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는 천천히 몸을 돌려 사무실 의자에 몸을 기대고 있는 오만한 연지유를 바라보았다.화려한 그녀는 보잘것없는 서유를 들판의 잡초처럼 만들었다.서유는 단 한 번도 억울한 적이 없었지만 이 순간 갑자기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승리자의 발밑에 깔린 것 같았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소용이 없었다. 그녀는 아무런 배경도 권력도 없는 그저 무능하고 평범한 사람일 뿐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협박당하고 짓밟힘과 괴롭힘을 당했다.그녀는 운명에 맞서 싸우는 걸 포기하고 힘없이 물었다.“제가 뭘 어떻게 해야 사직서를 처리해 주실 거죠?”그 당시 4천만 원을 빌렸으니 6배인 2억 4천만 원의 위약금을 내야 했다. 그녀에게는 그렇게 큰돈이 없었기에 그저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연지유는 이제야 분별력 있게 행동하는 서유를 보고 더 오만해진 태도로 말했다.“간단해요. 김 대표님을 잘 케어하는 거예요. 김 대표님이 다시 부산으로 돌아가면 서유 씨 사직서 처리해 줄게요.”사직서를 처리해 주지 않는 건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녀에게 김시후를 케어하라니?서유는 이런 지시가 너무 내키지 않았다.“김 대표님은 제가 케어해 주는 걸 원하시지 않을 겁니다.”연지유는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그 사진을 여러 번 봤는데 김 대표님이 서유 씨를 바라보는 눈빛이 꽤 재밌더라고요.”서유가 뭔가를 더 말하려고 하자 연지유가 가차 없이 말을 잘랐다.“서유 씨는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돼요.”연지유는 이미 서유와 김시후를 긴밀한 사이라고 단정지은 것 같았다. 서유의 마지막 이용 가치까지 짜내지 않으면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이것이 자본가의 진정한 면모였다.서유는 더 이상 이야기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고 차갑게 한마디 뱉어냈다.“그때 가서 꼭 약속을 지켜주시길 바랍니다.”연지유는 팔짱을 끼며 서유에게 안심하라는 눈짓을 했다.“난 항상 약속을 지켜요.”번지르르한 말뿐이었다.서유는 연지유와 더 따지고 싶지 않아 다시 몸을 돌려 나갔다.사무실에 돌아온 서유
최민지는 염산이라는 두 글자를 듣고 겁에 질려 흠칫했다. 받아치려던 말조차 그 순간 목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서유는 시선을 돌려 옆에서 몸을 움츠리고 감히 한마디도 못 하는 임유라를 바라보았다.“나이 많은 남자와 잔 건 당신이잖아. 근데 왜 날 비난하는 거야?”임유라는 서유가 사람들 앞에서 자기의 비밀을 얘기할 줄은 몰라 화를 냈다.“무슨 뜻이에요?”서유는 싸늘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최민지가 당신의 능력에 대해 이미 모든 사람에게 말했어요. 무슨 뜻인지 말하지 않아도 알죠?”임유라는 고개를 돌려 최민지를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난 널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뒤에서 그런 소리를 해?”최민지는 평소에 참기만 하던 서유가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임유라의 일을 말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화가 나서 서유의 뺨을 때리려고 했지만 오히려 서유에게 손목을 잡혔다.서유는 최민지를 바라보며 비웃음을 날렸다.“당신이 이 뺨을 때리는 순간 난 당신의 모든 재산을 잃게 만들 거야.”최민지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졌다.“그깟 뺨 때리면 뭐! 네가 어떻게 내 재산을 다 잃게 만들 건데?”서유는 최민지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가 비웃었다.“당신이 그랬잖아. 나 스폰서 많다고. 그중에 아무나 데려와도 당신 정도는 짓밟아 버릴 수 있어.”서유는 말을 마친 후 그녀의 표정이 어떻든지 상관하지 않고 그녀를 밀어내며 몸을 돌려 그 자리를 떠났다.최민지는 서유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서유, 이 미친년아. 내가 너 가만두지 않을 거야.”서유는 못 들은 척 곧장 화장실로 들어갔다.그녀는 예전에 겪었던 굴욕들을 오늘 모두 쏟아냈다.어떤 기분인지 말로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진작에 이렇게 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가 수도꼭지를 튼 뒤 세수하려고 하는데 원영이 들어왔다.그녀는 방금 동료들과 마실 밀크티를 사 들고 사무실에 돌아왔는데 최민지가 서유를 욕하는 걸 보고 다급하게 회장실로 서유를 찾으러 온 것이었다.“서유 씨, 무슨 일이에요?”그녀는
