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아가씨, 말 못 하면 그냥 입 다물고 있어도 아무도 당신을 벙어리로 안 봐요. 기 선생과 저는 아무 사이 아니에요. 저는 못 믿어도, 약혼자는 믿겠죠?""너....""그리고 제 기억이 맞다면, 소아가씨 내연녀에서 기모진의 아내 된 거 아니예요? 그런데 그런 말이 아가씨 입에서 나오면 좀 웃기지 않나?"...." 순간 급격히 안색이 나빠진 소만영은 주변 사람의 시선을 눈치 채고 억울한 척했다."천 아가씨, 어디서 그런 소문을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저랑 모진이는 원래 부부 사이였어요. 제 동생 소만리가 모진을 사랑해서 모진이랑 밤을 지내려고 수작을 부려서 어쩔 수 없이 소만리랑 결혼한 거예요. 지금 소만리는 이미 죽었으니 사실 이 일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아요. 누구도 저를 모욕할 수 없어요!”"남들이 당신을 모욕하는 것은 용납 못하면서, 아가씨는 함부로 저를 모욕해도 되는 거예요? 소 아가씨, 제가 듣기로는 모가 집안의 딸이자 부잣집 며느리라던데, 이렇게 이중적인 사람이었어요?”"..." 소만영은 잠시 말문이 막혔지만 이내 억울해하며 눈시울을 붉혔다.“천 아가씨, 저는 그저 모진이를 너무 사랑해서 그랬어요… 죄송해요…” 소만영은 말을 마치고 안쓰럽게 눈물을 머금고 가버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가게에 두 사람이 더 들어왔다.소만리는 전예와 소구의 추악한 두 얼굴을 영원히 잊지 못한다.소만리는 그들이 진심으로 그녀를 친 가족처럼 대한다고 여겼지만, 결국 그것은 모두 가식이었다. 소만리는 줄곧 그들에게 주먹질과 발길질을 당하다 죽을 뻔했다. 소만리의 진심 어린 마음이 물거품이 되었다.전예와 소구가 가게에 들어와 두리번거리자 당연히 소만영이 불렀다고 생각했다."뭐 찾으시는 거 있으세요?"젊은 직원이 전예와 소구를 친절하게 응대했다.“딸에게 선물할 팔찌를 사고 싶은데, 뭘 골라야 할지 모르겠네요, 사장님이 나와서 소개 좀 해달라고 해주세요.” 전예와 소구는 유리장에 진열된 쥬얼리를 훑어봤다. 역시 그들의 목적은 분명했다. 전예와 소
”찰싹.”전예가 뺨을 때렸지만 소만리는 가만히 맞지 않고 전예의 손을 잡았다.그녀는 과거에 뺨을 얼마나 많이 맞고 얼마나 얻어맞았는지 기억이 생생했다. 그녀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서 앞으로 그 누구도 그녀의 머리카락 한 올도 건드릴 수 없게 할 것을 다짐했다. "너, 이거 놔!" 전예는 화내며 발버둥쳤다.그러나 소만리의 힘은 매우 강했다. 증오가 그녀를 강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전예의 손에 잡힐 만큼 어리바리하지 않았다!"아주머니, 말씀과 행동에 예의 좀 갖춰주세요! 만약 손님으로 왔다면 환영합니다만, 소란 피우러 오신 거라면 나가주세요." 소만리는 매서운 눈빛으로 패기 있게 말했다.전예는 소만리의 기세에 얼떨떨한 듯 멍해졌다.이때 소구가 화를 내며 전예의 손을 잡으려 하자 소만리가 먼저 전예의 손을 놓았다. 전예는 잠시 중심을 잡지 못하고 뚱뚱한 몸을 비틀거리며 소구를 덮쳤다.소구는 전예를 미처 피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카운터에 부딪혀 넘어지며 카운터에 위에 있던 액세사리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아이고! 소만리 이 천한 년! 전예는 통곡하며 욕설을 퍼부었다.이정도로 욕을 해? 소만리는 입술을 깨물었고, 그녀의 눈은 분노로 타올랐다.애초 당신들이 나에게 한 짓을 생각하면 이건 새 발의 피야!"두 분, 우리 액세사리를 다 망가뜨렸어요. 규정에 따라 배상해주세요."“배상은 무슨 배상! 저 천한 년이 밀어서 넘어진 거야!" 전예는 소만리를 가리키며 말했다.“소만리 이 천한 년, 네 죽은 영혼은 사라지지도 않는구나! 네가 감히 날 밀쳐? 내가 너 때려죽일 거야!”전예가 그녀를 위협하며 또 돌진하자 소만리는 조금도 움츠러들지 않고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는 아무 말없이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경찰서죠? 여기 수정거리 1번지인데요, 여기 정신 나간 사람 두 명이 소란을 피우고 있어요. 그중 한 명이 나를 때려죽이겠다고 위협해서 무서워 죽겠어요. 빨리 와서 잡아 가세요.”"뭐? 이 천한 년이 감히 경찰에 신고를
소만영은 즉시 전예와 소구를 태우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 집은 모가 집안에서 소만영을 수년간 키워준 보답으로 전예와 소구에게 선물했다. 전예는 욕을 하며 가게에서 벌어진 일을 소만영에게 빠짐없이 말했다. 이에 소만영은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소구는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분명 소만리 그 계집애가 아닐 거야, 그 계집애가 어디 그런 패기가 있겠어!"전예도 원래 분명 소만리가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경찰서에서 나오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만영아, 나도 그 여자가 그냥 소만리랑 닮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분명 그 계집애가 아니야, 그 계집애 죽은 지 이미 3년이나 지났고, 시체마저 태워서 모진이가 유골도 가져왔잖아, 설마 죽었다 살아난 것도 아니고!”