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Chapter 561 - Chapter 570

747 Chapters

제561화

그 사진은 옛날 박한빈과 성유리, 그리고 하늘이가 놀이공원에 놀러 간 날 찍은 것이었다.놀이공원 직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박한빈에게 잘 보이려고 계속 세 사람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었다.하지만 지금, 박한빈이 슬쩍 본 성유리의 프로필 사진에는 하늘이와 그녀의 얼굴만 있을 뿐이었다.‘나는 아예 없던 사람처럼 잘라버렸네.’“죄송합니다. 전화 한 통만 받고 오겠습니다.”연정우는 박한빈을 향해 살짝 미소 짓더니 그가 무슨 대답을 하기도 전에 뒤돌아 전화를 받으러 떠나버렸다.박한빈은 그 자리에 가만히 멈춰 서있다 문득 웃음을 터뜨렸다.‘역시 이럴 줄 알았어. 어떻게 날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있나.’그는 연정우가 지금 일부러 자기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일부러 핸드폰을 박한빈 앞에서 꺼내 들고 성유리와 본인 사이를 과시하려는 의도가 뻔히 보였다.박한빈은 연정우가 자신과 성유리 사이 과거 일들과 사이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방금 전에 보인 담담한 모습과 미소는 다 연정우의 “연기”라고 생각했고 걸려 온 영상통화 또한 가짜일 것이라고 여겼다.그냥 사진 한 장만 바꾼 뒤에 성유리에게서 걸려온 전화인 척하는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박한빈은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 진짜든 가짜든 자신과 무슨 상관이 있다고 지금 이러고 있는지 본인조차 이해가 가지 않았다.박한빈은 이미 성유리에 관련된 모든 일들에 관심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상태였고 연정우와 도대체 어떤 사이로, 어떤 감정을 갖고 있든 모른 척하기로 했었다.지금 연정우가 하는 행동들이 과시인지, 아니면 사실인지 박한빈은 그냥 모르고 지내기로 다짐했다.“박 대표님?”그때,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박한빈이 정신을 다잡았다.그는 고개를 돌려 상대를 쳐다보며 얼른 대답했다.“죄송합니다. 갑자기 일이 생겨서 먼저 가봐야 할 것 같네요.”“그럼 모셔다드릴까요?”상대는 박한빈의 말에 다정한 말투로 물었지만 그는 손을 내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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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2화

박한빈은 그렇게 연정우의 뒤를 몰래 따랐다.그는 지금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알고 있었다. 절대 해서는 안 될 행동이라는 것도 말이다.하지만 도저히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했고 마음 같아서는 성유리에게 라이브 방송이라도 켜 보여주고 싶었다.성유리가 연정우라는 남자의 실체를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었고 자신이 선택한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었다.그러나 박한빈은 그것만큼은 꾹 참으려 했다. 스스로도 이런 일에서는 자신이 설복력이 없고 신뢰도가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그리고 솔직히 말해 박한빈도 사실 굳이 성유리에게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연정우의 “가면”을 벗긴 다음 성유리에게서 멀어지라고 경고하려고 했다.연정우는 성유리와 어울리지도, 맞지도 않는 사람이니까!그 여인의 손을 잡은 채로 연정우는 방 안에 들어섰고 박한빈은 담배 한 대를 천천히 피운 다음 발걸음을 그쪽으로 옮겼다.그는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걸음으로 방 앞에 도착했고 이내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아무리 노크해도 방 안에서는 미동도 없었고 박한빈은 속으로 연정우를 무척이나 조롱하고 나무랐다.똑똑!몇 번이나 반복된 노크 소리에 그제야 방 안에 있던 연정우가 물었다.“누구세요?”박한빈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연정우가 입구 쪽으로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문 하나를 사이에 둔 박한빈은 연정우의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들었고 자꾸만 올라가는 입꼬리를 애써 눌렀다.심지어는 호텔 측에 부탁해 연정우가 다른 여자와 방 안에 들어섰다는 영상을 찍어달라고 했다.비록 박한빈 또한 이러한 상황에 불가피하게 놓인 적은 있었지만 그는 남들이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이건 다 성유리를 위한 거야.’박한빈이 통화를 끝내자마자 연정우가 마침 문을 벌컥 열었다.문밖에 있는 박한빈을 발견한 연정우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박한빈은 예상했다는 듯 미소 지으며 먼저 인사를 건넸다.“연 대표님, 이렇게 또 만나네요.”“지금 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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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3화

