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모진은 찬바람 속에 서서 소만리가 떠나려고 돌아서는 뒷모습을 그리운 듯 바라보며 꼿꼿하게 서 있는 모습이 가로등에 비쳐 쓸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입술 끝을 잡아당기자 씁쓸하고 괴로운 느낌이 마음에서 퍼졌다.눈에서 희미하게 축축한 기운이 감돌아 먼 곳의 그 아름다운 모습을 흐릿하게 했다.그가 어찌 지금의 그녀의 냉담하고 몰인정한 것을 탓할 수 있겠는가, 모든 건은 자업자득에 불과할 뿐이었다.......소만리는 예선, 소군연과 함께 식사를 마친 뒤 혼자 옛 아파트로 돌아갔다.그녀가 창가 앞에 서자 얼마 전 기모진이 한 말이 절로 귓가에 맴돌았다.“내가 사랑한 사람은 언제나 오로지 당신 뿐이었어.”“아”소만리가 살짝 웃었다.어느 누구도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그렇게까지 다치게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기모진, 날 사랑한다고 말하지 말아요. 내 마음이 당신에 의해 완전히 다쳐서 죽은 후에야 고의가 아니라고 했어요.“윙윙윙........”침대 선반 위에 놓은 핸드폰에 진동이 울렸다.소만리는 생각을 멈추고, 핸드폰을 들어보니 사화정이 걸어온 전화였다.예전에 그들이 급히 나를 찾아 헤매던 모습으로 보아 그들은 모두 이미 내가 그들의 친 딸인 줄 알고 있었을 것이다.그녀는 묵상하며, 핸드폰 진동이 계속 울려도 받지 않았다.사화정이 다섯 번째 전화를 걸 때 소만리는 응답 버튼을 눌렀다.분명히 그녀가 전화를 받을 줄 모르고 1,2초 동안 침묵이 흐른 뒤 마침내 그녀가 놀라서 입을 열었다.“미랍 아가씨?”그녀가 그녀를 이렇게 불렀다.소만리는 뜻밖이라 조금 놀랐다.설마 그들이 아직 모를까?기모진이 그들에게 말하지 않았나?“무슨 일이에요? 왜 이렇게 전화를 많이 하셨죠?”소만리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덤덤하게 물었다.사화정은 격한 감정을 억누르고 아무렇지 않은 척 입을 열려고 노력했다.“미랍 아가씨, 군군이 아직 잠을 못 자요. 당신을 보고 싶어하고, 당신이 자장가를
차창은 닫혀 있지만, 사화정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소만리는 잘 알고 있었다.사화정은 분명히 어떤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데, 그 감정을 소만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똑똑똑”사화정은 다시 차창을 똑똑 두드렸다.그녀는 소만리가 싫어할까 봐, 또 소만리가 보고만 있을까 봐 감히 너무 세게 두드리지 못했다.“미랍 아가씨, 미랍.......”사화정이 부르고 있는데 갑자기 “딸깍” 하는 소리가 들렸고, 소만리는 안전벨트를 풀었다.드디어 소만리가 차에서 내리려는 반응을 보이자 사화정과 모현의 얼굴에서 동시에 기쁨이 느껴졌다.소만리는 문을 열고 마침내 차에서 내렸다.축축한 눈빛을 드리운 채 설레는 눈빛을 드리운 부부에게 소만리는 담담하게 조용히 바라보며 담담하게 입을 열어 물었다.“군군은 방에 있어요?”사화정과 모현은 주의 깊게 그녀를 주목하며, 고개를 끄덕였다.“군군은 방안에 있어요.”“네 알겠어요.”소만리는 말 한마디 없이 돌아서며 군더더기 한 글자도 더이상 쓰지 않았다.소만리가 돌아서서 대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며, 사화정과 모현은 그 자리에서 멍하니 넋이 나간 채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울컥하며 목이 메였다.“천리.......”소만리는 뒤에서 뜨거운 두 시선을 느낄 수 있었지만, 그녀는 매우 시원스럽게 걸었다.지난날 여러가지로 몸과 마음의 고통이 지금 이 순간 새삼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그녀는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번지는 마음의 상처를 막을 수 없었다.소만리는 기란군의 방에 들어갔다. 어린아이가 침대에 기대어 앉아 책 한권을 들고 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곁눈질로 힐끗 보니, 익숙한 그림자가 다가오자 기란군은 급히 작은 머리를 번쩍 들어올렸다.소만리를 보자 인형 같은 기란군의 작은 얼굴에는 순간 기쁨의 미소가 번졌다.“엄마.”그는 너무 자연스럽게 외쳤다.소만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 달콤한 꿀이 흘러내리는 듯 따뜻한 기운이 아직 낫지 않은 그녀의
