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으론 학교 다닐 때 우린 서문정과 별다른 교류 없었잖아.”장소월 역시 알 수가 없었다. 서문정은 오히려 백윤서와 더 친했었다.왜 일부러 그녀인 척 그녀 행세까지 한단 말인가.얼마 후,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강지훈이 간 것이다.전연우가 방으로 들어오자, 한창 별이와 장난치고 있던 소현아는 입을 꾹 다문 채 몸을 움츠렸다.장소월은 그녀가 전연우를 무서워하는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인지는 몰랐다.장소월이 물었다.“갔어?”“갔어. 저녁 뭐 먹고 싶어. 내가 도우미한테 해놓으라고 할게.”장소월이 옆에 있는 소현아에게 말했다.“저녁 같이 먹어. 한 번 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잖아.”“그래도 돼?”소현아의 겁먹은 시선이 자꾸만 전연우의 눈치를 살폈다.“안 될 것 없어. 시간이 늦으면 내가 운전기사를 불러줄게.”소현아가 방긋 웃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몇 그릇 가득 먹을래.”저녁, 소현아는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뚱뚱하게 불어 오른 배를 두드리며 집을 나섰다.문 앞엔 쇼핑백들이 가득 놓여있었는데 장소월이 준 선물과 도우미가 만들어준 간식이었다.“너무 맛있었어. 내일 또 올게.”전연우는 앞으로 걸어가 문을 쾅 닫아버렸다.장소월은 화들짝 놀랐다.“뭐 하는 거야!”전연우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며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네 얼굴을 봐서 저 여자를 집에 들인 거야. 소씨 집안도 밥 못 먹을 정도로 가난한 건 아니잖아?”“전연우, 현아는 내 친구야.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네 그릇이나 먹었어. 밥솥 다 비웠단 말이야. 이래도 내가 말하면 안 돼?”뒷정리를 하고 있던 도우미가 말했다.“저 아가씨 정말 먹성이 좋네요. 이렇게까지 깨끗하게 비운 사람은 지금까지 한 번도 못 봤어요.”전연우는 그녀를 소파에 앉힌 뒤 따뜻한 물을 따라주었다.“내가 선물한 액세서리들, 다음부턴 다른 사람한테 주지 마.”장소월이 고개를 들었다.“난 하나도 안 써. 그리고... 현아는 남이 아니라 내 친구야.”전연우가 소리
소현아는 손으로 눈 부신 불빛을 막았다. 차가 천천히 그녀를 향해 다가와 그녀 앞에 멈춰 섰다.운전석 창문이 내려가자, 그녀는 순간 호흡이 멈춰버렸다. 공기 중에 드러난 정교한 그 작은 얼굴에 공포가 어렸다. 그녀는 뒷좌석에 앉은 무서운 그 남자에게 눈길조차 돌리지 못했다.“아가씨, 감옥장님께서 잠깐 차에 타시랍니다.”‘저저저.. 저 사람이 왜 여기에 있단 말인가? 아까 분명 갔었잖아!’소월이가 저 사람을 멀리하라고 했다.분명 좋은 사람은 아니다!소현아는 그런 사람과 조금이라도 얽히고 싶지 않았다. 전에 했던 경험이 본능적으로 가까이 지내면 안 된다고 말해주고 있었다.“저저저전....”소현아는 긴장감에 메고 있던 가방끈을 꽉 움켜쥐었다. 무해한 두 눈을 끔뻑거리기만 할 뿐 말도 채 잇지 못하고 어쩔 줄을 몰랐다.마침 그 순간, 확연히 눈에 띄는 형광 초록색 승용차가 다가왔다. 소현아는 곧바로 몸을 돌리고 걸음아 나 살려라 차를 향해 도망쳤다.“어서 어서 어서... 어서 출발해요...”운전기사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아가씨, 무슨 나쁜 놈이라도 만나셨어요?”“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빨리 출발해요!”운전기사는 영문도 모른 채 차 시동을 걸었다. 소현아는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는지 연신 뒤를 돌아보았다.다른 차 안.부관이 말했다.“감옥장님, 도망쳤습니다.”강지훈은 손에 담배를 들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조금 전 그 당황해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보니 더더욱 흥미가 생겼다. 