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넋을 잃은 채로 멍하니 이승하를 바라봤다.한편으로는 오랫동안 자신을 참아준 그에게 최소한 설명이라도 해줘야 할 것만 같았다.그녀는 몇 초 동안 망설이다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송사월은... 저와 평생을 약속했던 사람이에요.”이승하는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힌 듯 점점 슬퍼지는 그녀의 눈빛을 발견했다.그는 싸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많이 사랑하나 봐.”서유는 감정을 추스르고 담담하게 말했다.“많이 사랑했었죠.”이승하는 차갑게 물었다.“지금은?”“지금요?”서유는 그의 촘촘하고 얇은 입술과 칼날처럼 예리한 턱선이 눈에 들어왔고 그의 눈을 바라보니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라고 말하고 싶었다.하지만 그렇게 말할 용기가 없을뿐더러 그럴 자격이 없었고 이미 더럽혀진 그녀는 이승하를 사랑하면 안 됐다.그녀는 주먹을 불끈 쥔 채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었다.“아무도 사랑하지 않아요.”그 말인즉 그를 사랑한 적 없다는 뜻이다.담배를 끼고 있던 이승하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고 그는 직접 담배를 끄고선 창밖으로 던졌다.연기가 땅에 닿는 순간, 빨갛게 달아올랐던 눈시울도 순식간에 싸늘함으로 돌변했다.그는 차 문을 열며 차갑게 말했다.“내려.”서유는 이승하를 힐끗 보더니 그의 실망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사실 그를 매우 사랑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싶었다.하지만 워낙 자존심이 강했던 탓에 남자가 먼저 사랑을 표현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성격이었다. 상처를 받을까 봐 두려웠고, 진심을 표현하면 무시당하고 조롱당할까 봐 두려웠다.한때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던 송사월이 평생 잘해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결말은 어떠한가?상처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뻔했다.이승하는 송사월보다 더 고귀한 신분을 가진 사람이기에 절대 욕심을 내서는 안 된다.그녀는 자신의 신분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고 항상 자기 신분을 떠올리며 다시는 그때와 같은 어리석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리라 다짐했
서유는 알람이 한참 동안 울리고 나서야 서서히 잠에서 깼고 핸드폰을 들어보니 다행히도 오후 4, 5시가 아닌 아침 9시였다.이온 인터내셔널의 출근 시간은 10시였기에 아직은 여유로웠다.그녀는 일어나서 간단히 씻은 후 가방을 들고 회사로 향했다.허민이 어제 업무 인수인계를 하러 오라는 바람에 사무실로 돌아가는 게 아닌 곧장 꼭대기 층으로 향했다.서유는 조심스럽게 사무실 문을 노크했다.“허민 씨, 인수인계하러 왔어요.”그녀를 발견한 허민은 표정이 살짝 바뀌었다.“들어와요.”서유는 허민의 테이블로 걸어가 정중하게 물었다.“민지 씨는 제가 담당하던 일들을 인계받고 싶지 않은 모양이에요. 그럼 이제 누구한테 맡겨야 하죠?”허민은 어제 연지유가 해줬던 말들이 생각나 멋쩍은 듯 입을 열었다.“회사에서 일한 시간이 5년인데 퇴사하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바로 그만두는 건 너무 충동적인 행동이지 않을까요? 아니면 적합한 후임자를 찾을 때까지 다니는 건 어때요?”대표에게 비서만 해도 몇 명이나 되는데 굳이 적합한 사람을 찾을 때가지 기다리라는 그녀의 제안이 이해되지 않았다.서유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어제 아침만 해도 인수인계하라는 문자를 보내셨잖아요. 왜 이렇게 빨리 마음이 바뀌신 거죠?”생각보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그녀의 모습에 허민은 솔직하게 말했다.“어제 아침에 연 대표님이 퇴사를 동의한 건 맞아요. 그래서 곧바로 제가 메시지를 보냈잖아요.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번복하셨어요. 이제는 서유 씨의 퇴사를 동의하지 않는다는 거죠.”서유는 눈살을 찌푸리며 싸늘하게 물었다.“도대체 왜죠?”허민은 자신을 잘 모른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저도 잘 몰라요. 자세한 이유를 알고 싶은 거면 직접 연 대표님에게 여쭤봐요. 전 시키는 대로 하는 것뿐이에요.”서유는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지만 이 문제가 허민과 아무 관련이 없으며 모든 건 연지유에게 달려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녀는 허민과 얘기를 나누는 것이 아닌 곧장 연지유의 대표 사무실을 향해
