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은 남씨 본가로 들어섰다.남우영은 가서 차를 세우고 남서연이 먼저 걸어 들어갔다.그녀는 현관을 지나 털 슬리퍼를 갈아 신었고 도우미가 다가와 가방을 받아들며 말했다.“아가씨. 집에 손님이 오셨어요.”“아. 감사합니다.”남서연은 도우미에게 가방을 건네주고 손님이 누구인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들어갔다.그녀는 먼저 남창민과 서윤아, 그리고 그녀의 엄마 아빠와 두 큰아버지를 먼저 보았다.“저 돌아왔어요.”거실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그녀 쪽을 쳐다보았다.곧 손님도 얼굴을 돌렸다.남서연은 발걸음을 뚝 멈추더니 얼굴의 웃음이 순간 굳어진 채 백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손님이 백건일 줄은 몰랐다.남씨 가문은 대가족으로, 남서연의 부모님은 단풍나무 숲에 살고, 다섯째 내외는 금원에 살고, 셋째 내외도 그들이 거처가 있었다. 몇몇 사촌 오빠들은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모두 혼자 밖에서 살았다.오직 남서연만이 시끌벅적한 집안의 분위기를 좋아해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살고 있었다.“서연이 왔어?”“서연이 얼른 와서 앉아.”“서연아 누가 왔는지 봐봐. 와서 인사해.”남서연은 귀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나고 괜히 긴장한 그녀는 천천히 걸어가서 남자의 눈을 마주쳤다.백건은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남서연은 어떻게 인사해야 할지 고민했다. 괜히 긴장되고 마음이 편치 않았고 무엇보다 어색했다.백건이라고 하면 가족들이 기분 나쁠 것 같고 삼촌이라고 부르면 백건이 싫어했다.남서연은 생각하다 결국 입을 열었다.“안녕하세요.”지우가 불쾌하게 미간을 찌푸렸다.“서연아 왜 삼촌이라고 안 불러?”남서연은 입술을 삐죽 내밀고 지우 옆에 앉으며 억울하게 말했다. “내가 삼촌이라고 부르는 거 싫어해요.”그러자 모두가 어리둥절해졌다.백건이 여유 있게 입을 열었다.“맞아요. 제 뜻이에요. 서연이 탓 아니에요.”지우와 남태준이 서로 마주 보며 눈빛을 주고받았다.남창민이 물었다.“그럼 뭐라고 불러야 해?”“그냥 백건
남서연은 질문을 듣자 긴장한 손에 땀이 났고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백건을 감히 보지도 못하며 귀를 쫑긋 세웠다.백건은 남서연을 힐끔 쳐다보고 몇 초간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다.“사실 승아는 제 여자친구가 아니에요.”“뭐?”다들 어리둥절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남서연도 경악하여 고개를 번쩍 들고 눈이 휘둥그레져서 백건을 바라보았다.그녀의 반응이 너무 커서 백건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남서연의 반응이 너무 귀여웠지만 꾹 참았다.그때 남태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어떻게 된 거야?”백건은 남태준을 바라보며 예의 바르게 말했다.“전에 엄마가 저더러 여자친구를 사귀라고 강요하셨거든요. 그래서 급한 마음에 가장 친한 친구를 찾아 연인인 척 연기했어요. 그렇게 연기하다 보니 다들 우리가 연인인 줄 알더라고요.”“근데 지금은 왜 이 사실을 밝히는 거야?”“엄마가 이미 아셨거든요.”“어쩐지.”남서연은 어리둥절해져서 입을 살짝 벌리고 의아하면서도 놀라웠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늘 가슴속에 품고 있던 죄책감을 덜어내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알고 보니, 그와 유승아는 연인이 아니었다.그럼 그녀가 백건과 잤던 일은 도덕적 양심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었다.그럼 그녀가 짝사랑하는 남자도 유부남이 아니라는 뜻이다.“삼촌...”남우영이 들어오자 백건이 고개를 들어 보았다.그는 환하게 웃으며 백건의 곁에 앉아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다. “우리 외할머니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이라고요. 난 심지어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예요. 불쌍한 우리 삼촌 어릴 때부터 외할머니 손아귀에서 자랐으니.”허윤미가 불쾌하게 노려보며 타일렀다.“우영아, 그게 무슨 말 버릇이니?”남우영이 눈살을 찌푸리며 개탄했다.“전부 사실이에요. 아빠가 그러는데 엄마는 어렸을 때 동년이 없었대요. 줄곧 공부만 했대요. 다행히 엄마는 지능이 높아서 너무 열심히 공부하지 않아도 과학자가 되었지만 우리 삼촌은 좀 비참하죠. 삼촌...”남우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남서연은 황급히 시선을 떼고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옷자락을 살짝 꼬며 볼이 발갛게 달아올랐다.