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문을 열어 그녀를 차에 태운 다음 그가 이를 악문 채 허리를 굽히고 그녀의 옆에 앉았다. 의자에 살며시 기대자 흩어진 그의 잔머리들이 덩달아 살짝 떨렸다.앞에 앉아 있던 소수빈은 많이 아파하는 이승하의 모습에 연이를 안은 손에 무의식적으로 힘이 더 들어갔다. 방금 이승하가 서유를 향하고 있을 때, 마침 그를 등지고 있었기 때문에 소수빈도 이승하의 상처를 똑똑히 볼 수 있었다.그 값비싼 흰 셔츠에 붉은 피가 물들어졌다. 깜짝 놀란 그는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바로 그때, 이승하가 등 뒤에서 그한테 손가락질을 한 것을 보고 애써 참았다. 서유 씨 앞에서 대표님은 늘 자신의 생사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다. 그저 오로지 그녀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서유에 대한 이승하의 마음이 얼마나 깊은지 그는 알 수 없었다. 이 상황에 그저 운전기사한테 빨리 운전하라고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남자는 이마에 땀이 날 정도로 아파하면서도 그녀를 꼭 껴안고 있었다. 며칠 못 봤더니 무척 보고 싶었다. 그녀는 몇 번이나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지만 그가 고개를 들지 못하게 그녀의 머리를 살짝 눌렀다. 그의 허리를 감싸려고 손을 뻗었지만 남자는 그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이상한 느낌이 들었다.“승하 씨, 당신...”그의 품에서 억지로 고개를 들려고 할 때, 그가 머리를 숙이고 그녀의 붉은 입술을 삼켰다. 그녀의 뒤통수를 감싸고 더 깊게 그녀를 탐하기 전, 그가 소수빈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아이 눈 가리고 있어.”곧이어 속눈썹을 길게 늘어뜨리고 그녀의 입속을 파고들었다. 입안을 감싸고 있는 그녀의 향기에 그는 미친 듯이 키스를 퍼부었다. 그의 키스는 늘 공격적이었고 순식간에 그녀의 숨결을 빼앗아 갔다. 두 손도 모두 그에게 눌려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휘몰아치는 그의 키스에 숨을 쉴 수 없었던 그녀는 그의 다리에 반쯤 엎드려 있던 몸도 점차 나른해졌다.그녀가 몸부림치자 남자의 입에서 끙끙거리는 신음이 터져 나왔다. 키스 때문에 아니라 어디가 아픈
어르신이라는 세글자에 소수빈은 저도 모르게 몸이 떨렸다.“어르신께서는 대표님을 무척 마음에 들어 하신 거 아니었나요? 어찌 이리 갑자기 대표님한테...”강중헌이라는 사람은 무서운 사람이었지만 이승하를 대하는 태도는 남들과 전혀 달랐었다. 한 번도 이승하한테 벌을 내린 적도 없었고 이승하를 많이 믿고 었었다. 이승하가 성인이 되자마자 그는 바로 S 조직을 이승하에게 맡겼었다. 이승하의 대한 편애는 양아들, 양녀에게도 단 한 번 준 적이 없다.현재 S 조직의 복잡한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던 택이는 간단히 설명했다.“어르신께서는 보스한테 지씨 가문과 왕실 사이의 일에 끼어들지 말라고 하셨어요. 보스는 어르신의 뜻을 어기고 기어코 이 일에 나섰고요. 그래서 두 분 사이에 조금 갈등이 생긴 듯합니다.”소수빈은 미간을 찌푸렸다.“두 분 사이에 갈등은 자주 있었던 거 아닌가요? 게다가 대표님께서 이번 일은 김씨의 신분으로 나서신 것도 아닌데 어르신께서 왜 그리...”그 말에 택이는 손을 저었다.“소 비서님한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어르신께서는 아이를 데려오는 것을 허락하셨어요. 근데 아이를 되찾아오고 난 뒤 두 분이 함께 어디론가 가셨고 그곳에서 보스가 어르신한테 이 조직에서 탈퇴하겠다고 했어요. 그 바람에 어르신이...”대충 이해가 된 소수빈은 화를 벌컥 냈다.“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요?”고뇌에 빠진 택이는 미간을 찌푸렸다.“어르신께서 그런 게 아닙니다...”누구냐고 물어보려던 찰나 문밖에서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려와 소수빈은 이내 말을 아꼈다. 그들은 이승하를 부축해서 올라오기 전에, 집안의 하인들에게 위층으로 올라와 방해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조용히 2층에 올라와 자유롭게 걸어 다닐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이었을 것이다.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경호원들의 눈과 귀를 속이고 이리 대놓고 위층으로 올라오다니.택이와 소수빈은 눈을 마주친 후 몸을 돌려 욕실로 들어갔고 소수빈은 경
