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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1화

더럽히다라는 단어가 최희연의 머릿속에 떠올랐다.왕자현은 세상에 둘도 없는 완벽한 남자이니 그에 어울리는 완벽한 여자를 만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 최희연은 머리가 복잡했다. 그녀는 자신이 왕자현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자책했고 단 한 번도 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식사가 끝난 후, 왕자현은 거실에 앉아 신문을 보았고 최희연은 방으로 올라가 샤워했다. 조금 있다가 벌어질 일에 대비해 그녀는 특별히 얇은 시스루 잠옷을 입고 향수까지 뿌리며 만반의 준비를 했다. 욕실을 나오자 왕자현은 침대맡에 앉아 그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깊고도 뜨거운 그의 눈빛은 최희연의 심장을 요동치게 했다.“씻을래요?”왕자현는 고개를 끄덕이며 욕실로 들어갔다.후딱 씻고 나온 왕자현은 몸에 걸친 하얀색 커다란 로브와 함께 더욱 유혹적인 모습이었다.최희연은 물었다.“자현 씨 잠옷은 다 이런 유형이요?”왕자현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맞아, 다 어머니께서 직접 만드신 거야.”“너무 대단하시네요.”최희연은 연신 칭찬했다.“어머니께서 어렸을 때부터 자수를 배우셨기도 하고 옷 만드는 것을 좋아하셔서 나랑 동생, 그리고 조카가 입는 옷도 다 어머니께서 직접 만드신 거예요. 이 고풍 잠옷은 어머니가 고급 실크로 만든 거라서 피부에 닿는 촉감이 아주 좋아. 여자 거도 있으니까 내가 다음에 가져다줄게.”평소와 달리 왕자현은 마치 최희연은 달래기라도 하듯 설명을 길게 늘어놓았다. “네 잠옷 치마도 너무 이쁘네.” 왕자현이 잠옷이 예쁘다고 칭찬하자 최희연은 민망함에 이불 안으로 쏙 숨었다.“쑥스러워?”왕자현은 그런 희연이 귀여운 듯 웃으면서 물었고 최희연은 심장이 쿵쾅대는 바람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왕자현은 가까이 다가와 침대맡에 걸터앉았다. 그의 매너 있는 행동 하나하나는 아마도 최희연의 사인을 기다리는 듯했다.최희연은 이불속으로 살며시 두껍고도 차가운 왕자현의 손을 잡자 그도 사인에 응하는 듯 그녀의 손을 꽉 잡더니 고개를 돌려 그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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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2화

나는 고현성이 저지른 일을 생각하다가 문득 윤아가 떠올라 석지훈에게 해명했다.“윤아가 그랬나 봐요. 걔가 장난 많이 치잖아요. 품에 안겨서 목이나 얼굴을 물어도 가만히 내버려뒀더니 이렇게 자리가 남았네요. 지훈 씨가 먼저 말하지 않았으면 저도 모를뻔했어요.”진정성이 담긴 나의 해명에 석지훈은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조금 전 안색이 안 좋던데 뭐 긴장되는 일 있어?”하마터면 지훈의 말에 넘어갈 뻔했다가 나는 도리머리를 지으며 말했다.“긴장하지 않았는데.”석지훈은 내 머리를 콩하고 튕겼고 나는 그의 볼과 턱에 뽀뽀 세례를 했다.“뭐 하는 거야?”석지훈은 웃으며 물었다.지금 이 상황에 이런 질문 실화?잠에서 깬 윤아가 석지훈의 몸에 기어올라 타 아빠라고 부르자 나는 민망함에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석지훈은 윤아를 품에 안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우리 애기 배고파요?”저녁을 배불리 먹고 잔지 반 시간밖에 안 되니 배고플 리는 없었지만 윤아는 계속 아빠를 불러댔다.석지훈은 침대에서 일어나며 한 손으론 윤아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론 옷을 정리했다.그의 모습은 남성미가 흘러넘쳤다.나는 그의 벨트를 해준 뒤 뒤따라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석지훈은 윤아를 안은 채 식탁에 앉아 저녁밥을 먹고 있었고 윤아는 그의 품에 얌전히 안겨 있었다.