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내 길가에 개량 한복 차림으로 휠체어에 앉아 있는 노인을 발견했다.꼿꼿하던 몸매는 어느새 구부정했고, 희끗희끗한 구레나룻을 보는 순간 코끝이 시큰하면서 눈물이 흘러내렸다.거동이 불편한 탓에 산에만 있던 할아버지가 그녀를 데리러 직접 오다니!한편, 서청환은 이번에도 속은 줄 알고 칠칠하지 못한 손자를 욕하느라 바빴다. 역시나 손녀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빽빽한 사람들 틈에서 자칫 놓칠세라 눈동자를 빠르게 굴렸다.곧이어 누군가 그의 품에 뛰어들었다.“할아버지!”서청환은 노안경을 고쳐 쓰더니 고개를 숙여 내려다보았다.모자를 착용한 여자가 허벅지에 엎드린 채 나지막이 흐느끼고 있었다.희미하던 눈동자에 금세 생기가 감돌았고, 그동안 웃을 일이 없던 얼굴에 마침내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그는 손을 들어 서인아의 등을 토닥였고, 감격에 겨운 나머지 목소리마저 떨렸다.“어서 와.”...서씨 고택은 해성 외곽의 산속에 있다. 한쪽은 바다를, 나머지는 번화한 도심을 마주했기에 산꼭대기에서 가장 번화한 지역의 아름다운 야경이 한눈에 들어왔다.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풍경이라고 해도 평소에 감히 접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해성 주민들에게 이곳이 수년 전부터 사유지가 되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산으로 향하는 세 개의 등산로는 검문소가 따로 있으며, 경호원들이 24시간 교대로 감시했다.이때, 검은색 차량 세 대가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천천히 달렸다.가운데 있는 리무진 안에서 서인아는 서청환의 팔짱을 끼고 어깨에 살포시 기대었다.“넌 양심도 없어? 어떻게 집을 떠나고 한 번도 얼굴을 비추지 않냐? 이번에 네 오빠가 찾아갔으니 망정이지, 혼자서 모든 걸 감당하려고 했던 거야?”서인아는 미안한 기색이 역력했다.“죄송해요. 사실 매년 몰래 돌아왔는데 단지...”서청환은 안쓰러운 얼굴로 서인아의 손등을 토닥였다.“다 알고 있어. 우리 착한 귀염둥이, 할아버지는 네 탓 하는 게 아니라 걱정되었을 뿐이야. 바보, 하필이면 하성 같은 코딱지만 한 곳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