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만리는 얼어붙은 채 꼼짝도 하지 않고 문 앞에 서서 자신을 겨누고 있는 남자를 쳐다보았다.떨리고 불안한 마음이 약간은 진정되어 갔다. 눈앞에서 기모진이 총을 들고 자신을 겨누고 있었다. 그의 손바닥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핏자국이 남아 있었고 그의 갈색 재킷에도 핏방울이 드리워져 있었다.지난밤 그녀를 바라보던 깊은 두 눈동자엔 흉악스러운 살기가 짙게 서려 있었다. 주홍빛으로 핏날이 서 있는 그의 두 눈은 이글이글 타오르며 소만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지금 막 살육을 겪은 악마처럼 온몸에 살기가 돌았고 분노가 이글거리고 있었지만 그의 눈빛은 여전히 영롱하고 아름다웠다.들어온 사람이 소만리라는 걸 본 순간, 기모진의 눈 속에 있던 암혹한 기운은 흩어졌고 더 이상 그녀를 향한 분노도 없었다.“내가 죽었는지 아닌지 보러 온 거야?”그는 살짝 비꼬아 웃으며 한 걸음 한 걸음 소만리에게 다가서며 말했다.“역시 당신은 기묵비의 좋은 아내로군. 나를 치기 위해 그렇게 많은 부하를 푼 것도 모자라 이제 직접 확인까지 하러 오고 말이야. 그래, 내가 죽지 않고 살아 있어서 실망했어?”소만리는 기모진이 하는 말을 듣고 자신을 얼마나 오해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그녀는 더 이상 해결할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기모진, 죽기 싫으면 당장 여길 떠나요.”그녀는 침착하게 말했다. “당신 지금 떠나지 않으면 정말 못 갈 수도 있어요.”“허.”기모진이 비웃으며 소만리를 향해 겨누었던 총을 거두었다. 이윽고 피로 물든 손바닥으로 소만리의 얼굴을 만지며 말했다.“내가 정말 오늘 죽는다면 여기도 나쁘지 않은데. 심지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여인도 같이 있어 주고.”소만리는 결연하고 단호한 기모진의 눈을 바라보았다.“기모진, 당신 정말 죽고 싶어서 이래요?”그녀는 너무나 초조하고 애가 탔다.“기모진, 경도에 당신 아들이 있다는 걸 잊었어? 도대체 정말로 여기서 죽고 싶은 거냐구?”“아들? 당신 우리에게 아들이 있다는 걸 기
오토바이가 킬러들 사이를 휙휙 지나가더니 모퉁이를 돌자 어느새 모습이 사라졌다.기묵비는 기모진이 소만리를 데리고 도망쳤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모든 부하들에게 그들을 뒤쫓으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낮이 지나도 기모진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기모진.” 기묵비는 이를 갈았고 깨문 입술 사이로 이 세 글자가 미끄러져 나왔다.“네가 아직 F국에 있는 한, 내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지.”...소만리와 기모진은 교외의 외진 곳에 있는 작은 여관에서 2평 남짓 되는 방 안에 머무르고 있었다. 밤 비가 창문에 말을 걸 듯 고요히 내리는 밤, 그녀는 안절부절못하며 외출한 남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만리는 기모진이 뭘 하러 갔는지 모른 채 30분이나 지나갔다. 그녀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기모진을 찾아 나서고 싶었지만 문이 잠겨져 있었다.이때 마침내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 소만리는 눈을 들어 보았다. 기모진은 표정 없이 무뚝뚝하게 걸어오다가 도시락 한 봉지를 소만리 앞에 놓았다. “먹어.”그의 말투는 차가웠고 말을 마치고 돌아서서 가방 하나를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소만리는 그가 들어가서 뭘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왠지 피비린내가 나는 것 같았다.“다친 건가?”가만히 생각하고 있으니 소만리의 걱정이 점점 더 커져갔다.오래 걸리지 않아 기모진이 화장실에서 나왔지만 그는 여전히 쓸쓸한 표정 없는 얼굴이었고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소만리는 다른 방식으로 기모진을 따돌릴 생각을 하며 말했다. “도대체 날 여기 가둔 의미가 뭐죠? 기모진, 당신 아직 경도로 돌아갈 기회가 있어요. 날 계속 데리고 있으면 당신에게 짐이 될 뿐이에요.”“소만리, 지금 이렇게 말하면 내가 당신을 기묵비에게 보낼 줄 알아?”그는 봉황 같은 큰 눈을 뜨고 똑바로 쳐다보았다. 눈에는 끝을 알 수 없는 불쾌함과 질투심이 가득해 보였다.“예전엔 내가 당신을 붙잡지 않고 내 안에서 빠져나가게 했지만 지금 난 다시는 똑같은 잘못
