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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화

작가: 진헤이
순정동.

전에 말로만 들었을 때는 막연하게 호화 단지라고만 생각했는데 직접 와보니 왜 그렇게 많은 부자들이 이곳으로 오길 희망하는지 알 것 같았다.

별장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유영이 보기에 이곳은 단단한 성채에 가까웠다.

여왕을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은 상상해 봤을 그런 모습을 하고 있었다.

“외삼촌은 언제 여길 구매했대요?”

유영이 물었다.

그때는 청하 시민 중에 구매자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해외에 거주 중인 외삼촌이 이곳을 소유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회장님은 세계 각지의 가치 있는 부동산에 투자를 많이 하셨습니다. 사실 잊고 있었던 곳인데 유영 씨가 거주할 곳이 필요하다고 하니까 집사가 생각해 낸 곳이 이곳이에요.”

유영은 할 말을 잃은 표정으로 조민정을 바라보았다.

“고용인들도 어제 모집했어요. 급하게 치우느라 미흡한 점도 많을 텐데 그건 이해해 주세요.”

부자들은 다 이럴까?

이렇게 좋은 땅과 집을 소유했으면서 존재조차 잊고 있었다니.

유영은 저절로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여기 오기 전까지 외삼촌한테 이렇게 귀한 선물을 받아도 되나 고민했던 그녀였는데 지금 얘기를 들어보니 걱정할 것 하나 없었다. 기억도 못했던 곳을 갑자기 내어주었다는 건 그만큼 중요도가 떨어진다는 얘기였다.

“미흡한 점이라뇨. 나한테는 아주 감지덕지죠.”

유영이 말했다.

홍문동으로 돌아가지만 않는다면 어디든 좋았다.

식사가 끝난 뒤, 유영은 옷을 갈아입으러 옷 방으로 들어갔다.

옷장을 열자 신세계가 펼쳐졌다. 물론 강이한도 그녀에게 사치품을 많이 설명했지만 이곳에는 세계 각지의 명품을 다 모아놓은 백화점을 떠올리게 하는 스케일이었다.

“유영 씨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시즌 상품마다 한 벌씩 구매했대요. 앞으로 좋아하는 스타일 있으면 꼭 말해달라고 하시더군요.”

“다 좋아요!”

유영이 착잡한 얼굴로 말했다.

싫을 리가 없었다.

예쁜 옷을 싫어할 여자가 어디 있을까!

“외숙모랑 유라는 소박하게 입고 다녔던 거 같은데 외삼촌이 이번에 신경을 많이 썼네요.”

유영이 감개무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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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강이한 곁에 있을 때 이유영은 기분이 좋지 않으면 소은지를 찾아가 함께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고 밤늦도록 술을 마시곤 했다.“어때?”“맛있네. 모이산 요리사, 실력이 좋네.”이유영은 음식의 맛이 마음에 들었다. 심지어 청하시의 맛도 살짝 느껴졌다.“요리사가 청하시 출신이야?”“어떻게 알았어?”사실, 현우가 데려온 요리사였다.현우는 소은지가 파리 음식에 적응하지 못할까 봐 걱정했고 그녀가 엔데스 명우의 압박 속에서 힘들어할 때마다 직접 요리를 해 주었다. 덕분에 소은지는 최근 살이 많이 붙었다.현우가 청하시에서 요리사를 데려왔다는 사실을 떠올리자 소은지의 마음속에 묘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청하시 음식은 내가 다 먹어 봤는데. 아마 원씨 집안 요리사일 거야. 맛이 너무 비슷해.”“그래, 너 안 가본 데가 어디야?”소은지는 이유영을 흘겨보며 말했다.강이한... 그 남자는 정말 짜증 나는 존재였지만 연애할 때만큼은 이유영을 극진히 아꼈다.그녀가 맛있게 식사할 수 있도록 청하시의 유명한 레스토랑은 거의 다 찾아다녔다.하지만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유영의 키는 크게 자라지 않았다. 아무리 정성껏 먹여도 소용없었다.“그만 얘기하고 맛있게 먹자.”이유영은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소은지를 바라보며 말했다.둘은 서로를 마주 보며 웃었다. 그 웃음은 순수하고도 맑았다.소은지는 이유영을 바라보며 말했다.“나랑 현우는 좀 먹었으니까, 너 많이 먹어.”“아직도 입맛이 그렇게 없어?”“응.”소은지는 이유영의 세심함에 마음이 흔들렸다.청하시에 있을 때, 둘이 함께 식사하면 소은지는 늘 이유영의 식습관을 세심히 관찰했다.하지만 엔데스 명우에게서 간신히 살아 돌아온 후, 소은지의 식욕은 현저히 줄어들었다.비록 함께 식사하는 일이 많지 않았지만 이유영은 그 변화를 눈치채고 있었다.이유영은 소은지를 바라보며 숟가락을 내려놓았다.“은지야.”“왜 안 먹어? 네가 좋아하는 음식들로 잔뜩 준비했어. 다 담백하고 지금 너한테 딱 맞는 음식이야.

