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만리가 그들을 부르는 호칭에 사화정과 모현은 놀라고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냉담한 표정의 그녀를 바라보았다.“천리.....”소만리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아름다운 눈을 들어올려 주위를 둘러보고 유럽 스타일의 소파로 걸어가며 가느다란 손가락 끝이 그 위에 가볍게 스쳐 지나갔다.“그때 당신들은 소만영을 위해, 적극적으로 저를 초대해 밥 먹으러 오라고 하셨지요, 소만영을 위해 기꺼이 저 같은 원수를 정중히 대접하시느라 마음이 편하지 않으셨을 텐데요?”사화정과 모현은 이 말을 듣고 더욱 괴로웠다.소만리는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부모님을 찾아 뵙지 못 한지 도대체 몇 년이 지났냐고 그때 부인이 저에게 물으셨어요.”“모 부인, 그때 제 대답을 아직도 기억하시나요?”그녀는 사화정의 깊은 미안함의 눈빛을 뒤돌아 바라보며 말했다.“천리.......”“제가 말했죠 찾았는데, 한 가족으로 모일수 없다고요. 왜냐하면 제가 지금 친부모님 앞에 서도 그들은 나를 인정하지 않으니까요.”사화정은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물이 그렁그렁 한 채 소만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천리, 천리야 엄마의 설명 좀 들어봐.”소만리는 웃었다.“설명할 필요 없어요, 저는 당신들을 뭐라고 탓하지 않아요, 저는 그저 어쩌면 우리에게는 부녀의 정, 모녀의 정에는 인연이 없는 것 같다고 말하고 싶어요.”“아니야 천리, 천리 그런 말 하지 마. 엄마 아빠 잘못이야 소만영이라는 나쁜 여자에게 휘둘리지 말았어야 했어, 친딸도 못 알아보고......”“천리, 엄마 아빠에게 한번만 만회할 기회를 줘.”모현도 다가왔다. 그의 미간에는 괴로움과 우울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천리,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엄마 아빠는 너를 잊은 적이 없어. 소만영이 나타나기 전에, 어머니는 매일 밤 너를 생각하고, 네가 잘 지내고 있는지 걱정했어. 이 큰 집에도 항상 너의 방을 가지고 있었어. 네가 언제 집에 돌아오는 날을 위해서 너의 어머니는 너의 방을 매일 세심하게 청
말이 끝나자, 사화정은 이미 울음을 터뜨렸고, 모현 역시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그 해 모보아가 살해당하고, 그들이 소만리를 찾으러 회견실로 가는 장면이 아직도 눈앞에 선했다.그때 소만리의 초췌하고 창백한 얼굴이 그들의 머릿속에 자기도 모르게 떠올랐고, 그 장면들 속에는 그녀에 대한 잔혹한 폭행이 있었다.욕설을 퍼부으며 소만리의 얼굴의 뺨을 손바닥으로 한 대씩 내리치고 있었다. 더욱이 모현은 소만영을 보호하기 위해 허약한 소만리를 향해 손바닥으로 세게 내리쳐서 그녀를 땅바닥에 쓰러뜨렸다.마음이 아팠다.회한이 뒤섞인 가슴 아픈 이 순간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사화정과 모현은 소만리가 그런 상황에서 울음을 참아야 했을 때 얼마나 강해야 했는지 상상하기어려웠다.이 순간, 소만리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결단력 있고 집요하며 가슴 아픈 과거를 회상하며 담담하게 미소를 지었다.“이 모든 것은 끝났고 저는 아무것도 따지고 싶지 않아요”그녀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저는 당신들이 소만영이 계획한 사기극에 속아 넘어간 것을 탓하지 않아요. 다만 제 친부모가 이렇게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았고, 심지어 나중에 소만영이 그렇게 많은 양심을 잃은 것을 알고도 당신들은 여전히 그녀를 보호하고 지켜주기로 했어요.”“천리.......”“제 추측에 우리 사이의 관계가 심상치 않을 지도 몰라서 그때 그 옥패가 제 몸에서 떨어졌을 때, 저는 병원에서 당신의 칫솔을 훔쳐 DNA 검사를 했어요. 하지만 여러분은 제가 소만영의 옥패를 훔쳤다고 생각했죠. 아마도 이것이 운명일 거예요. 저는 부모님과 인연이 없어요.”이 말을 마친 소만리는 눈물을 글썽이는 사화정을 살짝 스쳐 지나가 후회하고 있는 모현을 바라보았다.“더 이상 부성애와 모성애를 누릴 기회가 없지만, 저를 이 세상에 데려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생 갖고 싶었던 친부모님, 그리고 제가 사랑했던 남자, 처음부터 제 것이 아니었을지도 몰라요. 저도 예전처럼 강요하지 않을 거예요.
