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하룻밤 인연, 약혼남의 형과 사랑에 빠지다: Chapter 1301 - Chapter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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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01화 할 얘기 있어요
도준은 눈썹을 치켜 올렸다.“충성심이 없는 개하고 잘될 거 뭐 있어?”“왜 꼭 그렇게 말을 고약하게 해요?”두 사람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들은 터라, 저와 도준보다도 힘들었다는 걸 아는 시윤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하, 그래도 두 사람 사귀는 건 좋은 일이네요.”동정심이 발동한 시윤을 보며 도준은 비웃는 대신 손을 들어 그녀의 귀밑머리를 뒤로 넘겨주었다.“나 없는 이틀 동안 밖에 나가지 마. 내가 돌아오면 같이 산책하자.”“네.”시윤은 애틋하게 제 고개를 도준의 어깨에 기댔다.다음날.도준이 깨어났을 때 시윤은 여전히 침대에서 잠을 청하고 있었다. 도준이 몸을 숙여 시윤의 얼굴에 입을 맞추자 시윤은 불편한 듯 그를 뿌리쳤다. ‘양심 없기는.’도준은 화가 난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어제는 헤어지기 싫다고 그렇게 말하더니, 하루 지나니 싫어하네.’하지만 시윤이 어제 잠을 제대로 청하지 못한 걸 봐서 도준은 이불을 꼭 덮어주고는 시윤의 이마를 콕콕 찔렀다.“내가 꼭 기억하고 있겠어.”오전 10시.눈을 떴을 때 옆이 텅텅 비어 있자 시윤은 깨어날 기운조차 사라졌다. 결국 양현숙이 이불을 들추고 침대에서 끌어내서야 겨우 점심을 먹었다.그렇게 점심을 먹고 있을 때 윤영미가 허리 디스크 때문에 병원에 입원했는데 상태가 심각하여 함께 가지 않겠냐는 수아의 연락을 받게 되었다.윤영미는 은사일 뿐만 아니라 인생 선배이기에 가야 하는 건 당연했다....병실에 누워 있는 윤영미는 많이 초췌해 보였다.60도 넘은 나이에 평생 결혼하지 않아 아이도 없어 병상 주위에는 온통 학생들뿐이었다. 비교적 늦게 도착한 시윤에게 남은 건 문 쪽에 위치한 자리뿐이었다.하지만 시윤이 들어서자마자 윤영미의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이제 배가 불러왔는데 밖엔 왜 나왔어? 누가 너한테 이른 거야?”병상 옆에 서 있던 수아는 그 말에 이내 친구의 뒤로 몸을 피했다.시윤도 따라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변명했다.“쌤 보고 싶어서 왔죠.”“난 아주 잘 있으니 볼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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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02화 지난 일은 다 털어버려요
레스토랑에 도착한 뒤, 태준은 불편하게 앉은 시윤을 보자 얼른 웨이터에게 쿠션을 부탁했다.이에 시윤은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쿠션을 받아 자리에 앉고는 습관적으로 배에 손을 얹었다. 그 모습에는 이미 어머니의 부드러움이 담겨 있었다.태준은 그런 시윤을 한참 응시하다가 싱긋 웃었다.“7, 8개월 됐겠네요?”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7개월이야.”“아들이에요? 딸이에요?”“아들.”“아들이면 다루기 어렵겠는데.”“그러니까.”시윤은 눈을 내리깔며 제 배를 바라봤다.“아빠를 조금만 닮으면 감사할 따름이지.”물론 입으로는 원망하는 듯했지만 태준은 시윤의 표정에서 그녀가 얼마나 기대하는지 보아낼 수 있었다.이윽고 물을 한 모금 마시더니 말을 이었다.“난 내가 아름이 보살핀다는 말 들으면 윤이 씨가 싫어할 줄 알았는데.”“태준 씨는 아름 씨 오빠잖아. 보살피는 건 당연하지.”부드럽고 다정해진 시윤의 얼굴을 본 태준은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마치 축복이라도 하는 듯 입을 열었다.“행복한 것 같네요.”“응.”