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의 모든 챕터: 챕터 1291 - 챕터 1300

1390 챕터

제1291화

저녁쯤, 숙청제가 송석석을 궁으로 불렀고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된 송석석을 보며 숙청제는 사여묵이 아프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다.“너무 걱정하진 말거라. 임 태의가 있으니 상황이 호전될 것이야.”숙청제의 말에 송석석은 영혼을 잃은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감사합니다, 폐하. 소인이 단 신의께 소식을 전했으니 단 신의께서도 곧 돌아오실 겁니다. 단 신의에게 좋은 약이 있으십니다.”“단설환을 얘기하는 것이냐?”숙청제도 단설환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으며 진성에 있는 황족과 세가들은 돌발 상황을 대비하여 한두 알 정도 가지고 있었다.하지만 2년 전부터 이 약은 거의 판매를 하지 않았기에 매우 귀한 약이 되었다.“네.”“단 신의는 언제쯤 돌아올 수 있다고 하더냐? 그 약을 약왕당에서 구할 수는 없는 것이냐?”숙청제의 물음에 송석석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아무리 빨라도 삼일 정도는 걸릴 것입니다. 약왕당에도 현재 이 약을 판매하고 있지 않습니다. 홍작한테서 들었는데 단 신의께서 단설환 두 알을 가지고 계신다고 합니다.”“그럼 단설환 외에는 다른 약이 없느냐?”숙청제는 단설환의 약효가 좋다는 건 인정하지만 들리는 소문처럼 그리 신통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그저 근거 없는 소문에 불과하다고 여겼다.“다른 약은 약효가 그리 좋지 못합니다.”머뭇거리던 송석석은 살짝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전북망 장군님 모친께서도 심각한 심장 질병으로 거의 사망하시기 직전이셨는데 단설환을 드시고 목숨을 부지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뒤로 매달 단설환 한두 알씩 드셨다고 하는데 효과가 확실했다고 합니다.”숙청제도 이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지만 이 상황에서 망자를 언급하는 건 재수가 없을 것 같아서 이내 송석석을 위로했다.“임 태의한테서 들었는데 상황이 조금은 호전되고 있으니 치료를 받고 충분히 휴식하면 곧 건강을 회복할 수 있을 터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네, 폐하. 오늘 임 태의가 계셔서 너무 다행이었습니다.”송석석의 눈시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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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92화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친위병 몇 명을 거느린 척귀가 임 태의와 오대반과 함께 북명 황실로 향했다.송석석은 며칠동안 공무를 내려놓기로 하고 모든 업무를 필명과 오진에게 맡겼다.시만자도 송석석을 통해 자초지종을 알게 되었고 오늘 임 태의와 오대반이 저택에 왔다는 소식에 시만자는 괜히 어설픈 모습을 들키기 싫어서 나타나지 않았다.임 태의와 오대반은 이내 두 눈이 퉁퉁 부은 송석석을 만나게 되었고 오대반이 조심스럽게 위로했다.“왕비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임 태의가 계시니 왕야께서도 조만간 호전될 것입니다.”“감사합니다.”송석석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대답했다.한편, 척귀 등 친위병은 왕야와 왕비의 침실에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기에 밖에서 지키고 있었다.척귀는 침실 밖에 나타난 염구진을 보자 그를 아래위로 훑어보다가 물었다.“염 선생, 폐하께서 왕야를 걱정하셔서 이렇게 소인을 보냈습니다. 혹시 왕야께서 예전에도 이런 질병을 앓으신 적이 있으셨습니까? 왜 갑자기 쓰러지신 겁니까?”염구진은 척귀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왠지 모르게 마음속으로 짜증이 확 났고 요즘 따라 이런 감정을 자주 느끼는 것 같았다.그는 황제의 이러한 조사가 결국 불신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염구진은 짜증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채 담담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왕야께서 이토록 바쁘신데 쓰러지지 않을 수가 없지요. 언젠가 몸이 망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낮에는 대리사에서 공무를 처리하시고 저녁에는 잡다한 일로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저택으로 돌아오십니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 일찍 조정에 참석하시느라 한 시간도 채 못 주무시는데 몸이 어떻게 건강하실 리가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노주로 가셨을 때 산속에 숨어 지낸 탓에 추위에 약해지셨고 진성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제대로 휴식을 취하신 적이 없었지요.”척귀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어명을 받고 탐문하러 온 척귀는 지금 이 순간 북명왕이 너무 대단하게 느껴졌으며 북명왕처럼 매일 바쁘게 살면 쓰러지지 않을 사람이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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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93화