서유는 깊은 한숨을 쉬며 핸드폰을 꺼내 김시후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이건 어제 그를 도와 호텔을 예약할 때 그의 비서에게서 받은 정보였다.연결음이 3번 정도 울린 뒤 김시후의 침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서유 씨 무슨 일 있어요?”그녀는 멈칫했다. 김시후는 어떻게 그녀가 누군지 아는 것일까?“어제 내가 서유 씨 번호 저장했어요.”마치 그녀가 놀란 것을 알고 있다는 듯 김시후는 간단하게 설명했다.서유도 더 묻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김 대표님, 연 대표님께서 그동안 제가 동아 그룹을 대표해서 김 대표님을 케어하라고 하셨습니다. 혹시 제게 시키실 일 있으신가요?”“날 케어한다고요?”김시후는 조금 놀라며 말했다.“네 그렇습니다.”서유는 뻔뻔하게 대답했다. 김시후도 이런 요구에 올랐겠지만 그녀 자신도 어이가 없었다.상대방은 잠시 침묵한 뒤 뭔가를 이해한 듯 입을 열었다.“마침 이번 서울 출장에 제 개인 비서가 없었는데 제 사무실에 와서 차나 커피를 내주는 업무라도 서유 씨한테 부탁드려도 될까요?”서유는 김시후가 거절할 줄 알았지만 그녀에게 개인 비서의 업무를 부탁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설마 김시후는 그녀에게 숨은 의도가 있을 거라고 의심도 하지 않는 걸까?그녀는 머뭇거렸지만 그래도 순순히 대답했다.“알겠습니다.”김시후는 손목시계를 확인했다.“조금 있다가 회의가 있어요. 서유 씨 언제 오실 수 있어요?”서유는 주소를 물은 뒤 대답했다.“언제든지 갈 수 있습니다.”상대방은 알겠다고 한 뒤 전화를 끊었다.그가 전화를 끊자 사무실 테이블 앞에 서 있던 김태진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김 대표님, 서유 씨는 분명 회사를 핑계로 대표님께 접근하는 겁니다. 그런데 왜 개인 비서 업무를 맡기시는 거죠?”김시후도 어제 자기를 무시하던 서유가 갑자기 오늘은 먼저 자기를 케어해주겠다고 하는 것인지 조금 이상했다.그러나 김시후는 그 사진 때문에 연지유가 서유와 자기의 사이를 오해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서유에게 그를 케어하고
서유는 프런트에 물어본 뒤 대표실로 향했다.김시후가 마침 지친 표정으로 이마를 문지르고 있었다.서유가 노크했다.“김 대표님.”김시후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왔어요.”서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다가가서 물었다.“제가 준비해야 할 것이 있나요?”전에는 동아 그룹의 파트너 회사에서 출장을 오면 스케줄을 짜 그들을 편하고 즐겁게 해주면 되었다.하지만 김시후는 그녀에게 개인 비서 업무를 맡겼기에 먼저 그녀에게 시킬 일은 없는지 물어봐야 했다.김시후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던 손을 내려놓은 뒤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준비할 건 없어요. 조금 있다 나 회의 갈 때 커피 좀 내려줄래요?”“알겠습니다.”서유는 말을 마친 뒤 사무실을 나갔다. 김시후는 멍하니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뒷모습은 마치 예전에 여러 번 본 것처럼 익숙하게 느껴졌다.‘기억나는 게 없어. 또 머리 아프네...’그는 고개를 흔들며 핸드폰을 들어 소준섭에게 문자를 보냈다.소준섭은 마침 학회에 참가하고 있었다. 그는 문자가 온 것을 보고 다급하게 핸드폰을 들어 문자를 보냈다.「또 머리가 아프다고? 뭐 생각난 거 없어?」「없어. 근데 한 사람을 보고 있으면 익숙한 느낌이 들어. 그리고 머리도 엄청 아파.」「그 사람이 누군데?」김시후는 이 질문을 보고 갑자기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만약 소준섭이 그의 두통이 서유 때문이라는 것을 알면 서유가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김시후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대충 ‘모르는 사람’이라고 둘러댄 뒤 회의가 있어 핸드폰을 내려놓았다.화진 그룹의 계열사는 서울시에서 규모가 부산시만큼 크지는 않지만 여전히 강동거리 대부분 건물을 차지하고 있었다.김시후가 소집한 임원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수십 명의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노트북을 들고 위층으로 올라왔다.순식간에 넓은 회의실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서유는 회의실 밖의 리셉션 공간에 앉아서 유리창을 통해 엘리트 임원들을 조금 부러운
