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고 있어.”양시연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밤의 고요함을 즐겼다.문 옆에 서서 양혁수를 바라보며 물었다.“그럼 너는?”“그냥 그래.”양혁수는 말하면서 주머니에서 담배를 찾으려 했지만, 찾지 못했다.양시연이 웃으며 말했다.“아까 테이블에 놓은 담배 엄마가 쓰레기통에 버렸어.”양혁수는 혀를 차며 말했다.“정말 철저하네.”“담배는 좋은 게 아니니까 끊는 게 좋겠어.”양시연이 조용히 말했다.“우리 큰 아씨께서는 최대한 적게 피우라고 하는데 넌 아예 끊으라고 하는 거야?”양혁수는 난간에 기대며 눈썹을 치켜올렸다.“리더로서 살다 보니 말투가 강력해진 건가?”“나는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끊을 수 없어.”양혁수는 눈을 감고 목을 뒤로 젖히며 어깨를 풀었다.“너...무슨 걱정 있어?”양시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양혁수는 한숨을 내쉬고 동작을 멈춘 채 양시연을 한 번 흘깃 쳐다봤다.잠시 침묵이 흐르고, 양혁수는 주먹을 입술에 대며 하품하고 피곤한 표정을 지었다.“내가 무슨 걱정이 있겠어. 그냥 피우면서 즐기고 있어.”양시연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래도 끊는 게 좋아.”“나중에 다시 얘기하자.”두 사람은 가벼운 대화를 이어갔고 양시연은 다시 무심코 양혁수가 손목에 찬 팔찌를 바라보았다.그 팔찌는 한 뼘 정도의 넓은 중성적 디자인이었다. 처음 양시연이 찼을 때는 다루기 힘들었지만, 이제 양혁수가 차니까 오히려 잘 어울렸다.“내가 돌아오기 전에...”양혁수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가 말을 멈췄다.양시연은 양혁수가 계속 말할 줄 알고 기다렸으나 양혁수는 말을 돌려서 말했다.“원래 너한테 선물 좀 사려고 했는데 마음에 드는 게 없었어.”“그렇구나.”양시연은 부드럽게 대답했다.“괜찮아. 선물은 언제든지 줘도 돼. 며칠 후에 내가 마음에 드는 걸 보면 그때 네가 결제해 줘.”양혁수는 웃었다.“알았어. 네가 골라. 내가 결제할게.”양혁수는 양시연 뒤에 있는 문을 보며 말했다.“이제 가자. 나도 자야 해.”양시연
양시연은 인터넷에서 친구를 사귀는 것을 무척 즐겼다. ‘지식인’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인 작은 규모의 소셜 앱이었다. 양시연은 이곳에서 무료로 전문가들의 지식을 배웠고 가끔 밀크티를 마시며 그들이 밤새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즐겼다.이 ‘EAN’은 논쟁 지수가 98로 아주 논쟁을 즐기는 인물이었다. 평소에도 자주 논쟁을 벌였던 것 같다.‘쯧쯧.’그는 이곳에서 고수로 통하는 듯했다.친구 신청이 승인되자 상대는 양시연의 공개 질문을 모두 살펴보고 각 의문점에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예의상 양시연도 상대의 질문 페이지에 가서 한마디 남겼다.그의 공개 질문은 딱 하나뿐이었다.[두 사람 사이의 재결합에 대한 인식 차이.]‘오호. 감성적인 면도 있네.’양시연은 댓글을 읽으며 모두가 농담을 주고받고 있는 듯했고 그중 몇몇은 이전에 논쟁에서 졌던 사람들 같았다. 그들은 대놓고 고수를 조롱하며 그가 전 애인과 재결합을 원한다고 비웃고 있었다.“피상적이다.”양시연은 그런 사람들을 비웃듯 말했다.그녀는 고수에게 댓글을 남기며 자기 생각을 전했다.[지나간 일에 연연하지 않아요. 돌아보려면 그만한 가치가 있어야죠.]양시연은 답글을 발송했다.상대방이 답을 보내진 않았지만, 양시연은 운율에 맞춰 쓴 답변에 무척 만족스러워했다....후원 거실에서.양석진은 소파에 기대앉았고 양지원은 그의 무릎에 앉아 다양한 선물들을 살펴보고 있었다.“전부 보석이나 진주뿐이네요. 특별한 건 없네요.”양지원은 선물을 보고 지루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양석진이 말했다.“네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보내는 거지.”양지원은 양석진의 말에 잔잔히 미소를 지으며 입가에 웃음을 띠었다.양석진은 팔꿈치를 무릎에 얹고 몸을 앞으로 기울여 양지원을 바라보았다.양지원은 양석진의 시선을 느끼며 양석진에게 시선을 돌렸다.“누가 널 이렇게 웃게 만든 거야?”양석진이 물었다.양지원은 웃음을 멈추지 않은 채 흥얼거리며 일어섰다. 구석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 들었다.양석진은 그 상자가 자신이