임 태의는 북명왕의 상태가 걱정되어 황실에 남아 밤을 보내려고 했지만 저녁쯤 돌아온 단 신의가 한걸음에 황실로 달려와 북명왕에게 단설환 한 알을 건네 주었다.단설환을 복용한 북명왕은 흉부 통증이 바로 완화되었고 임 태의가 맥을 짚어보니 그가 처방한 약보다 효과가 훨씬 좋았다.임 태의는 오래 전부터 단 신의의 명성을 익히 전해 들었기에 굳이 자신이 황실에 남을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위로 몇 마디를 남긴 뒤 황실을 떠났다.임 태의가 가자마자 단 신의는 북명왕을 위해 처방을 했고 제자를 시켜 약왕당에서 가서 약재를 구해 약을 달이기 시작했다.약을 먹은 사여묵은 가슴에 꽉 막혀 있던 큰 돌멩이가 사라진 기분이었으며 겨우 제대로 숨을 쉴 수가 있었다.“임 태의가 내일도 찾아올 걸세. 때문에 왕야께서 진성을 떠난다고 해도 내일 저녁까지 저택에 계시다가 출발하셔야 하네.”단 신의의 말에 송석석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임 태의께서 내일 다시 장군님의 맥을 짚어본다면 모든 게 들통나는 거 아닙니까?”“사람을 시켜 저택 밖에서 지켜보다가 임 태의가 나타나면 내가 다시 왕야께 약을…”“약을 또 드셔야 한다는 겁니까? 더 이상 중독되면 안 됩니다.”송석석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다급하게 말하자 단 신의가 송석석을 힐끗 쳐다보았다.“그렇게 걱정됐다면 그 반 알도 드시지 못하게 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송석석이 후회 막심한 표정을 지었고 단 신의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남은 반 알을 먹이려는 게 아니네. 현빙환이라는 약이 있는데 조울증을 치료하는 약이라 이 약을 복용하면 맥박이 여전히 이상하게 보일 걸세.”그제야 마음이 놓인 송석석이 다시 물었다.“그 전에 드신 약이 이미 심장을 손상시켰는데 거기에 이 현빙환까지 드시면 몸 상태가 더 악화되지 않겠습니까?”“큰 문제는 없을 것이네. 그래서 치료제로 이런저런 약을 많이 드리지 않았나?”단 신의의 말에 곁에 서있던 동동이가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그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처음부터 왕야께 현빙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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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94화

