 건드리지 마라!”임정설이 분노에 차 외쳤다.“너와 나는 모두 화진의 절정 수련자인데 어찌 무고한 자들을 끌어들이느냐?”“하하! 무고하다니? 임정설, 현실을 직시하지. 이 하등한 것들은 개미나 다름없어. 한 무리를 죽여도 금방 다시 번식할 테니. 게다가 내가 여기에 온 목적은 삼천만 백성의 목숨으로 화진의 새 국운을 봉인하는 거라네. 우리 문씨 가문이 얻지 못하는 것은 부숴버려도 남에게 주지 않을 거야.”문경우가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그는 윤구주가 문씨 가문의 뜻을 거역하는 것에 화가 났다.만약 윤구주가 그들에게 순종했다면 지금쯤 화진의 주인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천추만대가 지나도 윤구주는 여전히 화진 최고의 명군으로 남았을 것이다.“저 빌어먹을 윤구주. 역사는 승자가 쓴다는 걸 모르나? 역사를 조작한 왕조가 그렇게나 많은데 유독 그놈만 고집을 부리잖아. 화진의 재난은 모두 윤구주 때문이야. 명군이 되길 거부한다면 영원한 역적으로 만들 거야. 윤구주는 역사의 수치주에 못 박혀 천년만년을 욕먹을 것이다.”“닥치거라! 구주는 우리 화진의 영웅이다. 너 같은 쓰레기가 어찌 감히 구주를 함부로 논하는 것이냐?”그의 말에 단단히 열 받은 임정설은 양혼을 불살라 목숨을 걸려 했다. 그러나 문경우가 이미 임정설의 기를 봉쇄하고 제삼의 전법으로 그의 영혼까지 잠가버렸다.“임정설, 내 앞에서 자살조차 못 하는 주제에 어디서 목숨을 걸겠다고 떠드는 건가?”문경우는 기고만장했다. 임정설이 황자가 되면 뭐하나? 어차피 문씨 가문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는데.“오늘이 바로 화진 황제의 멸망일이라네. 섭섭해하지 말게. 윤구주도 곧 자네 뒤를 따를 거니까. 하하!”그가 양손을 내리자 백 미터 크기의 사악한 검은 기발이 구름을 뚫고 서울 상공에 나타났다.“이, 이것은 섭혼번이군!”그 거대
말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더 이상 쓸모없는 대화는 필요 없었다.임정설은 황제의 의지를 칼로 삼았다. 황자의 기세가 모여 금빛 칼날을 형성하더니 국운을 상징하는 그 칼로 문경우를 향해 내리쳤다.우르르.음과 양이 맞부딪치며 터져 나온 충격파가 반경 수 킬로미터를 휩쓸었다. 사령부 빌딩과 인근 건물들의 유리가 모조리 산산조각이 났다.두 사람은 빌딩 꼭대기에서 결투를 시작했다. 칼 빛이 번뜩이며 천지의 영기를 뒤흔들었고 광풍과 폭우가 몰아쳤다. 산해가 울부짖으며 서울은 보라색 번개와 금빛 불길에 휩싸였다.그들은 각각 화진 최강의 무도를 대표하고 있었다. 이는 단순히 정의와 사악의 대결이 아니라 임씨 가문과 문씨 가문의 결전이었다.서울 상공에서는 용의 형상이 구름 사이를 휘저으며 흉수와 피 묻은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이게 바로 황자의 힘인가. 정말 굉장하군.”진동왕마저 넋을 잃은 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이때 다른 도시의 지원병들이 서울에 도착해 진동왕과 연락을 취했고 이 소식을 해외에 있는 현모와 주작에게 즉시 전했다.“국주께서 문경우와 결전을 벌이고 계신다고?”“국주께서 황자급 경지에 오르셨다니.”이는 분명히 좋은 소식이었다. 비록 한 산에 두 호랑이가 살 수 없다는 말이 있었지만 윤구주와 임정설의 관계는 남달랐다. 임정설은 윤구주의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너무 기뻐하지 마라. 저 문경우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곤륜에서 오랫동안 잠적하며 수많은 신전의 공법을 익혔어. 저놈이 서울로 온 목적은 바로 임정설을 죽이기 위함일 것이야.”옆에 있던 황보웅이 차가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주작과 현모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직 화진이 무사하고 임정설이 문경우를 물리치길 기원할 수밖에 없었다.한창 싸우고 있던 두 강자는 공중에서 다시 한번 맞붙었다. 