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만리, 내 말 먼저 들어 봐.”“꺼져.”소만리의 목소리가 떨렸다. 손도 계속 떨렸다. “나 지금 당신 보고 싶지 않아. 꺼져. 경도로 돌아가요. 그리고 내 앞에 나타나지 마세요.”그녀는 그를 노려보며 매몰차게 말하면서도 두 뺨에는 눈물이 흘러넘쳤다.그녀는 다시 생각하기조차 싫었지만 기모진은 그들의 아이를 자신의 손으로 죽인 사람이었다.이건 예전에 그가 그녀에게 주었던 그 어떤 고통보다 더 아팠다.그녀가 이렇게 슬퍼하는 모습을 보니 기모진도 더 이상 뭐라고 말할 수 없었다.“당신 먼저 진정하고 좀 쉬어. 내가 문 앞에서 지키고 있을게.”기모진이 몸을 돌려 문밖으로 나갔고 병실 문이 닫혔다. 작은 창 너머로 그는 그제야 한쪽으로 가서 앉아 있는 소만리를 보았다.그는 소만리가 오해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녀의 오해는 한편으로는 그럴 만도 한 것이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기모진은 소만리에게 점심을 사다 주려고 잠시 자리를 비우게 되었고 특별히 간호사에게 소만리를 좀 봐 달라고 부탁했다. 기모진의 준수하고 훤칠한 용모에 간호사는 단번에 응했다.소만리는 속이 텅텅 빈 것 같은 육신으로 창밖을 내다보고는 목에 걸린 조개 펜던트를 만지작거렸다. 눈물이 하염없이 떨어졌다.기모진, 알고 있어요? 당신 스스로 당신 자식을 죽였다는 거. 하지만 당신 아이가 아니라고 생각했어도 어떻게 이렇게 잔인할 수 있어요?소만리는 더 이상 기모진 곁에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 남자의 몸에는 어둡고 차디찬 피가 흐르고 있는 것만 같아서 견딜 수 없었다.기모진이 점심을 사서 병실로 돌아왔다. 문을 열고 들어가려고 보니 병상은 텅텅 비어 있었고 소만리는 온데 간데 없었다. 그는 순간적으로 당황하여 병실을 뛰쳐나와 간호사를 불렀다. 방금 그 간호사는 기모진의 기세에 잔뜩 긴장한 얼굴로 전전긍긍하며 말했다.“방금 병실 입구에 가서 봤는데요. 아마 멀리 가지는 못했을 거예요...”기모진은 애타게 병실로 돌아와 소만리가 없
기묵비는 매우 놀랐다. 그는 기운 없이 창백한 얼굴을 하고 그의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을 보고 뒤늦게 입을 열었다.“기모진이 당신을 풀어주던가?”소만리는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그가 날 풀어줬어요. 그가 당신의 일을 절대로 누설하지 않겠다고 저에게 약속했어요. 그 대신 조건이 있어요. 당신은 꼭 그 사람을 경도로 무사히 돌려보내야 해요.”기묵비는 조용히 듣고 난 뒤 가볍게 웃으며 물었다.“소만리, 이게 당신의 생각이야? 아니면 기모진의 생각이야?”“누구의 생각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당신도 이제 사람을 시켜 기모진을 뒤쫓는 일은 그만하세요.”소만리의 태도는 결연했고 그 의지는 눈빛에서 강렬하게 뿜어 나왔다. “만약 당신이 사람을 시켜 그 사람을 계속 쫓는다면 내 뱃속의 아이가 무사히 태어날 것이란 기대는 버리는 게 좋을 거예요.”소만리의 말이 떨어지자 기묵비의 웃음이 한순간에 사라졌다.기묵비에게 이 말을 하는 동안 소만리의 심장은 날카로운 칼로 갈기갈기 찢기는 것 같았다.몇 시간 전 그녀는 강제로 유산을 당했다. 아이는 이미 없어져 버렸다.그러나 그녀는 기묵비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을 것이다. 임신한 아이가 기모진의 아이라는 사실은 더더욱 알려서는 안 된다.소만리의 이런 요구에 기묵비는 분명 내키지는 않았지만 응하기로 했다.“그래, 약속하지. 기모진을 경도로 보내주지.”기묵비가 소만리에게 다가서며 말했다.“소만리, 가서 좀 쉬어. 난 지금 가서 아랫사람들에게 기모진에 대한 수색을 중단하라고 일러 두지.”그는 옅은 웃음을 띠며 말하고는 핸드폰을 들고 현관으로 향했다.그는 기분이 한껏 처져있는 소만리를 돌아보고 나서야 낮은 목소리로 지시했다.“지금 모두 국제공항으로 가. 기모진이 분명히 거기에 있을 거야. 그에게 동영상을 건네받기 전까진 살려 둬.”소만리는 기묵비가 아랫사람들에게 뭘 건네받으라는 것인지는 듣지 못했지만 지금 그녀는 정신이 혼미해져 눈앞이 캄캄해져 오는 것을