시윤은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지금 너무 행복하기에 더 이상 과거에 얽매여 원망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아까 태준이 아름의 얘기를 꺼냈을 때도 마치 지난 생에 벌어진 일인 것처럼 아무 느낌이 없었다.시윤은 제 배를 부드럽게 문지르며 완화한 표정을 지었다.“이런 말 하면 웃을지는 모르겠지만. 내 배 속에 새생명이 자라나고 있지만 왠지 우리 아이가 생긴 게 오히려 나한테 새 생명을 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더 이상 지난 일에 미련도 없어졌고.”태준은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잠깐 멈칫했다.“하긴, 지난 일은 다 털어버려요.”시윤은 태준의 말에 담긴 의미를 자세히 생각하지 않았다. 예전처럼 뭐든 복잡하게 생각하는 버릇도 이미 버린 듯했다. 그도 그럴 게, 지금은 두려울 게 없으니까. 게다가 도준이 저에 대한 사랑을 더 이상 의심하고 싶지 않으니까.어찌 보면 지난 몇 년 동안 시윤은 한 번도 도준을 솔직하게 대하지 못했다. 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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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03화 납치
뒷좌석에 앉은 시윤은 아름이 차에 오른 순간 바로 도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연결되자 시윤은 도준과 대화하지 않고 오히려 목소리를 높여 아름을 설득했다.“공아름, 지금 나 어디로 데려가는 거야?”안 본 지 2년 사이, 아름은 아름답던 모습이 사라지고 무서울 정도로 비쩍 말라 있었다. 나뭇가지처럼 여윈 손은 그동안 잘 케어 받았던 예쁜 손이 더 이상 아니었다. 심지어 손목에 그어진 몇 줄의 흉터는 보기에도 섬뜩했다.원래의 아름도 극단적이긴 했지만 지금은 마치 광증을 가진 여자에 가까웠다.백미러로 시윤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본 아름은 시윤의 불러 오른 배를 본 순간 눈에 독기가 서렸다.“당연히 널 지옥으로 끌고 가려는 거지.”독기 서린 아름의 말에 시윤은 소름이 돋아 손으로 제 배를 감싸면서 여전히 통화 중인 핸드폰을 바라봤다. 지금으로써 도준이 통화 내용을 듣고 저와 아이를 구할 방법을 생각하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아름은 잔뜩 긴장한 시윤을 보며 병적으로 크게 웃었다.“하하하, 왜? 무서워? 하긴, 넌 가진 것도 많으니까 잃는 게 두렵겠지. 그런데 난 아무것도 없어! 공씨 가문도 무너졌고, 네가 나한테서 도준 씨도 빼앗아 갔잖아.”“우리 오빠도 내가 널 다치게 할까 봐 집에 가둬놓고 내보내지 않았어! 내가 단식하든 자해하든 못 본 척했다고. 내가 미친 척하지 않았다면 날 병원으로 보낼 생각도 하지 않았겠지. 그럼 난 평생 집에 갇혀 살아야 했을 거야. 이게 다 너 때문이야!”구구절절 말하는 아름의 날카로운 목소리에는 한이 서려 있었다. 그러다가 마치 화를 풀기라도 하듯 엑셀을 쾅쾅 밟으며 속도를 점점 올리기 시작했다.점점 빨라지는 차 때문에 시윤은 눈꺼풀이 미친 듯 뛰기 시작했지만 차 문손잡이를 잡고 중심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그제서야 도준이 저를 구하기를 기다리는 걸 기다리면 늦을 수 있다는 걸 알아차린 시윤은 스스로 자신을 구하려고 방법을 물색하더니 아름과 대화를 시도했다.“공태준이 네 병을 치료해 주려는 것도 널 관심해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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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04화 이렇게 멍청할 줄 몰랐네
