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찾으십니까?”최씨 성을 가진 남자가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쓸데없는 자식들은 꺼져!”그 말에 하인들은 깜짝 놀랐다. 바로 그때, 소청하 부부와 소채은이 마침 안뜰에서 걸어 나왔다. 그러고는 한 무리 사람들이 정원에 있는 것을 보고 소청하가 눈썹을 찌푸렸다.“무슨 일입니까?”그는 이렇게 말하며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갔다.소채은도 뭔가 찜찜해 빠른 걸음으로 서둘러 아버지를 쫓아갔다.“주인님!”소청하가 모습을 드러내자 이쪽 하인들이 얼른 소리를 질렀다.뒤따라 진성 도관의 무리도 일제히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젠장! 저놈이야! 선배님, 이 사람들이 우리를 다치게 했습니다!”최씨 성을 가진 남자는 소채은을 보자마자 바로 손가락으로 가리켰다.그 소리에 소청하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망했다! 이 사람들 진성 도관 사람들이잖아?!”그러자 소채은의 안색도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상대방은 원수를 갚으러 온 것은 분명했으니 말이다.진성 도관의 원지훈은 소청하 부부와 소채은을 본 후 안색이 차가워졌다.“고작 이것들이 너희를 그렇게 다치게 했다고?”“아니요, 선배님! 우리를 다치게 한 건 저자들과 함께 있던 한 젊은 녀석입니다!”최 선배라는 사람이 서둘러 말했다.“그래? 그럼 그자는 지금 어디 있지?”이윽고 최씨 성을 가진 제자가 나서서 성난 목소리로 소청하를 향해 말했다.“그 자식, 그 짐승같이 자식 빨리 내놔! 안 그러면 엄청난 후과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그 말에 소청하는 지레 겁을 먹고 말았다.그때, 소채은이 직접 나섰다.“뭘 하시려는 거죠?”“뭘 할 거냐고?”원지훈은 그녀를 보며 살짝 비웃었다.“너희들이 우리 진성 도관 사람들을 때리고 또 우리 도관을 모욕했는데, 우리가 뭘 더 할 수 있겠어? 굳이 물어봐야 아나?”그러자 소채은이 말했다.“헛소리! 분명 진성 도관 그쪽 사람들이 먼저 저희한테 시비를 건 겁니다. 그런데도 감히 와서 따져요? 이게 도리에 맞나요?”“도리? 미안하지만 우리 무인들은
소채은이 윤구주를 내놓으려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원지훈은 어두운 눈빛으로 말했다.“이쁜이, 충고하겠는데 순순히 사람 내놓는 게 좋을 거야. 때가 돼서 우리가 안 봐줬다고 탓하지 말고.”소청하는 상대방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고 재빨리 소채은을 끌어당기면서 말했다.“채은아, 빨리 그 윤씨 자식 넘겨줘!”하지만 누가 알았겠는가.소채은은 소청하를 밀치며 화가 난 듯 눈시울을 붉혔다.“아빠, 도대체 양심이 있으세요? 구주가 우리 집을 얼마나 많이 도와줬는데, 어떻게 아빠는 이렇게 대하실 수 있어요?”“내가 걔를 어떻게 대했다고 그래? 걔가 먼저 사람 때린 걸 왜 내 탓을 하냐고!”소청하는 뻔뻔스럽게 말했다.그 모습에 소채은은 풀이 죽어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두려워하지 않고 고개를 들어 진성 도관의 제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다시 말하지만 오늘 당신들이 나를 때려죽인다 해도, 나는 구주를 내놓지 않을 겁니다.”“허! 입만 살아가지고는! 대체 그 배짱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자고! 넷째야, 저년 뺨부터 때려라!”원지훈의 말이 떨어지자, 진성 도관의 한 제자가 직접 성큼성큼 걸어 나와 손바닥을 들어 보이며 소채은의 예쁘장한 얼굴을 향해 날렸다.그렇게 그의 손이 소채은의 얼굴에 떨어지려는 찰나에 갑자기 뼈를 에는 듯 한 차가운 소리가 들려왔다.“누가 감히 죽고 싶어서 내 여자를 건드려?”고함과 함께 검은 그림자가 마치 귀신처럼 소채은의 몸 앞에 나타났다.윤구주가 돌아온 것이다.그가 나타나자, 소채은을 향해 손을 내밀던 진정 도관의 제자가 어리둥절해졌다. 이윽고 남자가 손을 거두기도 전에 그의 얼굴 위로 손바닥이 날아왔다.짝!처량한 비명 속에서, 조금 전 손찌검을 하려던 그 진성 도관의 제자가 사방에서 피를 뿜어내며 공중으로 날아갔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었다.어? 그 장면을 본 원지훈과 다른 제자들은 전부 한기를 느꼈다.윤구주는 단 한방에 진성 도관 제자를 쓰러뜨린 다음, 고개를 돌려