그녀의 말은 재벌가에 시집가려면 예쁜 얼굴만 있어서 되는 게 아니라 그에 걸맞은 집안이거나, 아니면 적어도 뛰어난 학력은 갖추어야 한다는 뜻이었다.역시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연지유는 욕을 할 때도 육두문자를 쓰지 않고 상대의 열등감을 깊숙이 찔렀다.서유는 손을 꽉 쥐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연 대표님, 제가 재벌가에 시집을 가든 안 가든 그건 회사를 그만두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아무리 대표님이라도 저의 사생활까지 간섭하실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데요.연지유는 서유가 감히 자기를 다른 사람의 일에 간섭한다고 비웃을 줄은 몰랐다. 그녀는 어두워진 얼굴로 말했다.“당연히 내가 간섭할 일은 아니죠. 난 그저 좋은 마음으로 서유 씨한테 충고해 주는 거예요. 이렇게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불나방처럼 뛰어들다가 다시 이온에 돌아올 수 없어 후회할까 봐 걱정돼서요.”연지유의 말에 서유는 더 대꾸하지 않았다. 그녀가 사직서를 처리해 주면 허민에게 인수인계를 해주고 회사를 떠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연지유가 말을 바꿨다.“서유 씨, 이 사직서는 내가 꼭 처리해 줄게요. 근데 지금은 안 돼요.”서유는 눈살을 찌푸리며 이해가 되지 않아 물었다.“연 대표님 그게 무슨 뜻이죠?”연지유는 한숨을 쉬며 힘없이 말했다.“서유 씨도 알다시피 우리 그룹은 지금 부산에서 사업 확장을 잘못하고 있어요. 그리고 화진 그룹은 부산에서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릴 만큼 강대하죠. 우리 그룹이 더 강해지려면 화진 그룹의 도움이 꼭 필요한데 화진 그룹은 우리를 도와준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서유 씨가 김 대표님의 라인을 잘 탄 것으로 보여서 난 서유 씨가 남아줬으면 좋겠어요. 서유 씨가 있으면 화진에서 서유 씨의 체면을 세워주지 않겠어요?”연지유의 말은 서유에게 아직 이용 가치가 있으므로 사직서를 처리해 주지 않겠다는 것이었다.돌고 돌아 결국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하지만 아쉽게도 연지유의 계산은 틀렸다. 서유가 있으면 김시후는 더욱 체면을 세워주지 않을 것이다.서유는
서유는 천천히 몸을 돌려 사무실 의자에 몸을 기대고 있는 오만한 연지유를 바라보았다.화려한 그녀는 보잘것없는 서유를 들판의 잡초처럼 만들었다.서유는 단 한 번도 억울한 적이 없었지만 이 순간 갑자기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승리자의 발밑에 깔린 것 같았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소용이 없었다. 그녀는 아무런 배경도 권력도 없는 그저 무능하고 평범한 사람일 뿐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협박당하고 짓밟힘과 괴롭힘을 당했다.그녀는 운명에 맞서 싸우는 걸 포기하고 힘없이 물었다.“제가 뭘 어떻게 해야 사직서를 처리해 주실 거죠?”그 당시 4천만 원을 빌렸으니 6배인 2억 4천만 원의 위약금을 내야 했다. 그녀에게는 그렇게 큰돈이 없었기에 그저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연지유는 이제야 분별력 있게 행동하는 서유를 보고 더 오만해진 태도로 말했다.“간단해요. 김 대표님을 잘 케어하는 거예요. 김 대표님이 다시 부산으로 돌아가면 서유 씨 사직서 처리해 줄게요.”사직서를 처리해 주지 않는 건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녀에게 김시후를 케어하라니?서유는 이런 지시가 너무 내키지 않았다.“김 대표님은 제가 케어해 주는 걸 원하시지 않을 겁니다.”연지유는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그 사진을 여러 번 봤는데 김 대표님이 서유 씨를 바라보는 눈빛이 꽤 재밌더라고요.”서유가 뭔가를 더 말하려고 하자 연지유가 가차 없이 말을 잘랐다.“서유 씨는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돼요.”연지유는 이미 서유와 김시후를 긴밀한 사이라고 단정지은 것 같았다. 서유의 마지막 이용 가치까지 짜내지 않으면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이것이 자본가의 진정한 면모였다.서유는 더 이상 이야기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고 차갑게 한마디 뱉어냈다.“그때 가서 꼭 약속을 지켜주시길 바랍니다.”연지유는 팔짱을 끼며 서유에게 안심하라는 눈짓을 했다.“난 항상 약속을 지켜요.”번지르르한 말뿐이었다.서유는 연지유와 더 따지고 싶지 않아 다시 몸을 돌려 나갔다.사무실에 돌아온 서유
