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묵비는 이 사람이 호의를 가지고 접근한 것이 아님을 알아차렸고, 주사위가 말한 물건을 본 후 그는 완전히 기분이 언짢아졌다.기묵비가 잠시 정신이 혼미해진 모습을 보이자 주사위는 이 틈을 타 기묵비를 밀치고 총을 쥐고 일어섰다.“흥. 기 사장님, 어떠십니까? 사장님이 그렇게 형수님을 사랑하시니 이 물건과 회사를 바꾸면 그럴 만하다고 생각되지 않으십니까?”“그녀를 돌려줘!”기묵비는 마치 역린을 누가 건드린 듯 온몸에 서슬 퍼런 사악한 기운이 돋아났다.주사위는 웃으며 서류를 한 장 건넸다. “이것은 회사의 주식 양도 계약서입니다. 위에 서명하시고 끝냅시다. 그러면 내 이 유골함을 드리지요.”깨진 유골함.이 말은 마치 그의 타는 심장에 불을 붙이는 기폭제가 되었다.기묵비는 핏줄이 터진 주먹을 불끈 쥐었고 한순간에 폭발한 차가움 서린 분노가 온몸을 들끓었다.그는 주먹을 치켜들고 주사위를 때려 단번에 이빨을 하나 빠뜨리고 바로 다음에는 천둥과 같은 기세로 빠르게 초요의 유골함을 들고 있는 남자 곁으로 갔다. 그는 재빨리 유골함을 빼앗아 그를 막으려고 하는 사람들을 팔꿈치로 쳐서 곧장 문을 열고 초요의 유골함을 들고 그곳을 빠져나왔다.“쫓아라! 쫓아가라. 해치워 버려! 내가 상금 2억 원을 주지!”주사위가 아주 두둑한 상금으로 사람들을 유혹하며 명령했다.이 두둑한 상금 때문에 모두가 즉시 기묵비를 쫓아가 그를 죽이려고 했다.여름밤의 소나기가 심하게 내렸고 기묵비는 차를 몰았다. 이따금씩 조수석에 놓여 있는 초요의 유골함을 바라보았다. 백미러를 보니 여전히 여러 차들이 따라붙었다.“초요. 당신 겁내지 마.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과 함께 있을 거야.”그는 허공에 대고 약속하고 곧 엑셀을 밟아 빠르게 차를 몰았다.한참을 운전한 후에야 기묵비는 차에 곧 기름이 떨어질 것을 알았다.그는 주저함 없이 차를 세우고 초요의 유골함을 안고 앞으로 걸어갔다.그런데 몇 걸음 못 가서 그를 방해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2억 원이라는 돈은 물론 매력적이지만 만약 목숨이 없어지면 그 돈이 다 무슨 소용인가?그렇게 생각해 보더니 모두들 도망쳤다.기묵비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한쪽 무릎을 꿇고 얼마 남지 않은 유골을 보고 눈에서 절망이 차오르기 시작했다.그는 갑자기 온몸이 점점 더 무력해지는 것을 느꼈고 고개를 숙이고 나서야 비로소 어깨에 총상을 입을 것을 알았다. 언제 맞았는지 기억은 가물가물한데 피는 하염없이 흐르고 있었다.그는 일어서려고 했지만 점점 눈꺼풀이 무거워져서 비 오는 밤에 풀밭에 그대로 털썩 쓰러졌다.그는 피로 물든 손을 들어 여전히 있는 힘껏 유골함을 끌어안았다.“초요...”그는 가볍게 부르다가 곧 의식을 잃으려고 할 때 눈앞에 겹겹이 쌓여 뿌려지는 빗속에서 그는 어렴풋이 한 여인의 모습을 보았다. 그 여인은 우산을 쓰고 자신을 향해 다가왔다.그는 자신을 향해 점점 다가오는 모습을 보며 얇은 입술을 가볍게 움직였다.“초요...”밤새 내린 소나기.날이 밝았고 기묵비는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을 느끼다가 갑자기 깜짝 놀라 깨어났다.몸의 상처는 아직도 그대로였고 아팠지만 기묵비는 자신의 상처가 붕대로 잘 싸매진 모습을 발견했다. 그는 눈을 들어 주변의 환경을 살폈다. 매우 낯설었다.기묵비는 갑자기 뒤를 돌아보며 긴장한 표정으로 옆에 있는 유골함을 보고 얼른 품에 안았다.“초요.”그는 가볍게 불렀다. 가슴이 한바탕 요동치며 쥐어짜듯 아파왔다.“사촌 형부. 일어나셨어요?”백열이 갑자기 기묵비의 면전에 나타났다. 그리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기묵비를 불렀다.“어젯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형부를 괴롭히길래 그냥 지나치기 어려워서 내가 계속 형부 곁에 있었어요.”기묵비는 눈에 난 상처를 잘 감싸놓은 것을 보고 말했다.“어젯밤 네가 날 구했니?”백열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게 저예요. 제가 예전에 의학을 공부했어요!”기묵비는 힘겹게 일어서려고 했고 백열은 그 모습을 보고 그를 부축하려
기모진이 추궁하자 데스크 직원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그러자 데스트 직원은 그제야 우물쭈물하며 말했다.“그 분은 이 붉은 장미가 자신을 대표한다고 하셨는데 기 부인에 대한 그의 한 조각, 한 조각...”“나의 진심을 대변한다는 것이지.”멀리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렇게 말을 더듬으면 어떻게 프런트 데스크에서 일을 해. 기모진, 당신 회사 직원 채용 기준이 너무 낮은 것 같은데요.”소만리에게 장미꽃을 보낸 남자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을 때 기모진은 굉장히 불쾌했다.그러나 지금 이 오만방자한 목소리를 듣자 기모진은 오히려 화가 가라앉았다.소만리는 고개를 돌려 강자풍을 보았다. 