소만리는 이런 그의 불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결국 이러한 명성과 재산이 어떻게 깨진 가족의 고통과 슬픔을 메울 수 있을까.기묵비는 몸을 돌려 소만리를 마주했다. 눈썹 끝의 교활한 눈빛은 금세 사라지고 남은 것은 따뜻하고 부드러움 뿐이었다.“미랍, 이제부터 이곳의 모든 것은 우리의 것이에요.”소만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당신의 것이에요. 이것은 결국 기씨 가문의 사업이에요. 저는 한번도 소유할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이제 당신의 손으로 돌아갔으니, 원래 주인에게 돌려준 셈이죠.”기묵비는 의외의 말을 듣고 말했다.“이런 게 다 필요 없어요?”“기모진이 가진 것 없이 초라해지는 것을 보는게 바로 내가 지금 가장 원하는 거예요.”소만리는 생각에 잠긴 듯 눈썹을 찡그렸다.“하지만 제가 기모진의 컴퓨터를 그렇게 순조롭게 해킹해서 그의 명의 주식과 중요한 정보를 빼낼 수 있었던 이유가 그가 나에게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도록 묵인한 것 같다고 느꼈어요.”“그는 당신이 이런 짓을 할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그가 막지 않았다는 말인가요?”기묵비는 약간 인상을 찌푸렸다.소만리는 침묵했고, 기모진이 그날 했던 말이 그녀의 마음에 무의식적으로 떠올랐다.“내가 사랑했던 사람은 항상 당신 뿐 이었어.”“미랍, 미랍?”“네?”소만리는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기묵비의 부드러운 검은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기묵비가 친절하게 물었다.“당신 무슨 생각해요?”“묵비, 기 씨 집안의 방이요, 옮기지 않아도 돼요?”소만리가 부탁하는 말투로 말했다.“기묵비는 미간을 찌푸리며 굳은 표정으로 소만리의 어깨를 움켜쥔 채 말했다.“미랍, 그 영감한테 속지 말아요. 그는 애초 기씨 가문의 방대한 사업을 따내기 위해 내 부모님을 죽일 계획을 세웠었어요. 그는 결코 선량한 사람이 아니에요.”그 말을 들은 소만리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할아버지께서 정말 그렇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실 사람인가?만약 그렇다면 할아버
기모진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소만리는 의아했지만, 왠지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구애가 중단된 기묵비는 온화한 검은 눈동자에서 한 줄기 노여운 기색이 역력했다.“기모진, 여긴 왜 왔어? 여긴 더이상 너의 자리가 없어.”기모진의 가늘고 긴 눈동자가 기묵비를 희미하게 바라보다 소만리의 얼굴에 시선이 멈췄다.그녀의 차가운 눈빛을 마주쳤지만, 기모진의 눈빛은 온화했다.“당신이 나를 증오하고 나를 죽이지 못해 후회하는 거 알아, 나는 당신의 어떠한 보복도 받아 들일 수 있어. 그런데 그와 결혼은 커녕 함께 있는 것 조차도 용납할 수 없어.”기모진의 말투는 참견할 틈도 주지 않았다. 그의 그윽한 눈 밑에 카리스마가 솟구쳤다.소만리가 입을 막 열려고 할 때, 문득 옆에서 기묵비가 낮은 미소를 짓는 소리가 들렸다.“네가 허락하지 않는다고?”그가 웃으며 물었다.“네가 무슨 자격으로 허락하지 않아? 너 그때 네가 소만리에게 어떻게 대했는지 잊었어? 그녀가 심하게 아팠을 때 넌 뭐했어? 네가 다른 여자를 안고 즐겁고 유유자적 하고 있을 때 그녀는 고립되어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고 너에게 실낱 같은 믿음을 구걸할 때 너는 또 뭘 했어? 너는 그녀가 죽게 내버려 뒀지.”“기모진, 너 스스로에게 물어봐, 네가 왜 다시 만리의 사적인 일에 간섭하는지, 그녀와 너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 그리고 너는 그녀를 가질 자격이 전혀 없어.”기묵비가 내뱉는 말 한마디마다 기모진의 미간은 자꾸만 찌푸려지고, 그의 눈빛은 갑자기 어두워져 한순간에 소만리를 바라볼 용기도 잃었다.기모진이 눈을 깔고 망설이는 모습을 보자 기묵비는 입꼬리가 올라갔다.그는 팔을 들어 소만리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미랍, 우리 가요.”소만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기모진의 얼굴 옆을 스쳐 지나갔다.그녀는 기모진의 그 씩씩한 눈꼬리에 전에 없던 고민의 빛이 번지고 있는 것을 보고 입술을 오므렸다.소만리는 지금 이 순간 기모진의 생각을 파고들지 않고, 과감하게 기묵비와
