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석에서 구음만상결의 글과 그림이 윤구주의 신해 속으로 계속해 들어왔다. 그 순간 윤구주의 신해 속에 절학이 한 가지 더 많아졌다.그 절하기 바로 구음만상결이었다.윤구주가 예전에 수련했던 것은 구양진용결이었고 지금은 구음만상결을 얻었다.구음과 구양, 용과 코끼리.물속의 왕은 용이고 지상의 왕은 코끼리라고 한다.용과 코끼리가 힘을 합친다면 얼마나 강할까?윤구주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지금 윤구주는 신해 속의 구음만상결을 느끼고 있었고 몸속의 적선이 들끓기 시작했다.“구음만상결의 심법만으로도 내 적선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니. 이 절학은 내 구양진용결과 막상막하인 것 같아.”윤구주는 눈빛을 서늘하게 번뜩이면서 들뜬 마음으로 생각했다.곧 윤구주는 구음만상결의 비결이 전부 신해 속에 들어온 것을 느꼈다.모든 비결을 알게 되자 번쩍이던 비석의 문양이 어두워졌고 곧 문양에서 빛이 사라졌다.윤구주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면서 눈을 감고 신해 속의 구음만상결의 흔적을 돌이켰다.“구양, 구음. 설마 이 두 구주령은 상, 하 두 부분으로 나뉜 절학인 걸까?”잠시 고민하던 윤구주는 다시 시선을 들었고 이미 사라진 혼령이 있던 방향을 향해 말했다.“어찌 됐든 이 절세의 공법을 알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승에서 마음 놓고 계세요. 저 윤구주는 반드시 이 구주령의 비밀을 파헤칠 것입니다. 선배님이 저승에서도 안심할 수 있게 말입니다!”혼령이 사라진 방향을 향해 윤구주는 다시 깊이 허리를 숙였다.그런 뒤 신념을 거두어들이고 이 공간에서 빠져나왔다.텅 빈 마씨 일가의 대전 안에서 윤구주는 신념을 거두어들인 뒤 두 눈을 떴다.그 순간 그의 몸에 기운이 한층 더 많아졌는데 그 기운은 조금 전보다 더 강한 기운이었다.특히 그의 손에는 총이 들려 있었다.그 총은 2,000여 년 동안 쓰이지 못한 화진의 첫 번째 관군후의 용혼한위총이었고 그것은 이제 윤구주의 손에 들어왔다.윤구주는 손에 들린 총을 만져 보았다. 이 무기는 윤구주가 지니고 있는 국주가 준
진법은 마치 새장처럼 큰 대전을 전부 감쌌다.이 진법은 신급 강자보다 약한 무인들의 방해를 막을 수 있고 주변 모든 것을 차단할 수 있기에 윤구주가 구음만상결을 집중해서 수련하는 데 도움이 됐다.결계를 만들어둔 뒤 윤구주는 그제야 자신의 앞에 놓인 두 개의 구주령을 보았다.“이제 시작해 보자!”윤구주가 그렇게 말하자마자 그의 체내에 있는 구양진기가 울부짖기 시작했다.동시에 신해 속 구음만상결의 비결이 마치 영화처럼 윤구주의 머릿속에 펼쳐지기 시작했다.수련에는 끝이 없었다.윤구주가 마궁에서 한창 수련하고 있을 때 공수이는 이미 서울로 돌아갔다.번화한 거리 위, 남루한 승복에 낡은 가방을 멘 대머리 공수이는 사람들의 눈에 무척 띄는 존재였다.특히 쇼핑을 하던 예쁜 여자들이 그를 주목했다.“저기 봐. 머리 너무 귀엽지 않아? 스님 코스프레인가?”“그런가 봐.”“요즘은 다들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어서 환장했나 봐. 거지인 척하는 사람도 다 생기다니.”“돈을 벌 수만 있다면 똥도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세상이니까.”“하하, 확실히 그런 것 같네.”수군대는 소리가 공수이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그러나 아주 뻔뻔하고 당당한 공수이에게 그들의 공격은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공수이는 그저 두 눈을 깜빡이면서 자신을 지나치는 긴 다리의 여자들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엄마야, 다리가 정말 길고 하얗네. 세상에, 거의 D컵은 될 것 같네. 저 여자도 괜찮아. 엉덩이가 참 탄탄하단 말이지.”예쁜 여자들을 훑어보던 공수이가 가장 환장하는 것은 스타킹을 신은 고등학생들이었다.거리 맞은편에서 몇 명의 스타킹을 신은 여학생들이 가게 안에서 나오자 공수이는 곧바로 흥미가 생겼다.여학생들은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예술이었다.그들은 젊고 아름다웠으며 몸매도 우월했다.짧은 교복 치마에 섹시한 검은색 스타킹을 신은 그들을 본 공수이는 너무 좋아서 죽을 것만 같았다.공수이는 맞은편에서 여학생 몇 명이 다가오자 곧바로 변태처럼 휘파람을 불었다.“변태 새끼