소만리는 무방비 상태로 남자의 탄탄한 가슴에 코끝이 부딪치고 말았다. 소만리는 눈을 크게 뜨고 이 남자의 아름다운 맨몸을 깜짝 놀라 바라보았다. 코끝에 미지근한 그의 온기가 느껴졌다.머리 위에서 물방울이 끊임없이 떨어져서 점점 그녀의 시야를 가렸다.그녀는 손을 들어 속눈썹에 방울방울 맺혀 있는 물기를 닦으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기모진이 갑자기 밧줄이 묶인 그녀의 손목을 잡고 그녀의 머리 뒤에 갖다 대더니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퍼붓기 시작했다. 소만리는 깜짝 놀라 온몸이 흠뻑 젖을 때까지 그를 밀쳐내려고 했다. 그러나 그의 입술이 닿자마자 그녀는 손끝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남자가 이성을 잃고 포악해질까 봐 그녀는 있는 힘을 다해 그의 손목을 꺾으려고 했다.그러나 그녀가 저항하면 할수록 정복하려는 그의 욕구는 더욱더 거세어졌다. 소만리는 어쩔 수 없이 그의 입술을 깨물었다. 기모진은 인상을 찌푸리고 키스를 멈추었다. 그는 눈을 뜨고 물방울로 붉게 물든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그는 조금 화가 난 듯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당신 예전엔 이러지 않았잖아. 예전에 당신의 눈, 당신의 마음속엔 오직 나밖에 없었어. 내가 키스할 때마다 처음엔 좋아하지 않았지만 나중엔 따뜻하게 받아줬잖아.”기모진이 말을 이어갔다.“소만리, 내가 당신 마음속에 그렇게 오랫동안 살았는데 어떻게 이렇게 흔적 하나 없이 지워버릴 수 있는 거야?”그의 매혹적인 낮은 목소리가 소만리의 귓가에 미끄러져 들어갔고 물에 젖은 그의 두 손이 그녀의 젖은 얼굴을 들어 올려 시선을 맞추었다. “소만리, 아직 날 사랑한다 말해 줘. 아직 당신 마음속에 내가 있다고.”그의 붉게 물든 두 눈에 강렬한 기대가 반짝이고 있었다. 소만리는 주먹을 불끈 쥐고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기모진, 날 놔 줘요. 당신은 경도로 돌아가세요.”기모진이 원하던 대답이 아니었다. 그의 눈빛이 차가워졌고 그녀를 유리벽에 밀치고 다시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남자가 더욱 미쳐
그녀는 더 이상 뿌리치지 않고 그를 바라보며 그의 손을 잡고 눈을 내렸다.“기모진...”소만리가 나지막이 그의 이름을 불렀으나 채 다 말하기도 전에 기모진은 주체할 수 없어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 소만리는 순간 마음이 흐트러지는 것을 느꼈다.그녀의 머릿속은 순식간에 하얗게 되어 물소리만 귓가에 들렸다. 오직 기모진의 타오르는 정열이 그녀 안으로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느낄 뿐이었다. 그녀는 어떻게 남자와 침대 위에 얽히게 되었는지 전혀 기억할 수 없었다.기모진의 입술이 가볍게 그녀의 입술에 닿았고 그가 그녀의 옷을 벗길 때 그녀의 목에 걸려 있던 목걸이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그가 그녀에게 준 일곱 빛깔 조개 모양의 펜던트가 있는 목걸이였다. 이를 보자 기모진의 심장 박동은 더 크게 요동쳤고 기쁨을 주체할 수 없어 그 팬던트에 입을 맞추었다.펜던트를 살짝 입으로 깨물며 그녀를 더욱더 꽉 안았다. 비록 좋은 침대와 베개는 없고 보잘것없는 좁고 초라한 방이었지만 기모진에게는 지금이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이튿날 기모진의 품 속에서 잠이 깬 소만리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어젯밤의 일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당황스러웠다. 어젯밤 어떻게 된 거지? 마치 그의 달콤함에 홀린 듯 그에게 빠져들고 말았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배를 만져보았고 석 달이나 되었지만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었다. 그런데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소만리는 배가 약간 아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기모진은 달콤한 꿈에서 깨어나 보니 소만리가 보이지 않자 걱정되기 시작했다. 일어나 다시 잘 싸매진 자신의 상처를 보고 가슴이 뭉클해졌다. “소만리.”기모진은 소만리의 이름을 읊조리다가 화장실에서 나오는 그녀를 보니 안색이 좋지 않아 보였다.그는 얼른 일어나 주저 않고 걱정스러운 듯 그녀에게 다가갔다.“소만리, 괜찮아?”“저 조금 불편해요.”소만리는 자신의 배를 만졌다. “저 잠시 병원에 좀 다녀올게요.
