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구주의 옷이 하나둘 벗겨지기 시작하면서 그의 다부진 몸이 겉으로 드러났다.그러나 세나미는 바짝 긴장해서 눈을 감고 있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감히 눈을 뜨지 못했다.그럼에도 그녀는 호기심 때문에 몰래 실눈을 뜨고 윤구주를 바라보았다.그리고 곧 그녀의 표정이 굳었다.윤구주의 몸은 건장하고 완벽했다. 그의 근육들은 매우 선명했고 더욱 무시무시한 것은 그의 등 뒤에 그려진 섬뜩한 용 머리였다.그 용 머리는 강력한 시각적 충격을 안겨주었다. 세나미는 윤구주의 등 뒤에 그려진 용을 본 순간 지레 겁을 먹고 저도 모르게 몸을 살짝 떨었다.“다 봤어?”윤구주가 갑자기 물었다.몰래 훔쳐보고 있던 걸 들킨 세나미는 순간 수치스러움을 느껴 목까지 벌게졌다.그녀는 서둘러 몸을 돌리더니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내, 내가 언제 봤다고 그래?”윤구주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세나미를 더 난처하게 하지 않고 훌쩍 뛰어올라 온천 안으로 들어갔다.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온천은 최고였다.윤구주는 온천 안으로 들어간 뒤 세나미를 향해 말했다.“넌 온천욕 안 할 거야?”‘뭐라고?’“난... 싫어!”세나미는 서둘러 거절했다.그녀는 설국의 군신이며 앞으로 황후가 될 사람인데 어떻게 적과 함께 온천욕을 즐긴단 말인가?게다가 옷도 다 벗어야 하지 않는가?“싫으면 그냥 그 위에 있든지.”윤구주는 귀찮아서 그녀를 더는 신경 쓰지 않았다.그는 눈을 감고 온천욕을 즐겼다.반대로 세나미는 심란한 마음으로 온천 옆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감히 움직이지도 못하고 다른 곳에 갈 수도 없었다.어쩔 수가 없었다.생사인에 당한 이상 도망칠 기회는 없었다.윤구주가 그녀를 죽이려고 한다면 그저 생각 한번 하면 끝이었다.온천에 몸을 담근 윤구주를 본 세나미는 그가 밉기도 하고 또 놀랍기도 했다.그녀는 윤구주가 많은 설국인들을 죽여서 미웠고 또 동시에 그의 엄청난 실력이 놀라웠다. 윤구주의 실력이라면 그녀의 아버지가 군대를 이끌고 온다고 해도 그를 상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윤구주는 가부좌를 틀고 있었고 적선의 기운이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그 기운은 아주 성스러웠다. 절정 강자인 세나미는 그 기운이 나타나는 순간 몸이 큰 산에 짓눌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적선의 기운이 나타나자 온천 위쪽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천지 원기가 사방에서 모여들었다.천지 원기는 엄청난 기세로 모여들더니 곧바로 윤구주의 체내로 흡수되었다.‘젠장, 이 악마는 단순히 온천욕을 하는 게 아니라 수련을 하고 있는 거였어!’세나미는 그 순간 그 점을 인지했다.깜짝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난 세나미의 푸른색 눈동자에 놀라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세나미는 윤구주가 정말로 단순히 설국에서 온천욕을 즐기려고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보니 그에게 속은 것이 분명했다.사실 윤구주가 한 모든 일은 낙일성의 천지 원기를 흡수하기 위해서였다.흡수는 계속됐다.파도와도 같은 천지 원기가 윤구주의 체내로 끝없이 흡수되었고, 윤구주의 체내에서는 윙윙거리는 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그 소리는 고대 코끼리의 울음소리였다.그 소리가 한 번 날 때마다 윤구주의 기세는 더욱 강해졌다.무한한 천지 원기를 흡수하면서 윤구주의 몸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기괴한 검푸른색의 문양이 윤구주의 피부에 생기기 시작하더니 그 순간 피부가 강철이 되었다.그것이 바로 윤구주가 수련하던 구음만상결이었다.구양은 기운이고 구음은 힘이다.윤구주는 두 개의 구주령을 얻었고 마침 두 개를 결합할 수 있었다.쿠구궁!천지 원기를 끊임없이 흡수하자 온천 안의 위압 또한 점점 강해졌다.마지막이 되자 세나미는 더 버티기가 힘들어서 서둘러 온천을 벗어났다.밖으로 달려 나오자마자 그녀는 꺅 소리를 질렀다.고개를 드니 온천 상공에 무시무시한 검은색 먹구름들이 사방에서 몰려와 윤구주의 머리 위에 떠 있었다.심상치 않은 징조를 본 세나미는 완전히 넋이 나갔다.“세상에, 저 악마가 대체 무슨 수련을 하고 있길래 이렇게 날씨가 급변하는 거야?”...윤구주가 미친 듯이 낙일성의 천지 원기를
