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버림받은 전생 정실, 이번엔 왕비: Chapter 1 - Chapter 10

30 Chapters

제1화

질식은 어떤 느낌일까? 입과 코를 커다란 손으로 막고 있는 것 같아 숨을 쉴 수 없고,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지는 듯했다.노지연은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지만 헛수고에 지나지 않았고, 온몸이 끝없는 심연으로 잡아끌려 내려가는 것만 같았다.“부인, 이제 그만 좀 하오. 서녕은 그렇게 상냥하고 착한 사람인데 어떻게 부인을 물에 밀어 넣을 수 있겠소?”“나는 이미 서녕을 위해 교지를 청했고, 곧 성지가 내려올 것이오. 부인이 죽고 싶다 해도 소용없소.”냉담한 목소리가 노지연의 마음속에 무겁게 내리치며 그녀를 현실로 끌어올렸다.그녀는 정말...10년 전으로 돌아왔다!후작 저택에 시집온 지 3년째 되는 해, 3년간 출정했던 서방님 최익만이 마침내 돌아왔지만 아름다운 첩을 한 명 데려왔다.그는 그 여인을 너무 사랑했고, 자신의 모든 군공을 바쳐 그녀에게 교지를 청했다.이런 터무니없는 일을 그녀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분노가 극에 달한 그녀는 그 여인과 따지러 달려갔지만 오히려 물에 빠져 익사할 뻔했다.최익만은 사실을 전혀 믿지 않고 그녀가 자작극을 펼치며 일부러 모함한 것이라 단정했다.3년 전, 그들의 신혼 첫날 서창에서 급보가 날아왔다. 적성국이 침범해온 것이다.최익만은 망설임 없이 갓 혼인한 부인을 뒤로한 채 스스로 전장에 나서겠다고 청했다.그때 그는 노지연에게 맹세했다.“나는 전공을 세워 가업을 재건하고 부인에게 정실부인의 호칭을 안겨주겠소!”그는 정말로 전공을 세웠고 고명부인 호칭도 얻어냈다.하지만 그것은 그녀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방금 물에 빠진 일을 겪은 노지연의 얼굴은 창백하게 변했고 몸은 부서질 듯 연약해졌다.그녀는 조용히 눈앞의 사람을 바라보더니 입가에 비웃음을 띄우며 말했다.“첩에게 고명부인 호칭을 청하다니 참으로 천하의 웃음거리입니다.”최익만의 얼굴에 잠시 노기가 스쳤다.“내 이미 서녕이를 정실로 들였으니, 첩이라니 그 무슨 망발이오. 자네와 같은 본부인일세. 더는 그런 모욕적인 말은 삼가주시오.”노지연의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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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노지연의 어머니 나민희는 그녀에게 풍부한 지참금을 남겼다. 표면상의 밭과 집, 점포 외에도 유능한 집사들까지 배치해주었다. 후부는 그녀가 장사를 위해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노지연은 조용히 장사를 이어갔다.최익만이 신혼 초에 서창으로 참전한 후, 서창의 혹독한 추위와 부족한 의식주, 열악한 환경을 알게 된 노지연은 상단을 조직해 서창으로 물품을 팔러 보냈다. 그러면서 최익만에게 필요한 물건을 전해주기 위해서이기도 했다.몇 년이 지나며 그녀의 상단은 상당한 이익을 냈고, 이 노선에도 점차 익숙해졌다.상단을 이끄는 석기준은 경험이 풍부했는데 노지연에게 올해 서창의 기후가 좋지 않아 큰 가뭄이 들 것이라 경고했다. 가뭄 뒤엔 흔히 메뚜기 재앙이 따르기 마련이고, 이는 전염병을 유발하기 쉽다고 말이다.노지연은 즉시 결단을 내리고 석 집사에게 명령해 군량과 약재를 모아 서창으로 보냈다.그의 예측이 맞았다면 이 식량과 약재는 큰 도움이 될 것이고, 예측이 틀렸더라도 노지연은 그 정도 손해는 감당할 수 있었다.상황은 과연 석기준의 예상대로 흘러갔다. 서창은 큰 가뭄에 메뚜기 떼가 창궐했고, 백성들은 먹을 곡식이 없어 굶주렸다. 군대마저 군량이 끊겨 메뚜기로 연명하며 전염병이 번졌다.석기준은 노지연의 지시에 따라 그 군량과 약재를 태창 상인의 이름으로 조정에 무상으로 바쳤다. 이로써 가장 위급한 상황에 손을 내밀 수 있었다.이 일 이후, 서창 성안에 태창 상인의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어졌고, 모두가 그들을 의로운 장꾼이라 칭송했다.