“하지만 이 세상에 그렇게 닮은 두 사람이 있을까?” 그럼에도 소만영은 그녀가 의심스러웠다. "그 여자가 어디서 그 천한 년 사진을 보고 예뻐서인지 그 모습 그대로 성형수술을 했을 수도 있지, 어쨌든, 절대 소만리가 아닐 거야! 네 아버지 말씀이 맞아, 소만리같이 바보 같은 년이 어떻게 저런 패기가 있을 수 있어! 아니야! 그 쓰레기 같은 소만리는 절대 우리의 상대가 안 돼!”전예와 소구의 말에 소만영의 의심이 사라지고 얼굴에는 경멸의 미소가 번졌다."맞아, 소만리 같은 미련한 촌년이 어떻게 그런 기세를 부릴 수 있어? 그리고 그렇게 많은 돈이 있을 리 없어, 수정가 1호점 가게를 살수 있는 돈이 어디 있고, 매장에 miss l.ady 브랜드를 입점 시킬 수 있는 능력이 어디 있어.”"무슨 대단한 브랜드 길래 브로치에 다이아몬드 하나 떨어졌다고 오백만 원이나 배상하라고 해?!”소만영은 자신이 끼고 있는 팔찌와 목걸이를 만지며 말했다."그건 결코 하찮은 브랜드가 아니에요. 엄마, 이거 최근 2년간 여성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주얼리 브랜드 팔찌예요, 디자인 스타일이 독보적이어서 인기가 많아요. 엄마, 이거 드릴게요. 사 씨가 얼마 전에 저한테 꼭 주고 싶다고 선물해 준 거예요. 이천만 원짜리에요!
소만리는 기모진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듣고 순간 깜짝 놀랐다.그녀는 기모진이 이렇게 빨리 달려와 안아줄 줄은 더 몰랐다.소만리는 고개를 들어 떨림이 가시지 않는 기모진의 깊은 눈을 마주쳤다.그가 그녀를 걱정하는 걸까?소만리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기모진이 그녀를 꽉 껴안자 또렷하게 그의 가슴의 온도를 느꼈다. 한때는 그토록 원했던 따뜻한 품이었지만 지금은 더 이상 미련이 없다. "기모진씨, 감사합니다." 소만리는 침착하게 말을 꺼냈다. 기모진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안고 있던 그녀를 놓았다.소만리는 치마를 정리한 후, 기모진을 바라보며 말했다."제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기모진씨 또 저를 소만리라고 부른 거 맞죠? 당신 약혼녀 소만영씨의 말로는 기모진씨가 전처 소만리씨를 상당히 싫어했다고 하던데, 기모진씨에게 매달리고 술 먹이고 수작 부려서 강제로 그녀와 결혼했다고 하던데… 그럼 소만리씨 닮은 저도 미울 텐데 아까 왜 저를 도와줬어요?”소만리의 말이 끝나자 잠시 조용해졌다. 기모진은 한참 후에야 웃는 듯 마는 듯 소만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궁금하면 차에 타세요."“좋아요, 궁금증을 풀기 위해 탈게요.”차에 탄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소만리의 전화가 울렸다. 소만영에게 온 전화였다. 분명히 향초에 대해 물어보려는 것이었다. 소만리는 운전하는 기모진을 보며 스피커를 켜고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 너머로 소만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며칠 지났는데, 내가 주문한 향초 아직도 멀었어요? 돈 받아 놓고 일 처리를 이런 식으로 해요?”조용한 차 안에 스피커폰으로 들려오는 소리를 기모진은 똑똑히 들었다. 그는 처음엔 목소리가 비슷하다고 의심했지만 소만영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잘 들으세요, 3일 안에 향초 안 보내면 경찰에 사기죄로 신고할 거예요!”소만리는 담담하게 듣고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기다릴 수 있으면 기다리시고, 못 기다리면 전화하지 마세요, 당신의 그까짓 돈 아쉽지 않아요.”"여보세요, 당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소만리에게 전화해 거만하게 말했던 소만영이 어떻게 이렇게 바보 같은 짓을 할까?그러나 기모진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는 역시 전예의 말을 믿고 소만영을 걱정했다."기모진씨, 급한 일 있으면 저 내릴게요."기모진은 소만리를 보고 머뭇거리다 차를 멈췄다.“기모진씨, 안녕히 가세요.” 소만리는 선뜻 차에서 내려 기모진에게 손을 흔들었다.소만리는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그러나 기모진은 바로 출발하지 않고 백미러에서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의 머릿속에 옛 모습이 떠올랐다.기모진은 방금 긴장하며 소만리를 부축한 이유를 마음속으로 분명히 알고 있었다.소만리는 차의 시동이 걸리는 소리를 듣고 걸음을 멈춰 뒤를 바라보았다.소만리는 길가에서 차를 멈춰 세우며 기모진의 차를 따라갔다. 그녀는 기모진의 차가 이미 사월산 부근까지 갔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기억 속 가장 아름다운 장소, 그녀가 어린 시절 기모진과 우연히 처음 만났던 곳이다. 