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를 피우는 그녀의 모습은 지독히 유혹적이었다.키가 작아서 카리스마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만의 치명적인 매력이 강조되었다.그가 아는 유영은 단아하고 품위 있고 사려심 깊은… 술과 담배와는 거리가 먼 여자였다.그런데 집게손가락으로 담배를 들고 눈을 가늘게 뜬 그 모습은 마치 오랜 고독을 삼키며 살아온 쓸쓸한 여인처럼 비춰졌다.“당신은 좋아서 피우잖아.”“이유영!”“그 여자 누구야?”유영이 웃으며 물었다. 딱히 그 여자가 신경 쓰여서 물어보는 것 같지는 않았다.그런 태도에 강이한은 가슴이 아팠다.“딱 보니까 좋은 집안에서 곱게 자란 아가씨던데 당신이랑 어울리네. 진 여사님 안목은 항상 탁월하지.”“그만해!”남자가 으르렁거리듯 경고했다.준수했던 얼굴이 분노로 험하게 일그러졌다.반면 유영은 덤덤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계속해서 말했다.“그 여자한테 망막을 내놓는 대가로 세강의 안주인 자리를 준다고 하면 그 여자는 어떻게 나올까?”남자가 마른침을 삼키더니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지금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당신은 줄곧 그런 식으로 나를 대했잖아. 난 내세울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마음대로 짓밟아도 좋다고 생각한 거 아니야?”비난이 아닌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말투였다.강이한은 고개를 들고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지난 번에 싸운 뒤로 그는 다시는 그녀의 앞에서 망막에 관한 얘기를 꺼내지 않았는데 그녀가 먼저 그 말을 꺼낼 줄은 몰랐다.강이한이 변명하듯 말했다.“일시적으로 빌려주는 거고 내가 다시 돌려놓겠다고 했잖아.”하!광명을 한지음에게 빌려주라고?일시적인 거라고?이 남자는 참 쉽게도 잔인한 말을 하는 습관이 있었다.유영은 채 타지도 않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끄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잠시 남자를 빤히 바라보다가 말없이 뒤돌아서 밖으로 향했다.“어딜 가겠다는 거야?”뒤돌아선 유영이 비웃음을 가득 머금은 얼굴로 말했다.“일시적인 거라고. 참 웃기는 말이야. 안 그래?”“그럼 그 여자한테 가서도 그렇게
“여보세요.”“네가 이런 말 듣기 싫어한다는 거 알아. 하지만 우리 가문은 더 이상 유영 그 아이를 품어줄 수가 없어!”진영숙은 대놓고 말했다.줄곧 마음에 들지 않았던 며느리였는데 드디어 그녀를 내쫓을 기회가 생겼으니 놓칠 수 없었다.강이한이 심드렁한 목소리로 물었다.“어머니는 그럼 누가 마음에 드세요? 유경원? 걔는 마음에 들어요?”“그래! 경원이 정도면 우리 가문에 어울리지.”진영숙이 기고만장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그러니까 그때 내 말 듣고 경원이랑 결혼했으면 얼마나 좋아? 적어도 이런 수치스러운 추문에 발목 잡힐 일은 없었을 거잖아?”강이한은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경원이 너 결혼한 뒤로도 너만 기다리며 살았어. 여자가 그 정도 했으면 남자로서 책임을 보여줄 때야.”강이한은 들으면 들을수록 머리가 지끈거렸다.유영이 전처럼 말 잘 듣고 고분고분했으면 이런 태클 정도는 얼마든지 막아줄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외부의 조그마한 압박에도 그는 참을 수 없는 짜증이 치밀었다.가정이 화목해야 모든 일이 잘 풀린다는 옛말이 그른 것 하나 없었다.“그렇게 걔가 좋으면 어머니가 데리고 살면 되겠네요.”“너 그게 무슨 말버릇이니?”진영숙의 앙칼진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전해졌다.“내가 몇번이나 말했잖아요. 난 이유영이랑 이혼할 마음 없어요. 유경원한테 특별히 책임질 일도 한 적 없고요. 엄마가 그렇게 마음에 들면 본가에서 엄마가 걔를 데리고 살면 되잖아요. 어차피 우리 집에 돈은 넘쳐나니까 집에 숟가락 하나 더 얹는다고 집이 망하지는 않아요.”“이 무례한 녀석이! 넌 미쳤어, 미쳤다고!”수회기 너머로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이 들려오자 강이한은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어머니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그는 지긋지긋할 정도로 알고 있었다.그걸 알면서 그는 유영과 본가 식구들 사이에서 한 번도 중재를 한 적 없었다.그는 성격 좋은 유영이 이 복잡한 관계를 잘 처리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본가의 가족들도 그녀를 인정