뭘 그렇게 무서워한단 말인가.“따라가.”소현아는 뒤에서 따라오는 차량을 본 순간 자리에서 굳어버렸다.그녀는 가슴을 두드리며 애써 부정했다.‘이 길목만 지나면 갈라질 거야.’하지만 신호등을 지나가고 난 뒤, 그녀가 뒤돌아봤을 때도 차는 계속하여 따라오고 있었다.소현아는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그가 이토록 음산하게 아직까지 미행하고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대체 뭘 하려고 저러는 걸까? 스토커인가?남원 별장.샤워를 마치고 욕실을 나
장소월은 괜한 걱정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전연우는 종래로 다른 사람의 일에 오지랖을 부리지 않는다. 그게 강지훈이라면 더더욱 관여치 않는다.전연우는 침대 옆에 앉아 핸드폰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아직 아홉 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조명이 환히 켜져 있는 성세 그룹 안, 직원들은 야근을 하고 있었는데, 그중엔 기성은도 포함되어 있었다.“대표님.”전연우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사람을 보내 소현아를 지켜보게 해. 절대 강지훈과 어떠한 접촉도 생기게 해선 안 돼.”소현아와 강지훈?기성은은 소현아가 강지훈과 연관되어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강지훈은 극도로 위험한 인물이다. 주변에 여자가 끊일 줄을 모르는 그에게 소현아는... 그저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어린아이일 뿐일 것이다.정말 그에게 찍혔다면 분명 고초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기성은은 일을 처리함에 있어 늘 효율을 중요시한다. 그는 빠르게 강지훈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비밀 조직에 연락해 얼마 되지 않아 답을 찾았다.그는 조사 결과를 전연우의 메일에 보냈다.핸드폰 진동 소리를 듣고 살펴본 전연우의 이마가 곧바로 찌푸려졌다.특히 강지훈의 차가 소현아를 따라가고 있는 그 모습을 본 순간...전연우가 옆방에 가보았을 때, 장소월은 아이를 품에 안고 잠들어 있었다.남자는 아이를 아기침대에 눕혀놓고는 깊게 잠든 여자를 안고 방으로 돌아갔다.전연우는 그녀를 깨우지 않고 깊은 눈으로 바라보며 긴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오늘 밤 빚진 거 내일 다시 갚아야 해.”바깥 하늘이 밝아왔을 때, 장소월은 전연우의 괴롭힘 때문에 깼다가, 끝나고 나서야 다시 잠이 들었다.전연우는 그녀를 깨끗이 씻기고 난 뒤 침대에 눕히고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자리를 떴다.차를 몰고 성세 그룹에 도착하자,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기성은이 앞으로 걸어가 전연우의 뒤를 따랐다.“매체에 공개할 보도 자료는 이미 준비했습니다. 대표님, 정말 그렇게 하실 겁니까?”“너한테 한 번 더 중복해줘야 해?”“현재
송시아가 손을 뻗어 남자의 얼굴에 새겨진 흉터에 가져갔다. 하지만 손이 닿기도 전에 남자가 손목을 낚아채고 경고의 눈빛을 보냈다.송시아는 전혀 개의치 않은 듯 남자의 몸에서 일어나 와인 두 잔을 따랐다.“나보다 그 사람을 잘 아는 사람은 없어요. 전연우는 진심으로 장소월을 사랑하고 있어요.”“당신은 그 사람을 형제로 생각하고 있겠지만, 그 사람은 아닐 수도 있어요.”“당신이 아직 모르는 게 있어요...”“뭔데?”송시아가 와인잔을 손에 들고 다가가자 강지훈은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고 무릎에 앉힌 뒤 와인을 한 모금 홀짝 마셨다.송시아가 말을 이어갔다.“전연우가 해외로 떠나려고 하는 이유는 장소월과 결혼을 하기 위함이에요. 지금의 전연우는 장소월에 관한 일이라면 못할 게 없어요.”“전연우는 심지어 장소월을 곁에 두기 위해 바깥에서 아기까지 데려왔어요.”