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Chapter 271 - Chapter 280

557 Chapters

제271화

시연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속으로 생각에 잠겼다. ‘그 사람이 대체 얼마나 알고 있는 거지?’ ‘설마 나와 아버지의 관계까지 알았을까?’ ‘만약 그렇다면... 자신이 이미 ‘제부’에서 ‘형부’로 승격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시연의 눈길을 살짝 돌려 지동성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뭐야, 왜 기대가 되지?’ 돌아가는 길에 지동성이 말했다. “비행기표부터 바로 예약할게. 도착하면 일정은 내가 다 조정할 테니까, 너는 짐만 챙기면 돼.” “네.” 시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제가 도울 일이 있으면 연락해 주세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녀는 스스로 다짐했다. ‘이번에는 절대 헛수고하지 않을 거야.’ 공항으로 가기 전, 지동성은 시연을 임진아 집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는 낡은 건물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아빠가 너희에게 줄 집은 지금 리모델링 중이야. 페인트칠도 다시 하고, 내부도 손볼 생각이지.” 그리고 미안한 듯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불편하겠지만, 조금만 더 여기서 지내주렴.” “괜찮아요.” ‘이보다 더 힘든 시절도 많았어. 이 정도쯤이야.’ 시연은 더 이상 연약한 아이가 아니었으며, 그녀가 두려운 것은 결국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연은 다짐했다. 반드시 노력해서 그런 일이 없게 하겠다고. “아버지, 운전 조심하세요.” 지동성을 배웅한 뒤, 시연은 곧장 임진아 집으로 돌아와 짐을 싸기 시작했다. 해외로 나가는 만큼 시연이 준비할 것도 많았다. 병원과 학교에도 교수님을 통한 휴가를 신청해야 했으니 말이다.그녀는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일들로 인해 꼬박 이틀을 정신없이 보냈다....출국 당일, 시연은 지동성과 함께 비행기에 올랐다. 여권, 비자, 학교와 병원 업무 조정 등으로 정신없이 바빴던 이틀이 지나고 나서였다. 그녀가 준비로 분주하던 때, 유건은 Y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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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2화

‘어쨌든, 내가 만드는 건 G시 음식이니까.’ “아무튼 조심해.” 지동성은 크게 입맛이 없는 듯 대충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갔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나왔다. “나가게 되면, 아빠 속옷도 두 세트만 사 와라. 챙기는 걸 깜빡했어.” “아, 네.” 시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식사를 마친 후, 핸드폰을 열어 근처를 검색했다. 호텔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대형 마트가 하나 있었다. ‘그럼, 여기 가면 되겠네.’ 시연은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섰다. 밖은 햇살이 따뜻했고, 하늘은 청량했다. 그녀는 가볍게 산책하듯 걸어갔다. 그리고 마트에서 필요한 식재료를 모두 챙긴 후, 남성 속옷 코너로 향했다. ‘적당한 걸로 두 개만 사면 되겠지.’ 별 고민 없이, 시연은 가장 기본적인 걸 고른 후, 쇼핑백을 손에 들고 다시 호텔로 천천히 돌아갔다. 거리는 한적했고, 차도 많지 않았다. 그녀는 핸드폰을 열어, ‘웰스’의 위치를 검색했다. ‘어디에 있는 거지? 호텔에서 얼마나 걸리지? 교통편은...’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모처럼 평온한 시간을 즐겼다. 시연이 호텔 입구에 다다랐을 때, 룸 키를 찾으려 가방으로 손을 뻗었다.훅-어느새 뻗쳐온 손이 그녀의 쇼핑백을 낚아챘다. “꺄악!” 놀란 시연은 크게 뒷걸음쳤다. 그 충격으로 쇼핑백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그 안에 있던 물건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먼 길을 온 유건도 바로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내가... 그렇게 무서운가?’ ‘내가 무슨 괴물이라도 되는 것 마냥 왜 이러는 거야?’유건은 시연의 반응이 어이가 없어서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어폰을 낀 그녀를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아, 그래서 내가 부르는 소리를 못 들었구나.’ 이어서 따뜻하면서도 다정한 말투로 말했다. “이어폰 끼고 있었구나. 어쩐지, 몇 번 불러도 못 듣더라.” 그는 한참 전부터 시연을 따라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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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3화

