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지울 수 없는 상처와 그 잔향: Chapter 11 - Chapter 20

30 Chapters

제11화

도준이 도와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그는 갑자기 내 허리를 감싸며 미소를 지었다. “그날 밤 내가 좀 과격했지? 몸은 좀 괜찮아?” 도준의 얼굴에 아련한 미소가 번졌고, 목소리는 촉촉하게 스며드는 듯한 부드러움이 있었다. 솔직히 잘생긴 남자가 이런 식으로 나를 바라보며 다정하게 말을 거니, 순간적으로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러나 그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은 순간, 나는 얼굴이 화끈거리며 붉어졌다. ‘그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말하다니.’ “이... 이제 괜찮아.” 나는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시선을 피했다. 도준의 깊고도 아득한 눈동자를 마주하기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다음엔 아프지 않도록 더 조심할게.” 도준은 손을 들어 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다정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의 손길이 닿자 나는 저도 모르게 온몸에 긴장이 스며들었다. 그리고 곧 얼굴이 붉어지고 말았다. 방금 다음번이라고 말하다니? 나는 이미 첫 경험을 줬는데 다음번을 멋대로 말하는 건가? 나는 속으로 도준을 욕했지만 민우와 예주 앞이기에 최대한 행복한 척을 해야 했다. 곧 멀리 서 있는 민우의 얼굴이 굳어지는 걸 볼 수 있었다. 그의 시선에는 화가 서려 있었다. 예주도 내가 도준의 품에 기대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고윤슬, 네가 말한 남자가 바로 이 사람이라고?” 도준은 재력이나 외모 모든 면에서 민우를 압도하는 사람이었다. 예주는 도준의 정체는 모르지만 그의 기품이 민우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왜? 허민우를 유혹한 게 후회되기라도 한 거야?” 나는 입가에 비웃음을 머금으며 차가운 눈길로 예주를 쏘아보았다. “변 대표님.” 민우는 얼굴이 굳어지더니 도준에게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 “허 팀장, 오늘은 아주 시끌벅적하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도준은 민우를 무심히 쳐다보며 담담하게 물었다. 민우는 내 쪽을 힐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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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왜 나를 말리는 거야? 내가 한 말은 사실이잖아. 나는 확신해, 고윤슬은 아직도 너를 사랑하고 있을 거야. 그래서 그냥 아무 남자나 데려와서 남자친구 행세를 한 거라고!” “진예주! 그만하라고!” 예주의 말이 끝나자마자 민우가 화난 목소리로 그녀를 막아섰다. “허민우, 왜 나한테 소리를 질러? 설마 네 마음속에 아직도 윤슬이 남아 있는 거야? 이제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거야?” 예주는 금세 눈물을 글썽이며 마치 상처라도 받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예주의 그 가엾은 표정을 보자 나는 입가에 비웃음을 띄웠다. 예주는 늘 자신을 불쌍하게 보이도록 꾸며내는 데 능숙했다. 아마 민우도 그런 모습에 넘어가 버렸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남자들은 대부분 연약해 보이는 여자를 좋아하지만 나는 그런 여자가 아니었다. “허 팀장, 여자 보는 안목을 좀 높여야 할 것 같네.” 도준은 내 허리에서 손을 떼고 민우에게 다가가 예주를 힐끗 쳐다보더니 조소 어린 말투로 말했다. 과묵해 보이는 도준이 이렇게 직설적이고 날카로운 말을 하다니. 민우의 얼굴이 금세 굳어졌다. 그의 당황스러운 표정을 보자 나는 마음이 통쾌해졌다. “변 대표님, 저는 다른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체면을 중요하게 여기는 민우는 예주의 무례한 행동이 얼굴에 먹칠이 된 듯 급히 도준에게 인사를 건넨 뒤, 예주의 팔을 잡아채며 자리를 떠났다. “봤지? 우리 윤슬이가 아무 남자나 데려와도 저 바람둥이보다 나아!” 그들이 떠날 때, 시정은 마지막 한마디로 민우를 비난했다. 그들이 완전히 사라지자, 나는 더는 미소를 유지할 수 없었다. 미소는 점점 사라졌고, 나는 도준을 힐끗 보며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아까 도와줘서 고마워요.” “할 말이 좀 있으니까 친구 먼저 돌려보내.” 도준은 시정을 잠깐 쳐다보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나를 향해 말했다. “저희 사이에 할 얘기는 없는 것 같은데요?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어쩐지 나는 도준의 깊고 차가운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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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너와 허민우는 무슨 관계지?” 