아름은 순간 설레어 차 속을 늦추었다.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입가에 냉소를 지었다.“내가 왜 이러는지 묻지도 않는 걸 보니 날 믿지 않는가 보네? 내가 지금 널 속인다고 생각해?”태준이 멀리 가지 않기를 바라며 문자로 도움을 청하던 시윤은 아름의 말을 듣자 대충 대답했다.“아니, 믿어. 도준 씨 같은 사람이 날 사랑할 리 없잖아. 그냥 잠시 재미 보려는 거겠지. 지금 마침 나한테 재미를 잃은 것 같으니까 가서 꼬셔봐. 바로 넘어갈지 누가 알아. 나한테 시간 낭비하는 것보다는 낫잖아.”“하하하...”아름은 갑자기 큰소리로 웃으며 말했다.“네가 이렇게 멍청할 줄 몰랐네. 정말 민도준이 너를 솔직하게 대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때 목숨 걸고 구해준 것도 정말이라고 믿는 거야?”시윤은 속으로 어이없었지만 겉으로는 아름에게 맞춰 연기를 했다. 그도 그럴 게, 그러지 않으면 아름이 엑셀을 밟아 속도를 미친 듯이 높일까 봐 무서웠으니까. 시윤은 심호흡을 하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뭐야? 도준 씨가 날 구해준 걸 네가 어떻게 알아?”아름은 이를 갈았다.“당연히 우리 오빠 덕이지. 오빠가 이성호의 부탁을 받고 그 폭발 사고가 진짜인지 조사했더라고. 역시 하늘은 내 편인지, 내가 마침 그 대화를 들어버렸지 뭐야.”아름이 헛소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던 시윤은 그 순간 아름의 말이 진짜라고 생각돼 눈살을 찌푸렸다. ‘오빠가 공태준에게 부탁했다고? 아직도 포기하지 않은 건가?’흥분하면 할수록 아름의 표정은 점차 광기가 차 넘치더니 시윤이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혼잣말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나도 공태준이 그렇게 바보 같은 줄은 몰랐어. 기회가 찾아왔는데 알려주지도 않다니. 그런다고 네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나 봐. 네가 그런다고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나? 꿈 깨라 그래! 내가 그 가면을 벗길 거거든. 민도준한테도 내 진심을 알릴 거고.”마지막 한 마디를 마치자마자 아름은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았다.“끼익-“곧이어 타이어가 바닥을 스치는 소리가 귀청 찢어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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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05화 계획된 촉발 사고
아름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리 없는 시윤은 도준이 목숨을 바쳐 저를 밀어내 구해주던 장면이 떠올라 눈시울이 붉어졌다.아무것도 모르는 시윤의 모습을 본 아름은 왠지 모를 쾌감이 샘솟아 이를 악물며 말을 꺼냈다.“원혜정이 널 납치했을 때 민도준이 폭발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구해줬다며? 그 때문에 본인은 상처를 입고 혼수상태에 빠졌고.”그 말을 들은 시윤은 점점 불안해졌다.“그걸 어떻게 알았어? 그것도 공태준한테서 들었어?”“응. 내가 그것만 알 것 같아? 사실 그 공장 안 탱크에 있던 액체는 미리 바꿔치기 됐어. 폭발 사고가 일어나도 죽을 리 없어. 제때 구해내기만 하면 공장 안에 있다 해도 살았을 거야.”아름의 말을 듣는 시윤의 표정은 마치 천자문을 듣는 것처럼 멍했다.‘바꿔치기?’“그럴 리가. 원혜정은 내 목숨을 노리고 납치했는데, 미리 바꿔치기할 리 없어.”시윤의 혼잣말을 들은 아름은 크게 웃어댔다.“원혜정? 하하하, 설마 원혜정이 그랬다고 생각하는 거야?”시윤은 그대로 얼어붙었다.“원혜정이 아니면, 도준 씨라는 건가?’“아니야, 그럴 리 없어.”“하하하!”아름은 미친 듯 웃기 시작했다.“안 될 거 뭐 있어? 가짜 폭발 사고로 네 개 같은 충성을 맞바꾼다면, 남는 장사 아닌가?”시윤은 호흡이 점점 가빠져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날 승우가 애타는 말투로 저에게 했던 말이 자꾸만 귓가에 맴돌았다.“민도준이 널 구해준 그때 마침 원씨 가문에 일이 터진 게 우연이라고 생각해?’‘원혜정이 민도준의 눈을 피해 경성에서 빠져나오고, 그렇게 순조롭게 널 납치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해?’‘민도준이 깨어난 시기도 딱 들어맞잖아. 그 편지를 너랑 엄마한테 들키자마자 깨어났어. 깨어날 때가 돼서 깨어난 걸까? 아니면 더 이상 연기할 필요가 없어져서 깨어난 걸까?’심지어 아까 태준이 어렵게 말을 삼키던 모습과, 마지막에 했던 의미심장한 한마디, ‘지난 일은 다 털어버려요.’모든 퍼즐이 맞아떨어지면서 시윤의 믿음을 흔들기 시작했다.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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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06화 민도준이 이 모든 걸 설계했어
