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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배달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이후로 나는 일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일의 효율이 크게 높아졌고 일 또한 순조롭게 풀려 몇 개월도 안 돼서 새로운 회사로 이직하게 되었다. 월급도 두 배로 올랐다.

내 상사는 전한빈이라는 분이었는데 금테 안경을 쓰고 있으며 외모가 상당히 지적이고 점잖아 보이는 남자였다.

입사 첫날, 나는 그의 연락처를 추가했다.

그런데 익숙한 전화번호가 눈앞에 들어오자 가슴이 철렁했다.

믿을 수 없다는 마음으로 사진첩을 열어보니 숫자가 똑같았다.

나의 상사 전한빈은 그날 성인용품을 주문했던 그 손님이었다.

더 놀라운 건 상사의 비서가 들어왔을 때였다.

나는 그녀를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전한빈이 예의 바르게 소개를 시작했다.

“여기는 서진택 씨, 새로 부임한 팀장이야. 그리고 이분은 윤슬기 씨, 제 비서이자 제 아내입니다.”

나는 정장을 입고 아름다운 매력을 뽐내는 윤슬기를 보고 순간 당황했다.

그날 여자는 안대를 쓰고 있었지만 나는 목에 있는 점과 손목에 낀 옥 팔찌 덕분에 그녀가 그날 밤의 여인임을 알아차렸다.

불안함이 서서히 몸을 휘감으며 마음에는 의문이 가득해졌다.

윤슬기는 나를 알아보지 못한 듯 미소 지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서 팀장님, 반가워요.”

부드러운 목소리와 섬세한 손길이 나를 다시 그날 밤의 기억으로 끌어당겼다.

목이 타들어 가며 이상한 기분이 밀려왔다. 마치 가벼운 깃털이 내 가슴을 간질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옆에 있는 전한빈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떠오르는 것을 보자 그 이질감은 더욱 커졌다.

아내를 비서로 두다니 정말 특이한 사람이었다.

다행히도 그들은 나를 알아보지 못한 듯했고 그 일로 나를 곤란하게 하지도 않았다.

하여 나도 아무 일 없었던 듯 넘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그 후 전한빈은 은근히 나와 윤슬기와의 접촉을 늘려가기 시작했다.

아침을 살 때면 그녀의 것까지 함께 사 오게 했고 내가 맡은 프로젝트마다 윤슬기를 보조로 붙여주었으며 틈만 나면 바쁘다며 나더러 그녀를 집에 바래다주라고 했다.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지만 말없이 따르며 전한빈이 나에게 좋은 프로젝트를 맡겨 주었기에 그 모든 행동을 그냥 못 본 척 넘기기로 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자연스레 윤슬기와 친분이 쌓여갔다.

어느 날, 외근 프로젝트를 맡게 되어 지방 출장을 가게 되었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전한빈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서 팀장, 이번 프로젝트 꼭 성공해야 해. 성사되면 보너스가 상당할 거야, 하하.”

“부장님, 걱정 마세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잠시 덕담을 나눈 뒤, 그가 진짜 목적을 꺼냈다.

“업무의 효율적인 진행을 위해 회사에서 임시로 결정을 내렸어. 나를 대표해 윤슬기 씨를 데리고 가서 일의 진행 상황을 기록하도록 말이야.”

전한빈은 매번 회사 이름을 내세워 개인적인 바람을 충족시키려 했다.

나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으며 비행기 표를 바꿔 윤슬기를 데리러 돌아갔다.

비행기가 착륙했을 때는 이미 새벽 세 시였다.

회사가 예약해준 호텔에 도착하고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급히 일정이 추가된 터라 윤슬기의 방이 예약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 내가 배정받은 방은 트윈 베드 룸이었다.

외진 곳이라 주위에 이 호텔 외에는 안전하다고 할 만한 곳이 없었다. 게다가 오늘 밤 이 호텔에 빈방은 없었다.

윤슬기는 촉촉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떡하죠, 서 팀장님?”

별수 없었는지라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내일 아침에 고객을 만나야 하니 이 시간에 적당한 방을 찾기도 힘들 겁니다. 이 방에 침대가 하나 있으니 괜찮다면 여기서 같이 지내는 수밖에 없겠네요.”

그러자 윤슬기는 망설이며 입술을 깨물더니 핸드폰을 꺼내 몇 개의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채팅창 상단에 적힌 ‘남편’이라는 표시를 슬쩍 보고는 그녀가 전한빈에게 의견을 묻는 것이라 추측했다.

예상대로 전한빈은 흔쾌히 동의했고 심지어 윤슬기에게 내가 정직한 사람이니 걱정하지 말고 그냥 하룻밤 함께 머물라며 안심시켰다.

방에 들어와 간단히 정리하고 나니 피로가 금세 몰려왔다.

나는 침대에 앉아 평소 먹던 멜라토닌을 꺼내 한 알 복용하고 잠을 청할 준비를 했다.

그때 윤슬기가 막 샤워를 끝내고 나왔다.

그녀는 실크 소재의 잠옷을 입고 있었는데 부드러운 잠옷이 아름다운 몸매를 감싸고 있어 곡선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순간 넋을 잃었다.

그녀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내 손에 든 멜라토닌 병을 살피며 고양이처럼 동그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몸을 숙이는 바람에 가슴이 살짝 드러났고 목욕 후 살짝 붉어진 뽀얀 피부에서는 은은한 향이 풍겨와 나를 잠시 멍하게 만들었다.

“그건 뭐예요?”

그녀가 물었다.

“멜라토닌이요. 평소에 불면증이 조금 있어서 이걸 먹으면 좀 더 푹 잘 수 있거든요.”

내가 이렇게 설명하자 윤슬기는 달콤한 웃음을 지었다.

“아침까지 쭉 잘 수 있나요?”

“네. 아침까지 푹 잘 수 있어요.”

짧은 대화 후, 나는 침대에 누워 생각이 뒤섞인 채로 그날 밤의 기억을 떠올렸다.

고양이처럼 순진하고 온순한 윤슬기와 그날 밤의 열정적인 여인의 모습은 도무지 연결되지 않았다. 결국 그 밤을 한낱 꿈으로 여기며 나는 깊은 잠에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열기로 인해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뜬 나는 깜짝 놀랐다.

윤슬기가 내 위에 앉아 있었고 그녀의 등은 나를 향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속옷조차 걸치지 않은 상태였으며 하얗고 부드러운 손가락으로 그녀는 자신을 애무하고 있었다.

또 다른 손은 핸드폰을 들고 있었는데 누군가와 영상 통화를 하고 있는 듯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몰래 바라보니 화면에 전한빈의 얼굴이 보였다.

놀란 마음에 급히 눈을 감아버렸다.

이불 안에서 손을 꼬집었는데 선명한 통증이 전해져 이것이 꿈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혹시 이 부부는 나를 재미를 찾는 도구로 여기는 건가? 혹시 내가 먹은 멜라토닌이 수면제라 생각한 거야?’

이 순간 내가 깨어난다면 얼마나 어색한 상황이 될지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일이 더 커지는 걸 피하기 위해 눈을 꼭 감고 계속 자는 척했다.

그러나 윤슬기는 자극이 부족했던 건지 더 대담하게 행동하며 손을 움직이다가 천천히 내 얼굴 가까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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