사화정과 모현은 방 문 밖에서 이 광경을 보고 더욱 가슴이 아팠다.그들이 감히 들어가서 방해하거나, 경솔하게 소만리에게 사실 기란군이 그녀의 친자식이라고 말하려 하지 않았다.이 광경을 보고, 사화정은 입과 코를 막고, 오열하는 울음소리를 억누르고, 빨리 돌아서 자리를 떴다.“화정!”모현은 목소리를 낮추며 사화정을 불렀고, 소만리를 바라보는 것을 아쉬워하며 뒤를 따라갔다.사화정은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누워 비통한 표정으로 눈물을 흘렸다.비록 모현이 마음속에도 아픔이 있지만, 남편으로서, 남자로서, 이럴 때는 반드시 사화정보다 더 강건하고 침착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화정, 울지마, 이러지 마.”모현은 사화정의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했다.“어쨌든 적어도 우리 딸만큼은 살아있고, 그렇게 멋지게 살아가고 있으니 기쁘고 뿌듯해 해야지.”사화정은 이 말을 듣고 더욱 눈물을 흘렸다.당연히 그녀는 기쁨을 느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그러나 과거의 일은 마치 밀물처럼 머릿속에 떠올랐고, 그녀가 소만리를 때리고 욕하는 장면들, 그리고 소만리가 병으로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비참한 모습까지 떠올랐다.그런 생각만 해도 사화정은 숨쉬기 조차 힘들 정도로 마음이 아팠다.“어떻게 나 같은 엄마가 있겠어요? 설사 낯선 사람이라도 이렇게 때리고 욕하면 안 되는데......”“모현, 그거 알아요? 이 손으로 우리 딸을 몇 번이나 때렸어요, 내가 그녀에게 나쁜 년, 천한 년이라고 욕하고 심지어 그녀에게 가서 죽으라고 저주까지 하고, 부모에게 버림 받아야 한다고 욕했어요.”“내가 어떻게 이렇게 악했을까요, 아이가 아파서 피를 토할 정도였는데, 기모진의 관심을 끌기 위해 기모진에게 시늉을 한다고 비난했어요.”모현은 이 말을 듣고, 두 눈이 촉촉해지며 소리쳤다.“화정 그만 말해요, 그만 말해요......”그는 사화정이 말하는 차마 돌이킬 수 없는 옛날 일들 속에서, 친아버지인 그도 매정하고 가혹하게 대했다고 작은 소리로 중
소리가 나자 소만리는 천천히 돌아서니 눈 앞의 사화정과 모현이 미소를 머금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그들은 비록 웃으면서도, 여전히 그들의 눈에 얽힌 설렘과 불안함은 감출 수 없었다.이제 와서 소만리는 더 이상 빙빙 돌지 않으려 했다.“모두들 이미 다 아시죠?”그녀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모현과 사화정은 이 말을 묻는 소만리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잠시 침묵 끝에, 사화정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미랍 양.”소만리는 반복되는 이 호칭에, 웃으며 사화정의 말을 끊었다.“저를 모천리라고 불러도 되지 않나요?”“......”“......”이 말을 듣고 사화정과 모현은 순간 숨이 막혔다.그들은 멍하니 눈앞의 작고 섬세한 얼굴을 바라보았고, 그의 즉시 그들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천리!”사화정은 눈물을 흘리며 설레는 마음으로 소만리 앞으로 달려갔고, 회환과 미안함이 가득한 눈빛으로 자애로운 마음을 품고 소만리를 따뜻하게 감싸주었다.잠시 후 사화정은 떨리는 손가락을 뻗어 소만리의 얼굴에 부드럽게 닿았다.그녀는 소만리의 희고 섬세한 뺨을 소중히 쓰다듬어 주고 온화하고 진실한 감촉을 느끼며, 사화정은 입술을 꼭 깨물고, 가슴 아픈 소만리를 한 품에 안았다.“아가야, 내 아가야!”사화정은 절로 고함을 지르며 소만리를 꼭 껴안았다.“천리, 엄마가 이번에 드디어 너를 찾았어,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울면서 사과했다.모현 역시 눈시울을 붉히며 소만리에게 다가가 울먹이며 말했다.“얘야, 아빠도 미안해, 정말 미안해.”그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심 어린 사과는 눈 속에 깊은 미안함과 회심의 뜻을 담고 있었다.모현은 손을 들어 몇 초간 망설이다가 소만리의 머리에 살짝 얹고 애석한듯 쓰다듬었다.사화정과 모현의 미안함과 애정을 느끼면서도 소만리는 처음처럼 잔잔한 듯 흔들림 없는 얼굴로 촘촘하고 컬이 된 속눈썹만 감았다 떴다.그녀는 저항하거나 도망가지