하지만 태창 상인의 뒤에 있는 실세가 노지연이라는 것을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전생에서는 조정이 노지연의 정체를 알아내고 그녀를 크게 포상하려 했었다.후작 부인 강미숙의 달콤한 말에 속아 그 은혜를 선평후부에 3대 세습의 특권을 요구했던 그녀는 참으로 어리석었다.그 은혜만으로 최씨 집안은 자신을 높이 평가하고 조서녕을 누를 수 있을 거라, 훗날 자신의 자식도 작위를 물려받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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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최익만과 조서녕이 가장 앞줄에 꿇어앉았고, 나머지 사람들도 차례로 무릎을 꿇었다. 태감은 환히 웃으며, 낭랑한 목소리로 어명을 선포하기 시작했다.“천명을 받들어 폐하께서 칙령을 내리노라. 조씨의 따님 서녕은 의술이 뛰어나며, 덕행과 재주를 겸비하였고, 서창 전란 중엔 약방을 아낌없이 내어 군사와 백성을 구하였으니, 그 공로가 크도다. 이에 의녀의 품계를 내리고, 별궁 어의록에 이름을 올리게 하며, 상으로 옥으로 빚은 여의 한 쌍, 야명주 한 쌍, 마노 한 상자, 촉금 열 필을 하사하노라!” 하사품 목록이 이어지자, 후원에 모인 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조서녕의 얼굴엔 자부심이 어린 빛이 떠올랐다.“참장 최익만은 선평후의 후예로 용맹이 드높으며 전공이 두드러지니, 조씨와의 인연은 하늘이 맺은 바요, 백년을 기약할 만하도다. 이에 조씨를 고명부인으로 책봉하고, 봉작에 맞는 의복과 인장을 하사하며, 병부 전적에 그 공을 기록하게 하노라!”어지가 모두 내려지자, 의식은 마무리되었다.최익만과 조서녕은 마주보며 미소를 지었고, 두 사람의 눈빛엔 더는 다른 누구도 끼어들 틈이 없어 보였다.태감은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한 걸음 앞으로 나와 말했다.“조의녀, 어지를 받드십시오.”조서녕은 그제야 고개를 들고, 또렷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의녀 조서녕, 삼가 어지를 받듭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한 줄기 강렬한 햇살이 쏟아져 그녀의 몸 위로 희미한 광채가 드리워졌다. 얼굴에는 뜻을 이루고 만족한 기색이 가득했다.그녀는 노지연이 있는 쪽을 흘끗 바라보며 눈 속에 드러난 경멸과 무시를 전혀 숨기지 않았다.선평후 최학수는 황급히 시종들에게 무겁게 채워진 은전 주머니를 태감에게 건네게 했고, 몸소 그를 밖까지 배웅하며 매우 정중히 대했다.최익만의 누이 최운정이 앞으로 다가와 조서녕의 팔을 친근하게 잡았다.“서녕 언니, 정말 대단해요. 우리 여자들은 모두 언니를 본보기 삼아 배워야 해요.”최익만이 정색해서 말했다.“형님이라고 불러야 한다.”최운정이 노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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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옥류각으로 돌아오니, 단연이 이미 열쇠와 장부 등을 정리해 강미숙의 영복당으로 보내놓은 상태였다. 유모 김 어멈은 이를 지켜보며 가슴 가득 걱정을 안고 있었다.“아씨, 정말 결심하신 것이옵니까?”“결심은 이미 했어요. 어멈, 더는 말리지 마세요.”김 어멈의 마음속에는 여인이 혼인을 끊는다는 것이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도 같은 일이었다. 노지연은 그 인식을 당장 바꿀 수는 없으나, 시간이 흐르면 이혼이 가장 올바른 선택이었음을 그녀도 알게 되리라 믿었다.김 어멈은 한숨을 내쉬며 더는 아무 말씀도 않으셨다.노지연은 후부의 기어오르기조차 어렵게 높은 담장을 바라보았다.전생에 그녀는 이 담장 안의 모든 사람을 지키고 싶었지만...이번 생에선, 이 후부의 모든 것이 곧 그녀와 무관해질 것이다.이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지금껏 느껴본 적 없는 가벼움이 느껴졌다.이튿날.집안일을 맡지 않아 노지연은 드물게 한가로웠고 기분 또한 매우 좋았다.