두 손을 주머니에 찌르고 건들건들 건방진 모습을 하고 은발의 유달스러운 허풍스러움을 풍기는 강자풍은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강자풍, 당신 내 아내에게 꽃 보낸 것 말인데. 나에 대한 도전인가?”기모진의 관능적인 입술에 장난기가 어렸다.“기 사장님 일단 질투하지 마세요. 빨간 장미꽃을 선물한다는 게 꼭 그런 뜻은 아니잖아요.”강자풍은 좀 더 깊은 뜻이 있는 양 말했다.소만리는 눈썰미 좋은 눈으로 빠르게 꽃다발을 훑었다. 꽃은 모두 30송이었다.그녀는 옅은 미소를 띄며 말했다.“강자풍 도련님이 나한테 보낸 서른 송이 장미가 뭘 말하려는 걸까. 당신이 나와 무슨 인연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어?”“역시 누나가 뭘 좀 알아요.”강자풍은 빙그레 웃으며 소만리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자랑스러운 듯 뻐기며 기모진을 흘끗 쳐다보았다.“기 사장님 좀 배우셔요.”기모진은 강자풍을 상대해 주지 않았다. 이런 젖먹이와 다투고 싶지 않다는 듯 냉담한 표정을 지었다.오히려 소만리는 흥미롭게 지켜보며 말했다.“빨간 장미꽃은 항상 남다른 의미를 가지지. 강자풍 도련님은 다음엔 좋아하는 여자에게 이 꽃을 주는 게 훨씬 더 어울리겠는데. 이 꽃은 내가 받을 수 없어. 난 평생 내 남편이 준 꽃만 받아.”이 말을 들으니 기모진은 순
기모진이 화를 내려고 하자 소만리는 택배기사의 사과를 받아들였고 서둘러 택배기사를 가게 했다.“난 괜찮아. 당신 이렇게 긴장하지 말아요.”소만리가 기모진을 달랬다.그러나 기모진의 눈빛은 엄하게 가라앉아 있는 채 걱정스럽게 소만리를 바라보며 말했다.“당연히 긴장하지. 난 조금이라도 당신이 다치는 걸 보고 싶지 않아.”강자풍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가만히 구경하고 있었다.그가 기여온에 대해 물어보려고 하는 순간 옆에 한 여자가 걸어왔다.여인은 회색 단발머리에 섹시한 옷차림, 화끈한 몸매를 하고 아주 친근하고 상냥한 웃음을 지으며 걸어와 자기소개를 했다.“두 분 안녕하세요. 저는 강자풍의 둘째 누나 강연이에요.”강자풍에게 누나가 있었던 것이다.기모진과 소만리는 모두 강 씨 집안사람과 더는 접촉하고 싶지 않아서 남자는 소만리의 어깨를 끌어당겨 안으며 바로 돌아섰다.“기 씨 집안 남자는 정말 하나같이 다 매력적인 걸.”강연이 흥미진진하게 붉은 입술을 움직이며 기모진과 소만리가 떠나가는 쪽을 바라보며 즐거운 듯 웃음을 흘렸다.기모진은 소만리를 데리고 사무실에 도착하자 자못 궁금해서 소만리에게 물었다.“소만리, 당신 장미꽃 서른 송이가 뭘 의미하는지 어떻게 알았어?”“그때 당신이 항상 장미꽃 88송이를 사서 묘지로 들고 가 누구한테 선물하는 걸 봤는데 너무 궁금해서 찾아봤어요.”장미꽃 88송이는 모든 잘못을 뉘우치고 마음으로 사죄한다는 것을 의미였다.이후 기모진은 정기 회의에 참석하러 갔고 소만리는 사무실에서 혼자 향을 피웠다.소만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조향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향수 신상품 개발에 참여해서 어렵지 않게 여러 가지 향을 조합하여 독특한 향을 만들기도 했다.기모진은 소만리에게 등록된 상표와 브랜드를 준 후 시장에 판매하였다. 출시된 지 며칠 만에 반응이 좋았다.주말이 되어 기모진은 소만리를 데리고 남사택한테 찾아가 보았다.남사택은 신약 한 병을 건네며 원래 먹던 약과 함께 복용하면 더
기모진은 지금까지 그를 사모하는 여자를 많이 봤지만 강연처럼 그렇게 날뛰는 여자는 처음 봤다.게다가 이렇게 직접 뽀뽀를 한 건 분명히 일부러 소만리에게 보여주려고 한 것이다.그러나 기모진은 강연이 결코 자신에게 뽀뽀하지 못하게 했고 차갑게 강연을 밀어냈다. 말속에 차가운 기운이 가득 서려 있는 채로 말했다.“나한테서 멀리 떨어져.”그는 경고했고 몸을 돌려 소만리를 향해 돌아섰다.소만리는 방금 아는 사람을 잠깐 만나 얘기를 나누느라 강연이 기모진에게 뽀뽀하려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기모진이 조용히 한숨을 돌렸다. 그는 소만리가 뭔가 오해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소만리는 아는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돌아섰는데 기모진이 자신의 가방을 들고 오는 것을 보았다.그가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말했다.“소만리, 나 갑자기 스페인 음식이 먹고 싶어. 다른 레스토랑 가자.”갑자기 기모진이 이렇게 마음을 바꾸고 나오자 소만리는 뭔가 좀 이상하다고 여겼다.그녀는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강연을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보았고 손을 들어 기모진의 팔짱을 꼈다.“가요.”식당을 나서자 소만리는 단도직입적으로 기모진에게 물었다.“아까 그 강연이란 사람하고 무슨 얘기했어요? 당신 설마 진짜로 스페인 음식이 갑자기 먹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죠?”