강이한은 끊어진 전화기를 노려보다가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핸드폰을 바닥에 던졌다.이렇게까지 양보했는데도 아직도 부족한 걸까?어떻게든 살살 달래서 홍문동으로 돌아오게 할 계획이었다.세강의 안주인인 그녀에게 집은 이곳뿐이어야 했다.망막 기증을 그녀가 원치 않는다면 그것 역시… 양보할 생각이었다. 이래도 뭐가 부족한 걸까?생각할수록 짜증이 치밀었다.쨍그랑!옆에 있던 화분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눈에 보이는 대로 집어 던졌지만 화가 사그라들지 않았다.그는 더 이상 과거의 우아하고 자상한 남편, 강이한이 아니었다.반면, 유영은 순정동으로 바로 가는 대신, 소은지에게 전화를 걸어 술집에서 만나기로 했다.조금 짜증 나는 일이 많았지만 전생에는 감히 엄두도 못 내던 일을 해냈으니 축하받아 마땅했다.“팀원들에게는 일찍 돌아가서 쉬라고 하고 내일 회식해요.”유영이 조민정에게 말했다.조민정은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그래야죠. 수정한다고 다들 수고 많았으니까요.”성공한 오너의 배후에는 함께 노력하고 성장하는 직원들이 있었다. 유영에게는 비록 첫번째 창업이었지만 세강의 오너인 강이한과 오랜 세월 함께한 경험이 있기에 옆에서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예전에 강이한도 큰 건을 하나 해결하면 직원들에게 포상휴가를 주고 회식비를 지원했었다.약속 장소에 도착하자 소은지는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다.유영이 포르쉐에서 내리는 것을 본 순간, 그녀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뭐야? 이 씀씀이는? 그래, 어차피 아껴줘도 다른 여자가 쓸 거, 네가 쓰는 게 낫지!”물론 예전에도 유영은 근검절약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지금처럼 명품 차를 아무렇지도 않게 구매하는 행위는 하지 않았다.소은지로서는 친구의 이런 결과가 신기하고 대견할 따름이었다.유영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외삼촌이 선물한 거야. 그 사람이랑은 상관없다고.”“외삼촌이?”“그렇다니까?”“조카를 이 정도로 예뻐하는 외삼촌이 세상에 있다고?”소은지가 부
강이한에게는 뼈 아픈 실패이자, 유영을 지지하는 소은지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소은지는 생각할수록 흥이 올랐다.유영이 말했다.“얼굴 뒤집어진 건 당연한 거고 핸드폰 바닥에 막 던지는데 내가 다 소름이 돋더라고.”입찰 결과가 나왔을 때 보았던 강이한의 똥 씹은 얼굴을 생각하면 유영도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지금쯤 얼마나 화가 나고 억울할까?전에 그녀에게 넌 절대 강성건설이 요구하는 도면을 그려내지 못할 거라고 장담했던 그였다.그는 라이벌을 쉽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유일하게 능력치를 얕잡아본 사람이라면 아내인 유영이 유일했다. 그는 전업주부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했던 여자에게 뼈 저리게 패배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우리 유영이, 오구오구 잘했어.”소은지가 그녀의 어깨를 톡톡 다독이며 칭찬해 주었다.그렇게 얘기를 하면서 술을 마시다 보니 술맛마저 달게 느껴졌다.그렇게 클럽에서 신나게 마시고 노는 모습은 그대로 세강 오너 일가에게 전해졌다.또 한차례 집안이 뒤집힌 순간이었다.한편, 유영은 늦은 아침에 눈을 떴다. 어제 마구 달리다가 언제 순정동으로 돌아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정장 차림의 집사와 메이드복 차림의 고용인들이 공손히 계단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여기서도 알 수 있듯, 그녀의 외삼촌 정국진은 대놓고 화려함을 추구하는 성격이었다.그는 평소 고용인들의 예의범절과 품위에도 매우 엄격했다.“아가씨 일어나셨어요?”유영을 발견한 집사가 공손히 고개 숙여 인사했다.강이한과 함께 살면서 세강 일가도 꽤 화려하게 사는 편이라고 생각했었다.처음에는 그런 화려하고 대접하는 삶에 적응하기 무척 힘들어했다.그런 그녀에게 쏟아진 것은 진영숙 일가의 매정한 비웃음이었고 시간이 길어지자 고용인들마저 그녀를 우습게 아는 상황이 발생했다.그때는 그들의 삶이야 말로 최상의 삶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보다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았다.굳이 비교를 하자면 정국진은 평소에도 품위나 예의범절을 따지는