두 사람의 손짓 하나에 산이 뒤집히고 천지가 진동했으며 그들의 기세는 수백 리 밖까지 영향을 미쳤다.임정설은 기세를 최고조로 끌어올려 거침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임정설은 문경우가 극 신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전법이 발동되면 서울 수천만 사람들이 참혹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야. 비록 이길 자신은 없지만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화진의 백성을 위해 싸우겠다. 구주군과 금위군의 여러 장수들은 듣거라. 짐이 전사하면 너희들이 나라를 지킬 책임을 지고 계속해서 적들을 섬멸하라.”임정설은 장군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나서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홀로 서울 사령부로 날아갔다.서울 사령부는 진동왕과 수비영이 도착하기 훨씬 전에 함락된 상태였다. 주둔지는 죽음의 적막에 휩싸여 있었고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말라붙은 백골들이 널브러진 참혹한 장면뿐이었다.당시 강적의 침입을 받은 주둔지의 병사들은 한 명도 물러서지 않고 전원이 전사할 때까지 적들과 맞서 싸웠을 것이다.이 생각에 임정설의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이곳에 있는 자들은 모두 우리 화진의 자랑이다. 저 요망한 것들이 화진을 어지럽힌 지 얼마나 되었느냐? 이 빚을 짐이 갚아 내지 못하더라도 화진 자손들이 반드시 값나낼 것이다.”그는 절대 화진의 혼란에 맞선 마지막 황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선인이 걸어온 길을 밟으며 그의 발걸음은 더욱 확고해졌다.이 순간 황운이 임정설의 몸에 서리더니 새로운 국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순간부터 그는 특정된 누군가의 왕이 아닌 천하 만민이 우러러보는 황제가 되어 있었다.황도가 더해지자 임정설의 기세는 한층 더 강해졌다. 그는 사령부 빌딩 최상층에서 서울을 어지럽힌 장본인을 마주했다.검은 도포를 걸친 그 자는 사악한 부적으로 몸을 감싼 채 요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바로 그가 전법으로 서울을 뒤덮고 있었다.“참으로 예상치 못했어. 화진에 또 한 명의 황자가 나타나다니. 윤구주는 정말 신기하다니까. 자신의 기운으로 국운을 바꾸고 자네의 운명까지 바꿔놓았군. 하지만 내가 충고 하나 해주지. 임정설 자네가 황자가 된 이상 사흘을 넘기지 못할 것이야. 넌 사흘 안에 목숨을 거둘 것이란 말이지.”검은 도포를 입은 사람은 임정설이 죽음을 각오하고 온 것을 알아
국주 임정설은 해청현의 음기를 제거한 후, 그를 보호하던 기운까지 걷어내 양기로 해청현을 완전히 눌러 버렸다.이게 바로 미친 스님이 말했던 진정한 자제력이었다.“해청현은 수법만 닦고 수도는 하지 않았으며 몸만 수련할 뿐, 마음은 단련하지 않았지. 그러다 보니 결국 다 헛것이 되어버린 거야.”미친 스님은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공평했다. 그는 해청현에게 타고난 수도의 체질을 주었지만 그에 걸맞은 의지를 주지 않았다. 그렇게 해청현은 더는 감당하지 못하고 되려 휘말려버린 것이었다.임정설의 머리 위엔 성스러운 빛이 맴돌았고 온몸엔 천지를 뒤덮을 만큼의 정기가 흘러넘쳤다. 해청현은 결국 싸움에서 져버렸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도 임정설처럼 황자급 경지였다면 이겼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작 두 사람의 경지가 같았다 해도 여전히 자신이 완전히 압도당했을 거라는 걸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임정설은 손바닥을 휙 내리치더니 끝까지 미련을 품던 해청현을 그 자리에서 즉사시켰다. 