아무도 그의 움직임을 보지 못했다.또한, 아무도 그의 손놀림을 보지 못했다.유일하게 보이는 것은 그의 번쩍이는 그림자뿐이었고, 이후 연이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윤구주를 공격하려던 진성 도관 제자들이 하나같이 거꾸로 날아간 것이다.속도가 너무 빠른 나머지 숨 쉴 틈도 없었다.그렇게 끝나고 만 것이다.원지훈이 데리고 온 십여 명의 진성 도관 제자들은 저마다 슬프게 울부짖으며 땅에 쓰러져 있었다.바닥에 누워있는 자신의 후배들을 바라보던 원지훈의 눈동자는 갑자기 움츠러들었고 머릿속은 더욱 하얗게 되었다.유일하게 드는 생각은 바로 이것이었다.‘이게 대체 뭐야... 우리가 무슨 괴물한테 미움을 산 거야?!’윤구주는 제자들을 전부 쓰러트린 후에야 원지훈을 바라보았다.“이제 네 차례야.”원지훈은 어쩔 수 없이 뒤로 슬금슬금 물러서기 시작했다.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힌 채로 말이다.그는 마치 귀신을 본 듯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너... 너... 너는 대체 누구냐? 우리 진성 도관하고 무슨 원한 맺은 일이 있다고, 넌 왜...”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윤구주는 번쩍하더니 곧 원지훈의 앞에 나타났다.그러고는 마치 독수리가 병아리를 조르듯 한 손으로 그의 목을 움켜쥐어 공중에 띄웠다. “잘 들어, 나는 너희들이 어느 도관 출신이던, 너희들이 누구든 상관하지 않아. 한마디만 할게, 만약 다시 한번 감히 채은이를 괴롭힌다면, 그때는 정말 가만두지 않을 거야! 이만 꺼져!”차갑게 내뱉은 뒤 윤구주는 오른손을 휘저었다.이윽고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진성 도관의 수제자 원지훈은 이렇게 날아가 땅바닥에 세게 부딪히고 말았고, 청석판 바닥에는 십여 줄기의 균열이 났다!다름 아닌 진성 도관의 수제자가 당했는데, 다른 사람이라고야 어찌 더 이곳에 머무를 수 있겠는가?그들은 얼른 원지훈을 부축하더니 상갓집 개처럼 서둘러 달아났다.진성 도관 사람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윤구주는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이 순간, 소청하 부부는 그가 돌아서는 것을
소청하는 담배를 더욱 꽉 움켜잡았다.“어쨌든, 절대로 그 윤씨 자식을 우리 집에 남겨둬서는 안 돼.”“하지만, 채은이는 어떡해요?”천희수가 말했다.“안심해. 내가 우리 딸 설득할 거야.”...조용한 방안.소채은은 방에 돌아온 후부터 줄곧 이상한 눈길로 앞에 있는 윤구주를 바라보았다.그러자 윤구주도 궁금함을 참을 수 없었다.“채은아, 왜 그렇게 봐?”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시 침묵하다가, 비로소 천천히 입을 열었다.“구주야, 너 도대체 전에 뭐 하던 사람이야?”“나?”윤구주는 갑작스러운 질문을 받고 멍해졌다.“응!”“그런 건 갑자기 왜 물어봐?”윤구주는 고개를 돌려 빙긋 미소를 지으며 소채은을 바라보았다.“왜냐하면... 왜냐하면... 왜냐하면 네가 싸움을 너무 잘하니까!”“싸움?”그는 눈썹을 찌푸렸다.“응! 예를 들어 오늘 진성 도관 녀석들 말이야. 그 사람들 모두 무술을 연마한 사람인데, 너 손짓 한 번으로 다 날려버렸잖아.”소채은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전에는 계속 네가 자동차 엔지니어라고 생각했거든? 근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왠지 영화에 나오는, 보스들을 지키는 경호원 같아!”“경호원”이라는 말을 듣고 윤구주는 하마터면 물을 뿜을 뻔했다.“구주야, 너 예전에 경호원이었어? 검은 바바리코트랑 막 입고? 총 들고, 응? 늠름하고 멋있는 그런 경호원?”모든 소녀들은 마음속에 영웅의 꿈을 가지고 있다. 물론 소채은도 예외가 아니었다.어렸을 때 영화를 보면서 그녀는 자신의 남자친구가 영화 속 경호원처럼 위풍당당하기를 바랐다.그런데 지금 윤구주가 이렇게 대단한 것을 보니, 소채은이 호기심이 안 발동할 수가 있겠는가.윤구주가 웃으며 말했다.“아니, 나는 경호원을 한 적이 없어!”“그런데 왜 그렇게 강해? 왜 싸움을 잘해?”윤구주는 당연히 그녀에게 자신이 화진의 가장 젊은 구주 천왕이라는 것을 알리지 않을 것이다!게다가 열일곱 살에 신급 경지에, 열아홉 살에 거의 천하무적이 되었다는 사실은 더더욱
“이렇게 많은 애들이 애송이한테 얻어맞아? 너희들이 그러고도 나를 아직 사부님이라 불러? 양심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화를 내는 사람은 다름 아닌 진성 도관의 관장, 양진성이었다.분노에 찬 그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얼굴은 모두 자줏빛으로 변했고, 계속해서 제자들을 꾸짖고 있었다.홀 안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한 무리의 제자들, 그들은 놀랍게도 바로 몇 시간 전에 윤구주에게 호되게 혼났던 그 남자들이었다. “사부님 죄송합니다!”“하지만 그 자식 정말 실력이 엄청난 자라 저희가 상대할 수 없었습니다!”제자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원지훈이 땅에 무릎을 꿇고 말했다.“아직도 그딴 말을 할 체면이 있는 거야? 풋내기인 애송이가 강해봤자 얼마나 강하다고, 이 사부님보다 더 강하단 말이냐?”