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행동이 너무 이상했다는 걸 눈치챈 그녀는 얼른 소매를 정리하고는 아무렇지 않은 듯 서유를 쳐다보았다. “서유 씨, 언니가 현우의 딸까지 낳았으니 현우의 아내로 우리 집안의 공동묘지에 묻어요.”그녀는 한 발짝 물러서는 동시에 요구를 제안했다.“그리고 그 아이는 내가 키울 거예요.”아이를 원한다는 그녀의 말을 듣고 조지는 그제야 자신이 쓸데없는 소리를 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현우 씨의 유언은 서유 씨가 아이를 돌보는 것입니다.”지현우의 부모님은 이익을 중시하는 사람들이었다. 지현우의 말에 따르면 그가 말을 들을 때는 그를 후계자로 양성하였고 그가 말을 듣지 않을 때는 통제가 가능한 꼭두각시 조카에게 상속권을 넘겨주려 하였다고 한다. 아들한테까지도 이렇게 대하는 두 사람이 하물며 손녀딸한테 어떻게 대할지...그 도리를 알고 있던 서유도 이내 말을 꺼냈다.“이건 유연장에 서명까지 한 일이에요. 아이는 제가 돌보기로 했어요.”그 말에 심혜진은 어처구니가 없었다.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아이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버젓이 살아있는데 이모가 아이를 돌본다고?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심혜진은 겉으로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걱정하지 말아요. 아이를 푸대접하지 않을 테니까. 아이를 잘 돌보고 사랑을 듬뿍 줄 거예요. 최고의 명문 학교에도 보낼 것이고 우리 심씨 가문과 지씨 가문에서 공주님처럼 떠받들 거예요.”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일지도 모른다. 어찌 됐든 심혜진은 지현우를 끔찍하게 여겼으니까. 그러나 서유는 그녀가 뭔가 감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 두 자매와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 만약 원한이 있는 거라면 심혜진이 정말 연이한테 잘해줄까?서유는 심혜진의 말을 믿지 않았다. 재판을 하더라도 언니의 아이를 곁에 두고 싶었다. 그러나 이건 다 뒷말이고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연이로 데려오는 것이었다. 한편, 비록 지강현은 아들을 하나 잃었지만 또 다른 아들이 하나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케이시한테 악랄
그녀는 유골함을 들고 몇 번이나 어루만졌다.“언니, 앞으로 언니 보러 자주 갈게.”그녀는 검은 네모난 천을 유골함 위에 덮었다.정가혜는 옆에서 그녀에게 우산을 씌워주었고 두 사람은 김초희의 유골을 들고 서유의 별장으로 향했다. 이 모든 일이 다 끝나고 이틀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이승하는 한 시간마다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전했다. 하여 조금은 마음이 놓였던 그녀는 피곤했던 건지 침대에 누워 깊은 잠에 빠지게 되었다. 잠시 후, 잠에서 깨어난 그녀는 베개 뒤에 있는 핸드폰을 만졌다. 어젯밤, 이승하는 연이를 데려왔다고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었다. 그리고 그의 전용기는 다음 날 오전 10시 15분에 A시 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했다. 시간을 확인한 그녀는 곧 도착할 거라고 짐작하고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근데 그의 전화는 꺼져있는 상태였다. 아직 비행기에서 내리지 않은 줄 알고 그녀는 침대에서 일어나 샤워를 하고 나갈 준비를 한 다음 옷 몇 가지를 더 챙겼다. Y국으로 갈 준비를 마친 뒤, 다시 핸드폰을 집어 들고 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는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았고 그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화장대 앞에 앉아 그에게 여러 번 전화를 걸었지만 그는 여전히 받지 않았다.통화 연결음만 들려오자 서유는 당황스럽고 불안했다. 그녀는 집을 나서며 소수빈에게 얼른 차를 몰고 공항으로 가자고 했다.차에 앉아서 그녀는 그에게 계속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는 끝내 연결되지 않았다.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고 직감적으로 그한테 무슨 일이 생긴 것만 같았다. 평소에 그에게 전화를 하든 문자를 하든 그는 늘 바로 답장했었는데 이번에는 아니었다. 핸드폰을 꽉 쥐고 있는 그녀의 손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온몸은 마치 늪에 빠진 처럼 벌벌 떨고 있었다. 차가 공항에 멈춰서자 그녀는 소수빈이 문을 열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재빨리 차에서 뛰어내려 미친 듯이 도착 게이트로 향했다. 한 무리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안에서 걸어 나왔지만
