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는 그가 자기와 거리를 두는 것을 보고 더 거부하지 않았다. 얌전히 누워 어지럼증이 조금 줄어들기를 기다렸다.의사가 전에 그녀에게 과로하지 말라고 당부한 적이 있었다.하지만 그녀는 요즘 금색 가면 남자에게 이틀 동안 시달렸고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출근했다.공항, 레스토랑, 그리고 호텔을 돌아다니는 것은 그녀는 물론이고 일반인들도 피곤함을 느낄 것이다.그녀는 너무 피곤했기에 이렇게 병이 발작하는 것이었다.서유는 내일 연지유가 자기의 사직서를 처리해 주면 남은 날들은 편하게 집에 누워 죽기를 기다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그렇지 않으면 오늘처럼 갑자기 병이 발작해 아무도 그녀를 구해주지 않는다면 분명 이대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그러면 누가 그녀의 시신을 수습해 줄까?그녀는 멍하니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흰 정장을 입은 남자가 들어왔다.깔끔하고 예의 바르게 생긴 남자는 온몸에서 우아한 아우라를 물씬 풍겼다.그는 침대에 누워 있는 서유를 발견하고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웃을 때면 양 볼에 보조개가 깊게 파였다.“여자였네.”소준섭은 약상자를 가지고 다가오며 김시후의 눈치를 살폈다.“드디어 철벽 나무에도 꽃이 피는 건가?”“장난치지 마. 빨리 무슨 일인지 알아봐 줘.”그는 오늘 그녀가 쓰러지려는 걸 두 번이나 발견했다. 이는 분명 저혈당의 증상이 아닌 것 같았다.소준섭은 그제야 장난스러운 태도를 거두고서는 응급 상자에서 청진기를 꺼내 서유의 심장에 댔다.서유는 바로 그 손을 제지했다.“저 선천성 심장병 있어요. 갑자기 발작한 것뿐이에요. 큰일 아닙니다.”그녀는 의사를 속일 수 없을 것 같아 솔직하게 말했다.하지만 그의 진찰은 거부했다. 김시후에게 자기가 심부전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녀는 김시후가 알게 되면 또 그녀에게 발길질할까 봐 무서웠다.그녀는 아직 정가혜와 제대로 된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죽을 수는 없었다.소준섭은 의사였기에 환자가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한눈에 보아냈
이연석은 침대에 누워있는 여자가 서유라는 것을 확인하고 놀랐다.임태진이 무너지자 바로 김시후에게 달려와 빌붙다니. 태도 전환이 너무 빠른 것이 아닌가.전에는 서유가 우산을 거절하는 것을 보고 그녀에 대한 편견이 조금 사라졌는데 지금은 서유가 더욱 악독하고 교활하게 느껴졌다.고민하던 그는 결국 사진을 이승하에게 보냈다.김시후는 그의 여동생의 결혼 상대다. 서유 같은 사람이 빌붙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하지만 직접 나서서 이승하의 여자였던 서유를 혼낼 수는 없기에 이승하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금방 별장으로 돌아온 이승하는 그 사진을 보고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그리고 얼른 답장을 보냈다. 「언제 찍은 거야.」이연석이 답장했다. 「방금 찍은 거예요. 이미 소문도 나고 있어요.」이승하는 더 대답하지 않았다. 핸드폰을 쥔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서유는 상류층 자제들이 그녀와 김시후의 스캔들에 대해 떠들고 있다는 사실은 몰랐다.그저 머리가 아프지 않을 때까지 휴식하다가 떠나려고 했지만 저도 모르게 잠이 들어버렸다. 언제 잠에 든 것인지도 전혀 몰랐다.김시후는 서유가 기절한 줄 알고 그녀를 흔들어 보았다. 그리고 그저 잠든 것임을 확인한 후에야 한숨을 돌렸다.김시후는 미간을 찌푸리고 서유를 보다가 이불을 덮어주고 불을 끈 후 나가버렸다.로열 스위트룸에서 나온 김시후는 차가운 표정으로 문 앞에 서 있는 비서에게 물었다. “정말 나랑 아무 사이 아닌 여자야?”“네. 회장님께서 몇 년 전에 같이 보육원에 가서 확인해 보지 않았습니까.”김시후가 병원에서 김씨 가문으로 돌아온 후, 서유가 찾아왔었다. 그때의 김시후는 기억을 잃었을 때라 모든 사람이 낯설었다. 과거를 떠올리는 것도 두려웠다.하지만 서유는 그런 김시후의 마음도 모르고 매일 찾아왔다. 쫓아내려야 낼 수가 없었다.서유는 항상 와서 똑같은 얘기만 했다. 자기가 왜 몸을 팔았는지에 대한 이유였다.진솔한 눈동자는 그 모든 게 김시후를 위해서라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그래서 김시후
