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122화

Author: 알라리
눈앞의 이승하는 그 말을 듣더니 눈빛이 더욱 차가워지고 어두워졌다.

서유는 그런 이승하를 볼 엄두가 나지 않아 서둘러 고개를 돌려 김시후에게 말했다.

“우리 가자.”

김시후는 그 말을 듣자 안색이 훨씬 좋아졌다.

그들의 어떤 사이이든 상관없이 지금 이 순간 서유가 자신을 선택해 줬으니, 이것이 가장 좋은 결과였다.

김시후는 무거운 마음을 정리하고 서유를 꼭 끌어안은 뒤 말 한마디 없이 이승하를 지나쳐 갔다.

이승하는 고개를 돌려 서유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에 드리워진 지울 수 없는 암울함은 그녀를 꿰뚫을 것만 같았다.

서유는 빠르게 눈을 내리깔며 그의 뜨거운 시선을 피하려고 했지만 이승하가 그녀의 팔을 낚아챘다.

뼈마디가 분명한 그 손은 엄청난 힘으로 서유를 김시후의 품 안에서 빼냈다.

서유는 끌려가게 되자 그대로 바닥에 넘어지게 되었다.

다쳤던 등이 바닥에 쓸리면서 식은땀이 날 정도로 아팠다.

그러나 서유는 아픈 걸 신경 쓸 새도 없이 팔을 뻗어 흘러내린 겉옷을 주우려고 했다.

하지만 손이 옷자락에 닿기도 전에 이승하가 그것을 차버렸다

그리고 곧이어 몸이 따뜻해지면서 검은색 코트가 그녀를 꽉 감쌌다.

그 코트는 아주 커서 노출된 두 다리까지 덮었다.

은은하게 느껴지는 옅은 향기에 서유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녀는 서서히 고개를 들어 자신 앞에 서 있는 이승하를 바라보았다.

잠깐이지만 서유는 그가 미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공연히 김시후에게서 그녀를 빼앗다니, 그들의 사이를 누군가 눈치챌까 두렵지 않은 것일까?

“이승하 씨!”

김시후는 서유를 거칠게 대하는 이승하의 모습에 화가 나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그는 이승하가 어떤 신분인지도 고려하지 않고 그에게 주먹질하려 했다.

조금 전, 서유의 옷이 흘러내렸을 때, 이승하가 데려온 경호원들은 몸을 돌렸었다.

그러나 김시후에게서 깊은 적의를 감지한 그들은 즉시 몸을 돌려 그를 막았다.

김시후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스무여 명의 경호원을 혼자 상대할 수 있을 리는 없었다. 그는 곧 바닥에 제압당
Locked Chapter
Continue Reading on GoodNovel
Scan code to download App

Related chapters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23화

    그 말에 서유의 목덜미에 멈춰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이승하는 한 손으로 서유의 목을 그러쥐고 그녀를 들었다.엄청난 힘이 호흡 기관을 짓누르자 숨이 턱턱 막히면서 심장이 아팠다.심부전을 앓고 있는 서유는 충분한 산소가 필요했다. 만약 산소가 부족하다면 그녀는 죽게 된다.게다가 등까지 다쳐서 원래도 아파서 숨쉬기 힘들었는데 이제는 목까지 졸리고 있으니...숨 막히는 느낌에 서유는 심장에서 통증을 느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입을 뻐끔거리면서 공기를 들이마시려고 했다.그러나 큰 손은 그녀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고 목을 조르는 힘이 더욱 강해졌다.서유는 떨리는 손으로 이승하의 옷자락을 잡으려 했지만 힘이 달렸다.그래서 그저 눈물을 머금은 채로 이승하를 바라보며 그가 자신을 놓아주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이승하는 서유의 안색이 심하게 창백한 걸 발견했다. 마치 당장이라도 죽을 듯이 말이다. 그래서 그는 황급히 손에 힘을 풀고 그녀를 바닥으로 밀었다.숨 쉴 기회를 얻은 서유는 바닥에 엎드린 채로 심장께를 부여잡고 온 힘을 다해 한 글자를 쥐어짜 냈다.“약...”서유는 빨리 약을 먹어야 했다. 바로 산소를 들이마시면 죽을 수도 있었다.그녀는 매번 이승하를 만나기 전에 약을 아주 많이 먹어서 증상을 억제했다.수년 동안 이승하 앞에서는 딱 한 번 발작한 적이 있는데 그때 이승하는 그녀가 돈 때문에 엄살을 부린 거로 여겼다.그래서 그 뒤로 서유는 자신의 심장병을 철저히 숨겼고 단 한 번도 그에게 알린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서유는 이승하를 향해 손을 뻗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사정했다.“나... 심장병이 있어서... 제발... 살려줘요...”죽음이 두렵지는 않았다. 다만 숨 막히는 기분이 너무 괴로운 탓에 저도 모르게 살고 싶었을 뿐이다.이승하의 서늘한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약이 어디 있는데?”약은...서유는 외출하기 전 약을 많이 먹어서 집에서 나올 때 가방을 챙기지 않은 걸 떠올렸다.그 점을 떠올린 서유는 갑자기 손에 힘이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24화