입가에 띠고 있던 미소도 박한빈의 침묵과 함께 천천히 사라졌다.그러던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려 성유리를 쳐다봤고 그녀가 이미 자신을 경멸하는 듯한 눈빛으로 째려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연정우의 내연녀인 줄 알았던 그 단발머리는 여인은 확실히 성유리가 맞았다.머리까지 짧게 자른 성유리는 지금 연정우와 함께 호텔에 머무르고 있다. 박한빈은 이 두 개의 현실에 가슴을 깊이 찔린 것 같은 고통이 점점 더 심하게 느껴졌다.어찌나 세게 이를 악물고 있었는지 박한빈의 입에서는 피가 나고 있었고 두 주먹도 꽉 쥐고 있었다.하지만 그래도 박한빈은 그 여인이 성유리가 맞다는 현실을 인정하기 싫은지 다시 물었다.“그럼 너는? 넌 대체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건데?”박한빈은 뚜벅뚜벅 성유리가 앉아 있는 쪽으로 걸어갔고 그녀가 하는 대답은 이미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다 큰 성인남녀가 야심한 시각에 같은 호텔 방에 머물면 과연 어떤 일은 하겠는가?두 남녀가 방 안에 가만히 앉아 대화만 나누고 잡담만 할 리도 없다. 게다가 성유리는 이미 샤워까지 마친 상태였으니 더욱 볼 것도 없었다.박한빈이 바로 노크하지 않고 멈춰 담배를 피우는 시간 동안, 연정우와 성유리가 방 안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는 그 누구도 모르는 일이다.그는 바로 전까지만 해도 자신은 성유리와 연정우가 만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줄 알았다. 연정우의 여자 친구가 성유리라는 사실 말이다.두 사람이 함께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고, 손을 잡고 같은 침대에서 잔다고 해도 괜찮을 줄 알았다.그러나 지금, 막상 눈으로 직접 두 사람이 같이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충격은 더 세게 다가왔다.심지어 박한빈은 고개를 살짝 돌려 침실까지 쳐다봤다. 도대체 침실 안이 어떤 상황인가를 직접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었다.‘둘이 안에서 뭐 한 거지? 연정우 씨는 유리한테 잘해주나?’박한빈은 성유리가 과연 원해서 관계를 가진 건지 아니면 그녀가 지금 즐거운지, 자신과 함께 있을 때처럼 섹시하고 매력적인 자태를 뽐내는지 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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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4화