눈을 뜬 서유는 낯선 방임을 알아채고 그제야 자기가 김시후의 로열 스위트룸에서 잠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얼른 가슴 쪽을 만져본 그녀는 김시후가 그녀를 차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한숨을 돌렸다.이미 많은 시간이 지나갔지만 그녀는 아직도 김시후가 자기를 발로 찰까 봐 두려웠다. 이 트라우마는 아마도 오래갈 것 같았다.김시후는 서유를 차버린 후 숨만 붙어있는 서유를 길가에 그대로 버렸다. 트라우마가 깊에 남을 만도 하지 않은가. 그때 마침 길을 지나가는 사람이 서유를 구해줘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죽었을 것이다.서유는 항상 자기한테 잘해주던 송사월이 왜 갑자기 그녀를 차갑게 대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이미 송사월을 향한 마음은 접었지만 이 일은 그녀의 마음속에서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 같았다.다만 요즘 서유는 그 기억을 마음 한구석에 담아놓고 떠올리지 않으려고 했다.하지만 또 김시후를 만나고 나니 마음은 담담해도 사실은 조금 두려웠다.고개를 저은 서유는 김시후의 일을 더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침대에서 일어난 서유는 핸드폰을 확인했다.시간은 벌써 오후 네 시를 넘어 다섯 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수많은 부재중 전화가 와있었는데 그 전화들도 서유의 단잠을 방해하지는 못했다.이러다가 언젠가는 자다가 죽는 것은 아닌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서유는 핸드폰 잠금을 풀어 누가 전화를 걸었는지 확인했다. 확인한 서유는 깜짝 놀랐다. 거의 백 개가 넘는 부재중 전화는 모두 금색 가면의 남자가 걸어온 것이었다.저녁부터 아침까지. 미친 듯이 전화를 걸고 수백 개의 카톡까지 보냈다. 얼마나 죽은 듯이 잤길래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 걸까.서유는 그에게 전화를 걸지 않고 카카오톡을 열어 그가 보낸 문자를 확인했다.처음에는 어디냐고 묻고 위치를 보내라고 하더니 점점 과격한 언어들로 번져갔다.「딴 남자랑 같이 있는 거 아니지?」「다른 남자랑 자면 죽여버린다.」서유는 그가 미쳤다고 생각하면서 대화 기록을 지워버린 후 신경도 쓰지 않았다.그와의 대화
서유는 그 사진을 쳐다보았다. 그저 김시후가 침대 앞에 서서 서로 바라보고 있는 사진이었다.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 서유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괜찮아요. 김 대표님이 처리해 주시면 될 것 같아요.”서유는 김시후가 사진 한 장 정도는 쉽게 지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이미 처리했어요. 더는 퍼지지 않을 거예요.”“그럼 다행이네요.”서유는 고개를 끄덕이고 바로 떠나려고 했다. 하지만 김시후가 또 그녀를 잡았다.“서유 씨, 제가 저녁을 살게요. 소준섭 씨의 무례함을 대신 사과드릴게요.”서유는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회사에 가봐야 해서요.”김시후가 바로 대답했다.“오늘 깨나지 않는 것을 보고 제가 연 대표님께 얘기해서 휴가를 맡았어요.”서유는 잠시 굳었다. 어쩐지 허민은 그저 오전 일찍 문자를 보낸 후 서유를 재촉하지 않았다. 알고 보니 김시후가 대신 휴가를 맡아준 것이었다.서유는 의미심장하게 김시후를 쳐다보았다. 그가 왜 자기를 도와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5년 전에 꺼지라고 하던 김시후가, 지금은 갑자기 그녀를 도와주다니.김시후는 끈질기게 식사를 함께하자고 했다. 예전과 똑같은, 고집스러운 성격이었다. 다만 사람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을 뿐.서유는 김시후의 마음이 궁금하기도 해서 거절하지 않고 그와 함께 내려갔다.두 사람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이승하와 마주쳤다.검은색 정장을 입은 이승하는 어두운 공간 속에 숨어있는 것 같았다. 아무 표정 없던 그는 두 사람을 보자마자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서유는 그 차가운 시선을 마주하고 얼굴이 파리하게 질렸다.이승하를 볼 때마다 마음이 복잡해서 고개도 들 수 없었다.여린 몸의 서유는 저도 모르게 김시후 뒤로 몸을 숨겼다.하지만 그 행동에 이승하는 더욱 화가 나서 얼어붙은 시선으로 서유를 쳐다보았다.김시후는 그런 두 사람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고 손을 내밀어 예의 있게 인사를 했다.“이 대표님, 안녕하세요.”이승하는 담담하게 김시후의 손을 내려다보더니 얘기했다.“제가