‘설마 나를 때리려고?’ 시연은 숨도 못 쉬고, 눈조차 깜빡이지 못했다. 그저 온몸이 얼어붙은 듯 유건을 바라봤다. 휙! 그냥 차가운 공기가 시연의 귀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프지 않잖아?’ 그 순간, 강렬한 충격음. 쾅! 유건의 팔이 여자의 얼굴 바로 옆을 스쳤고, 그의 주먹이 그녀 뒤의 벽을 세게 강타했다. 그 찰나, 시연은 뼈와 단단한 벽이 부딪히는 거친 소리, 그리고 석회 가루가 와르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거, 제대로 친 거잖아...!’ “유건 씨!” 시연의 심장이 움찔하며 떨렸다. 그녀는 급히 남자의 팔을 잡았다. “어디 봐봐요... 괜찮아요?” 그러나 유건은 순식간에 팔을 빼내고, 시연을 내려다보며 비웃듯이 웃었다. “봐서 뭐 하게? 내가 다치든 말든, 네가 신경이라도 쓰나?” 시연은 단 한 순간도 고민하지 않고, 본능적으로 말했다. “당연히 신경 쓰이죠!” ‘어?’ 말이 나오자마자, 그녀는 멍해졌다. ‘내가... 지금 뭐라고 한 거지?’ 그리고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이 사람이... 이 말 듣고, 대체 어떻게 생각할까?’ 그러나 유건은 전혀 듣지 못했다. 질투와 분노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신경 쓴다고?” “네가 정말 나한테 신경을 썼다면, 자기 아빠뻘 되는 유부남이랑 같이 해외로 도망쳤을까?”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남성 속옷 상자를 가리켰다. “이거, 그 노친네 거 맞지?” 시연은 잠시 말을 잃었다. ‘맞긴 해. 하지만...’ 그녀는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았다. 시연이 침묵하는 순간, 유건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하찮게 느껴졌다. “그래, 지시연. 마음대로 해. 이제 더 이상 신경 안 쓸게.” 유건은 기운 없이 팔을 내렸다. “유건 씨!”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인 시연이 그를 붙잡았다. “이건 오해예요. 설명할 수 있어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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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4화

유건이 시키지 않아도, 지한은 할 일은 알아서 하는 스타일이며 단순히 지시받고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윗사람의 지시를 받고 행동하는 사람은 마치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는 것과 다름없었다.비록 시간이 많지는 않았지만, 지한은 그 짧은 시간에도 꽤 중요한 정보를 찾아냈다. “형님.” 그는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태산요양병원 쪽에서 들어온 정보인데, 우주가 얼마 전에 ‘웰스'의 평가 테스트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합격했습니다.” “‘웰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유건은 눈썹을 찌푸렸다. 그는 이런 전문 기관에 연관될 일이 없었으니, 모르는 게 당연했다. “네.” 지한 역시 생소했지만, 보고하기 전에 미리 검색해 두었다. 그는 핸드폰을 열어, 관련 정보를 유건에게 보여주었다. “우수 인재를 선발하고 체계적으로 육성하여 배출하는 기관입니다.” 유건은 화면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미간이 펴지지 않았다. “시연이의 동생, 우주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잖아.” “네.” 지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덧붙였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사람 중 일부는 타고난 천재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주가 그중 한 명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제야 퍼즐이 맞춰졌다. “처음 테스트를 연결한 사람은 노은범이었습니다. 하지만, ‘웰스’는 수익을 추구하는 기관입니다. 모든 과정이 무료로 제공되는 게 아니죠.” 지한은 짧은 숨을 들이쉬고, 말을 이었다. “형수님은 노은범의 도움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형수님께서 이번에 CA국에 온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즉, 시연은 지동성의 도움을 받았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유건의 얼굴에서 후회가 스쳐 지나갔다. ‘너무 늦었어. 내가 후회할 일이 너무 많아.’ 유건은 자신이 우주의 형부였고, 우주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앓고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그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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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5화