하지만 이런 여유는 오래가지 못했다. 김 어멈이 안으로 들어와 알렸다.“아씨, 친정에서 사람이 왔사옵니다.”노지연은 눈가를 내리깔았다.그녀가 물에 빠진 후, 김 어멈은 분노와 걱정이 교차하며 노씨 집안에 사람을 보내 이 사실을 알렸다. 그녀의 ‘훌륭한' 아버지가 그녀를 위해 나서주길 바랐던 것이다.전생에서도 그녀의 아버지는 확실히 사람을 보냈지만 그녀의 편이 되어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곧 체구가 풍만한 한 부인이 안으로 들어왔다.“아씨께 문안드립니다.”노지연은 담담한 표정으로 물었다.“유 어멈,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앉으라는 말도 하지 않았고 차도 대접하지 않자 유 어멈은 그저 말라붙은 듯 서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얼굴에 드러난 표정마저 불편해 보였다.그녀는 억지로 웃음을 짓고 말했다.“하인은 어르신의 분부를 받들어 아씨께 전할 말씀이 있어 들렀사옵니다.”노지연은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소리로 대꾸했다.“말하시오.”이는 유 어멈이 예상했던 대접과는 달랐지만, 지금으로서는 억지로라도 말을 이어갈 수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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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최운정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 머리 장신구는 총 8,888냥인데, 형님께서 이미 888냥의 전금을 치르셨고, 아직 8,000냥이 남았습니다.”최익만은 말문이 막힌 채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닌지 의심했다.“얼마라고?”최운정이 다시 한번 말을 되풀이하자 최익만의 얼굴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도대체 어떤 머리 장신구이기에 그렇게 비싼 거냐?”그의 한 달 봉급이 겨우 100냥도 채 되지 않았다. 전장에서 3년을 온 힘을 다해 싸워도 8,000냥을 모으지 못했는데, 그녀가 감히 8,888냥이나 하는 머리 장신구를 사다니?그가 살 형편이 안 되는 건 물론이요, 설령 살 수 있다 해도 그런 헛돈을 쓰지 않을 거였다.강미숙 또한 아들에게 이 돈을 내게 하고 싶지 않았다.“그 머리 장신구는 노지연이 운정이를 위해 주문한 것이니 이 돈은 당연히 노지연이 내야 할 것이다.”최운정이 최익만을 힐끔 바라보며 말했다.“하지만 지금도 형님은 화가 나 계시잖습니까.”이것이 바로 강미숙이 난처해하는 이유였다.그녀는 원래 노지연을 한동안 차갑게 대하며 제 분수를 깨닫게 하려 했다. 그래서 나중에 더 쉽게 통제할 계획이었는데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이야...최익만의 얼굴이 굳어졌다.“취소하거라.”최운정이 목소리를 높였다.“안됩니다.”최익만이 얼굴을 찌푸렸다.“머리 장신구가 어떤 게 중요하냐? 꼭 이렇게 비싼 걸 사야 했냐 말이다.”최운정은 완고한 표정으로 대답했다.“그건 형님이 사 주신 건데 제가 왜 못 받습니까.”두 사람이 다투려는 순간, 강미숙이 때맞춰 입을 열었다.“익만아, 이 머리 장신구는 정말로 반품할 수 없느니라. 지금 너와 조서녕은 모두 조정의 유명한 공신들이라 모두가 후부를 주시하고 있단다. 이 시점에 머리 장신구를 돌려보낸다면 후부의 체면이 뭐가 되겠느냐?. 우리가 그런 망신을 당할 수는 없다.”최익만의 표정이 흠칫하더니 당장 반박할 말이 없어 한참 만에야 입을 열었다.“그러면...”막 말을 시작하려는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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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두 사람이 떠난 후에야 옆방에서 비로소 움직임이 일었다.한 남성이 앉아 있었는데 자세는 무척이나 편안하고 거침없었다.피부가 어두운색이었고, 짙은 검은 머리와 넓은 이마가 강인하면서도 날카로운 인상을 풍겼다.눈썹뼈 위에는 희미한 흉터가 자리했는데, 용모를 해치지도 않았고 추하지도 않았지만 오히려 그에게 살짝 불량한 기운을 더해주었다.