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가 서유를 안고 막 식탁에 앉았을 때, 밖에서 롤스로이스 한 대가 들어왔다.차에서 내린 이연석은 네이비 코트를 걸치고 씩씩한 발걸음으로 재빨리 별장을 들어섰다.그는 코트를 벗어 하인에게 건네주고 다시 손을 들어 머리카락의 눈송이를 털더니 물었다.“형은요?”하인은 조심스럽게 부엌 쪽을 가리켰다.“도련님께서는 식사 중이십니다.”이연석은 하인의 시선을 따라 부엌을 보다가 이승하의 품에 안겨 있는 여자를 보고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그는 저벅저벅 걸어와 서유를 가리키며 말했다.“아직도 우리 형을 찾아올 염치가 있는 거예요?”서유가 입을 열기도 전에 그녀를 껴안은 남자가 차가운 눈동자를 번쩍 들더니 이연석을 쏘아보았다.“그 손가락 필요 없나 보지?”이연석은 형의 차가운 시선을 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이 여자가 형한테 상처를 얼마나 줬는데 아직도 만나는 거야?”3개월 전, 이승하가 실려 와서 며칠 동안 혼수상태에 빠졌고, 깨어나서도 자주 토혈할 정도로 슬퍼했다. 할아버지가 전 세계에서 가장 좋은 의사를 불러오지 않았다면 이승하는 지금 이 세상에 없었을 것이다.이승하는 매번 이 여자를 위해 목숨을 바쳤지만, 서유는?형부랑 함부로 뒹구는 것도 모자라 이승하 앞에서 그런 짓을 하다니!하지만 이승하는 서유의 명성을 보호하기 위해 이것들을 모두 숨겼다.이연석이 병원에서 소수빈의 말을 엿듣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이승하를 바라보는 이연석의 눈빛은 이해할 수 없는 기색이 가득했다.“형 정신 결핍증 있잖아. 그런데 왜...”이연석은 어떻게 더러운 여자를 받아들일 수 있냐고 말하려는데 펑 하는 소리가 들렸다.숟가락이 유리그릇에 부딪혀 큰 소리가 났고 놀란 이연석은 이내 다음 말을 삼켰다.“미안!”식탁에 앉은 양복 차림에 아름다운 외모의 남자는 얼음장 같은 눈으로 이연석을 쏘아보고 있었다.이연석은 미간을 살짝 움츠렸다. 이승하는 보통 그에게 이 정도로 냉담하게 대하지 않는다. 서유를 위해서라면 정말 한
이연석은 화가 나서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며 답답해서 말을 이을 수 없었다.그러나 이승하는 차가운 눈을 들어 다시 한번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안 가?”이연석은 화가 나서 하인이 가지고 있던 코트를 빼앗아 어깨로 내동댕이치고는 떠나려고 돌아섰다.서유는 급히 이승하의 몸에서 내려와 이연석을 불렀다.“연석 씨, 잠깐만요.”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이연석은 서유를 상대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승하의 경고가 떠올라 얌전히 발걸음을 멈추었다.어쩔 수 없었다. 핏줄의 억압이 너무 심해서 어릴 때부터 몸에 배어 있었다. 둘째 형님의 말씀이 곧 성지인데 누가 감히 듣지 않겠는가?서유는 이연석 앞에 와서 그를 보며 진지하게 설명했다.“연석 씨, 오해하지 마세요. 전 당신 형 배신하지 않았어요. 누군가 당신 형이 날 못 찾아오게 하려고 일부러 사람을 보내 날 사칭해 꾸민 일이에요. 모두 거짓이에요.”이연석을 그 말을 듣고 부쩍 수척해진 서유를 보았다.“그럼 반년 동안 어디 있었어요? 왜 형 찾으러 오지 않았죠?”서유는 눈을 늘어뜨리고 자신의 왼쪽 손목을 보며 사실대로 말했다.“지현우한테 감금당해서 도망치지 못했어요.”이연석은 어리둥절했다. 어쩐지 정가혜에게 서유가 이승하를 배신했다고 말했을 때 그녀는 죽어도 믿지 않았다. 그녀는 서유가 지현우에게 갇혀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라고 확신했다.이 일로 정가혜와 이연석은 크게 싸웠고, 이연석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정가혜는 통역사를 데리고 영국으로 가서 서유를 찾아다녔다.후에 정가혜는 이승하가 서유를 직접 만나러 갔다는 말을 듣고 영국에서 돌아왔다.아마도 소수빈이 그녀에게 CCTV 영상, 녹음, 동영상을 보여줬을 것이고 정가혜도 다시 서유를 찾지 않았을 것이다.이연석은 정가혜가 믿었는지 안 믿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다시 그녀를 찾아갔을 때, 그녀는 이연석을 상대도 하지 않았다.그도 이 때문에 서유를 원망하고 있었다. 이승하와 정가혜 모두 그녀를 위해 목숨도 아랑곳하지 않았다.그래서 방금 서유를 보
화가 난 이연석은 이내 발걸음을 돌렸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승하가 서유를 향해 입을 열었다.“가혜 씨는 아직 당신이 돌아온 줄 모르고 있어. 내일 같이 가혜 씨 만나러 가자.”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서유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마침 내일 찾아가려던 참이었어요. 반년 동안 사라졌으니 많이 걱정하고 있을 거예요.”한편, 모퉁이를 돌아서던 이연석은 두 사람의 대화가 듣고 발걸음을 멈추었다.그는 제자리에 서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이를 악물고 다시 식당으로 향했다. 