“군신 각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길든 씨가 계시니 그 화진인은 분명 죽었을 겁니다.”한 설국 장수가 말했다.길든은 절정 강자로서 설국 부대에서 신화 같은 존재였고 줄곧 설국 전사들의 선망을 한 몸에 받았다.이번에 세나스는 딸을 구하기 위해 오랫동안 폐관하던 절정 강자 길든을 모셔 왔다. 윤구주를 상대하기 위해서 말이다.그런데 길든이 딸을 찾았다는 말을 들으니 세나스는 그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세나스는 웃어 보였다.“너희 말이 맞아. 화진인이 아무리 강해 봤자 길든이 있는 한 걱정할 건 없지.”애꾸눈인 세나스가 말했다.그는 말을 마친 뒤 고개를 들어 말했다.“내 명령을 전해. 모두 속도를 높여서 최대한 빨리 낙일성에 도착한다.”“네!”세나스가 명령을 내리자 위풍당당한 병사들은 박차를 가해서 낙일성으로 향했다.낙일성 성벽은 아주 높아서 웅장하고 장엄했다.그곳은 한때 낙일성에서 가장 번화한 곳으로 매일 수만 명의 설국 백성들이 성문에서 그곳을 지나갔다.그러나 오늘 거대한 성문 아래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이러한 상황에 초조한 마음으로 낙일성에 도착하기만을 바라왔던 세나스는 안색이 좋지 않았다.“다들 멈춰.”세나의 명령이 떨어지자 병사들은 모두 낙일성의 성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군신 각하, 왜 그러십니까?”이때 여러 명의 장수가 달려와서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세나스에게 물었다.애꾸눈인 세나스는 손을 들어 낙일성 성문을 가리켰다.“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한 거야?”“이상한 점이요?”장수들은 그 말을 듣고 성문 쪽을 바라보았다.그들이 의아해하고 있을 때 세나스가 계속해 말했다.“낙일성은 우리 설국에서 수입이 활발히 진행되는 대형 도시야. 매일 수만 명의 상인들이 이곳을 드나들지. 그런데 오늘 좀 봐. 이곳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 그런데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한 거야?”세나스의 말에 사람들은 그제야 깨달았다.“그러네요.”’“오늘 어떻게 된 걸까요? 왜 성문에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걸까요?”모든 장수가 의아
“또 사람이 없네요?”“어떻게 된 거죠? 낙일성에 무슨 일이 있던 걸까요? 시민들과 낙일성을 지키는 병사들이 왜 보이지 않죠?”이때 한 장수가 의문을 얘기했다.다른 장수들과 병사들도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어 보였다.바로 이때, 갑자기 짙은 피비린내가 정수리 위에서 풍겨왔다.“아주 짙은 피 냄새야.”“무슨 상황이지?”한 장수는 냄새를 맡고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피비린내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그리고 그는 곧 깜짝 놀라 새된 소리를 질렀다.“군신 각하... 저기를 보세요...”그는 마치 귀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비명을 지르며 손을 들어 성벽 쪽을 가리켰다.소리를 들은 세나스와 다른 장수, 병사들은 모두 고개를 들었다.곧이어 피 칠갑을 한 채로 얼어붙은 시체가 그들의 시야에 들어왔다.그 시체는 이미 얼음덩어리가 된 채 성벽에 걸려 있었다.시체는 얼음과 눈으로 뒤덮여서 누군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세상에, 성벽 위에 왜 시체가 걸려 있는 거죠?”“저건 누구 시체일까요?”병사들과 장수들은 의문을 제기했다.오직 세나스만이 왠지 모르게 성벽에 걸린 시체를 본 순간 강렬한 불안감이 느껴졌다.“여봐라, 저 시체를 내려서 가져와 봐.”세나스가 명령을 내렸다.이때 한 장수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훌쩍 날아올라서 성벽 위에 걸려 있던 시체를 가져왔다.시체가 내려오자 세나스는 곧바로 부하들을 데리고 달려갔다.시체는 눈과 얼음으로 뒤덮여 있었다.한 장수가 손을 움직여서 시체를 뒤덮은 얼음을 깨버렸다.그리고 곧 시체의 얼굴이 세나스와 다른 사람들의 눈앞에 드러났다.그는 절정 강자 길든이었다.“어? 길든 선배님이...”한 장수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그의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서둘러 고개를 숙여 시체를 보았다.예상대로 성벽에 걸려 있던 시체는 설국 절정 강자 길든의 시체였다.길든은 죽기 전 겁을 먹은 건지, 억울한 건지 눈을 부릅뜨고 있었던 던 것 같다.그리고 그의 심장 쪽에는 구멍이 크게 뚫려 있었다.다만 그의 피가 완전히 얼