  •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제1151화

    이유영은 아이를 꼭 안은 채 창밖으로 희미한 달빛을 바라보며 전에 없던 만족감이 밀려왔다.분명히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지금은 달빛 아래에서도 시야가 또렷했다. 그녀의 눈을 집도한 의사가 얼마나 신중하게 치료했는지 알 수 있었다.그날 밤, 이유영은 딸의 향기 속에서 오랜만에 깊고 편안한 잠을 청했다....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이유영은 가장 먼저 소은지가 보낸 메시지를 확인하고는 아침 식사도 거른 채, 그녀는 곧바로 모이산 뒤편으로 향했다.소은지는 우천시를 떠난 후 이유영과 연락을 하지 않았다.최근 파리 엔데스 가문이 중요한 시기를 맞이하고 있었기에 소은지가 그 과정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궁금했다.차에서 내리자, 현우가 문을 열고 나왔다.트렌치코트를 멋스럽게 걸친 현우는 고귀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 가문의 깊은 역사가 그의 태도에서 자연스레 드러났다.과거, 이유영이 그의 곁에 있을 때도 이 기품을 감추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그녀가 주부에서 직장 여성으로 변신하는 동안 주변을 세심히 살피지 못했던 것일까?맞아, 분명 그랬을 것이다.현우는 가까이 다가와 이유영과 눈을 맞췄다. 그의 눈빛은 깊고도 반짝였다.“이제 볼 수 있나 보네요.”이유영은 고개를 끄덕였다.“응.”거실 창 너머로, 소은지는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녀를 보살피던 왕 아주머니는 소은지의 뒤에 서서 걱정스러운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왕 아주머니는 엔데스 가문에서 오래 일한 사람이었다. 그만큼, 가문의 여주인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와 그 변화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왕 아주머니.”“네.”“모두 담백한 음식이죠?”소은지는 차분하게 물었다.왕 아주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걱정 마세요. 다 말씀해 신 대로 준비했습니다.”“네. 유영이는 수술을 마친 직후라 너무 자극적인 음식은 안 돼요.”“알겠습니다.”소은지는 왕 아주머니에게 말하면서도 어딘지 모를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그 속마음이 진심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제1150화

    서재에서 정국진은 이유영을 바라보며 무언가 말하려다 멈칫했다.“아빠?”“아니야, 가서 쉬어.”이유영은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불러놓고 아무 말도 하지 않다니.정국진의 눈에 스친 망설임을 이유영도 분명히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말하지 않는 것이 나았다.파리와 서주에서 벌어진 일들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끔찍했으니까.고개를 끄덕이며 이유영이 말했다.“그럼 전 방으로 돌아갈게요.”“응.”이유영이 서재를 나서자 정국진만 남은 공간에는 복잡한 기운이 감돌았다.서주에서 박연준이 돌아왔다.그리고 강이한은...정국진은 사람을 보내 그의 행방을 찾으려 했지만 강이한은 완전히 사라졌다.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그는 떠날 때 자신의 흔적을 완벽하게 감췄다. 마치 세상에서 존재조차 지워버린 듯했다.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떠올랐다.'수술 후에는 이유영을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이유영을 완전히 떠나기 전, 그는 얼마나 깊은 고통을 견뎌야 했을까?...방으로 돌아오자, 유 아주머니와 월이가 있었다.유 아주머니는 이유영을 보자 바비 인형을 월이에게 건네며 공손히 말했다.“아가씨.”“네.”“잠시만요.”이유영이 잠시 머뭇거리다 유 아주머니를 향해 물었다.“그 사람, 몇 번이나 왔어요?”강이한을 물어보고 있었다.이제는 그의 이름조차 부르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정씨 가문 사람들은 이유영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모두 알고 있었다.유 아주머니는 조용히 대답했다.“두 번 왔어요.”두 번.즉, 우천시에서 돌아온 후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이유영은 강이한이 아이를 보러 왔다는 사실에 불쾌함을 느꼈다.그의 행동을 생각하면 그가 아이를 가질 자격이 없다고 느껴졌다. 만약 그가 아이가 자신의 혈육이라는 걸 알고도 그런 짓을 저질렀다면 이 세상에 그가 하지 못할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일단 나가보세요.”“네, 아가씨.”유 아주머니는 고개를 숙이며 방을 나갔다.이유영은 조용히 월이를 품에 안았다. 아이