잘생긴 외모에 반듯한 이연석이 서유에게 다가와 가늘고 긴 손을 가슴에 얹고는 고개를 숙이며 정중히 사과했다.“형수님, 죄송합니다. 방금은 제가 무례했습니다. 형수님을 의심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제 무례함을 용서해 주세요.”깜짝 놀란 그녀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그녀를 껴안고 있던 남자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그래서 조건이 뭐야?”둘째 형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을 보고 이연석은 그제야 깨달았다. ‘쌀쌀맞은 인간, 내가 사과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니...’결국은 그의 약점을 잡고 그가 사과를 하게 만든 후에서야 비로소 입을 열었다. 이승하의 상대가 되지 않았던 이연석은 속이 꽉 막히는 것 같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서유 씨가 무사히 돌아온 소식은 내가 가혜 씨한테 확실하게 전할게요.”이승하는 숟가락으로 국그릇에 담긴 국물을 휘저으면서 담담하게 그를 쳐다보았다.“그리고?”“내일 내가 직접 가서 가혜 씨 데리고 올게요. 됐죠?”그 말에 앉아 있던 남자는 그제야 문밖을 향해 턱을 치켜들었다.“나가봐.”그의 기에 눌린 이연석은 달갑지 않은 표정을 지은 채 이를 갈며 자리를 떴다.화가 잔뜩 난 이연석의 모습을 보고 서유는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이렇게 날 감싸면 내가 사람들한테 미움만 받게 될 거예요.”이승하는 또다시 닭고기 수프를 떠서 서유에게 먹여주며 단호하게 말했다.“내 와이프를 내가 지키지 않으면 누가 지켜?”와이프라는 말에 서유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곰곰이 생각한 뒤, 다시 고개를 들어 눈앞에서 답을 기다리고 있는 남자를 보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당신을 언제 사랑하게 됐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요. 그저 당신이 긴 머리를 좋아한다는 말에 난 머리를 길렀고 위가 안 좋은 당신을 위해 담백한 죽 한 그릇이라도 끓여주고 싶었죠.”“매번 당신이 날 데리러 올 때면 난 너무 기뻤어요. 화가 난 채로 떠나는 당신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고요. 당신의 눈빛 하나, 몸짓 하나, 말 한마디가 내 마음을 들었다 놨다 했을 때부터인 것 같아요.”그녀가 하는 말을 들으며 그의 눈에는 애틋함이 더욱 짙어졌다.도대체 언제 사랑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그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저 함께한 시간이 많을수록 점점 정이 들었다고만 했다. 그녀는 그와 함께하면서 저도 모르게 그에게 마음을 빼앗겼던 것 같다. 아마 그 마음은 그녀 자신도 모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괜찮다. 이제는 그녀 또한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늦은 것은 아니지만 아쉬운 건 사실이다. 서로 어긋났던 시간들이 아까웠다. 서로 사랑을 해도 부족할 시간이었을 텐데. 이승하는 소중히 여기지 않았던 지난날을 후회하고 있다. 그가 손을 뻗어 그녀의 눈썹을 어루만졌다. “더 이상 당신 다치게 안 해.”그녀는 웃음을 머금고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창밖에는 아직 눈송이가 흩날리고 있었고 식당에는 사랑하는 남녀가 다정하게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평화롭고 아름답기만 했다.한편, 지현우의 위치를 알아낸 택이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이승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보스, 지현우는 이미 귀국했고 현재는 그의 별장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전화를 받은 이승하는 품에 안겨 달콤한 잠을 자고 있는 서유를 내려다보았다.그녀가 잠에서 깨기라도 할까 봐 그는 자신의 허리를 감싸고 있는 그녀의 손을 살짝 밀어내고 이불을 젖힌 뒤 침대에서 내려왔다. 욕실에 들어서자마자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목소리에 차가움이