백건은 그녀의 예쁜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가 아쉬운 듯 시선을 돌렸다.잠시 후 도우미가 저녁 식사가 이미 준비되었다고 말하자 모두 저녁 식사하러 갔다.남서연은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밥을 먹고 위층으로 올라갔다.백건은 정말 그녀의 가족이 그의 결혼 예물을 예약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특별히 설명하러 온 것이 맞을까 생각했다.‘그 말들이 전부 사실일까? 사실이라면 승아 언니는 왜 나 오해하게 했지? 아니면 연기가 아니라 진심인 걸까?’남서연은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가 아팠고 난무하는 추측을 떨쳐버리고 조용히 잠을 잤다.이튿날 아침.단꿈에서 깨어난 그녀는 기분이 꽤 좋았다.갑자기 백건이 했던 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남서연 너를 원해.”갑자기 이 말이 생각난 그녀는 깜짝 놀라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멍하니 있었다.그때 백건이 그녀를 원한다고 했던 말은 그녀를 내연녀로 삼겠다는 뜻이 아니었을까?남서연은 급히 침대에서 내려와 깨끗이 씻고 예쁜 치마로 갈아입은 후 가방을 메고 출근했다.오늘도 남우영이 그녀의 출근길을 책임졌다.마침 가는 길이라는 이유였다.남우영도 ND에 다니고 있고 고위직에 있지만 출근 카드를 찍어야 했다.차 안에서 남우영이 운전을 하면서 말했다.“우리 엄마가 너 잘 지켜보고 있으라고 하셨어.”“왜 갑자기 날 지켜보라는 거예요?”“나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널 잘 보라고 했어.”남서연은 싱긋 웃으며 말이 없었다.“그리고 승아 누나를 조심하라고 했어.”남서연이 경악해서 고개를 번쩍 들었다.“작은 엄마가 진짜 그렇게 말했어요?”“응.”남우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남서연이 웃으며 물었다.“그러니까 승아 언니가 대체 뭘 했기에 오빠더러 조심하라고 한 거예요?”“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도 계속 승아 누나를 별로 안 좋아했어. 가식적이잖아. 딱 봐도 여우야.”남우영이 느릿느릿 말하자 남서연은 피
엘리베이터 문은 디자인팀 사무실 층에서 멈추었다.문이 열리는 순간 남우영이 말했다.“서연아 도착했어.”남서연은 바로 나가서 엘리베이터를 마주 보며 남우영을 향해 미소 짓고 손짓했지만 부드러운 시선은 저도 모르게 백건에게 떨어졌다백건은 그윽한 눈빛으로 줄곧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두 눈이 서로 마주치자 서로 회피하지 않았다.엘리베이터가 천천히 닫히면서 두 사람의 시야가 차단되었다.남서연은 가볍게 심장을 가리고 왠지 모를 긴장과 설렘을 느끼며 숨을 내쉬었다.그녀는 이제 백건을 당당하게 볼 수 있게 되었고, 더 이상 남몰래 수치심을 느끼지 않게 되었고, 남의 남자친구를 훔치는 죄책감도 없게 되었다.다만 아직 백건이 솔로인지 100% 확실하지 않았다. 유승아와 사귀지 않는다면 다른 여자친구가 있는 건 아닐까?‘일단 신경 쓰지 말자. 어쨌든 좋은 쪽으로 흘러가고 있잖아.’남서연은 즐겁게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숙인 채 싱글벙글 웃으며 경쾌한 발걸음으로 디자인 팀 사무실로 들어섰다.디자인 팀의 업무는 남서연에게 매우 충실하고 성취감이 있었다.그녀는 패션디자인을 매우 좋아해서 한번 일에 몰두하면 온 마음을 다해 열심히 일했다.겨울 신제품 디자인 초안을 선별하는 중인데 남서연이 제출한 몇몇 제품들이 탈락되었지만 그녀는 결코 낙담하지 않았다.여다혜는 초조한 나머지 머리를 싸안고 책상에 머리를 쿡쿡 박았다.초조해하는 여다혜를 본 남서연은 사무용 의자를 끌고 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왜 그래?”여다혜는 일을 매우 소중하게 여겼고 슬퍼하며 말했다.“서연아, 내 디자인 모두 떨어졌어.”남서연은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으며 말했다.“괜찮아. 내 것도 마찬가지야.”“내가 걱정을 안 하게 생겼어? 계속 성과를 내지 못하면 다음번 구조조정에서 감원대상이 될 거야.”남서연은 경악했다.“또 감원해?”여다혜는 고개를 들고 슬픈 얼굴, 불안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서연아, 너 그거 알아? 새로 부임한 대표님이 얼마나 무서운지? 원래 대표보다 훨씬