“군식 각하, 이제 어떡합니까?”한 장수가 세나스에게 물었다.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세나스는 낙일성 중심을 빤히 바라보면서 말했다.“모두 경계 태세를 취한다. 내 딸을 납치한 화진인은 분명 성안에 있을 거다. 오늘 그 어떤 대가를 치르는 한이 있어도 난 반드시 그 화진인을 죽이고 내 딸을 구출할 것이다.”세나스가 분노에 찬 고함을 질렀다.“알겠습니다!”장수들은 이내 대답했고 거의 만 명 정도 되는 설국 부대는 단단히 준비하기 시작했다.세나스가 군대를 이끌고 성 안에 들어섰을 때, 낙일성의 중심에는 붉은 머리의 세나미가 온천 옆에 서서 고개를 들어 윤구주에게 흡수되고 있는 하늘 위 천지 원기를 바라보고 있었다.그녀는 윤구주가 무슨 공법을 수련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그리고 무엇 때문에 주위의 천지 원기가 전부 흡수되는 건지도 몰랐다.그녀는 그저 멍하니 하늘 위 천지 원기를 바라보며 바위처럼 그곳에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바로 이때 겁에 질린 설국인들이 먼 곳에 있는 거리에서 뛰어왔다.그들은 달리면서 외쳤다.“큰일이에요. 군대가 왔어요!”겁에 질린 백성들의 목소리에 온천 옆에 있던 세나미는 흠칫했다.“군대?”그녀는 빠르게 걸어가서 겁에 질린 채 달리고 있는 노인을 붙잡았다.“안녕하세요, 아저씨. 조금 전에 군대가 왔다고 하셨나요? 대체 무슨 상황인지 얘기해주실 수 있나요?”세나미에게 붙잡힌 설국 노인은 서둘러 말했다.“아가씨, 얼른 숨어요. 우리 낙일성에서 곧 전쟁이 일어날 것 같아요.”“전쟁이요?”그 말을 들은 세나미는 더더욱 의아해했다.“맞아요. 조금 전에 우리 설국 군대가 낙일성에 왔어요. 게다가 탱크랑 대포도 있었어요.”노인이 말했다.그 말을 들은 세나미는 의아했다.낙일성은 설국의 도시였다.군대가 낙일성에 진입했다는 것은 윤구주를 노린 것이 틀림없었다.설마 설국 군대에서 윤구주가 낙일성에 왔다는 걸 아는 걸까?“아저씨, 그들을 이끄는 장수가 누군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세나미는 황급히 물었다.“우리 설국
“다들 왔나?”윤구주는 번뜩이는 두 눈으로 낙일성 성문 쪽을 바라보았다.“좋아. 드디어 왔네.”말을 마친 뒤 윤구주는 훌쩍 뛰어올라 온천에서 나왔다.그의 완벽한 몸매는 근육이 잡혀 탄탄했다. 그의 몸은 마치 가장 위대한 조각가가 조각한 조각상 같았다.손을 움직이자 바닥에 벗어두었던 옷이 그의 손에 잡혔다.윤구주는 빠르게 옷을 입은 뒤 순식간에 낙일성 성문 쪽으로 나아갔다.윤구주가 계속 낙일성에 남아있던 이유는 세나스의 대군을 기다리기 위해서였다.세나스는 설국의 군신으로 과거 설국 병사들을 이끌고 전투에 수십 차례 참여했었다. 그는 설국 병사들에게 영웅이자 군신이었다.그러다 그는 6년 전 윤구주에게 패배하였고 심지어 오른쪽 눈은 윤구주에 찔려서 실명되었다.비록 세나스는 눈 한쪽이 실명되었지만 설국 군인들 마음속 그의 지위는 여전히 확고부동했다.그는 여전히 군신이자 설국 병사들이 가장 존경하는 존재였다.윤구주가 그를 죽여야만 설국 군대를 완전히 패닉에 빠뜨릴 수 있었다.그래서 윤구주가 떠나지 않고 계속 낙일성에 남아있었던 것이다....낙일 성, 성문 쪽.얼어붙은 시체가 가장 앞에 놓여 있었다.그것은 설국의 절정 강자 길든의 시체였다.시체 앞에 서 있는 것은 세나스였고 그의 뒤에는 장수들이 뒤따르고 있었다.초극 절정인 길든은 생전에 세나스와 사이가 굉장히 좋았다.매번 전투가 있을 때마다 세나스는 길든을 초대했었다.그런데 이번에 오래된 친구가 낙일성에 오자마자 죽을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길든의 시체를 바라보던 애꾸눈 세나스는 주먹을 꽉 쥔 채로 비분에 찬 표정을 해 보였다.“군신 각하, 우리 부대는 각하의 명령에 따라 성문을 완전히 막아두었습니다. 파리 한 마리도 뚫지 못할 겁니다. 지금부터 수색을 시작하라고 명령을 내리면 될까요?”이때 한 장수가 세나스의 곁으로 다가가서 물었다.군복을 입은 세나스는 눈을 부릅뜬 채 차갑게 손을 움직였다.“시작해.”“네!”설국 장수는 명령을 받은 뒤 곧바로 몸을 돌려 뒤에 있는 병
그들을 향해 달려오던 사람은 다름 아닌 세나미였다.세나미는 달려가서 세나스의 품에 안기더니 흐느끼며 아버지를 불렀다.세나스는 당황했다.그는 서둘러 딸을 안고 기쁜 얼굴로 말했다.“나미야, 이거 꿈 아니지? 정말 너 맞니?”“그럼요, 아버지!”세나미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 말했다.“너 화진인에게 납치된 거 아니었니? 왜 여기 있는 거야? 얼른 아빠한테 얘기해 봐. 어디 다친 데는 없어?”세나스는 서둘러 딸을 걱정하며 물었다.세나미는 웃으며 말했다.“아버지, 저 괜찮아요. 안 다쳤어요.”“하지만... 네가 화진인에게 납치당했다는 보고가 올라왔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멀쩡히 이곳에 있는 거야?”