그는 발을 들어 옆에 있는 사람을 툭 차며 말했다.“하균, 말해 보아라. 이번 겨울은 추울 것 같으냐?”하균은 부채를 들고 매우 열심히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전하, 지금 이 더위를 보십시오. 추울 것으로 보이시옵니까? 저는 지금 미칠 것 같사옵니다.”소연준은 손가락을 살짝 굽혀 탁자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이렇게나 더운 날씨인데, 노씨 집안 딸이 갑자기 목면 옷과 숯을 대량으로 사들이려 하다니, 참으로 기이한 일이로구나.”하균은 헛웃음을 지으며 대충 말했다.“여자들이란 게 다 그렇사옵죠. 머리만 길고 식견은 짧사옵니다.”그는 다시 하윤의 다리를 걷어찼다.“왜, 여인을 얕보는 것이냐? 네가 누구 배에서 나온 줄 아느냐? 네 목숨을 누가 구했는지 기억나지 않느냐?”두 사람은 이번 행차에서 운이 없어 목숨을 거의 잃을 뻔했으나 마침 석기준의 상단에 발견되어 한경까지 올 수 있었다.정말 따지자면 노지연은 그들의 생명의 은인이라 할 수 있었다.하윤은 즉시 입을 막으며 말했다.“제가 입이 거칠었사옵니다. 죽여주시옵소서.”그런데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태창 상인의 주인장이 젊은 여자일 줄은...소연준이 물었다.“네게는 은전이 얼마나 있느냐?”하윤은 몸을 더듬어 초라한 주머니를 꺼내더니 안타까울 정도로 적은 은 조각들을 쏟아냈다.소연준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거지 같구나.“하윤은 울상을 짓고 대답했다.“...그건 다 전하 탓이옵니다.”전하께선 타고난 재물복이 없어 값진 물건이 손에 들어가도 한 시진을 못 버티시는데하윤이 돈을 맡아도 어김없이 사라지곤 했으니 아마도 조정에서 둘도 없이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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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노지연은 대답 대신 되물었다.“나를 찾으신 일이라도 있으신가요?”최운정이 말하려던 참에 강미숙의 눈빛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강미숙은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마치 그녀를 위해 주장하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어제 부엌에서 네게 보낸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았다 들었다. 그래서 오늘은 특별히 사람을 시켜 단단히 혼을 내줬단다. 분수를 모르고 멋대로 행동하지 못하도록 말이다.”노지연은 살짝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별일도 일인데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 없었습니다.”강미숙은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네가 이 집의 안주인인데 감히 너를 소홀히 대하다니, 이게 어찌 별일 아니겠느냐? 앞으로는 이 집의 살림도 네게 맡기려 한다. 나도 이제 늙었으니 이 집은 네가 아니면 안 되겠다.”최운정이 눈을 흘기며 말을 이었다.“그러게 말입니다. 아래 사람들을 보면 게으름 피우기 일쑤인데 형님만이 그들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이 집안은 역시 형님이 맡으셔야 합니다.”강미숙은 일부러 성난 듯 최운정을 흘겨보며 말했다.“얘가, 네 눈엔 형님밖에 없구나.”“이 딸이 하는 말 모두 사실입니다. 형님께서 집안을 맡으실 때는 부엌 음식조차 더 맛있었는데 지금은 그저 허접한 반찬뿐이라니...”노지연은 속으로 비웃었다.‘내가 집안을 맡을 때는 내 개인재산을 털어 보태줬으니 음식이 맛없을 수가 있겠어?'모녀의 주고받는 말을 다 들은 노지연은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저는 물에 빠진 후로 아직 잔병이 남아있어 사실 집안일을 맡을 정신이 없습니다. 어머님, 좀 더 쉬게 해 주세요.”