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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내 여자 건드리지 마: Chapter 21 - Chapter 30

40 Chapters

제21화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운 서인아는 머릿속에 서지훈의 말이 맴돌았다.서진그룹의 창시자는 서청환이며 3대에 걸쳐 100년 가까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시작은 해운업이지만 나중에 아버지의 손에서 무역업으로 전환했고, 오빠가 회사를 인수한 뒤 산업과 기술에 뛰어들어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했다.서진그룹은 항상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성장했다.그동안 위기를 맞을 거로 생각지도 못했고, 100년 가까이 된 회사도 재정난에 시달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더욱이 집안에 문제가 터졌는데 정작 본인은 도움이 전혀 안 되는 무능한 존재라는 사실이 충격으로 다가왔다.결국 밤새 잠을 설쳤다.꿈속에서 회사가 망하고, 주주들이 서지훈에게 쓰레기와 썩은 계란을 마구 던졌다. 심지어 할아버지는 이 사실을 알고 실신해서 병원에 실려 가 응급처치까지 받았다.서인아는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떴다.침대에 앉아 땀을 뻘뻘 흘리며 한참을 넋을 잃고 있었다.그날 밤, 서청환의 시중을 들면서도 머릿속으로 계속 고민했다.서지훈은 바쁜 듯 아침부터 코빼기도 안 보였다. 어느덧 하루가 지났고 회사의 위기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는지 알 수 없었다.그녀는 무거운 마음으로 2층으로 올라갔다. 이때 밖에서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곧이어 웅성거리는 소음이 나지막이 울려 퍼졌다.결국 황급히 돌아서서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문을 열고 나가 보니 입구에 화물차 한 대가 멈춰 있었고, 경호원 십여 명이 창고에서 물건을 옮기는 중이었다.서인아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리고 화물차 앞에 서서 어두운 표정으로 담배만 피워대는 서지훈을 발견하고 서둘러 다가갔다.“오빠, 뭐 하는 거야?”서지훈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며 묵묵부답했다.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모습은 마치 본인도 어쩔 수 없다고 호소하는 듯싶었다.그녀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할아버지가 평생 간직해온 골동품이 하나씩 포장되어 차에 실려 가는 장면을 지켜보자 허탈함이 밀려왔고, 심장이 싸늘하게 식어가더니 패닉에 빠졌다.“꼭 이렇게까지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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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서인아는 성큼성큼 걸어가 서지훈의 침대에 걸터앉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우리 집안을 위기에서 구해줄 기업은 이미 찾아놓은 거지?”서지훈이 흠칫 놀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다만 투자 금액이 워낙 커서 아무런 보장 없이 계약만으로는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가 봐.”서인아는 단번에 눈치챘다.“정략 결혼해야 해?”서지훈은 그녀가 먼저 언급할 줄은 몰랐던 듯 어안이 벙벙했다.이내 눈빛이 흔들렸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서인아가 단호하게 말했다.“할게.”서지훈은 그녀를 올려다보더니 곧바로 인상을 찌푸렸다.“안 돼. 난 동의 못 해! 설령 회사를 지킨다고 해도 네가 불행하다면 아무 의미 없어.”이 말을 듣자 서인아는 울컥하는 기분이 들어 눈시울이 붉어졌다.사실 알고 보면 오빠도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단지 어렸을 때 맛있는 음식을 몰래 훔쳐 먹는 둥, 좋아하는 여자에게 잘 보이려고 그녀의 물건을 선물하거나 잘못을 저지르고 바가지를 뒤집어씌우는 둥, 부모님에게 고자질하는 둥 제외하고 혈육으로서 그럭저럭 괜찮았다.