“만약 이렇게 해서 만리의 화가 풀린다면, 안 될 것은 아무것도 없죠.”“뭐, 뭐라고요? 모진이 무슨 말을 하는 거죠?”위청재는 놀란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너는 분명 그 여자를 그렇게 몹시 미워했는데, 왜 지금 너...너는 소만리를 정말 좋아하는 거니?”기모진은 위청재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지만, 갑자기 부드러워진 눈이 최고의 대답이었다.“최대한 빨리 이사 가실 적당한 곳을 찾아드릴게요. 당분간은 귀찮게 하지 마세요.”그가 말을 마치고 돌아서서 떠나려다 눈을 들어 눈앞에 노인이 나타난 것을 보았을 때, 기모진은 걸음을 잠시 멈추었다.기노인은 지팡이에 기대어 있었고, 그의 마른 얼굴은 심각했지만 그의 눈은 여전히 친절하고 상냥했다.“나를 따라와.”그는 기모진에게 말을 하고 돌아섰다.기모진은 잠시 머뭇거리다 발걸음을 내디뎠다.서재방.기노인은 창밖으로 잿빛 하늘을 바라보고 잠시 후 긴 한숨을 내쉬었다.“이제 와서, 너는 어떻게 할 것이니?”“할아버지 안심하세요, 기씨 그룹은 제 손에서 잃어버리면 제가 꼭 다시 찾아올게요.”기모진은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단호하게 대답했다.할아버지는 또 한숨을 쉬며 뒤를 돌아섰다.“그건 할아버지가 알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내가 묻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잘 알 거다.”기모진은 망설였지만 기노인이 소만리에 대해 물었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었다.할아버지는 지팡이를 짚고 한 걸음씩 기모진에게 다가갔다.“남들이 모르는 것이 있지만, 네가 마음속으로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네가 만리와 결혼할 때 먼저 할아버지를 찾아와서 나에게 이 혼사를 맡아 달라고 부탁했었어.”6년전 이 일을 언급하며 기모진의 심장은 한 박자 빠르게 뛰었다.뒤를 이어 그는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누구나 만리를 포함해 모두 네가 나 같은 늙은이에게 네가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 결혼하도록 강요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네가 왜 만리와 결혼하고 싶어
기모진이 마음속으로 의문을 품었고, 기 노인은 안개가 자욱한 하늘을 바라보았고 갑자기 슬픔에 잠겼다.“이 일은 23년 전부터 얘기했어야 했는데.....”시간이 갑자기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자 기모진은 당혹스러움과 동시에 이 일이 기묵비의 부모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막연하게 추측했다.역시 할아버지의 회상을 듣고 난 후 기모진은 정확한 답을 얻었다.동시에 기묵비가 매우 위험한 인물이 될 것이라는 것을 설명해 주었다. 그는 결코 소만리가 기묵비에게 그렇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게 할 수는 없다.기모진이 돌아서 가려 하자 기노인은 그를 불렀다.“만리는 어쩌면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고, 묵비도 그녀를 도와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서 그녀는 묵비를 상당히 신뢰했을 것이야. 반면 만리는 너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으로 가득 차서 네가 한 말은 절대 믿지 않을 거야.”“저는 그녀에게 나를 믿어 달라고 부탁한 것은 아니지만, 기묵비가 그녀를 속이거나 심지어 미래에 그녀를 다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어요.”기모진은 엄숙하고 단호한 눈빛으로 눈썹을 치켜 올렸다.그는 떠나기로 마음먹었지만 문득 책상 위의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기모진은 잠시 멈칫하더니 얼른 발길을 돌려 책상으로 가서 액자를 집어 들었다.액자 속 50-60대 중년 남성 두 명이 수수한 차림으로 군례를 하며 늠름한 모습으로 나란히 서 있었다.그는 그 중 하나가 기노인인 것을 알아챘고, 다른 한 남자는 매우 낯이 익었다.그를 놀라게 한 것은 사진 배경이 사월산 해변이었고, 두 남자 뒤 해변가에서 싱긋 웃고 있는 한소녀가 소년을 쫓아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그 꼬마 남자아이가 바로 그였다.그리고 그는 항상 그 작고 귀여운 얼굴을 기억했다. 그 소녀는 칠색 조개를 선물했던 어린 소만리였다.기모진은 생각이 가물가물 한 듯, 이 사진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노인은 그에게 다가가 사진을 바라보며 말했다.“내가 왜 그동안 만리를 그
갑자기 아파트 불을 다 꺼버리면 어떨까 생각 중이었다.기모진은 가슴이 두근거리며 생각이 혼란스러웠다.그는 다 마신 와인병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과감히 돌아섰다.그런데 그가 아파트로 들어가려 할 때, 그는 기묵비가 나오는 것을 보았다.밤새 울적했던 마음이 갑자기 한결 나아졌다.그는 걸음을 멈추고 기묵비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차를 몰고 떠난 후에야 아파트로 들어갔다.소만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 현관에 들어갔을 때 기모진은 그녀가 천미랍의 신분으로 그의 인생에 들어온 뒤 그녀가 이 아파트로 그를 초대했던 기억이 생생했다.그때 그는 그녀가 사실 기묵비와 함께 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때, 기모진은 천천히 문 앞까지 가서 조용히 서 있었다.창틀 밖의 눈보라가 들이닥치니 살을 에이는 듯한 서늘함이 마치 바늘로 꿰뚫는 것 같았다. 