“이건 내 소관이 아니야. 인사팀장을 찾든지 아니면 바로 삼촌을 찾아가.”남서연은 한바탕 생각에 잠겼다.백건을 찾아가라?이것은 마치 그에게 접근하는 핑계 같았다. 다만 이 핑계가 좀 구차하고 미미했다. 그의 말 한마디면 일이 바로 해결될 수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남서연은 입술을 오므리고 생각했다.손가락으로 가볍게 가방 단추를 만지작거렸다.남우영이 열심히 차를 몰고 있는데 갑자기 휴대전화 벨 소리가 울렸다.그는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넣고 한 번 눌렀다.“여보세요. 삼촌.”남서연은 소리를 듣고 그를 올려다보며 괜히 마음이 긴장됐다.휴대전화 저쪽에서 백건이 말했다.“중요한 서류가 있으니 한 번 다녀가.”“하 비서 시켜서 보내세요. 나 지금 서연이 집에 데려다주고 있어서 못 가요.”“아주 중요한 거야. 다른 사람 손에 넣을 수 없어.”‘아주 중요하다고? 하 비서도 못 믿을 만큼?’남우영은 너무 궁금했다.그때 남서연이 옆에서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나 집에 늦게 가도 괜찮아요.”남우영은 싱긋 웃더니 바로 백건에게 말했다.“좋아요. 지금 당장 갈게요.”남우영은 방향을 틀었다.30분 후, 차량은 산 중턱에 있는 별장 리조트에 도착했다.한 번도 와본 적이 없는 남서연은 낯설고 궁금해서 물었다.“오빠 여긴 어디예요?”“삼촌이 사는 곳.”남서연은 차에서 내려 사방을 두리번거렸다.“백씨 가문에서 지내는 거 아니었어요?”남우영도 차에서 내려 문을 닫고 걸으며 말했다.“삼촌 이제 나와서 혼자 살아.”남서연이 그의 귀를 따라가며 경악해서 물었다.“왜요?”“외할머니가 통제욕이 너무 강하고 또 삼촌더러 승아 누나와 결혼하라고 협박하잖아.삼촌이 지금까지는 계속 참으며 살았는데 이제 한계를 건드려서 못 참고 외할머니와 크게 싸우고 혼자 살고 있어.”“외할머니가 그렇게 무서워요?”남우영은 벨을 누르고 고개를 돌려 답했다.“삼촌은 사생활이 전혀 없었어. 일기장도 외할머니가 떳떳하게 꺼내 보는데 무서운 사람이 아니겠어?”그때
남서연도 따라서 일어섰다.그러자 백건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급히 입을 열었다.“여기까지 왔으니 저녁 먹고 가.”남우영은 고민하며 백건을 바라보았다.그가 식탁 쪽을 가리키자 도우미가 마침 음식을 내오고 있었다.“날이 저물었어. 지금 집에 돌아가면 너무 배고프잖아. 여기서 먹고 가.”남우영이 남서연을 보자 그녀는 여유롭게 말했다.“난 다 괜찮아요.”남우영은 싱긋 웃었다. 그는 백건의 외로움을 마음속으로 동정하며 식탁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그럼 오늘은 삼촌 집에서 저녁 먹자.”남서연은 휴대전화를 꺼내 할머니에게 남우영과 밖에서 저녁을 먹고 돌아가니 기다리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냈다.메시지를 보낸 남서연이 소파에서 일어나 고개를 들고 걸음을 떼는 순간 백건과 부딪힐 뻔했다.그녀는 긴장해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섰고 부드러운 눈길로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백건은 은근 고조된 기분을 감추고 차가운 외모에 비해 뜨거운 눈동자로 부드럽게 속삭였다.“요리사에게 네가 좋아하는 순두부찌개와 족발이랑 새우 만두 준비하라고 했어.”남서연은 살짝 넋이 나가 한참 동안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는 자신이 이 음식들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알았을까?분명 방금 같이 밥 먹기로 했는데 어떻게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을 미리 만들어 놓았을까?“고마워요.”남서연은 말랑말랑한 어조로 한마디 했다.백건은 그녀가 지나가도록 서둘러 자리를 옮겼고 남서연은 그의 곁을 넘어 식탁으로 향했다.그리고 백건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식탁에 앉고 보니 여섯 가지 요리와 국은 모두 그녀가 좋아하는 요리였다.남우영은 국자로 국을 떠주며 나무랐다.“삼촌, 이거 너무 뻔한 거 아니에요? 모두 서연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들이잖아요.”백건은 말없이 두 사람의 맞은편에 앉았다.남서연은 볼이 약간 뜨거워지고 수줍은 듯 눈을 내리떴다. 남우영이 건넨 국을 받아 조용히 마셨다.남우영은 뭔가를 눈치챘지만 그저 웃기만 할 뿐 말없이 열심히 음식을 먹었다.백건은 식사 예절이 아주 우아하고 규범적이었는데
화제가 끝나고 다시 침묵이 흘렀다.“회사에서 힘든 점은 없어?”그는 애써 화제를 찾으며 둘의 거리를 좁히려고 애썼다.남서연은 갑자기 감원 생각이 나서 고개를 돌려 그를 보며 물었다.“회사에서 감원해요?”남서연의 시선이 마침내 그에게 향하자 그의 얼굴에는 한 줄기 미소가 번졌다.“넌 제외대상이니까 걱정 마.”“여다혜라고 내 친구가 있는데, 그 직원도 안 자르면 안 돼요?”“여다혜?”백건이 진지하게 묻자 남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 이름 기억했어.”“고마워요.”말을 마친 남서연은 남자의 눈빛이 너무 뜨거운 것 같아 서둘러 시선을 TV에 옮겼다.“서연아...”백건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저번에 일은 우리...”그때 남우영이 걸어 나오자 백건의 소리가 뚝 그쳤다.남서연은 마음이 켕기고 또 긴장해서 서둘러 목소리를 낮추었다.“지나간 일은 다시 꺼내지 말아요. 이미 지나갔어요.”그녀는 남우영에게 들킬까 봐 두려웠지만 백건의 귀에는 아주 차갑고 무정하게 들렸다.이제 보니 성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여자아이가 몰래 금단의 열매를 시도한 충동적인 행동일 뿐이었다.감정도, 결혼도, 미래와 아무 상관없는 일이었다.남우영은 두 사람 사이에 앉더니 남서연의 어깨에 한 손을 얹고 말했다.“이 영화가 끝나면 우리 돌아가자. 너무 늦으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너 걱정하셔.’