그러나 생각을 바꾼 공수이는 곧바로 마음이 풀렸다.‘흥! 모두 화장 덕분에 예쁜 거지. 연예인 누나나 공주 누나처럼 세상을 놀라게 할 만큼 놀라운 미모를 가진 여자는 없어! 퉤, 난 우리 형님을 따라 배워서 최상의 여자를, 절세미인을 만날 거야. 난 절대 저렇게 화장을 짙게 하고 다니는 여자들은 만나지 않을 거야!’공수이는 그렇게 생각하자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요 며칠 내가 없는 사이 뚱보 형은 서울에서 어떻게 지냈을까? 좀 물 좋은 룸살롱을 찾았을까?”룸살롱을 떠올린 공수이는 곧바로 발걸음이 가벼워져서 빠르게 집으로 돌아갔다.서울, 외곽.윤구주가 한때 어머니와 함께 단둘이 살던 곳에 두 명의 여자가 실력을 겨루고 있었다.그중 한 명은 빨간색 치마를 입은 몸매 좋은 여자였고, 다른 한 명은 비록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었지만 완벽한 곡선과 아름다운 미모를 가져서 보고 있으면 마음이 설레는 여자였다.자세히 두 사람은 연예인 은설아와 윤구주의 부하 재이였다.은설아는 윤구주를 따른 뒤로 영음지체를 완전히 개발하게 되었다.지금의 그녀는 거의 매일 같이 아침 일찍 일어나 저녁 늦게까지 수련에 전념했다.그녀는 더 강해지고 싶었다.그래야만 윤구주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녀는 아침 일찍부터 재이와 실력을 겨루고 있었다.대련에서 이제 막 수련을 시작한 은설아는 비록 공격하는 것이 조금 서툴긴 했지만 몸이 아주 가벼워서 빠르게 움직였고 또 모든 공격에 엄청난 파워가 담겨 있었다.섹시한 재이는 신급 강자였기에 당연히 전력을 다하지는 않았다.그녀는 은설아를 가르치면서 그녀가 편히 공격할 수 있게 도와주고 있었다.“저하께서 은설아 씨를 받아준 이유가 있었어. 수련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은서아 씨는 이미 대무사 급이 되었으니 말이야.”마당의 한쪽에서 정태웅은 다리를 꼬고 앉아 두 여자가 싸우는 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그렇긴 해. 난 이렇게 빨리 실력을 쌓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다른 쪽에서 천현수가 말했다
그 목소리가 마당에 울려 퍼지자 대련하고 있던 재이와 은설아는 순간 멈췄다.정태웅, 천현수, 민규현 등 사람들은 익숙한 목소리를 들었고 정태웅은 가장 처음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세상에, 저하가 돌아오셨나 봐!”사람들은 곧바로 마당 밖으로 달려갔다.그런데 바로 이때 공수이가 번쩍거리는 대머리를 하고 즐거운 얼굴로 걸어 들어왔다.“하하하! 전 일부러 밤에도 쉬지 않고 돌아왔어요. 다들 제가 보고 싶었나요?”공수이의 장난기 가득한 모습을 본 정태웅은 가장 처음 달려가서 공수이의 어깨를 끌어안았다.“그럼! 당연히 보고 싶었지! 응? 그런데 왜 혼자 왔어? 저하는?”정태웅은 공수이가 혼자 들어오자 궁금한 듯 물었다.다른 사람들은 공수이가 윤구주 없이 혼자 돌아오자 다들 의아한 눈빛으로 공수이를 바라보았다.특히 은설아가 그랬다.“형님은 기산에 계세요! 저한테 먼저 돌아가 보라고 했어요!”공수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마당 안으로 들어섰다.“뭐? 저하께서 아직도 기산에 계신다고?”정태웅은 순간 의아했다.공수이는 마당 안으로 들어가더니 의자에 털썩 앉았다.“네!”“무슨 상황이야? 저하가 왜 아직 기산에 남아 계신 거야? 마씨 일가의 빌어먹을 놈들을 죽이러 간 거 아니었어?”정태웅이 다시 물었다.공수이는 긴장한 사람들의 표정을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돼요. 마씨 일가 놈들은 이미 전부 형님의 손에 죽었어요. 마씨 일가의 수백 년을 산 늙은 괴물들 세 명도 전부 형님의 손에 죽었답니다! 지금 마씨 일가에는 살아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요.”공수이가 마씨 일가의 멸망을 얘기하자 사람들은 그제야 마음이 편해졌다.그러나 곧 천현수가 물었다.“마씨 일가를 전부 처단했다면 저하께서는 왜 아직도 기산에 있는 거야?”다른 사람들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공수아를 바라보았다.“알려줄게요. 형님은 엄청 대단하세요. 지금 형님께서는 신공을 수련하고 계세요!”신공을 수련한다고?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맞아요!