저녁 식사가 끝난 후, 설거지가 귀찮아진 나는 싱크대에 그릇들을 올려놓은 뒤 석지훈과 함께 별장 주변에서 산책했다. 셰퍼드 두 마리도 뒤에서 따라오며 우리를 지켜주었다.나는 석지훈의 어깨에 머리를 대고 있는 윤아에게 웃기는 표정을 하며 장난치자 윤아는 깔깔대며 웃었다. 석지훈도 고개를 돌려보고는 웃으며 말했다.“윤아가 네가 웃긴가 봐.”나는 석지훈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내가 어디가 웃긴데요?”“엄마가 이뻐서 그런 거겠지?”석지훈은 은근슬쩍 또 이쁘다고 칭찬을 흘렸다.“윤아가 아빠도 멋지다고 칭찬하는데요.”석지훈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사람 기분 좋게 하는 데 뭐가 있다니까.”“자경 오빠도 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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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3화

최희연은 내 눈을 피하고는 석지훈한테 가서 윤아를 안았다.최희연의 품에 안긴 윤아는 벗어나려고 용을 썼고 왕자현은 보기 안타까웠는지 자신이 안겠다고 나섰다.신기하게도 왕자현의 품에 얌전히 안겨있는 윤아를 보고 최희연은 의아했다.“흥, 남자가 더 좋은가 봐.”“그런 거 같아. 지훈 씨가 안으면 얌전히 말도 잘 듣는데 내가 안으면 별로 안 좋아해. 잘생긴 사람이 좋은가 봐. 쪼끄만 애기가 벌써 이러면 어떡하지?”나는 속으로 걱정했지만 최희연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뭐 어때? 주위에 잘 생기고 멋진 아저씨들이 많으면 우리 윤아 남자 보는 눈도 좋아지고 얼마나 좋아. 나중에 내가 엄청 멋진 사윗감을 소개해 줄게.”신이 나서 말하는 최희연의 모습도 나는 절로 웃음이 났다.“장난하지 마.”최희연은 또 뭐가 생각났는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우리 고일 때 처음 만났는데 네가 얼마 안 돼서 학교를 그만뒀잖아. 그때 반에 엄청 잘생긴 남학생 한 명이 널 엄청 좋아했잖아. 나한테 몇 번이고 네 연락처를 물어봤는데 내가 처음에는 안 알려줬다가 나중에는 안타까워서 알려줬는데 너한테 연락 왔어?”“진짜로? 그때 모르는 번호로 자꾸 문자가 오긴 했었거든, 누구냐고 물어봐도 안 알려주더라고. 그 애였구나. 이젠 얼굴도 가물가물해.”밤이 조용해서 그런지 윤아가 말썽부리지 않아서 그런지 아니면 두 남자가 말없이 잠자코 있어 그런지 나와 희연은 옆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깜빡하고 어릴 적 옛이야기를 허물없이 꺼내기 시작했다.“예전에 진서준이 네가 좋다고 따라다닐 때 나한테 네가 뭘 좋아하냐고 물어본 적도 있어.”최희연은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 커다란 눈으로 말했다.“혹시 네가 걔한테 내가 아르마니 시계를 좋아한다고 말한 거야? 어쩐지 걔가 나한테 갑자기 그 브랜드 시계를 선물해 주더라고. 나중에 알게 됐는데 두 달 동안 알바해서 산 거래.”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걔가 너무 캐물어봐서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얘기했더니 그걸 기억하고 있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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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4화

나와 최희연은 사적인 얘기를 많이 나누곤 했는데 내용은 주로 과거 얘기였다. 하지만 이런 얘기들을 남들이 듣는 곳에서 하기엔 조금 낯부끄러운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특히 석지훈과 왕자현 앞에서 말이다. 두 사람의 안색이 어두운 것을 보아하니 우리 둘은 사고를 친 것이 분명함을 깨달았다.입이 방정이지.나와 최희연의 과거일, 이 두 남자가 나타나기 전 까마득한 때의 일이었기에 나는 이 두 사람이 삐친 건지 아니면 질투하는 건지 긴가민가해졌다. 아마도 내심 신경이 쓰이는 거겠지?희연은 재빨리 사과했다.“수아가 그냥 말해본 거예요. 난 저런 얘기를 한 기억도 없어요. 이제 가요. 저 앞쪽에 은방울꽃이 핀 곳이 있대요. 엄청 예쁜가 봐요.”