소만리가 그들을 부르는 호칭에 사화정과 모현은 놀라고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냉담한 표정의 그녀를 바라보았다.“천리.....”소만리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아름다운 눈을 들어올려 주위를 둘러보고 유럽 스타일의 소파로 걸어가며 가느다란 손가락 끝이 그 위에 가볍게 스쳐 지나갔다.“그때 당신들은 소만영을 위해, 적극적으로 저를 초대해 밥 먹으러 오라고 하셨지요, 소만영을 위해 기꺼이 저 같은 원수를 정중히 대접하시느라 마음이 편하지 않으셨을 텐데요?”사화정과 모현은 이 말을 듣고 더욱 괴로웠다.소만리는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부모님을 찾아 뵙지 못 한지 도대체 몇 년이 지났냐고 그때 부인이 저에게 물으셨어요.”“모 부인, 그때 제 대답을 아직도 기억하시나요?”그녀는 사화정의 깊은 미안함의 눈빛을 뒤돌아 바라보며 말했다.“천리.......”“제가 말했죠 찾았는데, 한 가족으로 모일수 없다고요. 왜냐하면 제가 지금 친부모님 앞에 서도 그들은 나를 인정하지 않으니까요.”사화정은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물이 그렁그렁 한 채 소만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천리, 천리야 엄마의 설명 좀 들어봐.”소만리는 웃었다.“설명할 필요 없어요, 저는 당신들을 뭐라고 탓하지 않아요, 저는 그저 어쩌면 우리에게는 부녀의 정, 모녀의 정에는 인연이 없는 것 같다고 말하고 싶어요.”“아니야 천리, 천리 그런 말 하지 마. 엄마 아빠 잘못이야 소만영이라는 나쁜 여자에게 휘둘리지 말았어야 했어, 친딸도 못 알아보고......”“천리, 엄마 아빠에게 한번만 만회할 기회를 줘.”모현도 다가왔다. 그의 미간에는 괴로움과 우울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천리,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엄마 아빠는 너를 잊은 적이 없어. 소만영이 나타나기 전에, 어머니는 매일 밤 너를 생각하고, 네가 잘 지내고 있는지 걱정했어. 이 큰 집에도 항상 너의 방을 가지고 있었어. 네가 언제 집에 돌아오는 날을 위해서 너의 어머니는 너의 방을 매일 세심하게 청
말이 끝나자, 사화정은 이미 울음을 터뜨렸고, 모현 역시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그 해 모보아가 살해당하고, 그들이 소만리를 찾으러 회견실로 가는 장면이 아직도 눈앞에 선했다.그때 소만리의 초췌하고 창백한 얼굴이 그들의 머릿속에 자기도 모르게 떠올랐고, 그 장면들 속에는 그녀에 대한 잔혹한 폭행이 있었다.욕설을 퍼부으며 소만리의 얼굴의 뺨을 손바닥으로 한 대씩 내리치고 있었다. 더욱이 모현은 소만영을 보호하기 위해 허약한 소만리를 향해 손바닥으로 세게 내리쳐서 그녀를 땅바닥에 쓰러뜨렸다.마음이 아팠다.회한이 뒤섞인 가슴 아픈 이 순간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사화정과 모현은 소만리가 그런 상황에서 울음을 참아야 했을 때 얼마나 강해야 했는지 상상하기어려웠다.이 순간, 소만리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결단력 있고 집요하며 가슴 아픈 과거를 회상하며 담담하게 미소를 지었다.“이 모든 것은 끝났고 저는 아무것도 따지고 싶지 않아요”그녀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저는 당신들이 소만영이 계획한 사기극에 속아 넘어간 것을 탓하지 않아요. 다만 제 친부모가 이렇게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았고, 심지어 나중에 소만영이 그렇게 많은 양심을 잃은 것을 알고도 당신들은 여전히 그녀를 보호하고 지켜주기로 했어요.”“천리.......”“제 추측에 우리 사이의 관계가 심상치 않을 지도 몰라서 그때 그 옥패가 제 몸에서 떨어졌을 때, 저는 병원에서 당신의 칫솔을 훔쳐 DNA 검사를 했어요. 하지만 여러분은 제가 소만영의 옥패를 훔쳤다고 생각했죠. 아마도 이것이 운명일 거예요. 저는 부모님과 인연이 없어요.”이 말을 마친 소만리는 눈물을 글썽이는 사화정을 살짝 스쳐 지나가 후회하고 있는 모현을 바라보았다.“더 이상 부성애와 모성애를 누릴 기회가 없지만, 저를 이 세상에 데려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생 갖고 싶었던 친부모님, 그리고 제가 사랑했던 남자, 처음부터 제 것이 아니었을지도 몰라요. 저도 예전처럼 강요하지 않을 거예요.
