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이수는 호텔 문 앞의 기둥에 기댄 채 담배를 피우면서 번쩍이는 부산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몇 대 피운 후 지루해진 그는 담배를 버리고는 한 손을 주머니에 넣고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다.들어가자마자 소파에 앉아 술잔을 들고 있는 이연석을 발견했다. 불빛이 어두컴컴해 더욱 흐릿하게 보였다.그리고 아가씨들이 옆에서 이연석에게 잘 보이려고 갖은 애교를 떨었지만 이연석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단이수는 문 앞에서 잠깐 지켜보다가 그의 옆에 앉았다.“왜 그래? 이젠 여자한테도 관심이 없어? 고자가 된 거야?”소파에 축 늘어졌던 이연석은 단이수를 싸늘하게 째려보았다.“그 입 닥쳐.”단이수는 가볍게 웃더니 종업원이 건네는 술을 받고 한 모금 마셨다.“혹시 지금 배하린 때문에 이리 넋이 나간 거야?”친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뻔히 알면서 일부러 빙빙 돌려서 말했다.“보고 싶으면 내가 전화할게. 전화 받자마자 바로 달려올걸?”이연석은 단이수를 째려보았다. 기분이 별로인지 더는 뭐라 하지 않았다.단이수는 이연석의 이런 모습을 처음 봤다. 처음 연애하고 배하린에게 아무 이유 없이 차였을 때도 이런 적이 없었다.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하던 단이수는 시간을 계산했다.‘샤워하고 분위기 잡고 하면 지금쯤 시작할 때 됐겠네.’이대로 더 지체했다간 이연석이 잊지 못하는 여자를 완전히 잃을지도 모른다. 단이수는 독한 술 한 병을 들고 이연석에게 건넸다.“이거 다 마시면 뭐 하나 알려줄게.”“관심 없어.”지금 그 무엇도 이연석의 흥미를 끌어내진 못했다. 부산에 계약하러 온 게 아니었더라면 아마 밖에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그런 이연석의 모습에 단이수는 술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가혜 씨에 관한 거야.”그 순간 이연석의 잘생긴 얼굴이 살짝 변하긴 했지만 그리 선명하진 않았다. 단이수는 눈썹을 치켜올리면서 말했다.“3년이나 아꼈던 누나한테도 이젠 관심이 없는 거야?”그러자 이연석이 피식 웃었다
단이수는 다시 손목을 들어 시계를 보았다.“지금 안 내려가면 늦어.”이연석은 그를 째려보았다.“할 얘기 있으면 그냥 해. 빙빙 돌리지 말고.”그의 태도에 단이수는 되레 알려주기 싫었다.“다른 남자랑 8층 방에 들어갔어.”이연석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더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단이수를 보았다.“정가혜 말이야?”단이수가 두 눈을 깜빡였다.“응. 아까 내려가다가 가혜 씨가 다른 남자랑 8층 가는 거 봤어.”그러고는 다시 시간을 확인했다.“벌써 30분이 지났어. 둘이 했는지 모르겠네...”단이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옆에 있던 이연석은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룸을 뛰쳐나갔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눈앞에서 사라졌다.그 모습에 단이수는 피식 웃었다.‘신경 쓰지 않는다더니 다른 남자랑 호텔 방에 들어갔다니까 바로 뛰쳐나가는 것 좀 봐. 이번에 여자한테 제대로 잡혔어.’잠시 후 단이수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웠다. 그는 테이블 위의 술잔을 들고 가볍게 몇 모금 마셨다. 예전에는 술이 걱정을 덜어준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젠 쓰기만 했고 게다가 마실수록 점점 쓴 것 같았다. 