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석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벌써 다음 날 아침이었다. 이승연에게서 모든 걸 전해 들은 그는 분노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감히 우리 형을 건드려? 지금 당장 죽여버릴 거야!”이연석은 이를 바득바득 갈더니 연중서에게 복수하러 가겠다면서 몸을 돌렸다.“이연석, 진정해!”하지만 이승연의 한마디에 곧바로 자리에 멈춰 섰다.어렸을 때부터 이승연을 무서워했던지라 그녀의 고함 한 번에 천천히 이성을 되찾았다.이승연은 침착한 얼굴로 이연석을 바라보며 말했다.“이연석, 우리 중에서 임시 대표직을 맡은 적 있었던 사람은 너뿐이니까 당분간 네가 회사를 관리해. 그리고 절대 그 누구에게도 승하 상태를 털어놓아서는 안 돼, 알겠어?”이승하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이 상황에 회사 관리 같은 건 맡고 싶지 않았던 이연석은 곧바로 거절하려고 했다.하지만 막 입을 떼려는데 이승연의 시선이 옆에 있던 정가혜에게로 향했다.“그쪽은 누구시죠?”정가혜는 서유가 납치됐다는 말에 꽂혀 지금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 상태였다.이에 이연석이 대신해서 답했다.“서유 씨 가장 친한 친구 정가혜 씨예요.”이승연은 두 사람이 손깍지를 끼고 있는 것을 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정가혜라면 그녀 역시 들어본 적이 있다. 고아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바로 클럽에서 일하고 이혼하고 나서는 자기 명의의 클럽을 차렸다고 말이다.그 덕에 경제적으로 여유는 생겼겠지만 이러한 배경의 여자를 이연석 부모님이 허락해주실 리가 없다. 며느리를 고르는 기준에 재산 유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으니까.정가혜는 이혼한 경력이 있고 직업 특성상 클럽에 상주한다는 이 두 가지만으로 벌써 며느리 후보에서는 제외될 것이다.뭐가 됐든 이승연은 이연석의 연애에 관여할 생각이 없기에 아무런 조언도 없이 그저 인사를 건네고는 다시 시선을 돌렸다.하지만 눈치가 빠른 정가혜는 그 짧은 눈 맞춤에서 이승연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저는 일단 서유 찾으러 갈게요. 승하 씨가 깨어나면 연락 줘요.”말을 마친 정가혜가
줄곧 자다가 드디어 천천히 눈을 뜬 서유는 눈을 깜빡이다가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어 주변을 돌아보았다.화려한 샹들리에에 프랑스풍 인테리어, 창문밖에는 영국식 주택들이 줄지어 있었고 에메랄드빛 바다도 보였다.이곳은... Y 국이다!그리고 지금 이 집은 지현우와 김초희의 별장이다.문득 이럴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서유는 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일어나는 순간 피로감과 어지러움이 밀려와 다시 침대에 털썩 쓰러져버렸다.서유는 흰 손을 들어 미간을 주무르며 어쩌다 Y 국에 오게 된 건지 떠올려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떠오르지 않았다.한편 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지현우는 인기척을 느끼고 탁자에 있는 물컵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침대에 누워 계속 생각하던 서유는 지현우의 모습이 보이자 예쁜 미간을 단번에 찌푸렸다.“나한테 약 먹였어요?”머리와 몸이 무겁고 의식마저 또렷하지 않은 것이 약물 효과라고밖에 할 수가 없었다.“일정한 시간이 지날 때마다 수면제를 먹였어요. 그 덕에 푹 자서 좋지 않았어요?”지현우는 뻔뻔하게 인정하더니 손에 든 물컵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조금 더 잘래요?”서유는 그가 진짜 단단히 미친 것 같은 생각을 했다. 그녀는 가까스로 몸을 일으킨 후 얼굴을 들어 물었다.“승하 씨는 어떻게 됐어요?”분명 이승하를 찾으러 가려고 했다가 지현우의 손에 의해 기절했었다.중간에 언뜻언뜻 눈을 뜬 것 같기는 했지만 그것도 수면제를 지속해서 투여 당하는 바람에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는 오늘이 며칠인 건지도 모르고 있다.서유는 지금 당장 이승하에게로 가 몸은 괜찮은지 많이 아팠었는지 물어본 다음 그를 꼭 끌어안아 주고 싶었다.지현우는 물컵을 옆에 내려놓고 소파에 앉은 다음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다.“죽었어요.”죽어?서유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한번 물었다.“뭐라고 했어요?”지현우는 그녀를 힐끗 보다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이미 들었으면서 왜 다시 물어보는 거죠?”침대 시트