노지연은 그들과 말다툼하며 시간을 낭비하기 싫어 과감히 ‘끌어내리기 전략'을 선택한 것이었다.3일 후, 그녀는 폐하에게 이혼 허가를 청원할 것이고, 그러면 모든 문제가 스스로 해결될 터였다.그녀의 태도는 평온했고, 직접 거절하지 않자 사람들 눈에는 받아들인 거로 비쳤다.최익만의 입가에 비웃음이 떠올랐다. ‘그렇게 강한 체하더니, 역시 집안일 권한을 차지하려는 거로군.'강미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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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최운정은 체면이 말도 못 하게 구겨진 것 같아 목을 곧추세우며 버티었다.“형님이 분명히 제게 주시겠다고 하셨잖습니까! 이제 와서 뒤집다니요!”노지연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그날 우리가 여의각에서 장신구를 고르던 때 구 공주마마께서 바로 옆방에 계셨습니다. 사실관계를 확인하시려면 공주마마를 모셔오면 될 일이니... 과연 아가씨는 감히 그렇게 하겠습니까?”최운정의 뻣뻣하게 세운 목이 굳어지며 눈동자에도 흠칫하는 빛이 스쳤다.구 공주는 덕종의 막내딸로, 폐하의 각별한 총애를 받는 데다 성격이 고약하기로 유명했다. 한 마디로 남의 체면 같은 건 눈곱만큼도 살피지 않는 사람이었다.실제로 그날 공주를 마주쳤지만 콧대가 하늘을 찌르는 그분은 두 사람을 쳐다보지도 않으셨다.노지연이 날카롭게 물었다.“어떠하시겠습니까? 감히 못 하겠지요?”“저... 전...”최운정의 얼굴이 새빨개지며 우물쭈물 대답을 못 했다.이런 반응은 이미 진실을 말해주고 있었다.최익만은 마치 세게 뺨을 여러 대 맞은 듯한 기분이 들며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네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었단 말이냐? 너, 너...”그는 너무 분해서 말을 잇지 못했다.이 누이에게 실망한 것은 물론, 노지연 앞에서 체면을 구기게 만든 것에 더욱 분노가 치밀었다.강미숙이 황급히 최운정을 변호했다.“운정이는 평소에 착한 아이였다. 분명 주변 사람들이 꼬드겨서 잠시 매혹된 것이다.”최운정은 억울하다는 듯 울음을 터뜨렸다.“형님은 예전엔 늘 제게 후하셨습니다. 제가 원하는 건 뭐든 사 주셨잖습니까. 그날 저는 그 머리 장신구가 너무 갖고 싶었는데 왜 절대 사 주지 않으셨습니까... 사주셨으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모든 게 노지연의 탓인 양 둘러대고 있었다.노지연의 마음 한구석에서 깊은 서늘함이 피어올랐다.은혜가 적으면 고마워하지만 많으면 원수가 된다고 하더니, 역시 그 말이 맞았다.그들의 욕심은 바로 그녀가 조금씩 키워온 것이었다.그들은 그녀의 헌신을 당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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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최운정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소리쳤다.“그렇게 이기적인 년이 어디 있답니까! 후부의 명성이 무너지는 걸 그냥 지켜보다니! 애초에 체면이라도 차려줄 필요가 없었습니다!”최익만 역시 최운정에게 화가 나 있었다. “이기적인 건 너다. 후부의 명성이 무너진다면 전적으로 네 공로란 말이다!”이런 비난에 최운정은 또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오라버니는 외부인 편을 들다니요! 그년은 분명 재산이 많으면서도 8천 냥조차 내놓지 않습니다. 이게 어디가 이기적이 아니란 말입니까?”최익만은 그녀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 더는 말을 섞기 싫었다.그가 소매를 휘날리며 떠나려는 순간 강미숙이 급히 불러세웠다.“지금은 감정에 휩쓸릴 때가 아니다.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할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최익만의 얼굴은 차갑게 굳었지만 이를 악물며 말을 내뱉었다. “제가 생각해 보겠습니다.”