세나스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다른 장수들 또한 의아한 얼굴로 갑자기 나타난 세나미를 바라봤다. 아무도 어떤 상황인지 몰랐다.세나미는 지금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그녀는 서둘러 말했다.“아버지, 그건 설명할 수 없어요. 지금은 제 말대로 하세요. 당장 병사들을 이끌고 이곳을 떠나요. 그리고 당분간은 절 찾지 마세요.”세나미의 말에 세나스뿐만 아니라 그의 뒤에 있던 설국 병사들 또한 얼이 빠졌다.“나미야, 그게 무슨 말이야? 이곳을 떠나라니? 널 찾지 말라니?”세나미가 말했다.“아버지, 제 말대로 하세요. 지금은 설명할 방법이 없어요.”세나스는 이상함을 느꼈다.딸의 겁먹은 표정을 본 세나스는 뭔가 수상쩍음을 감지했다.“나미야, 너 혹시 협박당했니? 뭘 두려워하는 거야?”세나미는 긴장한 얼굴로 뒤를 바라보면서 서둘러 말했다.“아버지, 제발요. 어서 군대를 이끌고 이곳을 떠나세요. 그 악마가 온다면 떠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을 거예요.”세나미가 악마라고 하자 세나스는 더욱 의아해졌다.“딸아, 그게 무슨 말이니? 악마라니?”“우리 설국 병사들을 죽이고 절 잡아간 그 화진인 말이에요!”세나미는 설명해도 소용없자 그냥 솔직히 털어놓았다.“네 말은 우리 설국 병사들 수천 명을 죽인 화진인이 이 낙일성에
세나스는 그 말을 듣고 세나미에게 말했다.“딸아, 무서워하지 마. 아버지가 있으니 아무도 널 다치게 하지 못해. 넌 지금 편히 쉴 수 있는 곳을 찾아서 쉬어. 아버지가 그 빌어먹을 화진인을 잡아서 처단할게.”다들 자신의 말을 믿지 않자 세나미는 초조해했다.“아버지! 왜 제 말을 믿지 않는 거예요? 길든 할아버지 아시죠? 길든 할아버지는 그 악마의 손에 단숨에 죽었어요. 다들 이곳에서 죽길 바라는 거예요?”세나미가 초조한 목소리로 울먹거리자 세나스는 미간을 구겼다.그가 아는 세나미는 줄곧 용감하고 지혜로우며 침착한 사람이었다.그런데 오늘은 왜 이러는 걸까? 왜 이렇게 두려워하는 걸까?세나스는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말해 봐. 널 납치한 화진인이 정말로 그렇게 강한 거야?”“맞아요. 그는...”세나미는 조금 엄두가 나지 않는 표정이었다.“그가 누군데?”세나스는 딸을 바라보았다.세나미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말했다.“아버지의 숙적이에요. 유일하게 아버지를 이긴 적이 있는 사람이기도 하죠.”‘뭐라고?’자신을 이긴 적이 있다는 말에 세나스는 당황했다.세나스는 살면서 수많은 전투를 했었다.그러나 그를 이긴 적 있는 사람은 오직 윤구주뿐이었다.세나미의 말을 들은 세나스는 안색이 어두워졌다.“설마 그 화진인이 구주왕이란 말이야?”“맞아요. 바로 그예요.”“그가 우리 설국에 왔어요. 지금은 저 앞에 있는 온천에 있어요.”세나미는 드디어 윤구주의 일을 얘기했다.‘뭐?’화진의 구주왕이 낙일성에 왔다는 말에 세나스는 당황했다.“그럴 리가... 그는 이미 죽음의 바다에서 죽었어. 그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야. 그가 살아있을 리가 없잖아?”세나스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저도 그렇게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죽지 않았더라고요! 화진은 우리 10국을... 세상을 모두 속인 거예요. 구주왕이 살아있을 줄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에요!”세나미는 윤구주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얘기했다.이때 세나스는 깜짝 놀라 넋이 나갔고 그
희미한 노인의 모습이 투영되었다. “윤구주, 시간이 없으니 간단히 말하겠다! 내가 누군지 묻지 마. 너는 단지 곤륜 구역의 한 대신전에서 구오 지존 대원만 경지의 천신을 보내 너를 막으려 한다는 것만 알면 돼. 그의 목적은 너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상황을 어지럽히려는 것이야. 어떻게 결정할지는 네가 정해. 우리 쪽에서는 이미 너를 위해 많은 것을 얻어냈다. 그렇지 않으면 온 것이 구오 경지가 아니었을 거야.” 투영은 급하게 왔다가 수옥인이 인사할 틈도 없이 빠르게 사라졌다. “신전이 너의 계획을 방해하려 해. 이것은 이미 누군가가 너를 위해 얻어낸 결과야. 원래 그들은 너를 죽이려 했었어. 아마 오려는 자는 극전 신경, 황자였을 거야.” 수옥인은 또다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윤구주의 반응은 평범했다. 그는 수옥인의 겁에 질린 모습을 보며 경멸하는 듯 말했다. “고작 신전 하나에 겁먹었어? 너도 여섯 신전 중 하나에서 나왔다는 걸 잊지 마! 또한, 극전 신경은 하나의 경계고 황자는 또 다른 경계야. 모든 극전 신경이 황자라 불릴 수 있는 것은 아니야.” 