공수이는 그렇게 말하더니 수인을 맺은 뒤 백보 가방을 가리켰다. 빛 한 줄기가 순간 백보 가방 안으로 들어갔고 곧 공수이는 백보 가방을 들어서 물건들을 쏟았다.보석이나 골동품, 그림, 진주, 비취 등 온갖 것들이 백보 가방 안에서 와르르 쏟아졌다.산더미처럼 쌓인 보물들과 각종 진귀한 보물들을 본 순간 사람들은 전부 넋이 나갔다.심지어 연예인 은설아와 재이도 놀랐다.반짝반짝 빛나는 보석들은 마치 트럭 한 대만큼 양이 많았다.게다가 보석들을 제외하고 골동품이나 그림, 진주, 비취 같은 것들도 있었다.바닥에 가득한 보물을 본 정태웅은 그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미쳤네! 수이 동생, 대체 어디서 이렇게 많은 보석들을 구한 거야? 정말 놀랍네!”다른 사람들은 모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놀란 표정으로 공수이를 바라보았다.아무도 공수이가 이렇게 많은 보석들을 쏟을 줄은 몰랐다.“헤헤, 다 제가 마씨 일가 보물 창고에서 쓸어온 거예요!”공수이는 씩 웃으면서 말했다.“마씨 일가? 보물 창고?”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물론이죠! 생각해 봐요. 마씨 일가는 제자백가 중에서도 큰 가문이에요. 천 년 넘는 역사가 있으니 돈도 당연히 많겠죠. 그런데 형님께서 그 빌어먹을 놈들을 전부 죽였으니 이 보물들은 당연히 제가 대신 써줘야죠. 그렇지 않으면 낭비잖아요. 그렇지 않아요?”공수이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전부 얼이 빠졌다.“일리 있네. 수이 동생의 말은 정말 일리가 있어!”정태웅은 흥분한 얼굴로 말하면서 서둘러 보석을 잡았다.바닥에는 금은보화와 진주, 비취 같은 것들이 가득해서 아주 화려했다.이 순간, 한때 연예계에서 일하며 많은 재부를 누렸던 은설아도 깜짝 놀랐다.이 정도 양이라면 그 가치가 어마어마할 것이다.거기 있는 진주 목걸이 하나만으로도 보석 업계가 떠들썩해질 수 있을 정도였기 때문이다.그런데 공수이는 거의 한 트럭 정도 될 양을 가지고 왔다.가치가 얼마나 될까?몇백억? 몇천억? 몇조? 몇백조?이루 형언할 수가 없었다.“
서울.공수이가 돌아온 뒤 윤씨 일가의 환하고 넓은 대전 안에 호탕한 웃음소리가 밖에서부터 전해졌다.“형님, 좋은 소식입니다!”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둘째 윤창현과 셋째 윤정석이 밖에서 빠르게 달려 들어왔다.두 사람은 뭔가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건지 얼굴이 환했다.대전 안에서 한 손에 고서를 들고 보고 있던 윤신우는 두 형제가 들어온 걸 보고는 천천히 들고 있던 고서를 내려놓았다.“기산 쪽에서 소식이 온 것이냐?”“형님 예상이 맞았습니다. 우리 조카는 마씨 일가를 멸문시켰고 심지어 마씨 일가의 세 조상도 우리 조카의 손에 죽었어요!”윤창현은 잔뜩 들뜬 얼굴로 말했다.그 말을 들은 윤신우는 덤덤하게 대꾸할 뿐, 그들이 예상처럼 아주 기뻐하지는 않았다.윤신우가 별로 흥분하지 않자 윤창현은 의아해하며 말했다.“형님, 왜 구주를 위해 기뻐하지 않는 겁니까? 구주는 홀로 천 년의 역사가 있는 세가를 무너뜨리고 마씨 일가의 세 명의 조상까지 죽였습니다. 화진 전체를 아울러봐도 이 정도 실력을 갖춘 사람은 없을 겁니다!”윤신우는 덤덤히 웃었다.“모두 내가 예상한 대로거든.”그 말을 들은 윤창현은 중얼거리면서 말했다.“그래도 구주를 위해 기뻐해야죠. 얼마나 대단한 명예입니까?”그러나 윤신우는 그다지 기뻐하지는 않고 그저 덤덤히 말했다.“마씨 일가가 멸문당했는데 다른 제자백가에서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거야?”아버지로서 윤신우는 항상 나중을 걱정했기에 그에게 물었다.“형님, 제가 파견한 스파이들은 아직 다른 제자백가들의 이상한 움직임을 포착하지 못했습니다. 반씨 일가에서 긴급하게 가족회의를 소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배씨 가문과 어씨 가문도요! 아직은 다들 크게 움직이지는 않아서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윤창현의 대답을 들은 윤신우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고개를 들어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방심해서는 안 돼. 어찌 됐든 마씨 일가는 제자백가 중 하나야. 우리 아들은 마씨 일가를 멸문시켰고 그로 인해 제자백가에서는 분명 뭔가