문을 조금 열었을 뿐인데도 피비린내가 진동했다.피비린내를 맡은 그녀는 순식간에 다리에 힘이 빠졌고 힘겹게 몸을 가누며 의사들을 밀어내고 빠른 걸음으로 안으로 들어갔다.바닥에 묻은 핏자국을 청소하던 소수빈과 택이는 서유가 들이닥치자 하나같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동작을 멈추었다.“서... 서유 씨.”아직 안 간 거야?눈물을 글썽이던 그녀의 시선이 바닥의 핏자국을 지나 침대에 엎드린 채 잠이 든 남자에게로 향했다. 탄탄하고 넓은 등, 약은 발랐지만 상처를 꿰매지 않은 탓에 빽빽한 칼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침대 시트는 아직 바꾸지 못했는지 피투성이가 되어있었고 핏물이 바닥으로 굴러떨어지고 있었다. 평소에 차갑고 도도하고 자신만만했던 남자가 지금은 어린아이처럼 허약한 모습으로 침대에 누워있으니 서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침대 곁으로 가서 몸을 웅크린 채 떨리는 손을 내밀었다. 상처들을 만져보고 싶었지만 또 그를 아프게 할까 봐 두려웠다.허공에서 스쳐 지나가던 그녀의 손끝이 그의 근육질 팔뚝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누군가의 손길이 전해지자 그가 잠결에 그윽한 눈을 번쩍 뜨고는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의 손을 잡았다.“승하 씨, 나예요.”시야가 흐리멍덩했지만 귀는 또렷하게 들렸기 때문에 그녀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그가 손을 뗐다.차가운 그의 눈빛은 그녀의 얼굴을 보자마자 점차 애틋하게 바뀌었다.“계속 여기 있었던 거야?”그가 눈을 뜨는 모습을 보고 그녀는 눈물을 왈칵 쏟았다.“당신이 이렇게 다쳤는데 내가 어딜 가요?”눈물을 흘리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그가 옅은 한숨을 쉬었다.그녀를 걱정시키는 게 싫어서 말하지 않았던 건데 결국 그녀한테 이리 들키고 말았다. 남자는 엄청난 고통을 참으며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울지 마.”분명히 다친 사람은 그인데 자신을 위로하는 그의 모습에 서유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등에 난 상처를 보면 Y국에 있는 이틀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을 겪은 것인지 상상이 되지 않
슬픔에 젖어있던 그녀는 그 말을 듣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이렇게 다치고서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예요?”원래 별생각 없던 남자는 멍하니 눈물을 흘리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붉게 물든 눈동자에 욕망이 차올랐다. 문득 지난번, 카펫 위에서 그녀를 괴롭혔던 일이 떠올랐고 나지막이 울음을 터뜨리며 애원하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침을 꿀꺽 삼키던 그는 아랫배가 팽팽해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지금으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다치지만 않았더라면 며칠 동안 당신을 별장에 가두고 맘껏 안았을 텐데 말이야.”그녀를 보고 있으면 밤이든 낮이든 가릴 것 없이 그녀를 안고 싶었고 그녀의 몸과 마음을 다 가져야만 비로소 만족했다. 그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던 그녀는 한동안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목 안 말라요? 물 좀 마실래요?”정신이 든 이승하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소 비서한테 데려다주라고 할 테니까 얼른 가서 쉬어. 내 걱정은 하지 말고.”그녀가 고생하는 게 싫었다.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지금 돌봐줄 사람이 필요한 그를 놔두고 어딜 갈 수 있겠는가?그녀는 가느다란 손을 뻗어 창백한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여기 남아서 당신을 돌볼 거예요. 그래야 나도 안심이 될 테니까.”자신을 돌보겠다는 그녀의 말에 그는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녀는 지금껏 그를 돌본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연이도 당신이 돌봐줘야 하잖아”“가혜한테 말해두었어요. 하룻밤만 챙겨달라고. 내일 가서 연이 여기로 데리고 올 거예요.”그녀는 모든 일을 다 안배하고 나서야 서둘러 이곳으로 온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도 연이를 안심할 수 없을 것이다. 단호한 그녀의 모습에 이승하는 더 이상 거절하지 않고 힘겹게 몸을 가누며 소수빈을 불렀다.“나 좀 욕실까지 부축해 줘.”결벽증이 심한 그는 몸에 핏자국이 남아있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하여 서유와 소수빈이 아무리 설득해도 말을 듣지 않