그러나 기모진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왜냐하면 처음에 소만리한테 입힌 상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그는 벽에 기대어 한쪽 무릎을 구부리고 문 옆 작은 벤치에 조용히 앉았다.....설잠에 들었던 소만리는 문 앞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처럼 “쿵” 하는 소리를 들었지만, 문 두드리는 소리 같지는 않았다.그녀는 좀 이상하다고 느끼고 외투를 걸치고 나갔다.그녀는 매우 경계하는 듯 방범홀을 통해 문 밖을 보았지만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는 어렴풋이 문 앞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었다.소만리는 몇 초간 머뭇거리다가 과감하게 문을 열었다.문이 열리자, 그녀는 놀랍게도 기모진이 문 옆 벽에 기대어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그는 고개를 숙이고 졸고 있었고, 촘촘한 속눈썹은 복도의 백열등 조명 아래 두개의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눈앞의 그는 차갑고 고귀한 기세가 전혀 없고, 마치 무방비 상태의 아이처럼 고요하고 담담하게 잠들어 있었다.소만리는 조용히 바라보다가 잠시 후 돌아섰다.“좋아해.......”문득 소만리가 문을 닫으려고 할 때 그는 기모진의 잠꼬대를 들었다
남자의 말투가 부드러우면서도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겸손한 요청이었다.그의 눈빛은 흐릿하고 아련해 보이고, 정신을 차린 듯 하지만, 약간 취기가 돌아 보였다.소만리는 무표정하고 냉담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당신을 보기만 해도 화가 나기 때문에 당신에게 어떠한 이야기도 듣고 싶지 않아요.”그녀는 혐오하듯 말하고, 미워하는 눈빛으로 멍하니 서있는 기모진을 바라보았다.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것 같았고, 차갑고 살을 에는 듯한 서늘함이 마음속에서 온몸으로 번졌다.그는 한때 그녀가 자신을 바라보는 애틋한 눈빛이 정말 그리웠다.하지만 지금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낯선 사람보다 더 냉정하고 차갑다.기모진이 어렴풋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보고 소만리의 태도는 이전보다 더 강경했다.“기모진, 당신이 가지 않으면, 경비원을 부르겠어요.”기모진은 몸을 흔들며 술에 취한 눈을 들며 말했다.“몇 마디만 하고 갈게.”그가 말을 마치자 살을 에는 듯한 찬바람이 불어왔다.소만리는 기모진의 유난히 붉어진 안색을 살피고 문고리를 잡은 손을 놓고 집으로 들어왔다.소만리가 초기하는 것을 보자 기모진의 깊은 눈에 미소가 번졌다.그는 재빨리 안으로 따라 들어가 방문을 닫았다.방 안의 온기가 그의 외투의 한기를 빠르게 증발시켰지만, 기모진에게 지금 이 순간 더 따뜻함을 느끼게 한 것은 소만리의 타협이었다.“할말 있으면 빨리해요, 시간낭비 하지 말고.”소만리가 차가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기모진은 애정이 가득한 취한 눈동자로 소만리의 냉정한 옆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기묵비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말고, 그에게 시집가지 마. 그는 당신이 겉으로 본 것처럼 그렇게 단순한 사람이 아니야.이를 들은 소만리는 가볍게 미소 지었다. 웃음을 머금은 눈빛속에 비아냥이 뒤섞여 있었다.“기모진, 당신이 무슨 근거로 나의 사생활을 간섭해요? 당신은 나에게 어떤 사람이라도 되나요?”그녀는 조롱하며 경멸하는 눈빛으
문 앞에 서 있던 소군연의 모친은 이 모습을 보고 들어가려고 했지만 소군연의 부친이 옆에서 말렸다.“그만 좀 해. 아들이 평생 홀아비로 살길 바라는 거야?”“누가 지금 가서 훼방 놓으려는 줄 아세요? 가서 말해 줘야죠. 나도 이 혼사에 동의해도 되겠냐고.”“당신 동의하는 거야?”소군연의 모친이 막 대답하려고 했을 때 갑자기 강연장 안 불빛이 밝아지는 것을 보았고 안에서 환호하는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깜짝 놀라 소군연의 품에서 나온 예선은 소만리와 기모진, 그리고 그녀의 부모님, 심지어 나익현과 나다희까지 서 있는 것을 보았다.그들은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예선과 소군연을 향해 다가왔다.예선은 멍하니 소만리를 쳐다보다가 결국 이 모든 것이 그들이 미리 계획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그녀와 소군연의 부모만 감쪽같이 몰랐던 것이다.소군연은 절대 그녀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단지 그녀에게 인생에서 가장 지키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 누구인지 각인시키기 위해 좀 다른 방법을 썼을 뿐이다....이듬해 봄.생명의 기운이 깃든 모든 것들이 축제를 펼치는 계절.경도호텔 야외 정원에서는 결혼식이 한창이었다.그렇다.오늘은 소군연과 예선이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었다.