  •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제1149화

    “돌아와서 정말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임소미는 이유영을 꼭 끌어안으며 마치 텅 비었던 가슴이 채워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이유영이 돌아오기 전, 임소미는 이미 그녀의 시력이 회복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여진우가 전화를 걸어 기쁜 소식을 전했기 때문이다.수술 전까지 모두가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던 만큼, 그 소식은 임소미에게 커다란 기쁨을 안겨주었다.“엄마, 숨 막혀요.”이유영이 투덜거렸다.“얘가...”임소미는 그녀를 품 안에서 놔줬지만 멀리 떨어지지 않은 채 작은 얼굴을 손으로 감싸 쥐고 부드럽게 눈가를 쓰다듬었다.반짝이는 눈동자를 바라보는 순간, 임소미의 가슴은 다시 먹먹해졌다.지난 2년 동안, 이유영의 눈에 드리워진 어둠을 바라보며 마지막에 결국 텅 빈 눈동자를 마주했을 때 임소미가 얼마나 가슴 아프고 두려웠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하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잘 해결되었다.“정말 볼 수 있는 거 맞지?”이렇게 맑은 눈동자를 보고도 여전히 불안했던 임소미는 다시 한번 확인하듯 물었다.“정말 볼 수 있어요. 엄마, 오늘 검은색 원피스 입으셨네요.”“정말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이유영이 옷 색깔을 정확히 맞추자 임소미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정국진도 그 말을 듣고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됐어, 보이면 됐어.”“아빠.”“밥 먹자.”이것이 바로 가족이었다.언제든 집에 돌아오면 따뜻한 밥과 뜨끈한 국이 기다리고 있는 곳.여진우도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살아오면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따뜻함을.정국진과 임소미 앞에서 그도 편안하게 행동할 수 있었다.참 좋았다.재벌 가문에서 이렇게 화목한 가족 분위기를 가진 곳은 드물었다. 그들은 보기 드문 조화를 이루며 서로에게 깊은 애정을 품고 있었다.식탁에는 여진우가 좋아하는 음식과 함께 이유영을 위해 준비된 담백한 요리들이 차려져 있었고 이유영은 기꺼이 그 음식을 받아들였다.“엄마, 저거 먹고 싶어요.”월이는 이유영이 돌아온 것만으로도