이 둘의 관계는 진동왕이 왕이지만 왕이라 불릴 만한 자격이 충분하지 않은 것과 같다. 화전에서 현재 인정받는 왕은 윤구주 단 한 명뿐이다. 국주 임정설은 무계에서의 영향력이 부족해 겨우 절반 정도로 간주된다. “비록 그렇다고 해도 상대는 기세가 등등하니 가볍게 볼 수 없어. 내가 그 사람이었으면 너를 찾지 않고 네 부하 전사들을 노렸을 거야.” 수옥인은 분석했다. 윤구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옥인이 비록 겁이 많지만 머리는 좋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내가 지금 너를 도와 전법을 안정시키고 있다는 것까지 계산했어. 그 천술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고 곤륜 구역의 그 자식이 여길 계속 주시하고 있어. 내가 나가면 그 사람은 전법을 조작할 거야. 그들이 현모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계산했는지는 모르겠네.” 윤구주는 눈을 가늘게 뜨고 서 있는 현모를 바라보았다. 말이 이 정도까지 나왔는데도
전쟁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윤구주는 의심이 들었다. ‘곤륜 구역이 정말 내 뜻대로 움직인다고? 귀신족을 노예로 여기고 귀신족의 음기를 받드는 ‘신’들이 귀신족이 자신에 의해 멸망하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까?’ “왜 그래, 조상님? 문제라도 있어? 왜 그렇게 표정이 심각하신 거야?” 분위기가 이상함을 느낀 수옥인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무 일도 아니야. 너는 저쪽 전장을 잘 지켜보고 어떤 움직임이라도 있으면 즉시 나에게 알려.” 윤구주는 고개를 저으며 정신을 집중해 다시 전법을 수리하기 시작했다. 천옥, 끝없는 산악 지대 깊은 곳에 음침하고 죽음의 기운이 감도는 어두운 산이 있었다. 하늘에서 보면 그 산은 마치 해골처럼 무섭게 보였다. 이 ‘해골' 모양의 산은 바로 귀신족의 대영이었고 이 종족의 마지막 거주지인 귀산이었다. “죽여라!” 산 위에서는 함성이 귀를 찢을 듯했다. 십만 대군이 각기 전장을 이끌며 산을 공격해 귀신족을 상대로 마지막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는 귀신족 수련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인간 전사들이 감히 신계로 들어왔다는 것, 특히 단독 군대가 이렇게나 강한 기세를 보인다는 것이었다. 수옥인의 투영이 바로 이 귀산에 있었다. 그는 수백 미터 상공에 떠서 전장 전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특히 이 인간 대군이 지닌 군대의 살벌한 기운은 그를 놀라게 했다. “천옥은 비록 곤륜 구역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신계로 간주한다. 이곳은 인간계가 아니다. 신조차도 인간계에 가면 적응하기 어려울 텐데 이들은 어떻게 천지의 영기에 영향을 받지 않는 걸까?” 수옥인은 이곳의 격렬한 천지의 영기가 생명체가 살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극도로 불안정한 영기는 쉽게 사람의 정신을 붕괴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도대체 어떤 훈련을 통해 이 군대가 이렇게 무적의 의지를 갖게 된 것일까?’ 수옥인은 이 순간 앞에 진정한 무서운 아수라 지옥이 있다고 해도 이 인간 전사들은 두려움 없이
“할아버지, 이건 제가 자초한 거예요. 설령 오빠가 제가 오빠를 배신한 걸 신경 쓰지 않는다 해도 제가 오빠의 부하 장군과 병사들을 억울하게 해쳤다는 것만으로도 오빠는 저를 용서할 수 없을 거예요. 이런 말은 소용없어요. 지난 일은 지나간 일이에요. 가끔 추억하는 것도 좋지만 그 추억에만 매달려서는 안 돼요. 오빠는 이미 천옥에 들어갔을 거예요. 이제쯤이면 선우진웅을 처단했겠죠. 잘됐네요. 선우진웅이 임세현을 죽였고 윤구주가 선우진웅을 죽였으니 임세현의 원수를 갚은 셈이에요. 이 화진을 어지럽힌 대적을 처단했으니 임세현도 죽어서 눈을 감을 수 있을 거예요.” 문아름의 눈에는 음흉한 눈빛이 번뜩였다. 모든 것이 그녀의 완벽한 계획 속에 있었다. 문창정은 할 말을 잃었다. ‘또 윤구주가 영웅이 되게 했구나.’ “얘야, 지금 귀신족은 진동왕 하나도 막기 힘들어하고 있어. 그 십만 대군은 귀신족을 개죽이듯 죽이고 있지. 설령 곤륜 구역에서 강자를 보낸다 해도 곤륜 구역의 성격상 칼이 목에 닿기 전에는 절대 상황이 얼마나 급박한지 깨닫지 못해. 보낸 사람은 윤구주에게 밥이 될 뿐일 거야.” 문창정이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문아름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제가 다른 계획을 준비했어요. 