    아직 숨이 붙어있던 서유는 사력을 다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빠른 속도로 운전하고 있는 이승하를 바라보았다.“얼른... 약혼녀 쫓아가요... 나 신경 쓰지 말고...”그 말 한마디 하는 것도 힘들어서 말이 뚝뚝 끊겼다. 서유는 힘겹게 조수석에 기대어 거칠게 숨을 쉬었지만 숨 막히는 느낌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이승하는 눈살을 찌푸리며 서유를 바라볼 뿐 그녀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차가운 얼굴로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빠르게 병원으로 달렸다.서유는 그가 자신을 안고 빠르게 병원으로 향하자 힘없이 손을 뻗어 그의 흰 셔츠를 잡아당겼다.“난... 병원은 싫어요...”피부에 닿은 그녀의 손가락은 차가웠다. 마치 죽기 직전이라 체온이 빠르게 내려가는 듯해서, 이승하는 심장이 철렁했다.“착하지. 말 들어. 병원에는 산소가 있어.”그렇게 달래놓은 뒤 이승하는 품속의 그녀를 꼭 끌어안고 데스크로 향했다.그곳에서 순찰 중이던 병원 책임자는 이승하가 온 걸 보고 서둘러 그를 맞이했다.“이 대표님...”“주서희, 심장병이야. 얼른 산소 가져와.”흰 가운을 입은 주서희가 입을 열기도 전에 이승하는 그녀의 말허리를 잘랐다.그녀는 이승하의 품에 안겨 숨을 쉬지 못하는 여자를 바라보더니 황급히 그를 옆 병실로 안내했다.“대표님, 따라오세요!”주서희는 병실 문을 열고 이승하가 서유를 병상 위에 내려놓게 했다. 그러고는 빠르게 산소마스크를 서유에게 씌워줬다.신선한 산소를 들이마시게 된 서유는 마치 물을 떠난 물고기가 갑자기 연못으로 돌아온 것처럼 다시 태어나는 기분을 느꼈다.서유는 산소마스크를 쥐고 필사적으로 숨을 들이마셨다. 그제야 심장에 다시 산소가 공급되었다.이승하는 서유의 얼굴에 약간의 생기가 돌자 바짝 긴장해서 굳었던 표정이 서서히 다시 차가워졌다.그는 서유를 검진하고 있는 주서희를 바라보았다.“상태는 어때?”주서희는 서유의 심장 소리가 이상하게 느껴졌다.“산소를 마셔서 좀 나아지긴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인지는 더 검사해 봐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25화

    “이건 어떻게 된 거야?”이승하의 표정이 점점 차가워졌고 눈빛도 싸늘해졌다.“김시후가 때린 거야?”서유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아뇨. 임태진이...”이승하의 잘생긴 미간이 단번에 구겨졌다.“똑바로 말해.”서유는 마지못해 조금 전 호텔에 있었던 일을 그에게 알렸고, 심하게 찌푸려졌던 이승하의 미간을 그제야 조금 펴졌다.그러나 임태진이 데려온 경호원들에게 강간당할 뻔했다는 말을 들은 순간, 조금 펴졌던 미간이 다시 한번 심하게 일그러졌다.그는 고민하지도 않고 곧바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최경욱, 임태진 처리해.”이승하의 전화를 받은 최경욱은 급히 정중하게 대답했다.“네.”서유는 이승하의 통화를 듣고 조금 놀라웠다. 그가 자신을 대신해 임태진을 처리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이승하는 자신이 가지고 놀던 여자를 다른 사람이 건드려서 그녀를 돕는 걸까? 아니면 그저 그녀를 걱정해서 그러는 걸까?서유는 임태진이 JS 그룹의 최 부대표를 언급한 걸 떠올리고 물었다.“그 최경욱 씨라는 사람... 최 부대표님이에요?”이승한은 그 말을 듣고 표정은 변하지 않았지만 눈동자가 살짝 떨렸다. 그는 덤덤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서유는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안색이 어두워졌다. 임태진은 서유가 최경욱과 연합해서 자신을 골탕 먹이려고 했다고 의심했고 최경욱이 금색 가면의 남자라고 의심하고 있었다.그건 무슨 뜻이고 또 어떻게 된 일일까? 이승하에게 묻고 싶었지만 그에게 자신과 금색 가면의 남자가 잔 적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지 않았다.이승하가 화를 낼까 봐 무서웠고, 그녀를 가벼운 여자라고 생각할까 봐 두려웠으며 그가 말로 모욕할까 봐 겁이 나서 감히 말할 수가 없었다.이승하는 창백한 얼굴의 서유를 보더니 손을 들어 그녀의 뺨을 어루만졌다.“잠깐만 참아.”그의 두꺼운 손바닥은 서유의 얼굴을 전부 감쌀 정도였다. 그는 손가락으로 서유의 얼굴을 쓰다듬었고 서유는 그의 행동에 착각이 들 정도였다.눈앞의 남자가 사실은 그녀를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26화