그녀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그의 곁을 지켰다. 아침 햇살이 창문을 통해 쏟아지니 그제야 피곤이 몰려왔다. 얼마 후, 정신을 차린 남자는 흐리멍덩한 두 눈을 뜨고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있는 여인을 바라보았다.따뜻한 햇빛이 그녀의 온몸에 스며들어 부드러운 기운을 뽐내고 있었다. 약기운이 지나간 후 찾아온 극심한 고통은 그녀를 이리 보고 있으니 한결 가벼워진 듯했다. 창백한 그의 얼굴에 옅은 웃음이 떠올랐고 예쁜 눈이 반달 모양으로 변해갔다. 그의 걱정 때문에 깊이 잠이 들지 못한 그녀가 이내 눈을 뜨고 무의식적으로 그의 이마를 더듬었다. 마침 별빛이 반짝이는 그의 눈동자와 마주친 그녀는 저도 모르게 그 눈동자에 빨려 들어가 시선을 뗄 수 없었다. 하늘의 별조차도 이 사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만큼 빛이 나는 남자였다. 그녀의 마음속에 이승하는 유일무이한 존재였다. 잠시 멍하니 그를 바라보던 그녀는 손을 그의 이마에 얹었다. 체온이 정상인 걸 보니 아마도 더 이상 열은 날 것 같지 않았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녀가 다정하게 물었다.“배고프죠?”남자는 고개를 젓더니 심한 통증을 참으며 그녀를 자신의 옆에 눕혔다.“잠 좀 자. 다른 건 신경 쓰지 말고”그녀는 그의 하인이 아니다. 이런 일은 그녀가 할 필요가 없었고 그저 그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따뜻한 미소를 짓던 그녀는 눈을 감기 전에 등에 난 상처를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남자의 긴 손이 그녀의 눈을 덮더니 그녀의 작은 머리를 눌렀다. “얼른 자.”나지막한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지자 걱정되고 두려웠던 마음이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갔다. 그녀는 그의 손을 잡고 고양이처럼 그의 옆에서 웅크린 채로 이내 잠이 들어버렸다. 며칠 동안 쌓은 피로와 당황하고 불안했던 마음이 그가 무사히 돌아온 후에야 비로소 조금씩 사라졌다. 얼마 후, 자고 일어났더니 의사가 와서 그에게 약을 발라주고 있었다. 감염되었기 때문에 약을 바르기 전에 반드시 상처를
“대표님은 어떻게 됐어요?”주서희는 원래 그의 상태를 확인하러 갈 생각이었으나 이승하는 외상을 입으면 늘 여자 의자가 아닌 남자 의사한테서만 검사를 받았었다. 그는 항상 그 누구도 그를 만지지 못하게 하였다. 그의 몸에 손댈 수 있는 여자는 오직 서유뿐이었다. 사실 그게 나쁜 것은 아니었다. 한 여자만 사랑한다는 뜻이니까. “심한 외상을 입었지만 다행히 내장은 다치지 않았어요. 의사 선생님께서 천천히 몸조리를 해야 한다고 하셨어요.”“그럼 결혼식은 어떡해?”옆에 있던 정가혜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다음 주 월요일이 발렌타인데이인데 이승하가 이 와중에 중상을 입었으니 결혼식을 어떻게 무사히 올릴 수 있겠는가?“지금은 침대에 누워 푹 쉬어야 해. 결혼식은 아마 예정대로 진행하기 힘들 거야. 다시 상의해서 날짜 잡아야지 뭐.”예정대로 결혼식을 올리고 싶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그의 몸 상태를 돌보지 않고 결혼식을 강행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정가혜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결혼식 일정을 바꾸는 수밖에...”이때, 옆에 있던 주서희가 장난스럽게 눈썹을 치켜올리며 입을 열었다. “대표님께서는 절대 시간을 바꾸지 않으실 거예요.”그토록 서유와의 결혼을 꿈꾸어왔던 그가 어찌 자신이 다쳤다는 이유만으로 결혼식을 미루겠는가?그는 늘 말한 대로 하는 성격이었다.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다쳤더라도 결혼식은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다. 하물며 등만 다쳤으니 결혼식을 미룰 이유가 더 없었다.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주서희를 보며 정가혜는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걷기조차 힘든 사람이 시간을 바꾸지 않으면 누워서 결혼식 진행하겠어요?”주서희는 팔짱을 끼고 단호하게 말했다.“못 믿겠으면 우리 내기할까요? 누구의 말이 맞는지.”내기를 하자는 말에 정가혜는 승부욕이 불타올랐다.“좋아요. 2천만 원 내기하죠.”말을 마친 그녀가 고개를 돌리고 서유를 향해 입을 열었다.“너도 할래?”신부가 영문도 모른 채 결혼식 내기에 끼어들다니. 그것도 신랑이 결혼식장에 올