아무래도 소만리가 불쾌해하는 낌새를 보이자 기모진은 뭔가 합리적인 이유를 찾았다.“그녀가 아무리 제대로 된 정당한 사업을 한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강어의 여동생이잖아. 흑강당 사람들 우리가 접촉하지 않으면 만날 일도 없어.”소만리는 기모진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고 다른 의심은 하지 않았다.저녁.소만리는 아이들과 함께 만들기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강연의 전화를 받았다.강연이 말하기를 소만리와 향수 사업에 대해 합작하고 싶다고 했다. 소만리는 낮에 기모진이 했던 말이 떠올라 완곡히 거절했다.강연도 별말 없이 흔쾌히 전화를 끊었다.하지만 곧이어 기모진의 핸드폰이 울렸다.주방에
기모진이 전화를 받자마자 강연의 목소리가 아주 가식적으로 들려왔다.“기 사장님 화분 받으셨죠? 제가 왜 월하미인을 보냈는지 아세요?”“강연 씨. 내 마지막으로 경고하는데 다시는 귀찮게 하지 마세요. 난 당신 같은 사람 아예 관심 없어요.”강연은 가볍게 코웃음을 지으며 점점 더 야릇하게 말을 건넸다.“관심이 있는지 없는지는 나중에 두고 보면 알게 될 거예요. 기 사장님, 듣자 하니 부인이 지금 임신 4개월이라던데. 밤에 잘 못하지 않아요? 난 가능해요.”기모진은 이 여자의 언행이 너무 방탕하고 음탕해서 정말 진절머리가 났다.그는 정말로 이런 여자와 입씨름을 하고 싶지 않아서 바로 전화를 끊었고 강연의 번호를 차단해 버렸다.그리고 바로 소만리를 위해 마련된 주말에 있을 시향 리셉션 준비를 하러 갔다.그런데 뜻밖에도 시향 리셉션에 강연이 다시 나타났다.그녀는 섹시한 의상을 입고 독특한 향기를 뿜어내며 등장했다. 소만리가 가까이 가서 향기를 맡았다.하지만 분명히 좋은 향기인데 왠지 소만리는 어지러움을 느꼈다.소만리도 강연이 어떻게 초대장을 받았는지 모르지만 기왕 온 이상 사람을 쫓아보내기가 쉽지 않았다.강연은 소만리가 새로 개발한 향수를 몇 가지 시향 해보고는 아쉬운 듯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난 정말 진심으로 기 부인과 합작하고 싶어요. 하지만 오빠 때문에 저랑 접촉하기가 좀 꺼려지시는 것 같네요.”“가끔 정말 오빠와의 관계를 끊고 싶어요. 나도 오빠가 선을 넘는 짓을 하는 걸 알면서도 말릴 수가 없어요.”강연은 유감스럽고 안타깝다는 눈빛을 지으며 말했다.“기 부인, 우리가 합작할 수 있는 기회가 아직 있을까요?”기모진은 줄곧 소만리 곁에 있었는데 강연의 이 말을 듣고 그녀의 목적이 사업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여자의 목표는 기모진, 바로 그였다.“강연 씨, 나와 내 아내는 이미 분명히 말했어요. 우리는 결코 당신과 사업을 합작해서 할 생각이 없어요.”기모진의 태도는 여전
기모진은 이 여인의 영향을 받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고개도 돌리지 않고 연회장으로 들어갔다.사화정에게 소만리 전용 텀블러를 받은 후 기모진은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갔다.그런데 강연이 아직도 아까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기모진은 그녀의 존재를 무시한 채 곧장 앞으로 나아갔다.강연은 마주 오는 기모진을 묘한 눈빛으로 노려보며 그가 옆을 지나갈 때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투명 봉투를 들어 올렸다.“기 사장님 이게 뭔지 아시겠죠? 당신 아내가 요즘 먹고 있는 약이죠?”기모진은 강연이라는 사람과 연관된 모든 것을 알고 싶지 않았지만 그의 시선은 바로 그 투명 봉투 안의 물건에 끌려가 있었다.이 분홍색의 가늘고 긴 알약은 분명히 소만리가 방금 삼킨 약이다. 남사택의 말에 의하면 이것은 그들 팀이 새로 개발한 약으로 종양 억제에 매우 효과가 있다고 했다. 임상 시험도 다 끝난 것이라 성분도 안전하다고 했다.그런데 이 약은 매우 귀하고 비싸서 한 알에 몇 백만 원이나 되고 게다가 수량도 아주 적어서 아예 시장에서는 구할 수 없는 약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강연이 이 약을 가지고 있지?기모진이 눈앞에서 강한 의혹을 품고 의아해하는 모습을 보고 강연은 여유롭게 말했다.“기 사장님. 지금 이상하다고 생각하시죠? 내가 어떻게 이 약을 들고 있지? 이유가 궁금하다면 내일 밤 이 시간에 이 호텔 프레지던트 스위트룸에서 만나요. 기다릴게요.”강연은 손에 들고 있던 작은 약봉지를 기모진에게 건넸다.“이 몇 알은 기 부인께 선물 드리는 것으로 해요. 하지만 절대 과하게 드시진 마세요. 그렇지 않으면...”그녀는 일부러 반쯤 말하고 의미심장하게 웃었다.기모진은 그 약 봉투를 잡으려 하지 않았으나 강연은 아예 약 봉투를 기모진의 손에 쑤셔 넣고 일부러 기모진의 손등을 문지르기도 했다.“내 전화번호부터 블랙리스트에서 삭제하시는 거 잊지 말구요. 내일 밤에 봐요.”강연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떠났지만 기모진의 코끝에는 아직도 불가사의