“네.”남서연이 싱긋 웃으며 말하자 백건은 쓸쓸히 고개를 떨구었다.시간은 1분 1초 흘러갔다.백건은 영화에 집중할 수 없었고 남우영과 남서연이 떠날 때는 직접 문 앞까지 배웅했다.그는 우뚝 서서 남서연이 차에 오르는 것을 바라보았다. 남서연은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고 곧 차량은 떠났다.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웃지도 않고,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서서 그의 눈앞에서 차량이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았다.그의 마음은 텅 비고 너무 허전했다.고개를 돌려 커다란 집을 돌아보니 여전히 텅 비어 있었다.남씨 가문 사람들은 남서연을 너무 잘 보호했다. 그녀의 출퇴근을
남서연은 심장이 움찔하더니 두 손으로 휴대전화를 꼭 잡은 채 백건이 보낸 메시지를 읽었다.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읽으며 매 글자의 뜻을 모두 이해했다.‘지금 나와 단독으로 만나겠다는 건가? 가야 하나?’남서연은 고민하다가 운전석의 남우영을 돌아보고 떠보듯 말했다.“오빠, 내일 퇴근 후에는 나 집에 데려다줄 필요 없어요.”“왜?”“그게...”야근한다고 하면 남우영이 곧바로 조사해서 거짓말이라는 걸 알 테니 거짓말을 지어냈다.“친구랑 쇼핑하려고요.”“어느 친구? 어디서 쇼핑하는데?”남우영이 묻자 남서연은 자신 없이 대답했다.“회사 동료 다혜랑요. 회사 근처에서 쇼핑할 거예요.”남우영은 별생각 없이 대답했다.“그래. 그럼 조심하고 일찍 집에 돌아와.”남서연은 속으로 기뻐하며 남우영에게 기대어 애교스럽게 웃었다.“고마워요 오빠.”남우영은 어리둥절했다.“나한테 왜 고마워해? 재미있게 놀아.”이어 주머니에서 블랙 카드 한 장을 꺼내 남서연에게 건넸다.“마음껏 사.”“괜찮아요. 나 돈 있어요. 충분해요.”남우영은 웃으며 카드를 남서연의 손에 쥐여주고 사랑스러운 말투로 말했다.“넣어둬. 오빠 돈 써. 네 돈은 모아서 부자 돼야지.”남서연은 입술을 오므리고 빙그레 웃었다.“고마워요.”그녀는 다시 휴대전화를 보았지만 아직 백건에게 답장하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채팅창에 입력 중이라고 떴는데 갑자기 취소되고 조금 있다가 다시 입력 중이라고 떴다.한참이나 메시지를 받지 못하자 남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타이핑을 했다.서재에 있는 백건은 휴대폰을 보고 또 보았다. 책상 위에 놓았다가 또 들고 메시지를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다.그녀의 답장을 애타게 기다렸다.‘왜 답장을 안 하지? 나와 함께 나가고 싶지 않은데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모르는 건가?’뚜뚜.백건은 방금 내려놓은 핸드폰을 빠르게 집어 들고 열어보았다.[좋아요. 하지만 내일 출근해야 해서 퇴근 후에 시간 있어요.]백건은 미간을 구부리고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바로 답장했다.[그
이다은이 심장을 부여잡고 있자 남우영은 긴장이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다.“어디 아파? 의사는 보인 거야? 나랑 함께 검사받으러 가자.”이다은은 안절부절못하는 남우영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남우영, 나 아파서 그러는 거 아니야. 그냥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어서 그래. 아이랑 가족이랑 그리고 일까지 어떻게 평형을 잡고 케어해야 할지 모르겠어.”남우영은 이다은이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일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 계속하여 일을 하며 자신의 능력을 키우고 싶어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으며 더욱이 그녀는 전업주부가 되는 것을 싫어하고 그렇게 할머니로 늙어가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이다은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품에 안고 속삭였다.“이다은, 넌 이 남편의 재산 능력을 잊은 거야?”이다은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남우영은 약속하는 듯한 말투로 달래며 말했다.“네가 원한다면 출퇴근은 항상 차로 데려다줄 거고, 곁에는 번거로운 일들을 분담해 줄 매니저를 붙여 줄 거고, 심지어 가방 들어 줄 사람도 따로 안배할 거고, 집에 돌아오면 가사도우미랑 내가 널 돌볼 것이야. 그리고 아이를 낳고 나면 산후조리원, 가사도우미, 영양사, 헬스 관리사 등 아이를 케어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전부 다 따로 안배해 줄 거야. 아이의 양육 문제는 전문적인 산후조리사와 육아 도우미, 그리고 부모님들도 계시잖아. 만약 손자를 돌보고 싶어 하시면 우리 집에서 같이 살 수도 있고 몇 년 후 내가 퇴직하면 그땐 나도 같이 부담할 수 있잖아. 이렇게 많은 후원자가 뒤에서 보호하고 있을 텐데 뭘 더 걱정해.”남우영의 말을 들은 이다은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그제야 마음의 안정을 찾고 감격에 목이 멘 채 말했다.“고마워, 우영아.”남우영은 행복한 얼굴로 이다은의 이마에 키스했다.이렇게 모든 일들은 다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10개월 뒤, 남씨 가문에서는 큰 경사를 맞이하게 되었다.남우영과 이다은의 딸은 전 달에 이미 출산 되였