최민지는 염산이라는 두 글자를 듣고 겁에 질려 흠칫했다. 받아치려던 말조차 그 순간 목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서유는 시선을 돌려 옆에서 몸을 움츠리고 감히 한마디도 못 하는 임유라를 바라보았다.“나이 많은 남자와 잔 건 당신이잖아. 근데 왜 날 비난하는 거야?”임유라는 서유가 사람들 앞에서 자기의 비밀을 얘기할 줄은 몰라 화를 냈다.“무슨 뜻이에요?”서유는 싸늘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최민지가 당신의 능력에 대해 이미 모든 사람에게 말했어요. 무슨 뜻인지 말하지 않아도 알죠?”임유라는 고개를 돌려 최민지를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난 널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뒤에서 그런 소리를 해?”최민지는 평소에 참기만 하던 서유가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임유라의 일을 말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화가 나서 서유의 뺨을 때리려고 했지만 오히려 서유에게 손목을 잡혔다.서유는 최민지를 바라보며 비웃음을 날렸다.“당신이 이 뺨을 때리는 순간 난 당신의 모든 재산을 잃게 만들 거야.”최민지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졌다.“그깟 뺨 때리면 뭐! 네가 어떻게 내 재산을 다 잃게 만들 건데?”서유는 최민지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가 비웃었다.“당신이 그랬잖아. 나 스폰서 많다고. 그중에 아무나 데려와도 당신 정도는 짓밟아 버릴 수 있어.”서유는 말을 마친 후 그녀의 표정이 어떻든지 상관하지 않고 그녀를 밀어내며 몸을 돌려 그 자리를 떠났다.최민지는 서유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서유, 이 미친년아. 내가 너 가만두지 않을 거야.”서유는 못 들은 척 곧장 화장실로 들어갔다.그녀는 예전에 겪었던 굴욕들을 오늘 모두 쏟아냈다.어떤 기분인지 말로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진작에 이렇게 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가 수도꼭지를 튼 뒤 세수하려고 하는데 원영이 들어왔다.그녀는 방금 동료들과 마실 밀크티를 사 들고 사무실에 돌아왔는데 최민지가 서유를 욕하는 걸 보고 다급하게 회장실로 서유를 찾으러 온 것이었다.“서유 씨, 무슨 일이에요?”그녀는
서유는 깊은 한숨을 쉬며 핸드폰을 꺼내 김시후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이건 어제 그를 도와 호텔을 예약할 때 그의 비서에게서 받은 정보였다.연결음이 3번 정도 울린 뒤 김시후의 침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서유 씨 무슨 일 있어요?”그녀는 멈칫했다. 김시후는 어떻게 그녀가 누군지 아는 것일까?“어제 내가 서유 씨 번호 저장했어요.”마치 그녀가 놀란 것을 알고 있다는 듯 김시후는 간단하게 설명했다.서유도 더 묻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김 대표님, 연 대표님께서 그동안 제가 동아 그룹을 대표해서 김 대표님을 케어하라고 하셨습니다. 혹시 제게 시키실 일 있으신가요?”“날 케어한다고요?”김시후는 조금 놀라며 말했다.“네 그렇습니다.”서유는 뻔뻔하게 대답했다. 김시후도 이런 요구에 올랐겠지만 그녀 자신도 어이가 없었다.상대방은 잠시 침묵한 뒤 뭔가를 이해한 듯 입을 열었다.“마침 이번 서울 출장에 제 개인 비서가 없었는데 제 사무실에 와서 차나 커피를 내주는 업무라도 서유 씨한테 부탁드려도 될까요?”서유는 김시후가 거절할 줄 알았지만 그녀에게 개인 비서의 업무를 부탁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설마 김시후는 그녀에게 숨은 의도가 있을 거라고 의심도 하지 않는 걸까?그녀는 머뭇거렸지만 그래도 순순히 대답했다.“알겠습니다.”김시후는 손목시계를 확인했다.“조금 있다가 회의가 있어요. 서유 씨 언제 오실 수 있어요?”서유는 주소를 물은 뒤 대답했다.“언제든지 갈 수 있습니다.”상대방은 알겠다고 한 뒤 전화를 끊었다.그가 전화를 끊자 사무실 테이블 앞에 서 있던 김태진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김 대표님, 서유 씨는 분명 회사를 핑계로 대표님께 접근하는 겁니다. 그런데 왜 개인 비서 업무를 맡기시는 거죠?”김시후도 어제 자기를 무시하던 서유가 갑자기 오늘은 먼저 자기를 케어해주겠다고 하는 것인지 조금 이상했다.그러나 김시후는 그 사진 때문에 연지유가 서유와 자기의 사이를 오해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서유에게 그를 케어하고