    “승하 씨에게 알려주지 마세요. 제발요.”“알겠어요.”주서희는 고개를 끄덕이고 서유를 보며 물었다.“하지만 두 사람이 어떤 관계인지 알려주세요.”주서희는 이승하가 여자에게 이렇게 신경을 쓰는 것을 처음 보았다. 그래서 두 사람의 관계가 무척 궁금해졌다.서유가 담담하게 대답했다.“예전에는 승하 씨가 여신으로 여기는 그 여자의 대역 같은 거죠. 하지만... 지금은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그러자 주서희가 피식 웃으면서 되물었다.“여신? 연지유를 말하는 거예요?”서유는 고개를 끄덕이었다. 주서희는 연지유임을 확인하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별말 없이 서유에게 푹 쉬라고 말하고 돌아서서 병실을 나갔다.주서희가 떠난 후 서유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눈을 감고 깊은 잠에 빠졌다.그렇게 한참 잠을 자고 눈을 뜨는 순간 이승하가 옆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그는 검은색 니트를 입었고 따스한 햇볕이 그의 얼굴을 내리쬐자 하얀 피부와 조각 같은 이목구비가 유난히 돋보였다. 그의 고급스러운 분위기와 카리스마는 사람들이 함부로 가까이할 용기가 없게 만들었다.그는 손가락 사이에 보고서를 끼운 채 고개를 숙이고 한 페이지씩 넘기면서 열심히 읽고 있었다. 그의 표정을 보아하니 큰 감정 기복이 없는 듯했다. 주서희가 가짜 보고서를 만들어 준 것 같았다. 그녀는 약속을 지키면서 이승하에게 말하지 않았을뿐더러 가짜 보고서까지 만들어 주었다. 서유가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그런데 이승하는 왜 여기 있을까? 이미 떠났다고 했는데 왜 아직도 병실에 있지?서유는 힘들게 몸을 가누면서 일어나려고 했다가 등에 난 상처를 건드렸다. 순간 뼈가 부러지는듯한 통증이 몰려왔다.“움직이지 마.”이승하는 서유가 움직이려고 하자 미간을 찌푸리면서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잡고 돌아누울 수 있게 부축했다.이승하의 도움으로 서유는 가까스로 몸을 옆으로 돌렸다. 이렇게 누우면 등에 상처가 침대에 닿지 않게 된다.서유는 목이 너무 말라서 물을 마시고 싶었다... 하지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27화

    서유의 말이 끝나자 이승하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내가 치료해 준다고 했으면 끝까지 책임질 거야. 믿고 따라만 와.”그는 차가운 표정으로 이불을 덥석 잡아당겨 덮어준 뒤 다시 보고서를 들고 옆에서 읽기 시작했다.길쭉하고 촘촘한 속눈썹이 크고 까만 그의 눈동자를 가리고 있어 지금 그의 기분을 알아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찌푸려진 미간 사이로 약간의 불안감이 느껴졌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아주 조금 말이다.이승하는 원래 감정을 잘 숨길 줄 알았고 서유는 그런 그를 꿰뚫어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서유는 추측하기도 귀찮아서 그냥 얌전히 옆으로 누워있었다.두 사람은 이렇게 조용하게 한 공간에 있은 적이 없다. 그리고 이승하도 5년 동안 이런 식으로 그녀 곁에 있어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서유는 가끔 생각한다. 이승하의 마음속에서 자신은 어떤 존재일까?단지 연지유의 대역이라면 왜 헤어지고 항상 다시 그녀를 찾아올까?심지어 한번은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녀를 김시후의 손에서 잡아당겨 왔다.헤어진 지 이렇게 오래되었는데 왜 이럴까? 정신적인 결벽증 때문에? 아니면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어서 이럴까?‘아니면... 나를 좋아해서?’서유는 감히 사랑이라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이승하 같은 남자는 결코 쉽게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을 것이다. 그녀가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핸드폰 진동 소리가 들려왔다.이승하는 개인 핸드폰을 꺼내 수신 번호를 보고 나서야 전화를 받았다.“대표님.”전화기 너머로 소수빈의 깍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보안 카메라에 찍힌 영상들을 다 처리했습니다. 그 누구도 서유 씨의 존재를 모를 겁니다.”그러자 이승하가 덤덤하게 대답했다.“알았어. 걔는 깼어?”“방금 깨났습니다. 잠에서 깨자마자 서유 씨를 보자고 난리였어요...”이승하가 차갑게 말했다.“안돼.”소수빈은 난처하다는 듯 머뭇거리며 말했다.“대표님, 그래도 화진 그룹 대표인데 말입니다. 지금 그쪽에서 계속 저를 찾고 있는데 우리가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28화