말을 마치자마자 양진성이 발을 굴렀다. 그러자 앞에 있던 청석판 바닥이 쩍 소리를 내며 바로 산산조각이 났다. 원지훈은 이를 보고 재빨리 말했다.“아니, 아니요, 어찌 그 애송이 자식을 사부님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그렇다면 어서 가자. 내가 직접 가서 한번 그 개자식을 봐야겠으니까. 감히 내 진성 도관을 모욕하다니, 얼마나 실력 있는 자식인지 한번 봐야겠구나!”양진성은 직접 윤구주를 찾아가 손을 봐주려고 했다.바로 이때였다.한 소리가 갑자기 입구에서 들려왔다.“그럴 필요 없습니다. 제가 왔으니까요!”그러자 진성 도관의 사람들이 전부 어리둥절해졌다.“누구요?”제자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돌렸다.그러고 나서 보니 입구 쪽에 아주 잘생기고 더할 나위 없이 패기 있어 보이는 한 그림자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도관에 갑자기 나타난 한 남자 때문에 사람들은 전부 멍해지고 말았다.원지훈은 더욱 그러했다. 조금 전 윤구주에게 맞은 그 몇몇 제자들도 마찬가지로 말이다!“맙소사! 저 사람은!”원지훈은 놀라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자세히 가서 보니, 입구에 서 있는 사람이 바로 윤구주였다.그는 마치 귀신처럼 갑자기 진성 도관에 나타났다.윤구주를 알지 못하는
윤구주가 제멋대로 진성 도관에 침입한 것을 보고, 30년 동안 형의권을 연마해 온 양진성은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들끓는 것 같았다.“얘야, 기회를 주마. 순순히 무릎을 꿇고 내 제자에게 사과해. 그렇지 않으면 오늘 너는 서서 나갈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할 거다.”뒤이어 그는 앞에 있는 마호가니 탁자 위를 힘껏 눌렀다.그러자 딱딱한 마호가니 탁자에 곧장 깊이 손자국이 찍혔다. ‘음, 이 자의 실력도 만만치는 않군.’윤구주가 피식 웃었다.“내가 사과하지 않는다면?”양진성은 어두운 기운을 한껏 뽐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그럼 너 스스로가 죽음을 자초한 거나 다름없지.”한 마디 고함이 울리자 양진성의 그림자가 일렁였다.이내 호랑이와 표범처럼 빠른 그림자가 윤구주를 향해 돌진했고, 용처럼 휘몰아치는 주먹이 그를 향해 날아갔다.양진성의 권법을 바라보며, 윤구주는 두 손을 등에 지고 서서, 발걸음만 살짝 움직이더니, 쉽게 그의 권법을 피했다.한 수 빗나가자 양진성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더니 다시 형의권을 선보이려 했다.하지만 어쩐 일인지 연속 열댓 번을 시도해도 주먹은 그의 옷자락 끝마저 스치지 못했다. 오히려 양진성 본인이 더욱 지쳐갈 뿐.“이 자식, 분명 가만히 서 있는 것 같은데 왜 못 맞추는 거지?”양진성은 어쨌든 많은 제자들을 이끄는 사부이다.게다가 30년 동안 형의권을 연마해 온 그는, 비록 대단한 고수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남을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은 있었다.하지만 현재 이게 무슨 상황인가? 열 가지가 넘는 권법을 연속 사용해도 옷자락마저 스치지 못하니! 그야말로 치욕이 아닐 수 없었다!“인마, 재주가 있으면 꼼짝 마, 정정당당하게 비겨야지 뭐 하는 거야?!”양진성은 빨갛게 달아오른 눈으로 윤구주를 바라보며 말했다.“정말 내가 가만히 있었으면 좋겠어요?”윤구주가 피식 웃었다.“허튼소리 작작 해. 할 수나 있고?”“그럼 만족시켜 드리도록 하죠.”뒤이어 윤구주는 정말 뒷짐을 진 채 가만히 서 있었다.그가 움직이지
윤구주는 양진성의 두 팔을 부러뜨린 후에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또 해보시겠어요?”“아, 아니요!!! 안 하겠습니다. 패배를 인정합니다!”양진성은 심하게 떨면서 대답했다.“패배를 인정했으니,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당신은 제자를 감싸고 권세를 믿고 남을 업신여겼지요, 이제 당신의 죄를 알만합니까?”“아... 알만합니다!”고통스러움에 왈칵 눈물을 쏟을 것처럼 보이는 양진성이었다.“그럼 제가 팔을 부러뜨린 것에 대해, 무슨 원망이라도 있습니까?”윤구주가 다시 물었다.“어... 없습니다! 전혀요!”그러자 윤구주가 한껏 차가워진 말투로 말했다.“눈치는 있군요. 잘 들어요, 앞으로 만약 제자들이 감히 무력으로 남을 괴롭히거나 감히 소씨 가문을 괴롭힌다면, 그 대가는 두 팔을 부러뜨리는 것으로 절대 끝나지 않을 겁니다.”이윽고 그는 휙 돌아섰다.“잠깐만요!”윤구주가 가려고 하는 것을 보고 양진성이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왜요? 불복하십니까?”윤구주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물었다.“아니, 아니요! 선배님께서 오해하신 겁니다! 불복하는 게 아니라 선배님께 물어보려고 그랬어요. 