지동성은 확실히 몸이 좋지 않았다. 계속 구토하고, 설사까지 동반된 상태였다. 그리고 병원 진단 결과는 환경 변화로 인해 몸이 적응하지 못한 증상이라고 했다. “괜찮아.” 지동성은 손을 흔들며 태연한 척했다. “환경 변화로 인해 몸이 적응하지 못한 거니까 병이라 부를 정도는 아니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야.’ 시연은 속으로 단호하게 반박했다. 환경 변화로 인해 몸이 적응하지 못하는 증상은 사람마다 다른 법이었다.가벼운 경우도 있지만, 심하면 탈수와 고열로 이어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시연이 뭐라고 해도, 결국 지동성이 결정해야 하는 문제였다. 여기는 낯선 해외이고, 시연도 아직 모르는 것이 많아서 지동성에게 의존적인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지동성은 딸을 안심시키려는 듯, 힘겹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식재료 사 왔다면서? 저녁은 뭐야?” “샤부샤부를 준비했어요. 그런데... 드실 수 있겠어요?” 시연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아.” 지동성은 또다시 손을 흔들며 말했다. “속이 너무 비어서 그래. 오히려 따뜻한 걸 먹으면 나아질지도 몰라.” 일단, 시연은 더 이상 말리지 않기로 했다. 그녀는 거실로 나와, 준비해 둔 샤부샤부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물 한 잔을 따라 건넸다. “먼저 물부터 드세요. 드시다가 이상하면 바로 멈추시고요.” “응, 그래.” 지동성은 조심스럽게 물을 들이켰다. 물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아서 딱 좋았다. 그는 순간적으로 과거가 떠올랐다. ‘명주...’ 최근 들어, 그는 전처 부명주를 자주 떠올렸다. ‘내가 명주를 자주 떠올릴 자격이나 있나?’시연은 조용히 지동성의 앞접시에 음식을 놓아주었다. 주로 야채와 연두부였다. “일단, 고기 말고 이거부터 드세요. 국물도 조금씩 드시고요.” “그래...” 지동성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젓가락을 들지 못했다. 시연은 아버지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도무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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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6화

‘그런데, 병원은 어떻게 가지?’ ‘이곳은 G시도 아니고, 입원 절차도 훨씬 복잡할 것 같은데...’ ‘게다가, 우리는 CA국 국민도 아니야.’ ‘단순한 관광 비자로 바로 병원 입원이 가능할까?’ ‘나 혼자서는 다 처리할 수 없을 거야.’‘아니, 아버지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 거라고.’시연은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라 마음이 복잡해졌다.‘그럼... 누구한테 도움을 청하지?’ 곰곰이 생각하던 시연은, 한 사람을 떠올렸다. 그녀는 핸드폰을 움켜쥐고, 손끝을 입술에 가져갔다. 그리고 조용히 숨을 들이쉬었고, 마침내 용기를 내어 유건의 번호를 눌렀다. [여보세요, 시연아?] 단 한 번의 연결음이 울린 후, 유건은 즉시 전화를 받았다.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나예요.” 시간이 없어서 시연은 더 이상 설명 없이 본론을 말했다. “지동성 사장님이... 지금 많이 아프신 것 같아요. 심한 설사에 열까지... 입원이 필요해요.” “하지만 나 혼자서는 해결 못 해요.” 그녀의 말 속에는‘당신이 도와줘야 할 것 같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유건은 한동안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날카롭게 눈을 가늘게 떴다. ‘나는 하룻밤 내내 고민했어. 어떻게 사과할지, 어떻게 다시 다가갈지!’ ‘그런데 이 여자가 나한테 먼저 연락한 이유가... 지동성 때문이라고?’‘그 노친네 때문에 나한테 전화했다고?’ ‘이 여자, 어제까지만 해도 나를 차단했었잖아! 이제 와서 연락한 이유가 고작 그 늙은 인간 때문이라고?’ ‘지동성이 그렇게까지 중요한 사람이었나?’ ‘하... 정말 웃기네.’ “듣고 있어요?” 시연은 조금 초조한 목소리로 물었다.“내 부탁... 들어줄 거예요, 안 들어줄 거예요?” ‘내가 안 들어줄 수가 있나?’ 유건은 이미 너무 많은 걸 놓쳐버렸다. 그렇기에 도와주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시연이 갑자기 코웃음을 쳤다.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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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7화