  •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제1148화

    사실,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다.이유영이 강이한을 만나기 전, 비록 아무것도 없었지만 적어도 순수했다.강이한은 그녀의 가장 아름다운 청춘을 앗아갔다. 계산해 보면 그는 이유영을 2년 동안 지켜왔고 5년을 연애했으며 3년 동안 결혼 생활을 했다.이유영은 그 감정이 진짜라고 믿었고 온 마음을 다해 화답했다. 하지만 사랑은 결국 거짓이었다.강이한도, 박연준도 모두 거짓이었다.강이한은 그녀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에 끝없는 사랑을 선물했지만 박연준은 그녀가 가장 힘들 때 가장 큰 보호를 제공했다.한 명은 사랑을 주었지만 보호는 없었고 다른 한 명은 보호를 제공했지만 사랑은 없었다.둘 중 누구든, 이유영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고 그래서 그녀는 그들을 진심으로 용서할 수 없었다.“알겠어요.”배준석이 씁쓸하게 말했다.이유영은 조용히 말했다.“사랑하지 않았다면 그래도 괜찮았을 거예요.”“...”“하지만 그들은 저에게...”이유영은 말을 멈췄다.사랑하지 않았다면 그냥 보내주었어도 괜찮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고 끝내 이유영을 놓아주지 않았다.“배준석 씨.”“네?”“세상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은 생사의 이별이 아니라 사랑하지만 얻을 수 없는 사랑이에요.”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가지는 것은 고통스럽다. 하지만 이유영은 어땠을까?그녀가 손에 쥔 모든 것은 원래 다른 사람의 것이었다.그것은 사랑하지만 얻지 못하는 것보다 더 가슴 아픈 일이었다.“그는 이유영 씨에게 진심이었어요.”배준석이 이유영이 영원히 용서할 수 없을 거라는 걸 알고 조심스럽게 말했다.그러나 이유영은 비웃음만 나왔다.진심이라고?그 말이 너무나 허무하게 느껴졌다. 세상에 진심이란 것이 존재할까? 누가 누구에게 끝까지 진심일 수 있을까? 마음을 다한 사람이 결국 가장 큰 패배자가 되는 것이 아니던가?과거의 자신이 너무 진심이었기에 지금 이렇게 큰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그 순간, 배준석은 확신했다. 이유영은 박연준과 강이한을 영원히 용서하

  •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제1147화

    여진우는 이유영과 함께 파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들과 동행한 사람은 배준석이었다.청하시에 있을 때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그곳에서의 배준석은 마치 햇살처럼 밝은 청년이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 그는 끝없는 광기와 붕괴 속으로 빠져들었다.그때의 그는 마치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가까이 다가오는 이들에게 가차 없이 상처를 입혔다.솔직히 말하자면, 당시의 그는 미친개처럼 사람만 보면 물어뜯으려 했고 특히 이유영에게는 더욱 그랬다.지금도 이유영은 그날 밤 순정동에서 있었던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배준석은 조형욱과 함께 이유영의 집으로 찾아와 뱃속 아이를 없애려 했다.거의 3년 만에 다시 만난 배준석은 마치 숱한 풍파를 겪고 난 후의 고요함처럼 예전보다 훨씬 차분해져 있었다.그러나 그 고요함 속에는 씁쓸함과 고통이 깃들어 있었다.여진우는 지쳐 있었다.오랜 시간 이유영의 곁을 밤낮으로 지켰던 탓에 그녀가 건강을 회복하자 비행기 안에서 잠시 눈을 붙이기로 했다.배준석은 잔에 따른 레드 와인을 한 모금 마시며 이유영을 바라보았다.“정말 그렇게 미워요?”강이한을 말하는 것이었다.요즘 이유영 앞에서 강이한과 박연준의 이야기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기에 덕분에 그녀는 비교적 평온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하지만 배준석이 그 이야기를 꺼내자, 이유영은 잔에 담긴 물을 한 모금 마시며 진정하려 애썼다. 요즘 그녀는 금식 중이었다. 예전에는 죽을 먹으며 다른 음식을 달라고 떼를 썼지만 다시 볼 수 있게 된 후 시력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고는 눈을 위해서라면 한 달 금식은 물론, 1년, 2년도 감수할 수 있었다.술은 절대 마실 수 없었다.배준석의 질문에, 이유영은 조용히 되물었다.“준석 씨는 누구를 미워해요?”이유영은 생각했다.배준석이 자신을 위해 수술을 집도하고 평생을 바친 연구로 성공을 이루었으며 그 과정에서 어떠한 속임수도 쓰지 않았다면 그것은 그가 과거에 약혼녀를 해쳤던 진짜 범인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배준석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제1146화