소만리는 이런 그의 불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결국 이러한 명성과 재산이 어떻게 깨진 가족의 고통과 슬픔을 메울 수 있을까.기묵비는 몸을 돌려 소만리를 마주했다. 눈썹 끝의 교활한 눈빛은 금세 사라지고 남은 것은 따뜻하고 부드러움 뿐이었다.“미랍, 이제부터 이곳의 모든 것은 우리의 것이에요.”소만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당신의 것이에요. 이것은 결국 기씨 가문의 사업이에요. 저는 한번도 소유할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이제 당신의 손으로 돌아갔으니, 원래 주인에게 돌려준 셈이죠.”기묵비는 의외의 말을 듣고 말했다.“이런 게 다 필요 없어요?”“기모진이 가진 것 없이 초라해지는 것을 보는게 바로 내가 지금 가장 원하는 거예요.”소만리는 생각에 잠긴 듯 눈썹을 찡그렸다.“하지만 제가 기모진의 컴퓨터를 그렇게 순조롭게 해킹해서 그의 명의 주식과 중요한 정보를 빼낼 수 있었던 이유가 그가 나에게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도록 묵인한 것 같다고 느꼈어요.”“그는 당신이 이런 짓을 할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그가 막지 않았다는 말인가요?”기묵비는 약간 인상을 찌푸렸다.소만리는 침묵했고, 기모진이 그날 했던 말이 그녀의 마음에 무의식적으로 떠올랐다.“내가 사랑했던 사람은 항상 당신 뿐 이었어.”“미랍, 미랍?”“네?”소만리는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기묵비의 부드러운 검은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기묵비가 친절하게 물었다.“당신 무슨 생각해요?”“묵비, 기 씨 집안의 방이요, 옮기지 않아도 돼요?”소만리가 부탁하는 말투로 말했다.“기묵비는 미간을 찌푸리며 굳은 표정으로 소만리의 어깨를 움켜쥔 채 말했다.“미랍, 그 영감한테 속지 말아요. 그는 애초 기씨 가문의 방대한 사업을 따내기 위해 내 부모님을 죽일 계획을 세웠었어요. 그는 결코 선량한 사람이 아니에요.”그 말을 들은 소만리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할아버지께서 정말 그렇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실 사람인가?만약 그렇다면 할아버
기모진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소만리는 의아했지만, 왠지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구애가 중단된 기묵비는 온화한 검은 눈동자에서 한 줄기 노여운 기색이 역력했다.“기모진, 여긴 왜 왔어? 여긴 더이상 너의 자리가 없어.”기모진의 가늘고 긴 눈동자가 기묵비를 희미하게 바라보다 소만리의 얼굴에 시선이 멈췄다.그녀의 차가운 눈빛을 마주쳤지만, 기모진의 눈빛은 온화했다.“당신이 나를 증오하고 나를 죽이지 못해 후회하는 거 알아, 나는 당신의 어떠한 보복도 받아 들일 수 있어. 그런데 그와 결혼은 커녕 함께 있는 것 조차도 용납할 수 없어.”기모진의 말투는 참견할 틈도 주지 않았다. 그의 그윽한 눈 밑에 카리스마가 솟구쳤다.소만리가 입을 막 열려고 할 때, 문득 옆에서 기묵비가 낮은 미소를 짓는 소리가 들렸다.“네가 허락하지 않는다고?”그가 웃으며 물었다.“네가 무슨 자격으로 허락하지 않아? 너 그때 네가 소만리에게 어떻게 대했는지 잊었어? 그녀가 심하게 아팠을 때 넌 뭐했어? 네가 다른 여자를 안고 즐겁고 유유자적 하고 있을 때 그녀는 고립되어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고 너에게 실낱 같은 믿음을 구걸할 때 너는 또 뭘 했어? 너는 그녀가 죽게 내버려 뒀지.”“기모진, 너 스스로에게 물어봐, 네가 왜 다시 만리의 사적인 일에 간섭하는지, 그녀와 너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 그리고 너는 그녀를 가질 자격이 전혀 없어.”기묵비가 내뱉는 말 한마디마다 기모진의 미간은 자꾸만 찌푸려지고, 그의 눈빛은 갑자기 어두워져 한순간에 소만리를 바라볼 용기도 잃었다.기모진이 눈을 깔고 망설이는 모습을 보자 기묵비는 입꼬리가 올라갔다.그는 팔을 들어 소만리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미랍, 우리 가요.”소만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기모진의 얼굴 옆을 스쳐 지나갔다.그녀는 기모진의 그 씩씩한 눈꼬리에 전에 없던 고민의 빛이 번지고 있는 것을 보고 입술을 오므렸다.소만리는 지금 이 순간 기모진의 생각을 파고들지 않고, 과감하게 기묵비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