서유는 김시후가 자기를 바라보는 시선이 약간 변한 것을 보며 그의 생각을 알 것만 같았다. 서유는 그저 차갑게 물었다.“그래서, 김 대표님은 그래도 저 같은 여자랑 같이 식사할 건가요?”김시후의 성격에 서유의 출신을 알게 된다면 가차 없이 그녀를 거절할 것이다.하지만 김시후는 고집스레 얘기했다.“당연하죠.”말을 마친 그는 호텔 다이닝룸으로 걸어갔다.서유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잠시 멍해졌다.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뒤따라갔다.다이닝룸의 매니저는 김시후를 보고 직접 마중 나왔다.“김 대표님, 이리로 가시죠.”매니저는 그들을 데리고 조용하고 아늑한 자리로 갔다. 그리고 의자를 빼주면서 공경하게 메뉴판을 건네주었다.김시후는 메뉴판을 받고 서유에게 물었다.“뭐 먹고 싶어요?”서유는 대수롭지 않아 하며 대답했다.“전 배고프지 않아서, 김 대표님이 드시고 싶은 거로 시키세요.”심장도 좋지 않고 위장에 어혈까지 있어 식욕이 별로 없었기에 많이 먹지도 못했다. 김시후는 차가운 서유의 태도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음식을 시킨 후 메뉴판을 매니저한테 돌려주었다. 매니저가 떠난 후, 김시후는 옆의 물을 들어 서유의 잔에 물을 부어주었다.그의 동작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별거 아닌 듯해 보였지만 행동에 예의와 우아함이 깃들어있었다.그건 어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보육원에서도 다른 아이들과 달랐다.과묵하고 조용하며 예의 있고 공부도 잘하는 천재였다.그때, 서유는 김시후가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지금의 서유는 저도 모르게 가슴께를 만졌다. 그쪽에서 고통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김시후는 서유의 눈이 점점 빛을 잃어가는 것을 보고 약간 미간을 찌푸렸다.“서유 씨, 무슨 생각 하세요?”“인터넷에서 본 말이 생각나서요.”김시후는 흥미를 가지면서 물었다.“무슨 말이요?”서유는 담담하게 얘기했다.“사람은 성공하면 가까운 사람부터 내친다고요.”김시후는 그 말의 속뜻을 잘 몰랐지만 서유가 자기를 암시하는 것 같다
마침 직원이 음식을 가지고 왔다. 그 덕분에 김시후는 어색한 분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나이프와 포크를 들고 느긋하게 스테이크를 썰었다.스테이크를 다 썬 그는 그 스테이크를 서유 앞에 놓아주었다.“서유 씨, 너무 말랐네요. 많이 드세요.”5년 전과 비교하면 서유는 확실히 많이 살이 빠졌다.전에는 젖살도 있어서 발랄해 보였는데 지금은 너무 말라서 껍데기만 남은 것 같았다. 그러니 잠을 그리 오래 자는 거겠지.서유는 입맛이 없어서 그저 채소 몇 개를 먹고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김시후가 썰어준 스테이크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김시후는 서유가 자기를 싫어해서 그가 준 스테이크를 먹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조금 쓸쓸했다.밥을 먹은 후, 김시후는 서유를 데려다주겠다고 했으나 서유가 차갑게 거절했다.전에 그에게 빌붙다가 매정하게 차인 후로 서유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김시후와 멀리할 수 있으면 멀리하는 게 좋았다. 어쨌든 살아야 하니까.김시후를 거절한 후, 서유는 호텔 주차장에 와서 가방에서 차 열쇠를 꺼냈다. 어제 몰고 온 차를 몰고 돌아가려는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가방 안의 핸드폰이 계속 진동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핸드폰을 꺼내보니 금색 가면 남의 전화였다. 이렇게 미친 듯이 그녀에게 연락하는 것을 보니 또 그녀와 자고 싶은 모양이다.하지만 서유의 몸은 더는 견디지 못할 정도였다.고민하던 서유는 결국 카카오톡으로 답장을 보냈다.「저 너무 힘들어요. 쉬게 내버려 두고 며칠 후에 다시 얘기하면 안 돼요?」그는 서유가 임태진을 죽이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안다.임태진은 깨나면 태안 그룹의 문제를 떠안게 될 것이기에 서유를 찾아올 사이가 없을 것이다.하지만 금색 가면 남의 심기를 거슬러 임태진의 귀에 서유의 소식이 들어간다면 임태진은 바로 나와서 서유를 해치우려고 할 것이다. 그러면 결국 잃는 것이 더욱 많다.아무리 그가 싫다고 해도 임태진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는 일단 금색 가면 남부터 진정시켜야 했다
