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Chapter 611 - Chapter 618

618 Chapters

제611화

스누커 공의 무게를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뼈까지 부러뜨리진 않더라도, 제대로 맞으면 살이 움푹 팰 정도의 충격을 줄 수 있는 물건이었다.본능적으로 몸을 틀어 피하려 했지만 그 순간 강한 팔이 나를 감싸안았다.쿵! 쾅! 팡! 팡! 팡!사방에서 공이 날아들었고 나는 그 공 사이에서 회전하며 휘청거렸다.그러나 나를 안고 있던 진정우는 놀랄 정도로 빠른 반응 속도로 움직이며 나를 보호하고 있었다.그의 한쪽 팔이 단단히 내 허리를 감싸고 있었고 나는 그에게 이끌려 쉼 없이 몸을 틀어가며 쏟아지는 공을 피해 다녔다.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내 눈앞으로 빠르게 날아오는 공들이 그의 움직임에 따라 아슬아슬하게 빗겨 나갔다.어떤 것은 그의 손이나 팔로 튕겨 나갔고 어떤 것은 우리가 회전하면서 가까스로 비켜 지나갔다. 이게 현실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기이하면서도 숨 막히는 순간이었다.“브라운, 이제 그만해! 당장 멈추라고!”강유형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쏟아지는 공이 부딪히는 소리에 묻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공은 여전히 끝없이 날아왔고 어느 순간부터인가 진정우의 움직임이 점점 둔해지는 것이 느껴졌다.숨이 가빠지고 그가 나를 안고 움직이는 속도도 처음보다 확연히 느려졌다.“퍽!”바로 옆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나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고 그 순간 그의 몸이 움찔하며 흔들리는 걸 보았다. 진정우가 공에 맞은 것이다.“진정우!”나는 반사적으로 그의 이름을 불렀지만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그가 나를 안고 있는 이상, 나는 오히려 그가 회피하는 걸 방해하고 있었고 그를 더욱 위험하게 만들고 있었다.그에게 도움이 될 순 없어도, 적어도 짐이 되지는 않아야 했다.“조금 있으면 널 밖으로 밀어낼 거야.”그의 낮고 단호한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거의 속삭이듯 가까운 거리에서 들린 그의 목소리는, 우리가 헤어진 후 처음으로 느껴보는 익숙한 온기였다.그러나 감상에 젖을 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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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2화

“진정우! 진정우!”나도 소리치고 싶었지만 목이 꽉 막힌 듯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몸을 움직이려 해도 힘이 빠져, 쓰러진 진정우에게 다가갈 수도 없었다.“진정우, 대답해! 제발 대답 좀 해봐!”용설아가 그를 안고 필사적으로 흔들며 애타게 외쳤지만 그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예전에는 함께 잠을 잘 때 내가 조금만 움직여도 금방 깨고 늘 예민하게 반응하던 그가 지금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브라운! 당장 구급차를 불러! 빨리!”용설아가 소리치는 순간, 그녀의 얼굴을 따라 눈물이 흘러내렸다.그제야 얼어붙었던 내 머릿속이 서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동시에 끔찍한 생각이 스쳐 가며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간신히 힘을 짜내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겨우 손을 짚으며 앞으로 기어가듯 움직이려던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지원아, 강유형!”바로 신지태였다.곧이어 여러 사람이 몰려들었고 신지태가 나를 붙잡아 일으켰다. 그는 내 시야를 가로막았고 그사이 진정우는 급히 병원으로 옮겨지고 있었다.그를 따라가고 싶었지만 다리가 풀려 한 걸음도 내디딜 수 없었다.겨우 입을 열어“진정우”라고 불렀지만 그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은 채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브라운은 체포되었고 강유형 역시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그 어떤 것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머릿속에는 쓰러진 진정우의 모습만이 반복해서 떠올랐다.병원 응급실 앞에서 나는 해가 뜨고 질 때까지 기다렸지만 수술실의 붉은 불빛은 꺼질 줄 몰랐다.지친 의사가 나오는 걸 보고 다급히 붙잡고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단 하나였다.“현재 응급처치 중입니다.”“이제 그만 묻고 그냥 기다리세요.”옆에서 용설아가 나를 가볍게 끌어당기며 말했다. 그녀는 나보다 훨씬 차분해 보였지만 진정우를 걱정하는 마음만큼은 나와 다르지 않았다.“후두부 뼈가 부서졌어요.”용설아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듣자 나는 순간적으로 숨이 턱 막혔다.“뭐라고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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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3화