양석진은 주변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 양지원의 뒷머리 한 가닥을 손끝으로 돌리며 말했다.“여전히 예전 스타일리스트가 해?”양지원은 고개를 살짝 돌려 양석진의 얼굴을 보지 않은 채 대답했다.“네. 오랜 친구라 제 취향을 잘 알거든요.”“예쁘네.”양석진이 칭찬했다.양지원은 속으론 기뻤지만, 겉으론 퉁명스레 대꾸했다.“직장 생활 오래 하더니 아부도 할 줄 아네요?”“난 진심이야.”“지난번에 긴 생머리였을 때도 예쁘다고 했잖아요.”“둘 다 예뻐서 모순될 게 없어.”양지원은 귀가 살짝 뜨거워졌지만, 나이에 맞지 않게 소녀 같은 모습으로 보이는 건 싫어서 그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그럼 스타일리스트에게 보너스를 줘야겠네요.”양석진은 여전히 양지원의 어깨에 손을 얹고 머리를 끄덕였다.어색해지지 않게 하려고 양지원은 두 손을 양석진의 무릎에 올리며 팔찌를 감상하는 척했다.“이 팔찌 분명 타티나 거예요. 연정훈 그 자식 참 대담하게도 이걸 내게 보냈네요.”양석진은 양지원을 보며 말했다.“마음 약해진 거야?”“말도 안 돼요!”양지원은 콧소리를 내며 말했다.“팔찌 하나로 우리 시연이랑 결혼하려고 하다니 꿈도 적당히 꿔야죠.”“물건 그냥 받을 거야?”“연정훈이 자초한 거죠!”양석진은 살짝 미소 지었다.조명이 비추는 아래서 양지원은 팔찌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그때 양석진이 그녀의 뒷머리 한 가닥을 손끝으로 천천히 돌리던 손길이 자연스럽게 풀려나가며 머리카락 속으로 들어가 마치 자연스럽게 머리를 정리해 주는 듯했다. 양석진의 손끝이 우연히 두피를 스쳤다.양지원은 작은 개미가 기어가는 듯한 찌릿한 감각이 마음속 깊이 스며드는 걸 느꼈다.양지원은 흘깃 그를 바라보았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양석진은 잠시 손끝을 멈추고 다른 손으로 그녀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자세를 낮추며 살짝 떨리는 숨결이 양지원의 얼굴을 스쳤다.공기 중에 은근한 분위기가 감돌았고 양지원의 입술이 살짝 닿았다.양지원은 눈동자를 조심스레 움직이며 숨을 깊게 들이쉬었
양지원의 생일 후 양석진은 경인에 이틀 더 머물렀다.양시연은 요즘 양지원의 얼굴에 기쁨과 생기가 가득 찬 것을 눈치챘다.양시연과 양혁수는 자주 눈빛을 교환하며 묵묵히 서로의 생각을 공유했다.집안 분위기는 매우 좋았고 양시연은 드디어 한 번쯤은 아무 걱정 없이 어린 소녀처럼 지낼 수 있었다. 매일 부모님이 출근길에 데려다주는 것이 어릴 적 친구들이 누리던 부모님의 등하교 모습과 겹쳤다.아쉬운 점이라면 양홍두가 양시연의 맞선을 추진 중이라는 사실이었다.할아버지는 경인에서 적합한 젊은 인재들을 많이 골랐지만, 양석진은 말했다.“세운도 살펴보면 좋죠.”할아버지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단호하게 답했다.“시연이를 세운으로 보내서 지원까지 데려가려는 속셈이겠지.”양석진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할아버지도 세운으로 가시는 게 좋겠네요.”양홍두는 어이없었다.“...”양시연은 맞선에 대해 큰 거부감이 없었다. 이제는 결혼을 생각할 나이였고 좋은 사람을 만나는 방법이 무엇이든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의 맞선은 한 번도 순조롭게 진행된 적이 없었다.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그녀에게 호감을 보였더라도 결국엔 ‘양씨 가문' 딸로서의 가치에만 관심을 두고는 양가의 배경만 떠보려는 사람들뿐이었다.그중엔 양시연과 연정훈이 정말로 끝난 것인지 확인하려는 사람까지 있었다.그럴 때마다 양시연의 마음엔 분노가 차올랐다.‘연정훈 씨와 사귀었던 게 무슨 저주라도 된 걸까?’몇 번의 맞선이 어그러지고 난 뒤 양시연의 마음은 점차 식어 갔다.“할아버지, 잠시만이라도 맞선을 쉬고 싶어요.”양홍두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맞선은 여러 번 실패를 거듭해야 끈기가 생기는 법이지!”양시연은 어이없었다.“...”옆에서 양혁수가 장난스럽게 덧붙였다.“횟수가 늘어나면 실패에 익숙해질 테니 걱정하지 마.”양홍두는 침묵했다.“...”양시연이 옷을 갈아입으러 위층으로 올라가는 동안 양혁수는 할아버지가 방금 꺼낸 새로운 후보자