이곳은 그녀의 추억이 너무 많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아쉬운 추억 이든 사랑하는 사람이든 결국모두 시간의 흐름에 잠겨버렸다. 사월산의 모든 것은 여전했지만, 사람만 변해 있었다. 소만리는 차에서 내려 기모진의 차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것을 봤다. 그녀는 기모진이 해변을 향해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소만리는 기모진이 갑자기 왜 이곳에 왔는지 의심스러웠다. 그리고 그가 얼마 전에 긴장하며 소만리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을 부둥켜안았는지 더욱 의아했다.그러나 생각할 틈도 없이 멀리 있는 해안 쪽에 서 있는 여인을 보았다.소만영이였다.소만리는 웃음이 나왔다. 설마 소만영과 기모진이 처음 만난 장소도 이곳인가?소만영은 기모진이 다가오자 슬픈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울기 시작했다."모진아,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 기억해?" 소만영이 기모진에게 물었지만 그는 무표정하게 소만영을 쳐다보았다.“그때 우리가 여기서 얼마나 행복했는데, 네가 나를 아내로 맞을 거라고, 평생 잘해줄 거라고, 지켜줄 거라고 한 말
소만리는 길가에서 택시를 타고 과감하게 떠났다.길가 표지판에 쓰여진 사월산이라는 세 글자가 바늘처럼 그녀의 마음을 찌르는 듯했다. 그녀는 갑자기 자기 마음속의 유일한 깨끗한 곳이 더러워지는 기분이었다. 너무 더럽다.기모진이 쫓아오자, 소만리는 온데간데없고 사월산에서 멀어지는 택시 한 대만 보았다. 기모진의 마음이 사월산 바다에 가라앉는 것 같았다.소만리는 떠났다.3년 전에 떠났다.기모진은 다시 한번 스스로를 일깨웠지만 끝내 받아들일 수 없었다."모진아, 왜 그래?" 소만영이 부리나케 달려와 기모진의 행동과 표정을 알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차에 타.” 기모진은 소만영을 덤덤하게 쳐다보며 차갑게 말했다. 소만영은 급히 차에 탔다. 결국 그녀의 연기는 끝났지만, 그녀는 정말 바다에 뛰어들 생각이었다."모진아, 내일모레 내 생일인데, 사실 난 너만 있으면 되는데… 란군이가 이제 많이 커서 사람들이 사생아라고 말하는 거 알아들을까 봐 걱정돼… 그래서 말인데… 우리 결혼하자."기모진이 차를 잠시 멈추고 그윽한 눈빛으로 글썽이는 소만영을 쳐다봤다."내 질문에 솔직히 대답해 줄 수 있어?”소만영은 기모진의 눈빛에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그를 쳐다봤다. "모진아, 네가 알고 싶은 거라면 모두 말해줄게.""그때 소만리가 임신했던 거 나보다 먼저 알고 있었지?"소만영은 기모진이 이런 질문을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녀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만리가 나한테 임신했다고 말한 적 없어""그래?기모진이 의미심장하게 되묻고 다시 출발했다. 그의 눈빛에 소만영은 놀라며 당황했다.그녀는 몰래 주먹을 쥐고, 갑자기 나타난 천미랍을 욕했다. 소만영은 천미랍이 갑자기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기모진의 자신에 대한 의심과 소만리에 대한 그리움이 생기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기모진은 소만영을 모가 집으로 돌려보낸 후, 혼자 묘지를 찾았다. 황혼빛이 그의 뒤로 붉게 물들었다. 늦여름의 맑은 바람에 상록수
엄마…아니, 사화정은 소만영의 엄마이다.소만리의 머릿속에 사화정과 모현이 소만영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뺨을 때린 것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심지어 모현의 발길질에 소만리가 피를 토했지만, 그들은 끝내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소만리는 잡고 있던 문고리를 더욱 세게 잡았다. 이때 사화정이 소만영에게 전화를 걸었다.“만영아, 나와, 엄마랑 스파 가자, 나올 때 드레스도 가지고 나와, 내일 네 생일 때 모진이가 청혼할 텐데 엄마도 예쁘게 꾸며야지, 세상에서 제일 빛나는 공주로 만들어줄게, 엄마의 영원한 아가야.”공주? 아가?흥.소만리는 들으면 들을수록 웃겨서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소만리가 돌아서는 순간 직원이 커피와 간식을 가지고 나와 "퍽" 소리와 함께 컵과 접시가 바닥에 떨어졌다."벨라 언니, 죄송해요! 죄송해요!" 직원이 황급히 사과했다.“사과 안 해도 돼, 내가 잘못한 거야.”소만리는 자기가 실수해서 부딪혔기 때문에 직원에게 괜찮다고 말했다.소만리가 말을 마치자 사화정이 걸어왔다."무슨 일이 있었어요? 사화정이 문 옆에 서 있는 소만리를 쳐다보며 물어봤다."너...""저희 천미랍 점장님입니다." 직원이 소만리를 간단하게 소개했다."죄송합니다. 제가 중요한 일이 있어서요. VIP 손님 잘 모셔, 그럼 나 먼저 가 볼게. "소만리는 사화정을 등지고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인사했다.가게를 떠나고 소만리의 머릿속에는 사화정과 소만영의 통화가 계속 떠올랐다. 소만리는 도시에 오가는 차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소만영은 지금 자신의 신분으로 성대한 생일파티를 열어 상류층 사람들을 많이 초대할 수 있어 행복했다. 그리고 생일을 빌미로 사람들을 이용해 기모진이 그녀에게 청혼하기를 바랐다.소만영은 아침 일찍부터 맞춤 드레스를 입고 화장을 했고, 온 몸에 화려한 주얼리를 휘감아 빛이 났다.그녀는 발코니에 서서 화원에서 이야기꽃을 피우는 손님들을 바라보며 도도하게 웃었다.기모진의 차가 대문 앞에 멈추자 소만영은 얼른