윤창현의 말을 들은 윤신우는 손을 저었다.“둘째야, 그건 섣부른 판단이다. 잊지 마. 종문은 3대 서열 중 가장 강해. 심지어 우리 윤씨 일가조차 종문을 얕볼 수 없어.”윤창현은 윤신우의 말을 듣고는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대꾸했다.“뭘 또 그렇게까지 말씀하십니까? 우리 조카가 곤륜에서 왕이 되었을 때 종문에서는 아무도 감히 나서지 못했잖아요.”“아니, 그때랑은 달라.”윤신우가 갑자기 말했다.“6년 전 그때 내 아들은 10국과 싸우면서 전쟁터를 누비며 엄청난 공을 세웠어. 종문에서 그 공을 무시한다면 그들은 종문의 자격이 없는 거야. 그러나 지금은 달라. 문씨 일가에서 내 아들의 왕위를 대신하고 있는 지금, 종문에서 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나는 모르겠어.”윤신우는 유유히 말했다.“형님 말씀이 맞아요. 그건 제가 항상 걱정하던 일이에요.”윤정석이 말했다.“형님, 정석아, 난 두 사람이 괜한 생각을 하는 거로 생각해요. 우리 조카가 이렇게 패기 넘치게 돌아왔는데 종문이 나서지 않는다면 잘된 일 아닌가요?”무신경한 윤창현은 호탕하게 말했다.윤신우는 당연히 윤창현의 말에 그렇게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그는 잠깐 고민한 뒤 윤정석을 향해 말했다.“정석아, 지금부터 사람을 시켜 종문을 감시하도록 해. 혹시라도 뭔가 이상한 점이 있다면 반드시 바로 나한테 얘기해야 한다.”“네!”윤정석은 명령에 따랐다.윤정석에게 분부한 뒤 윤신우는 윤창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창현아, 구주는 이미 서울로 돌아왔지?”윤창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뇨, 아직 돌아오지 않았어요.”“뭐?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고? 어떻게 된 거야?”윤신우의 안색이 순간 어두워졌다.따지고 보면 기산에서 서울까지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그런데 윤구주가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고 하니 윤신우는 조금 궁금해졌다.“형님, 저희가 심어둔 스파이가 말하길 구주는 지금 기산의 마궁에 있대요. 대체 뭘 하는 건지는 모르겠다고 했어요. 그 궁전에 감히 가
윤신우가 갑자기 황성에 간다고 하자 윤창현과 윤정석은 깜짝 놀랐다.“형님, 어찌하여 갑자기 황성으로 가시는 겁니까?”윤창현은 몹시 궁금해하며 물었다.윤정석도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사실, 16년 전 윤신우는 황성의 단골손님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현 국주께서 친히 황성 내 자유로운 출입을 허락한 유일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그러다가...16년 전 그 사건 이후로 윤신우는 다시는 황성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윤신우가 갑자기 황성에 가겠다고 하니 윤창현과 윤정석은 그 영문을 알 수 없었다.윤신우는 천천히 깊은 눈을 들어 말했다.“어떤 일은 반드시 그분께 직접 여쭤봐야 하기 때문이다!”그분은 의심할 여지 없이 현 국주였다.윤신우의 말에 윤창현이 말했다.“형님, 국주님과는 오랫동안 만나지 않으셨는데 과연 형님을 만나주실까요?”“걱정하지 마라. 만나줄 것이다.”윤신우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그 말에 윤창현과 윤정석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윤신우가 결정한 일은 누구도 말릴 수 없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서울, 황성.위엄 있는 금란 대전 안에서 곤룡포를 두른 위풍당당한 남자가 상소문을 읽고 있었다.그가 바로 화진의 현 국주였다. 그의 곁에는 황성 최고의 내시 한진모가 서 있었다. 황성 제일의 고수로 불리는 이 늙은 내시는 허리를 굽힌 채 시종일관 국주 곁을 공손히 지키고 있었다.“진모야, 이 상소문들은 모두 내각에서 올라온 것이냐?”국주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렸다.붉은 관복을 입은 한진모는 황급히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전하, 그러하옵니다.”“내각의 늙다리들이 죄다 헛소리만 지껄이는군.”화진 국주의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산더미처럼 쌓인 상소문이 대전 안에 와르르 쏟아졌다.“전하, 부디 진정하시옵소서!”국주가 노하는 것을 보고 한진모는 황급히 앞으로 나아가 말했다. “짐은 노한 것이 아니다! 짐은 단지 내각의 저 아둔한 자들이 왜 하필 이때 구주를 몰아세우려 드는지 이해할 수 없구