“이승하 뇌종양 있는 거 몰랐죠?”지현우의 이마에 난 피가 서유의 미간과 이마에 뚝뚝 떨어졌다.하지만 서유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마치 인형처럼 그를 올려다보았다.“뇌 질환이 있는 상태에서 외부 충격까지 받았는데 무사하길 바라는 게 더 웃긴 거 아닌가?”사람 목숨 따위 어찌 돼도 좋다는 듯한 그의 말이 너무나도 잔혹하게 들려왔다.서유는 시트를 꽉 쥔 채 마치 기계처럼 입을 열었다.“당신이 하는 말 단 한마디도 안 믿을 거예요.”전에 검사했을 때 분명히 편두통일 뿐이라고 했다. 그러니 뇌종양이라는 건 지현우의 거짓말일 것이다.“안 믿는 다고요?”지현우는 코웃음을 쳤다.“그러면 당신 명의로 된 막대한 자산이 어디서 온 건지 한번 확인해 보던가요.”서유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지현우는 입가의 미소를 서서히 지우더니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와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이승하가 당신 신분을 되찾아준 건 자산을 전부 당신 명의로 돌리기 위해서예요. 당신이 남은 생을 편히 살게 하려고 유서까지 적어놓은 상태라고요. 알겠어요?”지현우의 말에 서유는 순간 정체 모를 한기를 느꼈다.“거짓말! 내 신분을 되찾아 준 건 내 이름으로 JS 그룹 본부를 설계해줬으면 해서예요. 그리고 자산을 넘겨준 것도 내가 괜히 주눅 들까 봐 그런 거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나 속이려 하지 마요. 그 사람은 절대 쉽게 죽지 않아요. 승하 씨는 절대 쉽게 죽지 않는다고요!”서유는 마지막 발악을 하듯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지현우는 그녀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분노에 사로잡힌 그녀를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그리고 그 싸늘한 시선에 서유는 점점 더 큰 절망을 느꼈다.그러다 문득 자신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주며 했던 이승하의 말이 떠올랐다.“이 사진 지우지 마. 기념으로 남겨 둬.”3년 전 서유 역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줄 알고 기념으로 그에게 사진을 건네주었다.‘설마... 정말 죽은 거야...?
지현우는 가만히 선 채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생에 대한 미련이 점점 사라지는 듯한 눈을 확인한 지현우는 순간 심장이 철렁해 그녀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러고는 또다시 그녀의 얼굴을 한 손에 쥐고 물었다.“이승하가 죽었다니까 같이 죽고 싶기라도 해요?”서유는 눈물 젖은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긍정의 뜻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지현우는 그녀의 마음을 알아채고 이번에는 그 희망마저 짓밟아버렸다.“당신이 죽으려고 하면 나는 당신을 살려낼 겁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살려낼 거에요. 그러니까 멋대로 죽을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겁니다.”“왜요?”왜 이승하와 함께 죽지도 못하게 하는 거지?지현우는 허리를 숙인 채 서유 얼굴 가까이 다가왔다.“당신은 한평생 초희 심장으로 살아가야 하니까.”서유는 그 말에 갑자기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웃음을 터트렸다.눈물을 계속 흘린 채 큰소리로 웃는 그녀의 모습에 지현우가 멈칫하다가 물었다.“왜 웃어요?”서유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그의 손을 뿌리치고 바닥에 누운 채 실성한 듯 울고 또 웃었다.지현우는 그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다시 한번 물었다.“왜 웃는지 말해봐요.”서유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이제는 기괴한 웃음소리까지 냈다.지현우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 나 몸을 일으킨 후 바로 조지를 불렀다.“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은 건 아닌지 한번 봐봐요.”조지는 제자리에 가만히 선 채 퉁명스럽게 말했다.“어차피 현우 씨가 원하는 건 초희 씨 심장 아니에요? 그러면 서유 씨가 충격받아서 미치광이가 되면 오히려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어서 좋은 거 아닌가요?”그 말에 지현우가 미간을 찌푸렸다.“당신이 나를 속여서 Y 국으로 오게 한 거 아직 잊지 않습니다.”“현우 씨를 속인 건 당신이 서유 씨를 곁에 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 그랬던 겁니다. 서유 씨는 초희 씨가 아니에요. 그저 초희 씨 심장을 가진 사람일 뿐이라고요. 이러는 거 서유 씨한테 가혹한 일이라는 생각 한 번도 안