도준은 드디어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마치 나를 추궁하는 듯한 기색이 가득했다. ‘허민우’ 세 글자를 듣자 가슴이 찌릿했지만, 가장 힘든 시기를 지나온 나로선 이제 그 아픔을 잘 숨길 수 있었다.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그냥 남이죠.” 예전에는 민우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고, 평생을 함께할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지금 그저 남일 뿐이다. “고윤슬, 똑바로 말해! 내가 그 말을 믿을 거라고 생각해?” 그의 눈빛이 차가워지며 목소리에도 화가 실렸다. 나는 깜짝 놀랐다. ‘어떻게 내 이름을 알고 있는 거지? 내가 이름을 말한 적이 있었던가?’ “내 이름을 어떻게 아는 거죠? 제가 말한 적 있었나요?” 나는 그 깊고 매혹적인 눈동자를 올려다보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사람 하나 조사하는 게 그렇게 어려울 것 같아? 게다가 방금 허민우 옆에 있던 여자도 네 이름을 불렀잖아.” 도준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마치 어리석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며, 낮고 매력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저, 저는 이만 가볼게요. 오늘 만난 건 우연일 뿐이에요. 아까 도와줘서 고마웠어요.” 나는 그 말을 남기고 돌아서려 했지만, 도준은 다시 나를 벽으로 몰아세웠다. 그리고 두 팔을 내 머리 위에 올려 벽을 짚고는 몸을 내 쪽으로 가까이 밀착시켰다. 그와 이렇게 가깝게 마주하니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게 느껴졌다. 도준의 얼굴이 이렇게 가까이에 있는 상황에서 아무런 감정도 없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나는 민우와 사귄 7년 동안 다른 남자와 거리를 두며 살아왔기에 다른 남자와 가까이하자 너무도 어색하고 불편했다. “그냥 가려는 거야?” 도준은 천천히 내게 더 다가오며 낮고 매혹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심장을 쿵쿵 울리게 했다. “지,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도준이 점점 다가오자 나는 숨조차 내쉴 수가 없었다. “말해, 지금 나랑 밀당이라도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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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시정의 끈질긴 질문에 마침내 나는 그날 밤 나와 하룻밤을 보낸 남자가 바로 도준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윤슬아, 난 변도준이라는 남자 아주 괜찮아 보이던데. 그런 남자랑 만나는 게 허민우 그놈과 만나는 것보다 훨씬 나을 것 같아.”아마 나를 빨리 결별의 아픔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어서인지, 시정은 나에게 엉뚱한 조언을 건네기 시작했다. 나는 무력하게 고개를 저으며 속으로 그녀의 상상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나와 도준은 그날 밤의 실수 외에는 아무런 사이도 아니었다. 우리는 완전히 다른 세상 사람이었다. 도준은 발을 한 번 구르면 A시 전체가 뒤흔들릴 정도로 큰 세력을 가진 사람이다. 그의 사업은 전국에 걸쳐 있으며, 겉으로는 조용히 지내지만 모두 그가 엄청난 거물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나와 변도준은 절대 그럴 일이 없을 테니, 괜히 엉뚱한 생각은 하지 마.” 나는 이 한마디를 남기고 방으로 들어가 쉬려 했다. “그 남자, 허민우의 직속 상사라던데. 너 허민우가 변도준을 보고 얼마나 쫄았는지 봤지? 마치 쥐가 고양이를 본 것처럼 기가 죽었던데. 네가 변도준의 여자가 된다면 얼마나 통쾌하겠어.” 나는 시정의 말에 발걸음을 잠시 멈췄다. 솔직히 잠깐 마음이 흔들린 건 사실이었다. 나도 민우에게 복수하고 싶었다. 예주와 함께 있는 그의 모습을 보니 분노가 치밀었다. 그러나 그 생각도 잠시뿐이었다. 나와 도준은 아예 만날 일이 없는 사람이었고, 그날 도준이가 왜 바에 있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아마 돈이 많아도 나름대로의 고민이 있었던 거겠지. 하지만 그것은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니었다. 지금 나에게 중요한 건 마음을 추스르고 스스로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일자리를 찾는 것이었다. 원래 나는 민우의 회사와는 반대편에 있는 곳에서 일하고 있었다. 게다가 나는 결혼 후에 신혼집과 가까운 곳에서 새 직장을 찾기 위해 원래 직장을 그만둔 참이었다. 그러다 결국 결혼도 못 하고, 직장도 잃어버린 꼴이 되어버렸다.