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639화

작가: 알라리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05-29 18:00:00
서유는 꽤 오랜 시간을 고민한 끝에 결국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이런 불안한 상태에서는 대개로 틀린 선택을 하게 될 가능성이 컸기에 일단 냉정해지고 나서 다시 생각해 볼 생각이었다.

서유가 자리에서 일어나 서재로 돌아가려는 그때 1m 90 정도 되는 남자가 빠른 걸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남자는 검은색 외투 안에 흰 셔츠를 입고 있었고 단추가 세 개 정도 풀어 헤쳐져 있어 섹시한 쇄골이 여실히 드러났다.

검은색 하의는 그의 탄탄한 엉덩이와 적당히 근육 잡힌 다리를 찰싹 감싸고 있었다.

빛을 등지고 있는 탓에 남자의 표정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다만 온몸으로 뿜어내는 한기 때문에 실내 온도가 급격히 내려갔다.

‘심슨’을 안고 우유 적적하게 귤을 까먹던 심이준은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뭐야, 갑자기 왜 이렇게 추워?”

그는 강아지의 온기를 느끼려고 심슨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

그러자 심슨이 발버둥을 치며 그의 품에서 벗어나더니 짧은 다리로 금세 부엌 쪽으로 달려갔다.

심이준은 빵실한 엉덩이를 흔들며 사라지는 강아지를 보더니 혀를 찼다.

“제대로 안아보게도 못하게 하지 아주. 나랑 같은 성을 가졌으면서.”

팔짱을 끼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그때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지더니 이내 누군가의 실루엣이 책상 유리면에 비쳤다.

심이준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 실루엣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이, 이 대표님?!”

그는 빛을 등진 채 있는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저도 모르게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어색하게 굳은 입꼬리를 애써 위로 올렸다.

“이 대표님이 여긴 어쩐 일이세요?”

이 남자가 대체 왜 여기 있는 걸까?!

이승하는 시선을 아래로 내려 그를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건 내가 해야 하는 말 아닌가요?”

“...”

심이준은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이제야 정가혜의 집에서 며칠을 무단 취식했다는 사실을 인지한 모양이다.

“하하, 이것 참. 이곳 역시 이 대표님 구역이었죠? 바로 물러나겠습니다. 그럼 이만!”

심이준이 과일이 든 접시를 들고 문밖으로 도망가
잠긴 챕터
GoodNovel에서 계속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여 앱을 다운로드하세요

관련 챕터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640화

    서유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은근하게 물었다.“내가 어떻게 해야 기분이 풀리려나?”잔뜩 삐진 이승하는 고개를 위로 들면서 흥하고 말했다.“그런 건 풀어주는 쪽이 알아서 해야 하는 거 아닌가?”서유는 그의 모습에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런 이승하의 모습도 그녀에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서유는 두 손을 들어 그의 목 뒤에 걸었다. 그러고는 발꿈치를 들어 그의 입가에 가볍게 뽀뽀했다.“풀렸어요?”이승하의 눈이 잠깐 흔들렸지만 다시 정신을 다잡고 이 정도로는 안 된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아니.”서유는 그의 목을 감싸던 손을 풀고 서서히 그의 어깨를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이승하의 셔츠를 지나 벨트 쪽에서 손을 멈췄다.그녀는 몇 초간 가만히 있더니 곧바로 벨트를 풀어버렸다. 그러고는 남자의 품으로 파고들려는데 이승하가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뭐 하는 거야?”서유는 다시 한번 발꿈치를 들어 그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가더니 나지막이 되물었다.“뭐 하는 것 같은데요?”뜨거운 입김이 귓가에 퍼지자 남자의 몸이 긴장하더니 줄곧 도도하던 그 눈이 점차 예쁘게 풀어졌다.이 여자는 여우가 따로 없었다.이승하는 시선을 내려 서유가 핑크빛 입술을 달싹이는 모습을 보더니 완전히 두손 두발을 들었다.그는 두 손을 그녀의 허리에 가져가고 단숨에 자신의 몸 가까이 그녀를 끌어안았다.제대로 건드려진 남자를 당해낼 여자는 없었다. 서유는 지금 그의 거친 키스를 받으며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얼마나 지났을까 이제 그만 놓아달라고 흐느끼는 소리에 이승하는 그제야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건드릴 땐 언제고 왜 그만하래?”이 말을 건넬 때 그의 입술은 아직 서유의 입술 위에 있었다. 그는 그녀의 입술을 살살 깨물며 애간장을 태웠다.서유는 그와 닿은 모든 곳이 전류가 흐르듯 찌릿찌릿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그녀는 어느새 눈가가 촉촉해져서 자신을 벽에 몰아세우는 남자를 향해 힘겹게 말을 뱉었다.“나, 나 요즘 몸이 피곤해서 못 할 것 같아요.”