“정우는...”나는 입을 열었지만 정작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용설아는 이미 내가 묻고 싶은 것을 아는 듯 조용히 입을 열었다.“지원 씨는 그가 군인이었다는 것만 알지, 어떤 임무를 수행했는지는 모르셨죠?”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고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그는 단순한 군인이 아니라 극비 특수 요원이었어요. 3년 동안 국제 작전에 투입되어 전 세계를 장악하려던 거대 조직을 무너뜨렸죠. 지금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브라운이나 헤르나는 그 조직의 잔당에 불과해요.”나는 순간 숨이 멎을 것 같았다.“정우는 임무를 마친 후 전역하고 평범한 삶을 살기로 했어요. 하지만 이번에 신지태 씨 사건을 통해 그 조직의 잔당이 다시 세력을 키우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죠. 게다가, 그 조직의 남은 자들이 복수를 다짐했다고 해요. 그는 그들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들은 직접 정우를 건드리기 어려우니, 결국 그의 주변 사람들을 노릴 거라고 확신했어요.”용설아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그게 그가 지원 씨와 헤어진 이유예요. 그리고 그의 진짜 정체와 배경이죠.”나는 입을 열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그에게서 전혀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혹시... 설아 씨는 그와 함께 싸운 적이 있나요?”내가 어렵게 물었지만 정작 어떤 말부터 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가 진정우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게 신경 쓰였다.용설아는 살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저는 그와 함께 싸운 적 없어요. 우리의 관계도 모두 거짓이었어요. 그가 그렇게 한 것도, 결국 지원 씨를 지키기 위해서였죠.”그녀의 표정에는 씁쓸함이 묻어 있었다. 그녀는 다시 깊이 숨을 들이마신 후, 수술실 문을 바라보며 말했다.“그는 자신이 조사당할 걸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지원 씨와 헤어졌어도 여전히 위험할 거라고 생각했죠. 그러다 보니 저와 약혼을 발표하고 사람들이 저와 함께 있다고 믿게 만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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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4화

“수술 실패라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용설아 씨가 의사의 팔을 붙잡고 다급하게 물었다.나도 똑같은 질문을 하고 싶었지만 목이 막힌 듯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의사는 잠시 머뭇거리다 조용히 말했다.“안으로 들어가 보세요.”그 말만 남긴 채 그는 가려 했지만 용설아 씨는 여전히 그의 팔을 놓지 않았다.그때, 옆에 있던 간호사가 대신 설명했다. “환자의 후두부 뼈가 심각하게 손상되었습니다. 우리는 최대한 봉합을 시도했지만 뇌출혈이 멈추지 않고 있어요. 출혈 부위도 여러 군데라...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그 순간, 용설아 씨의 손이 스르르 풀렸다. 마치 모든 힘이 빠져나간 듯, 그녀는 휘청거리면서도 애써 몸을 가누며 안으로 향했다. 그러다 문득 멈춰 서더니, 나를 돌아보면서 다가와 내 팔을 붙잡고 천천히 일으켰다. 그녀의 부축을 받으며 나는 힘겹게 발걸음을 옮겼다.병실 안은 눈이 부실 정도로 밝았다. 너무 밝아서 오히려 눈을 찌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침대 위에는 수술복을 덮고 누워 있는 진정우가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산소 마스크가 씌워져 있었고 머리는 하얀 붕대에 감겨 있었다.나는 그를 마주하는 게 두려워 선뜻 다가가지 못했다.그때, 용설아가 조용히 말했다.“지원 씨, 지금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다 하세요. 안 그러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지도 몰라요.”그녀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지만 나는 그 말이 얼마나 큰 의미를 담고 있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용설아는 이미 현실을 받아들인 듯했다.그녀가 나를 데리고 침대 앞으로 다가가자, 나는 마침내 진정우의 얼굴을 또렷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그는 눈을 감고 있었고 평소에 그가 잠들었을 때처럼, 조용하고 평온해 보지만 지금의 이 고요함은 나를 두렵게 했다.“정우야...”용설아가 그의 이름을 불렀지만 그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나는 그의 손을 잡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때, 용설아 씨가 다시 말했다.“정우야, 정신 차려. 지원 씨가 왔어.”그 순간,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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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5화