양시연은 랜덤 방식으로 소개팅에 참여했다. 다음 날이 토요일이라 약속 장소에 조금 일찍 도착했다.자리 잡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맞은편에서 정장을 입은 남자가 걸어왔다.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고 양시연은 순간 멈칫했다.상대방도 마찬가지였다.그녀는 입술을 약간 떨며 말했다.“부, 부 변호사님?”부승원은 당황한 듯 침묵했다.‘세상이 드디어 제정신을 놓은 건가.’양시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상황을 확인하고자 했다.“저기...혹시 소개팅하러 오신 건가요?”부승원은 잠시 고민하다가 자신도 집안의 압박으로 나왔기에 상대가 누군지 몰랐을 거라 짐작하며 단호하게 부인했다.“아니요.”그는 아무런 주저 없이 부인했다.양시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정말 깜짝 놀랐네요.”부승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없이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곧 연정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맞선 자리가 하나 비었는데 너 갈래?]연정훈은 회의를 마치고 메시지를 확인한 후 부승원이 보낸 사진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그는 양 할아버지의 주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연정훈은 의자에 기대어 사진을 양시연에게 전송하며 문자를 보냈다.[남산 저택으로 와. 점심 사줄게.]“양시연은 사진을 보고 곧바로 상황을 파악했다.‘이럴 수가. 소개팅 대상이 부승원 씨라니.’양시연은 연정훈에게 답장을 보냈다.[괜찮아요. 점심은 약속이 있어요.]연정훈이 답장했다.[공과 사를 똑똑히 구분해. 너와 중요한 얘기가 있어.][...인터참의 후속 문제는 당신이 신경 쓸 일이 아니지 않나요?]연정훈은 다시 답장을 보냈다.[상회 일에 대해 네가 알아야 할 점이 있어.]그는 주소를 보냈다. 남산 저택의 한옥이었다.양시연은 최근 경기도 상회와 접촉 중이었다. 양지원의 소개로 들어갔지만, 많은 보살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대부분은 양시연을 후배 취급하며 그녀에게는 별다른 발언권이 없었다.그녀는 잠시 고민하다가 계산을 마친 후 약속 장소로 향하기로 결심했다.오후의 날씨는 더웠고 한옥의 창문은 모두 열려 있었
“정훈 씨, 가끔 말하는 게 사람을 정말 화나게 하는 거 알아요?”양시연이 갑자기 물었다.연정훈은 의아해했다.양시연은 턱을 괴고 말했다.“정훈 씨는 언제나 사람을 턱 끝으로 내리깔면서 보는 것 같아요. 모든 게 당신 손안에 있다는 듯이 말이죠.”연정훈은 어이없었다.“...”연정훈은 자신도 모르게 턱을 만져보더니 조금 내렸다. 그러나 편하지 않아 다시 원래 자세로 돌아갔다.몇 초 사이에 연정훈은 머릿속에서 여러 자세를 떠올렸지만, 자세를 살짝 바꾸는 것만으로도 턱을 어디에 둬야 할지 난감해졌다.양시연은 연정훈이 머리를 숙였다 들었다 하는 모습을 보며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연정훈은 양시연을 흘깃 보며 찡그렸다.그는 어려서부터 예의범절을 중시했고 항상 사람들에게 예의 바르다는 말을 들어왔지 예절 문제로 지적받은 적은 없었다.잠시 생각한 연정훈은 말했다.“이 문제는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일단 내 의견은 보류할게.”양시연은 말문이 막혔다.그의 엉뚱함에 방심한 양시연은 경계를 조금 늦추고 물었다.“이제 본론 말해줄 거죠?”연정훈은 방금까지의 혼란을 잠시 접고 자신감을 되찾았다.“상회에서 고전 중이야?”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양시연은 짜증을 내며 말했다.“그 사람들 정말 까다로워요.”“당연히 까다롭지. 그들은 목숨 걸고 살아남은 사람들이야. 네가 양씨라고 해서 다들 널 공주처럼 대할 거로 생각하면 안 돼.”양시연은 말했다.“공주가 되려는 건 아니에요. 다만 하녀처럼 되고 싶지도 않아요.”“지금 너는 아직 인터참 프로젝트 하나만 맡아봤잖아. 하녀처럼 대우받는 것도 네가 양씨라서 그런 거야.”양시연은 입술을 삐죽였다.연정훈은 양시연의 작은 반응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한 번에 성공하고 싶은 거야?”양시연은 고개를 저으며 솔직하게 말했다.“그런 건 아니에요. 다만 요즘 상회 사람들과 접하면서 느낀 건 이 바닥에서 서열 문화가 너무 심각하게 있어요.”연정훈은 금방 이해했다.그녀는 하녀가 되는 게 두려운 게 아