    “대... 대표님, 왜...”서유는 왜 갑자기 자기를 집으로 데려왔는지 물으려고 했다. 하지만 입가에 맴돌던 그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랐다. 서유는 고개를 숙인 채 이승하를 감히 쳐다보지 못했다. 이승하는 마치 서유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 듯 덤덤하게 그녀를 훑어보았다.“며칠 쉬었다가 가. 데려다줄게.”그는 구체적인 이유를 말하지 않고 이렇게만 간단히 말하면서 서유를 안심시켰다.서유는 이승하가 자신을 데려다줄 것이라는 말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왜 자기를 집으로... 아마 이승하가 서유의 목을 부여잡는 바람에 서유가 목숨을 잃을뻔해서일까? 그래서 미안한 마음에 집으로 데려왔을까?억지스러운 이유였지만 그녀는 더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이승하는 서유를 부축하여 침대에 옆으로 눕힌 후 집사를 불렀다.“주 집사님, 담백한 음식 좀 준비해 주세요.”“네. 알겠습니다.”주태현은 공손히 대답하고 자리를 떠났다. 그가 떠나자 이승하는 도우미 두 명을 불러 여성용품을 준비하게 하고 서유가 씻는 것을 도와주게 했다.서유는 등에 난 상처와 심부전 증상 때문에 움직이기만 해도 숨이 넘어갈 정도로 아팠다. 그래서 씻는 일은 무조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마침 어떻게 도움을 청할지 고민하던 중에 이승하가 알아차리고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해 줬다. 이에 서유는 무척 감동하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고마워요...”이승하는 그녀의 말에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고 한 번 쳐다보고는 돌아서서 방을 나갔다.그는 2층 소파에 앉은 후 노트북을 꺼내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주태현이 정성스럽게 끓인 죽을 들고 위층으로 올라가려고 할 때 그는 하던 일을 멈추고 말했다.“주세요.”주태현은 어리둥절해하더니 재빨리 알아차렸다.‘둘째 도련님이 직접 방에 있는 그 아가씨에게 가져다주려고 하는구나.’사실 이승하는 소파에 앉아 업무를 보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주태현이 들고 오는 음식을 기다렸다. 이를 깨달은 주태현은 황급히 손에 든 쟁반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29화

    주서희는 많은 의료기구들을 들고 들어왔다. 이때 이승하는 이미 방을 나갔다. 주서희가 약도 갈아주고 링거도 놔주는 모습을 보자 서유는 난처하기도 하면서 미안해했다.그때 주서희가 서유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서유 씨는 정말 복이 많네요.”이승하가 서유에게 남달리 잘해준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정말 잘해주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불쌍해서 동정하는 걸지도 모른다.두 사람은 5년 동안 함께 지냈고 이승하는 갑자기 서유가 심장병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냉정한 사람이라도 관심하고 동정할 것이다.주서희는 서유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몰랐다. 그녀는 테이프로 주사 바늘을 붙인 후 약 몇 갑을 꺼내어 서유에게 건네주었다.“서유 씨는 복도 있고 운도 있어요. 마침 해외에서 심부전 말기 치료 약을 구입했어요. 이 약들은 비록 목숨을 살릴 수는 없지만 서유 씨의 고통을 완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서유는 그 약들을 보고 마음이 뭉클해졌다. 비록 주서희는 이승하가 시키는 대로 일을 하는 사람이지만 의사로서의 덕목과 따뜻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서유는 약을 받으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고 미소를 지었다.“고마워요.”그러자 주서희도 빙그레 웃으며 푹 쉬라고 당부한 뒤 약상자를 들고 자리를 떠났다.이때 이승하는 소파에 앉아 업무를 보고 있었다. 여러 대의 업무용 휴대폰과 노트북으로 바삐 회의하고 있었다. 그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면서도 여전히 집에서 업무를 처리했다. 그 이유는 방에 있는 아픈 서유 때문이다. 주서희가 보기에 그녀는 이승하에게 매우 중요한 존재인 것 같았다.이승하가 모든 화상 회의를 끝내고 나서야 주서희는 뚜벅뚜벅 그쪽으로 걸어갔다.“대표님, 서유 씨는 아직 조금 더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제가 제시간에 링거를 놓아주러 올게요.”이승하는 주서희를 쳐다보지도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었다. 그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말을 마친 주서희가 바로 떠날 줄 알았는데 그녀는 여전히 자리에 서서 머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30화

    문틈으로 두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와 서유의 귀에 들어갔다. 이승하의 말은 서유에게 큰 상처가 되었다. 하지만 현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서유는 인제야 자신이 이승하 마음속에 어떤 존재임을 깨달았다.사실 지난 5년 동안, 그녀는 자기가 단지 이승하의 성욕을 채워주는 도구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지금 이렇게 직접 확인하니 가슴이 미어지는 것만 같았다.서유는 오른손을 들어 링거가 떨어지는 속도를 조절했다. 링거를 빨리 맞으면 병이 빨리 나을 것처럼 말이다.주서희가 떠난 후 이승하는 거실 쪽을 쳐다보자 방문이 닫히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갑자기 얼굴색이 어두워졌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거실을 향해 빨리 걸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서유가 링거 맞는 속도를 조절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손바닥만 한 얼굴에 큰 감정 기복이 없어 보였고 예전처럼 온순하고 얌전했다. 이승하가 들어오자 서유는 그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제야 이승하는 의심을 내려놓았다.방금 두 사람의 대화 소리가 크지 않아 못 들었을 거라고 생각했다.이승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그녀의 침대 앞에 앉았다.“좀 나아졌어?”서유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많이 좋아졌어요.”그리고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갑자기 찾아온 침묵은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를 약간 어색하게 만들었다.이승하가 떠날 생각이 없어 보이자 서유가 끝내 먼저 입을 열었다.“대표님, 제 가방 좀 찾아다 주시겠어요?”서유는 가방을 로얄 호텔 연회장에 두고 내렸고 핸드폰 같은 개인 소지품은 다 가방에 들어 있었다. 정가혜가 자신을 찾지 못할까 봐 이승하에게 가방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이승하는 서유가 자기를 부르는 “대표님”이라는 호칭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비록 에전에도 “대표님” 혹은 “승하 씨” 라고 불렀지만 그때는 크게 소외감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헤어진 후 이렇게 부르니 이승하는 서유가 자신과 점점 멀어진다고 느꼈다.그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잡념을 뒤로하고 휴대폰을 꺼내 소수빈에