저녁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것이 뻔했지만 나는 어색한 분위기를 되살려 보려고 바람 잡으며 말했다.“가봐요, 엄청 이쁠 것 같아요.”왕자현은 울음이 그치지 않은 윤아를 석지훈에게 넘겼고 석지훈은 윤아의 얼굴을 어루만져주면서 달래주었다. 왕자현은 팔짱을 꾀고 우리를 지켜보았다. 어디까지 연기하나 보려는 듯 말이다.애써 연기를 이어가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나는 바로 잘못을 인정했다.“미안해요, 우리가 잘못했어요.”왕자현은 최희연을 보면서 냉담하게 말했다.“감성적이고 예민하고 자존심도 세지만 사랑 앞에선 불도저 같은 사람이라고? 최희연, 널 어떻게 하면 좋을까?”“미안해요, 나 진짜로 그냥 해본 소리예요.”나는 안절부절못하며 석지훈에게 구원의 눈길을 보냈고 석지훈은 그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왕자현에게 꽃밭으로 가자고 얘기했다.그렇게 우리 네 사람은 윤아와 함께 꽃밭으로 향했다. 두 남자가 아이를 안고 앞쪽에서 걸어가고 있었다. 나와 희연은 뒤에서 터덜터덜 따라가며 서로를 위로했다.희연은 짜증 내며 말했다.“저 두 사람 지금 쿨한 척 아무렇지 않아 보여도 분명 이따가 집 돌아가면 본모습을 보일 거야. 우리를 무시하는 그게 벌인 거지. 특히 자현 씨랑 지훈 씨 성격이면 후덜덜…아, 네 말이 맞아. 아까 진유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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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5화

“난 아무 말도 안 했어.”“너 진짜 이러기야?”최희연과 나는 팔짱을 낀 채로 두 남자를 뒤따라가고 있었다.두 사람은 꽃밭에 도착해 멈춰 섰다. 밤바람이 서늘하게 불어와 우리의 몸을 어루만져 주었다.내가 지훈 씨를 부르려고 할 찰나, 왕자현이 갑자기 그에게 말을 건넸다.“지훈아, 전에 너 좋다고 쫓아다닌 여자들 많았어?”석지훈은 잠시 고민하더니 대답했다.“적지는 않은 것 같은데. 어릴 적부터 있었으니까. 근데 그때는 뭐 어리고 해서 신경 쓰지도 않았지. 그저 운성에 어떻게 돌아올지 그 고민만 했지.”왕자현은 계속해서 물었다.“이뻤어?”석지훈은 솔직하게 대답했다.“이뻤지. 외모에 자신이 없는 여자애는 엄두도 못 냈지. 내가 말수가 적어서 거리감 느껴지는 타입이니까.” 지훈도 되물었다.“넌 어땠어? 너도 너 좋다는 여자애 많지 않았어? 내가 기억하기론 우리가 금방 친해졌을 때 어떤 여자애 한 명이 맨날 너 좋다고 따라다녔던 것 같은데.”두 남장의 대화는 유치하기 그지없었고 나와 희연은 그들의 속셈을 똑똑히 알고 있었다.나는 낮은 목소리로 희연에게 물었다.“기분이 어때?”“내가 싫은 건 남도 싫겠지.”“우리 어떡하냐?” “각자 집에 돌아가서 달래야지 뭐 어쩌겠어.”나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최희연은 자현의 팔짱을 꼈고 자현은 그런 그녀를 의아한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오빠, 우리 이제 집에 가요.”희연은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꽃밭 보고 싶다며?””이제 집에 가요. 그리고 소원이 있으면 말만 해요. 내가 다 들어줄 테니까.”왕자현은 희연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결심이라도 한 듯 석지훈에게 말했다.“너무 늦었어. 희연이 피곤해하는 것 같아서 이제 돌아가야겠어.”왕자현의 팔짱을 끼고 유유히 떠나는 희연을 보고 나는 내심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역시 희연은 남자 꼬시기 고수였다.나는 웃으며 석지훈 가까이 다가가 윤아의 볼을 만지며 말했다.“윤아야, 아빠한테 집 가자고 하는 거 어때? 춥지 않아? 집에 가면 엄청 따뜻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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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6화