아름은 가뜩이나 혼란스러워하는 시윤에게 점점 접근하며 귀청 찢어질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민도준은 네가 납치당할 거라는 거 진작 알고 있었어. 민도준이 이 모든 걸 설계했어. 널 본인에게 충성하는 개로 만들려고! 그런데 웃기게도 넌 그런 사람이 널 사랑한다고 착각하고 있다니.”“민도준이 널 사랑하면, 네 안전도 고려하지 않고 원혜정 손에 넘어가는 걸 두고 봤겠어? 민도준이 민재혁을 죽였는데, 원혜정이 원한을 갖고 정말 널 죽이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그 사이 남자들을 불러 널 겁탈하게 하면 어떡하려고? 그건 생각해 봤어?”시윤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배를 안고 뒷걸음쳤다.그러면서도 여전히 머리를 저으며 이 사실을 부정했다.“아니야. 도준 씨가 그럴 리가 없어!”“그럴 리 없다고? 하하하, 민도준이 정신과 의사를 만난 게 치료를 받기 위한 거라고 생각해? 아니, 사실 민도준은...”“아름아!”아름의 말은 그 순간 끼어든 목소리에 끊기고 말았다. 몸을 돌려 확인했더니 그곳에는 사람을 데리고 달려온 태준이 서있었다.아름은 태준이 이렇게 빨리 쫓아올 거라고 생각지 못했는지 시윤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너지? 네가 공태준 불러왔지? 그렇다면 같이 죽자!”아름은 미리 준비한 가위를 꺼내 시윤을 향해 힘껏 찔러댔다.몸이 무거운 탓에 움직일 수 없었던 시윤은 몸을 돌려 제 배를 보호할 수밖에 없었다.해지만 예상했던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돌아봤더니 태준이 손으로 가위를 꽉 잡고 있었다.그사이 꽁꽁 묶인 아름은 바닥에서 버둥대면서 소리 질렀다.“이거 놔! 저년 죽여버릴 거야! 저년만 죽이면 민도준이 날 사랑할 거라고! 이거 놔! 이거 놔.”“...”아름의 악에 받친 목소리는 점점 멀어져갔지만 시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그때 태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미안해요. 내가 아름이 잘 감시하지 못한 탓에 마취제를 숨겨 간병인을 기절시키고 도망쳤더라고요. 난 아름이 미쳤다고 생각해서 병원에 데리고 가려고 했는데, 그게 연기일 줄 몰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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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07화 허상
잠깐 멈칫하던 태준은 조심스럽게 되물었다.“혹시 아름한테서 들었어요?”‘아니’라는 대답이 아닌 반문.그 반문을 들은 순간 시윤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나...”그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시윤은 커다란 품에 꼭 안겼다.도준이 어느새 경성에서 돌아온 거였다.그 상황을 본 태준은 의심을 피하려고 뒤로 물러났다.“민 사장님이 돌아왔으니, 전 가볼게요.”“잠깐.”도준은 갑자기 태준을 불러 세우더니 위험 가득한 목소리로 경고를 날렸다.“공아름을 처리하지 않으면 내가 직접 처리할 거야.”도준의 살기 어린 눈빛을 본 태준은 잠깐 침묵하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처리할게요.”이윽고 태준은 고개를 숙인 채 도준의 품에 안겨 있는 시윤을 바라봤다.“윤이 씨가 많이 놀란 것 같으니 잘 위로해 줘요.”“내 아내는 내가 알아서 위로할 테니, 공 가주님이 상관할 일은 아닌 것 같은데.”“그래요,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태준이 떠난 뒤 도준은 시윤을 복도 벤치에 앉히고는 허리를 숙여 바라봤다.