한편, 남강에서 왕표는 며칠동안 계속 좌불안석이었다. 그는 사국 병사들이 정말 쳐들어올 줄은 몰랐으며 시씨 가문 도련님이 보낸 서신이 사실일 줄도 전혀 몰랐다.왕표는 방천허 등 사람들과 몇 번이고 논의를 했지만 그자들은 전혀 겁을 먹지 않았으며 쳐들어오면 바로 전쟁을 치르면 된다고 했다.방천허가 보인 자신감에 왕표는 조금이나마 안심이 됐지만 전쟁이 일어난 순간 왕표는 절대 군영에서 지휘만 하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그리고 방천허 등 병사들에게 정말 그만한 실력이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송씨 가문 군대와 북명군은 평소에도 건방진 태도로 왕표의 지시에 따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병사 훈련을 진행하지 않았기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승산이 높지 못할 것이다.왕표는 자신의 다리를 만지작거렸다. 아직도 비가 내리면 다친 무릎에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으며 전장에서 다리도 잃을 뻔했다.진성으로 돌아가 오랜 시간의 치료를 통해 겨우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되긴 했지만 여전히 가끔 다리가 불편했다.왕표는 전장에서 죽음에 이르렀던 그 순간을 여전히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살인으로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고 심지어 칼을 들 힘도 없었다.그뿐만 아니라 몸에 입고 있는 갑옷이 너무 무거웠던 탓에 적에게 공격을 당했을 때 누군가가 구하러 오지 않았다면 왕표는 그 자리에서 목이 잘렸을 것이다.물론 이제 원수가 된 왕표는 굳이 전장에 직접 나갈 필요가 없지만 남강에는 원수가 숨어서 지휘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앞장서서 싸워야 한다는 전통이 있었다.그 전통을 만든 사람이 바로 송회안과 사여묵이었고, 제린과 방천허도 이 전통을 찬성하는 바였다. 원수가 전장에 직접 나서야만 병사들의 투지와 열정을 끌어올릴 수 있어, 짧은 시간 내에 전쟁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바로 그때, 대문이 열리며 고청우가 인삼차를 들고 들어왔다.왕표는 이내 걱정스러운 표정을 숨긴 채 고청우를 쳐다보았고 고청우는 조금 전에 울고 온 듯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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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95화

몰래 저택 안으로 들어온 무당은 10분 뒤, 다시 뒷문으로 빠져나갔다.한편, 저택에 앉아있던 왕표는 온몸에 힘이 쫙 풀렸으며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조금 전, 무당은 저택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주변을 쓱 훑어보더니 담담하게 한 마디만 뱉었다.“장군님, 부디 몸조심하십시오.”그리고 나서는 고청우가 아무리 울며 빌어도 무당은 입을 꾹 닫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굿을 해달라고 해도 단호하게 거절하며 소용없는 짓이라고 얘기했다.그러다가 저택을 떠나기 전, 무당은 왕표에게 말을 전했다.“이 땅은 장군의 무덤입니다. 장군님께서는 가족들을 달 대피시키십시오.”무당의 말에 왕표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이 남강 땅에 얼마나 많은 장군의 뼈들이 묻혀 있단 말인가! 더할 나위 없이 용맹하고 전쟁 경험이 많은 송회안 부자도 이 땅에서 목숨을 잃지 않았는가!왕표는 송회안 부자를 존경하지만 두 사람처럼 되고 싶지는 않았다.만약 전장에서 죽는다면 평서백부가 아무리 대대손손 흥한다고 해도 왕표는 전혀 그 영광을 누리지도 못할 것이고 심지어 그의 부인과 아들도 이를 누릴 수 없다.이때, 고청우가 뒤에서 왕표를 끌어안고는 엉엉 울기 시작했다.“서방님, 서방님께서 전장에서 목숨을 잃게 된다면 저와 아들도 서방님을 따라 가겠습니다.”“아니, 난 절대 죽을 수 없어!”눈물을 뚝뚝 흘리는 고청우를 보며 왕표가 큰소리로 외쳤다. 그리고는 고청우의 손을 덥석 잡더니 결심한 듯 말을 이어갔다.“우린 아무도 안 죽을 것이오. 전에도 약속하지 않았소? 전쟁이 일어나면 바로 남강 땅을 떠날 것이오!”흠칫하던 고청우가 당황한 기색으로 왕표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물었다. “하지만 저희가 정녕 이곳을 떠날 수 있을까요? 이 저택에 저희 사람만 있는 건 아닙니다. 더군다나 모든 걸 버리고 몸만 떠날 수는 없지 않습니까?”왕표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안일한 생활을 오랫동안 보낸 왕표는 절대 가난하게 살 수는 없었다.반드시 당당하고 순조롭게 금은보화를 저택 밖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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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96화