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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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도준이 설립한 회사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광고 회사는 그의 여러 부업 중 하나일 뿐이다. 그의 수많은 회사 중, 하필 이곳에서 그를 만날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지금 내 목표는 대기업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고 커리어를 쌓는 것이다. 더 이상 이렇게 무너질 수는 없었고 나의 꿈을 위해 노력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나에게는 경력과 실력이 모두 있었기에 보통 회사라면 합격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할 수 있었지만, JS그룹만큼은 달랐다. JS그룹은 직원 복지도 뛰어났기에, 그만큼 입사 기준도 까다로웠다. 면접에서 떨어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면접을 마치고 회사를 나올 때까지도, 회사 규모에 압도되어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JS그룹은 수천 명의 직원이 일하는 어마어마한 대기업이었다. 곧 도준의 얼굴이 다시 떠올랐다. 아직 서른 즈음의 젊은 나이에 이렇게 많은 회사를 소유한 것도 모자라, 이 정도 규모의 회사는 그저 그의 여러 사업 중 하나라니. 도준은 내가 평생 본 사람 중 가장 젊은 데다가 돈이 많은 남자가 분명했다. 물론, 도준이 가진 것들은 나와 아무 상관이 없었다. 나는 단지 JS그룹에 성공적으로 입사할 수만 있으면 된다. 나는 혼자 길을 걸으며 마음속으로 면접에 꼭 합격하길 간절히 기도했다. 한참이 지난 후, 갑자기 뒤에서 자동차 경적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짜증이 치밀어 올라서 눈살을 찌푸렸다. 누가 뒤에서 계속 경적을 울린다면 기분 나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고윤슬!” 뒤에서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에 나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리고 들리지 않는 척 무시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허민우는 더 이상 한 순간조차도 보고 싶지 않았다. “윤슬아, 거기 서!” 민우는 성큼성큼 다가와 내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불만에 찬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허민우, 왜 길을 막고 그래?” 나는 그를 차갑게 올려다보며 냉담하게 말했다. “할 말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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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아마 내 태도가 민우를 화나게 만든 것인지, 그는 나를 노려보며 분노와 비난이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허민우, 네가 무슨 자격으로 날 욕하는 거지? 이 쓰레기 자식아, 넌 어떻게 신혼집에서 나와 가장 친한 친구랑 잘 생각을 했던 거지? 네가 한 짓은 모두 잊고 이제 와서 나를 욕하려는 거야? 그럼 너는 다른 여자와 몸을 섞었으면서 나는 다른 남자를 만나면 안되는 거야?” 나는 민우를 향해 분노를 터뜨렸다. 더 이상 주변 사람들이 듣든 말든 상관없었다. 내 외침에 민우의 얼굴이 어색하게 굳어지는 게 똑똑히 보였다. “네가 나와 예주 사이의 일로 상처를 받은 건 알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도 아무 남자와 함부로 몸을 섞는 건 좀 아니잖아. 변도준이 어떤 사람인지 알기나 한 거야?” 민우의 목소리가 조금 온화해졌지만, 여전히 나를 나무라는 듯했다. “변도준이 어떤 사람인지 너한테서 설명들을 생각은 없어. 허민우, 우린 이미 끝났어. 내가 누구와 함께하든 이제 너와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야. 우린 앞으로 모르는 사이니까 더 이상 내 일에 간섭하려 들지 마. 그리고 두 사람 오래오래 행복하길 바래!” 나는 차가운 말투로 말하며, 마음속의 분노를 억누르고 민우를 피해 걸어갔다. 민우는 더 이상 쫓아오지 않았다. 그가 다시 그런 식으로 나를 비난했다면, 나는 주저 없이 그의 뺨을 때려줄 생각이었다. 그 정도는 민우가 충분히 자초한 일이다. 그러니 쫓아오지 않은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좋았던 기분이 허민우 때문에 모두 망쳐져 버렸다. 최근에 너무 기분이 저기압이었기에, 나는 오늘 밤 제대로 스트레스를 풀기로 결심했다. 나는 마트에서 맥주와 간식 한가득 사 들고 서강 대교로 향했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나는 시정에게 전화를 걸어 함께 술을 마셔달라고 부탁했지만, 그녀는 아직 야근 중이라 퇴근 후에야 올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혼자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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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내가 목격한 건, 서현이 울먹이며 도준의 품에 안기려는 장면이었다. 