‘헐, 대박.’진동왕이 하늘을 우러러보며 윤구주를 신처럼 떠받들었다.‘이게 진짜 신이지. 곤륜에 있는 그 자식들은 모두 가짜 신들이었어. 허위적이기 그지없지.’오늘 밤 그는 여러 강자의 싸움을 직접 목격하고 강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문경우도 아주 강했지만 윤구주가 나타나자 문경우는 도망조차 제대로 치지 못하고 영혼마저 산산조각이 났다. 윤구주의 술법에 의해 영혼도 남기지 못하고 진정한 죽음을 맞이했다.승리는 결국 화진에게 돌아갔다. 화진을 무너뜨리려는 역적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윤구주는 자신의 힘으로 화진의 막강한 실력을 전 세계에 알렸다.문경우를 처단한 윤구주는 즉시 임정설의 치료에 돌입했다.“짐은 별일 없으니 먼저 왕숙과 네 친구를 치료해줘라.”임정설이 임성진과 청해를 가리키며 말했다.청해는 이미 정신을 차렸다. 비록 상처가 심해 반쯤 죽은 상태였지만 화진 국주에게 인정받은 첫 순간이었다. 묘한 영예감이 그의 마음을 꽉 채우며 날아갈 듯 기뻤다.“이 두 사람 모두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은 아닙니다. 오히려 국주님이 더 위험하십니다. 경지를 무리하게 넘어서셨고 섭혼번 아래서 정기를 너무 많이 잃으셨습니다. 지금 국주님의 기운이 안정하지 않으니 제 도움이 없다면 폭주 할수도 있어요. 그때가 되면 저도 방법이 없습니다.”윤구주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임정설은 결국 윤구주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도 자신의 몸 상태를 알고 있었다. 윤구주의 치료를 거부한 이유는 목숨을 내던질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황자급 경지에 오르긴 했지만 예전보다 죽음에 대한 집착이 강해져 있었다. 윤구주는 임정설에게 풀지 못한 원한이 있음을 눈치채고 치료를 해주며 화진으로 압박했다.“국주님께서 직접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는 걸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화진에게는 국주님이 필요합니다. 국주님은 30년 동안 화진을 지켜오셨잖아요. 지금 승부가 달린 이 중요한 시점에서 사적인 감정에 휘둘리시면 안 됩니다.”임정설
서울 삼천만 명의 목숨을 제물로 바치고 섭혼번이 작동되면 화진의 국운은 영원히 봉인될 것이다.“우리 문씨 가문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쇠퇴하지 않았으니 마땅히 화진의 주인이다. 감히 누가 복종하지 않겠느냐?”문경우는 하늘을 향해 큰소리로 웃어댔다.이때 하늘에서 천둥이 울리며 공간이 갈라지더니 한 남자가 시체 한 구를 밟고 서울에 강림했다.“웃기고 있네. 문씨 가문이 화진의 주인이 되겠다고? 문씨 가문 따위가 어디 감히 그런 꿈을 꾸는 것이냐? 나 윤구주가 용납하지 않겠다.”우르릉.우렁찬 목소리가 사방으로 퍼지자 문경우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졌다. 윤구주의 기운이 섭혼번 아래에 나타나며 음의 기운을 찢어버렸다.거대한 섭혼번이 관통당하자 전법이 무너지고 문경우는 피를 토해냈다.고개를 돌리니 윤구주가 허공에 우뚝 서 있었고 그의 발아래에는 아사 신전의 신주 오딘의 시체가 보라색 번개에 휩싸여 있었다.“이게 무슨? 네가 신왕 오딘을 죽였다고?”문경우는 오딘의 시체를 바라보며 벌벌 떨었다.“이 개 같은 자들이 여러 번 화진을 범했으니 죽이는 게 당연하지. 나는 오딘뿐만 아니라 아사 신족 전체를 멸했다. 이제 곤륜에 아사 신족은 존재하지 않는다.”윤구주가 공중에 우뚝 서서 음양의 기를 손아귀에 감아쥐었다. 그의 머리 위 갈라진 공간 너머로 아사 신전의 폐허가 보였다. 수만 신령이 죽어 아사 신족이 멸족한다는 종말이 예언이 현실이 된 것이다.문경우의 눈에 비친 윤구주는 무적의 화신이었다. 그는 윤구주와 싸울 용기도 내지 못하고 뒤돌아 도망치려 했다.“너희들이 내가 없을 틈을 타 화진의 기운을 봉인하려 했다고? 문씨 가문은 정말 개수작만 부리는군. 예전에는 나를 죽이려 온갖 더러운 수작을 다 부렸잖아. 내가 없는 틈만 노리는 걸 보니 이젠 내가 무서웠나 보지?”“팔기지, 술자결.”윤구주가 손짓하자 삼천만 생령이 국운 속으로 모여들었다. 백성들은 새 국운에 각자의 고마운 마음을 담아 보냈고 모두의 영혼이 육체로 돌아가며 위기가 해소되었다.“팔기지, 어
태양으로 변한 그 부적은 사악하기 그지없었다. 독한 태양 빛이 대지를 지지며 수많은 건물을 녹여버렸고 그 안에 있던 평민들도 산 채로 타죽고 말았다.“그만해. 화진의 백성들을 건드리지 마라!”임정설이 분노에 차 외쳤다.“너와 나는 모두 화진의 절정 수련자인데 어찌 무고한 자들을 끌어들이느냐?”“하하! 무고하다니? 임정설, 현실을 직시하지. 이 하등한 것들은 개미나 다름없어. 한 무리를 죽여도 금방 다시 번식할 테니. 게다가 내가 여기에 온 목적은 삼천만 백성의 목숨으로 화진의 새 국운을 봉인하는 거라네. 우리 문씨 가문이 얻지 못하는 것은 부숴버려도 남에게 주지 않을 거야.”문경우가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그는 윤구주가 문씨 가문의 뜻을 거역하는 것에 화가 났다.만약 윤구주가 그들에게 순종했다면 지금쯤 화진의 주인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천추만대가 지나도 윤구주는 여전히 화진 최고의 명군으로 남았을 것이다.“저 빌어먹을 윤구주. 역사는 승자가 쓴다는 걸 모르나? 역사를 조작한 왕조가 그렇게나 많은데 유독 그놈만 고집을 부리잖아. 화진의 재난은 모두 윤구주 때문이야. 명군이 되길 거부한다면 영원한 역적으로 만들 거야. 