고청우가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역겹다는 눈빛이 새어 나왔다. ‘버러지 같은 놈, 능력도 없고 용맹하지도 못하면 마음이라도 독하게 먹어야 할 거 아니야! 천하의 멍청한 놈!’그러다가 다시 고개를 들고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말했다.“역시 저희 서방님은 선하신 분입니다. 제가 서방님을 참 잘 만난 것 같네요.”한편, 결심을 하고 나니 왕표는 되레 마음이 너무 편했다. 그는 고청우의 얼굴을 다정하게 어루만지며 눈앞의 이 여자와 남은 평생 신분을 숨긴 채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상상을 하고 있었다.지금까지 남들이 부러워하는 화려한 삶도 살아봤고 나라를 위해 목숨도 잃을 뻔했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목숨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없으니 왕표는 절대 잘못한 게 없으며 더군다나 그가 남강에 있든 없든 별다른 차이는 없었다.어차피 제린과 방천허 등 부하들은 그를 원수로 인정하지도 않으니 말이다. “가서 왕진을 불러오게. 이곳을 떠나기로 했으니 그자와 논의해서 우리 사람들을 전부 데리고 가야지.”왕진은 본래 평서백부의 교두였는데 왕표를 따라 남강 전쟁에 뛰어든 것이었다.왕표는 전에 최씨가 그의 곁에 몰래 사람을 붙였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가 부인 고청우가 남강에 오고나서 최씨가 심어놓은 사람들을 전부 제거한 것이다.때문에 지금 저택에 남아있는 부하들은 왕표의 믿음을 듬뿍 받고 있는 자들이다.한편, 왕표의 계획을 들은 왕진이 흠칫 놀랐지만 이내 찬성했다.남강에 오기 전, 왕진은 진성에서 더할 나위 없는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었고 평서백부에서 교두로 지내던 나날들은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하지만 왕표를 따라 남강에 오고 나서부터 좋은 술을 마셔본 적도 없고 입맛에 맞는 요리를 먹어본 적도 없었다.지금 그 부귀영화를 누리던 땅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데 그 누가 거절할 수 있을까!더군다나 전쟁이 터져서 왕표가 전장에 나가면 왕진도 따라가서 목숨 걸고 피 터지게 싸울 수밖에 없다.왕진 등 사람들은 정식적인 사병이 아니기에 지금 도망간다고 해도 그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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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97화

제린과 방천허는 장 참모와 오 참모를 데리고 왕표 저택으로 향했고 저택 밖에서 마차에 짐을 싣고 있던 왕진을 발견하게 되었다.제린 일행은 전부터 왕진을 알고 있었기에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내일 떠날 예정입니까?”왕진이 가볍게 웃으며 허리를 살짝 숙였다.“제 장군님, 저흰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할 예정입니다. 원수께서 중간쯤까지 호송하실 거라 오늘밤 이렇게 짐부터 싣고 있는 겁니다.”“원수께서 호송하신다고요? 어디까지 호송하시는 겁니까?”제린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지금 상황에서 남강을 떠난다는 건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한두 시간 정도 내로 다시 돌아오실 겁니다. 원수의 부인께서 먼 길을 아이까지 데리고 가야 하니 원수께서도 최대한의 성의를 보여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제린은 원수가 자신의 부인을 매우 아낀다는 것을 잘 알기에 한두 시간 정도 호송하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택 안에서 이내 잔치가 열리기 시작했고 왕표가 직접 나와서 손님을 맞이했다.그렇게 잔치에 참석한 손님들은 눈앞에 펼쳐진 진수성찬에 침이 나올 정도였으며 왕표가 평소에 음식에 대한 요구가 높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잔치에 참석한 손님은 다섯 명밖에 없지만 음식은 열 명이 먹어도 남을 정도로 넘쳐났다.“진수성찬을 너무 많이 차리셨네요. 저희가 이렇게 많이 먹지도 못 합니다.”방천허의 말에 오 참모도 말을 보탰다.“그러게 말입니다. 명절 때보다 더 푸짐하네요.”왕표가 호탕하게 웃으면서 대꾸했다.“내가 언제 여러분들을 푸대접한 적이라도 있소? 오늘 준비한 음식이 푸짐하긴 하지만 전부 술안주네. 먹다 보면 모자랄 수도 있소.”“오늘 전쟁 작전에 대해 논의하러 왔습니다. 술은 마시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제린의 말에 왕표가 대수롭지 않다는듯 대답했다.“조금만 마시게. 술이 들어가야 솔직한 생각을 얘기할 수 있는 게 아니겠나? 난 자네들 마음속에 각자 불만이 있다는 것을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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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98화