그렇게 한참을 웃던 박한빈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연정우를 죽이려는 듯 걸음을 옮겼다.주먹까지 이미 꽉 쥐고 다가가던 박한빈은 문득 모든 움직임을 멈췄는데 연정우를 갑자기 때리지 않기로 마음먹은 게 아니었다.멈춘 이유는 바로 성유리가 연정우 앞을 가로막아 선 채로 박한빈을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싸늘하게 식은 성유리의 표정과 차가운 눈빛을 확인한 박한빈은 순간 이성을 되찾았다.박한빈은 그렇게 멍하니 서서 자신을 혐오하는 것 같아 보이는 성유리를 쳐다만 봤다.“나가세요.”이때, 성유리가 적막을 깨뜨리며 먼저 입을 열었다.“박한빈 씨, 제가 머리를 짧게 자르던 다른 어떤 일을 하던 다 당신이랑 아무 상관이 없어요.”“계속 안 나가시고 버티신다면 당장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 여기는 호텔이에요. 만약 일이 더 커지는 게 두렵지 않으시다면 어디 한번 해보자고요.”박한빈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성유리를 가만히 바라만 보았고 쥐고 있던 주먹에도 천천히 힘을 풀었다.그리고 그는 고개를 돌려 연정우를 다시 쳐다봤는데 후자는 이미 인상을 찡그린 채로 박한빈을 째려보고 있었다.“남자 맞습니까? 비겁하게 여자 뒤에 숨어서 보호받으면 기분이 좋으세요?”“그건 제가 원해서 그런 거고요.”박한빈이 연정우를 조롱하는 듯 웃으며 묻자 성유리가 먼저 대답했다.“정우는 제 남자 친구예요. 박한빈 씨가 갑자기 저희 방에 쳐들어와서 이 난리를 부렸는데 제가 왜 정우를 보호해 주지 못하는 거죠?”“박한빈 씨, 제 앞에서 이런 미친 짓 좀 적당히 하시죠? 그리고 볼품없는 그 소유욕도 집어치우시고요. 저희는 이미 끝난 사이예요. 여기 나타나지 말아야 할 사람은 바로 당신이라고요!”박한빈은 그 자리에 가만히 멈춰 서서 성유리와 눈을 맞추더니 갑자기 또 웃음을 터뜨렸다.하지만 그 웃음은 아까와는 달리 더 슬퍼 보였고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처럼 허탈해 보였다.“내가 졌어. 이제 됐나?”박한빈이 낮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성유리, 네가 이겼어. 인정할 테니까 나랑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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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5화

어딘가 묘하게 바빠 보이는 성유리의 모습을 보던 연정우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그제야 성유리는 침실 안으로 걸음을 옮겼고 다행히 하늘이는 침대에 누워 자고 있었다.밖에서 들리는 큰 소리에 영향을 받지 않았는지 하늘이는 평온하게 잠에 들어 있었고 성유리는 침대맡에서 아이에게 이불을 다시 잘 덮어주고는 다시 침실을 나섰다.프런트에서 빠르게 부탁한 구급상자를 가져다주었고 연정우는 소파에 앉아 상자를 연 채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침실 밖으로 나온 성유리는 연정우에게 얼른 다가가 상자에 있던 얼음 봉지를 그에게 건넸다.“고마워.”그러자 연정우가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고 입술을 오물거리던 성유리가 천천히 대답했다.“미안해. 오늘은... 나 때문에 너까지 피해를 본 것 같네.”“피해?”연정우는 성유리의 말에 당황하는가 싶더니 다시 미소 지으며 말했다.“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게 어떻게 피해를 주는 거지?”“그렇지만...”“너도 전에 나 때문에 다친 적 있잖아.”성유리의 말에 끝나기도 전에 연정우가 그녀의 말을 뚝 끊어버렸다.“그리고 그때 너는... 아마 지금의 나보다 더 심하게 다쳤을 거야. 고작 찰과상 정도 생긴 거로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이건 연정우가 처음으로 성유리 앞에서 지나간 일들에 관한 말을 꺼낸 것이었다.그래서 성유리는 도통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아직도 나를 탓하고 있는 거야?”한참 뒤, 연정우가 다시 성유리에게 물었다.“아니.”성유리는 재빨리 부정했고 행여나 연정우가 자신의 말에 오해를 할까 봐 얼른 말을 보탰다.“내가 아직 네 탓을 하고 있는 거라면 왜 너랑 다시 만나고 있겠어?”그녀의 말에 연정우는 그제야 편한 웃음을 지어 보이더니 대답했다.“응. 그러니까 이젠 나한테까지 피해준다는 말 하지 마.”잠시 망설이던 성유리는 연정우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물었다.“박한빈 씨가 방금 한 말... 넌 걱정 안 해?”“응?”“그 사람이 너한테 복수할까 봐 두려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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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6화