호텔 프레지던트 스위트룸을 찾았을 때 문이 열리고 반투명 슬립 드레스를 입은 강연이 기모진 앞에 나타났다. 강연의 가슴에 큼직한 문신을 한 것이 눈에 띄었다.기모진은 놀라지도 않고 시선을 떼었다. 그녀의 몸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강연이 어제 준 그 알약을 꺼냈다.“이제는 말할 수 있겠죠. 제 아내가 이 약을 먹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어요?”강연은 문 옆에 기대어 선 채 말했다.“여기서 말할까요? 기 사장님이랑 이런 옷을 입은 내가 여기서 얘기하는 거 찍힐까 봐 두렵지 않으세요? 만약 부인한테 들키기라도 한다면 일이 곤란해질 텐데요.”기모진이 지금까지는 그녀의 이런 행동에 매우 저항했지만 지금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 소만리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방으로 들어갔다.기모진은 방에 들어가자마자 아주 독특하고 인도 지방의 향기 같은 냄새를 맡았고 방 안의 빛도 매우 어둡게 조절되어 있었다.기모진은 강연의 목적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결코 돌려 말하고 싶지 않아 단도직입적으로 입을 열었다.“이제 말해 봐요.”강연은 기모진에게 와인 한 잔을 건네며 말했다.“나와 함께 먼저 한잔하시죠.”기모진은 냉담한 표정으로 말했다.“시간 낭비하지 말고 말해요.”강연은 잔에 담긴 와인을 다 비우고서야 입을 열었다.“기 사장님. 그날 당신이 내 오빠를 급히 찾아와서 당신 딸을 내놓으라고 했을 때 나도 사실 2층에 있었어요. 나중에 소만리가 왔고 당신이 소만리의 모습을 보고 긴장하고 애틋해하는 모습을 봤어요. 그 모습이 절 너무 흥분되게 했어요. 당신 같은 이런 남자가 긴장하고 아끼고 신경 쓰는 기분을 꼭 느껴보고 싶었어요.”강연이 계속 말을 이었다.“나는 좋은 사람도 아니고 진지한 여자는 더더욱 아니에요. 그래서 난 당신이 마음에 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당신을 가질 거예요.”강연의 이런 염치없고 부끄러움도 없는 말은 기모진을 역겹게 했다.하지만 이 여자는 정말 체면 따위 안중에도 없었다.“기 사
문 앞에 서 있던 소군연의 모친은 이 모습을 보고 들어가려고 했지만 소군연의 부친이 옆에서 말렸다.“그만 좀 해. 아들이 평생 홀아비로 살길 바라는 거야?”“누가 지금 가서 훼방 놓으려는 줄 아세요? 가서 말해 줘야죠. 나도 이 혼사에 동의해도 되겠냐고.”“당신 동의하는 거야?”소군연의 모친이 막 대답하려고 했을 때 갑자기 강연장 안 불빛이 밝아지는 것을 보았고 안에서 환호하는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깜짝 놀라 소군연의 품에서 나온 예선은 소만리와 기모진, 그리고 그녀의 부모님, 심지어 나익현과 나다희까지 서 있는 것을 보았다.그들은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예선과 소군연을 향해 다가왔다.예선은 멍하니 소만리를 쳐다보다가 결국 이 모든 것이 그들이 미리 계획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그녀와 소군연의 부모만 감쪽같이 몰랐던 것이다.소군연은 절대 그녀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단지 그녀에게 인생에서 가장 지키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 누구인지 각인시키기 위해 좀 다른 방법을 썼을 뿐이다....이듬해 봄.생명의 기운이 깃든 모든 것들이 축제를 펼치는 계절.경도호텔 야외 정원에서는 결혼식이 한창이었다.그렇다.오늘은 소군연과 예선이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었다.소만리와 기모진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공주님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멈추지 않았다.두 부부의 눈에는 실로 눈앞의 모든 존재들이 기적과도 같았다.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막내와 그 옆을 잘 보살피고 있는 듬직한 기란군, 그리고 곱고 맑은 딸 기여온까지.“엄마 아빠, 나랑 막내한테도 뽀뽀해 줘.”“뽀뽀, 뽀뽀.”막내는 기란군의 말을 알아들은 듯 소리쳤다.“너랑 막내는 맨날 하잖아. 여온이는 오랜만에 집에 왔으니까 특별히 좀 더 많이 해 줘야지.”기모진은 귀여운 기여온을 안고 볼에 뽀뽀를 했다.“여온아, 요즘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그놈이 평소에 무섭게 굴지는 않아?”“당신이 말한 그놈이 혹시 나예요?”강자풍이 짐짓 뾰로통한 얼