도대체 어디에서 온 분이십니까? 그리고... 실례긴 하나 혹시 선배님은 대무사이십니까?”그러자 윤구주가 피식 웃었다.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오른손으로 앞을 휘휘 그었다. 그러자 육안으로 볼 수 있듯이 흰 커튼 사이로 웬 도검이 불쑥 튀어나와 진성 도관의 정중앙에 있는 정원의 담벼락에 꽂혔다. 이윽고 우르릉하며 단단한 벽이 순간 윤구주의 도검에 의해 갈라지더니 긴 칼자국이 남았다.이 모습에 양진성은 어리둥절 해지고 말았고, 뒤에 있는 제자들도 마치 귀신을 보듯 윤구주를 바라보았다.“기화형으로 검을 다루는 것이야! 하늘이시여! 이분이 전설의 무술 대가님이시구나!”양진성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갈라진 벽을 바라보았고 다리가 나른해져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그렇게 윤구주는 성큼성큼 진성 도관을 떠났다.그가 떠나는 것을 바라보며 두 손이 부러진 양진성은 서둘
“좋아! 선택해! 이 엄마, 아빠를 택할 것인지 아니면 그 윤씨 자식을 택할 것인지!”소청하는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었다.“아빠, 엄마, 제발 저를 강요하지 마세요!”그러나 소청하의 반응은 시큰둥했다.그는 오늘 윤구주를 반드시 쫓아내겠다고 다짐한 듯 보였다.소채은이 이렇게 압박당하는 것을 보고 윤구주는 결국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구주야?”그가 들어온 것을 보고 소채은은 조금 놀라 하며 붉고 아름다운 눈동자로 윤구주를 바라보았다.덩달아 소청하 부부의 시선도 윤구주에게 향했고, 그들은 뒤로 한 걸음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그는 안으로 들어온 후에도 아무 말 하지 않고, 그저 잠시 안쓰러운 얼굴로 소채은을 바라보았다.“채은아, 어머니 아버지 말씀 들어. 나 잠시 이 집 떠나야 할 것 같아. 이미 오래 신세 지기도 했잖아.”소채은은 그 말을 듣고 펄쩍 뛰었다.“구주야,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정말 떠나려고?”그러자 윤구주는 쓴웃음을 지었다. 소채은을 위해서라면 이렇게 하는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응!”그는 고개를 끄덕였다.“네가 떠나면 나는 어떡해? 우리 약속했잖아. 계속 같이 있고 안 떨어지기로.”소채은이 눈시울을 붉히자 윤구주는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걱정 마, 잠시 나가 사는 것뿐이니까. 한평생 너를 안 보는 것도 아닌데 왜 그래!”“그래도...”그는 고개를 돌려 소청하 부부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아버님, 그동안 귀찮게 해서 죄송합니다! 걱정 마세요, 이제부터 다시는 이 저택에 발을 들이지 않을 테니, 아버님 어머님도 채은이 그만 압박해주셨으면 합니다.”윤구주의 말을 듣고 소청하 부부는 못내 기뻐하기 시작했다.“됐어, 이만 가야겠다. 채은아, 안녕!”곧이어 윤구주는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그가 정말 떠나려 하자, 소채은은 눈물을 흘리며 서둘러 윤구주를 끌어당겼다.“구주야, 어디 가려고?”윤구주가 부드러운 말투로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아무 데나 살 수 있는데 찾아보려고!”“하지만
땅 위에는, 이전까지 남아 있던 설국 병사들의 잔해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왜냐하면, 윤구주의 화련 금안은 단순히 영혼만 태우는 것이 아니라, 육체마저 완전히 소멸시켜 뼛조각 하나조차 남기지 않기 때문이다.지금 상황이 바로 그랬다.수백 명에 달하던 병사들은 윤구주의 불꽃에 의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얼어붙은 대지 위, 곳곳에 널브러진 시체들과 전멸된 병사들의 흔적을 보며, 세나미는 얼음과 눈으로 뒤덮인 전장에서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한편, 모든 적을 처치한 윤구주는 허공을 가르며 천천히 내려왔다.그가 땅에 닿자, 세나미가 분노로 가득 찬 얼굴로 그에게 달려들었다.“악마야!”“넌 정말 악마야!”“왜 이렇게 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죽인 거야!”붉은 머리칼이 바람에 흩날리는 세나미는 거의 발광한 상태로 윤구주의 가슴팍을 두드리기 시작했다.하지만, 그녀가 손을 뻗자마자 윤구주는 단호하게 손바닥을 휘둘러 그녀의 뺨을 가격했다.펑!압도적인 힘에 세나미는 그 자리에서 날아가 눈 위를 여러 번 구르다 겨우 멈춰 섰다.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에는 선명한 다섯 개의 핏빛 손자국이 새겨져 있었다.“어리석은 년!”윤구주는 차갑게 경고했다.“네 도덕 따위로 내 국가의 존엄을 모욕하지 마라.”