두 달 동안 찾아오지 않은 엔젤 월드는 꽤 많이 달라져 있었고 망고나무에 달린 열매도 맛있게 익은 상태였다.하늘이는 전부터 나무 아래에서 고개를 바짝 들고는 열매가 맺히기를 지켜보는 것을 즐겼으니 오늘 아이는 자기가 직접 열매를 따겠다고 떼를 썼다.김서영은 하늘이가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 들어주는 사람이었으니 도우미에게 사다리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고는 밑에서 아이를 보호하려 했다.“조심해.”김서영은 하늘이가 다칠까 걱정되는 듯 옆에서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로 말했다.“너무 빨리 움직이지 마. 밑에 있는 열매만 따면 돼.”하늘이를 너무도 예뻐하는 김서영은 행여나 아이가 다칠까 노심조차하며 상황을 지켜보았다.그러다 하늘이가 열매를 원하는 만큼 따고 내려오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아이는 제대로 땅을 딛지도 못하면서 성유리에게 막 달려왔다.“엄마, 이거!”하늘이는 자신이 직접 딴 열매를 성유리에게 건넸고 힘이 드는지 땀이 맺혀있었지만 너무도 환하게 웃고 있었다.초롱초롱한 눈으로 열매를 건네는 하늘이를 보던 성유리는 얼른 손을 뻗어 열매를 건네받으며 대답했다.“고마워.”“하나 더 따서 할머니 줘야지!”말을 마친 하늘이는 뒤돌아 다시 나무가 있는 곳으로 헐레벌떡 달려갔다.“하늘아, 난 괜찮아. 할머니는 안 가져도 돼.”김서영은 하늘이가 딴 열매를 차마 먹어버릴 수가 없어 거절했지만 하늘이의 태도는 완강했다.“안 돼요! 할머니도 하나 있어야 돼요.”김서영은 하늘이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어 옆에 있는 사람에게 다급히 외쳤다.“뭐 하고 있어요? 얼른 애 챙겨야죠.”성유리는 그 상황을 지켜보다 웃음을 참지 못하며 김서영에게 말했다.“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나무도 꽤 낮은 것 같은데요? 밑에 매트도 깔고 사람도 지키고 있으니 절대 다칠 리는 없을 거예요.”그러자 김서영은 성유리를 살짝 째려보더니 대답했다.“정말 다치면 어떡하려고 그래? 엄마라는 사람이 담도 크다!”성유리는 김서영의 말에 그저 옅은 미소만 지어 보였다.“머리는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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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7화

그해, 박세빈의 일이 있은 뒤 박한빈은 김난희를 연세가 많아 홀로 생활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요양원에 보내버렸다.비록 금성에서 제일 좋은 요양원이긴 하지만 사실 관리가 너무 엄격해 외부인은 마음대로 면회를 갈 수도 없었고 안에 있는 사람도 자유롭게 외출하지 못했다.그러니 김난희가 요양원에서 어떤 생활을 보내는지, 그 생활이 호화로운지 아니면 안쓰러운지 아무도 모른다.만약 집사가 갑자기 김서영이 사는 집에 찾아오지 않았다면 성유리는 박씨 가문에 김난희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도 잊었을 것이다.“사모님, 오늘 의사 선생님께서 어르신에게 찾아와 이미 진단을 다 마쳤습니다.”찾아온 손님은 아주 공손한 태도로 김서영에게 말을 이어갔다.“어르신에게는... 시간이 얼마 없는 것 같습니다. 이미 다른 일들에 다 흥미를 잃으셨고 그냥 누워만 계십니다. 유일한 소원이라 하면 오직 친손자를 만나는 거라고 하십니다.”“박세빈이요?”김서영이 침착한 말투로 물었다.“지금 걔는 해외에 있어서 당장 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데.”“큰 도련님께서 허락만 하신다면 그 정도 시간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사모님에게 부탁드리러 왔습니다. 큰 도련님 좀 설득해 주시죠.”“이건 저도 장담 못 해요.”집사의 부탁에 김서영은 담담히 말을 이어 나갔다.“애초에 어르신이 우리 모자에게 어떻게 대했는지 남들은 모를 거예요. 그리고 당신도 알 리가 없고요. 하지만 저희 모자는 아직 선명히 기억하고 있어요.”“솔직히 말하면 박세빈을 유학이라는 명분으로 해외로 보낸 것도 우리 한빈이가 넓은 아량을 베푼 거예요.”김서영의 말이 끝나자 집사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침묵했다.그러나 이내,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굳이 작은 도련님이 돌아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어르신에게 다른 손자라도 보여주시죠?”성유리는 원래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필경 이 일은 박씨 가문의 일이니 그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다.방금 전까지만 해도 성유리는 김서영에게 먼저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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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8화