아버지가 어머니를 따라 가출한 이후 지금까지 혼자서 회사를 경영하느라 고생한 건 사실이었다.서인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할아버지가 회사에 얼마나 많은 심혈을 기울였는데 서진그룹을 지킬 수만 있다면 정략결혼이 뭔 대수겠어? 게다가 꼭 불행하다는 법은 없잖아?”“하지만 네가 좋아하는 사람은 송...”“우리가 어떤 사이인지 오빠가 제일 잘 알지 않아? 어차피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야.”서지훈이 입을 꾹 다물었다.잠시 후 고개를 들더니 망설이는 얼굴로 말했다.“그럼 일단 만나볼래? 만약 정말 마음에 안 들면 그때 가서 거절해도 돼. 오빠가 다른 방법 생각해볼게.”서인아가 피식 웃었다.“알았어.”...인생은 한 편의 연극이라더니, 서인아는 가끔 연극보다 더 흥미진진하게 느껴졌다.며칠 전만 해도 송유진과 헤어질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으며, 더욱이 그녀가 먼저 제안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리고 헤어진 지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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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서진그룹의 이번 사태를 결코 쉽게 여겨서는 안 돼. 대표님이 말하길 여러 주요 프로젝트가 모두 중단된 상태라고 하더군. 물론 위기를 극복하게 도와줄 의향은 있지만 한성그룹 주주들에게 설명은 해야 하지 않겠어?”한도윤의 목소리는 매우 차분했다.“네 마음은 십분 이해해. 만약 고민이 된다면 거절해도 되니까 친구로서 개인 명의로 600억까지는 빌려줄게. 대표님도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거야.”“그런 뜻이 아니라...”예상외의 대답에 서인아는 방금 말이 좀 지나쳤다는 생각이 들었다.그가 불난 집에 부채질한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오산이었다.하성에 있을 때 분명 서지훈에게 신세를 져서 도와줬을 뿐이라고 선전 포고를 했었다.서진그룹이 위기에 직면한 지금, 이렇게 큰일을 아무런 이유 없이 처리해준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그의 말이 맞았다. 사업가로서 한성그룹의 주주들도 결코 무시할 수는 없었다.이내 머쓱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미안, 다 내 탓이야.”“괜찮아.”한도윤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대표님이 정략결혼을 언급했을 때 네가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얘기했어. 그런데 너한테 직접 말할 줄은 몰랐네.”“난 반대한 적 없는데?”서인아가 재빨리 대답했다.남자의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까먹었다.이내 짜증이 밀려와 입술을 꼭 깨물었다.정략결혼에 동의한 것도 단지 서진그룹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비록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사실 거부감이 들었다.오늘 만난 사람이 최악만 아니라면 가족을 봐서라도 감수할 생각이었다.그러나 상대가 한도윤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를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안도감이 밀려왔다.물론 왜인지는 몰랐다. 다만 정략결혼 상대가 한도윤이라면 딱히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게다가 서진그룹의 현재 상황을 고려할 때 거절할 자격이 어디 있겠는가?“위기에 처한 우리 집을 도와주겠다고 한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어. 한성그룹에서 자금을 투자하려면 적절한 명분이 필요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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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서지훈은 어색한 표정으로 얼버무렸다.