지현우는 서유가 자살 시도를 하지 못하게 사람을 시켜 그녀의 두 손과 두 발을 침대에 묶어버렸다.침에 위에서 꼼짝도 못 하게 된 서유는 더 이상 발버둥 치지도, 큰소리로 비명을 지르지도 않았다.감시 겸 보살핌을 명 받은 도우미는 서유의 눈에서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서유는 흐느낌 하나 없이 바다만을 바라보며 계속 눈물을 흘렸다. 그 모습은 마치 죽은 사람 같기도 했다.그 뒤로 일주일 동안 서유는 이대로 죽기라도 하려는 듯 밥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았다.지현우는 그녀를 이대로 죽일 생각이 없었기에 영양 수액을 끊임없이 맞게 했다. 일단 숨만 붙어 있으면 된다는 것처럼 말이다.조지는 영양 수액을 바꾸려 왔다가 공허한 서유의 눈을 보고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설마 하는 마음에 손을 들어 서유의 눈앞에서 휘휘 저어보니 그녀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이에 다급해진 조지가 황급히 약 보관함을 열어 눈을 치료하는 약을 그녀의 입에 넣었다.하지만 서유는 약을 삼키려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뱉어버리기까지 했다.조지가 그녀를 설득하려고 입을 열려는데 서유가 다시 바다를 바라보며 낮게 중얼거렸다.“아까, 승하 씨가 나 데리러 온 걸 봤어요... 그러니까 나 이대로 내버려 둬요...”그녀는 이대로 이승하를 따라가 죽으려는 것이다.조지는 침대 곁에 서서 말라가는 여자를 보다가 다시 몸을 돌려 줄곧 그녀를 감시하던 지현우를 향해 물었다.“초희 씨 동생을 잘도 이렇게 만들어놨네요. 이제 만족해요?”지현우는 소파에 기대앉은 채 유유하게 조지를 바라보며 말했다.“당신의 임무는 저 여자를 살리는 것이지 쓸데없이 입을 놀리는 게 아닐 텐데요.”“이대로라면 서유 씨는 죽을 수도 있어요!”조지의 호통에 지현우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했다.“그럼 차라리 식물인간이 되는 약이라도 먹여요.”지현우는 전처럼 서유가 얌전히 침대 위에서 울지도 않고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조지는 주먹을 쥔 손을 부들부들 떨더니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
지현우의 시선이 그녀의 뒷모습에 떨어졌다.“그렇게도 이승하가 보고 싶어요?”서유는 여전히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뒤에 누가 있든 말든 전혀 상관없는 얼굴이었다.지현우는 익숙하다는 듯 소파에 기대앉아 긴 다리를 꼬며 말했다.“전에 이승하를 사랑하냐고 물었을 때 나한테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어떻게 고작 몇 개월 못 본 사이에 같이 죽을 수도 있을 정도로 사랑이 깊어진 거죠?”그는 서유가 침묵할 줄 알았다는 듯 그녀 대신 대답했다.“그사이 사랑이 더 깊어진 게 아니라 애초에 계속 이렇게 사랑했던 거죠. 그동안은 그저 사랑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뿐이고요. 그런데 이제 영영 보지 못하게 되고 나서 사랑했다는 것을 인정하며 죽겠다고 난리라니... 참 웃긴 일이에요, 그렇죠?”지현우는 마치 모든 걸 다 꿰뚫어 보듯 제삼자의 시각에서 서유를 질책했다.“하나 궁금한 게 있어요.”지현우가 다시 물었다.“전에 내가 조사했을 때 이승하는 당신을 5년이나 비밀 애인 취급을 했어요. 그리고 당신을 전혀 소중히 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손을 올려 죽일 뻔하기도 했죠. 그런데 그렇게 상처를 준 사람을 어떻게 쉽게 용서할 수 있었던 거죠?”서유는 이승하가 그런 짓을 했는데도 전부 용서하고 심지어는 그를 위해 목숨까지 아까워하지 않는데 왜 김초희는 자신을 떠난 거지?지현우는 대답을 얻으려는 듯 서유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하지만 서유는 그저 앞만 응시한 채 그의 말에 흥미도, 대답해줄 가치도 느끼지 못했다.사실 지현우도 그녀에게서 대답을 얻으려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녀의 입을 통해 ‘괜찮아. 나 너 다 용서했어.’라는 말이 듣고 싶었을 뿐이다.물론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 없다는 건 잘 알고 있다. 지현우는 이승하보다 더 한 짓을 김초희에게 했으니까.지현우는 자조하듯 웃더니 줄에 묶여 빨갛게 된 서유의 손목과 발목을 바라보았다.김초희를 곁에 둘 수 없게 됐을 때도 그는 이런 식으로 김초희를 옆에 묶어버렸다.그때 김초희는 반항하고 화를 내