예선의 말을 듣고 소군연의 모친은 천천히 발걸음을 멈추었다.예선의 마음속에 그런 생각이 있는 줄은 몰랐다.게다가 예선은 자신을 향해 ‘존중'이라는 단어를 썼다.예선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 소군연의 모친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는 중 갑자기 소만리의 목소리가 들렸다.“예선아, 네가 그들을 존중한다고 해서 그들이 널 존중해 줄 줄 알아? 사람은 서로 존중해 주어야 하는 거야.”“그렇지만 군연은 그들의 아들이잖아. 만약 내가 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군연이랑 결혼을 한다면 그들은 두고두고 평생 나와 군연을 원망하며 살 거야.”예선은 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군연을 그렇게 만들고 싶진 않아. 나와 부모님 사이에서 평생 힘들어하면서 살게 할 순 없어.”“그렇지만 예선아...”“소만리, 이제 그만해. 너 나 어떤 사람인지 잘 알잖아? 한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꼭 함께 지내야만 하는 건 아니야. 그 사람이 평안하고 즐겁게 지낸다면 그것으로 족한 거야, 안 그래?”예선의 얼굴에 담담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미 마음속에 결심을 한 것 같았다.소만리는 예선을 말리고 싶었지만 이 상황에서 뭐라고 조언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예선아, 그럼 이제 갈 거야? 소군연 선배 더 안 찾을 거야?”“찾아볼 곳은 다 찾아봤어. 이래도 못 찾는다는 건 아마도 군연과 나의 인연이 여기까지라는 거겠지. 군연이 혼자 조용히 있게 놔두는 게 좋을 것 같아.”예선이 돌아서자 소군연의 모친은 얼른 몸을 숨겼다.자신이 그들을 미행했다는 걸 그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이때 소만리가 예선을 불러 세웠다.“예선아,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니 너랑 군연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 보는 건 어때? 아직 안 가 본 곳이 혹시나 없는지 잘 생각해 봐. 소군연 선배가 거기서 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예선은 이 말을 듣고 걸음을 멈추었다.“아직 안 가 본 곳이 한 군데 있긴 해.”“거기가 어
멀리서 예선을 몰래 관찰하던 소군연의 부모는 차 안에서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흥. 군연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렇게 깊다더니 한나절이 지나도록 군연이 어디 갔는지 짐작도 못하고 있군.”소군연의 모친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투덜거렸다.소군연의 부친은 아내를 힐끗 쳐다보았다.“그런 말 좀 이제 그만해. 지금은 군연이를 찾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야. 사실 난 저 예선이란 애, 꽤 괜찮다고 생각해. 처음에는 부모도 없다고 당신 많이 싫어했잖아? 그런데 지금은 부모도 있고 그뿐만 아니라 엄마는 갑부에 아빠는 유명한 의사인데 당신 뭐가 불만이 그렇게 많아? 정말 아들을 평생 독신으로 살게 할 셈이야?”소군연의 부친은 솔직히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지만 소군연의 모친은 그래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당신도 예전에는 반대했잖아요? 나중에는 나도 동의했다구요. 하지만 아버님 체면 세워 드리느라고 동의하지 않았던 건데 이제 와서 날 탓하면 어쩌라는 거예요?”“그만둬.”소군연의 부친이 아내의 말을 끊었다.“어째서 말을 못하게 해요? 내가...”“예선이 움직였어!”소군연의 부친이 급히 액셀을 밟았고 소군연의 모친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잠시 후 소만리의 차는 경도대학교 정문 앞에 멈춰 섰다.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눈에 익은 건물을 바라보며 예전에 함께 보냈던 날들을 떠올렸다.그들이 대학에 갓 입학한 첫날이었다.그때 그들은 모두 각자 마음에 두고 있던 한 해 선배의 남자와 부딪히게 되었다.그 남자와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될 때까지 아주 오랜 세월이 걸렸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경도대학교에 있을 것 같아?”소만리가 물었다. 예선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살짝 웃었다.“나도 확신할 수 없지만 네 말처럼 군연과 함께 했던 추억이 있는 곳은 다 가능성이 있는 거니까. 그래서 여기 왔어. 운에 한번 맡겨 보려고.”예선은 말을 마치며 학교 안으로 걸어갔다.학교는 개방식이어서 예선과 소만리는 아무런 제지도 없이 바로 들어갔