    흐릿한 시야 속에서 이유영은 눈을 깜빡이며 주변을 살폈다.하지만 아직도 세상은 뿌옇게 흐려져 있었다.다시 눈을 감았다가 떴지만 여전히 안개 속에서 헤매는 듯 희미했다.다시 한번 눈을 감았다 뜨는 순간, 마침내 모든 것이 선명해졌다.눈앞의 모든 것이 또렷하게 보였다.이유영은 다시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다.모두가 긴장한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우지와 우현은 작은 손을 꼭 잡은 채, 떨리는 마음을 애써 감추려는 듯 서로를 꼭 붙잡고 있었다.두 아이는 알고 있었다. 이유영이 얼마나 강한 사람이었는지. 만약 그녀가 영원히 어둠 속에서 살아야 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가혹한 일이 될 터였다.“이유영 씨.”“보여요.”배준석은 이유영에게 복수하지 않았다.그 사실을 깨닫자, 이유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조금 전, 배준석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온몸이 긴장했고 심지어 공포감에 휩싸였었다.의사는 평소 만날 일이 많은 사람은 아니지만 절대 함부로 대해서도 안 되는 존재다. 환자가 되는 순간, 결국 그의 손길이 필요하게 되기 때문이다.“유영아.”여진우는 조용히 그녀를 품에 안았다. 그 순간, 이유영은 여진우의 온몸이 떨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이제는 익숙했다.그래서 여진우가 자신을 안는 순간,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그의 온기를 느끼며 모든 감각을 집중했다.하지만 이제 볼 수 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감각에만 의존했던 자신을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었다.“정말 보여?”여진우는 그녀를 품에서 놔주고 눈앞에서 손을 흔들었다.이유영은 고개를 끄덕였다.“응, 보여.”진짜였다. 정말 볼 수 있었다.여진우는 장난스럽게 물었다.“내가 무슨 색 옷을 입었는지 보여? ““파란색.”“...”“됐어. 너 수염 난 것도 다 보여.”태연한 이유영의 말에, 여진우는 순간 멍해지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오늘 아침 면도를 깜빡했는데 그녀가 단번에 알아챈 것이다.두 사람은 함께 웃음을 터뜨렸고 병실 안 공기가 한층 부드러워졌다.수술은 성공했다.붕대를 풀고 눈

  •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제1145화

    그 순간, 이유영과 여진우의 숨이 가빠졌다.이유영은 눈을 감은 채, 마치 무언가에 붙잡힌 듯 좀처럼 눈을 뜨지 못했다.마지막 순간이었다.이제 눈을 뜨는 순간, 무엇을 마주하든 그것이 앞으로 남은 삶 동안 마주해야 할 현실이 될 터였다.“눈 떠보세요!”의사의 목소리가 한층 강해졌다.이유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조용히 숨만 내쉬었다.그 목소리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익숙한 목소리였다.순간적으로 머릿속이 새하얘졌다.배준석이었다.강이한과 싸운 뒤, 완전히 사라졌던 그 사람.그가 여기에 있다고?목소리를 듣는 순간, 이유영의 얼굴이 창백해졌다.그때, 여진우가 담담하게 말했다.“준석아, 너 때문에 유영이가 놀랐잖아.”배준석의 묵직한 목소리보다 여진우의 목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병실에 울리자, 분위기가 얼어붙었다.여진우가 배준석을 그렇게 부르는 걸 듣자, 이유영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그녀는 힘겹게 눈을 뜨려 했다.하지만 몇 번을 시도해도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아 꿈쩍도 하지 않았다.“눈을 뜰 수가 없어.”병실은 고요해졌다.그때, 차가운 손끝이 피부를 스쳤다. 배준석은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그녀의 얼굴을 닦아냈다.보름은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그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 이유영은 자신의 수술을 집도한 사람이 바로 배준석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믿을 수 없었다.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했고 단순한 긴장이 아니라 공포에 가까운 감정이 휘몰아쳤다.왜냐하면 배준석이 바로 한지음의 수술을 집도했던 의사였다.그때 청하시는 얼마나 혼란스러웠던가.왜 강이한은 마지막 순간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모든 걸 받아들이라고 했을까?어떻게 그렇게 평온한 얼굴로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이유영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이유영 씨.”배준석이 차분하면서도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제 기억 속의 이유영 씨는 나약한 주부가 아니었어요.”그 한마디에, 이유영의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그렇다. 그녀는 한때 평범한 주부였다.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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