정국진의 평소 일 처리 방식이라면 기사가 나가기 전에 막았을 것이다.하지만 그는 먼저 유영의 의사를 묻는 것을 택했다.사실 정국진은 유영을 이미 로열 글로벌의 후계자로 염두에 두고 가르치고 있었다.그래서 결정권을 유영에게 맡긴 것도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단호함과 대처 능력을 길러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소식을 알게 된 뒤로 유영에게 전화 한 통 해주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그가 예상했던 대로 문제에 봉착했을 때, 유영은 먼저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일단 알겠어요.”유영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조민정이 물었다.“어떻게 할 거예요?”전에 그녀가 사람을 고용해서 잔인한 수단으로 상간녀를 응징했다는 기사가 떴을 때, 그녀는 이혼 서류를 공개하면서 여론을 순식간에 뒤집었다.유영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일단은 무시해요.”“무시하라고요?”“그 기사가 나한테 안 좋은 영향이라도 끼쳤나요?”“그건 아니죠.”그러고 보니 딱히 위협이 되는 건 아니었다.어차피 그들이 운영하는 오로라 스튜디오는 정국진의 인맥으로 돌아가고 있었다.유영이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그들을 흔들 수 없었다.유영은 곧장 차로 향하며 조민정에게 물었다.“왕 대표님 쪽에서 계약 해지 통보가 왔었다고 했죠?”“그래요.”조민정은 이 상황에서 거래처를 걱정하는 유영의 행보에 살짝 당황했다.하지만 정작 본인은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다.그녀는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강이한이 왕 대표를 협박한 증거를 찾아내요.”“알았어요.”조민정은 그제야 유영의 의도를 파악했다.어차피 지금 그쪽과 진흙탕 싸움을 해도 그들에게 좋을 게 없고 오히려 품위만 떨어진다. 이쪽에서 차라리 무대응으로 일관하면 저쪽은 그들의 의도를 알 수 없어 당황하게 될 것이다.유영은 할 일이 많은 사람이고 누구처럼 남자 하나에 목매어 일을 그르칠 생각이 없었다.청하시는 또 한 번 뒤집어졌다.유영이 사과하러 한지음의 병실로 찾아갔다는 건 그녀가 납치 사실을
강이한는 고통 속에 몸부림치는 그녀를 방치했지만 지금은 언제 어디를 가든 정국진의 든든한 그림자가 그녀를 지켜주고 있었다.이런 가족애가 그녀에게 큰 안정감을 주었다.정국진의 호의를 받아들이기로 한 뒤, 유영은 덤덤한 얼굴로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자마자 얼마 지나지 않아 진영숙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유영은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어차피 용건이야 들어보지 않아도 욕하려고 전화한 게 뻔했기에 받을 필요도 없었다.몇 번 끊어버렸더니 상대는 끈질기게도 계속 전화를 걸어대다가 그것도 통하지 않자 문자를 보냈다.[당장 본가로 와. 안 그러면 소은지 걔 청하에서 일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릴 거니까.]문자를 확인한 유영은 분노에 치를 떨었다.역시 비열한 것으로 세강 사람들을 따라갈 자가 없을 것 같았다. 무엇이든 상대에게 통하는 협박이라면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었다.결국 유영은 자신의 포르쉐를 끌고 강이한의 본가로 찾아갔다.저택을 관리하는 아주머니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외제차를 보고 유경원인 줄 알고 공손한 자세를 취했다.하지만 차에서 내린 사람이 유영인 것을 확인한 순간, 입가에 지었던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충격으로 바뀌었다.유영은 싸늘한 표정으로 아줌마를 바라보았다. 진영숙과의 관계가 이 정도로 틀어진 데는 이 아줌마의 입김도 어느 정도 작용했다고 볼 수 있었다.“오셨어요? 큰 사모님께서 오래 기다리셨어요. 뭐가 그리 바쁘다고 얼굴 한번 안 비춰준다고 큰 사모님이 화가 많이 나셨어요.”예의 없이 어른을 기다리게 한다고 핀잔하는 듯한 말이었다.유영은 자신보다 키가 큰 아줌마를 올려다보았다.그녀가 이 집에서 존재감이 없었던 이유는 키가 작은 탓도 한몫했다.하지만 지금은 그냥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는 것뿐인데도 아줌마가 오히려 압박감을 느꼈다.“날 기다린 건 아닐 테고, 누구 기다리는 사람 있어요?”유영이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전에는 한 번도 이런 식으로 고용인을 대한 적 없던 유약한 며느리였다.“유경원 씨랑 같이