지구 반 바퀴를 여행하고 돌아온 이다은은 여행 내내 헛구역질을 하고 졸리고 피곤한 증상으로 몸에 이상한 변화를 느껴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검사 결과는 예상한 대로 임신으로 나왔고 이다은의 마음은 한편으로 격동되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했다.여자는 임신하면 매일 집에서 남편을 돕고 애만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 온 이다은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너무 사랑하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천천히 노력하고 있기에 일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병원에서 진료를 마친 이다은이 집에 도착하자 함께 여행했던 부모님들도 선물을 들고 돌아와 집에 계셨다.“아빠, 엄마.”이적과 김연아는 아직 여행의 행복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고 이다은의 인사도 듣지 못한 채 남우영과 여행 중의 풍경들을 얘기하고 있었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소리를 듣고 바로 일어나 옆에 다가서며 그녀의 손을 잡고 물었다.“이다은, 이른 아침에 어딜 다녀온 거야? 눈떠보니 없던데.”이다은은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침 산책 갔다 왔어.”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부모님들이 우리 선물까지 사서 챙겨 오셨어.”김연아는 만면에 웃음꽃을 띤 채 말했다.“다은아, 엄마는 태어나서 처음 외국 여행 가봤고 너무 재밌었어. 사돈한테 정말 고마워.”이번 여행을 통해 김연아와 이적은 마음속의 모든 불안과 열등감을 떨쳐내고 대가족에 합류하게 되었다.그들은 그제야 딸이 아주 훌륭한 남편에게 시집을 갔고 시댁도 교양 있고 너무 좋은 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다은은 어머니가 주는 선물을 받으며 말했다.“고마워요, 엄마.”이번 여행으로 인해 이적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차분하게 말하며 얼굴엔 참을 수 없는 웃음을 하고 있었고 김연아도 그냥 말을 받아치며 사돈들이 어떻게 잘해주었는지 얘기하고 있다가 점심까지 먹고서야 본인의 집으로 돌아갔다.남우영이 이적 부부에게 그들이 여태 만져본 적이 없는 큰 액수로 평생 쓰기에 충분한 예단값과 별장 한 채를 주었기에 두 사람
괜찮은 계획이라 생각한 남우영도 바로 동의하며 말했다.“그럼 우리 여행 코스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다음 주에 출발하는 건 어때?”이다은은 두 손으로 남우영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래 좋아, 그럼 우리 일단 일어나서 지도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우리들만의 여행결혼식을 준비하자.”남우영은 일어나려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베개 위로 올려 누르며 말했다.“계획은 내일 짜면 돼. 나 지금 아주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이 있단 말이야.”이다은이 이어 말하려 하자 남우영은 머리 숙여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며 입막음해 버렸고 그렇게 둘은 또다시 한 몸이 되었다.일주일 뒤, 이다은은 또다시 공아영의 변호사한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고 공아영이 사과의 말과 함께 용서해 주기를 바라며 남하준에게 사정하여 그녀를 용서해 달라는 말을 전달해달라는 내용이었다.이다은은 법률은 공평하고 공정하다는 것만 믿고 이 일을 더 이상 상관하지 않았다.예전에 이다은의 학위를 도용했던 여민지도 이미 남우영에 의해 감방에 보내졌는데 사람을 찾아 이다은의 아버지를 때리고 어머니를 해치고 부모님의 집마저 허물게 한 공아영의 죄는 더욱더 큰 처벌을 받아야 했다.공항 대기실에서 이다은은 남우영이 준 설계도를 보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그녀는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설계도를 보다가 갑자기 속이 울렁거림을 느끼면서 입을 막고 헛구역질만 하고는 또 눌린 듯하여 심호흡을 한번 하고 계속해서 보았다.이때 화장실에서 나온 남우영은 이다은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다은아, 우리 이제 탑승해야 해.”이다은은 가방을 메고 자리에서 일어나 남우영과 함께 대기실에서 나왔다.남우영과 이다은은 얘기를 주고받으며 즐겁게 걸어가고 있다가 갑자기 앞에 4명의 익숙한 얼굴들이 만면에 환한 웃음을 띠고 나타나자 너무 놀라 자리에 멈춰 섰다.“아빠, 엄마.”이다은과 남우영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어떻게 되어 여기까지 오셨어요?”중요한 건 그들은 모두 트렁크를 챙겨 들고 손에는 탑승권과