김난희가 있는 요양원은 성유리도 와보지 못했다.그리고 예상대로라면 이건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하늘이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요양원에 오는 것이기에 많이 신기한지 사방을 마구 둘러보며 성유리에게 물었다.“엄마, 저기 앉아서 햇볕을 쬐고 있는 사람들은 왜 노인이야?”“왜냐하면 여기는 요양원이거든. 노인들이 모여서 사는 곳이야.”“그럼 저 노인들의 자식은?”“밖에서 일하고 있을 거야.”“노인들을 신경도 안 쓰고? 얼마나 외롭겠어.”하늘이의 말이 끝나자 그들에게 길을 안내하던 사람이 고개를 돌려 뒤를 휙 돌아봤다.성유리는 아무 대답도 없이 그저 하늘이의 손을 더욱 꼭 잡아줬고 오늘은 김서영도 두 사람과 함께였다.하지만 그녀는 굳이 김난희를 보고 싶지 않았고 당연하게도 김난희 또한 김서영의 얼굴을 보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그래서 김서영은 밖에서 성유리와 하늘이를 기다리려고 결정했다.“성유리 씨, 이쪽입니다.”길을 안내하는 사람은 아주 공손했고 성유리는 하늘이의 손을 잡고 안으로 천천히 들어섰다.성유리의 기억 속, 김난희는 늘 강하고 성격이 드센 사람이었다.아무리 연세가 지긋하고 자식을 잃는 아픔을 겪었다 해도 김난희는 무너지지 않았고 강인함을 유지했었다.그러나 지금, 침대에 누워있는 사람은 나뭇가지처럼 삐쩍 말라 있었고 하늘이는 처음 그렇게 마른 사람을 봐서 그런지 무서워 성유리 뒤로 숨어버렸다.공허한 눈으로 창밖만 바라보고 있던 김난희는 인기척이 들리자 고개를 돌렸고 이내 성유리와 하늘이를 발견했다.그녀는 예상치 못한 두 사람의 등장에 눈빛이 휙 변하더니 애써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입을 뗐다.“네가... 한빈이 딸이야?”하늘이는 성유리의 뒤에 숨어있을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결국 성유리가 하늘이를 달래며 말했다.“하늘아, 인사해야지. 네 증조할머니야.”긴장했는지 혀로 입술을 핥고만 있던 하늘이가 주춤거리며 인사했다.“안녕하세요.”그러자 김난희는 허허 웃으며 연신 끄덕이더니 말했다.“그래. 정말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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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9화