”당신을 믿었고 당신을 믿으라고 한 그 말을 믿었는데. 뭐, 소만리, 잊었어? 직접 나한테 말했잖아. 뱃속의 아이가 기묵비의 아이라고!”“...”소만리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문득 기모진이 한 말을 떠올렸다.“이 아이는 당신 뱃속에 있으면 안 돼.”“퍽.”소만리는 다시 기모진의 얼굴에 뺨을 한 대 때렸다.담배를 피우며 지나가던 경호원 두 명이 갑자기 요란한 소리를 듣고 지하실 쪽으로 다가왔다.“아래에서 소리가 나는 것 같아요.”“설마?”“내려가서 보자고.”“같이 가요.”그 두 경호원은 지하실 문으로 가서 문을 밀어 가장자리에 있는 스위치를 켰다.힐끗 보니 지하실 안은 텅텅 비어 있었고, 사람은커녕 쥐 한 마리도 없었다.“잘못 들은 거야. 빨리 담배나 피우고 문 앞에 가서 지키고 있자고. 만약 사장님이 갑자기 돌아와서 우리가 없는 걸 보고 게으름 피우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우린 끝장이야.”두 경호원은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지하실 불을 끄고 다시 문을 닫았다.문이 닫히고 나서야 문 뒤에서 있던 기모진은 저항하던 소만리의 입술에서 그의 얇은 입술을 떼었다.입술을 떼자마자 소만리는 기모진에게 다시 뺨을 때렸다.그는 어둠 속에서 지금 그녀의 모습을 잘 볼 수 없었지만 자신에 대한 분노와 원망은 느낄 수 있었다.그는 얼굴을 옆으로 기울였다. 몇 대를 맞은 것인지 기억나지 않았다.평생 그의 뺨을 때린 여인은 오직 한 사람 소만리 뿐이다.“꺼져. 당장 꺼지라구.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구요!”소만리는 목소리를 낮추며 차갑게 쏘아붙였다.“나는 보고 싶지 않지만 기묵비는 보고 싶은가 봐?”남자는 비웃으며 질투심을 가득 담아 말했다.“몸도 좋지 않으면서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여기로 왔고 말이야. 그를 찾아와서 위로라도 받고 싶었던 거야?”“그래요! 난 당신 보고 싶지 않아요. 내가 보고 싶은 사람은 오직 기묵비 뿐이라고요. 이제 됐어요? 그럼 꺼지세요!”“난 안 가.”그가 갑자기
소만리는 얼른 옆으로 얼굴을 피했고 기모진은 얼음처럼 차가운 그녀의 옆얼굴과 마주하게 되었다.“기묵비가 곧 들이닥칠 거에요. 당신이 지금 가지 않으면 영원히 떠날 수 없을 지도 몰라요.”소만리는 냉정한 목소리로 일깨워주었다.“나한테 관심 있어? 알고 보니 내 전처가 아직도 나한테 관심이 있는 건가?”기모진은 비웃음을 가득 담아 말했다.그의 서늘한 손가락이 소만리의 턱을 움켜쥐고 그녀의 얼굴을 그의 얼굴과 마주 보게 했다. 그녀의 붉게 물든 눈에 눈물이 가득 차 있는 것을 보니 기모진의 마음도 찢어졌다.“소만리, 당신 마음속엔 내가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인 거야? 당신을 믿어 달라고 했었지? 당신은 나 믿은 적 있어? 그의 말이 그녀의 가슴에 아프게 박혔다.이때 아래층에서 차 소리가 들려왔다. 기묵비가 돌아온 것이다.기모진은 창가로 가서 아래를 힐끗 보았지만 조금도 조급해하지 않았다.“나 당분간 아무 데도 안 갈 테니 여기 잠시 있어.”“기모진, 당신 미쳤어요?”“나 미쳤어. 당신이 날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한 순간 난 이미 모든 이성을 잃었어.”“...”소만리는 그 말을 듣고 울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 웃고 싶었다.“당신 그렇게 날 사랑했다면 내 뱃속의 아이를 그리 모질게 죽이진 않았을 거예요!”기모진도 소만리가 자신을 비난하며 원망하고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견딜 수가 없었다.이때 소만리는 몰랐겠지만 그녀가 그에게 안겨 수술대에 올랐을 때 마취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후회했고 수술을 번복했다.그래서 수술실로 뛰어 들어가 의식을 잃은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 자신이 이렇게 한 것이 옳은지 그른지 모르겠지만 지금 들어가서 막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그는 더 이상 그녀를 잃고서는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그녀를 아프게 하고 눈물을 흘리게 한 것은 정말이지 그의 본심은 더더욱 아니었다.소만리는 너무나 슬프고 상심한 나머지 그녀의 안위 따윈 신경 쓰지도 않았다. 여전히