비록 기모진이 의사는 아니었지만 글자를 알고 데이터를 볼 줄은 안다. 그는 핸드폰을 꺼내 모든 진단서를 찍어 남사택에게 보냈다. 그는 곧 진단서를 들고 황급히 진찰실로 들어갔다. 의사는 진단서를 보고 얼굴을 찡그렸다.“부인이 예전에 이 위치에 종양이 있었습니까? 만약 그랬다면 다시 재발한 것처럼 보이는데요.”기모진은 정신이 아득해졌고 예전에 소만리가 병에 걸렸다고 전해 들었던 때를 떠올렸다. 그녀는 거의 죽을 뻔했었다. 그런데 그녀에게 또 이런 일이 생기다니.“아이를 낳다가 엄마가 잘못될 수도 있어요. 얼른 수술을 받으셔야 됩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아요. 부인의 몸이 좋아진 다음에 아이를 또 가져도 늦지 않아요.”기모진은 정신없이 진찰실을 나왔다. 그는 이 아이가 기묵비의 아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 사실을 듣고 왜 이렇게 자신의 마음이 아픈지 알 수 없었다. 소만리 때문에도 마음이 아팠지만 뱃속의 그 아이, 더 이상 살 수 없는 그 아이를 생각하니 더욱 마음이 아려왔다. 이때 남사택으로부터 답장이 왔다.[아무래도 종양이 재발한 것 같아요. 얼른 그녀를 설득해서 아이를 포기하고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는 게 좋겠습니다. 요즘은 수술 후 경과도 좋아서 회복 확률이 거의 100%에 가까워요. 미루면 더 곤란해져요. 더군다나 당신들은 이미 아이가 둘이나 있으니 그녀의 건강이 회복된 후에 또 가져도 늦지 않습니다.]남사택에게서 정확한 얘기를 들으니 기모진의 손아귀가 서늘해졌다. 분명히 전에도 그녀에게 말했었다. 더 이상 아이를 갖지 말라고 말렸던 것이다.그러나 이런 순간이 정말로 현실이 되자 그의 가슴은 미어지듯 아파왔다.눈을 들어 소만리가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기모진은 진단서를 접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녀에게 다가갔다.“진단서 나왔나요?”소만리가 물었다. 기모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미 의사 선생님한테 갔다 왔어. 큰 문제는 아니지만 내일 한 번 더 와서 재검사를 받아야 한대.”
소만리의 뺨은 더 뜨거워졌고 그녀가 막 입을 열려고 했을 때 다시 다급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기모진도 주위를 경계하며 봉황 같은 눈을 치켜세우고 다시 소만리의 손을 잡아 깍지를 끼고 급히 몸을 돌렸다.“여기 있다!”갑자기 누군가 뒤에서 소리쳤다.소만리는 있는 힘껏 기모진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당신 먼저 가세요. 저들은 날 어쩌지는 못할 거예요. 하지만 당신이 붙잡히면 기묵비가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난 절대로 당신을 기묵비에게 돌려보내지 않을 거야.”기모진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기모진! 사랑해요. 사랑해. 이제 됐죠! 그러니까 이제 빨리 경도로 돌아가요!”소만리는 그를 향해 소리쳤다.그러나 기모진은 이것이 그녀의 진심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얼렁뚱땅 자기를 떼어 놓기 위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의 안색이 더욱 굳어졌고 더욱더 강하게 소만리의 손을 잡고 재빨리 도로에 있던 차에 올라탔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장 어젯밤 묵었던 그곳으로 돌아왔다.소만리는 차에서 내렸으나 줄곧 배가 조금 불편했고 계속 찜찜한 통증이 느껴졌다. 마치 예전에 느꼈던 그것과 같았다. 기모진은 소만리의 안색이 어둡게 변해가는 걸 알아차렸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생각했다.기모진은 소만리가 눈치채지 않게 병원에 연락을 해서 내일로 수술 예약을 하고 난 후 짐을 정리하고 옮겼다. 이번에는 가장 번화한 시내로 옮길 생각이었다. 그는 기묵비의 세력이 대놓고 선을 넘는 짓은 차마 못 할 거라 믿었다. 만약 기묵비가 정말로 마음을 먹었다면 누구보다 재빨리 자신을 제거했을 일이었다.다음날 기모진은 재검사 핑계를 대고 소만리를 병원으로 데리고 왔다. 소만리는 한치의 의심도 없이 수술대 위에 올랐지만 주변을 잠시 둘러보더니 그제야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의사에게 물었다.“그냥 검사만 하는 거 아니었나요? 왜 수술실에 온 거예요?”소만리가 묻자 여의사는 그녀가 일부러 머뭇거리는 줄 알고 말했다. “어서
