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한 번 또 한 번.백건은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쓸쓸한 눈동자로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아무도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정안의 소리로 바뀔 때까지.“건아. 나야.”정안은 비록 집에 있는 시간이 적지만 백건의 마음속에 누나는 따뜻하고 친절한 존재였다. 어머니에게서 얻을 수 없는 모든 정을 누나가 줬다.그는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걸어가서 그림을 한 방향으로 돌려 다시 문을 열었다.문이 열리자 정안은 어두운 안색으로 눈 밑에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백건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무슨 일이에요?”백건이 묻자 정안은 반달 웃음을 지으며 나지막이 물었다.“나 네 방에 들어가 좀 앉아도 돼?”백건은 몇 초 동안 망설이다가 문을 열었다.“들어와요.”정안이 안으로 들어서니 넓은 방은 조명이 밝았지만 단조롭고 썰렁했다.커다란 침대 하나, 한 줄로 늘어선 캐비닛, 소파 의자 하나, 마치 그의 성격처럼 매우 차가운 색조였다.그가 남서연을 짝사랑하는 것도 당연했다.남서연은 아주 밝고 따뜻한 여자로 모든 악을 치유할 수 있을 것 같은 맑고 깨끗한 느낌을 주었다.정안은 소파에 가서 앉아 주위를 둘러보니 거꾸로 바닥에 놓인 그림에 시선이 꽂혔다.그녀는 빙긋 웃으며 옆자리를 토닥였다.“건아, 너도 앉아.”백건은 그녀 옆에 앉아서 소파에 몸을 기댔다.정안은 백건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젊고, 준수하고, 부자이고, 남서연보다 다섯 살 많았다. 성격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정직하고 착한 남자였고, 끈기와 책임감이 있어 어머니의 마귀 같은 가훈을 받으면서도 지금까지 버텼다.남서연이 그와 함께라면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백건이 담담한 어조로 물었다.“무슨 일이에요?”“다음 달 네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나와 하준 오빠 돌아왔어.”백건은 얼굴이 굳어지며 차갑게 말했다.“결혼식은 없어요.”“엄마는 이미 모든 지인에게 청첩장을 돌렸어.”백건은 잠자코 있자니 눈 밑의 냉기가 더욱 깊어졌다.“내 생각에 엄마는
최신 업데이트 : 2025-01-02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