“제게 인맥을 넓혀주려는 거예요?”“응.”양시연이 말했다.“우리 엄마도 사람들 소개해 줄 수 있어요.”연정훈은 대답했다.“둘 다 양씨라면 결국 나 혼자 싸우는 셈이지.”“그럼 양 씨랑 연씨인 정훈 씨와 같이 있으면요?”연정훈은 말했다.“그러면 일도 두 배로 잘 풀릴 수도 있지.”양시연은 어이없었다.“...”‘뭐. 그럴싸하긴 하네.’“정훈 씨, 그 사람들에게 저를 여자친구라고 소개하면서 저한테 함부로 하진 않을거죠?”계단을 오르며 양시연은 살짝 교활한 미소를 지었다.연정훈은 양시연을 한 번 쳐다보았다.양시연은 미소를 지으며 연정훈을 바라보았다.연정훈은 가벼운 한숨을 쉬며 물었다.“네가 보기엔 내가 어떻게 소개하는 게 나을까?”양시연은 잠시 생각하다가 갑자기 그의 팔짱을 끌어안았다.연정훈의 눈빛이 잠깐 흔들렸다.그때 양시연의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연정훈 오빠? 이렇게 부르면 괜찮겠죠?”연정훈은 침묵했다.“...”그는 입꼬리를 떨면서 이를 악물었다.종업원이 이미 다가왔다. 연정훈은 손목을 뽑으며 차갑게 말했다.“양 아가씨, 가시죠.”‘이 호칭도 괜찮다. 합리적이다.’양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계단을 올라갔다.연정훈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양지원이 양시연을 데리고 사람들을 만나면 양시연은 한 사람씩 인사를 해야 했다. 하지만 연정훈이 양시연을 데리고 가면 강압적인 분위기가 형성됐다. 양시연이 입을 열지 않아도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비즈니스 관계를 벗어난 것 같았다.물론 새로운 문제도 생겼다. 사람들은 그녀를 연정훈의 부속품처럼 취급하게 되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냥 관망하는 자세를 취했다.오후부터 밤까지 계속 미팅이 진행되었다.연정훈은 양시연을 데리고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들 대부분은 유명한 상품 업계를 이끄는 인물들이었다.이 사람들이 주로 논의하는 주제는 최근 화서시에서 있었던 큰 사건 즉 화서시와 해외 합자 기업 회신테크가 어떻게 노산 시티의 거대 기업인 일성 그룹을 위기에 처했는지에 관
“오후에 얘기를 끝내고 곧 헤어졌어.”양시연이 담담하게 말했다.양혁수는 가볍게 웃으며 물었다.“연정훈 씨와 공적인 얘기를 할 일이 있어?”양시연은 태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어차피 나랑 연정훈 씨는 공적인 얘기밖에 할 게 없으니까.”“...”전화기 너머에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옆에 있던 연정훈도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잠시 후 양혁수가 조용히 말했다.“밖에서 조심하고 내일 일 끝나면 바로 집에 와서 자.”“알았어.”이 짧은 대화는 겉으로 보면 평범한 남매 사이의 대화처럼 들렸다.전화를 끊고 난 뒤 양시연은 고개를 돌려 연정훈을 바라보며 물었다.“일성 그룹의 일이 바로 정훈 씨가 말했던 기회인가요?”연정훈은 여전히 창밖을 바라본 채 대답했다.“맞아.”양시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일성 그룹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형 기업으로 C150 시장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곳이었다. 최근 C150의 가격이 급등하던 시점에서 일성은 가격이 정점에 도달했다고 판단해 재고를 매도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들의 예상과 달리 국제적 사건으로 인해 가격은 더더욱 상승했고 일성은 손실을 보았지만, 매수 청산을 하지 않고 끝까지 버텼다. 문제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재고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회신테크는 이 기회를 노리고 가격을 더 끌어올리며 일성을 압박하기 시작했다.“지금 상황을 보면 회신테크는 처음부터 일성을 겨냥한 거예요. 일성이 재고 부족으로 대응하지 못할 걸 알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 가격을 계속 끌어올려 일성을 완전히 무너뜨릴 준비를 한 거예요.”양시연은 잠시 계산을 해본 뒤 다소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만약 천 회장이 기한 내에 C150을 충분히 납품하지 못하면 일성의 손실은 몇백조 원을 넘어설 거예요.”수년간 업계를 주름잡았던 거대 기업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양시연은 연정훈을 바라보며 물었다.“정인도 중공업 회사인데 혹시...”“없어.”연정훈의 단호한 대답에 양시연은 어이가 없었다.“..