진영숙은 누가 뭐래도 자기 아들이 가장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그리고 실제로 세강의 안주인 자리는 청하시에 사는 모든 여자들이 꿈꾸는 자리였다. 그런데 유영이 보잘것없다는 식으로 말하니 속이 뒤집어졌다.“그럼 싫은데 그 자리를 계속 지키고 있다는 거니? 싫으면 당장 이한이랑 이혼하지 그러니?”“지금 이혼을 거부하는 건 그 사람이거든요? 벌써 잊으셨나요?”“너!”진영숙은 말문이 막혔다.자신을 전혀 공경하지 않는 유영의 태도에 화가 나는데 반박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전에는 화풀이 상대로 제격이었는데 지금은 하는 말마다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니 갑갑해서 미칠 것 같았다.유영은 씩씩거리는 진영숙을 심드렁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날 여기로 부른 용건이 뭐예요?”소은지를 들먹이며 협박까지 했으니 뭔가 용건이 있는 건 분명했다.짝!자리에서 일어선 진영숙이 서류 뭉치를 유영의 얼굴에 던졌다.유영은 무심한 눈으로 바라만 볼 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진영숙이 입을 열었다.“동교 신도시 프로젝트, 대체 어떻게 된 거니?”“이미 다 들어서 아시면서 왜 굳이 나한테 물어보세요?”세강그룹 내부에 진영숙의 눈과 귀가 있는 건 전에도 아는 사실이었지만 소식이 이렇게 빨리 그녀의 귀까지 들어간 건 놀라웠다.진영숙은 유영이 박연준을 도와 동교 프로젝트 입찰에 성공하면서 강이한을 엿 먹였다고 생각하는 듯했다.진영숙은 씩씩거리며 다가오더니 손을 들어 유영의 귀뺨을 때렸다.짝!유영의 고개가 돌아가고 입에서 피 맛이 느껴졌다.진영숙의 분노한 고함에 귀가 먹먹해질 정도였다.“네가 뭔데 그 프로젝트에 끼어들어?”“너 같은 애는 정말 질색인데 아직 이한이랑 이혼하기도 전에 외부인과 결탁해서 내 아들을 엿 먹이는 거야? 너 우리 세강을 망하게 할 생각이야?”“너 같은 걸 남자들이 정말 예뻐서 잘해주는 것 같아? 너 이한이랑 이혼하면 그 남자들도 목적 달성했다고 가장 먼저 너한테서 등 돌릴 거야!”이미 이성을 잃은 진영숙은 온갖 비난을 유영에
어제 홍문동에서 보였던 당황함은 온데간데없고 자신감이 흘러넘치는 모습이었다.진영숙은 그런 유경원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경원이 보고 좀 배워!”진영숙은 일부러 유영을 자극하려고 비웃음을 날렸다.나긋나긋하고 온순한 유경원과 비교하니 사사건건 자신과 부딪히는 유영이 더 한심하고 추악해 보였다.물론 유영이 과거에 자신에게 어떻게 대했는지는 이미 까맣게 잊은 진영숙 여사였다.유영이 뒤돌아서며 말했다.“그렇게 마음에 들면 끼고 사세요.”말을 마친 그녀는 발작을 일으키려는 진영숙을 내버려두고 현관을 나섰다.꼴에 부부라고 어쩜 저렇게 비슷한 말을 하면서 속을 뒤집어 놓는 건지!진영숙은 가슴을 부여잡고 통증을 호소했다.“쟤 말하는 것 좀 봐! 내가 그렇게 가르쳤는데 하나도 보고 배운 게 없어!”“이래서 서민은 들이면 안 된다는 거야! 어릴 때부터 좋은 교육을 받고 자란 애들과는 비교도 안 되지!”진영숙은 말할수록 짜증만 치밀었다.유영은 비웃음을 머금으며 대문을 나섰다.유영이 돌아간 뒤, 유경원은 진영숙을 위로하느라 진땀을 뺐다.“아줌마,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어차피 곧 이혼할 건데 그 여자한테 신경 쓸 필요가 뭐가 있나요?”“그렇긴 하지만 쟤 하는 걸 보면 화가 안 나게 생겼어? 내가 그동안 그렇게 가르쳤는데 하나도 달라진 게 없잖아.”“그래요. 아줌마는 좋은 마음에 잔소리 좀 한 건데 이유영 씨가 나빴네요.”유경원은 진영숙이 무슨 말을 하든 일단은 치켜세웠다.그제서야 진영숙의 노기가 조금은 사그라들었다.그녀는 만족스러운 눈빛을 하고 유경원을 바라보았다.유영이 외부인과 짜고 세강을 물먹인 걸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렸다.외출하고 돌아온 강서희는 유경원과 함께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디저트를 만드는 진영숙을 보며 순간 표정이 표독스럽게 굳었다.하지만 이내 표정을 갈무리하고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그들에게 다가갔다.“언니 왔어? 오기 전에 연락이라도 하고 오지!”딸을 본 진영숙의 표정이 조금 더 환해졌다.“경원이 좀 보고 배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