“아니요, 자주는 아니고 어쩌다 한 번씩 얘기하는 거죠 뭐.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참 신기한 일이 많은 것 같아요. 내가 어떻게 석씨 집안 사모님이 됐죠? 석지훈의 아내라니. 이렇게 잘생기고 매너 좋은 사람이 내 남편이라니 믿기지 않아요. 오빠, 나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봐요. 안 그러면 어떻게 오빠 같은 남자를 만날 수가 있을까요?”나의 특급칭찬에 석지훈도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나 기분 좋아지라고 하는 소리지? 네가 그러면 내가 그냥 넘어갈 것 같아? 둘만 있을 때면 몰라도 아까는 두 사람 너무 신나서 얘기했잖아. 너의 그 표정이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리거든. 희연 씨는 아주 대놓고 옛사랑 추억했잖아. 자현이 화가 날 수 밖에.”“내가 어떤 표정이었는데요?”나는 긴장하며 물었다.“이미 엎질러진 물이야. 두 사람 우리가 옆에 있는 것도 까먹고 신나서 얘기하는 거 보면 우리가 없을 때는 더 가관일게 틀림없어.”할 말을 잃은 듯한 표정을 한 석지훈은 꽤 낯선 느낌이었다. 최희연과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주제의 얘기를 자주 하지는 않았지만 찐친인만큼 전혀 안 하는 것도 아니었다. 생각에 잠긴 나를 보더니 석지훈은 갑자기 물었다.“혹시 나랑 자현이 얘기도 했어?”나는 화들짝 놀랐다.“뭐라고요?”석지훈은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거짓말할 필요 없어. 네 표정이 이미 다 말해줬으니까. 우리 얘기도 했지?”실제로 얘기를 나눈 적은 있지만 엄청 오래전의 일이기도 하고 얘기를 디테일하게 많이 나누지도 않았기에 나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무슨 말 하는 거예요?”이미 모든 걸 꿰뚫어 보았지만 석지훈은 더 캐묻지 않고 내 머리를 쓰담쓰담했다.“이제 집에 가자. 밖에 오래 있다가 감기 걸리겠다.”집에 돌아온 우리는 잠자기 전까지 한참 얘기를 나누다가 석지훈의 친아버지 얘기도 나누게 되었다.석지훈은 자기 친아버지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내가 누구냐고 묻자 그는 웃어넘기며 말했다.“몰라도 되는 사람이야. 오래전에 엄마가 해외로 도피시켜서 한국에 돌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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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7화

최희연이 사라진 건 한성범과 관계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는 근처에 살고 있었고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니까.최희연은 누군가에게 마취를 당해 납치되었고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는 텅 빈 커다란 방안에 혼자 갇혀있었다. 놀라운 것은 방안에 수영장도 있었는데 크지는 않지만 작지도 않은 수영장 한편에는 야경이 다 보이는 통창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키 큰 남자 한 명이 서 있었다. 최희연이 두려워하는 그 남자.“유겸 씨가 어떻게 여기...”뒤돌아선 남자의 표정은 차갑기 그지없었고 최희연이 알던 그 진유겸이랑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검은색 실크 로브와 깊게 파인 카라 사이로 근육질 몸매가 드러났다.그는 마치 먹이를 향해 다가가는 야수처럼 최희연에게로 서서히 걸어왔다.엄청난 위험을 느낀 최희연은 애써 진정하며 말했다.“지금 뭐 하는 거예요?”“너야말로 어젯밤에 뭘 했는지 곰곰이 생각해 봐.”진유겸은 매우 화가 나 있었고 속에서 열불이 끓어올랐다. 최희연이 어떻게 자신한테 그럴 수 있는지 이해가 안 갔고 생각할수록 서러움도 북받쳐 올랐다.진유겸은 주민솔에 관한 일에 대해서 자신이 잘못했음을 인정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짧은 사이에 모든 것이 바뀌어있을지는 상상도 못 했다.진유겸의 질투심과 소유욕이 얼마나 강한지를 알고 있는 최희연은 오늘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발생할 것 같아 진유겸에서 빌었다.“이러지 마요.”