여자가 이렇게까지 애원하면 대부분의 남자는 마음이 약해질 법도 하지 않나? 게다가 서현은 엄청난 미모를 자랑하는 톱스타다. 그녀와 만나고 싶어하는 남자들은 아마 줄을 섰을 것이다. 그러니 도준도 이제 마음이 풀리지 않았을까 생각했다.그러나 상황은 내 예상과 전혀 달랐다. 도준은 서현을 거의 무정하게 밀어냈고 그의 얼굴은 여전히 차가운 빛을 띠고 있었다. “방금도 말했지만, 우리 관계는 이미 끝났어. 똑같은 말을 세 번이나 반복하게 하지 마.” 도준은 차가운 눈빛으로 서현을 바라보며 미소 하나 없이 냉정하게 말했다. ‘정말 매정한 남자네.’ 여자를 차버리는 데 전혀 주저하지도 않고, 마치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대담한 태도였다. ‘역시 변도준이 좋은 사람일 리 없지.’ 나는 속으로 그를 나쁜 놈으로 여기며 도준에게도 민우와 같은 딱지를 붙여주었다. 생각해보면 민우 같은 작은 부서의 팀장조차도 바람을 피우는데, 하물며 돈과 권력을 모두 가진 도준 같은 남자라곤 뭐가 다르겠는가? 다행히도 난 민우와 결혼 전까지 관계를 맺지 않기로 했었기에 조금이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반면 도준에게 여자란 옷을 갈아입듯이 쉽게 바꿀 수 있는 상대일 것이다.“변도준,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렇게 잔인할 수 있어?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네 곁에 있었는데... 정말 이렇게 매정하게 날 버리려는 거야? 최소한 이유라도 말해줘야 할 거 아냐.” 서현은 마침내 눈물을 터뜨리며 애원하기 시작했다. 여자가 보아도 그 모습이 매우 애처로웠다. 하물며 상대가 남자라면 서현의 눈물을 보고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리가 없을 것이다.“정말 이유를 말해줘야 이해하겠어? 문서현, 난 네 체면을 조금이라도 지켜주려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거야.” 도준은 차가운 눈빛으로 서현을 쳐다보며 매서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난 정말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서현은 그의 말에 당혹스러운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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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도준은 확고하게 서현을 내치려는 듯했다. 하긴, 도준 같이 돈도 권력도 있는 남자가 바람핀 여자를 받아줄 리가 없었다. 나는 이제야 도준이 왜 그렇게 매정하게 굴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나와 같은 상황이었다. 나도 나를 배신한 사람은 다시 곁에 둘 수 없었다. 민우가 나를 배신한 순간, 아무리 가슴이 아프더라도 나는 그와의 관계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도준 같은 남자라면 그 마음은 오죽할까.“도준아, 정말 나를 용서해줄 수 없는 거야?” 서현의 얼굴에는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애절한 그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지만, 방금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나는 이제 서현에게 조금의 동정심도 남아 있지 않았다. 모두 그녀가 자초한 일이라는 생각만 들었다.“꺼져! 내 마음이 바뀌기 전에 사라지는 게 좋을 거야!” 도준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거친 말투로 냉혹하게 내뱉었다. 그의 그 한마디에 서현의 온몸이 떨리는 게 눈에 보였다. 계속 설명하고 싶은 듯한 얼굴이었지만, 도준의 말에 더 이상 용기가 나지 않는 듯한 표정이었다. 잠시 망설이던 서현은 결국 울며 돌아섰다. 그녀가 떠나자 그제야 나는 맥주를 한 모금 들이키며 아무것도 보지 못한 듯 행동했다. 나는 도준이 곧 자리를 떠날 거라 생각했지만, 내 생각이 틀렸다. 내가 은밀히 숨어 있었던 게 엄청 티가 났던 것이다. “아까부터 재밌게 구경했을 텐데, 이제 구경 끝났이니 할 말 없어?” 도준의 낮고 매력적인 목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다. 나는 깜짝 놀라며 주변을 둘러봤지만, 주변엔 나 혼자뿐이었다. 나는 나름 잘 숨었다고 생각했지만, 도준은 이미 내가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 도준을 너무 쉽게 분게 분명했다.내가 고개를 돌리자 도준은 어두운 눈빛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고, 눈빛 속엔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나한테 하신 말씀이세요?” 나는 멋쩍게 웃으며 도준을 쳐다보았다. 