기모진의 눈앞에서 그녀는 윗옷과 바지를 벗은 후 샤워가운을 걸치고 방금 목욕을 끝낸 것처럼 꾸몄다.소만리의 목에 걸려 있는 조개 모양 펜던트를 보니 기모진의 마음이 들끓었다.소만리가 샤워기를 끄고 나가려 하자 기모진은 그녀를 안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를 그녀에게 경고했다.“기묵비가 당신을 절대 건드리지 못하게 해. 그렇지 않으면 오늘 밤은 무사하지 못할 거야.”소만리는 기모진에게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가 품에서 그녀를 놓자 그녀는 화장실 문을 닫고 나갔다.기묵비는 소만리가 나오는 소리를 듣고 핸드폰 화면을 끄고 돌아서서 소만리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 목소리가 별로 안 좋아 보이던데, 무슨 일 있어?”그의 목소리는 다정했고, 눈빛은 부드럽고 따뜻했다.“아무 일 없어요. 괜찮아요.”소만리가 대답했다. 기묵비는 손을 뻗어 살며시 소만리의 배에 얹으려고 했다.“우리 아이가 당신을 힘들게 하는 건 아니지? 우리 아이가 장난이 심한가.”그의 행동이 좀 갑작스러워서 소만리는 당황하여 급히 피했다.본능적인 거부감과 반발심 때문인지 소만리는 갑자기 속이 메스꺼워졌다. 그녀는 무의식 적으로 배를 만졌고 익숙한 입덧이 위에서 솟구치는 느낌이 들었다.소만리는 입을 막고 화장실로 들어가려고 돌아섰을 때 화장실 안에 숨어 있는 기모진을 생각하며 걸음을 멈춰 섰다.기묵비는 갑자기 멈칫하는 소만리의 행동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다가 한편으로는 그와 소만리의 발자국이 아닌 듯한 흔적들을 바닥에서 보았다.“소만리, 토할 것 같아? 내가 화장실로 부축해 주지.”기묵비가 소만리의 어깨에 손을 얹으려고 했다.소만리가 기묵비의 손을 가로막자 기묵비는 뭔가 확신을 하고 직접 화장실로 향했고 문을 벌컥 열었다.기묵비의 행동에 소만리는 놀라서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화장실은 텅 비어 있었고 기모진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소만리는 여전히 곤혹스러웠고 입덧이 다시 찾아와서 토할 것 같았다.그녀는 화장
소만리는 놀라서 기모진의 이름을 목놓아 불렀다.눈앞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를 보니 그녀는 정신이 혼미해지고 온몸이 차갑게 얼어붙는 것 같았다.그녀는 황급히 손으로 기무진의 상처를 눌렀으나 그것은 소용이 없었다. 그녀의 하얀 손은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고 그녀의 두 눈은 가시에 찔리는 듯 고통스럽게 시려웠다.“기모진, 기모진.”소만리는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고 그녀는 피로 물든 두 손으로 기모진의 아름다운 얼굴을 받쳐 들었다. 눈물이 강을 이루듯 눈앞을 가렸다. 기모진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총상이 주는 찢어지는 아픔을 이를 악물고 참았다. 천천히 손을 들어 눈물로 얼룩진 소만리의 뺨을 만지며 말했다.“소만리, 울지 마. 나 같은 놈 때문에 눈물 흘려선 안 돼.”그의 마음은 찢어졌고 가느다랗게 뜬 눈에는 애틋한 사랑을 가득 담고 있었다. “당신의 마음을 돌려놓기 전에는 절대 죽을 수 없어.”그는 매우 힘없이 말을 이었지만 그의 눈은 조금도 기세가 수그러들지 않았다.기묵비는 총을 거두고 천천히 기모진의 뒤로 가서 말했다.“동영상 어디 있어?”그는 망설이지 않고 물었다.기모진은 기묵비를 흘겨보며 입꼬리를 비꼬며 말했다.“만약 내게 일이 생기면 동영상은 자동으로 인터넷에 공개될 텐데. 기묵비 모험 한 번 해 보시려나?”기묵비는 매우 불쾌하다는 듯 언짢게 눈썹을 한 번 찡그렸다. 그는 누군가에게 위협받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소만리가 가슴 아파하며 기모진을 안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기묵비는 다시 총을 들었다.그러나 이 모습을 본 소만리는 갑자기 기묵비에게 달려들어 기묵비가 들고 있던 총을 빼앗았다.갑자기 일어난 일에 기묵비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것이다.그가 정신을 차리고 대응하려고 했을 때 소만리는 이미 기세등등하게 총을 들고 그를 겨누고 있었다.“당장 사람을 불러 기모진을 병원으로 데리고 가!”그녀는 부탁이 아니라 명령하고 있었다. 붉게 젖은 두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서슬 퍼렇게 기묵비