소만영은 수줍은 표정으로 행복하게 기모진의 대답을 기다렸다. 모든 사람들이 기모진에게 청혼하라고 외쳤다. 하지만 그때 사람들과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소만영의 웃음은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녀는 불만 가득 이를 악물었다. “네가 여기에 왜 와!”기모진이 제일 먼저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자 매일 밤 꿈속에서 봤던 얼굴이 서있었다.주위의 사람들도 모두 같은 쪽을 쳐다보자 아름다운 자태가 사람들의 눈에 확 들어왔다. 얼굴을 본 사화정과 모현은 눈이 커지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소…소만리?! 어떻게, 이럴 수가!" 사화정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뒷걸음질 쳤다. 옆에서 모현이 잡아주지 않았다면 사화정은 놀라 기절했을 것이다.죽은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니 사화정은 무서웠다.모현 역시 놀랐으나 성인남자이고, 스스로 양심에 부끄러운 일을 한 적 없다고 맹세했기 때문에 사화정처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앞에 있는 것이 귀신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소만리는 이미 죽었는데 어떻게 살아 있을 수 있는가?모현은 소만리가 죽든 말든 상관없었다. 하지만 또 찾아와서 자신의 귀한 딸 소만영의 결혼을 망치고 괴롭히는 걸 허락하지는 않을 것이다.소만영은 단연 오늘의 주인공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천천히 걸어오는 천미랍을 보자 주인공을 뺏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소만영이 기모진의 소매를 당기려고 할 때, 기모진이 천미랍을 향해 걸어갔다."모진아…" 소만영이 상처받은 얼굴로 그를 불렀지만, 기모진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소만리는 아름다운 자태에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작은 얼굴에 미소가 아름답고 우아했다. 소만영은 아름다운 천미랍을 쳐다봤다. 그리고 기모진의 머릿속에는 온통 소만리 생각뿐 이였다. 소만리와 천미랍의 얼굴은 거의 똑같이 생겼다. 즉, 소만리도 이렇게 아름다웠는데 기모진은 한 번도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본 적이 없었다."기모진씨, 오늘 제가 잘 왔나 봐요. 살면서 지금까지 프러포즈 하는 걸 본 적이 없는데,
문 앞에 서 있던 소군연의 모친은 이 모습을 보고 들어가려고 했지만 소군연의 부친이 옆에서 말렸다.“그만 좀 해. 아들이 평생 홀아비로 살길 바라는 거야?”“누가 지금 가서 훼방 놓으려는 줄 아세요? 가서 말해 줘야죠. 나도 이 혼사에 동의해도 되겠냐고.”“당신 동의하는 거야?”소군연의 모친이 막 대답하려고 했을 때 갑자기 강연장 안 불빛이 밝아지는 것을 보았고 안에서 환호하는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깜짝 놀라 소군연의 품에서 나온 예선은 소만리와 기모진, 그리고 그녀의 부모님, 심지어 나익현과 나다희까지 서 있는 것을 보았다.그들은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예선과 소군연을 향해 다가왔다.예선은 멍하니 소만리를 쳐다보다가 결국 이 모든 것이 그들이 미리 계획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그녀와 소군연의 부모만 감쪽같이 몰랐던 것이다.소군연은 절대 그녀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단지 그녀에게 인생에서 가장 지키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 누구인지 각인시키기 위해 좀 다른 방법을 썼을 뿐이다....이듬해 봄.생명의 기운이 깃든 모든 것들이 축제를 펼치는 계절.경도호텔 야외 정원에서는 결혼식이 한창이었다.그렇다.오늘은 소군연과 예선이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었다.소만리와 기모진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공주님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멈추지 않았다.두 부부의 눈에는 실로 눈앞의 모든 존재들이 기적과도 같았다.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막내와 그 옆을 잘 보살피고 있는 듬직한 기란군, 그리고 곱고 맑은 딸 기여온까지.“엄마 아빠, 나랑 막내한테도 뽀뽀해 줘.”“뽀뽀, 뽀뽀.”막내는 기란군의 말을 알아들은 듯 소리쳤다.“너랑 막내는 맨날 하잖아. 여온이는 오랜만에 집에 왔으니까 특별히 좀 더 많이 해 줘야지.”기모진은 귀여운 기여온을 안고 볼에 뽀뽀를 했다.“여온아, 요즘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그놈이 평소에 무섭게 굴지는 않아?”“당신이 말한 그놈이 혹시 나예요?”강자풍이 짐짓 뾰로통한 얼