이미 한 명의 사사를 보냈어요. 이번에는 윤구주를 죽이지 못하더라도 천옥에 가둘 거예요. 일 년만 가두면 오빠가 나왔을 때는 이미 모든 게 늦은 뒤일 거예요.” “오? 만약 가두지 못한다면? 만약 윤구주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온다면?” 문창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 더 좋아요. 나오려면 윤구주는 정원을 희생해야 할 거예요. 한 사람의 힘으로 천재를 이겨내야 하죠. 나와도 거의 폐인이 될 거예요. 그때 제가 다시 계획을 세워 오빠를 천인 오쇠로 만들고 종문 동맹이 나서 오빠를 몰락시키면 되죠! 저는 오빠가 몰락하는 장면을 기록해 모든 화진 사람에게 영웅이 되는 것의 결말이 어떤 건지 보여주겠어요!” 이 말을 들은 문창정은 손녀의 계획을 짐작했다. 윤
화진의 국경에는 광활한 산맥 끝없이 펼쳐져 있다. 추운 겨울이 찾아왔고 눈이 산을 뒤덮었다. 문아름은 산꼭대기에 앉아 고대의 거문고를 어루만졌다. 그녀의 마음은 어느새 옛날로 돌아갔다. 화진 제일의 교활한 여자라 불리며 음흉하고 독한 성격으로 유명한 그녀였지만 지금 그녀의 눈에는 따스함이 가득했다. 문창정이 눈길을 밟으며 다가와 문아름에게 순백의 겉옷을 걸쳐주었다. “날이 추워졌으니 몸을 따뜻하게 해.” 문창정은 걱정스럽게 말했다. 문아름이 반응이 없자 그녀의 정신이 이곳에 있지 않음을 알았다. 그는 거문고를 한 번 보고는 모든 것을 깨달았다. “또 그 사람을 생각하는구나. 아직도 그 사람을 잊지 못했어.” 문창정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 말을 듣고 문아름은 정신을 차렸다. “이 거문고는 그 사람이 저에게 준 거예요. 그때 저는 국방부 참모로 남부 왜구의 난을 담당했고 국주를 위해 계책을 내놓곤 했죠. 그 사람도 그때 막 중령으로 진급했을 때였어요. 고작 한 명의 단장에 불과했죠. 할아버지가 직접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 문씨 가문의 딸을 얻으려면 최소한 장군은 되어야 한다고 말했던 것도 기억나요. 그 후, 그 사람은 혼자 왜적의 대영으로 쳐들어가 화진 남부를 어지럽히던 왜적의 수뇌부를 전멸시켰어요. 그 공로로 소장으로 진급했고 화진에서 가장 젊은 장군이 되었죠. 하지만 할아버지, 그거 알아요? 그 사람이 장군이 된 후에도 국주가 준비한 경축 연회에 참석하지 않고 밤새도록 서울로 날아가 재상부에 잠입해 육도진의 가보인 이 거문고를 훔쳐 와 저를 만났어요.” 이 말을 하며 문아름은 입을 가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육도진은 화가 단단히 났어요. 그 늙은이도 고집이 세서 구주 오빠를 처벌하려고 했어요. 구주 오빠는 어떤 사람인데요. 저를 위해 훔치고 빼앗아도 이치에 맞지 않음을 알면서도 육 우상을 쳐다보지 않았어. 이 일이 너무 커져 결국 국주가 직접 나서서 중재했죠.” 이 말을 듣고 문창정은 고개를 저었다. “국주가 나선 건 겉보
“그래, 내 부하인 네 명의 군신 중에서 현모가 왕실과 가장 가까운 관계야. 임세현 선배가 현모를 구한 것도 예상했던 일이지. 만약 사해에서의 전투에서 내가 정말로 죽었다면 왕실은 다른 세 명의 군신을 움직일 수 없어서 현모를 대장으로 삼아 국주를 보필했을 거야.” 윤구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말하자면 네 부하인 현모는 정말 운이 좋은 놈이야. 행운은 불행을 따라오는 법이지. 임세현이 현모를 가르쳐 구오 지존 경지에 이르게 했고 이 천옥에서 평생의 철학을 전수했어. 그 노인은 자신의 경험과 깨달음까지 전해주어서 현모가 구오 지존 경지에 이를 수 있었던 거야!” 수옥인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말을 나누는 사이에 천옥의 전법 중심에 도착했다. 전법은 수백 개의 법기로 구성되어 있다. 수만 개의 부적이 연결되어 대진을 이루고 있었다. 수옥인은 중심에 앉아 전법을 안정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윤구주는 도착하자마자 진기의 흐름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사악한 기운이 침투한 것이 분명했다. 잠시 관찰한 후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했다. “결국 문씨 가문이 무력으로 전법을 깨뜨려서 전법이 손상된 거로군. 곤륜 구역의 이 자식들, 이렇게 큰 전법을 만들어 놓고는 전법의 비밀을 철저히 감추고 있어. 같은 곤륜 구역 출신인데도 이렇게 경계하는 걸 보니 대체 무슨 비밀이 있는 거지?” 윤구주는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조상님, 그런 건 나도 잘 모르겠어. 내 위치에서는 그런 걸 알 자격도 없어. 어쨌든 곤륜 구역은 예전부터 그랬지. 아무도 진정으로 곤륜 구역을 통일할 수 없었어. 잠시 딴소리를 하자면 예전에 일이 너무 커졌었어. 천술을 남용하고 천지의 기운이 혼란에 빠져 모두가 고통받는 것을 막기 위해 봉신방을 만들어 인간계와 신계를 나눈 거야.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이 세상이 얼마나 혼란스러웠을지 상상이 안 가.” 수옥인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윤구주는 이 말을 듣고 더욱 불쾌해졌다. 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지만 수옥인에