“아니, 그냥 친구야.”그리고 서인아의 목에 팔을 두르고 소파로 걸어가 능청스럽게 화제를 돌렸다.“미리 얘기했어야 하는데, 미안. 괜히 속으로 불편해할까 봐 아무 말도 안 한 거야.”“그걸 아는 사람이 날 속여?”통화 상대에 관심이 사라진 서인아를 보며 서지훈은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소파에 앉혔다.“나도 어쩔 수 없었어. 정략결혼 하기 싫어하는 애를 회사 일에 휘말리게 했으니, 이게 다 무능한 오빠 탓이야.”그러고 나서 옆에 앉더니 무릎을 짚고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할아버지는 아직 모르고 계셔. 만약 내가 서진그룹을 지키기 위해 동생의 행복을 희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오빠를 탓하는 건 아니야.”서인아가 입을 열었다.“게다가 나도 가족인데 어떻게 강 건너 불구경만 하겠어?”지금까지 자라면서 그녀에게 미안해하는 서지훈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사실 결혼 상대를 속인 것도 그리 화가 나지는 않았다.이내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했다.“차라리 모르는 게 나아. 서진그룹은 할아버지의 평생 업적인데 괜히 알려줬다가 걱정하는 사람만 한 명 더 생기는 꼴이잖아. 오빠, 난 이미 결혼하기로 했어. 한도윤도 돌아가면 협력 투자 건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고. 서진그룹의 위기를 극복하기 전까지 할아버지께 절대 말씀드려서는 안 돼.”서인아는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그리고 정략결혼도 최대한 비밀로 하는 게 좋아.”서지훈은 난색을 보였다.“회사 일은 그렇다 쳐도 결혼 문제는 힘들 거야.”손녀가 결혼하는데 어찌 할아버지 몰래 하겠는가?게다가 할아버지의 성격으로 손녀딸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시집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서지훈은 등골이 오싹했다.“아니면 한도윤한테 일단 비밀로 하자고 먼저 얘기해보는 건 어때?”...밤 10시.샤워를 마친 서인아는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서지훈의 걱정거리가 떠오르자 잠시 고민하더니 옆에 있던 휴대폰을 들어 화면을 켰다.한도윤의 카톡은 오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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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어디 가?]더 이상 답이 오지 않자, 서인아는 머릿속 가득 의문을 안은 채 침대에서 이리저리 뒤척였다.별별 생각이 뒤엉키다가 얼마나 지났는지 거의 잠들 뻔했는데 베개 옆에 둔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그녀는 졸음을 참고 휴대폰을 집어 들어 화면을 켰다. 채팅창에는 새 메시지가 떴는데 딱 네 글자였다.[혼인신고.]서인아는 잠이 순식간에 깨버렸다. 그녀는 오랫동안 멍하니 있다가 문자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할아버지를 완전히 속이려면 결국 혼인신고밖에 방법이 없어 보였다.‘하아...’...아침 8시 40분, 서인아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정문에 다다른 건 9시 조금 넘었을 때였고, 한도윤은 이미 와 있었다.그는 처음 봤을 때와 똑같은 차림이었다. 검은색 슬랙스에 깔끔한 흰 셔츠, 단추는 두 개 풀려 있었고 소매는 여러 번 말아 팔꿈치 근처까지 올렸다.달라진 건 머리 정도였다. 전보다 좀 짧아져서 귀 옆이 훨씬 깔끔해졌고, 윗머리는 간단히 손질해 더 단정해 보였다.서인아가 도착했을 때, 한도윤은 차 앞에 기대어 전화를 하고 있다가 그녀를 보자마자 통화를 끝내고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왔어?”서인아는 발목까지 오는 검은색 플레어스커트에 얇은 스트랩이 달린 다이아몬드 하이힐을 신었다. 햇빛 아래 반짝이는 빛이 발걸음을 뗄 때마다 시선을 사로잡았다.상의는 흰색 셔츠였지만, 한도윤의 것처럼 간단한 디자인이 아니라 가슴에 빨간 체리 자수가 놓여 있었다.한도윤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조용히 그녀를 바라봤다.