양시연은 민지연 같은 철없는 아이에게 더 이상 화낼 기운조차 없었다.민수희는 특별한 신분을 지닌 연호민의 아내였기에 그녀의 장례식은 평범한 이들의 장례보다 훨씬 더 복잡했다. 영정이 마련되자마자 조문객들이 하나둘 찾아들기 시작했다.양석진은 다음 날 오후에 도착했다. 그가 제사를 마치자 곧이어 양지원도 도착했고 연정훈과 양시연은 두 사람을 직접 맞이해 뒤쪽 휴게실로 안내했다.두 사람 모두 충분히 잠을 자지 못한 모습이었고 양석진이 입을 열었다.“우리 신경 쓰지 말고 너희들 일에 집중해.”연정훈은 떠났고 양시연은 남아 부모님께 차를 따라주었지만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고 양지원은 이마를 가볍게 톡톡 쳤다.“그만하고 가서 연정훈 도와줘. 지금 사람은 여기에 있지만 마음은 다른 곳에 있잖아.”양시연은 민망하게 웃으며 아무 말 없이 곧바로 뛰어나갔다.그녀가 떠난 뒤 양지원이 고개를 들어 양석진과 눈이 마주쳤고 급히 시선을 피하자 양석진은 태연하게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결혼한 것뿐인데 양씨 아가씨를 놀라게 해서 본가로 가게 만들다니 내가 좀 체면이 있는가 봐.”양지원은 말문이 막혔다.“...”양지원은 입술을 오므리며 대꾸했다.“누가 놀랐다는 거예요?”“그러면 왜 도망쳤어?”양석진이 되물었는데 양지원은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그녀는 너무 많은 것을 고려하고 무서워했기에 잠시 고민에 빠졌을 뿐이었다. 양석진의 생각이 터무니없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묘한 끌림이 느껴졌다. 도망친 것이 아니라 정답을 찾지 못해서 전략적인 후퇴를 선택한 것이었고 집으로 돌아가 차분히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아이고.”양지원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턱으로 창밖을 가리켰다.“지금 장례를 치르고 있잖아요. 석진 씨는 뭐 하러 온 거에요? 여기서 결혼 얘기를 꺼내다니.”양석진은 침묵했다.“...”...연씨 가문은 장례를 3일 동안 치르기로 했고 마지막 날에는 화장을 진행할 예정이었다.둘째 날에는 가장 많은 사람이 애도의
민수희의 병세가 갑자기 악화하여 모두를 놀라게 했다.양시연은 방에서 짐을 싸고 있었고 연정훈은 전화로 상황을 파악하고 일정을 조정하느라 바빴다. 항공편 문제로 그들은 바로 갈 수 없었고 연정훈은 오전 비행기를 예약하고 먼저 가서 양시연은 쉬게 하려고 했다.“괜찮아요. 나도 같이 갈 거예요.”양시연은 민수희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때때로 밖에서 상대방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체면을 차려야 할 때가 있었다. 할머니가 위독하다면 며느리가 장례가 끝난 후에 가는 것은 듣기에도 좋지 않다.게다가 만약 장례가 치러지면 양시연은 연정훈과 함께 안팎으로 도와야 한다.연정훈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고 그들은 해가 밝기 전에 평소처럼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양시연은 그가 잠들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아침이 되어 두 사람은 문제를 해결하느라 바쁘게 움직였고 결국 세운행 비행기에 올랐다.점심 전 드디어 병원에 도착했고 연재혁 부부는 이미 도착해 있었으며 그 외에도 민씨 가문 사람들과 가까운 친척들이 병원 복도에 가득 서 있었다.연정훈이 병실에 들어가 상황을 확인하고 나오자 의사는 말했다.“지금은 집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습니다.”모두 그 말의 의미를 이해했고 연재혁은 눈시울이 붉어졌으며 민씨 가문 사람 중 몇 명은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양시연과 표세연은 한쪽에 서서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오후에 민수희는 퇴원해 집으로 돌아갔고 집 안에서는 간간히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것이 진심인지 가식인지 알 수 없었다.양시연은 민수희의 병세가 너무 빠르게 진행된 것 같아 의심스러웠고 표세연은 작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나이가 많아서 사실 넘어졌다가 겨우 회복되었는데 또 밤새 잠을 안 자고 연정훈 삼촌을 생각하며 정인의 일까지 신경 쓰다 보니 그렇게 힘든 걸 못 견디고 있는 거야.”연정훈 삼촌에 대해 양시연은 잘 알지 못했지만 민수희가 고령에 아들을 낳고 나이가 들어서는 자식의 죽음을 겪는 것이 참 불쌍하다고 생각했다.“연정훈과 양시연 두 사람
“나를 조사한다고?”“네. 못하게 하려고요?”연정훈은 웃으며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추고 부드럽게 말했다.“마음대로 조사해.”양시연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사실 양시연은 그렇게 화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연정훈이 자신과 채팅하려고 다른 계정을 만들었다는 고도의 계산과 엉뚱한 발상이 놀라웠을 뿐이었다.양시연이 진지하게 조사하려 하자 연정훈은 개인적인 것부터 공적인 것까지 모든 계정과 관련된 정보를 솔직히 공개했다. “이메일! 이메일은요?”“세 개 있고 비밀번호는 다 똑같아.”연정훈이 자발적으로 정보를 제공하자 양시연은 그의 책상에서 일어나 그의 무릎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본격적으로 조사에 들어갔다.연정훈은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양시연이 자신을 신경 쓰고 더 붙잡으려 할수록 그의 마음속에는 묘한 기쁨이 피어올랐다.“이건 개인용이야.”연정훈은 양시연이 마우스를 잡은 손 위에 자기 손을 얹으며 직접 가이드를 해줬다.양시연은 눈을 굴리며 갑자기 무언가 떠올린 듯 고개를 돌려 연정훈을 바라보며 농담처럼 하지만 반쯤 진지한 표정으로 턱을 들어 물었다.“그러면 전에 정훈 씨가 말했던 거 기억나요? 당신이랑 소현주 씨가 관계를 확정하기 전에 꽤 오랫동안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던 거.”연정훈은 잠시 멈칫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응.”“그 이메일 아직 있어요?”“그 이메일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아.”양시연은 실망한 듯 가볍게 혀를 차며 말했다.“정말 사랑했나 봐요. 그래서 그때의 편지도 다시 보지 않으려고 이메일까지 지운 거겠죠.”연정훈은 양시연의 코를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그런 걸로 놀리지 마. 그냥 귀찮아서 정리한 거야.”양시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연정훈은 그녀가 진심으로 신경 쓰고 있다는 걸 깨달았는지 조용히 이메일 계정과 비밀번호를 건네며 말했다.“마음대로 해.”“쳇. 누가 궁금하다고 했어요.”양시연이 입술을 삐죽 내밀자 연정훈은 그녀의 옆얼굴에 살며시 입을 맞추며 나지막이 말했다.“관심 없으면 됐어.
