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준은 확고하게 서현을 내치려는 듯했다. 하긴, 도준 같이 돈도 권력도 있는 남자가 바람핀 여자를 받아줄 리가 없었다. 나는 이제야 도준이 왜 그렇게 매정하게 굴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나와 같은 상황이었다. 나도 나를 배신한 사람은 다시 곁에 둘 수 없었다. 민우가 나를 배신한 순간, 아무리 가슴이 아프더라도 나는 그와의 관계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도준 같은 남자라면 그 마음은 오죽할까.“도준아, 정말 나를 용서해줄 수 없는 거야?” 서현의 얼굴에는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애절한 그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지만, 방금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나는 이제 서현에게 조금의 동정심도 남아 있지 않았다. 모두 그녀가 자초한 일이라는 생각만 들었다.“꺼져! 내 마음이 바뀌기 전에 사라지는 게 좋을 거야!” 도준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거친 말투로 냉혹하게 내뱉었다. 그의 그 한마디에 서현의 온몸이 떨리는 게 눈에 보였다. 계속 설명하고 싶은 듯한 얼굴이었지만, 도준의 말에 더 이상 용기가 나지 않는 듯한 표정이었다. 잠시 망설이던 서현은 결국 울며 돌아섰다. 그녀가 떠나자 그제야 나는 맥주를 한 모금 들이키며 아무것도 보지 못한 듯 행동했다. 나는 도준이 곧 자리를 떠날 거라 생각했지만, 내 생각이 틀렸다. 내가 은밀히 숨어 있었던 게 엄청 티가 났던 것이다. “아까부터 재밌게 구경했을 텐데, 이제 구경 끝났이니 할 말 없어?” 도준의 낮고 매력적인 목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다. 나는 깜짝 놀라며 주변을 둘러봤지만, 주변엔 나 혼자뿐이었다. 나는 나름 잘 숨었다고 생각했지만, 도준은 이미 내가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 도준을 너무 쉽게 분게 분명했다.내가 고개를 돌리자 도준은 어두운 눈빛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고, 눈빛 속엔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나한테 하신 말씀이세요?” 나는 멋쩍게 웃으며 도준을 쳐다보았다. 사실 몰래 엿듣는 건 칭찬받을 일이 아니기에 조금 민망한 기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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