하이힐을 신은 그녀가 천천히 다가올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꾹꾹 눌리는 기분이 들어서인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키고 입가가 살짝 올라갔다.“특별히 맞춰 입은 거야?”서인아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옷을 보고 다시 그의 옷을 살폈다. 괜히 귀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기분이었다.그의 웃음기가 감도는 눈과 마주쳤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네가 혼인신고 하자고 했잖아. 이렇게 입으면 되는 거 아니야?”한도윤은 웃었다.그가 그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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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혼인신고 과정은 매우 순조로웠다. 심지어 간단하다고 할 수도 있을 정도였다. 혼인신고서를 작성해서 제출하니 직원이 확인 서류를 건네줬고, 그게 전부였다.구청 문을 나설 때까지도 서인아는 여전히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녀는 멍하니 확인 서류를 바라보았다.‘내가 결혼을 했다고? 그냥 이렇게 유부녀가 된 거야?’머리가 어지러워서 마냥 비현실적으로만 느껴졌다.서인아가 멍하니 서 있을 때 갑자기 서류가 홱 빼앗겼다.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드니, 한도윤이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서류를 가방에 넣고 있었다.“할아버지한테 들키지 않으려면 일단 내가 가지고 있을게.”그녀는 잠깐 생각하다가, 그 말이 일리가 있다고 여겼다.“알겠어. 그럼 이제 어디로 갈 건데?”한도윤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한 물건을 쥐여주었다.서인아는 잠시 멈칫했다.“이게 뭐야?”“열어봐.”작은 상자를 열어 보자 순간 시야에 눈부신 광채가 비쳤다.검은색 벨벳 상자 안에는 완벽하게 커팅된 하트 모양 다이아몬드 반지가 고요히 놓여 있었다.그녀는 멍하니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너 이거 어떻게...”“결혼 축하해, 여보.”“...”여보라는 두 글자가 그의 입에서 나오자 마치 주문처럼 가슴이 떨리기 시작했다.한도윤은 반지를 꺼내 멍한 표정의 그녀의 왼손을 들어 약지에 끼워주었다. 손가락에는 묵직한 감각이 전해졌다.맞잡은 두 손을 바라보며, 서인아는 갑자기 묘한 감정이 솟아올랐다. 한도윤의 손은 아주 컸다. 그녀의 손이 그의 손바닥에 놓이자 더욱 하얗고 작아 보였다.게다가 그의 손바닥은 따뜻하다 못해 피부에 닿을 때마다 약간 간지럽고 뜨거워서 서인아는 저도 모르게 피하고 싶어졌다.그녀가 손을 빼려 했지만 빠지지 않아 조금 당황했다.“...나는 아무런 준비도 안 했단 말이야.”그는 엄지손가락으로 반지를 낀 손가락을 무심한 듯 문지르며 옅게 웃었다.“정략결혼이라도 챙길 건 챙겨야지. 이번엔 네가 나한테 빚진 거야.”그는 서인아의 손을 놓고 다시 바지 주머니에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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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한도윤은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바로 맑은 눈동자와 마주쳤다.전화기 너머에서 누군가 무어라 말하고 있었지만, 그 소리는 한순간 아득해진 듯했다. 그는 담담하게 대답했다.“응, 최대한 빨리 돌아갈게.”전화를 끊고 막 뭔가를 말하려던 참이었는데, 서인아는 시선을 돌리며 등을 돌렸다.“봉석우가 연출하고, 박진호가 제작하는 영화야. 뒤에는 문희엔터가 버티고 있고. 이 영화만 개봉하면 너 더는 조연 안 해도 돼. 이렇게 좋은 기회가 왔는데 계약을 해지할 거야?”“송유진, 계약을 끝내든 말든 그건 내 일이야. 네가 이래라저래라 할 필요 없어. 그리고 네가 말한 좋은 기회라는 거, 이제 나한테는 아무 의미도 없어!”“우리 대학 때 했던 말 다 잊은 거야? 이건 우리 꿈이었잖아. 간신히 기회가 생겼는데 포기하면 어떡해?!”“그건 네 꿈이지, 내 꿈이 아니었어.”휴대폰 너머에서 송유진은 드디어 입을 닫았다.서인아는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네가 내 꿈이었어. 