마음이 씁쓸해서 술맛도 잃은 모양이다.‘연석이 봐봐. 이수 넌 절대 연석이 같은 실수를 해선 안 돼. 자기 마음 잘 보고 잘해줘.’정가혜가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주서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서희 씨, 이 늦은 밤에 무슨 일이에요? 혹시 연이가 떼를 썼나요?”주말에 부산으로 온 정가혜는 연이를 데리고 올 수 없어 주서희에게 이틀 맡겼다.평소 연이를 챙겼던 정가혜는 연이가 저녁에 잠들기 전에 장난이 심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30분 이상 놀아주지 않으면 절대 자지 않았다.“연이는 말 잘 듣고 있어요.”‘말을 잘 듣는다고?’주서희의 품에서 자는 척하는 연이는 얼핏 보면 참 말을 잘 듣는 것 같았다. 하지만 사실은 귀를 쫑긋하고 두 사람의 통화를 엿듣고 있었다.‘가혜 이모 또 서희 이모한테 고자질하고 있어. 나중에 가혜 이모가 돌아오면 밤에 장난치는 시간을 한 시간으로 늘
“미쳤어?”“그러게 말이야. 한밤중에 뭐 하는 짓이야?”호텔에 묵은 투숙객들이 화를 내면서 욕설을 퍼부었다.이연석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손가락을 튕기자 한 무리의 경호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경호원들은 현금이 담긴 돈 봉투를 나눠주었다. 조금 전까지 욕설을 퍼붓던 투숙객들은 얌전히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그런데 문을 걷어찬 방 중에 단 두 개의 방만 문이 꽉 닫혀있었다. 한창 휴대 전화를 말리던 정가혜는 헤어드라이기 소리가 하도 커서 듣질 못했다.심형진도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끼고 수술 과정을 열심히 지켜보느라 아무 소리도 듣질 못했다.이연석은 앞으로 다가가 방문을 힘껏 걷어찼다. 아무런 인기척도 없자 굳게 닫힌 다른 방 앞으로 다가갔다.이번에는 구두를 신은 채 있는 힘껏 걷어찼다. 어찌나 세게 걷어찼는지 문에 걸린 번호 패마저 뚝 떨어졌다.정가혜는 소리를 듣고 헤어드라이기를 껐다. 누군가 문을 걷어차는 것 같아 휴대 전화를 내려놓고 문 쪽으로 다가갔다.“정가혜, 문 열어!”문을 열려던 정가혜는 분노와 짜증이 섞인 이연석의 목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랐다.“지금 심형진이랑 같이 있는 거 알아. 당장 문 열어!”걷어차여 흔들리는 문을 보며 정가혜는 눈살을 찌푸렸다.“이연석 씨, 당신 미쳤어요?”문밖에서 더 걷어차려고 발을 든 이연석은 정가혜의 목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만약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더라면 다시 올라가서 단이수를 한 대 치려 했다. 이게 다 단이수가 헛소리를 해서 벌어진 일이니까.그런데 지금 정가혜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이연석은 온몸이 다 떨렸다.이런 기분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었던지라 이마에 식은땀마저 송골송골 맺혔다. 이젠 화가 나다 못해 무감각해졌고 숨을 쉬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안 그러면 심장이 멈췄다고 생각할 것이다.그런데 이연석은 그 문을 열 용기가 없었다. 혹시라도 더러운 장면을 목격할까 봐 너무도 두려웠다.‘근데 이 문을 열지 않으면 두 연놈이 밤새 즐길 거잖아. 그 꼴을 어