윤구주의 서늘하고 단호한 목소리가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울려 퍼졌다.그는 앞에 쓰러져 있는 세나미를 무표정하게 내려다보았다.그렇다.이것은 단순한 전투가 아니었다.윤구주는 하진을 대표했고, 세나미는 설국의 일원이었다.세나미에게는 윤구주의 행위가 지나친 학살처럼 보였을지 모른다.그러나 정말로 그럴까?만약 두 나라가 전쟁에 돌입한다면, 설국 병사들이 죽일 대상은 하진의 병사들, 나아가 무고한 백성들이 아니었겠는가?윤구주의 행위가 과연 잘못이라 할 수 있을까?아니, 전혀 잘못이 아니다.세나미는 차디찬 눈밭에 무릎을 꿇은 채 하늘에서 쏟아지는 눈과 얼어붙은 시체들을 바라보며 멍하니 눈물을 흘렸다.그녀는 지금껏 충성과 애국, 그리고 설국을 지키는 것이 옳다
“명중했습니다! 장군, 우리가 저놈을 맞췄습니다!”탱크병 한 명이 뿌연 연기로 가득 찬 하늘을 바라보며 흥분된 목소리로 외쳤다. 주변의 설국 병사들도 환호를 터뜨렸다.“그 하진 놈이 드디어 죽었어요!”“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결국 우리 탱크 공격을 버티지 못했어요!”모두가 윤구주가 죽었다고 확신했다.심지어 위룡 장군도, 연기 자욱한 하늘을 보며 만족스럽게 웃음을 지었다.“네 운이 다한 거다.”그는 그렇게 말하며 세나미 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아가씨, 드디어 그 끔찍한 하진 놈을 처치했습니다. 이제 안전합니다!”그러나 세나미는 위룡 장군의 말을 들은 것 같지 않았다.그녀는 넓게 뜬 눈으로 연기가 자욱한 하늘만 응시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정말... 죽은 걸까요?”위룡 장군은 세나미의 멍한 표정을 보고는 다시 말을 건넸다.“아가씨, 걱정 마십시오! 아무리 신급 강자라고 해도, 우리 탱크의 포격을 버틸 수는 없습니다.”그 순간이었다.하늘을 가득 메웠던 검은 연기가 갑자기 소용돌이치며 흔들리기 시작했다!이어, 연기 속에서 믿을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위압감이 뿜어져 나왔다.세나미는 본능적으로 비명을 질렀다.“이럴 수가! 윤구주가... 아직 살아 있어요!”“뭐라고요?”위룡 장군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그리고 그 순간, 검은 연기로 가득했던 하늘이 강한 바람에 휩쓸리며 맑아지기 시작했다.검은 연기가 흩어진 자리에서, 굉음처럼 울려 퍼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나를 죽인다고? 설국의 벌레들이 감히 나를 넘본다고?”연기가 걷히며 드러난 윤구주의 모습은 한마디로 압도적이었다.그의 온몸이 황금빛 광막에 둘러싸여 있었다.검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고, 허공에 우뚝 선 그의 모습은 인간이라기보다 마치 신화 속의 마신 같았다.“하늘이시여! 그 하진 놈이 아직 살아 있다니! 이게... 이게 말이 돼?”“우리 탱크의 포탄이 분명히 저놈을 맞췄는데, 어떻게 살아 있을 수 있지?”설국 병사들은
주변의 설국 병사들은 신급이라는 단어가 들리자마자 순간 멍해졌다.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물러서려 했지만, 불행히도 이미 늦었다.허공에 우뚝 선 윤구주가 두 팔을 벌리고 사방으로 손을 내리며 외쳤다.“진역 결계, 열려라!”윤구주를 중심으로 하늘을 찌를 듯한 거대한 금빛 그물이 형성되더니, 단번에 모든 설국 병사들과 군영 전체를 뒤덮었다.결계가 펼쳐지자, 그 위압감은 숨을 쉬기도 힘들 만큼 강력했다. 그 압박은 단지 병사들뿐만 아니라, 세나미와 위룡 장군에게도 가해졌다. 마치 몸 위에 거대한 산이 얹힌 듯한 기분이었다.“하늘이시여!”“저 자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어떻게 이런 신력을 펼칠 수 있지?”사방의 설국 병사들이 모두 윤구주의 금빛 결계에 갇혀 있는 모습을 보며, 거대한 체구를 자랑하는 위룡 장군마저 두려움에 휩싸였다.하지만 그는 설국의 장군이었다. 곧 마음을 다잡고 단호하게 명령을 내렸다.“모두 겁먹지 마라! 저자는 혼자다. 우리가 모두 달려들어도 이길 수 없겠는가?”“탱크를 준비하라!”“탱크의 포격이라면 저놈이 버텨낼 리 없다!”위룡 장군의 명령과 함께 설국의 탱크 세 대가 일제히 움직였다. 검은 포신이 윤구주를 향해 하늘로 들어 올려졌다.“장군! 정말 발포하시겠습니까?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는 포격이 우리 병사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한 탱크병이 다급히 말했다.위룡 장군은 이를 악물며 단호히 답했다.“그런 건 상관없다! 오늘 이 하진 놈을 없앨 수만 있다면, 그 어떤 대가도 내가 모두 책임지겠다!”윤구주와 같은 신급 강자를 상대하려면 대포와 같은 대형 화력이 아니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발포하라!”“저 하진 놈을 산산조각 내버려라!”장군의 명령과 함께, 중장갑 탱크에서 강렬한 포성이 울려 퍼졌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땅이 진동하며, 두려운 속도로 날아간 포탄이 허공의 윤구주를 향했다.그러나 윤구주는 차분히 그 광경을 응시하더니,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하찮군.”그의 손에 들린