근데 이젠 너랑 얽히고 싶지 않아. 두 번 다시 전화하지 마. 네 목소리 듣기 싫어.”그녀는 전화를 끊고 번호까지 차단한 뒤 휴대폰을 가방에 넣었다. 일련의 동작이 순식간에 이어졌다.가방을 여민 다음에야 서인아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며칠 동안 서진그룹 일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서지훈에게 계약 해지 건을 물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송유진의 말투로 봐서는 서지훈이 보낸 사람들이 일을 제대로 못 한 듯했다.송유진은 스타엔터에서 가장 밀어주는 배우라, 그가 끝까지 버티면 얼마나 더 질질 끌지 모를 일이었다.서인아는 한숨을 쉬었다. 역시 계약 해지 건은 직접 움직여야 할 것 같았다.“왜 한숨 쉬어?”“어?”서인아가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한도윤이 그녀의 뒤에 서 있었다.그는 시선을 낮춘 채 물었다.“후회해?”“...그럴 리가!”한도윤의 의심스럽다는 표정을 본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영화와 계약 문제를 사실대로 털어놓았다.그는 표정이 이제야 좀 누그러지면서도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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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한도윤은 정말 급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서인아를 집까지 데려다주었고, 문 앞에서 간단히 몇 마디 당부를 한 뒤에야 떠났다.하지만 산 아래에서 기다리던 사람은 그처럼 느긋하지 않았다.차가 멈추고 한도윤은 뒷좌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비서인 임준영이 재빠르게 차에 올라 가속 페달을 밟자 차량은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튀어 나갔다.“대표님, 회장님께서 결혼 소식을 아시고 몹시 화가 나셨습니다. 사모님께서도 이미 아셨고, 곧 귀국행 비행기에 오르신다고 합니다. 항공편은 내일 아침 도착할 예정입니다.”“그래.”비행기 출발까지 한 시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임준영은 최대한 속력을 냈다. 미리 그의 의도를 알고 있지 않았다면 자신도 깜짝 놀랐을 거라고 생각하며 말이다.하성으로 출장을 간다고 떠난 것인데, 일은 하나도 하지 않고 해성에 들러 말없이 결혼한 셈이니 말이다.그래도 아직 소문이 퍼지지 않아 가족 중 두 사람 정도만 상황을 파악한 상태였다. 그렇지 않다면 한씨 가문은 이미 발칵 뒤집혔을 게 뻔했다.한도윤의 할아버지인 한정석은 아마 벌써 지팡이를 닦고 있을 것이다. 전화를 통해 들은 이진서의 말투만 해도 아주 살벌했다.하지만 한도윤은 한결같이 차분해 보였다. 임준영과 달리 그는 전혀 걱정하지 않는 듯했다.“임 비서는 당장 돌아갈 필요 없어. 공항에 도착하면 하성으로 가는 비행기로 다시 끊어.”“네? 하성에는 왜요?”한도윤이 임준영을 보았다.“계열사 사람들이 일을 제대로 못 해. 고작 엔터 계약 하나도 해결 못 했어. 임 비서가 직접 가서 확인해.”‘엔터 계약?’“혹시... 사모님 계약 문제이신가요?”사모님이라는 단어가 한도윤의 기분을 맞춘 듯 말수가 적은 그가 드물게 몇 마디를 더했다.“그래. 인아도 아마 직접 갈 거야. 절대 피해 보지 않게 뒤에서 잘 살펴줘.”임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대표님.”...한편, 서인아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한도윤이 떠난 방향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돌아서 집으로 향했다.걸어가면서도 휴대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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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상대방은 차 키를 여건호에게 던져주고 말 한마디 없이 다른 차에 올라 떠나버렸다. 여건호는 트렁크를 검은색 레인지로버 트렁크에 실은 뒤 다시 다가와 서인아에게 차 문을 열어 주었다.두 사람은 차에 올라탔고, 차량은 곧바로 공항을 벗어났다....서진그룹 산하에는 여러 호텔 브랜드가 있었는데, 서청환이 잡아 준 숙소는 하성에서 가장 큰 호텔인 해왕호텔이었다.