    최신 업데이트 : 2024-05-29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641화

    서유는 그가 신경 쓰는 포인트가 지현우라는 사실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저기요, 이승하 씨, 아무나 다 질투하면 어떡해요?”소파에 앉은 남자는 여전히 잔뜩 굳은 얼굴로 조금도 표정이 풀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맑고 투명했던 눈에 복잡한 감정이 조금 서려 있었다.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그를 보더니 맞은편에 앉은 서유도 서서히 입가의 웃음을 거두어들였다.“지현우와 연락한 적은 없어요. 아까 조지랑 통화할 때 갑자기 끼어들어서 케이시한테 자신들이 지금 묘원에 있다는 것을 얘기해주라고 한 마디 한 게 다예요.”솔직하게 얘기하면 이승하도 표정을 푸리라 생각했지만 그는 여전히 복잡미묘한 표정이었다.서유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로 다가가더니 손을 들어 그의 얼굴을 매만졌다.“승하 씨, 왜 그래요?”조심스럽게 다가오는 그녀의 손길에 이승하의 표정이 점차 풀어져 갔다.“아무것도 아니야.”그는 서유를 자신의 옆에 앉힌 다음 그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네가 누군지 제대로 구분했어, 지현우가?”만약 지현우가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다면 그가 사랑하는 사람은 여전히 김초희인 것이 된다.그런데 만약 지현우가 제대로 구분했다면 그때는... “아직은 잘 구분하지 못하지 않을까요?”서유도 지현우가 어떤 상태인 건지 몰라 아무것도 확신하지 못하는 눈치였다.그 모습에 이승하는 어쩐지 마음이 조금 놓이는 것 같았다.차라리 이대로 계속 모르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이승하는 케이시의 명함을 다시 서유에게 건네주었다.“검사 결과 받아보고 나서 결정해.”서유는 명함을 받아들고 고개를 갸웃했다.“무슨 검사 결과요?”“지현우와 연이의 친자확인검사 결과.”서유가 그 말에 어리둥절한 그때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멀지 않은 곳에 대기 중이던 경호원 한 명이 휴대폰을 꺼내 들고 이승하에게 다가와 건네주었다.“대표님, 택이 씨 전화입니다.”이승하가 통화버튼을 누르자 전화기 너머로 택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결과 나왔습니다.”“얘기해 봐.”택이는 옆에 있는 남자를

    최신 업데이트 : 2024-05-29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642화

    서유는 결과를 확인하고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처음부터 연이가 지현우의 아이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고 있었으니까.이제 검사 결과가 확실히 눈앞에 놓였으니 역시 자신의 추측이 맞았다는 생각만 강렬하게 들 뿐이었다.연이는 지현우의 딸이다. 그 말은 언니는 애초부터 지현우를 배신하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지현우는 줄곧 애꿎은 상대를 원망해왔던 것이다.그리고 케이시는 연이가 지현우의 딸인 것을 뻔히 알면서 그에게 알리지 않았고 연이는 자기 딸이라고 거짓말까지 했다.언니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언니가 남기고 간 딸이라도 소유하고 싶어서였을까? 아니면 지현우에게 복수하기 위해?서유가 한창 고민하고 있을 때 이승하가 경호원에게 손짓했다.“자료.”경호원은 빠르게 별장을 나가 차에서 자료 파일을 들고 다시 나타났다.이승하는 그 파일을 받지 않고 서유에게 시선을 주었다. 경호원은 곧바로 그 뜻을 알아채고 서류를 서유에게 건넸다.“사모님, 이건 지현우와 김초희 씨 관련 자료입니다.”“네, 고마워요.”서유는 파일을 건네받고 안에 있는 자료를 꺼내 자세히 바라보았다.“사실 이 자료, 며칠 전부터 이미 가지고 있었던 건데 유전자 검사 결과가 정확하지 않아서 여태 얘기 못 했어.”이승하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들려왔다.서유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고마워요, 승하 씨.”이승하는 지현우 때문에 그토록 상처를 받고도 그녀가 원하는 일이라 개인적인 감정은 뒤로하고 바로 조사를 해주었다.게다가 이렇게 자료를 받아놓고 또 사람을 시켜 지현우의 머리카락을 채취해 다시 한번 친자 확인 검사를 하게 했다. 자신의 언니는 절대 지현우를 배신할 리가 없다는 서유의 말 하나 때문에. 그리고 그녀의 그 믿음에 어떠한 의미가 담겨 있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이승하는 그녀의 표정을 보더니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고맙다는 인사는 됐어. 저녁에 배로 갚아주기만 하면 되니까.”그의 행동에 감동받았던 서유는 그 말 한마디에 금세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어떻게 감동이