Latest chapter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52화

    서유의 사망 소식을 들은 육성재는 한동안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결국 그는 그녀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해 서둘러 달려갔고, 모든 이들이 묘지를 떠난 후에도 그녀의 묘비 앞에 남아 머물렀다.“서유 씨...”그는 묘비를 붙잡고 천천히 몸을 낮추어 무릎을 꿇고, 더 이상 젊지 않은 눈으로 그녀의 영정 속 얼굴을 오랫동안 응시했다.“내가 올 줄 몰랐죠?”육성재는 미소를 지으며 혼잣말을 시작했다.“내가 한 사람을 이렇게 오래도록 사랑하게 될 줄은 나도 몰랐어요. 스스로도 놀라울 정도로, 나도 참 정이 깊은 놈이었네요.”영정 사진을 보며 그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너무 깊이 사랑해서 세상 어떤 여자도 내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됐어요. 그러니 서유 씨, 나도 이승하 못지않게 당신을 사랑했던 거예요, 안 그래요?”그러나 그의 질문에 대답하는 건 묘지의 나뭇가지 사이를 스치는 새들의 울음소리뿐이었다. 새와 짐승들이 떠나고 나니 주변은 그저 고요할 뿐이었다. 마치 지난 수년간 그의 마음속에 묻어둔 사랑처럼, 결코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채 어둠 속에 갇힌 채였다.그토록 짙은 사랑은 세상에 드러낼 수 없었다. 그녀가 떠난 지금에서야 그는 그녀의 묘 앞에 와서 고백했다.그 역시, 깊이 사랑했노라고.모든 사람에게는 후회가 있다. 육성재의 유감은 그녀가 죽기 전까지 자신을 이렇게 바보처럼 사랑하는 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것이었다.하지만 알게 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서유는 이미 떠났는데, 육성재 난 왜 여전히 집착하고 있는 거냐? ’육성재는 그녀의 묘비 앞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그러다 결국 답을 찾지 못한 채 천천히 일어나 발걸음을 돌렸다.그의 삶은 사랑이 아니라 일에 무게를 둔 인생이었다. 그는 생을 바쳐 육씨 집안을 세계 최고의 가문으로 일궈냈다.그는 상업계의 전설 같은 인물로 남았고, 수십 년이 지나도 사람들은 결혼하지 않았던 육성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야기하곤 했다.수도에 있는 송사월은 그녀의 죽음 소식을 제일 마지막으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51화

    생이 마감하는 순간, 머릿속을 스쳐 간 것은 그 5년 동안 이승하가 숨겼던 사랑이었다.몇 번이나 뒤척이며 잠에서 깼을 때, 자신의 몸이 단단하고 강인한 두 팔에 꽉 안겨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렇게 강하게 끌어안는 것이 사랑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또한 주말에 식사할 때, 식탁 건너편에 앉은 이승하가 가끔 그녀를 몰래 훔쳐보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오랜 짝사랑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그리고 그가 모든 일을 마친 후 그녀를 안아 자신의 가슴에 엎드리게 하고, 긴 손가락으로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아이를 달래듯 잠들게 했던 모습 또한 마찬가지였다.이승하의 사랑은 작은 순간순간에 담겨 있었다. 그것이 어떤 모습인지 타인에겐 잘 보이지 않았으나, 이승하 본인만은 아주 알고 있었다. 당시 그녀에 대한 사랑을 얼마나 힘들게 숨겨왔는지...서유의 눈은 이미 뜰 수 없었고, 몸은 영혼이 빠져나간 듯 더 이상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이 세상을 다시 한 번 볼 힘조차 없었다.그녀는 주머니 속 휴대폰을 더듬어 무작정 전화를 걸었고, 다행히 그것을 받은 사람은 정가혜였다.세월이 흐르면서 정가혜도 나이가 들었다. 젊었을 때의 맑은 목소리는 사라지고 약간 쉰 소리가 섞여 있었다.“서유야, 조금만 기다려. 우리 며느리가 출산하면 바로 널 보러 갈게...”삶의 마지막 순간에 친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라고 느껴졌다. 하지만 왜인지 이미 메마르고 고갈된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고, 이내 오열로 변해 멈출 수 없었다.“가혜야, 난 승하 씨가 너무 보고 싶어. 그 이를 만나러 가야 할 것 같아. 부탁할게. 하준이에게 미안하다고 전해줘. 엄마가 하준이 결혼식을 볼 수 없게 됐다고...”전화기 너머의 정가혜는 이 말을 듣고 함께 눈물을 쏟아냈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서유가 그동안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어머니로서 아들을 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마저 없었다면 그녀는 이미 이승하를 따라갔을 것이다.얼마 전부터 서유의 몸이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50화