예선의 말을 듣고 소군연의 모친은 천천히 발걸음을 멈추었다.예선의 마음속에 그런 생각이 있는 줄은 몰랐다.게다가 예선은 자신을 향해 ‘존중'이라는 단어를 썼다.예선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 소군연의 모친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는 중 갑자기 소만리의 목소리가 들렸다.“예선아, 네가 그들을 존중한다고 해서 그들이 널 존중해 줄 줄 알아? 사람은 서로 존중해 주어야 하는 거야.”“그렇지만 군연은 그들의 아들이잖아. 만약 내가 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군연이랑 결혼을 한다면 그들은 두고두고 평생 나와 군연을 원망하며 살 거야.”예선은 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군연을 그렇게 만들고 싶진 않아. 나와 부모님 사이에서 평생 힘들어하면서 살게 할 순 없어.”“그렇지만 예선아...”“소만리, 이제 그만해. 너 나 어떤 사람인지 잘 알잖아? 한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꼭 함께 지내야만 하는 건 아니야. 그 사람이 평안하고 즐겁게 지낸다면 그것으로 족한 거야, 안 그래?”예선의 얼굴에 담담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미 마음속에 결심을 한 것 같았다.소만리는 예선을 말리고 싶었지만 이 상황에서 뭐라고 조언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예선아, 그럼 이제 갈 거야? 소군연 선배 더 안 찾을 거야?”“찾아볼 곳은 다 찾아봤어. 이래도 못 찾는다는 건 아마도 군연과 나의 인연이 여기까지라는 거겠지. 군연이 혼자 조용히 있게 놔두는 게 좋을 것 같아.”예선이 돌아서자 소군연의 모친은 얼른 몸을 숨겼다.자신이 그들을 미행했다는 걸 그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이때 소만리가 예선을 불러 세웠다.“예선아,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니 너랑 군연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 보는 건 어때? 아직 안 가 본 곳이 혹시나 없는지 잘 생각해 봐. 소군연 선배가 거기서 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예선은 이 말을 듣고 걸음을 멈추었다.“아직 안 가 본 곳이 한 군데 있긴 해.”“거기가 어
멀리서 예선을 몰래 관찰하던 소군연의 부모는 차 안에서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흥. 군연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렇게 깊다더니 한나절이 지나도록 군연이 어디 갔는지 짐작도 못하고 있군.”소군연의 모친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투덜거렸다.소군연의 부친은 아내를 힐끗 쳐다보았다.“그런 말 좀 이제 그만해. 지금은 군연이를 찾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야. 사실 난 저 예선이란 애, 꽤 괜찮다고 생각해. 처음에는 부모도 없다고 당신 많이 싫어했잖아? 그런데 지금은 부모도 있고 그뿐만 아니라 엄마는 갑부에 아빠는 유명한 의사인데 당신 뭐가 불만이 그렇게 많아? 정말 아들을 평생 독신으로 살게 할 셈이야?”소군연의 부친은 솔직히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지만 소군연의 모친은 그래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당신도 예전에는 반대했잖아요? 나중에는 나도 동의했다구요. 하지만 아버님 체면 세워 드리느라고 동의하지 않았던 건데 이제 와서 날 탓하면 어쩌라는 거예요?”“그만둬.”소군연의 부친이 아내의 말을 끊었다.“어째서 말을 못하게 해요? 내가...”“예선이 움직였어!”소군연의 부친이 급히 액셀을 밟았고 소군연의 모친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잠시 후 소만리의 차는 경도대학교 정문 앞에 멈춰 섰다.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눈에 익은 건물을 바라보며 예전에 함께 보냈던 날들을 떠올렸다.그들이 대학에 갓 입학한 첫날이었다.그때 그들은 모두 각자 마음에 두고 있던 한 해 선배의 남자와 부딪히게 되었다.그 남자와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될 때까지 아주 오랜 세월이 걸렸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경도대학교에 있을 것 같아?”소만리가 물었다. 예선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살짝 웃었다.“나도 확신할 수 없지만 네 말처럼 군연과 함께 했던 추억이 있는 곳은 다 가능성이 있는 거니까. 그래서 여기 왔어. 운에 한번 맡겨 보려고.”예선은 말을 마치며 학교 안으로 걸어갔다.학교는 개방식이어서 예선과 소만리는 아무런 제지도 없이 바로 들어갔