나는 다시 한번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려 했지만 용설아가 울컥하며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진정우!”그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으며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진정우를 바라보았다.그의 눈꺼풀이 희미하게 감겼고, 긴 속눈썹은 더 이상 미동도 하지 않았으며 침대 밖으로 내려와 있던 손이 힘없이 축 늘어졌다.“진정우...”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지만 그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나는 믿을 수 없어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으며 그의 얼굴을 감싸 쥐었다.“진정우, 진정우... 아직 말 다 못했잖아. 계속해. 좀 더 말해줘...”그러나 내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고, 결국에는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듯 그의 얼굴을 애타게 쓰다듬고 코끝을 맞대고, 눈가를 스치고, 볼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끝내 그의 입술을 조심스럽게 맞췄지만 아무리 닿아도,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이제 그는 더 이상 나를 보며 “지원아, 장난치지 마.”라고 말해주지 않았다.“정우야... 제발 날 버리지 마. 난 이제 너밖에 없어...”나는 끝내 외쳤다. 그러나 그 순간, 내 안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이 절망은 부모님을 잃었을 때보다도 더 깊고 아팠다. 어릴 적에는 '죽음'이라는 게 뭔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모른지만 지금은 너무도 분명했다.이제 다시는 볼 수도, 만질 수도, 부를 수도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걸.나는 필사적으로 그의 몸을 흔들며 울었지만, 그저 눈물만 그의 차가운 얼굴 위로 떨어질 뿐이었다.그렇게 내 정신은 서서히 희미해졌다. 눈을 떴을 때, 나는 차가운 병실 침대에 혼자 누워 있었다.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 그리고 창밖으로 쏟아지는 눈부신 햇빛.어젯밤의 어둠과 그 속에서 서서히 멀어져 가던 진정우의 얼굴.모든 순간들이 스치면서 몸이 경련하듯 떨려왔고 숨조차 쉬기 힘들 만큼 가슴이 너무 아팠다.“지원아, 괜찮아? 어디 아파?”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강유형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곧이어 신지태의 목소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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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6화

강유형과 신지태 오빠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멍하니 고개를 들고 그들을 바라보며 어리둥절하게 물었다.“둘 다 몰라?”나는 머릿속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서도 몸을 일으키려 애쓰며 말했다.“그럼 내가 직접 찾아갈게...”그 순간, 신지태가 미세하게 떨리는 손으로 나를 붙잡았고 나는 눈을 깜빡이며 그를 바라보았다.“왜 그래?”“지원아, 이제 받아들여야 해. 진정우는... 더 이상 없어.”강유형의 낮고 무거운 목소리가 들려오자, 나는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알아... 나도 알아.”그러면서도 어설프게 웃으며 덧붙였다.“그래서, 그를 보러 가려고 해. 조용히 곁에 있고 싶어서.”그 순간, 신지태의 손끝에 힘이 들어가면서 살짝 아프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내 팔을 더 강하게 움켜잡았다. 나는 그를 올려다보며 조용히 말했다.“오빠, 너무 아파.”그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지원아... 진정우는... 없어. 더 이상 볼 수 없어.”그 말에 나는 얼어붙은 듯 멈춰 섰고 눈앞이 흔들렸지만 나는 애써 강하게 말했다.“아니, 난 볼 수 있어. 그러니까 가게 해 줘.”“지원아!”신지태가 단호하게 나를 불렀지만 나는 그의 손을 뿌리치려 하며 애타게 말했다.“제발, 가게 해 줘.”그 순간, 강유형이 낮고 단단한 목소리로 말을 끊었다.“볼 수 없어. 그는 이미... 화장됐어.”그 순간, 내 손이 허공에서 멈춰 섰고 나는 서서히 강유형을 바라보았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고 온몸이 얼어붙은 듯 머릿속이 텅 빈 느낌이었다.“강유형.”신지태 오빠가 낮게 그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여전히 내 어깨를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지원아... 진정해.”나는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면서 그 말이 거짓이길 바랐다.“그 말, 거짓말이지...? 진정우... 진짜 아니지?”신지태 오빠의 눈이 더 붉어졌다.“지원아, 울고 싶으면 울어.”나는 울고 싶지 않았다. 아니, 나는 믿고 싶지 않았다. 눈앞이 흐려지면서 몸이 떨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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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7화

