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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4화

“다시는 당신 보고 싶지 않으니까.”

이연석이 이런 말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지만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하늘이 무너질 만큼 억울해 보였다.

정가혜가 다가가 자세히 물어보려 했지만, 심형진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연석 씨가 아마 너무 심하게 다쳐서 감정이 불안정한 것 같아. 우리 먼저 가자. 여자 친구분이 달래줄 거야.”

심형진이 상기시켜 주지 않았다면 정가혜는 이연석의 여자 친구가 여기 앉아 있다는 걸 거의 잊을 뻔했다.

정가혜는 말을 멈추고 이연석을 한 번 더 쳐다본 뒤 시선을 거두고 심형진을 따라 나갔다.

그들이 떠나자마자 이연석은 고통으로 몸을 웅크렸고, 결국 모니터에서 경보음이 울렸다.

배하린은 이연석이 화가 나서 눈을 뒤집더니 곧바로 고통으로 기절하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 미친 듯이 의사를 불렀다.

이연석은 그날 다시 한번 응급실에 실려 가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눈 속의 분노는 사라지고 절망과 서늘함만 남아있었다.

병상에 누워 창백한 얼굴을 한 이연석을 보며 배하린은 안타깝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다.

“분명 어릴 때는 나를 좋아했는데, 고작 몇 년 지났다고 그 늙은 여자를 사랑하게 됐어?”

눈이 먼 사람이라도 이연석이 정가혜를 미치도록 사랑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한마디에 기절할 정도로 화가 났던 것이다.

“그 여잔 널 화나게 하는 것 말고 뭐가 좋아?!”

배하린은 컵에 빨대를 꽂으며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네가 이렇게 다쳤는데도 약혼자를 데리고 와서 널 괴롭히다니, 분명 널 안중에도 두지 않는 거야.”

“넌 이런 여자 때문에 나랑 헤어지고 날 해외로 쫓아냈는데, 결국 넌 뭐 하나 얻은 게 없잖아.”

이연석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눈을 들어 창밖만 바라봤다.

배하린은 그가 슬픔에 빠져 모든 것에 흥미를 잃은 것 같아 보여 어쩔 수 없다는 듯 손에 든 컵을 내려놓았다.

“이연석, 나도 네 첫사랑이었고 아프리카에서 널 구해주기도 했는데, 어떻게 하나도 미련이 없어?”

병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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