“다시 아니라고 해봐요.”서재에서 양시연은 책상을 향해 단호하게 손바닥을 내리쳤다.“정훈 씨, 바로 당신이 엔이잖아요.”연정훈의 손은 아직 책상의 전원 버튼 위에 머물러 있었다. 방금 그는 재빠르게 컴퓨터 전원을 꺼버렸고 양시연은 다시 켜보려 했지만 이미 모든 것이 드러난 상태였다.연정훈이 또 변명을 꺼내려는 순간 양시연은 단호한 손짓으로 그를 가리키며 말했다.“지금 제대로 말하지 않고 거짓말을 한다면 오늘 밤 침실에 들어올 생각하지 마세요.”연정훈은 잠시 고민하더니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맞아. 나야.”양시연은 어이없었다.“...”‘아!’양시연은 화가 치밀어 이를 악물며 방 안을 서성였다.“정훈 씨, 정말 뻔뻔하네요.”연정훈은 등을 곧게 세운 채 최대한 침착한 태도로 양시연을 바라보며 말했다.“나는 단지 다른 방식으로 너에 대해 더 알고 싶었을 뿐이야.”“거짓말하지 마세요.”“...”“결혼 전 당신이 말했던 인생철학이나 도리는 결국 나를 속이기 위한 핑계였잖아요. 이건 거의 사기 결혼 수준이죠.”‘정말 나쁜 놈. 다른 계정을 만들어서 결혼하자고 설득하다니. 이런 방식으로 사람을 대하다니 어처구니가 없네.’연정훈은 순간 할 말을 잃었지만 논리와는 상관없이 기세를 세우려는 듯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위급한 상황에는 위급한 방법이 필요한 법이야. 그때 넌 날 너무 밀어냈잖아. 선택지가 없었다고.”“듣기 싫어요.”양시연은 깊게 숨을 내쉬고 연정훈의 맞은편으로 돌아서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우리가 냉전 중일 때도 당신 나랑 채팅했잖아요.”“...네가 너무 힘들까 봐.”양시연은 비웃음 섞인 웃음을 흘리며 그를 비꼬았다.“정말 내가 걱정돼서 그랬어요? 내가 외롭고 지쳐서 당신한테 개인 사진까지 보낸 거였나요?”연정훈은 얼굴 한 번 붉히지 않고 한결같은 태도로 대답했다.“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양시연은 주변을 둘러보다 두꺼운 책 한 권을 찾아 들었다. 마치 벽돌처럼 묵직해 보이는 책을 들어 올린 그녀는 연정
아직 침실로 가지 않았는데 두 사람은 이미 서재의 소파에서 웃음과 장난을 치고 있었다.양시연은 헝클어진 머리칼을 가만히 손으로 쓸어 넘기며 가쁜 숨을 고르고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정훈 씨, 정말 너무해요. 나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잔뜩 남아 있다고요.”연정훈은 양시연 옆에 비스듬히 누워 한 손으로 턱을 받친 채 미소 띤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머리 끈을 들어 건네주었다.양시연은 대충 머리를 묶으며 연정훈의 손에서 머리 끈을 받아 든 후 퉁명스럽게 말했다.“저 목말라요. 가서 물 떠와요.”연정훈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양시연의 뒤로 손을 뻗어 묶은 머리를 살짝 당겼다. 양시연은 참지 못하고 그의 팔을 몇 번 때렸다.연정훈은 소파에서 내려와 가까운 곳에서 물을 가져와 양시연에게 먼저 건넸다. 양시연은 시원하게 마신 뒤 소파에 누워서 연정훈은 다시 물을 따라와 그녀 맞은편에 앉아 마시기 시작했다.양시연은 옆으로 누워 그에게 물었다.“정훈 씨, 할머니 건강은 좀 어때요?”“별로 좋지 않아.”“네?”양시연은 당황했다. 그녀는 연정훈의 태도를 보고 적어도 할머니가 당분간은 괜찮을 거로 생각했기 때문이다.연정훈은 말했다.“나이가 많으셔서 생로병사는 자연스러운 일이야.”양시연은 연정훈의 말에서 할머니에 대한 큰 애정을 느낄 수 없었다.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면서도 연정훈은 단지 교양과 품위를 지키려는 마음에서 손자 역할을 간신히 다하는 것 같았다.그렇게 생각한 양시연은 느긋하게 고개를 들고 그가 물을 마시는 모습을 바라보았다.‘응?’양시연은 속으로 의문을 가지고 눈을 가늘게 떴다.방금 연정훈과 장난을 치느라 어깨를 덮은 진한 색 잠옷 상의 단추가 풀려 쇄골이 살짝 보였고 양시연이 앉은 위치에서 유리컵을 들고 물을 마시는 그의 뛰어난 턱선이 잘 보였다.‘잘생기긴 했지만...왜 이렇게 익숙하게 느껴지지?’양시연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고 맞은편에서 연정훈은 영문도 모른 채 정색하며 무언가 중요한 얘기를 꺼내려 했다.“잠깐.
