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자 나뭇가지가 춤을 추듯 흔들렸다. 실내는 적당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고 있어 아주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문설아가 작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아빠, 상대가 상아가 아니었다면 그냥 넘어갔을지도 몰라. 하지만 이 일은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아.”그녀는 솔직한 기분을 이야기했다.문기훈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걔는 신경쓸 거 없어. 네가 둘 사이를 갈라놓았다는 생각도 하지 마. 애초에 네가 아니었어도 다른 집안 좋고 학벌 좋은 여자랑 결혼했을 거야. 이상준은 정략결혼이 꼭 필요했으니까. 이상준의 가문에서 신분도 불분명한 사생아를 며느리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을 거야. 다 아빠 잘못이야. 애초에 걔를 집으로 데려오는 게 아니었어.”문설아는 말없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그녀는 엄마가 다르다고 해서 문상아를 차별한 적 없었다.언니로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주었다.하지만 문상아가 왜 이런 식으로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문설아는 눈을 질끈 감고 문기훈의 얘기를 들었다.“설아야, 이런 말을 해서 정말 미안하지만 이혼이라는 게 경솔하게 결정할 일은 아니야. 이상준 그 녀석도 사과하러 온대. 네 시부모님들도 이쪽으로 오는 길이래. 그쪽에서 먼저 우리에게 고개를 숙였어. 인연이라는 건 참 소중한 거야. 홧김에 이혼했다가 후회하는 경우가 더 많아. 너 상준이 좋아하잖아?”이상준과 첫 맞선을 보고 돌아왔을 때, 문설아는 그가 참 만족스럽다고 말했다.결혼한 뒤로 깨가 쏟아지게 서로를 사랑하지는 않았지만 문설아도 충분히 이상준에 대한 호감을 드러냈다.그래서 가족들은 두 사람이 이혼할 정도로 사이가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만약 한순간의 화를 못 참고 이혼한다면 문설아에게는 이혼녀 딱지가 계속 따라다니게 된다.문설아는 잠시 침묵하다가 다시 눈을 뜨고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아빠, 나 그 사람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아.”문기훈은 딸을 한참 바라보다가 말했다.“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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