    최신 업데이트 : 2024-05-30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643화

    서유는 눈앞에 있는 남자의 잘생긴 얼굴을 몇 초간 바라보다가 마치 그의 환심을 사려는 듯 손을 들어 그의 목을 감쌌다.“그럼 지현우에게 직접 전화 걸어도 돼요?”“안 돼.”그의 단호한 거절에 서유가 풀이 죽어서 물었다.“왜요?”이승하는 한 손으로 그녀의 턱을 치켜들며 강하게 경고했다.“지금 이 순간부터는 지현우와 만나지도 말고 얘기도 하지 말고 연락도 하지 마.”연락을 안 하면 언니가 그를 배신한 적도 없고 연이도 그의 친딸이라는 사실은 어떻게 알려주지?서유가 얼굴을 찡그리며 고민하고 있을 때 이승하가 휴대폰을 들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서유는 화면 속 전화번호를 한번 보고 자료 속 전화번호도 한번 보더니 서서히 입꼬리를 올렸다.이승하는 차라리 자신이 직접 얘기할지언정 절대 서유에게는 전화를 걸지 못하게 했다.이 남자는 지금 질투라는 감정에 푹 젖어 있었다.이승하는 두 번 연달아 걸어도 상대방이 받지 않자 통화는 포기하고 이 자료들을 메시지로 보내주었다.그러고는 할 일을 다 끝냈다는 양 휴대폰을 옆으로 던지고 서유를 바라보았다.“이제 됐지? 앞으로 지현우 관련 일에는 신경 쓰지 마.”지현우를 이상하리만큼 의식하는 그의 모습에 서유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어쩐지 일이 이렇게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예감에 마음 한구석이 너무 불안했다.이승하는 아직도 마음에 걸려 하는 듯한 그녀를 보며 물었다.“왜 그래?”서유가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이승하는 그녀의 턱을 들어 자신과 눈을 마주치게 하고 다시 물었다.“지현우가 걱정돼?”서유는 서둘러 부인했다.“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뭐랄까...”그녀는 손을 들어 심장을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여기 있는 거 언니 심장이잖아요. 이 심장이 지현우 일로 불안해하는 것 같아요.”이승하는 그녀의 가슴 쪽을 바라보고는 복잡한 얼굴을 했다.지현우의 일은 이제 관여하고 싶지 않은 게 그의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만약 지현우가 김초희의 심장을 서유의 몸에 넣

    최신 업데이트 : 2024-05-30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644화

    “오랜만이야.”케이시가 국화꽃을 든 채 경호원을 대동하고 지현우의 곁으로 천천히 다가왔다.무덤 앞에 있는 남자는 여전히 고개를 돌리지 않았고 수중의 사진을 자신의 심장 가까이에 있는 주머니 안에 넣었다.케이시는 지현우가 자신을 업신여기고 있는 걸 알고 있기에 그의 태도에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그는 지현우의 옆으로 가 수중에 있는 꽃을 내려놓다가 묘비 위에 있던 여자의 사진을 발견했다.“서유 씨?”케이시는 그제야 자신이 왜 김초희의 무덤을 찾을 수 없었는지 알 수 있었다. ‘죽은 사람’이 김초희가 아니라 서유라 애초에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지현우는 김초희를 독차지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쓴 듯했다. 그래봤자 결국에는 그 김초희에게 배신당했지만...케이시는 입꼬리를 올리며 지현우에게 말했다.“이제 8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으니 연이를 돌려줘야지?”줄곧 입을 꾹 닫고 있던 지현우가 케이시를 차갑게 쳐다보았다.“김초희의 유언, 뭐였어?”케이시는 몸을 일으키고는 지현우와 어깨를 나란히 한 채 무덤을 쳐다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초희의 유언이라 너한테는 무척이나 중요한가 보지?”지현우는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놓고 답했다.“그렇게까지 중요한 건 아니야...”케이시는 곧 죽어도 진심을 말하지 않는 그를 보며 가죽 장갑을 낀 손을 들어 지현우의 어깨를 토닥였다.“하, 현우야, 너는 네 그 입 때문에 팔자가 꼬일 수밖에 없어.”케이시는 마치 세상만사를 다 경험한 사람처럼 말했다. 그런 점이 지현우는 끔찍하게도 싫었다.그는 케이시의 손을 먼지 털 듯 털어냈다.“함부로 내 이름 부르지 마.”싫은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지현우와는 달리 케이시는 아까부터 지나치게 여유로운 표정이었다.그는 지현우를 담담하게 웃었다.“초희의 유언은 꽤 긴 영상이야. 특별히 너를 위해 남긴 거지.”케이시는 그 말을 내뱉고는 서서히 웃음을 지워버렸다.“뭐라고 했는지 안 궁금해?”지현우는 어두운 표정을 여태 지우지 못했다.“줄 거면 빨리 주고 주기 싫으면

    최신 업데이트 : 2024-05-30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645화

    케이시는 허리춤에서 총 한 자루 꺼내 들며 손에서 이리저리 가지고 놀았다.“현우야, 연이한테 정 많이 들었지?”지현우는 까만 눈동자로 케이시를 뚫어지게 노려보았다.“8개월 동안 내 옆에서 지내게 한 이유가 내가 아이한테 정이 드나 안 드나 보려던 거였어?”지현우는 케이시의 목적은 알아챘지만 그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아직 알지 못했다.딸 목숨으로 아무런 피도 섞이지 않는 그를 협박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일까?케이시는 승기를 잡은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현우야, 내가 널 얼마나 죽이고 싶어 하는지 알고 있지?”“너는 날 절대 못 죽여.”만약 케이시가 지현우를 죽이게 되면 지씨 가문에서는 아마 지현우의 무덤 옆에 케이시도 같이 묻어주려 할 게 분명했다.케이시는 피식 웃더니 총에 총알을 장전했다.“그래. 나는 널 못 죽여. 하지만 네 딸과 초희가 남긴 영상은 널 죽일 수 있을 거야.”“무슨 뜻이야?”케이시는 장전을 완료하고 손가락으로 방아쇠를 당긴 다음 지현우를 바라보았다.“나는 네가 초희를 아주 많이 사랑하는 줄 알았어. 그래서 초희가 죽으면 너도 따라 죽을 줄 알았지. 하지만 너는 멀쩡히 살아 있었고 내 계획은 어그러졌어. 하지만 괜찮아.”케이시는 음험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8개월 전에 우연히 연이가 자주 하고 다니는 목걸이 안에서 메모리칩을 하나 발견했어. 하늘은 역시 내 편이구나 싶었지. 그 메모리칩이 글쎄 초희가 너한테 남긴 유언이더라고? 그 안에는 네가 알고 싶어 하는 것들이 모두 다 들어있어.”“그리고 기가 막히게도 그 타이밍에 네가 마침 연이를 뺏으러 왔어. 잘됐다 싶었지. 제정신이 아닌 네가 연이를 괴롭히고 또 괴롭히다가 8개월 뒤에 내가 진실을 말하는 순간 네 멘탈이 완전히 무너지는 게 벌써 상상이 됐거든.”“하지만 내 예상과 달랐던 건 너는 연이에게 정을 주고 있었다는 거야. 눈앞의 아이가 자기 딸인지도 모르고 피가 당겨 감정이 생긴다는 건 나한테는 너무 재미없는 일이었거든.”“그런데 다시 생각해보