서유는 프런트에 물어본 뒤 대표실로 향했다.김시후가 마침 지친 표정으로 이마를 문지르고 있었다.서유가 노크했다.“김 대표님.”김시후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왔어요.”서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다가가서 물었다.“제가 준비해야 할 것이 있나요?”전에는 동아 그룹의 파트너 회사에서 출장을 오면 스케줄을 짜 그들을 편하고 즐겁게 해주면 되었다.하지만 김시후는 그녀에게 개인 비서 업무를 맡겼기에 먼저 그녀에게 시킬 일은 없는지 물어봐야 했다.김시후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던 손을 내려놓은 뒤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준비할 건 없어요. 조금 있다 나 회의 갈 때 커피 좀 내려줄래요?”“알겠습니다.”서유는 말을 마친 뒤 사무실을 나갔다. 김시후는 멍하니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뒷모습은 마치 예전에 여러 번 본 것처럼 익숙하게 느껴졌다.‘기억나는 게 없어. 또 머리 아프네...’그는 고개를 흔들며 핸드폰을 들어 소준섭에게 문자를 보냈다.소준섭은 마침 학회에 참가하고 있었다. 그는 문자가 온 것을 보고 다급하게 핸드폰을 들어 문자를 보냈다.「또 머리가 아프다고? 뭐 생각난 거 없어?」「없어. 근데 한 사람을 보고 있으면 익숙한 느낌이 들어. 그리고 머리도 엄청 아파.」「그 사람이 누군데?」김시후는 이 질문을 보고 갑자기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만약 소준섭이 그의 두통이 서유 때문이라는 것을 알면 서유가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김시후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대충 ‘모르는 사람’이라고 둘러댄 뒤 회의가 있어 핸드폰을 내려놓았다.화진 그룹의 계열사는 서울시에서 규모가 부산시만큼 크지는 않지만 여전히 강동거리 대부분 건물을 차지하고 있었다.김시후가 소집한 임원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수십 명의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노트북을 들고 위층으로 올라왔다.순식간에 넓은 회의실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서유는 회의실 밖의 리셉션 공간에 앉아서 유리창을 통해 엘리트 임원들을 조금 부러운
김시후는 모든 사람의 표정을 무시하고 PPT를 설명하던 그 임원을 향해 턱을 치켜세웠다.“계속하세요.”그의 말에 임원은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그는 수입 상황을 보고할 때, 서유가 정보를 훔칠까 봐 숨기는 것이 있었다.서유도 상황을 살펴보고 더 이상 소리 내어 말을 끊을 수도 없었는지라 그저 얌전히 김시후의 옆에 앉아있었다.회의가 끝나자 서유는 그제야 쫓아 나가 김시후에게 물을 수 있었다.“왜 제가 방청하기를 원하십니까?”그러자 김시후는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서유를 내려다보더니 따뜻하게 대답했다.“서유 씨가 매우 동경하는 것 같아서요.”서유는 금세 어리둥절해졌다. 이런 이유 때문일 줄은 몰랐으니 말이다.“제가 화진 그룹 정보를 알고 동아 그룹에 보고할까 봐 두렵지 않아요?”“별로 중요하지 않은 숫자입니다. 그리고...”김시후는 잠자코 있다가 갑자기 입꼬리를 씩 올리며 웃었다.“나는 서유 씨의 사람 됨됨이를 믿어요.”그의 미소는 이전과 다르지 않았다. 깨끗하고 맑았으며 아주 환했다.서유는 마치 그가 자신의 인공 심장을 두 발로 부러뜨린 김시후가 아니라 여전히 송사월인 것 같았다.“서유 씨, 준비해요. 저랑 저녁에 연회에 가요.”서유는 잠시 어리둥절해지더니 이내 정신을 차렸다.“연회요?”김시후은 고개를 끄덕였다.“온씨 가문에서 주최하는 저녁 만찬에 갈 건데, 제가 파트너가 없어서요. 서유 씨가 잠시 대신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개인 비서가 파트너를 대신하는 역할도 하나?’온씨 가문은 특별히 혁혁한 가문이라고는 할 수 없고, 단지 재벌가라고 할 수 있다.그러니 이승하와 같은 신분의 후계자는 참석하지 않을 것이다.서유는 뒤늦게 생각하고는 곧 대답했다.어차피 입찰회가 끝나자마자 김시후는 부산으로 돌아갈 것이다.‘며칠밖에 시간이 안 남았으니까 조금만 참으면 금방 지나갈 거야. 그리고 화진 그룹 대표를 모시고 만찬에 참석한다면 반드시 그에 걸맞는 옷차림을 하고 가야지!’아니나 다를까 김시후는 곧장 그녀를 데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