    서유의 손가락이 이하준의 머리 뒤로 부드럽게 닿았다. 마치 이미 모든 사실을 받아들인 듯 그녀의 표정은 놀랍도록 평온했다. “언제쯤 결혼할 거니?”이하준의 몸이 경직되었다. 안개처럼 흐릿한 눈으로 천천히 고개를 들어 서유를 천천히 놓아주며 말했다. “어머니... 아직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나지 못했어요.”아들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서유는 손을 얼굴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봐봐. 네 엄마는 지금 살아있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단다. 제발 네 아빠를 만나러 가게 해줘. “어릴 적엔 부모님이 그를 속박했지만, 커서는 그가 부모님을 속박했다. 오직 그 속박만이 그를 고아로 만들지 않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한 번만 더 이기적일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다.그는 서유의 팔을 붙잡으며 간절히 말했다. “어머니,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곧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날 거예요. 그러면 결혼하겠습니다, 네?”결국 아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 서유는 평소와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일 교회에 가서 너를 위해 기도하고, 네가 곧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나길 빌어주마...”서유의 소원을 결코 들어주지 말아달라고 하늘의 신들에게 기도하며, 이하준은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는 평생 어머니의 사랑을 얻기 위해 결코 결혼하지 않기로 했다.그는 이승하가 남겨둔 로봇을 다시 가져와 서유에게 아버지가 남긴 유언이 모두 로봇 프로그램에 담겨 있다고 말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유언의 일부를 들려줄 것이며, 만약 그녀가 아버지가 말하고 싶었던 모든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살아야 한다고 전했다.처음에 서유는 이승하와 똑같이 생긴 로봇을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하지만 로봇이 말을 시작하는 순간, 그녀는 갑자기 멈춰 섰다. 그리고는 서재에 앉아 하루하루 이승하가 녹음했던 로맨틱한 말을 돌려서 들었다.마치 예전에 그가 그녀를 찾지 못했을 때 다른 이의 번호로 하루에 십여 통의 문자를 보내 그녀의 부재를 애도했던 것처럼.이제는 그가 먼저 떠났지만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49화

    아들을 위해, 결국 서유는 이승하를 따라 죽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 하지만 단 하룻밤 사이 머리가 백발이 되어, 마치 열 살은 더 늙어버린 듯한 모습이 되었다. 예전에는 세월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던 얼굴이 순식간에 주름투성이가 되었고, 사람들을 매료시켰던 그녀의 눈동자도 생기를 잃고 텅 빈 채로 아무 빛깔도 담고 있지 않았다.엄마가 되었으니 이제는 예전처럼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그녀는 이승하의 무덤 앞에서 약속했다. 자신을 기다려 달라고.아들이 결혼하면 그때 찾아가겠다고. 만약 자신을 기다리지 않는다면, 다음 생의 약속도 취소할 거라고. 그리고 영원히, 다시는 만나지 않을 거라고 말이다.이승하의 장례식에 서유는 참석하지 않았다. 그녀가 정신을 차리고 기운을 내어 비틀거리며 그의 무덤 앞에 섰을 때, 무덤가에서 그녀가 중얼거리던 말들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다. 오직 그녀를 부축하며 아버지의 무덤을 찾은 이하준만이 그 말을 기억했다.눈 덮인 땅에 쓰러져 의식을 잃었던 그날 밤, 서유는 병원으로 옮겨져 일주일 동안 깨어나지 못했다. 그녀가 없는 동안 이승하의 시신은 얼음관에 안치된 채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일주일을 버텼다. 그녀가 깨어난 후, 그녀는 하얗게 센 머리와 멍한 눈빛으로 그를 단 한 번 보고는 곧바로 돌아섰다.그들이 이승하를 어떻게 묻었는지, 묘지는 어떻게 정했는지, 영정 사진으로 어떤 사진을 선택했는지 서유는 알지 못했다. 그녀는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차가운 베개를 매만지며 그가 아직 살아 있는 모습을 상상하는 데만 몰두했다.‘만약 당신이 여기 있었다면, 내 하얀 머리를 보고 눈시울이 뜨거워졌겠죠.’그녀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당신은 그랬을 거예요.”이승하는 질투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서유가 그 때문에 긴장하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그는 한참 동안 기뻐하며, 그녀 마음에 자신이 있다는 확신을 얻곤 했다. 하지만 이제 그는 그녀가 그로 인해 속을 끓이고 밤낮으로 잠 못 이루는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이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48화