연이라는 말에 서유는 그제야 연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통통하던 아이가 갑자기 살이 많이 빠진 모습에 그녀는 가슴이 아팠다.그녀는 서둘러 이승하의 품에서 떨어져 몸을 웅크리고 연이의 얼굴을 어루만졌다.“연이야, 왜 이렇게 살이 많이 빠졌어?”이모를 만난 연이는 작은 입술을 벌리고 무슨 말을 하려다가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고개를 숙인 채 인형을 가지고 놀며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서유는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케이시에게 총 쏘기 게임을 강요당하고 생부의 죽음을 직접 목격했으니 이리 충격을 받고 말이 없어진 것은 아닌지?한편, 이승하는 떨리는 몸을 애써 가누며 입을 열었다.“외상을 조금 입었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것 같아.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게 좋겠어.”케이시는 지현우를 죽게 만든 후, 아이에게도 잔인해졌다. 그동안 울음을 그치지 않은 연이를 작고 어두운 방에 가둔 것도 모자라 철장에 아이를 가두고는 아이한테 약간의 음식과 음료만 주었다. 만약 이승하가 제때 나타나지 않았다면 아이는 3일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연이의 사연을 들은 서유는 가슴이 찢어졌다. 그녀는 살이 쭉 빠진 연이를 품에 꼭 안고 아이의 등을 두드리며 다독였다.“연이야, 앞으로 이모랑 함께 살자. 이모가 다시는 너 상처받지 않게 할 거야.”아이는 길고 곱슬곱슬한 속눈썹을 가늘게 떨면서도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밝고 천진난만하던 아이는 마음이 완전히 무너진 것처럼 과묵한 꼭두각시 인형이 되어버렸다. 그런 연이를 보고 있자니 서유는 가슴이 무너졌다. 연이를 안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이승하의 몸에 두꺼운 코트가 걸쳐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녀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자세히 그를 훑어보았고 핏기 하나 없이 안색이 창백한 그의 모습을 보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왜 그래요?”이승하는 주먹을 쥔 채 한 손을 입술에 대고는 기침을 했다.“바람에 세서 감기 기운이 좀 있어.”말을 마친 그가 옆에서 멍하니 서 있는 소수빈을 향해 턱을
차문을 열어 그녀를 차에 태운 다음 그가 이를 악문 채 허리를 굽히고 그녀의 옆에 앉았다. 의자에 살며시 기대자 흩어진 그의 잔머리들이 덩달아 살짝 떨렸다.앞에 앉아 있던 소수빈은 많이 아파하는 이승하의 모습에 연이를 안은 손에 무의식적으로 힘이 더 들어갔다. 방금 이승하가 서유를 향하고 있을 때, 마침 그를 등지고 있었기 때문에 소수빈도 이승하의 상처를 똑똑히 볼 수 있었다.그 값비싼 흰 셔츠에 붉은 피가 물들어졌다. 깜짝 놀란 그는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바로 그때, 이승하가 등 뒤에서 그한테 손가락질을 한 것을 보고 애써 참았다. 서유 씨 앞에서 대표님은 늘 자신의 생사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다. 그저 오로지 그녀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서유에 대한 이승하의 마음이 얼마나 깊은지 그는 알 수 없었다. 이 상황에 그저 운전기사한테 빨리 운전하라고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남자는 이마에 땀이 날 정도로 아파하면서도 그녀를 꼭 껴안고 있었다. 며칠 못 봤더니 무척 보고 싶었다. 그녀는 몇 번이나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지만 그가 고개를 들지 못하게 그녀의 머리를 살짝 눌렀다. 그의 허리를 감싸려고 손을 뻗었지만 남자는 그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이상한 느낌이 들었다.“승하 씨, 당신...”그의 품에서 억지로 고개를 들려고 할 때, 그가 머리를 숙이고 그녀의 붉은 입술을 삼켰다. 그녀의 뒤통수를 감싸고 더 깊게 그녀를 탐하기 전, 그가 소수빈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아이 눈 가리고 있어.”곧이어 속눈썹을 길게 늘어뜨리고 그녀의 입속을 파고들었다. 입안을 감싸고 있는 그녀의 향기에 그는 미친 듯이 키스를 퍼부었다. 그의 키스는 늘 공격적이었고 순식간에 그녀의 숨결을 빼앗아 갔다. 두 손도 모두 그에게 눌려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휘몰아치는 그의 키스에 숨을 쉴 수 없었던 그녀는 그의 다리에 반쯤 엎드려 있던 몸도 점차 나른해졌다.그녀가 몸부림치자 남자의 입에서 끙끙거리는 신음이 터져 나왔다. 키스 때문에 아니라 어디가 아픈