정가혜는 이연석의 손을 따라 잠옷을 내려다보았다.이연석과 만날 때 이연석은 그녀의 낡은 옷들을 모두 버렸고 매주 비싼 옷들을 가득 보냈다.그녀의 옷장에는 온통 이연석이 사준 옷과 가방, 그리고 액세서리였다. 명품 브랜드에 신상이 나오면 이연석은 바로 사서 보냈다.그가 사준 게 정말 셀 수 없이 많았다. 어릴 적부터 근검절약하며 살아온 정가혜는 버리기 아까워 계속 입고 있었다.그런데 이연석이 콕 집어 말하자 그제야 잘못됐음을 깨달았다.‘전 남자 친구가 준 물건은 다 돌려줬어야 했는데 왜 그 생각을 못 했지?’그 점을 깨달은 정가혜의 안색이 갑자기 바뀌었다.“돌아가면 나한테 선물했던 것들 다 돌려줄게요.”그러고는 이연석을 더 쳐다보기도 싫은 듯 급히 문을 닫으려 했다.이연석은 한 발로 문틀을 막고 문을 밀며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 모습에 정가혜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정가혜의 경계심 가득한 행동이 이연석의 화를 돋우고 말았다. 그는 그녀의 손목을 꽉 잡고 벽 쪽으로 밀어붙였다.힘이 센 이연석은 한 손으로 정가혜의 두 손을 잡은 후 뒤로 가져갔다. 그 바람에 정가혜는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고개를 숙이자 높은 콧대가 정가혜의 매력적인 빨간 입술에 여러 번이나 스쳤다.정가혜는 손을 움직일 수가 없어 이연석을 발로 걷어차려 했다.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다가 입술이 그의 볼에 닿기도 했다.가볍게 몇 번 스쳤을 뿐인데도 이연석은 온몸에 전기가 흐른 것처럼 찌릿했다. 하지만 아직 화가 난 상태라 그쪽으로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다.이연석은 싸늘한 얼굴로 계속 반항하는 정가혜를 노려보다가 길고 탄탄한 허벅지로 미친 듯이 발버둥 치는 그녀를 가두었다.“이연석 씨, 대체 뭐 하자는 거예요?”비록 이연석과 아무것도 하진 않았지만 심형진이 지금 이 모습을 본다면 대체 뭐라 설명해야 할까?이연석은 다른 한 손으로 정가혜의 볼을 잡고는 예쁘고 매력적인 얼굴을 눈앞으로 가까이 가져다 댔다.“내 질문에 아직 대답 안 했어요.”이연석은 정가혜의
“선생님, 환자 갑자기 복강 내 출혈이...”꽉 닫힌 욕실 문을 열기 전에 다른 한쪽 이어폰에서 집도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심형진은 하는 수 없이 다시 자리로 돌아와 이어폰을 끼고 수술을 가르쳤다.이연석은 정가혜와 키스하다가 산소 부족으로 숨이 가빠져서야 키스를 멈췄다. 정가혜도 가쁜 숨을 몰아쉬었고 너무도 화가 나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따귀를 후려갈기고 싶었지만 손과 발이 잡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하여 그저 이를 꽉 깨물고 씩씩거리며 욕만 퍼부었다.“이연석 씨, 나 남자 친구 있는 거 몰라요? 지금 나더러 남자 친구 어떻게 보라고 이러는 건데요?”이연석은 남자 친구라는 소리에 겨우 가라앉았던 화가 또다시 끓어올랐다.“내가 헤어지라고 했잖아요. 헤어지기 싫다면 양다리 걸칠 준비나 해요, 그럼.”두 눈에 핏발이 선 이연석이 이 말을 내뱉었을 때 정가혜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당신은 정말 이상한 사람이에요.”“맞아요!”이연석이 고개를 숙이고 이를 깨물었다.“난 이상하고 문제 많아요. 어릴 적부터 정상이 아니었어요.”거의 포효하듯이 소리쳤다. 목소리가 방 전체에 울려 퍼지자 정가혜는 화들짝 놀라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조용히 해요.”“왜요? 들을까 봐 무서워요?”이연석은 다시 그녀의 볼을 잡고 꾹 눌렀다.“우리가 이러는 거 볼까 봐?”그러고는 또 일부러 정가혜의 귓가에 바람을 불었다.“생중계로 그 사람한테 보여주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난.”“미친!”정가혜는 이를 악물고 그를 욕했다.“미친 짓 다 했으면 이거 놓고 나가요!”그런데 이연석이 그녀의 귀를 깨물었다.“가혜 씨, 내가 미치는 건 다 당신 때문이고 당신이 날 이렇게 만들었어요.”그는 예전에는 둘째 형이 왜 서유가 다른 남자와 자는 걸 그렇게 싫어했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까 얼마나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픈지 제대로 느꼈다.이연석은 개의치 않아 할까? 아니, 죽어도 받아들