소군연의 할아버지는 소군연의 글을 보고 화가 나서 눈을 부릅떴다.퇴원하자마자 한 여자 때문에 사라져?게다가 이 여자가 아니면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그는 결코 그런 일이 발생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소군연이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하니 마음이 몹시 답답하고 당황스러웠다.만약 소군연이 정말 결혼하지 않는다면 그들 소 씨 가문은 후사가 없게 되는 게 아닌가?낭패였다.그건 안 된다. 절대 안 될 일이었다.예선은 밖으로 뛰쳐나온 후 그가 갈 만한 곳을 찾아가 보았지만 오전이 다 지나도록 소군연의 행방을 알아낼 수 없었다.그녀는 소군연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역시나 받지 않았다.아무런 소득 없이 시간만 흘러가자 예선은 갑자기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그녀는 길가에 있는 의자에 앉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았다.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들의 인생에 주어진 하루하루를 무탈히 사는 것만 같았다.갑자기 상실감이 확 밀려왔다.군연, 정말 날 포기하기로 한 거예요?우린 이렇게 헤어져서 제 갈 길을 가게 되는 건가요? 그런 건가요?예선은 막막한 마음을 도무지 어찌할 수가 없었다.생각하면 할수록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바로 그때 소만리에게서 전화가 왔다.예선은 얼른 그녀의 전화를 받아 소군연에게 일어난 상황을 전했고 소만리는 한달음에 예선에게 달려왔다.예선은 소만리를 보자마자 눈물샘이 터져버렸다.소만리는 예선을 위로했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일시적으로 감정이 격해져서 그런 걸 거야. 널 포기했을 리가 없어.”“아니야. 포기한 거야.”예선은 심호흡을 하고 스스로를 진정시켰다.“그의 가족들이 절대 날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특히 어머니는 강경하게 반대하시고 최근에 발생한 일 때문에 다른 가족들도 나에 대한 선입견이 더욱 나빠졌어.”“그동안 일어난 일은 너랑 아무 상관없어. 넌 피해자야.”“하지만 그들은 날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저 소군연
”얼른 들어갈게요!”소군연의 엄마는 황급히 뛰어가다가 갑자기 뒤따라오는 예선에게 고개를 돌렸다.“넌 오지 마! 우리 소 씨 가문에 널 환영하는 사람은 없어!”소군연의 엄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선은 소군연을 만나러 가지 않을 수 없었다.예선은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어떻게 소군연이 스스로 퇴원을 할 수 있단 말인가?그는 어제까지도 분명 병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누워 있었다.소군연의 집으로 가는 길에 예선은 소군연에게 계속 전화를 걸어 보았다.그러나 소군연은 받지 않았다.소군연에게 핸드폰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하긴 했지만 그래도 예선은 계속 전화를 시도했고 예상대로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그녀는 한시라도 빨리 소군연을 만나고 싶었다.그러나 가는 길이 너무 막혔다.드디어 예선이 소군연의 집에 도착해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앙칼진 소군연의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가 어떻게 스스로 집에 왔다는 거야? 방금 깨어난 거 아니야?”“이것 좀 봐 봐. 이거 보면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게 될 거야.”소군연의 부친은 원망 섞인 말투로 소군연의 모친에게 뭔가를 쥐여 주었다.예선이 얼른 현관에 들어서자 따가운 소군연의 모친 목소리가 그녀를 향했다.“따라오지 말라고 했는데 넌 왜 또 왔어? 누가 널 환영한다구...”“됐어. 그만하고 이것 좀 보라니까.”소군연의 부친은 예선이 들어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군연의 모친 말을 끊었다.예선은 소군연의 부친이 미묘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며 쫓아내지 않자 얼른 안으로 걸어갔다.소군연의 모친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메모지 한 장이었는데 메모지에는 짧은 몇 마디가 쓰여져 있었고 모두 소군연의 모친에게 전하는 말인 것 같았다.소군연은 자신이 이틀 전에 깨어났다고 실토하며 잠에서 깬 이후 자신의 엄마가 예선에게 모질게 투덜거리는 말만 하는 것을 보고 예선과 절대 결혼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