소군연의 할아버지는 소군연의 글을 보고 화가 나서 눈을 부릅떴다.퇴원하자마자 한 여자 때문에 사라져?게다가 이 여자가 아니면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그는 결코 그런 일이 발생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소군연이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하니 마음이 몹시 답답하고 당황스러웠다.만약 소군연이 정말 결혼하지 않는다면 그들 소 씨 가문은 후사가 없게 되는 게 아닌가?낭패였다.그건 안 된다. 절대 안 될 일이었다.예선은 밖으로 뛰쳐나온 후 그가 갈 만한 곳을 찾아가 보았지만 오전이 다 지나도록 소군연의 행방을 알아낼 수 없었다.그녀는 소군연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역시나 받지 않았다.아무런 소득 없이 시간만 흘러가자 예선은 갑자기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그녀는 길가에 있는 의자에 앉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았다.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들의 인생에 주어진 하루하루를 무탈히 사는 것만 같았다.갑자기 상실감이 확 밀려왔다.군연, 정말 날 포기하기로 한 거예요?우린 이렇게 헤어져서 제 갈 길을 가게 되는 건가요? 그런 건가요?예선은 막막한 마음을 도무지 어찌할 수가 없었다.생각하면 할수록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바로 그때 소만리에게서 전화가 왔다.예선은 얼른 그녀의 전화를 받아 소군연에게 일어난 상황을 전했고 소만리는 한달음에 예선에게 달려왔다.예선은 소만리를 보자마자 눈물샘이 터져버렸다.소만리는 예선을 위로했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일시적으로 감정이 격해져서 그런 걸 거야. 널 포기했을 리가 없어.”“아니야. 포기한 거야.”예선은 심호흡을 하고 스스로를 진정시켰다.“그의 가족들이 절대 날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특히 어머니는 강경하게 반대하시고 최근에 발생한 일 때문에 다른 가족들도 나에 대한 선입견이 더욱 나빠졌어.”“그동안 일어난 일은 너랑 아무 상관없어. 넌 피해자야.”“하지만 그들은 날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저 소군연
”얼른 들어갈게요!”소군연의 엄마는 황급히 뛰어가다가 갑자기 뒤따라오는 예선에게 고개를 돌렸다.“넌 오지 마! 우리 소 씨 가문에 널 환영하는 사람은 없어!”소군연의 엄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선은 소군연을 만나러 가지 않을 수 없었다.예선은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어떻게 소군연이 스스로 퇴원을 할 수 있단 말인가?그는 어제까지도 분명 병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누워 있었다.소군연의 집으로 가는 길에 예선은 소군연에게 계속 전화를 걸어 보았다.그러나 소군연은 받지 않았다.소군연에게 핸드폰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하긴 했지만 그래도 예선은 계속 전화를 시도했고 예상대로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그녀는 한시라도 빨리 소군연을 만나고 싶었다.그러나 가는 길이 너무 막혔다.드디어 예선이 소군연의 집에 도착해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앙칼진 소군연의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가 어떻게 스스로 집에 왔다는 거야? 방금 깨어난 거 아니야?”“이것 좀 봐 봐. 이거 보면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게 될 거야.”소군연의 부친은 원망 섞인 말투로 소군연의 모친에게 뭔가를 쥐여 주었다.예선이 얼른 현관에 들어서자 따가운 소군연의 모친 목소리가 그녀를 향했다.“따라오지 말라고 했는데 넌 왜 또 왔어? 누가 널 환영한다구...”“됐어. 그만하고 이것 좀 보라니까.”소군연의 부친은 예선이 들어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군연의 모친 말을 끊었다.예선은 소군연의 부친이 미묘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며 쫓아내지 않자 얼른 안으로 걸어갔다.소군연의 모친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메모지 한 장이었는데 메모지에는 짧은 몇 마디가 쓰여져 있었고 모두 소군연의 모친에게 전하는 말인 것 같았다.소군연은 자신이 이틀 전에 깨어났다고 실토하며 잠에서 깬 이후 자신의 엄마가 예선에게 모질게 투덜거리는 말만 하는 것을 보고 예선과 절대 결혼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