사실 몰래 엿듣는 건 칭찬받을 일이 아니기에 조금 민망한 기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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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그게... 문서현 씨 같은 미녀를 그렇게 내치는 건 좀 아쉽지 않아요? 만약 조금이라도 미련이 남았다면 한 번쯤 용서해줘도 되지 않을까요?” 보통 사람들은 싸움을 말릴지언정 갈라서라고는 하지 않는다. 물론 나는 절대 내 남자의 배신을 용납할 수 없겠지만, 도준의 행동이 옳다고 말하는 것도 별로 내키지 않았다. 괜히 오해를 살 수도 있으니 조심하는 게 나았다.그래서 나는 용서해주는 게 나을 거라고 말했다.“넌 내가 바람 핀 여자를 용서할 거라고 생각해?” 내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도준의 얼굴이 서늘하게 굳어지며 그의 시선에 노기가 서렸다. 나도 애써 미소 지으며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속으론 이렇게 생각했다. ‘자기 연애사를 왜 나한테까지 묻는 거야? 나는 그냥 우연히 지나가다 들은 것뿐인데, 굳이 이렇게 날 곤란하게 해야겠어?’“그리고 나와 문서현은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이가 아냐. 우리는 서로 필요한 걸 얻기 위해 시작한 관계였을 뿐이야. 문서현이 원하는 건 명예와 돈이었고, 내가 원하는 건 그저 욕구를 해결하는 것뿐이야.” 도준은 차가운 시선으로 날 잠깐 쳐다보더니, 무미건조하게 말했다.‘그저 욕구를 해결하는 것뿐이라니...’ ‘이 남자, 정말 직설적이다 못해 너무 대놓고 솔직하게 말하고 있잖아.’“저기, 문서현 씨와의 관계를 저한테 굳이 설명하실 필요는 없어요. 이 일은 비밀로 할 테니 절대 어디 가서 함부로 말하지 않을게요.” 난 도준이가 왜 나한테 이렇게까지 설명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쨌든 이번은 고작 그와의 세 번째 대화였다. 나와 변도준은 그저 하룻밤을 함께한 낯선 사이일 뿐이다.내 말에 도준의 미간이 찌푸려지더니, 뭔가 불쾌한 기색이 감돌았다. ‘내가 또 뭘 잘못 말한 걸까?’하지만 직감적으로 이 남자가 위험하다는 느낌이 들어 나는 차라리 침묵을 지키기로 했다. 우리는 꽤 오랫동안 어색한 침묵 속에 잠겨 있었다. 나는 도준이 옆에 있는 동안 내내 불편해 죽을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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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나는 기분이 언짢았기에 화가 난 듯이 도준을 노려보았다. ‘이 남자는 대체 뭘 하려는 걸까? 난 정말 우연히 듣게 된 것뿐인데, 날 이렇게 겁줄 필요가 있나?’ “널 원해.” 나는 화가 난 마음에 그를 쏘아보았지만, 도준은 전혀 화난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얼굴에 묘한 웃음기를 띠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도준은 원래 잘생긴 데다가 차가운 인상이었는데, 이렇게 미소까지 짓고 있으니 나는 넋을 놓고 그의 얼굴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나는 한 번도 누군가의 얼굴을 보고 감탄한 적 없었다. 그런데 도준은 달랐다. 그가 가진 압도적인 외모와 기품은 본능적으로 내 마음을 끌어당겼다. 도준의 매력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순간, 갑자기 그는 손을 내밀어 내 가슴을 만지기 시작했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들어 그를 노려보았다. “당신 미쳤어요? 당장 이거 놔요! 안 그럼 소리 지를 거예요!” 나는 화를 내며 그를 노려봤다. 그의 행동은 정말 선을 넘었기에 나는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본래 보수적인 성향이 있는 편이라 그의 행동이 나를 불쾌하게 했다. “이미 한 번 잤으면서 이제 와서 새침한 척이라니. 고윤슬, 너 이러는 거 전혀 재미없어.” 도준은 내가 필사적으로 반항하는 모습을 보자 화가 난 건지, 눈빛이 조금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수많은 여자들이 그에게 달려들려고 안달이 났던 탓에, 도준은 나도 마찬가지로 그와의 잠자리를 원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난 달랐다. 난 도준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고, 그날 밤 일은 단지 술에 취해 잠시 충동적으로 저지른 일에 불과했다.“난 당신한테 관심 없어요! 변도준 씨, 당장 놔요! 전 집에 갈 겁니다.” 나는 도준을 노려보며 저항을 멈췄다. 난 그가 적어도 밖에서는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데려다줄게.” 도준은 말을 내뱉고는 내가 반항을 하기도 전에 바로 내 손목을 잡아채 그의 차 쪽으로 이끌었다. 순간 나는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고 본능적으로 벗어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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