수옥인은 천옥 전법의 핵심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며 농담 식으로 말했다. “조상님, 아까 그 군신은 정말 인재 중의 인재네.” 윤구주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이 감옥 지기 녀석, 나를 빗대어 욕하는 건가?’ 수옥인은 재빨리 손을 저으며 말했다. “조상님을 욕하는 거 아니야. 나는 그저 현모가 몸집은 커서 문신처럼 생겼는데 얼굴은 여자처럼 고와서 정말 이상하다는 뜻이었어.” 윤구주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너희 곤륜 구역 출신들은 온실 속에서 자라 고생을 모르니 세상사에 대해 알 턱이 없지. 현모는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림받아 쓰레기통에 버려졌다가 착한 사람이 발견해 고아원으로 보냈지. 조금 자라서는 입양을 갔지만 노역을 시키거나 학대를 당하기 일쑤였어. 여러 가정을 전전했지만 어느 집에서도 사람대우를 받지 못했지. 결국 좋은 집에 입양되었는데 그 집은 장사를 해서 재산이 많았고 그를 친자식처럼 대해주었어. 하지만 그 집안은 지역의 문벌에게 모함을 받아 집안이 망했지. 현모는 그 집안의 딸을 데리고 도망쳐 방랑하다가 서로 정이 들었어. 하지만 고통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어. 문벌이 그들을 찾아냈고 그 집안의 아들이 현모의 눈앞에서 그의 유일한 가족을 능욕하고 죽였어. 현모도 폭행을 당하고 폐인이 되어 거리의 거지가 되었지.” 현모가 겪은 이런 고통은 윤구주도 겪어봤기 때문에 그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수옥인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이걸 세속을 벗어난다고 하지. 곤륜 구역에서 신규를 어겨 가장 무거운 벌을 받으면 신격을 깨뜨려 인간으로 강등당하는 거야.” 윤구주는 어이없어했다. ‘정말 말이 통하지 않는구나.’ “그럼 그 후는 어땠어? 거지가 어떻게 부하로 들어가 4대 군신까지 오를 수 있었지?” 현모는 비록 군신 중 가장 서열이 낮지만 우물 속의 용도 용이었다. 꿩이 아무리 귀해도 봉황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다. ‘윤구주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 어떻게 구주왕의 부하가 되었을까?’ “이런
“현모, 진짜로 잘못이 있다면 그건 내 잘못이야. 내가 처음에 너를 남부로 배정했을 때 군령을 내렸잖아. 누가 무슨 일이 생기든, 하늘이 무너져도 남부에 있어야 한다고.” 윤구주가 말했다. 수옥인은 곁에서 귀를 기울이며 듣고 있었다. 윤구주는 좋은 말로 달래고 있는 것이었다. 그에게는 매우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윤구주가 사람을 달랠 줄도 알다니?’ 하지만 윤구주가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현모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윤구주는 엄격하게 꾸짖었다. “현모, 네 군직을 박탈하고 대장 계급을 빼앗을 테니 공을 세워 죄를 갚아!” 말을 마친 윤구주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작은 소리로 물었다. “이렇게 하는 게 어때? 어쨌든 난 네 상관인데 내 체면을 좀 봐줘.” 이 말을 듣고서야 현모는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구주왕님, 이렇게 해야만 제가 국사를 내려놓고 구주왕님의 곁에 머물며 전심으로 구주왕님을 위해 일할 수 있습니다.” 군직을 잃고 자유의 몸이 되었으니 이제 무슨 일이 생기면 현모가 윤구주를 해치려는 자들과 목숨을 걸고 싸울 것이다. “알았어, 내가 너를 모르겠어?” 윤구주는 앞으로 나아가 현모를 토닥였다. 그리고 선우진웅을 가리켰다. “공을 세워 죄를 갚고 싶다면 선우진웅부터 처리해. 저놈의 목은 네게 맡길게. 어휴, 사해 사변으로 너까지 연루되어 억울하게 고생했구나.” 현모의 시선이 선우진웅에게 집중되자 얼음처럼 차가운 엄청난 살기가 느껴졌다. 선우진웅은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겁에 질렸다. “와우, 그런 생각을 했구나. 이 늙은 놈은 화진의 큰 원수야. 선우진웅을 처단한 공은 절대 작지 않을 거야. 이 늙은 놈은 그에게 맡길게. 조상님은 내가 할 일을 좀 찾아줄까?” 수옥인은 윤구주 앞을 떠다니며 약을 올렸다. 윤구주가 말하기 전에 수옥인이 먼저 말했다. “그 천옥 전법에 문제가 생겼어. 천옥에 문제가 생기면 내가 책임을 져야 해. 내가 길을 안내해 준 걸 생각해서 좀