그 수염이 덥수룩한 설국 장군이 ‘나미’라는 이름을 외치자, 주변의 모든 설국 병사들은 하나같이 얼어붙었다.“세나미 아가씨?”“맙소사!”“저분이 우리 설국의 군신 세나스 각하의 따님이라고?”“게다가 설국의 여전사라니?”세나미를 바라보던 병사들 중, 그녀의 사진을 본 적 있는 몇몇은 그제야 그녀를 알아챘다.“세나미 아가씨, 대체... 어쩌다 여기 계신 겁니까?”위룡 장군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채, 세나미를 바라보았다.그러나 세나미는 차마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자신의 군대가 전멸당한 사실을, 더군다나 자신이 윤구주의 노예가 되어 생사까지 그의 손아귀에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을 수 없었다.그녀는 이렇게 말했다.“위룡 장군, 제 말을 들으세요. 당장 철수하세요. 이 사람과 싸워선 안 됩니다!”“뭐라고요?”세나미의 말에, 마치 거인 같은 위룡 장군도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세나미 아가씨,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세나미는 설명할 시간조차 없었다.“말했잖아요. 모두 철수하라고요! 싸우지 마세요!”그녀의 단호한 말을 들은 설국 장군은 더욱 혼란스러워했다. 뒤에 서 있던 수백 명의 병사들도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그들 중 몇은 속으로 생각했다.‘아니,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우리에게 저 하진인을 완벽히 포위하라고 하더니, 이제 와서 철수라니?’잠시 생각에 잠긴 위룡 장군은 이윽고 갑옷을 바로잡으며 냉랭한 눈빛을 윤구주에게로 돌렸다.그리고 그가 혼자임을 확인한 순간, 또 한 가지 깨달음에 도달했다.“혹시...”“세나미 아가씨, 들리는 말로는 아가씨의 군대가 하진의 매복에 당했다더군요. 설마, 지금 저 하진 놈에게 인질이 된 건 아니겠죠?”세나미는 목소리를 높이며 외쳤다.“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당장 철수하세요!”그녀의 단호한 반응에, 위룡 장군은 더욱 확신했다.“세나미 아가씨,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미 군신께서 전군에 아가씨의 소식을 알리셨고, 지금 군신께서 이곳으로 오고 계십니다. 그러니 안심하십시오!”
그 창에서 뿜어져 나온 은빛 광채는 압도적인 파괴의 힘을 품고 있었고, 마치 천둥처럼 수십 명의 설국 병사들을 향해 내리꽂혔다.쿵!형언할 수 없는 파괴력이 그 불운한 병사들에게 닿는 순간, 한순간에 그들의 몸이 산산조각 나며 핏물이 사방으로 튀었다.“으아악!”“악마다!”“저건 악마다!”“어서 지원군을 불러!”살아남은 몇몇 병사들은 윤구주가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동료들을 몰살시키는 모습을 보고 비명을 지르며 공포에 떨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세나미도 완전히 얼어붙었다.자신의 동포들이 순식간에 무참히 쓰러지는 광경에,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너... 대체 왜 이런 짓을 한 거야? 왜 우리 설국의 사람들을 이렇게 많이 죽였어?”세나미는 울분에 찬 목소리로 윤구주에게 외쳤다.윤구주는 차가운 눈빛으로 대답했다.“하진의 영토를 침범하고 우리 백성을 짓밟은 설국이,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이 당연하지 않나?”“이렇게 많은 사람을 죽여놓고도... 넌 응징이 두렵지 않아?”세나미는 눈이 충혈된 채로 외쳤다.그러나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윤구주는 무자비하게 그녀의 뺨을 후려쳤다.퍽!설국의 전설적 여전사로 불리던 세나미는 한순간에 눈보라 속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녀의 몸은 눈 위를 몇 바퀴 구르며 멈췄고, 입가에는 선명한 피가 흘러내렸다.“너 따위가 감히 날 훈계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윤구주는 냉소를 지으며 그녀를 내려다보았다.그에게는 그녀가 설국의 여전사든, 미래의 황후든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는 누구도 봐주지 않았다.세나미는 멍하니 눈 속에 쓰러져 있었다. 어릴 적부터 높은 지위에 있던 자신에게 그 누구도 손가락 하나 대지 않았다.하지만 지금은?윤구주의 노예가 되었을 뿐 아니라 생사마저 그에게 달린 처지가 되었음을 깨달은 순간, 그녀는 억울함과 분노에 복받쳐 눈물이 다시 쏟아졌다.윤구주는 그녀를 향해 냉정히 선언했다.“잘 들어. 하진은 침범할 수 없어. 감히 침범하는 자는 누구든 죽일 거야. 더군다나