‘망했어.’반우희는 송민재의 말이 점점 더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시연은 충분히 반우희 데리고 갈 수 있는 위치에 있었지만 결정권을 부승원에게 넘겨버린 상황이 의아했다. 결국 양시연이 부승원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사실이 확실해 보였다.“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반우희가 초조하게 물었다. 송민재는 살짝 기침하고 여유로운 태도로 말했다.“기다려야죠. 부 변호사 쪽에서 곧 팀 명단을 보내줄 겁니다. 만약 그 명단에 우희 씨 이름이 없다면 그때 가서 부 변호사에게 직접 부탁하세요.”반우희는 그 말을 듣고 맥이 빠졌다.‘부승원의 성격에 내가 아무리 부탁해도 통할 리가 없잖아.’하지만 마지막 희망을 붙잡으려는 듯 그녀는 부승원의 사무실 쪽을 몰래 훔쳐보며 첫 번째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그 시각 부승원은 책상에 앉아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 비서가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왔지만 부승원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물었다.“무슨 일이야?”비서는 두 가지 중요한 업무를 간단히 보고한 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반우희 씨 문제는 우리 쪽 인원을 배정해서 처리해도 괜찮을까요?”그제야 부승원이 고개를 들었고 비서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 미소를 띠고 덧붙였다.“게다가 만약 우리가 부주의하게 처리해서 사기 사건 같은 문제라도 연루되면 업계에서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잖아요.”부승원은 비서의 말을 듣고도 아무 대답이 없었다. 보통이라면 이런 침묵에 비서가 당황했겠지만 이번엔 달랐다.비서는 이미 부승원이 반우희에게 특혜를 준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 일의 뒷수습도 자신이 처리했기 때문이다.잠시 후 부승원은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 또 같은 실수가 발생하면 그 책임은 본인이 져야 할 거야.”“알겠습니다.”비서는 예상했던 반응이라 놀라지 않았고 부승원의 얼굴을 살짝 살피며 조용히 물러날 준비를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부승원이 다시 그녀를 불렀다.“다른 일이라도 있습니까?”부승원은 잠시 생각에
“양시연 언니, 저 오늘부터 같이 갈 수 있는 건가요?”반우희가 반짝이는 눈으로 물었다.양시연은 부승원의 반응을 떠올리며 눈앞의 작고 귀여운 소녀가 더 마음에 들었다. 양시연은 의미심장하게 미소 지으며 반우희의 볼을 살짝 꼬집었고 반우희는 애교를 부리며 양시연에게 더 가까이 다가왔다. “오늘은 안 돼요.”양시연이 말하자 반우희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응?’반우희는 금세 자세를 고치며 애처로운 얼굴로 물었다.“저 안 데려가요?”양시연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너를 이용해 큰 물고기를 낚으려는 거야.’양시연은 반우희의 손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부 변호사님께 이미 얘기했어요. 며칠 뒤에 부 변호사님이 팀을 이끌고 정인에 들어가실 건데 우희 씨도 그 팀에 합류해서 함께 가면 돼요. 이게 가장 적합한 방법이에요.”반우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을 반짝였다.‘좀 돌아가는 느낌인데 그냥 바로 데려가면 되잖아.’반우희는 계속해서 간절한 표정으로 설득하려 했지만 양시연은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걱정하지 말아요. 길어야 삼사일 내로 우희 씨도 정인에 갈 수 있을 거예요.”“그럼...”“240만이에요.”양시연은 장난스럽게 윙크했고 반우희는 얼굴이 환해지며 손을 흔들었다.“그럼 언니, 조심히 가세요!”“다음에 봐요.”양시연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떠났고 뒤에서 반우희는 마치 만화 속 캐릭터처럼 환한 얼굴로 행복을 온몸으로 표현했다.‘너무 좋아!’그런데 고개를 돌리자 반우희는 유리창 너머로 부승원의 냉혹한 얼굴을 발견하고는 순간 고개를 푹 숙이고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부승원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며 침묵했다.“...”한편 위층에서 양시연은 노래를 흥얼거리며 휴대폰을 꺼내 연정훈에게 해결되었다고 메시지를 보냈다.연정훈은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그렇게 쉽게?]양시연은 다리를 꼬며 여유로운 미소를 띠고 타이핑을 이어갔다.[부승원 씨가 처음엔 단호하게 안 된다고 했지만 내가 살짝 놀라게 했더니 배우고 싶다고