    서유는 떨리는 속눈썹을 들어, 삶의 의미를 잃은 듯한 눈으로 멀리 바라보며 말했다.“아니, 난 어디에도 가지 않을 거야. 나와 그 사람, 그냥 여기 있을 거야. 내가 얼어 죽을 때까지, 누구도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어.”그녀가 여기서 얼어 죽겠다는 말을 들은 순간, 주변 사람들의 가슴이 순간적으로 먹먹해졌다. 모두가 그녀를 말리며 무모한 짓을 하지 말라고 설득했지만, 서유는 그 어떤 말도 듣지 않았다. 단호하고도 완강하게, 이승하를 품에 안고 눈 덮인 땅 위에 앉아 그저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때 이하준이 서유의 손을 붙잡고, 그녀의 손바닥을 힘껏 눌러 그녀의 시선을 자신에게 돌렸다.“어머니, 아버지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알아요. 그래서 지금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드신 것도 이해해요. 하지만 전 이미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어머니까지 잃을 순 없어요. 제발 부탁이에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아 주세요...”아들이 귀 옆에서 애절하게 부르는 목소리를 들은 서유는 천천히 시선을 그에게 돌렸다. 아버지와 똑같은 모습으로 빚어진 얼굴이 눈에 들어오자, 그녀의 입술 끝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마치 꽃이 피어난 듯한 미소였다.“난 이미 네 아버지가 떠날 준비를 오래전에 마쳤단다. 이제 그이가 정말 떠났으니, 당연히 나도 함께 가야지. 너도 알잖니. 그이가 살면 나도 살고, 그이가 죽으면 나도 죽는 거야. 아무도 이걸 막을 순 없어.”예전에 이하준은 아버지가 어머니를 더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순간, 그는 어머니의 사랑이 아버지의 사랑만큼이나 깊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는 성인식을 맞이한 바로 오늘, 부모님 두 분을 동시에 잃을 수 없었다.눈 덮인 땅 위에서 무릎을 꿇은 채, 그는 천천히 어머니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두 팔을 벌려 서유를 힘껏 끌어안았다.“어머니, 아버지는 제가 결혼하는 것과 자식을 낳는 것을 보고 싶다고 말씀하셨어요. 지금 아버지는 그걸 보지 못하고 떠나셨지만, 어머니가 대신 그 순간을 기다려 주시면 안 되나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47화

    눈물이 눈가에서 갑작스럽게 흘러내렸다. 그러나 그것은 가슴을 찢는 통곡이 아니었다. 아무 소리 없이 흘러내릴 뿐, 그녀는 벌어진 입술로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이생에서 이승하에게 해야 할 말은 이미 다 끝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녀는 눈을 내리깐 채, 생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창백한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바보, 당신이 아무리 피를 흘린다 해도 당신은 내 남편이에요. 내가 무섭겠어요? 하나도 안 무서우니까, 왜 굳이 혼자 이런 곳에 온 거예요?”마지막 이별의 말조차 건네지 못했다는 사실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그러나 그녀의 이승하는 이런 안타까움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에게 모든 걸 숨겼다.만약... 그녀가 그 가짜 이승하를 알아보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그러면 평생 그의 몸조차 찾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눈과 함께 얼어붙어 영원히 설산 아래에 묻혔을 것이다.이승하는 이미 스스로 세상에서 사라질 각오를 했던 것이다. 그녀가 자신을 따라오지 않게 하려고, 그녀를 속이기 위해 가짜 로봇을 만든 것이다.‘하지만 승하 씨...’‘당신이 아무리 똑같이 생긴 로봇을 만든다 해도, 그건 당신이 아니에요. 당신이 평생 날 속일 수 있다면 난 받아들였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지금 그 거짓말은 단 한 순간도 버티지 못했잖아요.’‘당신은 내가 당신을 찾으러 올 것을 허락하지 않았겠죠. 그렇지 않았다면 가짜 로봇을 만들어 내게 거짓말을 하지도 않았을 거고, 피를 흘리는 고통을 혼자 감당하며 이런 깊은 산속에서 눈과 마른나무를 친구 삼아 떠나지도 않았겠죠.’그녀의 이승하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었고, 동시에 그녀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비록 마지막 순간에 그의 곁에 있어 주지 못했다는 사실이 매우 안타깝지만, 그의 사랑 덕분에 서유는 죽음이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오히려 그녀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와 함께 죽는다면 그것은 한평생의 약속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이제 먼저 떠난 이승하가 황천길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까?서유는 알 수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46화

    마치 무언가 예감이라도 한 듯, 이하준이 떨리는 손으로 이승하의 손을 움켜쥐던 순간, 서유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 마치 미친 사람처럼 머리를 풀어 헤친 채 네발로 기어 이하준에게 달려갔다.그녀는 여전히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다만 그 단호한 시선은 이승하의 얼어붙고 하얗게 질린 손에 닿자마자 떨리는 속눈썹을 내리깐 채,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이승하를 덮은 눈을 미친 듯이 파헤쳤다.깊은 산속의 눈은 산 아래보다 훨씬 더 두꺼웠다. 끝없이 쌓인 층층의 눈 속에서 서유는 온 힘을 다해 이승하를 파내던 순간, 그의 이목구비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의 얼굴에 흐르는 피가 일곱 군데에서 새어 나와 얼음처럼 굳어 있었다. 그 아름다운 얼굴은 더 이상 어떠한 온기도 남아 있지 않았다.눈앞의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이하준은 아버지의 침묵하는 모습을 목격하자 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렸다. 두 무릎을 꿇고 바닥에 주저앉은 그는 마음속 어딘가가 찢어지듯 끊어지는 고통을 느꼈다. 마치 거대한 나무가 쓰러지는 것을 목격한 듯, 그의 세계는 단숨에 끝없는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하준아.”서유의 고요한 목소리가 귀를 스쳤다.“도와줘.”이하준은 어머니의 충혈된 눈을 바라보며 그녀의 부탁에 정신을 차렸다. 서유의 눈빛에는 슬픔도, 고통도 없었다. 오직 이승하의 죽음을 믿지 못하겠다는 단호함만이 담겨 있었다.그녀는 얼어붙은 이승하의 손과 얼굴을 붙들고 자신의 체온으로 그를 녹이려는 듯 필사적으로 문지르고 있었다. 이하준도 어머니를 따라 아버지의 발을 감싸 쥐었다. 그는 얼어붙은 신발을 벗기고 자신의 배 위로 올린 뒤, 손바닥으로 아버지의 다리를 위아래로 문지르기 시작했다.서유는 이승하의 얼굴에 덮인 얼음을 녹이며, 그가 살아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녀는 지친 손으로 그의 얼굴을 계속 문지르며 이렇게 말했다.“여보, 당신이 나더러 기다리라고 했잖아요. 나 정말 잘 기다렸는데, 왜 약속을 안 지키고 돌아오지 않은 거예요?”“지금이라도 눈을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45화