이런 폭풍우 속에서 하늘에 생명체가 나타난다는 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하늘에는 두 개의 그림자가 선명히 보이고 있었다.그 그림자들은 금빛의 보호막에 둘러싸여 있어, 마치 신이 내려온 것 같은 광경을 연출했다.“저, 저게 뭐야?”한 눈치 빠른 설국의 초병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다급히 소리쳤다.“설마, 사람이야? 아니면 신이라도 된단 말인가?”그들 앞에서 그림자 둘은 서서히 가까워지고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그림자들은 한 남자와 한 여자였다. 남자는 비현실적으로 잘생긴 외모에 마치 천신처럼 눈부셨고, 여자는 불타는 듯한 붉은 머리와 은빛 갑옷을 입은 모습이었는데 마치 인간계를 거닐고 있는 요정을 연상케 했다.특히 그녀의 굴곡진 몸매는 한눈에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하지만 그녀는 남자의 뒤에 조용히 서서 마치 충성스러운 하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그들은 바로 하진에서 설국의 땅을 침범한 윤구주와 세나미였다.“저, 정말 사람이야?”“어서 봉화 연기를 올려! 누군가 우리 설국 진영에 침입했어!”설국의 초병들은 그들이 다가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봉화를 피우며 비상 상황을 알리기 시작했다.그때였다.어둑한 하늘 속에서 바람을 타고 움직이던 윤구주는 눈앞에 보이는 설국 군영을 내려다보며 차갑게 웃음을 지었다.“여기서 시작해 볼까.”그의 목소리는 매서운 한기처럼 날카롭게 흩어졌다.“내려간다.”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는 하늘에서 유성처럼 땅으로 떨어졌다.쾅!그의 두 발이 설국 군영의 중심에 닿는 순간, 대지가 흔들리며 군영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 듯 요동쳤다.곧이어 세나미도 그를 따라 조심스럽게 착지했다.땅에 발을 디디자마자, 세나미는 두려운 눈빛으로 윤구주를 바라보며 물었다.“너... 대체 뭘 하려는 거야?”윤구주는 미소를 머금은 채 차갑게 대답했다.“곧 알게 될 거야.”그들의 거침없는 착지가 불러온 충격에 설국의 병사들이 사방에서 몰려들기 시작했다. 수십 명의 병사들이 사방에서 그들을 에워
‘국경전’이라는 글자를 들은 순간, 붉은 머리칼의 세나미의 얼굴이 금세 굳어졌다.반면, 윤구주는 폭소를 터뜨리며 말했다.“들었나? 너희 설국이 감히 우리 화진과 국경전을 하겠다고?”세나미의 얼굴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듯 창백해졌다.그녀는 윤구주의 강력함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6년 전, 바로 눈앞의 이 살신이 홀로 한 군대를 이끌고 설국을 멸망 직전까지 몰아넣었고, 열 개 국가의 군대를 무너뜨린 전설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말이다.그런 그를 상대로 설국이 국경전을 벌이겠다고? 그야말로 자멸로 가는 길 아닌가!세나미는 간절하게 호소했다.“제발... 날 풀어줘! 날 돌려보내 주면, 내가 아버지를 설득하고 우리 국왕까지도 설득해 전쟁을 철회하도록 할게. 그리고 어떤 조건이라도 들어줄 수 있어. 화진이 이 전쟁만 포기해 준다면!”윤구주는 냉소를 머금으며 대꾸했다.“네 말은, 우리가 설국과의 전쟁이 두렵다는 뜻인가?”“아니야! 그런 뜻이 아니야!”“다만 이 전쟁만 하지 않는다면, 우리 설국은 어떤 요구라도 들어주겠다는 뜻이야!”이제 세나미는 완전히 굴복한 상태였다.그녀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눈앞의 이 사내는 화진의 왕, 윤구주였다. 과거 10국조차 그의 상대가 되지 못했는데, 하물며 설국 하나로 그를 막을 수 있을까?“이미 늦었다.”윤구주는 당당히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그와 동시에 몸에서 천지를 압도하는 기운이 퍼져나갔다.“지금부터 너희 설국이 후회하게 만들어 주지.”윤구주의 목소리는 차갑고도 피비린내가 서려 있었다. 그의 말에 세나미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며 물었다.“무슨 짓을 하시는 거야?”“설국을 멸하겠다.”윤구주는 결연한 표정으로 말한 뒤, 곁에 서 있던 염수천을 불렀다.“염수천!”“예, 군왕님!”염수천은 몸을 굽혀 명령을 기다렸다.“지금부터 너의 친위대를 국경지대에 배치해. 누구든 넘어오면, 죽여라!”윤구주의 목소리는 살기를 머금고 있었다.“명령대로 하겠습니다!”염수천이 대답했다가 잠시 머뭇거렸