이다은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남우영을 천천히 안아주며 수줍은 말투로 단호하게 말했다.“남우영, 내 맘에 너밖에 없어.”남우영은 몸이 살짝 굳어지더니 정신이 번쩍 들면서 격동되고 갈망하는 눈빛으로 이다은을 마주 보며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다시 말해줘, 다시... ”이다은은 부드러운 말투로 이어 말했다.“남우영, 나 너 좋아해.”남우영은 감동되어 눈시울을 붉히며 바로 이다은을 품에 꼭 껴안으며 말했다.“다은아... 이다은... ”그는 격동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이다은의 귀에 대고 이름만 불러댔다.“넌 날 좋아해?”이다은이 부끄러워하며 묻자 남우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내가 널 사랑하는 건 너도 이미 알고 있잖아.”“그래도 또 듣고 싶어.”남우영은 모든 진심을 담아 뜨거운 눈길로 이다은을 바라보며 말했다.“사랑해 이다은, 엄청 많이 사랑해.”너무 껴안은 탓에 숨 막힌 이다은은 남우영을 밀어내며 말했다.“나도 사랑해. 하지만 우리 이제 일어나 출근해야 해.”“우리 오늘 출근 안 해.”남우영은 일어나려 하는 이다은을 다시 안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으며 품에 꼭 껴안았다.이다은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럼 화장실엔 가도 되는 거지?”“그럼, 당연하지.”남우영은 말이 끝나기 바쁘게 이다은을 안고 화장실로 향했다.품에 안긴 이다은은 부끄러워 발버둥질하며 말했다.“내려줘, 나 혼자 갈 수 있단 말이야.”남우영은 이다은의 이마에 뽀뽀하고는 말했다.“내가 안아다 주고 다시 안아올 거야. 오늘은 너 어디도 못가, 내 옆에만 있어야 해.”이다은은 낮은 소리로 달래며 말했다.“남 대표님, 진짜 출근 안 해도 되는 거예요?”“난 오늘 너랑만 있을 거야.”남우영은 사랑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화장실로 들어갔다.화장실에서는 히히 닥닥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일주일 뒤, 이적은 퇴원했고 남우영은 그들을 새로운 집으로 모시고 가사도우미 두 명까지 안배해 줬다.평생 남 밑에서 일만 해온 이적과 김연아는 난생처음 이런
그러자 정안이가 옆에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공짜라는데 받으셔야죠.”이적은 바로 수표를 받아 쥐고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공혁재는 돈까지 내밀었으니 이 일은 이렇게 끝나는 줄만 알고 말했다.“그럼 저는 손녀를 데리고 이만 물러나겠습니다.”말이 끝나기 바쁘게 공혁재는 공아영의 손을 잡고 병실에서 나갔다.공아영은 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아 뒤돌아 이다은을 쏘아보면서 공혁재에게 끌려 나갔다.병실 안은 그제야 조용해졌고 어색한 분위기가 되자 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한 채 또다시 서로를 쳐다만 보았다.이때 정안이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하준 오빠, 저 사람들 이대로 내버려두면 안돼.”남하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정안이의 손을 잡고 어루만지며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걱정하지 마, 내가 반드시 사돈 부부를 위해 정의를 되찾아 드릴 테니까.”정안이는 그제야 안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이적과 김연아는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감동되어 고마움을 금치 못했다.이번 사돈 보기는 이적이 병상에 누워 있은 탓에 짧은 시간에 끝나 버렸고 이다은과 남우영은 양가 부모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향했다.돌아가는 길에 남우영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갑자기 뒤에서 이다은을 꼭 껴안아 줬다.깜짝 놀란 이다은은 그 자리에 경직되어 긴장하면서 물었다.“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남우영은 눈을 감고 이다은의 뒷목에 얼굴을 갖다 대면서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미안해 다은아, 나 때문에 이런 일까지 당하게 해서.”“왜 나한테 사과하는 거야?”“공아영의 일로 널 힘들게 해서 미안해.”이다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껴안고 있는 남우영의 손을 만지면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네가 잘못한 거 아니야, 나한테 사과 안 해도 돼.”“널 힘들게 했으니 내 잘못이야.”그의 말에 이다은은 그대로 멍하니 서 있으면서 마음속으로는 더없이 감동했다.“비록 네가 날 위해 질투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공아영 문제로 이렇게 힘들게 할 줄은 몰