서유의 몸은 점점 더 야위어갔다.조지는 갖은 영양 수액으로 그녀의 목숨을 부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는 살 의지가 없었다.조지는 생기 없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 링거를 놓으려던 손을 멈췄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행여 자신이 쓸데없이 입을 놀리기라도 할까 봐 빤히 이쪽을 바라보는 지현우를 보며 말했다.“이제 더 이상 안 돼요. 서유 씨 이만 놓아주세요.”지현우는 서유 쪽을 힐긋 보더니 다시 조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무슨 수를 써서든 살려놓으세요.”“서유 씨를 살릴 방법이 뭔지 잘 알고 있잖아요!”조지는 그에게 이승하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털어놓으라고 압박했다.Y 국은 신사의 나라로 지현우가 이런 식으로 여성을 학대하는 모습을 조지는 받아들일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서유 씨가 죽으면 초희 씨 심장도 없어지는 거라고요.”지현우는 꼰 다리를 풀고 천천히 몸을 앞으로 기대 조지의 얼굴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그러니까 죽지 않게 살리라고요.”지현우는 서유의 생사 따위 아무래도 상관없는 얼굴로 서유를 살리라고 하고 있다.조지는 한숨을 길게 내뱉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침대에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서유를 바라보았다.그러고는 결국 다시 그녀의 팔에 링거를 꽂아주고 옆에 앉아 그녀가 눈을 뜰 때까지 기다렸다.한참 뒤 서유는 뻑뻑한 눈을 천천히 떴다. 그러자 가장 먼저 조지의 얼굴이 희미하게 보였다. 얼마 전까지 분명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조지가 끊임없이 약을 먹이는 바람에 그녀의 시력이 점차 회복되었다.하지만 이건 서유가 원하는 결과가 아니었다.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고는 힘겹게 말을 뱉었다.“나 좀... 내버려 둬요...”조지는 서유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서유 씨 임신했어요.”그 말에 이미 죽은 줄 알았던 그녀의 심장이 갑자기 요동쳤다. 마치 검은색 세상에 한 줄기 빛이라도 스며든 것처럼.서유는 조지의 말이 진실인지 확인하려고 그와 눈을 맞추려고 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그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고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서유는 다시 한번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배면 뭐가 됐든 반응이 있어야 할 텐데 새로운 생명이 깃든 느낌은 전혀 없었으니까.서유는 힘들게 손을 들어 자신의 배를 만지작거리며 물었다.“한 달 됐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조지는 지현우를 한번 쳐다보았다가 다시 서유를 보며 말했다.“서유 씨, 나 의사잖아요. 다 알 수 있어요...”조지는 그저 시간을 대충 계산해 도박 수를 던진 것뿐이다. 지현우가 그녀를 데려온 지도 벌써 20일, 이곳으로 오기 전 서유는 분명히 이승하와 줄곧 함께 있었을 것이다.만약 서유가 잠자리를 한 적 없다고 대답했으면 조지는 자신이 거짓말한 것이라고 얘기해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대답은 어떻게 알았냐는 것이었다.조지는 기왕 이렇게 된 거 이 거짓말로 서유가 이승하를 다시 만날 때 건강한 모습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이승하가 죽지 않은 이상 서유를 어떻게든 살려야 했다.조지는 허리를 숙여 서유의 귓가에 격려의 말을 해주었다.“몸부터 건강해야 보고 싶은 사람도 만나러 갈 수 있지 않겠어요?”그는 그녀에게 암시할 생각이었지만 이미 지현우의 거짓말에 속은 서유는 이승하의 묘에 간다는 것으로 알아들었다.서유는 자신의 작은 배를 매만지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왜 하필 지금 이때 아이를 밴 걸까?그녀에게 찾으러 오지 말라는 이승하의 뜻인 걸까?이승하도 없는데 이 아이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서유는 배를 매만진 손을 멈추고 조지를 보며 말했다.“아이를...”그녀는 ‘지워주세요’라는 말을 내뱉으려고 했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 아이는 이승하와 그녀의 아이이고 그와 그녀가 그토록 고대했던 아이였다.하지만 그런 것 따위 어찌 돼도 좋을 만큼 지금은 그가 너무 보고 싶었다. 지금 당장 죽어 그를 보러 가고 싶은데 왜 이 타이밍에 아이가 생겨버린 것일까...서유는 고통스러운 얼굴로 외쳤다.“왜! 왜!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대체 왜!!”그저 하루빨리 죽어서 이승하를 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