강지훈의 이마가 서서히 찌푸려졌다. 그가 고작 여자 한 명 때문에 이렇게까지 타락했다고?이어 강지훈은 한 손으로 송시아의 얼굴을 움켜쥐고 조롱 섞인 웃음을 터뜨렸다.“그래서... 전연우 곁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있었으면서 잠자리도 하지 못한 거야?”“지금 내 여자가 된 기분 어때?”송시아가 말했다.“당연히 전연우는 당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비교할 가치도 없어요.”본체 겉과 속이 다른 게 바로 여자다. 잠자리를 하기 전엔 울며불며 반항하다가도, 거기에 들어가기만 하면 환상을 맛보고 고분고분 말 잘 듣는 강아지가 된다.강지훈은 돌연 손에 들고 있던 와인을 송시아의 가슴에 쏟아부었다. 붉은색 액체가 옷을 적시고 깊은 골짜기를 타고 내려갔고, 나머지 액체는 새하얀 피부를 수놓았다. 송시아는 매혹적인 웃음을 지으며 턱을 치켜들고 자신의 가장 풍만하고 관능적인 곳을 남자의 눈앞에 가져갔다.강지훈은 곧바로 여자를 번쩍 안아 들고 침대에 엎드려 놓고는 자신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게 했다....천하 일성 야간 업소.강지훈은 담배를 손에 들고 소파에 기대어 앉아 느릿하게 걸어 들어오고 있는 사
전연우가 말했다.“넌 내가 싫증 나 버린 여자만 거두어 놀잖아. 아직도 한 명 더 필요해?”송시아는 모욕적인 그 한 마디에 심장에 저릿한 고통이 전해져 왔다. 하지만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그가 차갑게 돌아서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기성은은 바깥에서 기다리다가 생각보다 빨리 나온 전연우를 보고는 급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강지훈이 아가씨한테 관심을 가진 겁니까?”강지훈은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람이다. 한 여자를 갖겠다고 결심한다면 그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손에 넣고야 만다.전연우는 어두워진 얼굴로 업소를 나갔다.“앞으로 내 허락 없이는 아무도 남원 별장에 접근하게 하지 마.”“평소 아가씨와 왕래가 있는 사람은 소씨 가문 아가씨뿐입니다. 그럼 소현아 씨도...”전연우가 차가운 눈으로 그를 흘끗 쳐다보았다.“난 조금의 사고도 일어나지 않길 원해.”기성은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대표님.”현재 송시아는 강지훈의 여자다. 강지훈에게 버려진 이후, 대표님은 절대 그녀를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것이다.강지훈이 여자를 교체하는 주기는 일반적으로 2주를 넘기지 않는다.아가씨에게 관심을 갖는다는 건 이미 송시아에게 싫증을 느끼고 있다는 걸 의미하는 걸지도 모른다.그 후 며칠 동안, 전연우가 남원 별장에 들어간 날은 극히 드물었다. 하여 심지어 어떤 신문사에선 전연우와 홍콩 연예인의 스캔들 기사를 내기도 했다.연예인부터 모델, 심지어 학생까지...한 달 사이에 성세 그룹 안주인 자리는 다양하게 바뀌고 또 바뀌었다.이른 아침, 장소월은 소파에 앉아 아이에게 분유를 먹이고 있었다. 시간을 계산해보니 별이는 마침 갓 만 한 살이 되었다.별장의 도우미들은 별이에게 열어줄 생일잔치를 준비했다.상다리가 부러질 듯한 음식이 차려졌다.분유를 먹이고 창밖을 바라보니 화창한 날씨였다. 하여 장소월은 별이를 데리고 산책하러 나가기로 했다.마당 안, 정원을 가꾸고 있던 도우미들은 뒤에 장소월이 와 있는지도 모르고 한창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장소월, 31세, 암으로 사망.서울 강남병원, 소독수 냄새가 코를 찌른다.「연우야, 오늘 의사선생님이 투석한다고 주사를 놓아주셨는데 너무 아팠어.」「나 곧 죽어. 보러 와 줄 거지?」「제발, 연우야...」장소월이 힘겹게 머리를 돌려 전화기의 메시지 창을 보고 있다. 메시지를 몇 개나 보냈건만 감감무소식이었다. 전연우는 여전히 답장이 없었다...그녀의 손에는 링거 바늘이 꽂혀있었다. 