    최신 업데이트 : 2024-05-31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646화

    케이시는 묘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앉은 채 후회막심한 얼굴을 하고 있는 지현우를 보며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내가 아까 그랬지? 너는 네 그 입 때문에 팔자가 꼬일 수밖에 없다고. 어때? 이제야 내가 한 말이 뭔 뜻인지 알겠어?”지현우가 만약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더라면, 독선적이지 않았더라면 여기까지 올 일도 없었을 것이다. 연이가 자신의 딸이라는 것도 진작 알았을 것이고 말이다.지현우는 지씨 가문의 도련님으로 부족함 없이 자라 언제나 남 위에 있어야 직성이 풀렸고 온 세상이 자기 것인 것처럼 행동했다.그 당시 조그마한 우리 안에 갇혀있던 케이시는 지씨 가문의 장남은 자신일 텐데 대체 왜 자신은 그늘 속에 있어야 하고 지현우는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활개를 칠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고작 그를 낳은 어머니가 술집 여자라서?그는 그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러다 결국 이렇게 된 건 전부 지현우 때문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가 태어나는 바람에 자신이 누려야 할 것들이 전부 다 사라지게 된 것이라며 말이다.지현우만 없었더라면 지씨 가문에서 쫓겨나 떠돌이 생활을 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떠돌이 생활했을 때 그는 김초희를 위해 음식을 뺏다가 죽을 듯이 맞아댄 적도 있었다. 그 당시 지현우는 차 안에서 마치 천민에게 호의를 베풀듯 그저 ‘그만해.’라는 한마디만 던졌다.그리고 그날부터 김초희의 눈에는 오직 지현우밖에 없었다.지현우가 대체 뭐길래.만약 자신이 김초희가 학업에 전념할 수 있게 돈을 지원해줬었다면, 만약 그날 차 안에서 오만하게 그들을 내려다보던 사람이 지현우가 아니라 자신이었다면 그녀의 시선이 향하는 곳이 달랐을까?그녀를 먼저 알게 된 것도 자신이었고 그녀 옆에서 어둡고 시린 밤을 함께 보내준 것도 자신이었다.그런데 그런 시간이 무색하게도 지현우는 그저 한 번의 등장만으로 그 시간을 산산조각내버렸다.왜 지현우는 항상 자신의 것을 앗아가는 걸까.왜 가족을 빼앗은 것도 모자라 이제는 유일하게 남은 그의 빛마저 탐을 낼

    최신 업데이트 : 2024-05-31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647화

    헬기는 어느 한 별장 앞에 세워졌다. 케이시는 경호원에게 지현우를 지하실에 가둬 놓으라고 명했다.지하실은 빛 하나 들어오지 않아 무척이나 어두웠고 곰팡이가 필 듯한 습한 환경에 신호도 잡히지 않았다.이곳으로 오기 전 도망칠 기회는 여러 번이나 있었지만 지현우는 마치 삶을 포기라도 한 듯 그저 입을 꾹 닫고 가만히 있었다.경호원들의 손에 거칠게 지하실로 들어간 조지는 몸을 웅크린 채 바닥에 쓰러져 있는 지현우를 보고 눈가를 붉혔다.“현우 씨...”조지의 목소리에 이제껏 아무런 미동도 없던 지현우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왜 그랬어요?”왜 검사 결과를 조작했지?그렇게나 믿었는데 왜 속인 거지?정확한 검사 결과를 이제야 알게 된 조지는 실망한 눈빛의 지현우를 보며 다급하게 고개를 저었다.“나 아니에요. 나는 조작한 적 없고 속인 적도 없어요.”“채혈도 직접하고 검사도 직접 했으면서 속인 적이 없다고?!”김초희는 여러 번이나 연이는 그의 딸이라고 해명했다.그 말을 듣고 검사한 결과 친자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지현우는 한 번도 그 검사 결과를 의심해 본 적이 없다. 조지가 준 결과였으니까. 그와 김초희가 유일하게 믿었던 사람이었으니까!그 조지가 결과를 조작해 그를 속였을 줄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난 정말 아니에요!”조지는 억울함 가득한 얼굴로 연신 고개를 흔들었다.“당시 검사했을 때 어떤 의사가 나 찾아온 적이 있어요. 아마 그때 그 의사가 손을 쓴 걸 거예요.”조지는 볼품없는 모습의 남자를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내 말 믿어줘요. 나는 단 한 번도 배신한 적이 없어요.”“지금에 와서 믿는 건 아무런 소용도 없어요.”김초희는 이제 이 세상에 없으니까...“미안해요...”지현우의 빛이 바랜 검은 눈동자는 더 이상 이 세상에 미련이 없어 보였다.조지는 삶의 의욕을 잃은 듯한 지현우의 얼굴을 보더니 몸을 움직여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당신한테는 아직 딸이 있어요. 그러니까 정신 차려요. 케이시한테서 연이를 찾