이승하는 서유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듣자마자 표정이 어두워졌고 그의 이상함을 알아차린 서유는 감히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차 안에는 은은한 향기와 더불어 약간의 술 냄새도 있었는데 비록 강하지는 않았지만, 술을 마셨다는 건 분명했다.‘갑자기 찾아온 게 이상하다 싶었는데 역시나 술김이었네. 음주 운전을 한 게 걸리면 어쩌려고 이러는 거야.’서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생각에 잠긴 그때 이승하가 갑자기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뭉개더니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어젯밤에 김시후랑 잤어?”붉어진 눈시울로 질문하는 그의 눈빛에는 경멸이 가득했다.서유는 행여나 그에게 다른 감정이 숨겨져 있진 않을까 싶어 그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애를 썼지만 아무것도 없었다.그녀는 이 상황이 어이가 없었다.“이 대표님, 고작 그딴 질문을 하시려고 갑자기 찾아와서 이런 곳까지 데려온 거예요?”이승하는 서유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대답해.”서유는 계속하여 오해받고 있는 이런 상황이 너무 지쳤고 말하기 싫은 정도로 피곤했다.그녀의 침묵에 이승하의 짙은 눈썹이 점차 조여졌다.그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서유의 턱을 움켜쥐며 싸늘하게 입을 열었다.“말해.”진지한 그의 말투와 행동에서는 강요하는 듯한 압박감이 느껴지기도 했다.서유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마음속의 고통을 억누르며 침착하게 답했다.“안 잤다고 하면 믿으실 거예요?”이승하는 헛웃음이 나왔다.“그 남자랑 로열 스위트룸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 날 저녁 늦게 나왔는데 내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아?”서유는 설명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지만, 꾹 삼키고 말을 바꿨다.“그 사람과 잤다고 믿고 있으면서 굳이 왜 물어보시는 거죠?”서유의 턱을 잡고 있던 이승하의 손에는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도대체 잤어, 안 잤어?”서유는 눈을 내리깔고 무덤덤하게 말했다.“잤어요.”이승하는 눈빛이 흔들리더니 이내 싸늘함을 내뿜었다.“그 남자랑 왜 잔 거야?”“잘생긴 데다가 돈이 많잖아요.
순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서유는 손길을 피하려고 부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지만 이내 그의 손에 눌려 꼼짝달싹하지 못했다.그는 서유의 귓불을 깨물며 허스키한 목소리로 부드럽게 물었다.“응?”너무나 매혹적인 그의 말투에 서유는 심장이 쿵쾅쿵쾅 요동치기 시작했다.이승하의 목소리는 굵직하면서도 섹시했다. 이런 소리가 귓가에 맴돌면 너무 매력적이어서 빠져들지 않을 수가 없다.그녀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애를 썼다. 이승하가 이렇게 행동하는 건 그녀를 모욕하기 위함이니까.서유는 고개를 숙이고 붉은 입술을 꽉 깨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자 그는 귓불에서 천천히 어깨로 내려갔고 쇄골에 입을 맞추며 나지막하게 물었다.“얘기해 봐. 도대체 얼마면 만족해?”이승하의 말투에서는 마치 그녀가 그릇된 행동을 했다고 비난하는 듯한 허탈함이 느껴졌다.서유는 마음이 혼란스러워 차마 이승하를 쳐다보지도 못했다.그의 부드러운 입맞춤에 그녀의 몸은 점점 축 늘어지기 시작했다.“2,000억 줄 테니까 그 사람 좋아하지 마.”서유는 그에게 홀리는 듯 심장의 떨림을 멈출 수가 없었다.그녀는 안전벨트를 꽉 쥐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자신과 관계를 나누려는 이승하를 바라봤다.“제가 더럽지 않나요?”고개를 숙인 채 그녀에게 입을 맞추던 이승하는 갑자기 멈칫했다.서유는 그의 몸이 순식간에 경직되는 걸 느낄 수 있었고 허리를 꼭 감싸안았던 손에도 왠지 모를 소외감이 생겼다.그녀는 이승하가 당장 자신을 뿌리칠 것으로 생각했는데 예상과 달리 그는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었다.이승하는 힘없이 중얼거렸다.“그러니까... 왜 그랬어.”말투로는 그녀를 탓했지만, 그의 몸은 거리를 유지하는 듯 점점 멀어졌다.서유는 이승하가 자신을 매우 싫어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다만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을 뿐이었다.어쩌면 술을 마신 탓에 정신이 혼미해져서 스킨십을 하고 싶은 걸 수도 있다.추측할 수도 없고 더 이상 헤아리고 싶지 않았던 서유는 차분하게 말했다.“이 대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