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커튼 사이에 손가락 넓이의 틈이 생겨 바깥의 빛이 들어왔다. 엄혜정은 몸과 고개를 돌리지 않고 그대로 누워있었다. 그녀는 육성현이 침대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있다면 허리에 그의 손이 얹어져 있었을 테니까. 엄혜정은 가운데의 한 줄기 빛을 5분 동안 쳐다보다 피곤해서 일어났다. 침대 머리맡의 버튼을 누르자 안쪽의 커튼이 열려 얇은 거즈커튼만 남았다. 이렇게 하면 방 전체가 밝아지지만 햇빛 때문에 눈부시진 않았다. 엄혜정은 침대에서 내려와 아픈 몸을 이끌고 옷방으로 갔다. 첫날, 둘째 날, 셋째 날에는 어떻게 해서 제시간에 회사에 갈 수 있었는데, 나흘째가 되자 그녀는 너무 피곤해서 아무리 애써도 일어나지 못했다. 야근을 계속하면 몸이 최고 상태를 유지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엄혜정은 옷을 꺼내 바깥의 동정을 들었다. 그리고 재빠르게 약병을 열어 안에 있는 알약을 입에 쑤셔 넣었다. 육성현이 발견할까 봐 엄혜정은 지금 물을 마시지 않아도 약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약이 작아서 물 없이 삼켜도 큰 부담은 없었다. 육성현은 아이를 가지는 일에 집착이 심했다. 요즘은 배란기간이라 매일 약을 먹어야 했다. 두 알, 세 알씩 먹고 싶었지만 몸에 이상이 올까 봐 그러지 못했다. 엄혜정은 10시가 되어서야 회사에 갔다. 그녀는 도착하자마자 육성현에게 커피를 타 주었다. 노크하고 들어가니 안에 다른 고위층들이 육성현과 회사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다. 그들은 커피를 들고 들어오는 비서에 대해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커피를 육성현의 손에 놓고 막 떠나려던 참에 육성현이 말했다. “너 기다려.” 엄혜정은 옆에 서서 가지 않고 기다렸다. 그러자 고위층이 계속 말했다. 엄혜정은 원래 편하게 듣고 있었는데, 갑가지 놀라 몸이 파르르 떨렸다. 육성현이 길쭉한 손가락에 금속 만년필을 끼워 가볍게 그녀의 다리를 긁었다. 금속의 차가운 촉감이 피부에 닿자 엄혜정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육성현은 고위층의 보고를 들으면서 커피를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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