소만리의 말을 듣는 순간 기모진의 눈빛이 갑자기 달라지기 시작했다.그러나 곧 그의 눈빛은 냉정을 찾았다.“당신 기묵비의 아이를 지키려고 이러는 거 알아. 그렇지만 소만리, 이 수술은 꼭 필요해.”“기모진! 자꾸 나한테 수술하라고 강요하면 정말 평생 당신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소만리는 감정이 점점 격해지고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노려보며 말했다. “만약 내 뱃속의 아이를 해칠 거라면 나부터 죽여요.”소만리가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자신의 두 손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만약 방금 그녀가 묻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이 아이는 지금 없을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너무나 끔찍하고 무서웠다.하지만 소만리는 채 멀리 가지도 못하고 기모진에게 붙잡혔다. “놔요!”그녀가 발버둥 쳤다.“이 아이 수술해야 해.”기모진이 다시 한 번 강조하며 소만리의 허리를 붙잡아 끌어안으며 수술실 안으로 걸어갔다. 소만리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기모진, 이거 놔. 당신은 이 아이를 해치면 안 돼! 기모진!”그녀는 그의 옷깃을 꽉 잡아당겼지만 남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기모진! 이 아이 당신 핏줄이에요! 당신 정말 이러면 후회할 거라구요!”“만약 정말 내 아이라 해도 어쩔 수 없어!”남자는 소리를 질렀고 갑자기 목이 막히고 숨이 막혀 오는 듯했다.이 말을 듣고 소만리는 멍하니 눈시울을 붉혔다.“뭐라구요? 기모진 당신 지금 뭐라고 했어요?”남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이 아이는 살 수 없어.”그는 단호하게 같은 말을 또 했다. 날카로운 칼이 소만리의 심장을 관통해 지나가는 것 같았다. 그는 수술대 위에 앉은 그녀를 안은 채 소만리가 어리둥절해하는 틈을 타 의사에게 말했다.“마취주사 놓으세요.”소만리는 정신을 차리고 반항했지만 마취주사는 이미 그녀의 팔에 박혀 있었고 잘생기고 훤칠한 그가 수술실을 나가는 것을 보았다. 소만리는 절망과 분노에 찬 눈으로 절규했다.“기모진! 당신 후회할
”소만리, 내 말 먼저 들어 봐.”“꺼져.”소만리의 목소리가 떨렸다. 손도 계속 떨렸다. “나 지금 당신 보고 싶지 않아. 꺼져. 경도로 돌아가요. 그리고 내 앞에 나타나지 마세요.”그녀는 그를 노려보며 매몰차게 말하면서도 두 뺨에는 눈물이 흘러넘쳤다.그녀는 다시 생각하기조차 싫었지만 기모진은 그들의 아이를 자신의 손으로 죽인 사람이었다.이건 예전에 그가 그녀에게 주었던 그 어떤 고통보다 더 아팠다.그녀가 이렇게 슬퍼하는 모습을 보니 기모진도 더 이상 뭐라고 말할 수 없었다.“당신 먼저 진정하고 좀 쉬어. 내가 문 앞에서 지키고 있을게.”기모진이 몸을 돌려 문밖으로 나갔고 병실 문이 닫혔다. 작은 창 너머로 그는 그제야 한쪽으로 가서 앉아 있는 소만리를 보았다.그는 소만리가 오해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녀의 오해는 한편으로는 그럴 만도 한 것이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기모진은 소만리에게 점심을 사다 주려고 잠시 자리를 비우게 되었고 특별히 간호사에게 소만리를 좀 봐 달라고 부탁했다. 기모진의 준수하고 훤칠한 용모에 간호사는 단번에 응했다.소만리는 속이 텅텅 빈 것 같은 육신으로 창밖을 내다보고는 목에 걸린 조개 펜던트를 만지작거렸다. 눈물이 하염없이 떨어졌다.기모진, 알고 있어요? 당신 스스로 당신 자식을 죽였다는 거. 하지만 당신 아이가 아니라고 생각했어도 어떻게 이렇게 잔인할 수 있어요?소만리는 더 이상 기모진 곁에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 남자의 몸에는 어둡고 차디찬 피가 흐르고 있는 것만 같아서 견딜 수 없었다.기모진이 점심을 사서 병실로 돌아왔다. 문을 열고 들어가려고 보니 병상은 텅텅 비어 있었고 소만리는 온데 간데 없었다. 그는 순간적으로 당황하여 병실을 뛰쳐나와 간호사를 불렀다. 방금 그 간호사는 기모진의 기세에 잔뜩 긴장한 얼굴로 전전긍긍하며 말했다.“방금 병실 입구에 가서 봤는데요. 아마 멀리 가지는 못했을 거예요...”기모진은 애타게 병실로 돌아와 소만리가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