가는 도중에 갑자기 택이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보스, 갑작스럽게 일이 생겼습니다. 지현우의 별장으로 바로 오세요.”한 손으로 차를 몰던 남자는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무슨 일이야?”전화기 맞은편,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며 택이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와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짙은 눈썹을 살짝 찡그리던 그의 눈동자에서 창밖에서 흩날리는 눈보차처럼 차가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굳은 얼굴로 전화를 단번에 끊어버리는 그는 이내 방향을 바꾸어 지현우의 별장으로 향했다. 한편, 잠에서 깨어난 서유는 습관적으로 옆자리를 만져보았고 차가운 기운이 손끝에 전해졌다.어디 갔지?당황한 그녀는 얼른 이불을 젖히고 일어나 침대 머리맡에 불을 켜고는 침대에서 내려왔다.슬리퍼도 신지 못한 채 그녀는 욕실과 옷방 그리고 서재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그러나 이승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공포와 불안감은 점점 커져만 갔다. 그녀는 외투를 걸치고 맨발로 2층에서 뛰어 내려와 주태현의 방문을 두드렸다.“주 집사님, 이 사람 어디 간 거예요?”잠에서 깨어난 주태현은 정신없이 일어나 문을 열었고 초조해하는 그녀를 다독였다.“도련님께서 볼일이 있으신 것 같아요. 서유 씨도 알다시피 처리해야 할 일이 이리 수시로 생기게 됩니다.”김씨의 신분에 대해서 서유도 이미 알고 있었던 터라 주태현은 더 이상 숨기지 않았다.“매번 무사히 돌아오시니까 걱정하지 말아요.”그러나 서유는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아 불안했다. 바로 이때, 거실 구석에 놓인 전화기가 갑자기 울렸다.주태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전화기를 쳐다보았다.“이상하네. 이 전화기는 오랫동안 울린 적이 없었는데 왜 갑자기 한밤중에 울리는 거지?”전화 소리에 그녀는 당황한 마음을 억누르고 주태현을 따라 그 전화기를 향해 걸어갔다.전화를 받자마자 주태현의 안색이 순식간에 변하면서 그가 고개를 돌려 서유를 쳐다보았다.“지씨 라는 남자가 서유 씨를 찾는데요.”지씨? 설마 지현우? 그가 어떻게 이 별
자신을 잡아당긴 남자의 얼굴을 똑똑히 본 순간, 생기를 되찾았던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핏기가 싹 가셨다. 창백한 얼굴로 재빨리 차 문을 밀었지만 그녀는 이미 차 안으로 완전히 끌려 들어간 상태였고 차 문이 잠겨져 있는 상태였다. 차에서 내릴 수 없었던 서유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지현우를 쳐다보았다. “날 놔준 거 아니었어요? 왜 또 찾아온 거예요?”흰 셔츠를 입은 깔끔한 남자가 그녀의 물음에 고개를 살짝 돌리고 그녀를 쳐다보았다.“한 가지 확인할 게 있어서요.”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려고 그녀가 입을 열자마자 그가 갑자기 몸을 앞으로 기울였고 그 모습에 놀란 서유는 연신 뒤로 물러났다. “뭐 하는 거예요?”지현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가까이 다가왔고 그녀를 차창까지 내몰고는 손을 뻗어 그녀의 턱을 감쌌다.차갑고 낯선 촉감이 얼굴이 닿는 순간 그녀는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아 미친 듯이 발버둥 쳤다. “나 건드리지 말아요.”그녀의 얼굴, 그녀의 몸 구석구석 모든 곳은 이승하만의 것이었고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현우는 그녀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아랑곳하지 않았고 그녀의 두 손을 꽉 잡고는 그녀를 차창에 밀쳤다. 흐릿한 시선이 그녀의 붉은 입술에 닿았다. 한참 동안 지켜보던 그가 갑자기 고개를 숙이고 그녀에게 키스를 퍼부었다. “지현우 씨, 당신 이러는 거 언니한테 미안하지도 않아요?”그 말을 들은 남자는 흠칫하더니 이내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가까이 다가갔다.그러다가 그녀의 붉은 입술에 거의 다 닿았을 때, 그가 갑자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놀라움에 온몸을 떨고 있던 서유는 점차 눈시울이 붉어지는 그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미쳤어요?”한참 동안 웃던 그가 그녀를 풀어주고는 몸을 곧게 펴고 앉아 주머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초희야, 나 너한테 잘못한 것 없어. 이 여자한테는 전혀 관심이 없으니까 하늘에서 나 원망하지 마.”그 말에 흠칫하던 서유는 복잡한 얼굴로