예선은 아무도 없는 병실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즉시 소군연을 찾아나섰다.그러나 근처를 한 바퀴 둘러보아도 예선은 소군연의 모습을 찾지 못했고 마음속에서 초조함이 스멀스멀 밀려왔다.이때 소군연의 엄마가 들어왔다.병상에 누워 있어야 할 소군연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을 본 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 혹시 무슨 검사하도 하러 간 거야?”소군연의 엄마는 불만이 가득 담긴 얼굴로 예선에게 물었다.소군연의 엄마가 보이는 이런 태도에는 이골이 났는지 예선은 개의치 않으며 담담하게 돌아섰다.“저도 알고 싶어요.”“나보다 먼저 와 놓고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제가 왔을 때도 병실에 아무도 없었어요.”예선은 돌아서면서 말을 이었다.“간호사한테 한번 물어볼게요.”“잠깐만.”소군연의 엄마가 예선을 멈추어 세우며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너한테 말을 해 둬야겠어. 군연인 이미 너 때문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었어. 다친 적도 한두 번이 아니고. 너 때문에 영 씨 집안 두 모녀는 감옥에 갇혔어. 이건 분명히 네가 우리 가문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얘기야. 네가 우리 군연이를 얼마나 좋아하든 우리 군연이 널 얼마나 좋아하든 상관없어. 넌 우리 소 씨 가문에 들어올 수 없어.”이 말을 들은 예선은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영 씨 집안 두 모녀가 감옥에 간 것까지도 예선의 탓으로 돌린단 말인가?예선과 소군연은 엄연히 피해자였다.영내문 같은 악랄한 사람은 오늘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다른 사람에게 악행을 저지를 사람이었다.영내문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인 중의 악인이었기 때문이다.지금까지 벌여진 일들로 이 모든 것이 자명한데 소군연의 엄마는 여전히 예선을 탓하고 있는 것이다.예선은 더 이상 소군연의 엄마와 논쟁을 하고 싶지 않았다.그런 시간 낭비 에너지
채수연이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이미 모든 상황을 다 이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여온아.”채수연이 기여온에게 다가가 몸을 웅크리고 앉아 다정하게 말했다.“여온아, 선생님이 여온이 좋아하는 거 알지? 어딜 가든 매일 기쁘고 즐거운 일만 있길 바라. 그리고 하루빨리 말도 할 수 있게 되길 바랄게.”기여온이 선생님의 말을 알아듣고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한껏 고개를 끄덕였다.채수연은 일어서서 강자풍을 바라보았다.아직도 눈에는 그에 대한 호감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조금 전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더 이상의 집착은 사라졌다.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반드시 고집스럽게 쟁취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채수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강자풍을 바라보며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강자풍도 더 이상 아무 말없이 몸을 굽혀 기여온을 품에 안고 돌아섰다.돌아서기 전에 채수연에게 따뜻한 작별의 미소도 잊지 않았다.“채 선생님, 앞으로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어쨌든 선생님께 많이 신세 졌습니다. 고맙습니다.”채수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절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걸로 이미 다 갚으셨어요. 하지만 강 선생님 같은 친구가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긴 하네요. 기회가 되면 같이 식사라도 해요.”“그럼요, 언제든지요.”강자풍이 흔쾌히 승낙했다.친구가 된다는 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채수연은 그 자리에서 기여온을 안고 점점 멀어지는 강자풍의 뒷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두어 걸음 앞으로 나섰다.“강 선생님, 저 궁금한 게 하나 더 있는데 대답해 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강자풍은 천천히 걸음을 멈추었다.그는 잘생긴 얼굴에 다정한 미소를 가득 품고 뒤돌아보며 물었다.“뭐가 궁금하신가요?”“좋아하는 여자가 정말 있긴 한 거죠?”강자풍은 기여온의 작은 얼굴에 부드러운 시선을 잠시 떨구며 입을 열었다.“지금 저의 가장 큰 소원은 여온이가 무탈하고 건강하게