강미숙이 어찌 자기 아들이 고생하며 돈을 마련하도록 내버려 둘 수 있겠는가? 그녀는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내게 한 가지 해결 방법이 있구나.”최운정은 황급히 재촉했다. “어머니! 방법이 있으시다면 빨리 말씀해 주세요!”강미숙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서녕이 어제 폐하께서 내리신 후 한 상을 받았는데...”그녀가 말을 시작하자마자 최익만의 얼굴색이 변했다. “안 됩니다! 그건 서녕의 개인 물건입니다!”그러나 이미 마음이 들떠 있던 최운정은 당당하게 주장했다. “그분은 제 새 형님이잖습니까. 저에게 예물 정도는 당연히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게다가 그날 받은 상도 그렇게 많았는데 이 정도 은냥쯤이야 아깝지도 않을 겁니다.”누이의 탐욕스러운 얼굴을 바라보며 최익만은 혐오감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서녕의 재산은 서녕이 처리할 일이지 네가 마음대로 처분할 권한은 없다!”아들이 그 여인을 그렇게 감싸는 모습에 강미숙의 눈빛에 어두운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정체불명의 고아 년이, 노지연보다도 못한 주제에!”폐하의 눈에 들었다는 행운만 없었더라면 강미숙은 절대 그녀를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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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노지연은 외부의 소문에 대해 일절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녀는 각처의 산업 장부를 모두 올려 검토하도록 지시하며 하찮은 일에 시간을 낭비할 여유가 없었다.그녀는 옥류각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해 질 녘 뜻밖의 방문자가 찾아왔다.최운정은 호수 빛을 머금은 은빛 비단 백합무늬 치마를 입고, 발에는 우윳빛 연기무늬에 비단 구슬을 수놓은 신을 신고 있었다. 머리에는 그 유명한 금과 옥으로 장식된 머리 장신구가 착용 되어 있었는데, 온몸이 반짝반짝 빛나면서도 속되지 않았고, 오히려 흐르는 빛과 화려한 꽃처럼 아름다운 인상을 풍겼다.여의각의 솜씨는 역시 보통이 아니었다.최운정은 마치 꼬리를 펼친 공작새처럼 거들먹거리며 노지연 앞을 몇 바퀴나 돌았다.“누군가는 너무 인색해서 머리 장신구 하나 제게 주기 아까워했는데, 다행히 새로 온 형님은 너그러우셔서 그 장식뿐만 아니라 예쁜 옷과 신발도 여러 벌 사 주네요. 다 요즘 가장 유행하는 것들이랍니다.”노지연은 진심 어린 미소를 지었다. “정말 축하합니다. 그렇게 통 큰 새 형님을 모시게 된다니, 참 복이 많으십니다.”그리고 옆에서 기쁘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는 조서녕을 바라보며 더욱 진심 어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동생도 축하하네. 이렇게 돈 쓰기를 좋아하는 시동생을 두시다니 참 복이 많네.”조서녕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그렇게 빈정대지 않아도 될 텐데요. 저는 언니처럼 돈을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요. 돈은 단지 몸 밖의 물건일 뿐이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이야말로 진정으로 소중하고 대체할 수 없는 거예요.”그녀는 마치 자신을 설득하듯 힘주어 말했다.그러자 최운정이 자랑스럽게 맞장구를 쳤다. “맞습니다. 형님은 우리 서녕 형님과 나 사이를 이간질하려 들지 십시오. 우리는 친자매처럼 친하니까 서녕 형님이 나에게 돈을 써 주시는 겁니다.”노지연은 진심 어린 어조로 말했다. “정말 다행이네요. 하나는 돈을 마음껏 쓰고, 하나는 돈을 기꺼이 내주니 천하일품의 훌륭한 시누이와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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