    최신 업데이트 : 2024-05-31

최신 챕터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52화

    서유의 사망 소식을 들은 육성재는 한동안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결국 그는 그녀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해 서둘러 달려갔고, 모든 이들이 묘지를 떠난 후에도 그녀의 묘비 앞에 남아 머물렀다.“서유 씨...”그는 묘비를 붙잡고 천천히 몸을 낮추어 무릎을 꿇고, 더 이상 젊지 않은 눈으로 그녀의 영정 속 얼굴을 오랫동안 응시했다.“내가 올 줄 몰랐죠?”육성재는 미소를 지으며 혼잣말을 시작했다.“내가 한 사람을 이렇게 오래도록 사랑하게 될 줄은 나도 몰랐어요. 스스로도 놀라울 정도로, 나도 참 정이 깊은 놈이었네요.”영정 사진을 보며 그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너무 깊이 사랑해서 세상 어떤 여자도 내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됐어요. 그러니 서유 씨, 나도 이승하 못지않게 당신을 사랑했던 거예요, 안 그래요?”그러나 그의 질문에 대답하는 건 묘지의 나뭇가지 사이를 스치는 새들의 울음소리뿐이었다. 새와 짐승들이 떠나고 나니 주변은 그저 고요할 뿐이었다. 마치 지난 수년간 그의 마음속에 묻어둔 사랑처럼, 결코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채 어둠 속에 갇힌 채였다.그토록 짙은 사랑은 세상에 드러낼 수 없었다. 그녀가 떠난 지금에서야 그는 그녀의 묘 앞에 와서 고백했다.그 역시, 깊이 사랑했노라고.모든 사람에게는 후회가 있다. 육성재의 유감은 그녀가 죽기 전까지 자신을 이렇게 바보처럼 사랑하는 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것이었다.하지만 알게 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서유는 이미 떠났는데, 육성재 난 왜 여전히 집착하고 있는 거냐? ’육성재는 그녀의 묘비 앞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그러다 결국 답을 찾지 못한 채 천천히 일어나 발걸음을 돌렸다.그의 삶은 사랑이 아니라 일에 무게를 둔 인생이었다. 그는 생을 바쳐 육씨 집안을 세계 최고의 가문으로 일궈냈다.그는 상업계의 전설 같은 인물로 남았고, 수십 년이 지나도 사람들은 결혼하지 않았던 육성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야기하곤 했다.수도에 있는 송사월은 그녀의 죽음 소식을 제일 마지막으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51화

    생이 마감하는 순간, 머릿속을 스쳐 간 것은 그 5년 동안 이승하가 숨겼던 사랑이었다.몇 번이나 뒤척이며 잠에서 깼을 때, 자신의 몸이 단단하고 강인한 두 팔에 꽉 안겨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렇게 강하게 끌어안는 것이 사랑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또한 주말에 식사할 때, 식탁 건너편에 앉은 이승하가 가끔 그녀를 몰래 훔쳐보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오랜 짝사랑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그리고 그가 모든 일을 마친 후 그녀를 안아 자신의 가슴에 엎드리게 하고, 긴 손가락으로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아이를 달래듯 잠들게 했던 모습 또한 마찬가지였다.이승하의 사랑은 작은 순간순간에 담겨 있었다. 그것이 어떤 모습인지 타인에겐 잘 보이지 않았으나, 이승하 본인만은 아주 알고 있었다. 당시 그녀에 대한 사랑을 얼마나 힘들게 숨겨왔는지...서유의 눈은 이미 뜰 수 없었고, 몸은 영혼이 빠져나간 듯 더 이상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이 세상을 다시 한 번 볼 힘조차 없었다.그녀는 주머니 속 휴대폰을 더듬어 무작정 전화를 걸었고, 다행히 그것을 받은 사람은 정가혜였다.세월이 흐르면서 정가혜도 나이가 들었다. 젊었을 때의 맑은 목소리는 사라지고 약간 쉰 소리가 섞여 있었다.“서유야, 조금만 기다려. 우리 며느리가 출산하면 바로 널 보러 갈게...”삶의 마지막 순간에 친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라고 느껴졌다. 하지만 왜인지 이미 메마르고 고갈된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고, 이내 오열로 변해 멈출 수 없었다.“가혜야, 난 승하 씨가 너무 보고 싶어. 그 이를 만나러 가야 할 것 같아. 부탁할게. 하준이에게 미안하다고 전해줘. 엄마가 하준이 결혼식을 볼 수 없게 됐다고...”전화기 너머의 정가혜는 이 말을 듣고 함께 눈물을 쏟아냈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서유가 그동안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어머니로서 아들을 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마저 없었다면 그녀는 이미 이승하를 따라갔을 것이다.얼마 전부터 서유의 몸이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50화