교만하고 무지막지한 공아영은 여태 할아버지는 빽이 많아 돈과 권력으로 모든 일을 해결해 낼 수 있었으니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하여 공아영도 눈에 뵈는 것이 없이 커왔고 나라 장군 앞에서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공혁재는 당황해하며 작은 소리로 타일렀다.“얼른 도련님 부인한테 사과해.”공아영은 이다은을 가리키며 화를 내며 말했다.“저 여자가? 도련님 부인이라고요? 웃기시네, 사과해도 저 여자가 저한테 사과해야죠.”공혁재는 당황하여 진땀을 뻘뻘 흘리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고 남우영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겨우 참고 있었으며 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공아영은 이미 그를 원망하며 말하기 시작했다.“남우영, 넌 어떻게 된 일인지 전혀 모르면서 내 연락처를 차단하고 계약까지 해지해? 너 너무 하는 거 아니야?”옆에서 듣고 있던 정안이는 이 일을 아들이 제대로 처리 못 하면 부부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기에 조마조마해 식은땀을 흘리며 얼른 받아치며 말했다.“공아영 씨, 부탁인데 본인의 위치를 잘 알고 말씀하세요. 제 아들은... ”정안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공아영은 뒤돌아보며 한마디 쏘아붙였다.“사모님, 전 남우영한테 물어본 거고 사모님한테 물어본 거 아니니까 그렇게 앞질러 대답할 필요 없어요.”정안이는 윗사람한테 버릇없이 쏘아붙이는 공아영의 오만무례함에 충격을 받고 하던 말을 멈추었다.세상에나! 이 여자의 시건 방지함이 이렇게 지나치다니.남하준은 새파랗게 된 얼굴로 주먹을 불끈 쥐더니 곧 폭발할 것만 같았지만 정안이가 옆에서 그의 주먹을 내리며 좀만 더 참으라고 손짓했다.공아영은 다시 남우영을 보며 분노하며 말했다.“남우영, 왜 대답이 없어? 내가 지금 너한테 묻고 있잖아.”남우영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뻗쳐 더는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공아영, 잘 들어. 난 너의 그 어떤 해석도 필요하지 않아. 다만 너 때문에 내 아내가 기분 나빴다는 것만으로 널
그 뒤로 김연아는 현실만 믿고 더 이상 드라마에 나오는 텃세 부리는 부잣집 여자 역을 믿지 않았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가서 앉았고 두 사람도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필경 양가 부모님이 처음 뵙는 자리인 데다 것도 병원이라니, 자칫하여 부모님들 사이가 나빠지면 그 둘의 미래도 그다지 좋지 않을 것이 뻔했다.이다은은 손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했고 옆에서 눈치챈 남우영은 휴지를 꺼내 손바닥을 닦아 주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긴장 안 해도 돼. 너도 보다시피 우리 엄마 아빠 다 좋은 분들이셔.”이다은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너 나보다 더 긴장한 거지?”남우영은 가볍게 웃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필경 장인 장모 앞이라 그도 긴장된 건 사실이었다.남하준은 사람들 앞에서 항상 말이 없는 편이라 이 순간도 화제를 찾을 수가 없었다.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하고 두려워서 지금까지도 많이 어색해하며 혹시 말 한마디 잘못하여 딸을 더 번거롭게 만들까 봐 걱정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정안이는 얼른 화제를 꺼내 말했다.“연아 언니, 듣자 하니 회사에서도 잘리셨다면서요?”“네, 맞아요.”“그럼 그 회사에서 보상은 해줬어요?”정안이의 물음에 김연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런 작은 가사도우미 회사들은 평소에 잡일들만 많고 합동서도 안 쓰는데 무슨 보상이 있겠어요.”정안이는 뒤돌아 남하준을 보며 말했다.“하준 오빠, 들었지?”남하준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들었어. 사람 시켜 어찌 된 일인지 잘 알아보고 배상할 건 배상하고 처벌할 건 처벌하고 하나도 빠짐없이 내가 잘 처리하도록 할게.”김연아와 이적은 너무 놀라 막연하게 두 눈만 깜빡거렸다.이때 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모두의 시선은 현관문 쪽으로 향했다.“도련님, 사람들 도착했습니다.”밖에서는 위엄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또다시 긴장한 김연아는 낮은 목소리로 옆에 있는 정안이에게 물었다.“또