소만리와 기모진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공주님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멈추지 않았다.두 부부의 눈에는 실로 눈앞의 모든 존재들이 기적과도 같았다.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막내와 그 옆을 잘 보살피고 있는 듬직한 기란군, 그리고 곱고 맑은 딸 기여온까지.“엄마 아빠, 나랑 막내한테도 뽀뽀해 줘.”“뽀뽀, 뽀뽀.”막내는 기란군의 말을 알아들은 듯 소리쳤다.“너랑 막내는 맨날 하잖아. 여온이는 오랜만에 집에 왔으니까 특별히 좀 더 많이 해 줘야지.”기모진은 귀여운 기여온을 안고 볼에 뽀뽀를 했다.“여온아, 요즘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그놈이 평소에 무섭게 굴지는 않아?”“당신이 말한 그놈이 혹시 나예요?”강자풍이 짐짓 뾰로통한 얼
예선의 말을 듣고 소군연의 모친은 천천히 발걸음을 멈추었다.예선의 마음속에 그런 생각이 있는 줄은 몰랐다.게다가 예선은 자신을 향해 ‘존중'이라는 단어를 썼다.예선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 소군연의 모친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는 중 갑자기 소만리의 목소리가 들렸다.“예선아, 네가 그들을 존중한다고 해서 그들이 널 존중해 줄 줄 알아? 사람은 서로 존중해 주어야 하는 거야.”“그렇지만 군연은 그들의 아들이잖아. 만약 내가 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군연이랑 결혼을 한다면 그들은 두고두고 평생 나와 군연을 원망하며 살 거야.”예선은 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군연을 그렇게 만들고 싶진 않아. 나와 부모님 사이에서 평생 힘들어하면서 살게 할 순 없어.”“그렇지만 예선아...”“소만리, 이제 그만해. 너 나 어떤 사람인지 잘 알잖아? 한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꼭 함께 지내야만 하는 건 아니야. 그 사람이 평안하고 즐겁게 지낸다면 그것으로 족한 거야, 안 그래?”예선의 얼굴에 담담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미 마음속에 결심을 한 것 같았다.소만리는 예선을 말리고 싶었지만 이 상황에서 뭐라고 조언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예선아, 그럼 이제 갈 거야? 소군연 선배 더 안 찾을 거야?”“찾아볼 곳은 다 찾아봤어. 이래도 못 찾는다는 건 아마도 군연과 나의 인연이 여기까지라는 거겠지. 군연이 혼자 조용히 있게 놔두는 게 좋을 것 같아.”예선이 돌아서자 소군연의 모친은 얼른 몸을 숨겼다.자신이 그들을 미행했다는 걸 그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이때 소만리가 예선을 불러 세웠다.“예선아,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니 너랑 군연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 보는 건 어때? 아직 안 가 본 곳이 혹시나 없는지 잘 생각해 봐. 소군연 선배가 거기서 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예선은 이 말을 듣고 걸음을 멈추었다.“아직 안 가 본 곳이 한 군데 있긴 해.”“거기가 어
멀리서 예선을 몰래 관찰하던 소군연의 부모는 차 안에서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흥. 군연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렇게 깊다더니 한나절이 지나도록 군연이 어디 갔는지 짐작도 못하고 있군.”소군연의 모친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투덜거렸다.소군연의 부친은 아내를 힐끗 쳐다보았다.“그런 말 좀 이제 그만해. 지금은 군연이를 찾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야. 사실 난 저 예선이란 애, 꽤 괜찮다고 생각해. 처음에는 부모도 없다고 당신 많이 싫어했잖아? 그런데 지금은 부모도 있고 그뿐만 아니라 엄마는 갑부에 아빠는 유명한 의사인데 당신 뭐가 불만이 그렇게 많아? 정말 아들을 평생 독신으로 살게 할 셈이야?”소군연의 부친은 솔직히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지만 소군연의 모친은 그래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당신도 예전에는 반대했잖아요? 나중에는 나도 동의했다구요. 하지만 아버님 체면 세워 드리느라고 동의하지 않았던 건데 이제 와서 날 탓하면 어쩌라는 거예요?”“그만둬.”소군연의 부친이 아내의 말을 끊었다.“어째서 말을 못하게 해요? 내가...”“예선이 움직였어!”소군연의 부친이 급히 액셀을 밟았고 소군연의 모친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잠시 후 소만리의 차는 경도대학교 정문 앞에 멈춰 섰다.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눈에 익은 건물을 바라보며 예전에 함께 보냈던 날들을 떠올렸다.그들이 대학에 갓 입학한 첫날이었다.그때 그들은 모두 각자 마음에 두고 있던 한 해 선배의 남자와 부딪히게 되었다.그 남자와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될 때까지 아주 오랜 세월이 걸렸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경도대학교에 있을 것 같아?”소만리가 물었다. 예선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살짝 웃었다.“나도 확신할 수 없지만 네 말처럼 군연과 함께 했던 추억이 있는 곳은 다 가능성이 있는 거니까. 그래서 여기 왔어. 운에 한번 맡겨 보려고.”예선은 말을 마치며 학교 안으로 걸어갔다.학교는 개방식이어서 예선과 소만리는 아무런 제지도 없이 바로 들어갔