이 세상에, 아무 이유 없이 누군가에게 잘해주는 사람은 없는 법이다. 더군다나 시연은 바보가 아니고, 억지로 모르는 척할 성격도 아니었다. 그녀는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유건이 자신을 조금은 좋아한다는 것을. 하지만, 그는 장소미를 더 좋아했다. 시연은 유건이 어떻게 그렇게 이중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는지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그가 이혼을 요구한 순간, 시연은 이미 유건을 포기했으니까. 그런데도, 유건은 여전히 그녀에게 집착하고 있었다. 시연은 남자를 바라보며 가볍게 웃었고, 분명하게 말했다. “사람과 물건은 달라요. 당신이 좋아하는 물건은 다 가질 수 있다고 해도, 사람은... 인생에서, 아니, 적어도 어떤 시기에는 오직 한 사람만 가질 수 있는 거라고요.”모든 사랑이 끝까지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양다리, 변덕, 한 손에는 이 사람, 한 손에는 저 사람... 그런 낡아빠진 사고방식은 이미 지난 세기에 사라졌어야 했다. “유건 씨, 당신이 나한테 잘해준다는 거, 잘 알아요. 하지만 당신이 나하네 잘해주는 것과 장소미한테 잘해주는 건 공존할 수 없어요.” 시연은 충분히 차분했다. 이성적이고, 현명했다. 그리고 모든 걸 잘 파악하고 있었다. 유건은 가슴이 저렸다. 심장이 조여드는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그럼 시연이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래서 물었다. “시연아, 나를 좋아한 적은 있어?” ‘미치도록 좋아한 게 아니어도 괜찮아. 내가 너를 좋아하는 만큼이 아니라도 상관없다고.’ ‘그저, 아주 조금이라도...’ 이 말을 들은 시연은 살짝 미간을 좁혔다. 그 순간, 심장이 움켜 잡힌 듯한 느낌이 들었고, 손끝마저 떨리는 것 같았다.객관적으로 말하자면, 유건은 충분히 좋은 사람이었다. 시연 역시 그에게 끌렸던 순간이 있었음을 인정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당신은 이미 선택했잖아요. 잊었어요? 우리, 지금 이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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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8화

시연의 두 눈이 커지며 놀라움이 스쳤다. ‘이 남자, 점점 뻔뻔해지고 있어. 아예 막 나가기로 한 건가?’ “너도 알잖아. 나 너 좋아해. 그런 내가 불안한 마음으로 떠나게 내버려둘 거야?” ‘뭐? 이게 무슨 궤변이야? 완전 날강도가 따로 없잖아!’ 시연은 아예 유건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냥 무시하고 앞으로 걸어갔다. “시연아? 시연아!” 시연이 차에 타지 않자, 유건은 어쩔 수 없이 천천히 차를 몰며 그녀를 따라갔다. 시연은 이미 동선을 확인해 두었다. 지동성이 이 호텔을 예약한 것도 이유가 있었다. 여기 근처에 버스 정류장이 있었고, 거기서 ‘웰스’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물론, 환승이 필요하긴 하지만 말이다. 유건은 여자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내 차를 타고 가는 게 더 편하지 않나?’ ‘잠깐만... 뭔가 이상한데?’ 정류장에 도착하자, 버스가 멈춰 섰다. 시연은 이어폰을 꽂은 채, 아무런 망설임 없이 한 발을 버스 안으로 내디뎠다. “시연아!” 유건이 크게 외쳤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어서 그는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제발, 받아라!” 버스 안.시연이 막 자리에 앉으려던 순간, 핸드폰 화면이 켜지며 진동이 울렸다. ‘또 고유건이야? 인제 그만 좀 하지?’ 그녀는 받지도, 끊지도 않았다. 그냥 무시하면 끝. 역시나, 그 한 통 이후 유건도 더는 전화를 걸지 않았다. 시연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역시, 시간이 지나면 결국 포기하게 되어 있어.’ 그리고 뒤로 몸을 기댄 채, 눈을 감았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시연은 그렇게 스르르 잠이 들었다. 어젯밤 지동성을 돌보느라 거의 잠을 못 잤으니, 당연히 피곤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저기요.” 옆에서 누군가 그녀를 깨웠다. 눈을 뜨니, 서양인 외모를 가진 현지인 버스 기사가 그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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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9화