“놀랐지?”“왜 이제야 왔어요?”시윤은 고개를 숙인 채 머리로 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도준은 그런 시윤을 탓하는 대신 그녀의 머리를 제 품에 눌렀다.“늦어서 미안해.”도준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장난기가 가득 담겨 있었지만 시윤의 눈앞은 이미 희미해졌다.손을 들어 도준의 허리를 꼭 껴안은 시윤은 제 머리를 그의 몸에 기대 눈물을 훔쳤다.복도를 오가던 사람들은 두 사람을 힐끗힐끗 바라봤지만, 도준은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들어 시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이제 안 갈게. 앞으로 계속 옆에 있을 테니까, 이런 일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야.”시윤은 그 말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눈물은 어느새 도준의 옷에 퍼지며 어둡게 변해갔다.당장이라도 아름의 말이 사실인지, 그 폭발 사고를 미리 예측하고 있었는지, 그때 저를 구해준 것도 계획이었는지 묻고 싶었지만, 시윤은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제가 원하는 답이 아닐까 봐, 지금의 행복이 모두 허상일까 봐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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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08화 아이의 이름
그 뒤 며칠 동안 두 사람의 일상은 예전과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었다.매일 아침 식사를 마치면 도준은 시윤과 함께 아래층에서 산책하고, 가끔 시윤이 기운 날 때면 아이 옷을 쇼핑하곤 했다.그러다 가끔 골든 빌라로 가 둘만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그 사이, 도준은 별장 하나를 거 구매하려고 했지만 시윤이 거절했다. 그도 그럴 게, 집이 너무 크면 오히려 쓸쓸하기도 하고, 골든 빌라도 있기에 필요가 없었으니까.때문에 8달째 될 때 두 사람은 골든 빌라에 아기방을 만들었다.벽은 핑크색과 파랑색으로 하고, 모두 천연 재료로 장식한 뒤, 보름 동안 냄새 제거를 하고 나니 아이는 어느새 9달이 됐다.언제든지 출산할 수 있을 때라 시윤은 몸이 나날로 무거워져, 앉을 때거나 몸을 뒤척일 때도 도준의 도움이 필요했다.결국 안전을 위해 외출 횟수를 줄인 시윤은 평소에 아기방에서 시간을 보내며 미리 준비해 둔 아이 장난감과 옷을 만지는 일상을 반복했다.그때면 도준도 매번 시윤의 곁에 있었지만, 나날이 지나면서 제가 곁에 있을 때랑 없을 때 시윤의 표정이 확연히 다르다는 걸 눈치채고는 시윤 혼자 편히 아기방에 있도록 내버려두었다.그리고 오늘, 두 사람은 식탁 앞에 앉아 조용히 식사했다.도준은 시윤이 앉는 게 불편할까 봐 미리 의자를 주문 제작했었다.조용한 공간에 젓가락이 그릇에 부딪히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요즘 따라 답답함을 느낀 시윤은 몇 젓가락 입에 대더니 이내 수저를 내려놓았다.도준은 그런 시윤을 힐끗 바라봤다.“더 안 먹어?”시윤은 입을 닦고는 숨을 돌리고 나서 대답했다.“배불러요.”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저를 부축하려는 도준을 밀어냈다.“앉아서 먹어요. 나도 앉아서 물 좀 마시고 있을게요. 안 그러면 혼자 다시 먹기 시작할 때 입맛 없을 거잖아요.”분명 관심하는 말이었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서 있는 것 같았다.늘 민감한 도준은 당연히 그 분위기를 읽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준도 출산을 앞둔 시윤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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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09화 사랑이 뭐예요?