    눈밭을 헤매며 이승하를 찾고 있던 서유는 갑자기 발길을 멈췄다. 마치 영혼이 그녀를 부르는 소리를 들은 것처럼 멍하니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눈앞에는 오직 그녀 자신뿐, 영혼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그녀는 그 자리에 굳어 서서 한참을 있다가 손을 들어 가슴에 얹었다. 심장이 세 번 뛰고 난 뒤, 가슴 깊은 곳에서 찢어질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마치 무엇인가를 잃어버릴 것만 같은 아픔이었다. 몸을 굽히며 고통을 참고자 했지만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직감적으로 그녀는 이승하에게 무슨 일이 생겼음을 느꼈다. 이를 악물고 계속 그를 찾으려던 그 순간, 눈 위로 아름다운 자태를 가진 한 사람이 붉은 리치 한 송이를 손에 들고 걸어왔다.“여보, 내가 기다리라고 했잖아. 왜 여기까지 와 있는 거야?”눈앞에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난 이승하를 보자, 긴장으로 심장이 터질 것 같았던 서유는 한순간 안도감을 느꼈다. 역시 그가 곁에 있으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 것 같았다.서유는 들고 있던 우산을 내던지고 마치 숲속의 토끼처럼 기쁨에 차 달려가 이승하의 품에 안겼다.그의 몸에서 느껴지는 온기와 익숙한 향기에, 서유는 깊게 숨을 내쉬며 안심했다.“당신,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정말 당신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고 얼마나 무서웠는데요!”이승하는 긴 손가락을 뻗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언제나 그랬듯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손길이었다.“내가 말했잖아. 항상 네 곁에 있을 거라고. 아무 데도 가지 않을 거라고. 나한테 쉽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아?”그의 품 안에 꼭 안긴 서유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더욱 꽉 껴안았다. 하지만 갑자기 무언가가 손에 닿자, 서유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그리고는 이승하를 밀쳐내며 소리쳤다.“당신... 당신은 내 승하 씨가 아니야!”이승하는 요즘 들어 많이 수척해졌고, 허리를 감쌀 때 손가락이 다른 손가락에 닿을 정도로 야위어 있었다. 그러나 눈앞의 이승하는 예전처럼 건장한 체격을 유지하고 있었다.“당신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44화

    시린 눈보라 속에 홀로 서 있는 형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겨우 남은 힘으로 긴 손가락을 들어 흔드는 그를 보며, 이연석은 애써 마음을 다잡고 이를 악물며 재빨리 눈 덮인 산 아래로 달려 내려갔다.“형! 내가 먼저 의사를 부르고, 로봇을 산으로 올려보낼게. 그러고 나서 바로 돌아올 테니까 그 자리에서 꼭 기다려. 금방 올게!”밤길은 험난했지만, 사방으로 쏟아지는 눈은 길을 환히 비춰주어 이연석은 마치 대낮처럼 보이는 길 위를 달렸다. 하지만 급한 걸음은 때때로 방향을 잃고, 몇 차례나 눈밭에 무릎을 꿇으며 휘청거렸다.멀어져가는 이연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승하는 느려지는 심장 박동을 가슴으로 느끼며 제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생명의 문이 서서히 닫혀가는 고통을 묵묵히 받아들였다.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서유가 그의 흔적을 찾으며 이름을 부르자, 이승하는 무성한 나무 사이에서 고개를 돌려 눈 덮인 길 위에서 우산을 쓰고 걷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단 한 번의 시선, 그로 인해 시간이 멈추고 만 년의 세월이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처음 그녀를 만났던 그 순간으로 돌아간 것 같았지만, 이제는 햇빛도 사라지고 눈보라만이 세상을 덮고 있었다.“승하 씨!”서유는 잠시 기다리다 이상함을 느끼고 별장 맞은편에 있는 집의 문을 열어보았다. 예상대로 이승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불안한 마음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그를 찾아 헤맸다.이승하는 대답하고 싶었다. ‘나 여기 있어.’ 그러나 온몸의 피가 쏟아지는 그는 예전처럼 힘찬 목소리로 외칠 수 없었다.그는 겨우 뜨고 있는 흐려진 눈으로 고개를 돌려 한 걸음씩 깊은 산 속으로 걸어갔다.그곳은 숲이 빽빽하게 우거져 있고 하얀 눈이 밤하늘을 밝혔어도 사람의 움직임을 알아볼 수 없는 곳이었다. 그가 누울 만한 최적의 장소였다.이승하는 생각했다. 얼음과 눈이 몸을 얼려버리면 야수가 지나가더라도 그의 썩은 살을 물어뜯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설산 아래에 묻히면 그의 외모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