소군연의 할아버지는 소군연의 글을 보고 화가 나서 눈을 부릅떴다.퇴원하자마자 한 여자 때문에 사라져?게다가 이 여자가 아니면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그는 결코 그런 일이 발생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소군연이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하니 마음이 몹시 답답하고 당황스러웠다.만약 소군연이 정말 결혼하지 않는다면 그들 소 씨 가문은 후사가 없게 되는 게 아닌가?낭패였다.그건 안 된다. 절대 안 될 일이었다.예선은 밖으로 뛰쳐나온 후 그가 갈 만한 곳을 찾아가 보았지만 오전이 다 지나도록 소군연의 행방을 알아낼 수 없었다.그녀는 소군연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역시나 받지 않았다.아무런 소득 없이 시간만 흘러가자 예선은 갑자기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그녀는 길가에 있는 의자에 앉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았다.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들의 인생에 주어진 하루하루를 무탈히 사는 것만 같았다.갑자기 상실감이 확 밀려왔다.군연, 정말 날 포기하기로 한 거예요?우린 이렇게 헤어져서 제 갈 길을 가게 되는 건가요? 그런 건가요?예선은 막막한 마음을 도무지 어찌할 수가 없었다.생각하면 할수록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바로 그때 소만리에게서 전화가 왔다.예선은 얼른 그녀의 전화를 받아 소군연에게 일어난 상황을 전했고 소만리는 한달음에 예선에게 달려왔다.예선은 소만리를 보자마자 눈물샘이 터져버렸다.소만리는 예선을 위로했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일시적으로 감정이 격해져서 그런 걸 거야. 널 포기했을 리가 없어.”“아니야. 포기한 거야.”예선은 심호흡을 하고 스스로를 진정시켰다.“그의 가족들이 절대 날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특히 어머니는 강경하게 반대하시고 최근에 발생한 일 때문에 다른 가족들도 나에 대한 선입견이 더욱 나빠졌어.”“그동안 일어난 일은 너랑 아무 상관없어. 넌 피해자야.”“하지만 그들은 날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저 소군연
”얼른 들어갈게요!”소군연의 엄마는 황급히 뛰어가다가 갑자기 뒤따라오는 예선에게 고개를 돌렸다.“넌 오지 마! 우리 소 씨 가문에 널 환영하는 사람은 없어!”소군연의 엄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선은 소군연을 만나러 가지 않을 수 없었다.예선은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어떻게 소군연이 스스로 퇴원을 할 수 있단 말인가?그는 어제까지도 분명 병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누워 있었다.소군연의 집으로 가는 길에 예선은 소군연에게 계속 전화를 걸어 보았다.그러나 소군연은 받지 않았다.소군연에게 핸드폰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하긴 했지만 그래도 예선은 계속 전화를 시도했고 예상대로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그녀는 한시라도 빨리 소군연을 만나고 싶었다.그러나 가는 길이 너무 막혔다.드디어 예선이 소군연의 집에 도착해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앙칼진 소군연의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가 어떻게 스스로 집에 왔다는 거야? 방금 깨어난 거 아니야?”“이것 좀 봐 봐. 이거 보면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게 될 거야.”소군연의 부친은 원망 섞인 말투로 소군연의 모친에게 뭔가를 쥐여 주었다.예선이 얼른 현관에 들어서자 따가운 소군연의 모친 목소리가 그녀를 향했다.“따라오지 말라고 했는데 넌 왜 또 왔어? 누가 널 환영한다구...”“됐어. 그만하고 이것 좀 보라니까.”소군연의 부친은 예선이 들어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군연의 모친 말을 끊었다.예선은 소군연의 부친이 미묘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며 쫓아내지 않자 얼른 안으로 걸어갔다.소군연의 모친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메모지 한 장이었는데 메모지에는 짧은 몇 마디가 쓰여져 있었고 모두 소군연의 모친에게 전하는 말인 것 같았다.소군연은 자신이 이틀 전에 깨어났다고 실토하며 잠에서 깬 이후 자신의 엄마가 예선에게 모질게 투덜거리는 말만 하는 것을 보고 예선과 절대 결혼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