해왕호텔은 하성 도심의 동쪽에 자리하고, 한성그룹의 H호텔은 서쪽에 있어서 마침 위치가 정반대였다.해왕호텔은 스타엔터 하성 지사와 매우 가까워서 고작 한 블록 거리였다. 창가에 서면 스타엔터 로고도 보일 정도였다.다음 날, 서인아는 아침 식사를 마치고 여건호와 함께 스타엔터로 향했다. 그다지 멀지 않아 굳이 차를 타지 않고 걸어갈 만한 거리였다.막 건물 아래에 도착했을 때, 길모퉁이에서 유선미의 차량이 달려왔다. 차량의 속도는 아주 빨랐고 사람을 봐도 전혀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조심하세요!”서인아와 여건호가 횡단보도를 지날 때 차가 서인아를 스칠 듯 빠르게 지나갔다. 여건호가 재빨리 그녀를 잡아당긴 덕분에 발이 타이어에 깔리는 것을 면했다.차가 바로 앞 지하주차장으로 사라지는 걸 보고 서인아는 등 뒤가 서늘해지며 잠시 아찔했다.“괜찮으세요?”여건호가 물었다.서인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차갑게 말했다.“괜찮아요. 우선 회사로 올라가요.”...스타엔터 8층, 구연범의 사무실.유선미는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오빠, 송유진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예요? 새 영화 곧 시작인데 아직도 결정을 안 하잖아요. 설마 정말 서인아한테 주인공 자리를 줄 건 아니죠?!”“또 어디서 헛소리를 들은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구연범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곁에 앉았다.“새 작품 OST 쪽에서 재촉이 심해 그걸 챙기느라 정신이 없는 거겠지. 아직 촬영도 안 들어갔는데 뭘 그렇게 서둘러.”유선미는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그럼 그렇다고 말을 해줘야죠. 저 방금 아래층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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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그 한마디가 마치 벌집을 건드린 듯 사무실 안 분위기가 잔뜩 들끓었다. 사람들이 너도나도 분개한 얼굴로 서인아를 노려보며 유선미의 편을 들었다.“진짜 너무하네요. 선미 씨가 웃으면서 인사하는데 갑자기 때리는 게 어디 있어요. 제정신이 아니에요.”“서인아는 이제 끝났어요. 회사 윗선에서도 별로 안 좋아하잖아요. 선미 씨 뒤에는 배경도 있는데 자기가 뭐라고 감히 손을 대요, 쯧쯧!”“전에 서인아가 송유진 씨를 좋아해서 선미 씨랑 자주 부딪쳤다는 말을 들었어요. 사실인가 보네요.”“얼굴 하나는 끝내주게 생겼는데, 그걸로 잘해 먹을 생각은 안 하고 왜 이렇게 싹수없이 구는 거죠?”...서인아는 이런 소문을 들을 기분이 아니었다. 발길을 옮겨 그대로 지나가려 하자, 유선미의 매니저가 막아서며 소리쳤다.“가지 마요! 선미 언니한테 사과부터 해요!”키가 170cm를 훌쩍 넘는 서인아는 여자들 사이에서도 상당히 큰 편이었다.그녀는 매니저를 쓱 내려다보고는 냉랭하게 말했다.“비켜요.”매니저는 서인아의 눈빛에 겁이 났는지 뒤로 물러서려다가, 뒤에서 유선미가 지켜보는 게 신경 쓰이는지 머뭇거렸다. 그녀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채 꼼짝 못 했다.서인아는 매니저 따위와 실랑이할 시간이 없었다. 오늘은 계약 해지 문제부터 처리하는 게 우선이었고, 이런 자잘한 일은 나중에 얼마든지 따질 기회가 있을 것이다.그녀는 몸을 비켜 매니저를 지나치고는 구연범을 찾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두 발짝 정도 걸었을 때 또다시 앞길이 가로막혔다.이번에는 유선미 본인이 나섰다.유선미는 서인아의 앞에서 고개를 치켜들었다. 머리카락 뒤에 가려져 있던 얼굴도 따라서 드러났다. 볼은 선명한 손바닥 자국을 따라 부어 있었고, 입가도 터져서 피가 맺혀 있었다.“인아야, 네가 날 싫어하는 건 알지만...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니야?”유선미는 목소리를 떨며 처연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딱 봐도 가련해 보였지만, 그 눈빛에 깃든 분노까지는 가릴 수 없었다.마침 그때 구연범이 그 현장을 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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