어르신이라는 세글자에 소수빈은 저도 모르게 몸이 떨렸다.“어르신께서는 대표님을 무척 마음에 들어 하신 거 아니었나요? 어찌 이리 갑자기 대표님한테...”강중헌이라는 사람은 무서운 사람이었지만 이승하를 대하는 태도는 남들과 전혀 달랐었다. 한 번도 이승하한테 벌을 내린 적도 없었고 이승하를 많이 믿고 었었다. 이승하가 성인이 되자마자 그는 바로 S 조직을 이승하에게 맡겼었다. 이승하의 대한 편애는 양아들, 양녀에게도 단 한 번 준 적이 없다.현재 S 조직의 복잡한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던 택이는 간단히 설명했다.“어르신께서는 보스한테 지씨 가문과 왕실 사이의 일에 끼어들지 말라고 하셨어요. 보스는 어르신의 뜻을 어기고 기어코 이 일에 나섰고요. 그래서 두 분 사이에 조금 갈등이 생긴 듯합니다.”소수빈은 미간을 찌푸렸다.“두 분 사이에 갈등은 자주 있었던 거 아닌가요? 게다가 대표님께서 이번 일은 김씨의 신분으로 나서신 것도 아닌데 어르신께서 왜 그리...”그 말에 택이는 손을 저었다.“소 비서님한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어르신께서는 아이를 데려오는 것을 허락하셨어요. 근데 아이를 되찾아오고 난 뒤 두 분이 함께 어디론가 가셨고 그곳에서 보스가 어르신한테 이 조직에서 탈퇴하겠다고 했어요. 그 바람에 어르신이...”대충 이해가 된 소수빈은 화를 벌컥 냈다.“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요?”고뇌에 빠진 택이는 미간을 찌푸렸다.“어르신께서 그런 게 아닙니다...”누구냐고 물어보려던 찰나 문밖에서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려와 소수빈은 이내 말을 아꼈다. 그들은 이승하를 부축해서 올라오기 전에, 집안의 하인들에게 위층으로 올라와 방해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조용히 2층에 올라와 자유롭게 걸어 다닐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이었을 것이다.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경호원들의 눈과 귀를 속이고 이리 대놓고 위층으로 올라오다니.택이와 소수빈은 눈을 마주친 후 몸을 돌려 욕실로 들어갔고 소수빈은 경
문을 조금 열었을 뿐인데도 피비린내가 진동했다.피비린내를 맡은 그녀는 순식간에 다리에 힘이 빠졌고 힘겹게 몸을 가누며 의사들을 밀어내고 빠른 걸음으로 안으로 들어갔다.바닥에 묻은 핏자국을 청소하던 소수빈과 택이는 서유가 들이닥치자 하나같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동작을 멈추었다.“서... 서유 씨.”아직 안 간 거야?눈물을 글썽이던 그녀의 시선이 바닥의 핏자국을 지나 침대에 엎드린 채 잠이 든 남자에게로 향했다. 탄탄하고 넓은 등, 약은 발랐지만 상처를 꿰매지 않은 탓에 빽빽한 칼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침대 시트는 아직 바꾸지 못했는지 피투성이가 되어있었고 핏물이 바닥으로 굴러떨어지고 있었다. 평소에 차갑고 도도하고 자신만만했던 남자가 지금은 어린아이처럼 허약한 모습으로 침대에 누워있으니 서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침대 곁으로 가서 몸을 웅크린 채 떨리는 손을 내밀었다. 상처들을 만져보고 싶었지만 또 그를 아프게 할까 봐 두려웠다.허공에서 스쳐 지나가던 그녀의 손끝이 그의 근육질 팔뚝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누군가의 손길이 전해지자 그가 잠결에 그윽한 눈을 번쩍 뜨고는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의 손을 잡았다.“승하 씨, 나예요.”시야가 흐리멍덩했지만 귀는 또렷하게 들렸기 때문에 그녀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그가 손을 뗐다.차가운 그의 눈빛은 그녀의 얼굴을 보자마자 점차 애틋하게 바뀌었다.“계속 여기 있었던 거야?”그가 눈을 뜨는 모습을 보고 그녀는 눈물을 왈칵 쏟았다.“당신이 이렇게 다쳤는데 내가 어딜 가요?”눈물을 흘리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그가 옅은 한숨을 쉬었다.그녀를 걱정시키는 게 싫어서 말하지 않았던 건데 결국 그녀한테 이리 들키고 말았다. 남자는 엄청난 고통을 참으며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울지 마.”분명히 다친 사람은 그인데 자신을 위로하는 그의 모습에 서유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등에 난 상처를 보면 Y국에 있는 이틀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을 겪은 것인지 상상이 되지 않