어두워진 왕표의 표정을 발견한 오 참모는 얼른 말했다.“원수께서 아직 저희 신궁위의 궁술을 보지 못하셨지요? 그리고 저희 궁노기도 매우 완벽하게 개량되었습니다.”“본 적 있네.”왕표는 처음 남강에 왔을 때 병사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방천허도 그때가 생각났지만 그때 왕표가 본 건 신인 궁수들의 훈련이었을 뿐이고 개량된 궁노기를 사용하기도 전이었다.이때, 제린이 말했다.“저희도 화통이 있습니다. 하지만 두 나라의 병사들이 본격적으로 싸울 땐 화통을 사용하지 않을 겁니다. 차라리 검을 사용하는 게 더 정확하고 빠를테니까요.”화통은 시가전에서 그 장점을 발휘할 수 있다. 한 발을 쏘고 나서 바로 몸을 숨기면 되지만 마주보면서 정면 승부할 때에는 화통에 장전하기도 전에 적이 휘두른 검에 의해 머리통이 날아갈 것이다.그 뒤로 제린이 몇 마디 더 했지만 왕표는 크게 관심이 없어 보였고 이를 지켜보던 방천허는 왕표가 화통을 선호한다는 것을 눈치채게 되었다.“소인은 병부에서도 화통을 개량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마 개량이 끝나면 이번에 남강 전쟁에 투입될 겁니다.”방천허는 이 말이 왕표에게 조금은 격려가 될 줄 알았는데 왕표는 되레 자신의 도주 결심이 정확한 선택이라고 생각되었다.진성에서 계속 무기들을 남강으로 보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평소에 많이 쓰지도 않는 화통까지 투입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사국과의 전쟁이 얼마나 격렬할지 예상이 되기도 했다.한편, 왕표의 반응에 다들 기분이 나빴지만 어떻게든 감정을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 이 상황에서 병사 통치권을 손에 쥐고 있는 왕표의 심기를 건드리는 건 절대 옳은 일이 아니다.다행히 그 뒤로 논의한 성문을 지키는 작전과 반격 작전에 왕표는 전부 동의했고, 자신이 알고 있는 얄팍한 지식으로 의견까지 보탰다.어느새 밤이 깊었고 다들 피곤해 보이자 왕표는 하인에게 탕을 내오라고 했지만 이미 충분히 배가 부른 손님들은 연신 손을 내둘렀다.“이 탕은 반드시 먹어봐야 하네. 집사람이 특별히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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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99화