위층으로 올라오던 서유는 총소리에 깜짝 놀라더니 계단 손잡이를 꽉 잡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올라갔고 사람들 사이로 유리집의 광경을 보고는 순간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그녀는 총을 마구 쏘는 이승하를 무의식적으로 바라보았고 총을 쥔 그의 손이 떨리는 것을 보고 그가 이 상황을 견디기 힘들어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이승하에게 뛰어가려던 그때 지현우가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 “이승하 씨가 스스로 알아차리게 해요. 안 그러면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이런 일은 가짜와 진짜를 떠나 가시처럼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을 것이고 시간이 지나다 보면 의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지현우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한 서유는 고개를 들어 그를 노려보았다.“가뜩이나 마음에 상처가 많은 사람이에요. 이렇게 상처 주는 거 너무 잔인한 거 아니에요?”그 말에 지현우는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내가 잔인하다고요?”실소를 터뜨리던 그가 천천히 웃음을 거두고는 멀리서 이승하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눈빛을 반짝였다. “적어도 저 사람이 본 건 가짜잖아. 내가 본 건 진짜였다고.”그가 작은 목소리로 한 마디 중얼거리더니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서유를 쳐다보았다. “누가 더 잔인할까요?”반짝이던 그의 눈빛은 점차 빛을 잃어가면서 절망적으로 변했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서유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예전에 언니가 다른 남자와 잠자리하는 모습을 그가 직접 목격했었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언니를 사랑하는 만큼 언니를 원망하고 있었고 죽기보다 못한 고통 속에서 살고 있어도 언니를 따라가지 않았던 것이다. 서유는 그와 언니 사이에 도대체 어떤 원한이 있는지 모른다. 그저 지금 지현우의 모습은 어둠에 휩싸인 사람처럼 전혀 삶의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죽고 싶어도 다른 세상에서 또다시 언니를 만나게 될까 봐 그게 두려워서 죽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언니를 보고 싶어 하지 않으면서도 언니를 그리워하는 모순된 감정 때문에 그는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받
이승하는 그 여자를 한 번 쳐다보고 두 번 다시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보면 구역질이 날 것 같아서 말이다. 그는 서유의 손을 잡고 유리방으로 나온 뒤, 차가운 목소리로 택이에게 명했다. “저 여자 얼굴 망가뜨려.”이 세상 그 누구도 서유와 닮은 얼굴을 가질 수 없었다. 옆모습이라고 해도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자신의 얼굴을 망가뜨리라고 하는 말에 그 여자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급히 용서를 구했다.“대표님, 일부러 서유 씨 행세를 한 건 아니에요. 저도 그냥 분부대로 한 일이라고요. 제발 용서해 주세요.”목소리까지 똑같은 두 사람, 서유조차도 제대로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였으니 하물며 이승하가 어찌...서유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침대에 꿇어앉아 애걸복걸하는 여인을 쳐다보았다. 지금은 불쌍해 보이지만 자신의 행세를 하며 이승하에게 상처를 주고 그로 인해 심각한 트라우마가 생긴 이승하를 생각하며 서유는 동정심을 거두었다. 이승하는 뒤에서 용서를 비는 소리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그저 애틋한 눈빛으로 서유를 쳐다볼 뿐이었다.“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그의 눈을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그녀는 사실대로 털어놓았다.“지현우 씨가 날 데리고 온 거예요.”그 말에 이승하는 안색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침대에 있는 저 여자를 용서할 수는 있어도 지현우는 절대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 인간 지금 어디 있어?”옥상 입구 쪽을 바라봤지만 지현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지현우가 도망갔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 아래층에서 갑자기 술병이 타일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 옆에 앉아 있는 지현우는 비싼 손목시계를 찬 손에 와인 한 잔을 들고 고개를 젖혔다. 바 위에 매달린 크리스털 램프에서 빛이 흘러 내려와 그의 잘생긴 얼굴을 환하게 밝혔다. 그는 위층에서 내려오는 사람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오로지 술을 마시는 데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서유는 Y국에서 그와 함께 지내던 시절에도 그가 이리 혼자 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