    서유의 손가락이 이하준의 머리 뒤로 부드럽게 닿았다. 마치 이미 모든 사실을 받아들인 듯 그녀의 표정은 놀랍도록 평온했다. “언제쯤 결혼할 거니?”이하준의 몸이 경직되었다. 안개처럼 흐릿한 눈으로 천천히 고개를 들어 서유를 천천히 놓아주며 말했다. “어머니... 아직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나지 못했어요.”아들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서유는 손을 얼굴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봐봐. 네 엄마는 지금 살아있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단다. 제발 네 아빠를 만나러 가게 해줘. “어릴 적엔 부모님이 그를 속박했지만, 커서는 그가 부모님을 속박했다. 오직 그 속박만이 그를 고아로 만들지 않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한 번만 더 이기적일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다.그는 서유의 팔을 붙잡으며 간절히 말했다. “어머니,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곧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날 거예요. 그러면 결혼하겠습니다, 네?”결국 아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 서유는 평소와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일 교회에 가서 너를 위해 기도하고, 네가 곧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나길 빌어주마...”서유의 소원을 결코 들어주지 말아달라고 하늘의 신들에게 기도하며, 이하준은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는 평생 어머니의 사랑을 얻기 위해 결코 결혼하지 않기로 했다.그는 이승하가 남겨둔 로봇을 다시 가져와 서유에게 아버지가 남긴 유언이 모두 로봇 프로그램에 담겨 있다고 말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유언의 일부를 들려줄 것이며, 만약 그녀가 아버지가 말하고 싶었던 모든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살아야 한다고 전했다.처음에 서유는 이승하와 똑같이 생긴 로봇을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하지만 로봇이 말을 시작하는 순간, 그녀는 갑자기 멈춰 섰다. 그리고는 서재에 앉아 하루하루 이승하가 녹음했던 로맨틱한 말을 돌려서 들었다.마치 예전에 그가 그녀를 찾지 못했을 때 다른 이의 번호로 하루에 십여 통의 문자를 보내 그녀의 부재를 애도했던 것처럼.이제는 그가 먼저 떠났지만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49화

    아들을 위해, 결국 서유는 이승하를 따라 죽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 하지만 단 하룻밤 사이 머리가 백발이 되어, 마치 열 살은 더 늙어버린 듯한 모습이 되었다. 예전에는 세월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던 얼굴이 순식간에 주름투성이가 되었고, 사람들을 매료시켰던 그녀의 눈동자도 생기를 잃고 텅 빈 채로 아무 빛깔도 담고 있지 않았다.엄마가 되었으니 이제는 예전처럼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그녀는 이승하의 무덤 앞에서 약속했다. 자신을 기다려 달라고.아들이 결혼하면 그때 찾아가겠다고. 만약 자신을 기다리지 않는다면, 다음 생의 약속도 취소할 거라고. 그리고 영원히, 다시는 만나지 않을 거라고 말이다.이승하의 장례식에 서유는 참석하지 않았다. 그녀가 정신을 차리고 기운을 내어 비틀거리며 그의 무덤 앞에 섰을 때, 무덤가에서 그녀가 중얼거리던 말들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다. 오직 그녀를 부축하며 아버지의 무덤을 찾은 이하준만이 그 말을 기억했다.눈 덮인 땅에 쓰러져 의식을 잃었던 그날 밤, 서유는 병원으로 옮겨져 일주일 동안 깨어나지 못했다. 그녀가 없는 동안 이승하의 시신은 얼음관에 안치된 채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일주일을 버텼다. 그녀가 깨어난 후, 그녀는 하얗게 센 머리와 멍한 눈빛으로 그를 단 한 번 보고는 곧바로 돌아섰다.그들이 이승하를 어떻게 묻었는지, 묘지는 어떻게 정했는지, 영정 사진으로 어떤 사진을 선택했는지 서유는 알지 못했다. 그녀는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차가운 베개를 매만지며 그가 아직 살아 있는 모습을 상상하는 데만 몰두했다.‘만약 당신이 여기 있었다면, 내 하얀 머리를 보고 눈시울이 뜨거워졌겠죠.’그녀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당신은 그랬을 거예요.”이승하는 질투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서유가 그 때문에 긴장하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그는 한참 동안 기뻐하며, 그녀 마음에 자신이 있다는 확신을 얻곤 했다. 하지만 이제 그는 그녀가 그로 인해 속을 끓이고 밤낮으로 잠 못 이루는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이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48화