한 마리의 절세 살수가 깨어났다. 살기가 가득 찼고 천상의 이변이 일어났다. 천옥의 창문을 통해 바라본 밖의 하늘은 짙은 먹구름으로 뒤덮였다. 그 먹구름은 네 발 달린 천수의 형상을 이루었고 네 발로 천지를 밟고 있어 꽤 무서웠다. “출관했군.” 윤구주는 담담하게 미소를 지었다. ‘역시나 나를 실망하게 하지 않네.’ 키가 2미터 20센티미터 정도 되는 한 사람이 동굴에서 걸어 나왔다. 온몸이 푸른색이며 폭발적인 근육은 현철처럼 견고하고 부서지지 않을 듯했다. 이 사람은 단지 모습만 봐도 사람을 겁먹게 할 만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다소 청초했다. 그리고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에는 약간의 음기가 느껴졌다. 그 사람은 한 걸음 내디뎌 동굴을 빠져나오더니 ‘쿵’ 소리와 함께 백 미터 절벽에서 떨어졌다. 그는 땅에 부딪혀 수 미터의 큰 구멍을 냈다. 이 정도 높이에서 떨어지면 살아있을 사람이 없다. 하지만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구덩이에서 세 걸음 만에 빠르게 걸어 나왔다. 그가 지나가며 일으킨 비린내 나는 바람과 그 살기는 숨을 쉬기조차 힘들게 했다. 천옥 전법의 핵심에 있던 수옥인도 너무 놀라서 바지에 지릴 뻔했다. “젠장! 윤구주의 부하들은 다 살수야. 윤구주만이 이런 괴물들을 다룰 수 있어.” 수옥인이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쿵!’ 그 사람은 윤구주 앞에 멈추었다. 이 거인과 비교하자면 윤구주는 키나 체형 모두 그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보였고 약해 보였다. 심지어 기세조차 윤구주를 압도했다. 하지만 그렇게 서 있기만 해도 사람을 겁먹게 할 만한 살수가 윤구주를 보자 주저 없이 한쪽 무릎을 꿇어 경의를 표했다. “구주왕님! 현모가 무능하여 왕께서 직접 나서셔야 했습니다. 제가 발목을 잡았어요.” 현모, 윤구주의 부하인 4대 군신. 전에 윤구주가 왕으로 봉해졌을 때 현모는 화진 남부 전역의 부총장으로 승진하여 대장 계급을 달았다. 그리고 남양 제국들을 견제하는 임무를 맡았다. 하지만 윤구주가 사고를 당한 후 현모도 연
“네가 하늘의 뜻을 거슬러 오늘 나를 죽인다면 곤륜 구역이 너를 천옥에서 살려둘 것 같아?” 깨어난 선우진웅은 곤륜 구역과 문씨 가문을 향해 욕을 퍼부었다. “곤륜 구역과 문씨 가문은 네가 욕할 대상이 아니야. 지금 당장 엎드려 반성해!” 윤구주는 손을 내리쳤다. 선우진웅은 전성기 때도 윤구주에게 제압을 당했던 터라 지금 같은 상태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었다. 그는 쿵 소리와 함께 땅에 얼굴을 박았다. “날 죽이진 말아줘! 복수를 원하는 거 아니었어? 난 문씨 가문이 무슨 꿍꿍이인지 알고 있어. 저 빌어먹을 문씨 가문이 너를 죽인 후 우리 부성국이 화진에 진출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어. 이제 보니 모두 거짓말이었어! 문아름은 이미 우리 부성국 군사 정권의 절반을 장악했어. 그 여자는 일석이조를 노리고 있지. 너를 죽이고 나를 제거해 우리 부성국의 국운을 빼앗으려는 거야. 내 목숨만 살려줘. 나도 어느 정도 막강한 실력을 갖췄으니 내가 너의 복수를 도울 수 있어.” 선우진웅은 갑자기 태도를 바꿔 윤구주에게 목숨을 구걸했다. 그 말을 듣고 윤구주는 웃음을 터뜨렸다. “너희 부성국은 무사도를 숭상한다며? 항복을 수치로 여기지 않아? 왜 네놈의 의지는 이렇게 약해? 아직 죽이지도 않았는데 벌써 겁을 먹었네? 이미 없는 목숨인 주제에 아직도 죽음을 두려워하다니. 넌 원래부터 겁쟁이였어. 약한 자를 괴롭히고 강한 자를 두려워하지. 자기 자신도 지키지 못하는 것이 바로 너희 부성국의 상류층이다. 게다가 부성국은 백 년 전에 전패한 이후로 국운이 남아있기나 해? 온 세상이 너희 부성국이 어떤 놈들인지 알고 있어. 화진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느 나라도 너희를 용납하지 않을 거야. 한 나라가 이 지경까지 몰려 세상의 멸시를 받는 건 너희 부성국뿐일 거야.” 선우진웅은 치욕스러웠지만 목숨을 걸고 분노를 억눌렀다. 하지만 윤구주가 말을 마치고 검의 기운을 거두며 더 이상 그를 공격하지 않자 그의 표정이 밝아졌다. ‘흥, 말로는 그럴듯하게 하지만 속으로는 다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