날이 밝기도 전에 왕표는 이미 저택에서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조금 뒤, 마차들이 저택을 연이어 떠났다. 대외적으로 얘기한 건 마차 다섯 대였지만 왕표 일행이 저택을 떠나고 나서 마차 몇 대가 더 뒤따랐으며 이 또한 왕표가 미리 준비한 것이다.왕진 등 몇 명이 말을 타고 앞에서 길을 트고 있었고 심지어 그들이 탄 말은 전쟁에 투입되는 군마였지만 어차피 들켜도 중간까지 호송했다가 바로 돌아올 거라고 얘기하면 그만이었다.하지만 저녁이 되어서도 왕표가 저택으로 돌아오지 않자, 저택의 친위병들은 그제야 마음이 조급해져서 바로 제린과 방천허에게 찾아갔다.그 결과, 제린도 방천허도 만날 수가 없었다. 어젯밤 집으로 돌아간 두 사람은 바로 어지러움과 구토를 호소했지만 병사들은 그저 두 사람이 술을 너무 많이 마신 탓이라고 생각하여 해장국을 준비했다.해장국을 마신 뒤에도 두 사람의 증상은 여전했으며 위액이 나올 정도로 전부 토하고 나서야 잠이 들었는데 점심 시간이 훌쩍 지나도 일어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제야 수상한 낌새를 눈치챈 병사들은 수소문 끝에 어젯밤 왕표 저택에 갔던 사람들이 같은 증상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바로 군의관을 불렀다.조금 뒤, 진맥을 하던 군의관이 미간을 확 찌푸리며 말했다.“이자들이 독이 든 인삼을 먹은 것 같습니다.”제린의 부하 진 교위는 바로 왕표 저택에 찾아갔다. 어젯밤 왕표도 함께 식사를 했기에 만약 손님들이 중독되었다면 원수도 중독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곧 전장에 나가야 할 원수와 장군들이 중독되었다는 건 매우 심각한 일이었다.저택에 도착한 진 교위는 부인을 호송하러 떠난 왕표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 말에 왠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왕표가 이렇게 도주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그저 호송하는 도중에 문제가 생겨서 늦어진 것이라고 여겼다.이제 누가 일부러 탕에 독을 탄 건지 아니면 실수로 독이 든 탕을 마신 건지 조사해야 했다.저택 주방에서 사용한 인삼은 평서백 부인이 특별히 사람을 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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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00화

왕표의 갑작스러운 도주로 군심이 흔들렸을 뿐만 아니라 제린과 방천허 등 사람들 마저도 배신감에 기운이 쭉 빠졌다.왕표가 전장에서 싸우다가 죽었다고 해도 이만큼의 악한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을 것이다.남강에서의 첫 싸움이 사국의 승리로 끝난다면 남강군은 그 뒤로도 일방적으로 공격만 당하게 된다.한편, 이 소식이 진성에 전해지기도 전에 숙청제는 사여묵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먼저 알게 되었다.사여묵이 심장 질병으로 갑자기 발작한지 5일째 되던 날, 숙청제는 임 태의와 오대반에게 북명 황실에 다시 한번 다녀오라고 했다.염구진은 갑자기 찾아온 두 사람에게 계획대로 왕야께서 고향에 잠시 휴양하러 떠났다고 얘기하려고 했다가 잠시 망설였다.숙청제는 사여묵의 상황이 호전되고 있고 곁에는 단 신의까지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렇게 임 태의를 보냈다는 건 여전히 의심하고 있다는 뜻이다.이 상황에서 염구진이 계획대로 둘러댄다고 해도 황제는 임 태의를 사여묵 고향까지 찾아가게 할 것이고 그때 가서 사여묵을 만나지 못한다면 어차피 들통날 일이다.이런 생각에 염구진은 오대반과 임 태의에게 왕야께서 어제 몸과 마음을 치유하러 매산으로 떠났다고 했다.황제는 이 말도 믿지 않겠지만 그대로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는 않을 것이며 사여묵이 뭔가 몰래 도모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숙청제는 혹시 사여묵이 연왕이 반역을 일으킨 틈에 몰래 게으름을 피우러 떠났다 거나 그보다 더 안 좋은 상상을 할 수도 있지만 숙청제가 가장 최악의 상황을 상상해야 나중에 사여묵이 남강에 싸우러 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덜 분노할 수 있다.그리고 이런 추측 때문에 숙청제는 황실에 함부로 손을 쓰지 않고 일단 지켜만 볼 생각이었다.아니나 다를까 오대반의 보고에 숙청제는 얼굴이 무서울 정도로 일그러진 채 오월을 궁으로 불렀다.“사람 시켜서 북명 황실과 송석석을 확실하게 지켜보거라. 송석석 그자가 매일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기록하고 저택에 있는 염 선생의 움직임도 지켜보거라.”오월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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