나는 무겁게 발을 떼며 앞으로 걸어갔다. 신지태가 나를 부축하며 문 앞까지 데려다주었지만 안으로 들어가기 전 이미 누군가가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그 사람의 품에는 검은색 상자가 안겨 있었고 그의 얼굴에는 깊은 슬픔과 혼란이 서려 있었다. 나는 그 상자를 보는 순간, 숨이 멎었다.신지태의 손에 힘이 들어가며 나를 더 단단히 부축했지만 그마저도 희미하게 느껴질 정도로 온몸의 감각이 무뎌졌다. 나는 다시 정신을 붙잡으려 애쓰며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다가 문 안쪽, 등을 돌린 채 서 있는 용설아를 한눈에 그녀를 보았다.그녀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저 등 뒤로 느껴지는 깊은 절망과 슬픔만으로도 충분히 모든 걸 알 수 있었다.그 순간, 발이 땅에 박힌 듯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신지태도 함께 멈춰 섰고 우리 둘 다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잠시 후, 용설아는 천천히 몸을 돌렸고 그녀의 두 손 위에는 검은색 상자가 놓여 있었다. 나는 그대로 시야가 흐려지며 쓰러질 뻔했다.용설아는 내 앞까지 걸어와 조용히 말했다.“이건 진정우가 남긴 마지막 부탁이에요. 그가 원했던 대로, 지원 씨가 직접 그를 데려가 주세요. 두 분이 가장 좋아했던 그곳에 묻어달라고 했어요.”나는 그녀가 들고 있는 상자를 멍하니 바라보면서 지난 기억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그와 함께 걸었던 들판, 그가 나지막이 속삭였던 약속들 그리고 그곳에서 함께 살자고 했던 말.그러나 그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나에게 마지막 부탁을 남겼다.그를 그곳에 묻어달라는 마지막 부탁 말이다.‘이건, 나보고 죽으라는 말이야?’나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상자를 노려보았다.“왜 나를 기다리지 않았어?”작은 상자 하나에 다 담길 리 없는 그를 떠올리며 나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왜... 기다려주지 않았어, 진정우?”“정우는 지원 씨가 그 순간을 직접 마주하지 않길 바랐거든요.”용설아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힘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정우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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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8화

나는 진정우를 고국으로, 그리고 우리가 함께 꿈꾸던 집으로 데려왔다.해가 지는 어느 저녁, 우리는 그가 노후를 함께 보내고 싶다던 그 땅에 그를 묻었다. 그렇게 하고도 쉽게 떠날 수 없어 나는 그의 곁에 꼬박 35일 동안, 단 하루도 빠짐없이 다녀왔다.어릴 적 어머니가 이야기하던 말이 떠올랐다. 사람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영혼은 바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가장 소중했던 사람 곁에서 머문다고. 흔히 말하는 35날이라는 기간 동안 말이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그것을 믿고 싶었다. 그가 홀로 떠나지 않도록, 마지막까지 함께 있어 주고 싶었다. 그의 영혼이 완전히 떠난 후에야 나도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그동안 나는 세상과의 연락을 끊고 조용한 나날을 보냈다. 진소영이 그랬던 것처럼 책을 읽고 꽃을 따서 차를 우려 마시고 그림을 그렸고 그림 속에는 온통 진정우뿐이었다. 그를 그릴 때마다 떠오르는 것은 강진혁의 방에 빼곡히 걸려 있던 내 초상화들이었다.아침과 저녁이면 그의 곁에서 혼잣말을 하듯 이야기를 나눴다.“진정우, 오늘 밤 꿈에라도 와서, 그때 못다 한 말을 마저 해줄래?”“진정우, 네가 너무 보고 싶어. 너를 안아보고 싶은데 이제는 만질 수도 없잖아. 그런 공허한 아픔이 날 미치게 할 것 같아.”“진정우, 오늘 길에서 다친 작은 새를 주웠어. 어미는 보이지 않더라. 내가 잘 키울 수 있을까?”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그의 대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가끔 얼굴을 스치는 바람이, 마치 마지막으로 내 얼굴을 쓰다듬던 그의 손길처럼 느껴졌다.그렇게 시간이 흘러 마침내 35번째 날, 나는 새로 딴 꽃을 들고 그의 곁을 찾았다.“진정우, 오늘이 네가 이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날이야? 내일부터는 정말로 네가 없는 걸까? 나도 이제 돌아가야겠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마주해야 할 사람들을 만나야 해. 그리고...”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나는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널 함정에 빠뜨린 사람을 찾아야겠어.”그 순간,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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