예선은 아무도 없는 병실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즉시 소군연을 찾아나섰다.그러나 근처를 한 바퀴 둘러보아도 예선은 소군연의 모습을 찾지 못했고 마음속에서 초조함이 스멀스멀 밀려왔다.이때 소군연의 엄마가 들어왔다.병상에 누워 있어야 할 소군연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을 본 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 혹시 무슨 검사하도 하러 간 거야?”소군연의 엄마는 불만이 가득 담긴 얼굴로 예선에게 물었다.소군연의 엄마가 보이는 이런 태도에는 이골이 났는지 예선은 개의치 않으며 담담하게 돌아섰다.“저도 알고 싶어요.”“나보다 먼저 와 놓고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제가 왔을 때도 병실에 아무도 없었어요.”예선은 돌아서면서 말을 이었다.“간호사한테 한번 물어볼게요.”“잠깐만.”소군연의 엄마가 예선을 멈추어 세우며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너한테 말을 해 둬야겠어. 군연인 이미 너 때문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었어. 다친 적도 한두 번이 아니고. 너 때문에 영 씨 집안 두 모녀는 감옥에 갇혔어. 이건 분명히 네가 우리 가문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얘기야. 네가 우리 군연이를 얼마나 좋아하든 우리 군연이 널 얼마나 좋아하든 상관없어. 넌 우리 소 씨 가문에 들어올 수 없어.”이 말을 들은 예선은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영 씨 집안 두 모녀가 감옥에 간 것까지도 예선의 탓으로 돌린단 말인가?예선과 소군연은 엄연히 피해자였다.영내문 같은 악랄한 사람은 오늘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다른 사람에게 악행을 저지를 사람이었다.영내문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인 중의 악인이었기 때문이다.지금까지 벌여진 일들로 이 모든 것이 자명한데 소군연의 엄마는 여전히 예선을 탓하고 있는 것이다.예선은 더 이상 소군연의 엄마와 논쟁을 하고 싶지 않았다.그런 시간 낭비 에너지
채수연이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이미 모든 상황을 다 이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여온아.”채수연이 기여온에게 다가가 몸을 웅크리고 앉아 다정하게 말했다.“여온아, 선생님이 여온이 좋아하는 거 알지? 어딜 가든 매일 기쁘고 즐거운 일만 있길 바라. 그리고 하루빨리 말도 할 수 있게 되길 바랄게.”기여온이 선생님의 말을 알아듣고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한껏 고개를 끄덕였다.채수연은 일어서서 강자풍을 바라보았다.아직도 눈에는 그에 대한 호감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조금 전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더 이상의 집착은 사라졌다.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반드시 고집스럽게 쟁취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채수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강자풍을 바라보며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강자풍도 더 이상 아무 말없이 몸을 굽혀 기여온을 품에 안고 돌아섰다.돌아서기 전에 채수연에게 따뜻한 작별의 미소도 잊지 않았다.“채 선생님, 앞으로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어쨌든 선생님께 많이 신세 졌습니다. 고맙습니다.”채수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절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걸로 이미 다 갚으셨어요. 하지만 강 선생님 같은 친구가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긴 하네요. 기회가 되면 같이 식사라도 해요.”“그럼요, 언제든지요.”강자풍이 흔쾌히 승낙했다.친구가 된다는 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채수연은 그 자리에서 기여온을 안고 점점 멀어지는 강자풍의 뒷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두어 걸음 앞으로 나섰다.“강 선생님, 저 궁금한 게 하나 더 있는데 대답해 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강자풍은 천천히 걸음을 멈추었다.그는 잘생긴 얼굴에 다정한 미소를 가득 품고 뒤돌아보며 물었다.“뭐가 궁금하신가요?”“좋아하는 여자가 정말 있긴 한 거죠?”강자풍은 기여온의 작은 얼굴에 부드러운 시선을 잠시 떨구며 입을 열었다.“지금 저의 가장 큰 소원은 여온이가 무탈하고 건강하게