김시후는 모든 사람의 표정을 무시하고 PPT를 설명하던 그 임원을 향해 턱을 치켜세웠다.“계속하세요.”그의 말에 임원은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그는 수입 상황을 보고할 때, 서유가 정보를 훔칠까 봐 숨기는 것이 있었다.서유도 상황을 살펴보고 더 이상 소리 내어 말을 끊을 수도 없었는지라 그저 얌전히 김시후의 옆에 앉아있었다.회의가 끝나자 서유는 그제야 쫓아 나가 김시후에게 물을 수 있었다.“왜 제가 방청하기를 원하십니까?”그러자 김시후는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서유를 내려다보더니 따뜻하게 대답했다.“서유 씨가 매우 동경하는 것 같아서요.”서유는 금세 어리둥절해졌다. 이런 이유 때문일 줄은 몰랐으니 말이다.“제가 화진 그룹 정보를 알고 동아 그룹에 보고할까 봐 두렵지 않아요?”“별로 중요하지 않은 숫자입니다. 그리고...”김시후는 잠자코 있다가 갑자기 입꼬리를 씩 올리며 웃었다.“나는 서유 씨의 사람 됨됨이를 믿어요.”그의 미소는 이전과 다르지 않았다. 깨끗하고 맑았으며 아주 환했다.서유는 마치 그가 자신의 인공 심장을 두 발로 부러뜨린 김시후가 아니라 여전히 송사월인 것 같았다.“서유 씨, 준비해요. 저랑 저녁에 연회에 가요.”서유는 잠시 어리둥절해지더니 이내 정신을 차렸다.“연회요?”김시후은 고개를 끄덕였다.“온씨 가문에서 주최하는 저녁 만찬에 갈 건데, 제가 파트너가 없어서요. 서유 씨가 잠시 대신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개인 비서가 파트너를 대신하는 역할도 하나?’온씨 가문은 특별히 혁혁한 가문이라고는 할 수 없고, 단지 재벌가라고 할 수 있다.그러니 이승하와 같은 신분의 후계자는 참석하지 않을 것이다.서유는 뒤늦게 생각하고는 곧 대답했다.어차피 입찰회가 끝나자마자 김시후는 부산으로 돌아갈 것이다.‘며칠밖에 시간이 안 남았으니까 조금만 참으면 금방 지나갈 거야. 그리고 화진 그룹 대표를 모시고 만찬에 참석한다면 반드시 그에 걸맞는 옷차림을 하고 가야지!’아니나 다를까 김시후는 곧장 그녀를 데리고
“대표님, 이제 가셔야 합니다.”김시후은 서유를 보고 넋을 잃었는데, 김태진이 옆에서 가볍게 기침을 하고서야 정신을 차렸다.그렇게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서유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들이 가게에서 나올 때, 마침 친구와 쇼핑하고 있던 안희연에게 목격되었다.그녀는 화장을 바꾼 서유를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서유를 처음 만났을 때도 안희연은 그녀가 기질이 있고 비교적 예쁘다고 느꼈다.그러나 이번에 서유를 보니 그녀가 뜻밖에도 여느 재벌 집 여식들보다도 더 고귀하다고 생각되었다.곧이어 안희연은 고개를 돌려 VIP 카드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는 브랜드 매장을 바라보고는 그제야 깨달았다. 이번에 서유가 찾은 남자가 임태진보다 더 돈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머리부터 발끝까지 이렇게 치장해주려면 적어도 20억은 들었을 텐데, 연석 오빠도 나한테 이 정도의 돈을 쓰지는 않았어!’이렇게 생각하니 그녀는 화가 치밀어올랐다. 똑같이 몸 팔러 나왔는데 왜 서유는 자신보다 좋은 사람을 가질 수 있냐면서 말이다.그녀는 씩씩거리며 핸드폰을 들어 이연석에게 보내는 동영상을 녹화했다.“연석 오빠, 이것 좀 봐. 서유 씨가 또 새 사람 찾았어. 다만 이번에 찾은 사람은 정말 돈이 많은 것 같아. 눈 깜짝하지 않고 20억을 써준다니까?”그녀는 서울의 모든 부유한 사람들을 연구해 본 적이 있지만, 김시후를 연구해 본 적이 없어서 그를 알지 못했다.그저 이제 막 떠오른 새내기인 줄 알았다. 아무래도 많이 젊어 보이니 말이다.한편, 이연석은 다른 사람들과 골프를 치고 있었는데 라운드를 마치고 앉아서 핸드폰을 보니 벌써 한 시간이 지나 있었다.그는 안희연이 보내온 영상을 보고는 화가 나서 이를 갈았다.‘김시후가 서유 씨한테 이런 대접을 해준다고?!’뒤이어 그는 골프채를 집어 던지고 영상을 이승하에게 전송했다.“형, 서유 씨 좀 봐요. 분명히 믿는 구석이 생긴 것 같아요.”회의를 하고 있던 이승하는 핸드폰이 울리는 소리를 듣고 집중이 흐트러졌다.예전의