소만리가 한 말에 기묵비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정신이 혼미해졌다.그의 머릿속이 갑자기 멍해져서 자신도 모르게 손목에 지니고 있던 머리끈을 만지작거렸다.초요...밤은 이미 깊어졌다.기모진의 수술이 얼마나 진행이 되었을까. 소만리는 아직도 수술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잠시 후 의사가 수술실에서 나왔고 기모진이 일단 위험한 고비는 넘겼다고 하자 그제야 그녀의 안절부절못하는 마음이 조금 가라앉기 시작했다.기모진이 자신을 보호하려고 온몸으로 총알을 받았다는 것을 그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이 남자는 요 며칠 줄곧 냉담한 표정으로 그녀를 대했었지만 마음속으로는 누구보다 그녀를 아끼고 있었다.생각해 보니 기모진이 언초와 약혼한 것은 단지 그녀에게 화풀이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언초, 그 여자는 왜 그렇게 낯이 익을 걸까.소만리는 수술실 밖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고 말았다. 문득 놀라 잠에서 깨어보니 이미 날이 밝아 있었고 그녀의 몸에는 담요가 덮여 있었다. 아직 그녀 곁에는 경호원 두 명이 지키고 있었다.그녀는 황급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기모진은요?”“사장님께서 이미 기모진에 대해 수속을 다 마치고 잘 처리하셨으니 부인은 걱정하지 마시고 먼저 별장으로 돌아가 쉬시면 됩니다.”소만리는 기묵비가 기모진을 위해 일을 잘 처리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기묵비가 기모진을 어디로 데려갔어요? 말하세요!”“부인은 별장으로 돌아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사장님이 직접 말씀드릴 겁니다.”소만리는 이 경호원들을 더 추궁해 봐도 제대로 대답해 주지 않을 것을 알고 바로 별장으로 돌아갔다.기묵비는 서재에서 책상 위에 있는 자료를 느긋하게 검토하고 있었다.“기모진은 어디 있어요?”소만리는 곧장 들어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기묵비는 들고 있던 펜을 잠시 멈추며 말했다.“당신이 그렇게 그에게 관심을 가지면 내가 또 기모진을 위험한 상황에 빠트릴
소만리는 바로 앞에 있는 1인용 침대 위에 한 남자가 옆으로 누워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이 실루엣을 절대 잘못 볼 리가 없었다. 분명 기모진이었다. 그녀는 문을 닫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기모진은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익숙한 듯한 발걸음 소리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자 돌아보았다.기모진의 희미한 눈 속에 그녀의 모습이 들어왔고 눈빛은 순식간에 밝아졌다.두 사람의 눈이 마주친 순간 소만리의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그는 아주 얇은 셔츠를 입고 있었고 상처 부위는 붕대로 감겨 있었지만 흐릿하게 피가 배어 나왔다.더없이 초췌한 얼굴과 핏기 없는 그의 모습을 보고 그녀는 말할 수 없는 먹먹한 아픔을 느꼈다. 너무나 괴로웠다.“기모진.”그녀가 침대 옆에 앉아 조심스럽게 그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당신 괜찮아요? 상처는 좀 어때요?”기모진을 앉힌 뒤에야 소만리는 그의 오른쪽 손목에 채워져 있는 굵은 사슬을 발견했다. 그가 살짝 움직이자 어깨의 총상이 심하게 흔들렸다.기묵비가 이런 식으로 기모진을 가둬두다니.소만리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기모진은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이제야 겨우 당신을 보게 되다니. 난 기 부인 당신이 이미 죽은 줄 알았어.”소만리는 기모진의 차가운 태도는 개의치 않고 그저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기모진, 정말 날 그렇게 대할 거예요?”남자는 이 말을 듣고 잠시 어리둥절했고 그의 눈빛이 점차 부드러워졌다. 마치 봄날의 따스한 햇살이 그녀를 감싸주는 듯했다.그는 조금 힘겹게 손을 들어 소만리의 보드랍고 매끄러운 얼굴과 입술을 어루만지며 목이 잠겨 쉰 목소리로 말했다.“다시는 당신을 볼 수 없을까 봐 정말 무서웠어.”소만리는 그의 손을 잡고 눈시울을 붉혔다.“당신 왜 내 말 안 듣고 굳이 계속 여기 있냐구요? 경도로 돌아가야만 안전하다구요. 내 말 알겠어요?”“내가 원하는 답을 얻기 전까진 절대 안 가. 죽는다 하더라도 당신을 꼭 한 번 만나고 죽을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