세나미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그녀는 잔뜩 경계하며 윤구주를 노려보았다.“지, 지금 뭐 하려는 거야?”“내가 뭘 하든 그건 내 자유지. 네 위치를 잊지 마. 지금 넌 내 하인일 뿐이야.”윤구주의 차갑고 날카로운 말이 날아들자, 세나미의 눈에 절망이 스쳤다.이제 그녀의 생사권은 완전히 윤구주의 손아귀에 있었고, 심지어 자살조차도 불가능했다.윤구주가 자신에게 다가오라고 명령하자, 어쩔 도리가 없었던 세나미는 마지못해 그의 옆으로 조심스럽게 걸어갔다.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완벽한 몸매는 은빛 갑옷과 어우러져 굴곡이 뚜렷하고 풍만한 실루엣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세나미는 정말로 아름다웠다.붉게 타오르는 머리카락과 설국 특유의 선명한 얼굴선, 그리고 보석처럼 빛나는 푸른 눈동자까지. 그녀는 하늘에서 내려온 신비로운 정령 같았다.“앉아.”윤구주의 짧은 명령이 떨어졌다.세나미는 몸을 떨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얼굴에는 여전히 불만이 가득했다. 그러나 결국 그의 옆에 얌전히 앉을 수밖에 없었다.“어깨가 좀 뻐근하네. 주물러 봐.”윤구주가 느닷없이 말했다.“뭐라고? 내가 네 어깨를 주무르라고?”세나미는 어이없어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그녀는 설국에서 가장 존귀한 여전사이자, 신성한 광명 신전에 속한 제1 제사장의 제자였다.게다가 머지않아 설국의 황후로 등극할 사람이었다.그런데 윤구주가 자신에게 어깨를 주무르라니, 이건 말도 안 되는 굴욕이었다.“이해가 안 되나?”윤구주는 다시 한 번 단호하게 말했다.세나미의 푸른 눈동자가 분노로 가득 차며 거의 튀어나올 듯했다.“차라리 날 죽여. 그게 이렇게 모욕 당하는 것보다 나을 거야.”윤구주는 비웃으며 고개를 돌렸다.“그래? 정말 그럴까?”그는 그녀의 완벽한 몸매를 천천히 훑어보았다.세나미는 그의 시선에 잔뜩 겁에 질렸다.‘지금 뭐 하려는 거지? 설마 날 만지려는 건가?’윤구주는 그녀를 향해 마지막으로 말했다.“다시 묻지. 할 거야, 말 거야?”윤구주의 차가운 목소리에 세나미는
흑여산맥.세나미는 생사인을 통해 윤구주에게 통제당한 뒤, 그의 하인이 되었다.국경 군영 안, 윤구주는 구음만상결을 수련하며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이 흑여산맥은 대자연의 원기가 맑고 짙게 흐르며, 구음만상결 수련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다.흩날리는 머리카락과 함께 그의 전신을 감싸는 압도적인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수련을 거듭할수록 그의 육체와 기운은 더욱 강해지고, 구음만상결은 그의 몸을 보강하며 거대한 힘을 부여했다.그의 옆에는 붉은 머리칼을 가진 세나미가 멍하니 앉아 있었다.어떤 속박도 없었지만, 그녀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엄두를 내지 못했다.왜냐하면 그녀는 윤구주에게서 풍겨 나오는 절대적인 기운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심지어 그를 기습하려 해도, 자신이 결코 상대가 되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게다가 생사인에 의해 통제된 몸이니, 윤구주가 마음만 먹으면 그녀의 목숨은 끝장날 터였다.‘정말 여섯 해 전, 화진의 첫 번째 주왕, 그 살신이란 말인가?’‘어떻게 이렇게 젊을 수 있지?’세나미는 푸른 눈동자를 반짝이며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들려준 화진과 관련된 이야기 속, 늘 등장하던 이름이 바로 윤구주였다.하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직접 본 그는 그녀가 상상했던 나이 든 모습과 달리 젊고도 매력적이었다.윤구주의 아름다운 얼굴선을 보며,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를 향한 증오가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대신 두려움과 경외심이 그녀의 가슴속에 자리 잡았다.‘게다가... 이렇게 잘생겼다니!’세나미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는 즉시 자신의 위험한 생각을 지우려 애썼다.‘이 사람은 내 원수야! 우리 설국의 병사들을 그렇게 많이 죽였잖아! 망할 놈... 내가 왜 이놈이 잘생겼다고 생각했지?’‘악마야! 설국의 원수라고!’세나미는 억지로 마음을 다잡고 다시 한 번 증오의 눈길로 윤구주를 쏘아보았다.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갑자기 윤구주의 몸에서 거대한 상아가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의 몸을 감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