예선은 아무도 없는 병실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즉시 소군연을 찾아나섰다.그러나 근처를 한 바퀴 둘러보아도 예선은 소군연의 모습을 찾지 못했고 마음속에서 초조함이 스멀스멀 밀려왔다.이때 소군연의 엄마가 들어왔다.병상에 누워 있어야 할 소군연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을 본 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 혹시 무슨 검사하도 하러 간 거야?”소군연의 엄마는 불만이 가득 담긴 얼굴로 예선에게 물었다.소군연의 엄마가 보이는 이런 태도에는 이골이 났는지 예선은 개의치 않으며 담담하게 돌아섰다.“저도 알고 싶어요.”“나보다 먼저 와 놓고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제가 왔을 때도 병실에 아무도 없었어요.”예선은 돌아서면서 말을 이었다.“간호사한테 한번 물어볼게요.”“잠깐만.”소군연의 엄마가 예선을 멈추어 세우며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너한테 말을 해 둬야겠어. 군연인 이미 너 때문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었어. 다친 적도 한두 번이 아니고. 너 때문에 영 씨 집안 두 모녀는 감옥에 갇혔어. 이건 분명히 네가 우리 가문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얘기야. 네가 우리 군연이를 얼마나 좋아하든 우리 군연이 널 얼마나 좋아하든 상관없어. 넌 우리 소 씨 가문에 들어올 수 없어.”이 말을 들은 예선은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영 씨 집안 두 모녀가 감옥에 간 것까지도 예선의 탓으로 돌린단 말인가?예선과 소군연은 엄연히 피해자였다.영내문 같은 악랄한 사람은 오늘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다른 사람에게 악행을 저지를 사람이었다.영내문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인 중의 악인이었기 때문이다.지금까지 벌여진 일들로 이 모든 것이 자명한데 소군연의 엄마는 여전히 예선을 탓하고 있는 것이다.예선은 더 이상 소군연의 엄마와 논쟁을 하고 싶지 않았다.그런 시간 낭비 에너지
채수연이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이미 모든 상황을 다 이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여온아.”채수연이 기여온에게 다가가 몸을 웅크리고 앉아 다정하게 말했다.“여온아, 선생님이 여온이 좋아하는 거 알지? 어딜 가든 매일 기쁘고 즐거운 일만 있길 바라. 그리고 하루빨리 말도 할 수 있게 되길 바랄게.”기여온이 선생님의 말을 알아듣고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한껏 고개를 끄덕였다.채수연은 일어서서 강자풍을 바라보았다.아직도 눈에는 그에 대한 호감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조금 전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더 이상의 집착은 사라졌다.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반드시 고집스럽게 쟁취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채수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강자풍을 바라보며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강자풍도 더 이상 아무 말없이 몸을 굽혀 기여온을 품에 안고 돌아섰다.돌아서기 전에 채수연에게 따뜻한 작별의 미소도 잊지 않았다.“채 선생님, 앞으로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어쨌든 선생님께 많이 신세 졌습니다. 고맙습니다.”채수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절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걸로 이미 다 갚으셨어요. 하지만 강 선생님 같은 친구가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긴 하네요. 기회가 되면 같이 식사라도 해요.”“그럼요, 언제든지요.”강자풍이 흔쾌히 승낙했다.친구가 된다는 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채수연은 그 자리에서 기여온을 안고 점점 멀어지는 강자풍의 뒷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두어 걸음 앞으로 나섰다.“강 선생님, 저 궁금한 게 하나 더 있는데 대답해 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강자풍은 천천히 걸음을 멈추었다.그는 잘생긴 얼굴에 다정한 미소를 가득 품고 뒤돌아보며 물었다.“뭐가 궁금하신가요?”“좋아하는 여자가 정말 있긴 한 거죠?”강자풍은 기여온의 작은 얼굴에 부드러운 시선을 잠시 떨구며 입을 열었다.“지금 저의 가장 큰 소원은 여온이가 무탈하고 건강하게
