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청엽의 자백과 함께, 사온이 죽기 전에 남겼던 ‘오라버니를 도와 반역을 꾀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반성문으로 인해 연왕의 역모는 확실해졌다. 이에 숙청제는 명령을 내려 연왕에게 진성으로 돌아와 사죄하라고 지시했다.그리고 연주지부에 또 다른 명령을 내렸는데 바로 연주에서 연왕을 제압해서 진성으로 압송하라는 내용이었다. 이젠 연왕이 반란을 일으키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까지 온 것이다. 하지만 그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는데, 그의 우유부단함으로 인해 사람들 앞에서의 위엄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이때 함께 역모를 꾸민 자들은 모두 패기와 결단력을 갖춘 새로운 지도자가 나타나 연왕을 대신하기를 바랐다.아마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무상이 알려준 것이었다. 무상이 요즘 회왕과 비밀리에 돌아다닌 것도 이것 때문이었다. 연왕이 반란을 일으키기도 전에 남강 부장이 사국인과 결탁하여 사국 사병을 남강으로 들여보내 전쟁이 발발할 것이라는 소문이 각지에서 돌기 시작했다. 그러자 여러 곳에서 산적과 도비들이 반란을 일으켜 산을 점령하고 무고한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죽였다. 조정에 대한 성토가 끊임없이 쏟아지자 연왕은 분노하며 반기를 들고 일어섰다. 그는 황제가 어리석다고 비판하며, “무장은 무능하고 간신이 정권을 장악했으니, 내가 하늘을 대신하여 도를 행하고 정의를 바로잡겠다. 뜻을 함께하는 자들은 나를 따르라!”고 외쳤다.하지만 격문이 나가고 반기도 일으켰지만 몇 곳의 산적들만 반란을 일으켰고 그의 사병도 삼천 명 밖에 남지 않았다. 연주에 있는 오 백부병도 삼천여 명에 지나지 않았다. 원래 옹현에서 이전한 사병은 약 35000명으로 마총우가 통솔하고 있었는데 전에 한 약속에 따르면 그가 격문을 보내 성토를 하면 마총우가 군사를 이끌고 소씨, 송씨, 가씨 세 저택을 점령하는 것이었다.왜냐하면 이 세 곳은 강남의 경비소에서 가장 멀기 때문에 3만 명의 병력이 세 곳을 점령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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