마지막 한 번. 그 말을 내뱉을 때, 유건은 표정과 목소리에 변화 없이 담담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말이 맞아. 나는 이미 선택했어. 그러니까 오늘이 마지막이야. 오늘이 지나면, G시로 돌아가서... 더는 너한테 집착하지 않을 거야.” 시연은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뭐야, 나 못 믿어?” 유건은 코웃음을 쳤다. “우리 그래도 부부였잖아. 내 사람 됨됨이를 네가 몰라서 그래?” 유건의 성격을 시연은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원치 않는다면, 유건도 절대 선을 넘는 사람이 아니었다. 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그게 곧 수락이었다. 유건은 그녀를 부축하며 말했다. “타.” 차에 올라타자, 차량은 조용히 출발했다. 시연은 시간을 확인한 뒤 물었다. “여기서 ‘웰스'까지 멀어요?” “응.” 유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가깝진 않아.” 게다가, CA국과 G시는 달랐다. CA국은 넓고, 인구 밀도가 낮았다. 도심을 벗어나자, 시골처럼 한적한 풍경이 펼쳐졌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인적이 드물었고, 길가에는 사막과 숲이 이어졌다. “배 안 고파?” 유건이 룸미러로 시연을 쳐다보았다. 이미 점심시간이 지나 있었다. “괜찮아요.” 즉, 배가 고프다는 뜻이었다. 유건은 내비게이션을 확인했다. “앞에 맥X날드가 있네. 간단하게 뭐 좀 먹자.” “네.” 얼마 지나지 않아, 맥X날드가 보였다. 유건은 차를 세우고 음식을 주문했다. 하지만, 시연은 앞에 놓인 음식들을 보고도 전혀 입맛이 돌지 않았다. 유건은 그제야 깨달았다. “아직도 입덧이 심해?” “그렇진 않아요.” 시연은 고개를 저었다. “토하는 건 덜한데, 입맛이 없어요.” ‘억지로 먹으면 결국 토한다는 거네.’ ‘어쩐지, 많이 말랐다 했어.’ 유건이 속으로 걱정하며 바로 말했다.“이건 다 싫어? 그럼 따로 먹고 싶은 건 없어? 한 입이라도.” “흰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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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0화

결국, 시연이 신경 쓰는 건 유건의 옷에 남은 향수 냄새였다. “뒷자리로 가지 마. 너 속 안 좋잖아. 뒷좌석에 앉으면 더 울렁거릴 거야.” 유건은 급하게 재킷을 벗어 한데 뭉쳐 뒷좌석으로 던졌다. “여기 막 버리면 안 되니까, 쓰레기통 보이면 바로 버릴게, 알았지?” “흥.” 시연은 조금 기분이 풀린 듯했다. “알아서 하세요.” ‘화가 풀린 건가?’ 유건의 눈빛이 반짝였다. ‘혹시 이 여자... 질투하는 거야?’ ‘내가 아까 그 외국인 여자랑 있었던 거 때문에?’ 이때, 시연은 이미 봉투를 열어 빵 냄새를 맡고 있었다. “음, 냄새는 좋네요.” 하지만 식초가 담긴 작은 봉지를 뜯지 못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줘 봐.” 유건이 봉지를 받아 가볍게 뜯어주었다. “자.” “고마워요.” “아니야.” ‘내 착각이겠지? 하긴, 이미 날 거절한 애한테 뭘 기대할 수 있겠어...’ 간단히 식사를 마친 후, 둘이 다시 길을 나섰다. 하지만, 날씨가 변하기 시작했다. 아침까지만 해도 맑았던 하늘이 순식간에 흐려졌다. “비가 오려나 봐요.” “그런 것 같아.” 유건은 미간을 좁혔다. “이 근처는 전부 농장이지만, 조금만 지나면 숲이 펼쳐질 거야. 비가 내리면 도로 사정이 안 좋아질 텐데 걱정이네.” 속도를 조금 더 올렸지만, 결국 빗속을 뚫고 달리진 못했다. 빗방울이 빠르게 차창을 때렸다. 길이 미끄러워지기 시작했고...쿵! 갑자기 차가 흔들리더니, 살짝 기울어졌다. “무슨 일이에요?” 시연도 이상함을 감지했다. “내가 나가서 볼게.” 유건은 차에서 내려 보닛을 열었다. 그리고 바로 얼굴이 굳어졌다. ‘빌어먹을...’ 차가 퍼졌다. ‘이 차... 지한이가 렌트가 업체에서 빌려온 건데, 이렇게 허접할 줄은 몰랐어.’게다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유건이 차 뒤쪽을 보니, 뒷바퀴 한쪽이 진흙에 빠져 있었다. ‘그래서 차체가 기운 거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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