진유겸은 최희연을 수영장 안으로 밀쳤다.“더럽힌 몸이나 씻고 와.”물에 빠진 최희연은 온몸이 젖은 채 몸도 굳었다.그녀는 눈앞에 진유겸이 절대로 이대로 그만두지 않을 것이란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최희연도 어쩔 방도가 없었다.진유겸도 수영장으로 걸어 들어가자 최희연은 연신 빌었다.“이러지 말고 대화로 해결해요. 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잖아요?”진유겸의 말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차가웠다.“어젯밤, 단 한 순간이라도 날 위해 생각해 본 적 있어? 조금이라도 양심이 있다면 그때 내 전화를 받지 말았어야지. 어떻게 그렇게 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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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8화

내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최희연은 여전히 의식불명 상태였고 흠뻑 젖은 채 병실 문 앞에 서 있는 왕자현의 두 손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고 싶었지만 그를 더 자극하는 듯한 행동은 해서는 안 될듯하여 그냥 최희연 옆을 지켰다.앉은 지 몇 분 만에 진유겸에게서 문자가 왔다.[연수아 씨, 우리 만나서 얘기해요.]진유겸과 할 얘기라곤 최희연 얘기 말곤 없었다.나는 망설이다가 결국 만나기로 약속했다. 진유겸은 덴마크가 아닌 핀란드 에르크에 있었다. 약속한 저택에 도착했을 때 진유겸은 소파에 앉아 있었고 의사는 그의 피 흘리는 복부를 봉합하고 있었다. 창백한 얼굴은 핏기 없이 식은땀으로 가득했다.“어쩌다 이런 거예요?”침묵하던 그는 갑자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내가 졌어요. 졌어. 이젠 완전히 잃었다고요.”“희연에게 무슨 짓을 한 거예요? 왜 희연이가 아직도 깨어나지 않는 거예요? 왕자현 씨 손의 피는...”나는 숨을 삼켰다. “당신 상처는 또 뭐예요? 왕자현 씨가 그런 거예요?”왕자현은 부드러운 성격을 가진 사람이고 이런 극단적인 일을 벌일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사람이 진유겸을 칼로 찌른 건 분명 진유겸이 그를 궁지로 몰았을 것이고 그럴만한 일이라면 최희연과 연관된 일임이 분명했다.“희연이를 어떻게 했냐고요!”“내가 희연이를 다치게 했어. 나 때문이야.”최희연이 강에 뛰어든 걸까? 어젯밤 달콤한 시간을 보내야 했을 최희연과 왕자현 두 사람을 떠올리자 나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야 이 미친 새끼야!”치미는 분노에 몸이 떨리며 진유겸의 뺨을 후려쳤다. 그는 아무 말도 못 했다.“희연이더러 앞으로 어떡하라고요... 진유겸, 당신 잘 들어요. 희연이는 왕자현 와이프예요. 두 사람 결혼한 사이라고요. 안 그래도 자신한텐 과분한 인연이라고 자현 씨한테 다가가기조차 힘들어했는데... 가까워지려고 얼마나 조심 또 조심했는데... 어젯밤... 당신이 이런 짓을 벌이면 희연이가 뭐가 돼요.”어젯밤이란 말에 진유겸은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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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9화

진유겸이 갑자기 마음이 바뀐 걸까?나는 서류봉투를 정우에게 건네며 말했다.“잘 보관해.”병원으로 돌아왔을 때 최희연은 눈빛이 공허한 채로 깨어 있었고 왕자현은 보이지 않았다. “나 지금 진유겸 만나고 오는 길이야. 이젠 더 이상 네 앞에 나타나지 않겠대. 너 드디어 그 자식한테서 완전히 벗어났어.”진유겸의 이름을 들은 최희연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고 나는 그런 희연을 꼭 안아주며 위로했다.“미안해. 다시는 그 사람 언급 안 할게.”최희연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왕자현의 부재가 의아해 희연에게 묻고 싶었지만 상처를 건드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그만뒀다. 