손에 꽃바구니를 들고 있던 정안이는 웃으며 말했다.“제대로 찾아온 거 맞아요 사돈, 저희는 사돈 뵈러 왔어요.”사돈이라는 두 글자에 침대 위에 누워있던 이적마저 놀라 서둘러 다친 몸을 가누며 억지로 일어났다.김연아도 너무 놀라 허둥지둥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남하준의 손에 쥐여있는 선물부터 받아 내려놓았다.남우영이랑 이다은은 두 번째 엘리베이터를 탄 탓에 아직 병실에 도착하지 못했다.김연아에게 선물을 넘긴 남하준은 얼른 이적한테로 다가가서 어깨를 눌러 눕히며 말했다.“이적 씨는 다치셨으니 일어나실 필요 없어요. 얼른 누워계셔요.”“남 장군님, 저...”이적은 당황한 나머지 말도 못 했다.김연아는 손까지 떨면서 겁에 질린 눈빛으로 정안이를 바라보며 혹시 아까 두 사람이 싸운 내용을 들었을까 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남하준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장군이라고 부르시는 게 이렇게 서먹서먹한데 당신 부부 둘 다 저보다 나이가 많으시니 이적 형이라 부르고 다은이 어머님은 연아 누나라고 부를 테니 저한테 그냥 하준이라 불러요.”정안이도 다가와 남하준에게 기대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이적 오빠, 연아 언니, 저한테는 완자라 불러주시면 돼요.”이 말을 들은 김연아는 얼굴이 빨개졌다.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송구스러워서였다.앞에 있는 이 부부는 젊고 멋있고 이쁠 뿐만 아니라 권력도 막강한데 텃세 하나 없이 너무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이 순간 김연아는 자신이 추측했던 것들이 부질없는 짓이라 생각하게 되었다.이적은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멍해 서 있는 아내를 급히 불렀다.“여보, 얼른 사돈에게 의자를 가져다드리지 않고 뭐해.”김연아는 그제야 반응하여 얼른 대답했다.“으...응.”정안이는 그들이 이렇게 어색하고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고 급히 가서 김연아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그러지 않아도 돼요. 저희 절로 할게요.”정안이가 가까이 오자 김연아는 다시 몸이 굳어졌고 숨도 크게 쉬지 못했으며 자신의 구린 옷이 이렇게 고귀하고 예쁜 사돈의 옷
한편, 병실에서 한시간 넘게 잔 이적은 호사가 약 바꾸러 왔을 때야 잠에서 깼다.약을 바꾸고 나서 김연아는 이적에게 귤을 까주고 둘은 한 조각씩 나눠 먹으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딸이 고른 사위가 사람 참 괜찮네. 사 온 귤까지 너무 달콤해.”김연아는 감개무량해하며 말했다.이적은 귤 모양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이거 아마 엄청 비쌀걸.”“그럼, 큰 슈퍼마켓에 가면 이런 귤은 개별로 팔아. 소고기 양고기보다도 더 비싼 거야.”김연아는 달콤한 귤을 한 조각 입에 물고 말했다.이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호기심에 물었다.“우리 집이 저렇게 되었는데 사위한테 말하면 우릴 도와 해결해 주지 않을까?”김연아는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우리 이런 일로 딸한테 폐 끼치면 안 돼. 그런 말은 꺼내지도 마.”“내가 뭔 폐를 끼쳤다고 그래. 사위가 돈이 그렇게 많은데 이 정도쯤이야 그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잖아.”“입 닥쳐.”김연아는 분노하며 말했다.“그 사람이 돈이 있는 건 그 사람 일이야. 어쨌든 당신은 뻔뻔스럽게 손 내밀며 도와달라고 하면 안 돼. 우리가 아무리 가난해도 남의 것 탐내면 안 되는 거야.”“이 여편네는 항상 체면만 차리고 고집이 너무 세서 문제야.”김연아는 콧방귀를 뀌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사위 집안은 돈도 있고 권력도 있는 집안이라 우리 딸이 워낙 어울리지도 않는데 우리까지 사사건건 찾으면 사돈집에서 얼마나 귀찮겠어.”이어 이적은 시큰둥하게 물었다.“딸이 부잣집에 시집가면 그럼 부모도 모실 수 없다는 건가?”“당연히 모시겠지. 그것도 딸이 혼자 해야 하는 거지. 우린 최대한 사위 집안에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잖아. 그래야 딸의 결혼생활도 오래 갈 거잖아.”이적은 시큰둥하게 듣더니 몸의 상처도 생각 못 한 채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사위는 왜 우릴 모시면 안 되는 건데?”“그럴 의무가 없잖아.”“근데 돈이 많고 그냥 조금만 줘도 너랑 나 남은 생은 아무 걱정 안 해도 되잖아.”이적은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