슬픔에 젖어있던 그녀는 그 말을 듣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이렇게 다치고서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예요?”원래 별생각 없던 남자는 멍하니 눈물을 흘리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붉게 물든 눈동자에 욕망이 차올랐다. 문득 지난번, 카펫 위에서 그녀를 괴롭혔던 일이 떠올랐고 나지막이 울음을 터뜨리며 애원하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침을 꿀꺽 삼키던 그는 아랫배가 팽팽해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지금으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다치지만 않았더라면 며칠 동안 당신을 별장에 가두고 맘껏 안았을 텐데 말이야.”그녀를 보고 있으면 밤이든 낮이든 가릴 것 없이 그녀를 안고 싶었고 그녀의 몸과 마음을 다 가져야만 비로소 만족했다. 그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던 그녀는 한동안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목 안 말라요? 물 좀 마실래요?”정신이 든 이승하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소 비서한테 데려다주라고 할 테니까 얼른 가서 쉬어. 내 걱정은 하지 말고.”그녀가 고생하는 게 싫었다.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지금 돌봐줄 사람이 필요한 그를 놔두고 어딜 갈 수 있겠는가?그녀는 가느다란 손을 뻗어 창백한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여기 남아서 당신을 돌볼 거예요. 그래야 나도 안심이 될 테니까.”자신을 돌보겠다는 그녀의 말에 그는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녀는 지금껏 그를 돌본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연이도 당신이 돌봐줘야 하잖아”“가혜한테 말해두었어요. 하룻밤만 챙겨달라고. 내일 가서 연이 여기로 데리고 올 거예요.”그녀는 모든 일을 다 안배하고 나서야 서둘러 이곳으로 온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도 연이를 안심할 수 없을 것이다. 단호한 그녀의 모습에 이승하는 더 이상 거절하지 않고 힘겹게 몸을 가누며 소수빈을 불렀다.“나 좀 욕실까지 부축해 줘.”결벽증이 심한 그는 몸에 핏자국이 남아있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하여 서유와 소수빈이 아무리 설득해도 말을 듣지 않
그녀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그의 곁을 지켰다. 아침 햇살이 창문을 통해 쏟아지니 그제야 피곤이 몰려왔다. 얼마 후, 정신을 차린 남자는 흐리멍덩한 두 눈을 뜨고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있는 여인을 바라보았다.따뜻한 햇빛이 그녀의 온몸에 스며들어 부드러운 기운을 뽐내고 있었다. 약기운이 지나간 후 찾아온 극심한 고통은 그녀를 이리 보고 있으니 한결 가벼워진 듯했다. 창백한 그의 얼굴에 옅은 웃음이 떠올랐고 예쁜 눈이 반달 모양으로 변해갔다. 그의 걱정 때문에 깊이 잠이 들지 못한 그녀가 이내 눈을 뜨고 무의식적으로 그의 이마를 더듬었다. 마침 별빛이 반짝이는 그의 눈동자와 마주친 그녀는 저도 모르게 그 눈동자에 빨려 들어가 시선을 뗄 수 없었다. 하늘의 별조차도 이 사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만큼 빛이 나는 남자였다. 그녀의 마음속에 이승하는 유일무이한 존재였다. 잠시 멍하니 그를 바라보던 그녀는 손을 그의 이마에 얹었다. 체온이 정상인 걸 보니 아마도 더 이상 열은 날 것 같지 않았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녀가 다정하게 물었다.“배고프죠?”남자는 고개를 젓더니 심한 통증을 참으며 그녀를 자신의 옆에 눕혔다.“잠 좀 자. 다른 건 신경 쓰지 말고”그녀는 그의 하인이 아니다. 이런 일은 그녀가 할 필요가 없었고 그저 그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따뜻한 미소를 짓던 그녀는 눈을 감기 전에 등에 난 상처를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남자의 긴 손이 그녀의 눈을 덮더니 그녀의 작은 머리를 눌렀다. “얼른 자.”나지막한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지자 걱정되고 두려웠던 마음이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갔다. 그녀는 그의 손을 잡고 고양이처럼 그의 옆에서 웅크린 채로 이내 잠이 들어버렸다. 며칠 동안 쌓은 피로와 당황하고 불안했던 마음이 그가 무사히 돌아온 후에야 비로소 조금씩 사라졌다. 얼마 후, 자고 일어났더니 의사가 와서 그에게 약을 발라주고 있었다. 감염되었기 때문에 약을 바르기 전에 반드시 상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