윤구주는 역사의 수치주에 못 박혀 천년만년을 욕먹을 것이다.”“닥치거라! 구주는 우리 화진의 영웅이다. 너 같은 쓰레기가 어찌 감히 구주를 함부로 논하는 것이냐?”그의 말에 단단히 열 받은 임정설은 양혼을 불살라 목숨을 걸려 했다. 그러나 문경우가 이미 임정설의 기를 봉쇄하고 제삼의 전법으로 그의 영혼까지 잠가버렸다.“임정설, 내 앞에서 자살조차 못 하는 주제에 어디서 목숨을 걸겠다고 떠드는 건가?”문경우는 기고만장했다. 임정설이 황자가 되면 뭐하나? 어차피 문씨 가문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는데.“오늘이 바로 화진 황제의 멸망일이라네. 섭섭해하지 말게. 윤구주도 곧 자네 뒤를 따를 거니까. 하하!”그가 양손을 내리자 백 미터 크기의 사악한 검은 기발이 구름을 뚫고 서울 상공에 나타났다.“이, 이것은 섭혼번이군!”그 거대
말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더 이상 쓸모없는 대화는 필요 없었다.임정설은 황제의 의지를 칼로 삼았다. 황자의 기세가 모여 금빛 칼날을 형성하더니 국운을 상징하는 그 칼로 문경우를 향해 내리쳤다.우르르.음과 양이 맞부딪치며 터져 나온 충격파가 반경 수 킬로미터를 휩쓸었다. 사령부 빌딩과 인근 건물들의 유리가 모조리 산산조각이 났다.두 사람은 빌딩 꼭대기에서 결투를 시작했다. 칼 빛이 번뜩이며 천지의 영기를 뒤흔들었고 광풍과 폭우가 몰아쳤다. 산해가 울부짖으며 서울은 보라색 번개와 금빛 불길에 휩싸였다.그들은 각각 화진 최강의 무도를 대표하고 있었다. 이는 단순히 정의와 사악의 대결이 아니라 임씨 가문과 문씨 가문의 결전이었다.서울 상공에서는 용의 형상이 구름 사이를 휘저으며 흉수와 피 묻은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이게 바로 황자의 힘인가. 정말 굉장하군.”진동왕마저 넋을 잃은 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이때 다른 도시의 지원병들이 서울에 도착해 진동왕과 연락을 취했고 이 소식을 해외에 있는 현모와 주작에게 즉시 전했다.“국주께서 문경우와 결전을 벌이고 계신다고?”“국주께서 황자급 경지에 오르셨다니.”이는 분명히 좋은 소식이었다. 비록 한 산에 두 호랑이가 살 수 없다는 말이 있었지만 윤구주와 임정설의 관계는 남달랐다. 임정설은 윤구주의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너무 기뻐하지 마라. 저 문경우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곤륜에서 오랫동안 잠적하며 수많은 신전의 공법을 익혔어. 저놈이 서울로 온 목적은 바로 임정설을 죽이기 위함일 것이야.”옆에 있던 황보웅이 차가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주작과 현모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직 화진이 무사하고 임정설이 문경우를 물리치길 기원할 수밖에 없었다.한창 싸우고 있던 두 강자는 공중에서 다시 한번 맞붙었다. 두 사람의 손짓 하나에 산이 뒤집히고 천지가 진동했으며 그들의 기세는 수백 리 밖까지 영향을 미쳤다.임정설은 기세를 최고조로 끌어올려 거침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임정설은 문경우가 극 신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전법이 발동되면 서울 수천만 사람들이 참혹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야. 비록 이길 자신은 없지만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화진의 백성을 위해 싸우겠다. 구주군과 금위군의 여러 장수들은 듣거라. 짐이 전사하면 너희들이 나라를 지킬 책임을 지고 계속해서 적들을 섬멸하라.”임정설은 장군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나서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홀로 서울 사령부로 날아갔다.서울 사령부는 진동왕과 수비영이 도착하기 훨씬 전에 함락된 상태였다. 주둔지는 죽음의 적막에 휩싸여 있었고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말라붙은 백골들이 널브러진 참혹한 장면뿐이었다.당시 강적의 침입을 받은 주둔지의 병사들은 한 명도 물러서지 않고 전원이 전사할 때까지 적들과 맞서 싸웠을 것이다.이 생각에 임정설의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이곳에 있는 자들은 모두 우리 화진의 자랑이다. 저 요망한 것들이 화진을 어지럽힌 지 얼마나 되었느냐? 이 빚을 짐이 갚아 내지 못하더라도 화진 자손들이 반드시 값나낼 것이다.”그는 절대 화진의 혼란에 맞선 마지막 황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선인이 걸어온 길을 밟으며 그의 발걸음은 더욱 확고해졌다.