양시연은 입꼬리가 살짝 떨렸고 송민재는 빠르게 반응하며 반우희를 끌어당겼다.“알았어요. 우희 씨의 일은 나중에 얘기하고 먼저 양시연 씨와 부 변호사님과 중요한 얘기를 해야 해요.”“네? 그런데 저는...”“그만 말해요.”송민재는 반우희를 끌고 나갔지만 반우희는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며 양시연을 간절히 바라봤다.‘언니, 저를 잊지 마세요.’양시연은 침묵했다.“...”사무실 문이 닫히고 양시연은 미소를 지으며 부승원을 향해 몸을 돌렸다. 부승원은 냉정한 표정을 유지하며 연필을 쓰레기통에 던졌다.“연정훈이 양시연 씨에게 남겨준 팀이 부족해서 나한테 폐품을 구하러 온 거에요?”양시연은 어이없었다.‘저 입은 연정훈보다 더 못됐어.’양시연은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방문한 이유를 말했지만 부승원은 대답했다.“능력이 부족해서 그 일은 할 수 없을 것 같아요.”양시연은 잠시 침묵했다.“...”양시연은 이 상황을 예상하고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당황하지 않고 말했다.“부 변호사님, 겸손하시네요. 능력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너무 급하게 찾아온 게 문제겠죠. 바쁘신데 시간을 낼 수 없는 것도 이해합니다.”부승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서 선반에서 파일을 꺼내기 시작했다. 양시연은 다시 한번 부승원을 떠보았다.“부 변호사님, 연정훈 씨의 부탁이라 생각하고 한 번만 배려해 주세요.”부승원은 대답했다.“전 협력자를 찾을 때는 상대의 능력과 안목만 봅니다. 누구의 체면도 보지 않죠.”양시연은 웃으며 말했다.“부 변호사님, 저를 무시하는 건가요? 제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부승원은 얼핏 미소를 보였지만 여전히 무표정했다.“반우희를 눈여겨본 사람이 누구죠? 내가 생각하기엔 당신의 안목이나 능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다고 봅니다.”양시연은 미소를 지으며 그를 응시했다.“반우희를 먼저 눈여겨본 건 부 변호사님 아니었나요?”부승원은 잠시 멈칫하며 이마를 찌푸렸고 양시연은 두 다리를 꼬고 앉아 여유롭게 차를 마셨다.“내가 봤을
부승원은 냉정한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했다.“처리할 능력이 없으면 애초에 문제를 만들지 말았어야지. 네가 사기를 당한 건 네 욕심 때문이야. 욕심이 없었다면 애초에 너를 노리지 않았겠지.”반우희는 그의 말에서 도덕적 결함을 느끼고 곧바로 반박했다.“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이건 피해자 유죄론 이에요!”그녀는 말을 마치고는 송민재와 양시연을 번갈아 쳐다보며 속으로 외쳤다.‘이거 보세요. 변호사가 이런 말을 할 수 있어요?’양시연은 웃음을 꾹 참으려다 결국 터트리고 말았고 송민재도 헛기침하며 억지로 웃음을 삼켰다.하지만 부승원은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냉정하게 물었다.“그 건담 피규어의 중고 시세가 얼마인지 알고 있나?”반우희는 입술을 삐죽이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진열장에만 있었을 때는...천만 원 정도였어요.”“그래. 그럼 너는 얼마에 팔았지?”“...1600만 원에 팔았어요.”반우희는 고개를 빳빳이 들며 덧붙였다.“근데 그건 그 고객이 먼저 제안한 금액이에요.”부승원은 조소를 띤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사기꾼이 먼저 제안하지. 네가 제안하길 기다리겠냐?”반우희는 눈이 반짝이며 손등으로 손바닥을 치며 소리쳤다.“이거 보세요. 부 변호사님도 인정했잖아요. 그 고객이 사기꾼이라고요!”부승원은 어이없었다.“...”반우희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시 주위를 둘러보며 억울함을 호소했다.“좋아요. 저도 솔직히 살짝 욕심이 났던 건 인정할게요. 하지만 그건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 수 있는 거잖아요. 문제는 그 여자가 먼저 사기를 쳤다는 거죠. 그건 명백히 잘못이고 비도덕적이고 무엇보다 불법이에요.”양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동의했다.“맞는 말이네요.”송민재는 방울토마토를 하나 더 입에 넣으며 천천히 덧붙였다.“어쨌든 난 우희 씨 편이에요.”반우희는 송민재의 말을 듣고 힘을 얻은 듯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며 부승원을 바라봤다.속으로는 이렇게 외쳤다.‘보세요. 보통 사람이라면 다 저를 동정한다고요!’그러나 부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