”어쩌다가 듣게 되었어요.”강자풍은 순순히 시인했다.채수연은 강자풍의 대답을 듣고 자신이 난감해할 줄 알았다.하지만 그녀의 마음이 예전처럼 초조하지 않고 오히려 편안하고 후련한 느낌이 들었다.다만 약간의 부끄러움은 어쩔 수 없었다.강자풍은 채수연이 난감해하지 않도록 애써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채 선생님을 도와드리려고 했던 건데 어떻게 하다가 영상이 찍혀 인터넷에 올라오는 바람에 선생님을 더 난처하게 해 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나와 여온이 일로 또 한 번 고민거리를 안겨 드린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강자풍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기여온을 향해 부드러운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하지만 선생님, 걱정 마세요. 앞으로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 없을 거예요.”채수연은 이 말을 듣고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순간 마음속에서 상실감이 강하게 몰아쳤다.그녀는 의아한 눈으로 강자풍을 쳐다보며 강자풍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역시나 그의 말은 그녀를 안타깝게 만들었다.“채 선생님, 여온이한테 더 잘 맞는 유치원을 찾았어요. 제가 일하는 곳과도 더 가까워서 여온이 등하원하는 데도 훨씬 편리할 것 같아요.”강자풍의 말을 들은 채수연은 갑자기 마음이 너무나 허전했다.“여온이한테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봐 유치원을 옮기기로 하신 거예요?”강자풍은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이게 선생님한테도 우리한테도 좋은 것 같아요.”강자풍은 ‘우리'라는 말을 할 때 기여온에게 시선을 주었다.채수연은 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자신의 감정이 줄곧 일방적인 것이었고 닿을 수 없는 허무한 희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강자풍의 눈에는 이미 다른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강 선생님 생각이 맞는 것 같아요.”채수연도 강자풍의 말에 활짝 웃으며 동의했다.“아까는 정말 죄송했어요. 저희 엄마와 엄마 친구가 강 선생님에 대해 한 말은 정말 부적절했어요. 죄송합니다.”강자풍은 조금도 개의치 않으며 입
류 씨 성을 가진 남자가 트집을 잡았고 결국 강자풍이 기여온을 데리고 나가는 장면이 모두 찍혀 인터넷에 공개된 것이었다.이 남자도 양심은 있었던지 기여온의 모습은 블러 처리를 해서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게 했지만 강자풍의 모습은 영상에서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채수연의 엄마는 한눈에 영상 속 사람이 강자풍임을 알아차렸다.영상 아래의 댓글을 본 채수연의 엄마는 더욱 초조한 눈빛으로 말했다.“수연아, 너 어떻게 이런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할 수 있어?”채수연의 얼굴이 찡그려졌다.“맞아요. 부인하지 않을게요. 난 강 선생님한테 호감을 가지고 있어요.”“뭐라고!”“아유... 수연아, 너 정말 이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하는 거야?”진 씨 부인의 눈빛이 미묘하게 반짝거렸다.“내가 보니까 여기 댓글 단 사람들이 벌써 이 남자 신상을 다 파헤친 것 같던데. 이 남자 예전에 우리 F국에서 한때 주름잡았던 그 강어라는 사람 동생이라더라구. 그 강연이라나 뭐라나 누나라는 사람은 업계에선 더욱 악명이 높았대.”“뭐! 그 강 선생이 강어와 강연의 동생이라고?”채수연의 엄마는 자신의 소중한 딸이 악명 높은 집안 배경을 가진 사람과 사귀게 될까 봐 전전긍긍했다.“나도 그 사람 형과 누나에 대해서 들은 적 있어요. 나도 알고 있다구요. 하지만 강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 일에 개입한 적이 없어요. 만약 조금이라도 개입했다면 벌써 경찰서에 잡혀 들어갔을 거예요.”채수연은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게다가 강 선생님은 이 아이의 친아빠가 아니에요. 친구 딸인데 잠시 이 아이를 돌보고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 아주머니, 부탁드리는데요. 이 아이가 말을 못 하는 걸로 자꾸 걸고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말을 못 해서 누구보다 괴로운 건 이 아이잖아요. 입장 바꿔서 누군가가 아주머니 아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절대 듣고 싶지 않을 거잖아요, 네?”“...”채수연의 입에서 뭐라도 가십거리를 좀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