“윤 선생이 아동심리학도 전공해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전문가예요. 연이를 치료해달라고 부탁할게요.”“윤 선생님 참 대단하네요. 두 사람 진짜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혼인신고는 언제 할 거예요?”“대표님이랑 서유 씨 결혼식 끝나면 혼인신고 하러 갈 거예요. 대표님 앞서 이런 일 치르는 건 아닌 것 같아서요.”피식 웃던 정가혜는 서유가 옆에 서 있는 것을 뒤늦게 발견하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너 왜 아직도 여기 있어?”서유는 경호원들에게 그녀들을 잘 보살펴 달라고 당부한 뒤, 소수빈과 함께 이승하의 별장으로 돌아갔다. 한편, 이승하는 이미 깨어나 있었고 방 안에는 가면을 든 줄지어 서 있었고 맨 앞리에는 택이가 서 있었다.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찰나 싸늘한 그의 목소리가 텅 빈 방 안에서 들려왔다. “택이 넌 케이시가 앨런을 차로 치어 죽이고 지현우에게 뒤집어씌운 증거를 왕실에 넘겨.”왕실에서 수년간 키워온 자가 왕실 사람을 죽였으니 그가 나서지 않더라도 왕실에서 케이시를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지현우의 모친인 심혜진은 Y국으로 돌아간 후, 심씨 가문의 권세를 등에 업고 왕실에 케이시를 내놓으라고 강요했다. 곧 Y국 쪽에서 케이시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오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이 지현우의 복수를 위해 힘쓰고 있으니 그는 여기까지만 하고 이제 그만 손을 떼는 것이 좋을 듯싶었다.현재 가장 어려운 일은 S 조직이다. 그 생각을 하고 있던 남자는 까맣고 그윽한 눈으로 눈앞에 있는 멤버들을 훑어보았다.무슨 말을 하려는 찰나 그가 문 틈새 사이로 슬그머니 돌아서는 서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승하는 그들을 향해 턱을 치켜들며 입을 열었다.“방금 내가 한 지시대로 당장 움직여.”사람들은 공손히 대답하고는 재빨리 가면을 쓰고 발길을 돌렸다.그들은 하나같이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었고 몸매가 좋아 보였으며 각자 다른 가면을 쓰고 있었다. 가면은 한 사람의 신분을 나타내며 서로만 상대가 누구인지 알고 다른 사람들은 전혀 몰랐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린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가 결정한 일은 누구도 바꿀 수가 없었다.손을 내밀어 헐렁한 그의 옷을 올려보니 등에는 온통 무균 반창고가 붙어 있었다. 이런 몸으로 케이시의 일을 처리하기 위해 옷을 입고 침대에서 일어났던 것이다.상처도 다 낫지 않았는데 기어코 결혼식을 강행하겠다는 남자를 보며 그녀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일단 침대로 가서 쉬어요. 결혼식 얘기는 나중에 해요.”조심스럽게 옷을 내리고는 그의 팔짱을 낀 채 그를 부축하여 침대에 눕히려는 찰나 남자가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나랑 결혼하기 싫어?”그녀를 내려다보고 있는 그가 눈시울이 약간 붉어졌다.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려온 결혼식인데 어떻게 나중에 얘기하자는 소리를 하는 건지?“난 당신 상처가 걱정돼서...”“죽는 한이 있어도 당신이랑 결혼부터 해야겠어.”그의 입에서 또 죽는다는 소리가 나오자 그녀는 그의 입을 틀어막으며 다급하게 말했다.“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그러고는 목소리를 낮추고 그를 달랬다.“일단 몸부터 추스르고요. 몸이 회복되고 나면 그때 결혼식 올려요. 네?”이승하는 한참 동안 그녀를 쳐다보고는 그녀의 손을 놓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마디도 하지 않는 그는 차가운 얼굴로 미간을 찌푸렸다. 이런 그의 모습이 두렵기도 하고 멀리 있는 사람처럼 손에 잡히지 않은 것 같았다.주먹을 쥐고 망설이던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 찰나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벽을 짚고 침대 쪽으로 한 발짝 한 발짝 힘겹게 걸어갔다. 핸드폰을 집어 들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교수님, 일주일 내로 제 상처 낫게 해주세요.”스피커 폰으로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그의 요구를 들은 이 교수는 난감했지만 결국 최선을 다해 보겠다는 말을 남겼다. 통화를 마친 그가 핸드폰을 집어던지고는 턱을 살짝 치켜든 채 서유를 쳐다보았다.“됐지? 이젠 예정대로 결혼식 진행해도 돼?”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던 서유는 결국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