성유리는 입술을 오므리고 잠시 고민하다 결국 김난희가 내미는 서류를 건네받았다.“고맙습니다.”인사를 마친 성유리가 옆에 서 있는 하늘이에게 슬쩍 눈치를 주자 아이도 재빨리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증조할머님, 감사합니다.”김난희는 두 사람의 인사에도 그저 침대에 기댄 채로 하늘이를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성유리는 김난희와 할 말이 딱히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하늘이도 그녀를 무서워하자 이곳에 오래 머물 생각이 더 없어졌다.그렇기에 김난희가 버티다 못해 먼저 잠에 든 후, 성유리는 하늘이의 손을 잡고 방을 나섰다.원래는 김서영이 아직 밖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줄 알았던 성유리는 방문을 나서자마자 뜻밖의 사람과 마주쳐버렸다.그 사람은 바로 박한빈이었다. 그를 발견한 성유리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지만 박한빈은 차분했다.성유리와 마주친 박한빈은 이내 시선을 그녀가 손에 들고 있는 서류에 돌렸고 망설이던 성유리는 서류를 그에게 돌려주며 말했다.“어르신께서 주신 주식 양도서예요. 저한테 있어도 별로 소용이 없으니까 이건 돌려드릴게요.”성유리의 말에 박한빈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더니 조롱하듯 물었다.“이건 내가 준 것도 아닌데 갖기 싫어?”“네. 싫어요.”“그럼 돌아가서 할머님께 돌려드려.”박한빈의 태도는 아주 완강했고 성유리가 내미는 서류를 건네받을 생각도 없어 보였다.그래서 성유리는 박한빈에게 건네기를 포기해 버렸고 그와도 나눌 대화가 없었기에 하늘이의 손을 잡고 계속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박한빈한테 왜 그가 이곳에 나타난 건지도 묻지 않은 채로.하지만 그 순간, 박한빈이 뒤돌아있는 성유리에게 갑자기 물었다.“할머니가 너한테 무슨 말을 했어?”갑작스러운 질문에 성유리의 발걸음이 뚝 멈췄다.“아무 말도 안 했어요.”성유리는 고개를 돌려 박한빈을 쳐다보지도 않고는 대답을 이어갔다.“그렇게 걱정되시면 가서 CCTV 돌려보세요.”박한빈은 성유리의 대답에 뭐라 대꾸하지도 못했다. 사실 무슨 얘기를 더 하고 싶었지만 냉랭한 성유리의 말투와 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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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0화

박한빈은 결국 먼저 박세빈에게 전화를 걸기로 마음먹었다.이건 최근 2년 안에 박한빈이 박세빈에게 처음으로 연락하는 것이었다.하지만 예상외로 전화를 받은 사람은 박세빈이 아니었다.“박세빈 씨와 어떤 사이십니까? 가족입니까?”수화기 너머 들리는 사람의 말투에 박한빈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고 얼른 되물었다.“박세빈한테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아,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그로 인해 상처감염이 꽤 심각한 상태고요.”의사로 추정되는 사람이 다급한 말투로 계속 말했다.“가족이 맞으시면 빨리 여기로 오세요. 아마 다른 곳으로 데려가셔야 할 겁니다.”박세빈이 머물던 나라는 위생과 의료 설비, 의학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곳이었다.매년 병으로 인해 목숨을 잃는 사람이 수도 없이 많았는데 거의 다 현지인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니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나라에 홀로 살아가고 있던 박세빈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박한빈은 원래 박세빈이 그곳에서 죽든 살든 상관하지 않으려 했었다. 어차피 처음부터 박세빈이 살아서 돌아올 거라고 생각해 그곳에 보낸 것이 아니었으니까.하지만 오늘 집사가 했던 말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고 있어 박한빈은 도대체 박세빈이 성유리와 무슨 얘기를 했는지가 너무 궁금했다.심지어는 혼자 상상하고 두 사람이 함께 앉아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그려보기까지 하면서 말이다.‘그래서 그때 나를 떠나려고 한 건가?’‘그럼 왜 나중에 나한테 알려주지 않은 거지?’‘분명 잘 앉아서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잖아.’박한빈은 자꾸만 드는 의문들에 대한 정답을 몰라 답답했고 하루라도 빨리 그 답을 듣고 싶었다.그는 얼른 자람시에 있는 지인에게 연락해 먼저 박세빈을 다른 병원에 옮긴 뒤, 그가 깨어나면 제일 먼저 자기한테 말해달라고 부탁했다.박세빈이 깨어날지도 모르는 상황에 놓인 박한빈은 답을 알고 싶어 점점 더 초조해졌다.김난희의 장례식이 치러지는 날 동안, 장손인 박한빈은 빈소를 지켜야 했고 그 기간 동안 회사에도 많은 업무들이 쌓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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