“대체 뭐 하자는 거예요?”이연석은 정가혜를 욕실 앞으로 끌고 가더니 욕실 문 쪽으로 밀어붙였다. 화들짝 놀란 정가혜가 고개를 돌렸다. 간유리 사이로 등을 돌리고 앉아있는 심형진의 모습이 보였다.심형진은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끼고 있어 소리도 듣지 못했고 보지도 못했다. 정가혜는 혹시라도 그에게 들킬까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그런데 이연석은 그녀가 당황하든 말든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한 손으로 그녀의 손목을 잡고 다른 한 손을 잠옷 안으로 넣었다.그가 직접 가르친 거라서 어느 부위가 가장 민감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손이 살짝만 닿았을 뿐인데도 정가혜는 꼼짝도 하질 못했다.“연석 씨, 당신...”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퉁퉁 부은 입술로 술 냄새와 담배 냄새가 훅 들어왔다. 그녀 입안의 공기마저도 다 빼앗아버렸다.이연석은 마치 그녀를 벌하듯이 마구 키스했고 손으로 계속 그녀의 민감한 부위를 어루만졌다.정가혜는 이런 모습의 이연석을 처음 봤다. 정말 미친 사람이 따로 없었고 앞뒤라곤 가리지 않았다.겁이 난 그녀는 미친 듯이 발버둥 쳤다. 세 살 어린 이연석은 나이만 어릴 뿐 힘은 놀라울 정도로 셌다.이연석은 고개를 숙여 그녀의 귀와 목에 키스하기 시작했다. 정가혜는 분노를 참으면서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연석 씨, 난 형진 선배랑 아무 일이 없었어요. 그러니까 이러지 말아요. 무고한 사람한테 상처 주지 말라고요.”심형진과 아무 일도 없었다는 소리에 터질 것처럼 아팠던 심장의 고통이 순식간에 덜해졌다. 하지만 뒷말이 또 이연석을 자극하고 말았다.그는 정가혜의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잡고 입꼬리를 씩 올렸다. 그야말로 조롱이 가득한 웃음이었다.“그 사람이 상처받는 건 안 되고 난 받아도 된다는 거예요?”정가혜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를 벗어나려고 힘을 주면 줄수록 더 벗어날 수 없어서 차라리 포기하고 그냥 노려보기만 했다.그녀가 이젠 말도 섞지 않자 이연석은 화가 나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고 손가락마저 부들부들 떨렸다.“
심형진과 헤어질 거란 소리에 이연석의 분노도 점차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그는 정가혜를 한참 동안 쳐다보다가 손을 들어 품에 안았다. 마치 잃었던 소중한 보물을 다시 얻은 것처럼 꼭 안았고 내려놓기 아쉬웠다.“가혜 씨, 심형진이랑 헤어지면 예전처럼 나랑 다시 만나요. 앞으로는 절대로 다른 여자 만나지 않고 가혜 씨한테만 잘해줄게요. 가혜 씨만 괜찮다면 우리...”부모님을 만나고 결혼까지 하자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정가혜가 고개를 내저었다.“아니요. 난 연석 씨 다시 만날 생각 없어요.”정가혜의 허리를 감싸고 있던 손이 갑자기 굳어졌다. 이연석은 품속의 그녀를 내려다보았다.“그게 무슨 말이에요?”“귀먹었어요?”