”어쩌다가 듣게 되었어요.”강자풍은 순순히 시인했다.채수연은 강자풍의 대답을 듣고 자신이 난감해할 줄 알았다.하지만 그녀의 마음이 예전처럼 초조하지 않고 오히려 편안하고 후련한 느낌이 들었다.다만 약간의 부끄러움은 어쩔 수 없었다.강자풍은 채수연이 난감해하지 않도록 애써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채 선생님을 도와드리려고 했던 건데 어떻게 하다가 영상이 찍혀 인터넷에 올라오는 바람에 선생님을 더 난처하게 해 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나와 여온이 일로 또 한 번 고민거리를 안겨 드린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강자풍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기여온을 향해 부드러운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하지만 선생님, 걱정 마세요. 앞으로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 없을 거예요.”채수연은 이 말을 듣고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순간 마음속에서 상실감이 강하게 몰아쳤다.그녀는 의아한 눈으로 강자풍을 쳐다보며 강자풍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역시나 그의 말은 그녀를 안타깝게 만들었다.“채 선생님, 여온이한테 더 잘 맞는 유치원을 찾았어요. 제가 일하는 곳과도 더 가까워서 여온이 등하원하는 데도 훨씬 편리할 것 같아요.”강자풍의 말을 들은 채수연은 갑자기 마음이 너무나 허전했다.“여온이한테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봐 유치원을 옮기기로 하신 거예요?”강자풍은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이게 선생님한테도 우리한테도 좋은 것 같아요.”강자풍은 ‘우리'라는 말을 할 때 기여온에게 시선을 주었다.채수연은 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자신의 감정이 줄곧 일방적인 것이었고 닿을 수 없는 허무한 희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강자풍의 눈에는 이미 다른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강 선생님 생각이 맞는 것 같아요.”채수연도 강자풍의 말에 활짝 웃으며 동의했다.“아까는 정말 죄송했어요. 저희 엄마와 엄마 친구가 강 선생님에 대해 한 말은 정말 부적절했어요. 죄송합니다.”강자풍은 조금도 개의치 않으며 입
류 씨 성을 가진 남자가 트집을 잡았고 결국 강자풍이 기여온을 데리고 나가는 장면이 모두 찍혀 인터넷에 공개된 것이었다.이 남자도 양심은 있었던지 기여온의 모습은 블러 처리를 해서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게 했지만 강자풍의 모습은 영상에서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채수연의 엄마는 한눈에 영상 속 사람이 강자풍임을 알아차렸다.영상 아래의 댓글을 본 채수연의 엄마는 더욱 초조한 눈빛으로 말했다.“수연아, 너 어떻게 이런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할 수 있어?”채수연의 얼굴이 찡그려졌다.“맞아요. 부인하지 않을게요. 난 강 선생님한테 호감을 가지고 있어요.”“뭐라고!”“아유... 수연아, 너 정말 이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하는 거야?”진 씨 부인의 눈빛이 미묘하게 반짝거렸다.“내가 보니까 여기 댓글 단 사람들이 벌써 이 남자 신상을 다 파헤친 것 같던데. 이 남자 예전에 우리 F국에서 한때 주름잡았던 그 강어라는 사람 동생이라더라구. 그 강연이라나 뭐라나 누나라는 사람은 업계에선 더욱 악명이 높았대.”“뭐! 그 강 선생이 강어와 강연의 동생이라고?”채수연의 엄마는 자신의 소중한 딸이 악명 높은 집안 배경을 가진 사람과 사귀게 될까 봐 전전긍긍했다.“나도 그 사람 형과 누나에 대해서 들은 적 있어요. 나도 알고 있다구요. 하지만 강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 일에 개입한 적이 없어요. 만약 조금이라도 개입했다면 벌써 경찰서에 잡혀 들어갔을 거예요.”채수연은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게다가 강 선생님은 이 아이의 친아빠가 아니에요. 친구 딸인데 잠시 이 아이를 돌보고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 아주머니, 부탁드리는데요. 이 아이가 말을 못 하는 걸로 자꾸 걸고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말을 못 해서 누구보다 괴로운 건 이 아이잖아요. 입장 바꿔서 누군가가 아주머니 아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절대 듣고 싶지 않을 거잖아요, 네?”“...”채수연의 입에서 뭐라도 가십거리를 좀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