이 순간 황운이 임정설의 몸에 서리더니 새로운 국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순간부터 그는 특정된 누군가의 왕이 아닌 천하 만민이 우러러보는 황제가 되어 있었다.황도가 더해지자 임정설의 기세는 한층 더 강해졌다. 그는 사령부 빌딩 최상층에서 서울을 어지럽힌 장본인을 마주했다.검은 도포를 걸친 그 자는 사악한 부적으로 몸을 감싼 채 요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바로 그가 전법으로 서울을 뒤덮고 있었다.“참으로 예상치 못했어. 화진에 또 한 명의 황자가 나타나다니. 윤구주는 정말 신기하다니까. 자신의 기운으로 국운을 바꾸고 자네의 운명까지 바꿔놓았군. 하지만 내가 충고 하나 해주지. 임정설 자네가 황자가 된 이상 사흘을 넘기지 못할 것이야. 넌 사흘 안에 목숨을 거둘 것이란 말이지.”검은 도포를 입은 사람은 임정설이 죽음을 각오하고 온 것을 알아
국주 임정설은 해청현의 음기를 제거한 후, 그를 보호하던 기운까지 걷어내 양기로 해청현을 완전히 눌러 버렸다.이게 바로 미친 스님이 말했던 진정한 자제력이었다.“해청현은 수법만 닦고 수도는 하지 않았으며 몸만 수련할 뿐, 마음은 단련하지 않았지. 그러다 보니 결국 다 헛것이 되어버린 거야.”미친 스님은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공평했다. 그는 해청현에게 타고난 수도의 체질을 주었지만 그에 걸맞은 의지를 주지 않았다. 그렇게 해청현은 더는 감당하지 못하고 되려 휘말려버린 것이었다.임정설의 머리 위엔 성스러운 빛이 맴돌았고 온몸엔 천지를 뒤덮을 만큼의 정기가 흘러넘쳤다. 해청현은 결국 싸움에서 져버렸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도 임정설처럼 황자급 경지였다면 이겼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작 두 사람의 경지가 같았다 해도 여전히 자신이 완전히 압도당했을 거라는 걸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임정설은 손바닥을 휙 내리치더니 끝까지 미련을 품던 해청현을 그 자리에서 즉사시켰다. 그는 영혼조차 남지 않은 채 완전히 소멸당했다. 이것이 바로 겉보기엔 수련했을지 몰라도 한 번도 진정한 수도의 길에 들어서지 않았다는 증거였다.“국주님이 이렇게까지 강했다고?”공수이는 멍하니 중얼거렸다.“그러게 말이야. 어떻게 이렇게까지 강해졌지?”진동왕은 부러움과 질투, 그리고 복잡한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예전에는 그가 임정설보다 더 강했었고 임정설은 국운 덕에 간신히 그를 이길 정도였으니 말이다.하지만 이젠 내공 차이가 너무 벌어져서 더 이상 비교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그제야 깨어난 백호는 조금 전 자신이 국주를 진왕으로 착각하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백호, 널 속인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넌 내가 올 때까지 버티지 못했을 테니까...”임정설은 양기를 끌어내어 백호의 몸속에 주입했고 그의 정기를 빠르게 회복시켰다. 이렇게 되면 백호도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회복할 것이었다.그 모습을 본 공수이와 진동왕은 또다시 멍해
“뭐? 저게 누구지? 지금 화진에 저런 강자가 또 있었다고? 설마... 저자가 바로 구주왕이란 말인가?”청현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당황스레 외쳤다.누가 알았겠는가, 이 결정적인 순간에 고수가 나타나다니!“젠장... 네가 누구든 상관없다!”“나는 반드시 백호를 죽인다!”청현은 더는 여유가 없었다.상대의 기세는 너무나도 강력했고, 이미 백호와 싸우면서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그와 맞붙는 건 목숨만 붙어 있을 뿐 이기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청현은 그저 백호부터 처리하려 했다.“이런 건방진 것! 우리 화진의 전쟁 신이 너 같은 흉수에게 쓰러질 수는 없다!”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활기찬 천 음 소리!금빛 실루엣이 구름을 뚫고 내려오더니 손바닥으로 청현을 튕겨냈다!눈앞의 인물을 본 청현은 잠시 얼어붙었다. 모르는 인물이다.하지만 이 압도적인 기운은 분명 고위자일 것이다.화진에서 구주왕 말고는 누가 이런 존재감을 뿜어낼 수 있겠는가?기절해 있던 진북왕은 익숙한 기운에 눈을 번쩍 떴다.그리고 그 실루엣을 본 순간 기절할 뻔했다.“이런! 임정설! 너 황자가 된 거야!”“흠? 왕숙께서 실망하셨나 보네요??”금빛 그림자가 사라지며 실체가 드러났고, 그 모습은 바로 용맥에 들어가 수련하던 화진의 현직 왕 임정설이었다.“폐하 만세!”구주군 장병들은 격동된 마음으로 일제히 무릎 꿇고 경례하며 외쳤다.자신들의 왕이 서울로 화진의 백성을 구하러 온 것이다!“임정설?! 그게 어떻게 가능해! 아무리 강해도 극한신경 정도일 텐데!”청현의 얼굴이 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졌다.극한신경과 황자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황자 한 명이면 수십 명의 극한신경을 상대할 수 있다!서울에 황자가 주둔해 있다면, 곤륜영역조차 쉽게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설령 청현이 아무리 천재고 강하더라도 황자와의 싸움은 불가능했다.자칭 수요산 제일검이라던 청현은 위축됐다.그 모습을 본 임정설은 냉소하며 말했다.“이게 바로 검객이란 말인가? 검객의 마음은