정가혜는 무서울 게 없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연석 씨랑 다시 만나지 않고 남자 친구도 만나지 않을 거예요. 앞으로 쭉 혼자 살겠어요.”‘남자 해서 뭐 해. 돈 많이 벌어서 나중에 경로당이나 사서 간병인 찾아 남은 인생을 사는 것도 얼마나 좋아. 나처럼 버려진 고아는 가정을 꾸릴 자격도 없어. 그냥 혼자서 늙다가 죽어야지.’정가혜는 이연석을 힘껏 밀어냈다. 이연석은 넋이 나간 듯 멍한 표정이었다.“당신...”이연석은 정가혜의 고집이 이렇게 셀 줄은 몰랐다. 남자 친구를 만나지 않는 한이 있더라도 그와 다시 만날 생각은 없다고 했다.‘나랑 만나는 게 그렇게 싫은가?’“가혜 씨.”이연석은 정가혜의 코앞까지 다가갔다.“날 또 거절했네요. 앞으로 가혜 씨랑 다시 만나자는 얘기 절대 안 할 겁니다.”정가혜는 그의 말을 아예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하든 말든 그냥 짜증 섞인 얼굴로 그를 밀어냈다.“먼저 나가 있어요. 적어도 형진 선배랑 단둘이 얘기할 시간은 줘야죠. 헤어지는데 옆에서 감시라도 할 거예요?”정가혜의 말투가 어찌나 차분한지 모든 걸 다 체념한 듯했다.이연석은 얼굴을 찌푸린 채 그녀를 빤히 보다가 결국 돌아섰다. 방을 나가기 전 발걸음을 멈추고 정가혜를 싸늘하게 돌아보았다.“깔끔하게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던 경호원은 마지못해 라이터를 꺼내 담배에 불을 붙인 뒤 그의 입에 가져다 댔다.“도련님, 처음 한 모금 빨 때 폐로 들이마시지 마세요. 사레에 걸릴 수 있습니다.”콜록콜록.경호원이 담배를 피우는 법을 가르쳐주기도 전에 한 모금 빨아 마시던 그는 사레에 걸려 연속 기침을 했다.“도련님, 괜찮으십니까?”깜짝 놀란 경호원은 얼른 굳은살이 박인 손을 들어 그의 등을 두드렸다.힘이 너무 세서 그를 아프게 할까 봐 조심스럽게 간지럽히듯 그의 등을 쓰다듬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가까스로 숨을 돌린 그가 다시 담배를 집어 입에 넣었다. 정가혜도 피우는 담배를 난 왜 안 되는데?담배를 물기도 전에 큰 손이 다가와 그의 입에서 담배를 낚아챘다. “네가 뭔 담배를 피운다고 난리야?”고개를 들어보니 흰색 정장 차림으로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단이수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졌다.“내놔.”대답하기 귀찮았던 단이수는 담배를 집어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휴지통에 던졌다. “너 또 이러면 누나한테 전화할 거야.”이승하가 없으니 제멋대로인 이연석을 제지할 수 있는 사람은 이승연뿐이었다. 차가운 누나의 얼굴이 떠오른 그는 더 이상 담배를 달라는 소리를 하지 않았지만 얼굴의 분노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씩씩거리는 친구를 보며 단이수는 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겪어본 사람으로서 솔직하게 말하는데. 좋아한다면 소중히 여겨. 그 여자한테 상처 주지 말고.”“그 여자랑 싸우고 억지 부리면 결국은 내 꼴이 될 거야. 나중에는 울면서 무릎 꿇고 빌어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더라.”별처럼 반짝이던 그의 눈 밑에 걷잡을 수 없는 우울함이 가득했다.과거의 자신을 원망이라도 한 듯 두 눈에 슬픔이 차올랐다. 뼈에 사무친 기억을 접어두고 그가 다시 이연석의 어깨를 힘껏 두드렸다.“내 말 들어. 잃고 난 다음에 후회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붙잡아.”“난 너랑 달라.”한참을 타일렀지만 결국 그한테서 돌아온 대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