그는 영혼조차 남지 않은 채 완전히 소멸당했다. 이것이 바로 겉보기엔 수련했을지 몰라도 한 번도 진정한 수도의 길에 들어서지 않았다는 증거였다.“국주님이 이렇게까지 강했다고?”공수이는 멍하니 중얼거렸다.“그러게 말이야. 어떻게 이렇게까지 강해졌지?”진동왕은 부러움과 질투, 그리고 복잡한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예전에는 그가 임정설보다 더 강했었고 임정설은 국운 덕에 간신히 그를 이길 정도였으니 말이다.하지만 이젠 내공 차이가 너무 벌어져서 더 이상 비교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그제야 깨어난 백호는 조금 전 자신이 국주를 진왕으로 착각하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백호, 널 속인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넌 내가 올 때까지 버티지 못했을 테니까...”임정설은 양기를 끌어내어 백호의 몸속에 주입했고 그의 정기를 빠르게 회복시켰다. 이렇게 되면 백호도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회복할 것이었다.그 모습을 본 공수이와 진동왕은 또다시 멍해
“뭐? 저게 누구지? 지금 화진에 저런 강자가 또 있었다고? 설마... 저자가 바로 구주왕이란 말인가?”청현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당황스레 외쳤다.누가 알았겠는가, 이 결정적인 순간에 고수가 나타나다니!“젠장... 네가 누구든 상관없다!”“나는 반드시 백호를 죽인다!”청현은 더는 여유가 없었다.상대의 기세는 너무나도 강력했고, 이미 백호와 싸우면서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그와 맞붙는 건 목숨만 붙어 있을 뿐 이기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청현은 그저 백호부터 처리하려 했다.“이런 건방진 것! 우리 화진의 전쟁 신이 너 같은 흉수에게 쓰러질 수는 없다!”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활기찬 천 음 소리!금빛 실루엣이 구름을 뚫고 내려오더니 손바닥으로 청현을 튕겨냈다!눈앞의 인물을 본 청현은 잠시 얼어붙었다. 모르는 인물이다.하지만 이 압도적인 기운은 분명 고위자일 것이다.화진에서 구주왕 말고는 누가 이런 존재감을 뿜어낼 수 있겠는가?기절해 있던 진북왕은 익숙한 기운에 눈을 번쩍 떴다.그리고 그 실루엣을 본 순간 기절할 뻔했다.“이런! 임정설! 너 황자가 된 거야!”“흠? 왕숙께서 실망하셨나 보네요??”금빛 그림자가 사라지며 실체가 드러났고, 그 모습은 바로 용맥에 들어가 수련하던 화진의 현직 왕 임정설이었다.“폐하 만세!”구주군 장병들은 격동된 마음으로 일제히 무릎 꿇고 경례하며 외쳤다.자신들의 왕이 서울로 화진의 백성을 구하러 온 것이다!“임정설?! 그게 어떻게 가능해! 아무리 강해도 극한신경 정도일 텐데!”청현의 얼굴이 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졌다.극한신경과 황자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황자 한 명이면 수십 명의 극한신경을 상대할 수 있다!서울에 황자가 주둔해 있다면, 곤륜영역조차 쉽게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설령 청현이 아무리 천재고 강하더라도 황자와의 싸움은 불가능했다.자칭 수요산 제일검이라던 청현은 위축됐다.그 모습을 본 임정설은 냉소하며 말했다.“이게 바로 검객이란 말인가? 검객의 마음은