”어쩌다가 듣게 되었어요.”강자풍은 순순히 시인했다.채수연은 강자풍의 대답을 듣고 자신이 난감해할 줄 알았다.하지만 그녀의 마음이 예전처럼 초조하지 않고 오히려 편안하고 후련한 느낌이 들었다.다만 약간의 부끄러움은 어쩔 수 없었다.강자풍은 채수연이 난감해하지 않도록 애써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채 선생님을 도와드리려고 했던 건데 어떻게 하다가 영상이 찍혀 인터넷에 올라오는 바람에 선생님을 더 난처하게 해 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나와 여온이 일로 또 한 번 고민거리를 안겨 드린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강자풍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기여온을 향해 부드러운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하지만 선생님, 걱정 마세요. 앞으로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 없을 거예요.”채수연은 이 말을 듣고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순간 마음속에서 상실감이 강하게 몰아쳤다.그녀는 의아한 눈으로 강자풍을 쳐다보며 강자풍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역시나 그의 말은 그녀를 안타깝게 만들었다.“채 선생님, 여온이한테 더 잘 맞는 유치원을 찾았어요. 제가 일하는 곳과도 더 가까워서 여온이 등하원하는 데도 훨씬 편리할 것 같아요.”강자풍의 말을 들은 채수연은 갑자기 마음이 너무나 허전했다.“여온이한테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봐 유치원을 옮기기로 하신 거예요?”강자풍은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이게 선생님한테도 우리한테도 좋은 것 같아요.”강자풍은 ‘우리'라는 말을 할 때 기여온에게 시선을 주었다.채수연은 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자신의 감정이 줄곧 일방적인 것이었고 닿을 수 없는 허무한 희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강자풍의 눈에는 이미 다른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강 선생님 생각이 맞는 것 같아요.”채수연도 강자풍의 말에 활짝 웃으며 동의했다.“아까는 정말 죄송했어요. 저희 엄마와 엄마 친구가 강 선생님에 대해 한 말은 정말 부적절했어요. 죄송합니다.”강자풍은 조금도 개의치 않으며 입
류 씨 성을 가진 남자가 트집을 잡았고 결국 강자풍이 기여온을 데리고 나가는 장면이 모두 찍혀 인터넷에 공개된 것이었다.이 남자도 양심은 있었던지 기여온의 모습은 블러 처리를 해서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게 했지만 강자풍의 모습은 영상에서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채수연의 엄마는 한눈에 영상 속 사람이 강자풍임을 알아차렸다.영상 아래의 댓글을 본 채수연의 엄마는 더욱 초조한 눈빛으로 말했다.“수연아, 너 어떻게 이런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할 수 있어?”채수연의 얼굴이 찡그려졌다.“맞아요. 부인하지 않을게요. 난 강 선생님한테 호감을 가지고 있어요.”“뭐라고!”“아유... 수연아, 너 정말 이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하는 거야?”진 씨 부인의 눈빛이 미묘하게 반짝거렸다.“내가 보니까 여기 댓글 단 사람들이 벌써 이 남자 신상을 다 파헤친 것 같던데. 이 남자 예전에 우리 F국에서 한때 주름잡았던 그 강어라는 사람 동생이라더라구. 그 강연이라나 뭐라나 누나라는 사람은 업계에선 더욱 악명이 높았대.”“뭐! 그 강 선생이 강어와 강연의 동생이라고?”채수연의 엄마는 자신의 소중한 딸이 악명 높은 집안 배경을 가진 사람과 사귀게 될까 봐 전전긍긍했다.“나도 그 사람 형과 누나에 대해서 들은 적 있어요. 나도 알고 있다구요. 하지만 강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 일에 개입한 적이 없어요. 만약 조금이라도 개입했다면 벌써 경찰서에 잡혀 들어갔을 거예요.”채수연은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게다가 강 선생님은 이 아이의 친아빠가 아니에요. 친구 딸인데 잠시 이 아이를 돌보고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 아주머니, 부탁드리는데요. 이 아이가 말을 못 하는 걸로 자꾸 걸고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말을 못 해서 누구보다 괴로운 건 이 아이잖아요. 입장 바꿔서 누군가가 아주머니 아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절대 듣고 싶지 않을 거잖아요, 네?”“...”채수연의 입에서 뭐라도 가십거리를 좀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