서유는 한눈에 온재빈의 생각을 알아차렸다.특별히 저녁 만찬 연회를 열고 김시후를 초청하여 참석하게 하였는데, 아마도 자신의 여동생과 맺어주기 위함으로 추측되었다.하지만 온재빈은 그가 여자를 데리고 올 줄 몰랐었는지라 마음속으로 서유에 대한 의견이 마구 생겨나기 시작했다.그래도 가정교육을 잘 받은 탓인지, 온재빈은 그녀의 체면을 잘 봐주었고 이렇게 되면 서유 역시 자연히 그에게 잘 협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악수를 건네는 온재빈의 손을 잡고 웃었다.“안녕하세요.”이내 온재빈은 손을 놓고는 시선을 김시후에게 돌렸다.“우리 오랜만에 만났는데 술 한잔 마시고 옛이야기 나누러 가자.”그러나 김시후는 조금 마음이 편치 않아 서유에게 말했다.“저랑 함께 들어가요.”서유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온재빈을 힐끗 보고는 눈치 있게 거절했다.“배가 좀 고파서, 뭐 좀 먹으러 갈게요.”이윽고 김시후가 서유를 살피기도 전에 온재빈은 하인을 불러왔다.“이 아가씨 데리고 가서 음식 좀 대접하세요. 절대 홀대하지 마시고요.”그러자 하인은 서유에게 황급히 말했다.“자, 저를 따라오세요.”이렇게 한번 말해놓으면 사정을 다 알아도 친구를 거절하기 어려워 김시후는 서유에게 신신당부하였다.“함부로 어디 가지 말고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요.”서유는 아무런 표정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하인의 인솔하에 회식장으로 왔다.한식, 양식 등 모든 음식이 줄지어 늘어선 긴 탁자 위에 놓여 있다.서유는 소화가 잘되지 않아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지만, 하인의 접대에 이를 악물고 버섯 수프를 마셨다.그녀가 조용히 회식장 구역에 서서 수프를 먹고 있을 때, 갑자기 정원 밖에서 고급 차 몇 대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뒤이어 소수빈은 먼저 차에서 내려서 코니섹의 차 문을 열고 뒷좌석에 앉아 있는 존귀한 남자를 불러 내렸다.따스한 노란색 조명 아래 두 손을 주머니에 꽂고 차 문 앞에 서 있는 검은색 양복 차림의 남자.신에 의해 조각된 듯한 정교하고 입체적이며 흠잡을 데 없
이연석은 그와 서유의 일을 직접적으로 질문하지 않았는데, 주로는 서유가 이승하가 “기르던” 여자였기 때문에 체면을 주기 위해서였다.하지만 또 약속을 지키지 않는 김시후를 가만둘 수는 없었으므로 결국 온희수의 일로 트집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김시후은 이연석에게 곤욕을 치르면서도 화내지 않았다. 다만 그의 눈 밑에는 한기가 돌았다.“혼인은 제 허락을 받지 않고 아버지가 마음대로 한 결정입니다. 저는 이연석 씨 여동생분한테 장가들 생각 없어요. 그러니 진실로 받아들이지 마세요.”말문이 막힌 이연석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고, 곱던 얼굴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그 말은 파혼하겠다는 겁니까?”“약혼한 적이 없는 어떻게 파혼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겠습니까?”김시후는 담담하게 웃었다.확실히 그저 혼담이 오갔을 뿐이지, 실현되지는 않았으니 말이다.그리고 두 당사자의 동의도 없이 어떻게 직접 혼인을 할 수 있겠는가?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김시후가 이 말을 한 것은 이씨 가문의 체면을 봐주지 않은 점이 없지 않아 있었다.이연석은 평소 노는 데에만 습관이 되어 김시후와 같이 뭐든 노련하게 대하는 성질 따위를 배우지 않았다.곧이어 이연석은 김시후에게 “따뜻한” 교훈을 주려고 소매를 걷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이승하가 그를 저지했다.“연석아.”상석에 앉은 남자는 담담했지만 천하를 손안에 둔 듯한 시큰둥한 모습으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역시 이씨 가문의 유일한 후계자가 아니랄까 봐, 그 카리스마가 너무 강했다.이승하는 아무런 감정 없는 말투로 김시후를 담담하게 바라보았다.“애초에 김시후 씨 아버님께서 저희 집에 와서 혼인을 청한 것이니 그 약속을 무르셔도 상관없습니다. 그때 어떻게 청하셨으면 아버님께 어떻게 무르라고 하세요.”“청했다.”라는 말에 모든 사람이 고개를 돌려 보았다.‘원래는 김씨 집안이 이씨 집안 덕을 보려고 한 거였구나. 김씨 집안도 우리라 마찬가지네, 자식들을 팔아 입지를 굳히려는 걸 보면 말이야.’모두들 김시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