진황은 외공만으로 도에 이른 황자였다.어떠한 술법도 수련하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백호가 중얼거리며 ‘진황신공!’을 외치고 있으니 이건 누가 봐도 미친 소리였다.“미쳐야 도를 이루는 법이다. 백호는 앞날이 창창하구먼.” 미친 스님이 아미타불을 외치며 말했다.“미쳤어, 미쳤어! 전부 다 미쳐버렸다고!” 진북왕이 고함을 지르다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기절해버렸다.그 사이 백호의 기세는 끝없이 치솟고 있었다!정신은 나갔지만, 힘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청현은 문득 깨달았다. 백호가 저토록 광폭한 이유—바로 그놈의 몸속에 흐르는 성수의 피였다.“이 썩을 놈... 성수 피가 아니었으면 네가 뭔데 날 상대로 이러는 거냐!”청현은 음기를 뿜으며 맹렬하게 연속으로 공격을 퍼부었다.그 음산한 기세에도 불구하고 백호는 오히려 직선 돌진했다.공격은 완전 예측 불가였다.수요산 검종은 온갖 검술과 전법에 능했지만, 다음 공격이 뭔지도 모르는 미친놈을 상대로는 청현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결국, 또 한바탕 두들겨 맞고 땅바닥을 굴러다니던 중 놀랍게도 백호가 자신의 음신사체를 흡수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내 음기를 집어삼키다니?! 이 괴물 같은 놈!”“음기여 무한하라! 흑검이여, 사악을 베어라!!!”시커먼 흑검이 다시 응집되자, 수백 개의 검날이 연속으로 쏟아졌다.백호의 온몸은 피투성이가 되어 검은 피를 흘렸지만——그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대로 돌진했다!“개자식... 음기야! 나에게 힘을 줘!!”청현은 검을 땅속 깊숙이 꽂았다.지맥에서 미친 듯이 영기를 빨아들이자, 머리 위에 떠 오른 음기 마기의 형상은 산만큼 거대해졌다!그 압도적인 힘으로 청현은 백호를 단숨에 쓰러뜨렸다.이건 이미 백호가 감당할 수 없는 한계치를 훨씬 초과한 위력이었다.쿵!!백호는 그대로 땅에 쓰러졌지만, 그런데도 그는 의식을 잃지 않았다.다만 입에서 나오는 건 누가 들어도 미친 소리였다.“황이 온다... 황... 황이 온다....
“우리 스승 말이야, 진짜 고집쟁이에다 구닥다리야. 정의와 사악은 절대 함께할 수 없다고 믿고 목숨 걸고 몇백 년 동안 싸우고 피 흘렸지만 무슨 소용이 있어? 인마 좀 없앤 거 빼고는...?”“스승께서 날 산에서 내려가 속세의 삶을 보라고 하신 건, 결국 수련을 위한 경험이었겠지. 하지만 세상을 직접 겪고 나서야 똑똑히 알게 됐어. 이 세상은 결국, 강한 자가 무적이고 이긴 자가 왕이 되는 법이야...”“세상에는 애초에 정의와 악, 흑과 백 따윈 존재하지 않아. 선악의 기준이란 결국 입만 살은 자들이 지껄이는 헛소리일 뿐이지. 역사가 진실이라고 믿어? 예로부터 어느 왕조의 흥망이 피바다와 시체더미 없이 이루어진 적이 있었나?”“무릇 장수가 공을 세운다는 건, 수만의 백골 위에 선다는 뜻이지. 그 윤구주가 '구주왕'이라 불리는 것도, 결국은 피로 쟁취한 자리 아니겠어?”“주먹이 곧 진리다. 내가 황위에 오르는 날, 선악이든 흑백이든 모두 내 기준으로 정의된다!”“백호, 이제 죽어라.”청현이 공격하려던 찰나 하늘 위의 백호가 먼저 움직였다. 다시 성수인을 발동하더니, 성수의 허상이 실체로 변해 거대한 기운을 모은 주먹을 뻗었다.그 주먹은 하늘을 가르고 청현을 향해 날아갔다.그러나 청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차가운 음기와 사기 담은 손으로 그 주먹을 받아내고 동시에 백 자 길이의 흑검을 형성해 단칼에 성수의 허상을 두 토막 내버렸다.그 검이 날아간 자리에는 구름이 쪼개졌고, 서울 상공을 덮고 있던 먹구름은 그 검기의 파도에 휩쓸려 모두 흩어졌다.먹구름이 사라졌지만, 서울 상공에는 여전히 짙은 요기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마치 태양조차 삼키려는 어둠의 장막처럼.“진법까지 있었어?! 대체 어느 놈이, 언제 이따위 대형 진법을 몰래 깔아놓은 거야?!”진북왕은 혈압이 오르다 못해 피까지 토할 지경이었다.이건 곧 청현이 최종 보스가 아니라는 뜻이다!백호가 청현을 이긴다 해도 그보다 더 강한 놈이 있다는 얘기다.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백호가 청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