    서유는 떨리는 속눈썹을 들어, 삶의 의미를 잃은 듯한 눈으로 멀리 바라보며 말했다.“아니, 난 어디에도 가지 않을 거야. 나와 그 사람, 그냥 여기 있을 거야. 내가 얼어 죽을 때까지, 누구도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어.”그녀가 여기서 얼어 죽겠다는 말을 들은 순간, 주변 사람들의 가슴이 순간적으로 먹먹해졌다. 모두가 그녀를 말리며 무모한 짓을 하지 말라고 설득했지만, 서유는 그 어떤 말도 듣지 않았다. 단호하고도 완강하게, 이승하를 품에 안고 눈 덮인 땅 위에 앉아 그저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때 이하준이 서유의 손을 붙잡고, 그녀의 손바닥을 힘껏 눌러 그녀의 시선을 자신에게 돌렸다.“어머니, 아버지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알아요. 그래서 지금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드신 것도 이해해요. 하지만 전 이미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어머니까지 잃을 순 없어요. 제발 부탁이에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아 주세요...”아들이 귀 옆에서 애절하게 부르는 목소리를 들은 서유는 천천히 시선을 그에게 돌렸다. 아버지와 똑같은 모습으로 빚어진 얼굴이 눈에 들어오자, 그녀의 입술 끝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마치 꽃이 피어난 듯한 미소였다.“난 이미 네 아버지가 떠날 준비를 오래전에 마쳤단다. 이제 그이가 정말 떠났으니, 당연히 나도 함께 가야지. 너도 알잖니. 그이가 살면 나도 살고, 그이가 죽으면 나도 죽는 거야. 아무도 이걸 막을 순 없어.”예전에 이하준은 아버지가 어머니를 더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순간, 그는 어머니의 사랑이 아버지의 사랑만큼이나 깊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는 성인식을 맞이한 바로 오늘, 부모님 두 분을 동시에 잃을 수 없었다.눈 덮인 땅 위에서 무릎을 꿇은 채, 그는 천천히 어머니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두 팔을 벌려 서유를 힘껏 끌어안았다.“어머니, 아버지는 제가 결혼하는 것과 자식을 낳는 것을 보고 싶다고 말씀하셨어요. 지금 아버지는 그걸 보지 못하고 떠나셨지만, 어머니가 대신 그 순간을 기다려 주시면 안 되나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47화

    눈물이 눈가에서 갑작스럽게 흘러내렸다. 그러나 그것은 가슴을 찢는 통곡이 아니었다. 아무 소리 없이 흘러내릴 뿐, 그녀는 벌어진 입술로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이생에서 이승하에게 해야 할 말은 이미 다 끝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녀는 눈을 내리깐 채, 생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창백한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바보, 당신이 아무리 피를 흘린다 해도 당신은 내 남편이에요. 내가 무섭겠어요? 하나도 안 무서우니까, 왜 굳이 혼자 이런 곳에 온 거예요?”마지막 이별의 말조차 건네지 못했다는 사실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그러나 그녀의 이승하는 이런 안타까움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에게 모든 걸 숨겼다.만약... 그녀가 그 가짜 이승하를 알아보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그러면 평생 그의 몸조차 찾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눈과 함께 얼어붙어 영원히 설산 아래에 묻혔을 것이다.이승하는 이미 스스로 세상에서 사라질 각오를 했던 것이다. 그녀가 자신을 따라오지 않게 하려고, 그녀를 속이기 위해 가짜 로봇을 만든 것이다.‘하지만 승하 씨...’‘당신이 아무리 똑같이 생긴 로봇을 만든다 해도, 그건 당신이 아니에요. 당신이 평생 날 속일 수 있다면 난 받아들였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지금 그 거짓말은 단 한 순간도 버티지 못했잖아요.’‘당신은 내가 당신을 찾으러 올 것을 허락하지 않았겠죠. 그렇지 않았다면 가짜 로봇을 만들어 내게 거짓말을 하지도 않았을 거고, 피를 흘리는 고통을 혼자 감당하며 이런 깊은 산속에서 눈과 마른나무를 친구 삼아 떠나지도 않았겠죠.’그녀의 이승하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었고, 동시에 그녀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비록 마지막 순간에 그의 곁에 있어 주지 못했다는 사실이 매우 안타깝지만, 그의 사랑 덕분에 서유는 죽음이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오히려 그녀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와 함께 죽는다면 그것은 한평생의 약속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이제 먼저 떠난 이승하가 황천길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까?서유는 알 수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46화

    마치 무언가 예감이라도 한 듯, 이하준이 떨리는 손으로 이승하의 손을 움켜쥐던 순간, 서유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 마치 미친 사람처럼 머리를 풀어 헤친 채 네발로 기어 이하준에게 달려갔다.그녀는 여전히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다만 그 단호한 시선은 이승하의 얼어붙고 하얗게 질린 손에 닿자마자 떨리는 속눈썹을 내리깐 채,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이승하를 덮은 눈을 미친 듯이 파헤쳤다.깊은 산속의 눈은 산 아래보다 훨씬 더 두꺼웠다. 끝없이 쌓인 층층의 눈 속에서 서유는 온 힘을 다해 이승하를 파내던 순간, 그의 이목구비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의 얼굴에 흐르는 피가 일곱 군데에서 새어 나와 얼음처럼 굳어 있었다. 그 아름다운 얼굴은 더 이상 어떠한 온기도 남아 있지 않았다.눈앞의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이하준은 아버지의 침묵하는 모습을 목격하자 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렸다. 두 무릎을 꿇고 바닥에 주저앉은 그는 마음속 어딘가가 찢어지듯 끊어지는 고통을 느꼈다. 마치 거대한 나무가 쓰러지는 것을 목격한 듯, 그의 세계는 단숨에 끝없는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하준아.”서유의 고요한 목소리가 귀를 스쳤다.“도와줘.”이하준은 어머니의 충혈된 눈을 바라보며 그녀의 부탁에 정신을 차렸다. 서유의 눈빛에는 슬픔도, 고통도 없었다. 오직 이승하의 죽음을 믿지 못하겠다는 단호함만이 담겨 있었다.그녀는 얼어붙은 이승하의 손과 얼굴을 붙들고 자신의 체온으로 그를 녹이려는 듯 필사적으로 문지르고 있었다. 이하준도 어머니를 따라 아버지의 발을 감싸 쥐었다. 그는 얼어붙은 신발을 벗기고 자신의 배 위로 올린 뒤, 손바닥으로 아버지의 다리를 위아래로 문지르기 시작했다.서유는 이승하의 얼굴에 덮인 얼음을 녹이며, 그가 살아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녀는 지친 손으로 그의 얼굴을 계속 문지르며 이렇게 말했다.“여보, 당신이 나더러 기다리라고 했잖아요. 나 정말 잘 기다렸는데, 왜 약속을 안 지키고 돌아오지 않은 거예요?”“지금이라도 눈을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45화