병원에서 두 시간 정도 안정을 취한 후 우리는 함께 별장으로 돌아왔다.집으로 돌아온 최희연은 방문을 걸어 잠그고 한참을 잤다. 혼자 있고 싶은 그 마음을 잘 알고 있기에 나는 희연에게 말을 걸지 않고 쉬게 놔뒀다.집으로 돌아오자 지훈 씨는 소파에서 책을 읽고 있었고 아이들은 발치에서 블록 놀이에 빠져있었다. 나는 지훈 씨 옆으로 다가가 앉으며 물었다.“자현 씨는 어디 있어요?”지훈 씨가 내 허리를 감싸안으며 말했다.“윤 비서 말로는 밖에서 술 마시고 있다는데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어.”“진유겸이 최희연을 강제 추행하려 했대요.”석지훈의 얼굴은 순식간에 굳었다.“자현 씨가 희연이를 버릴까 봐서 걱정이에요.”희연이네가 이혼하게 될까 봐 나는 너무 걱정되었다.“뭐라고 해줄 말이 없네. 남자로서 입장을 대변해보자면 자현이도 상처 많이 받았을 거야. 자기 여자를 지켜주지 못했다고 자책할 테니까. 하지만 그건 둘째고, 자기 여자가 다른 남자한테 그런 일을 당하면 기분 나쁘기 마련이지. 그런 걸 개의치 않을 정도로 그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야. 자현이도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할 거야.”“자현 씨가 희연이를 혐오할 거란 말이에요?”석지훈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저었다.“이런 일에는 머리가 복잡해지기 마련이지. 그런데 결국에는 희연 씨가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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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0화

석지훈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진유겸은 그렇게 쉽게 포기할 남자가 아니야. 뭔가 다른 결정을 내린 거일 수도 있어.”나는 의아해하며 물었다.“진유겸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에요?”“내가 갖지 못하면 부숴버리겠다는 생각을 가진 남자. 내가 아는 그는 그런 사람이야. 이번에 최희연을 놓아준 건 아마도 다른 계획이 있어서일 거야.”석지훈은 진유겸에게 몇 번이나 전화를 걸었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한참의 연락 끝에 진유겸의 비서에게 연락이 닿았고 비서는 우물쭈물하며 말했다.“진 대표님께서 얼마 전 사라지셨습니다.”“사라졌다니. 무슨 뜻이야?”“더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석지훈이 전화를 내리꽂으며 말했다.“진유겸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지도 몰라. 최희연을 망가뜨리거나 자신을 망가뜨리거나.”순간 나는 숨이 멎을 것 같았다.“자살이라도 한다는 말이에요?”“확실하진 않지만 당신 말대로 다시는 희연 씨 앞에 나타나지 않겠다는 걸로 봐선 뭔가를 결심한 게 분명해.”“그가 어떤 사람인지 도무지 모르겠어요.”진유겸은 인성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최희연한테는 나쁜 남자였고 나는 그 둘 사이에 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았다.“더 이상 그들 일에 신경 쓰지 않도록 해. 그게 좋아.”“네, 희연이만 챙길 거예요.”석지훈은 폰을 호주머니에 넣고 윤아를 안으며 말했다.“우리 윤아는 참 착해. 날 계속 아빠라고 부르잖아.”“아빠라고 부르는 게 착한 거예요?” 내가 웃으며 물었다.“윤아가 난 자주 불러주지 않으니까.”난 윤민을 안으며 물었다.“우리 윤민이는 엄마가 좋아요?”“네, 엄마 최고.”“들었죠? 날 엄마라고 했으니 우리 윤민이도 철든 거예요. 그냥 당신이 윤아를 편애한 거라고요.”석지훈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여보, 그런 말은 금물이야, 난 편애한 적 없다고.”내가 석지훈의 편애하는 행동들을 일일이 얘기하려고 할 때 갑자기 최현욱으로부터 연락이 왔다.“수아야, 우리 잠깐 만나.”내가 지훈 씨를 돌아보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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