이름 때문인지 그날 밤 자기 전 시윤은 제 손가락으로 도준의 손가락을 살짝 걸었다.그러자 도준은 시윤의 손에 입을 맞추며 꼭 잡았다.“오늘은 웬일로 날 상대해 주네?”물론 농담 섞인 말이었지만 요즘 시윤이 저를 피하는 걸 콕 집어냈다.그날 화학공장에 간 뒤로 시윤은 따져 묻지도, 그렇다고 냉전을 하지도 않았지만 도준과 벽이 생겨난 것처럼 거리를 두었다. 그걸 도준은 당연히 눈치채고 있었다.그 말에 시윤이 눈을 내리깔았다.“도준 씨.”“응.”‘혹시 나 속인 적 있어요?’시윤의 입안에서 맴돌던 질문을 삼키고 입을 열었다.“나 사랑해요?”“응.”분명 확신에 담긴 대답이었지만 시윤은 기뻐할 수 없었다.“그럼 도준 씨한테는 사랑이 뭐예요?”이런 질문에 도준은 지금껏 한 번도 대답한 적이 없다.허무맹랑한 질문에 허무맹랑한 대답을 내놓는 건 크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하지만 감정 기복이 심한 시윤에게 대답을 주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울 것만 같아 결국 잠깐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난 자기 아니면 안 돼.”시윤은 눈을 뜬 채 천장을 멍하니 바라봤다.“만약 전 도준 씨 아니어도 된다고 하면요?”말이 끝나기 바쁘게 시윤의 입에서 낮은 신음이 튀어나왔다. 그도 그럴 게 도준이 갑자기 손을 꽉 잡았기 때문이다.그때 도준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내가 자기 아니면 안 되면 자기도 그래야 할 거야.”시윤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하긴, 도준 씨는 처음부터 이런 성격이었지.’‘원하는 걸 못 가진 적이 없지.’‘민씨 가문도, 백제 그룹도, 공씨 가문도, 심지어 나까지.’육식하는 늑대에게 풀을 먹으라 하는 건 해가 서쪽에서 뜨는 것만큼 불가능한 일이다.출산일이 가까워진 것 때문인지 시윤은 가슴이 점점 답답해 입을 꾹 다물고 어둠 속에서 눈을 감았다....출산일이 마침 설날이라 전날 양현숙과 시영은 모두 빌라에 모여, 한순간 시끌벅적해졌다.좋은 식재료를 갖고 온 양현숙은 오자마자 주방으로 향했고, 시영더러 시윤의 말동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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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10화 우리 이혼해요
양현숙은 시윤의 반응에 대충 눈치채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다 늙은 내가 뭘 알겠어? 그런데 가끔 아무것도 모르는 게 행복할 때도 있어. 나랑 네 아빠를 봐, 지금 따지고 싶어도 따질 데도 없어. 사람 인생은 고작 몇 십 년밖에 없어. 기쁘게 살날도 많지 않은데, 왜 서로 곤란하게 해?”시윤은 그 말이 도무지 귀에 들어오지 않아 양현숙을 잡은 채 따져 물었다.“엄마, 도준 씨가 혹시 엄마한테 무슨 말 했어요? 아니면 도준 씨가 저 속이는 거 진작 알고 있었어요? 말해요, 얼른 말해요!”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시윤이 계속 다급하게 따져 묻자 양현숙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나도 추측한 것뿐이야. 네 오빠가 고집은 세도, 나쁜 사람은 아니잖니. 아무 연유도 없이 그렇게 고집부릴 성격도 아니고.”그 말을 들은 순간 시윤은 양현숙의 손을 놓은 채 멍을 때렸다.“하긴, 아빠 일만 제외하면, 오빠가 그동안 날 얼마나 아껴줬는데. 뜬금없이 도준 씨를 모함할 리가 없지. 그런데 전 그때 도준 씨만 생각하느라 오빠 말 무시했어요.”양현숙은 안색이 안 좋은 시윤을 보자 다급히 위로했다.“다 지난 일이야, 지금과 미래가 제일 중요하잖아. 본인 생각 안 해도, 아이 생각은 해야지. 속상해하지 마.”불룩 튀어나온 제 배를 보던 시윤은 순간 어두워졌다. ‘아이, 또 아이네...’한때 시윤에게 행복을 안겨줬던 아이는 지금 이 순간 무형의 속박이 되어버렸다.“슬퍼하지 말라니...”시윤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어떻게 안 슬퍼해요? 만약 이 모든 게 거짓말이라면, 이 결혼을 이어나갈 이유가 없잖아요.”“자기야, 지금 그게 무슨 말이야?”이제 막 서재에서 나온 도준은 언제부터 듣고 있었는지 가라앉은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그러자 양현숙이 먼저 당황한 듯 끼어들었다.“아, 윤이가 임신한 것 때문에 생각이 많아졌나 봐, 내가 잘 타이를게.”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모든 걸 손에 쥐고 있다는 듯 자신만만한 남자를 바라보다 보니 시윤은 문득 황당하게 느껴졌다.‘내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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