진황은 외공만으로 도에 이른 황자였다.어떠한 술법도 수련하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백호가 중얼거리며 ‘진황신공!’을 외치고 있으니 이건 누가 봐도 미친 소리였다.“미쳐야 도를 이루는 법이다. 백호는 앞날이 창창하구먼.” 미친 스님이 아미타불을 외치며 말했다.“미쳤어, 미쳤어! 전부 다 미쳐버렸다고!” 진북왕이 고함을 지르다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기절해버렸다.그 사이 백호의 기세는 끝없이 치솟고 있었다!정신은 나갔지만, 힘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청현은 문득 깨달았다. 백호가 저토록 광폭한 이유—바로 그놈의 몸속에 흐르는 성수의 피였다.“이 썩을 놈... 성수 피가 아니었으면 네가 뭔데 날 상대로 이러는 거냐!”청현은 음기를 뿜으며 맹렬하게 연속으로 공격을 퍼부었다.그 음산한 기세에도 불구하고 백호는 오히려 직선 돌진했다.공격은 완전 예측 불가였다.수요산 검종은 온갖 검술과 전법에 능했지만, 다음 공격이 뭔지도 모르는 미친놈을 상대로는 청현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결국, 또 한바탕 두들겨 맞고 땅바닥을 굴러다니던 중 놀랍게도 백호가 자신의 음신사체를 흡수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내 음기를 집어삼키다니?! 이 괴물 같은 놈!”“음기여 무한하라! 흑검이여, 사악을 베어라!!!”시커먼 흑검이 다시 응집되자, 수백 개의 검날이 연속으로 쏟아졌다.백호의 온몸은 피투성이가 되어 검은 피를 흘렸지만——그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대로 돌진했다!“개자식... 음기야! 나에게 힘을 줘!!”청현은 검을 땅속 깊숙이 꽂았다.지맥에서 미친 듯이 영기를 빨아들이자, 머리 위에 떠 오른 음기 마기의 형상은 산만큼 거대해졌다!그 압도적인 힘으로 청현은 백호를 단숨에 쓰러뜨렸다.이건 이미 백호가 감당할 수 없는 한계치를 훨씬 초과한 위력이었다.쿵!!백호는 그대로 땅에 쓰러졌지만, 그런데도 그는 의식을 잃지 않았다.다만 입에서 나오는 건 누가 들어도 미친 소리였다.“황이 온다... 황... 황이 온다....
“우리 스승 말이야, 진짜 고집쟁이에다 구닥다리야. 정의와 사악은 절대 함께할 수 없다고 믿고 목숨 걸고 몇백 년 동안 싸우고 피 흘렸지만 무슨 소용이 있어? 인마 좀 없앤 거 빼고는...?”“스승께서 날 산에서 내려가 속세의 삶을 보라고 하신 건, 결국 수련을 위한 경험이었겠지. 하지만 세상을 직접 겪고 나서야 똑똑히 알게 됐어. 이 세상은 결국, 강한 자가 무적이고 이긴 자가 왕이 되는 법이야...”“세상에는 애초에 정의와 악, 흑과 백 따윈 존재하지 않아. 선악의 기준이란 결국 입만 살은 자들이 지껄이는 헛소리일 뿐이지. 역사가 진실이라고 믿어? 예로부터 어느 왕조의 흥망이 피바다와 시체더미 없이 이루어진 적이 있었나?”“무릇 장수가 공을 세운다는 건, 수만의 백골 위에 선다는 뜻이지. 그 윤구주가 '구주왕'이라 불리는 것도, 결국은 피로 쟁취한 자리 아니겠어?”“주먹이 곧 진리다. 내가 황위에 오르는 날, 선악이든 흑백이든 모두 내 기준으로 정의된다!”“백호, 이제 죽어라.”청현이 공격하려던 찰나 하늘 위의 백호가 먼저 움직였다. 다시 성수인을 발동하더니, 성수의 허상이 실체로 변해 거대한 기운을 모은 주먹을 뻗었다.그 주먹은 하늘을 가르고 청현을 향해 날아갔다.그러나 청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차가운 음기와 사기 담은 손으로 그 주먹을 받아내고 동시에 백 자 길이의 흑검을 형성해 단칼에 성수의 허상을 두 토막 내버렸다.그 검이 날아간 자리에는 구름이 쪼개졌고, 서울 상공을 덮고 있던 먹구름은 그 검기의 파도에 휩쓸려 모두 흩어졌다.먹구름이 사라졌지만, 서울 상공에는 여전히 짙은 요기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마치 태양조차 삼키려는 어둠의 장막처럼.“진법까지 있었어?! 대체 어느 놈이, 언제 이따위 대형 진법을 몰래 깔아놓은 거야?!”진북왕은 혈압이 오르다 못해 피까지 토할 지경이었다.이건 곧 청현이 최종 보스가 아니라는 뜻이다!백호가 청현을 이긴다 해도 그보다 더 강한 놈이 있다는 얘기다.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백호가 청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