    눈밭을 헤매며 이승하를 찾고 있던 서유는 갑자기 발길을 멈췄다. 마치 영혼이 그녀를 부르는 소리를 들은 것처럼 멍하니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눈앞에는 오직 그녀 자신뿐, 영혼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그녀는 그 자리에 굳어 서서 한참을 있다가 손을 들어 가슴에 얹었다. 심장이 세 번 뛰고 난 뒤, 가슴 깊은 곳에서 찢어질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마치 무엇인가를 잃어버릴 것만 같은 아픔이었다. 몸을 굽히며 고통을 참고자 했지만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직감적으로 그녀는 이승하에게 무슨 일이 생겼음을 느꼈다. 이를 악물고 계속 그를 찾으려던 그 순간, 눈 위로 아름다운 자태를 가진 한 사람이 붉은 리치 한 송이를 손에 들고 걸어왔다.“여보, 내가 기다리라고 했잖아. 왜 여기까지 와 있는 거야?”눈앞에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난 이승하를 보자, 긴장으로 심장이 터질 것 같았던 서유는 한순간 안도감을 느꼈다. 역시 그가 곁에 있으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 것 같았다.서유는 들고 있던 우산을 내던지고 마치 숲속의 토끼처럼 기쁨에 차 달려가 이승하의 품에 안겼다.그의 몸에서 느껴지는 온기와 익숙한 향기에, 서유는 깊게 숨을 내쉬며 안심했다.“당신,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정말 당신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고 얼마나 무서웠는데요!”이승하는 긴 손가락을 뻗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언제나 그랬듯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손길이었다.“내가 말했잖아. 항상 네 곁에 있을 거라고. 아무 데도 가지 않을 거라고. 나한테 쉽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아?”그의 품 안에 꼭 안긴 서유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더욱 꽉 껴안았다. 하지만 갑자기 무언가가 손에 닿자, 서유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그리고는 이승하를 밀쳐내며 소리쳤다.“당신... 당신은 내 승하 씨가 아니야!”이승하는 요즘 들어 많이 수척해졌고, 허리를 감쌀 때 손가락이 다른 손가락에 닿을 정도로 야위어 있었다. 그러나 눈앞의 이승하는 예전처럼 건장한 체격을 유지하고 있었다.“당신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44화

    시린 눈보라 속에 홀로 서 있는 형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겨우 남은 힘으로 긴 손가락을 들어 흔드는 그를 보며, 이연석은 애써 마음을 다잡고 이를 악물며 재빨리 눈 덮인 산 아래로 달려 내려갔다.“형! 내가 먼저 의사를 부르고, 로봇을 산으로 올려보낼게. 그러고 나서 바로 돌아올 테니까 그 자리에서 꼭 기다려. 금방 올게!”밤길은 험난했지만, 사방으로 쏟아지는 눈은 길을 환히 비춰주어 이연석은 마치 대낮처럼 보이는 길 위를 달렸다. 하지만 급한 걸음은 때때로 방향을 잃고, 몇 차례나 눈밭에 무릎을 꿇으며 휘청거렸다.멀어져가는 이연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승하는 느려지는 심장 박동을 가슴으로 느끼며 제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생명의 문이 서서히 닫혀가는 고통을 묵묵히 받아들였다.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서유가 그의 흔적을 찾으며 이름을 부르자, 이승하는 무성한 나무 사이에서 고개를 돌려 눈 덮인 길 위에서 우산을 쓰고 걷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단 한 번의 시선, 그로 인해 시간이 멈추고 만 년의 세월이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처음 그녀를 만났던 그 순간으로 돌아간 것 같았지만, 이제는 햇빛도 사라지고 눈보라만이 세상을 덮고 있었다.“승하 씨!”서유는 잠시 기다리다 이상함을 느끼고 별장 맞은편에 있는 집의 문을 열어보았다. 예상대로 이승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불안한 마음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그를 찾아 헤맸다.이승하는 대답하고 싶었다. ‘나 여기 있어.’ 그러나 온몸의 피가 쏟아지는 그는 예전처럼 힘찬 목소리로 외칠 수 없었다.그는 겨우 뜨고 있는 흐려진 눈으로 고개를 돌려 한 걸음씩 깊은 산 속으로 걸어갔다.그곳은 숲이 빽빽하게 우거져 있고 하얀 눈이 밤하늘을 밝혔어도 사람의 움직임을 알아볼 수 없는 곳이었다. 그가 누울 만한 최적의 장소였다.이승하는 생각했다. 얼음과 눈이 몸을 얼려버리면 야수가 지나가더라도 그의 썩은 살을 물어뜯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설산 아래에 묻히면 그의 외모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