얼굴은 창백했고 몸은 뼈만 남아 앙상했고 두 눈은 안쪽으로 푹 꺼져 있었다.사지는 이미 암 후유증으로 인해 썩어가고 있었다.몸을 까딱할 수 없었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책임 간호사도 거의 보름 너머 와보지 않았다.원인: 더 이상 치료해도 의미 없음.그녀는 사실 엄살이 많았고 아픈 걸 끔찍이 무서워했다. 암 말기라 그녀는 매일 고통에 시달렸고 전연우에 대한 사랑만이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는 이유였다.하지만 이 넘쳐나던 사랑이 메말라가자 그녀에게 남은 건 뼈만 남은 몸뚱이였다.장소월은 전화기를 꺼버리고 조용히 죽기를 기다렸다.고통으로 그녀는 의식이 흐릿해졌다. 씁쓸하게 느껴졌다. 안 깐 힘을 다해 전연우와 결혼했고 8년간 그녀는 최선을 다해 좋은 아내가 되려 했다. 모든 걸 다 바쳐 그 사람 곁을 지켰는데 그녀가 얻은 건 무엇인가?사람들은 하나 둘 그녀의 곁을 떠났고 가난 외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그녀가 죽으면 제일 기뻐할 사람이 전연우다. 이제 그는 자유의 몸이다. 더 이상 징그러운 그녀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된다.전연우, 드디어 소원대로 송시아와 결혼할 수 있다.8개월 전.전연우의 생일날,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장소월은 소파에 앉아 그가 돌아오길 기다렸다.테이블 위 그녀가 정성껏 차린 음식들도 이미 차갑게 식어갔다.기다리던 전연우는 오지 않고 비서가 이혼서류를 가져왔다. 비서가 싱겁게 입을 열었다.“사모님, 사장님도 별다른 방법이 없어요. 이렇게 큰 전 씨 집안 산업을 누군가는 물려받아야 되잖아요.”장
새벽 12시.장소월이 악몽에 놀라 벌떡 몸을 일으킨다. 이마엔 땀이 맺혀있다.순간 익숙한 소독제 냄새가 코끝에 스친다. 그녀가 제일 싫어하는 냄새다.장소월은 잠시 멍해졌다. 죽은 거 아니었나?왜 아직 살아있는 거지?‘탈칵’하는 소리와 함께 깜깜했던 병실이 밝아졌다. 눈부신 불빛에 그녀는 눈을 뜰 수가 없었다.남자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악몽이라도 꾼 거야?”긴 다리로 침대 곁에 다가왔다. 큰 체구가 그녀의 왜소한 몸에 비친 빛을 막아주기엔 넉넉했다.“전...전연우?”장소월이 머리를 들어 뼈속까지 증오하는 그 남자의 얼굴을 알아보고는 놀라움에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다가오지 마!”왜 또 이 악마의 곁으로 돌아온 걸까?그녀는 본능적으로 거부하며 뒤로 물러선다.장소월의 머리는 지금 복잡하기 그지없다. 전연우를 본 순간 크나큰 두려움과 절망이 몰려와 숨이 막혔다.전연우가 멈칫한다. 이내 가느다란 눈은 차가움으로 가득 찬다. 불쾌한 듯 그녀를 쳐다보았고 잘생긴 얼굴이 어두워졌다.“의사 불러줄게.”남자의 차가운 저음이 칼처럼 위험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문이 쾅 하고 닫기고 나서야 장소월도 긴장이 풀렸다.남자가 떠난 후 방안에 떠돌던 강렬한 압박감도 사라졌다. 장소월은 황급히 이불을 걷어냈다. 순간 째질듯한 아픔이 손목에 전해졌다.손목을 보니 붕대가 감겨져 있었다. 손목을 그은 건가?장소월은 아픔을 견디면서 다른 한 손으로 침대맡의 테이블에서 구식 전화기를 들어 달력을 찾아보았다.시간을 본 순간 장소월은 너무 놀란 나머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지금은 무려 2000년, 그녀가 18살 되던 그해였다.장소월은 기억을 떠올리려고 애썼다. 그녀는 지금 입원 중이고 손목을 그어 전연우를 협박해 고백을 받아달라는 중인 것 같았다.전연우는 장소월이 10살 되던 해에 장해진이 밖에서 데려온 양자였다.장소월이 그를 사랑한다고 느끼게 된 건 그녀가 15살 되던 해 집에서 키우던 티베탄 마스티프가 갑자기 실성해 그녀한테 달려들어 물
장소월이 가볍게 숨을 들이쉬고는 전연우에게 웃으면서 담담하게 말했다.“오빠, 미안해. 전에는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어! 내가 잘못했어. 그렇게 오빠를 궁지로 내몰면 안 되는 거였는데. 이제 깨달았어. 앞으로도 꼭 기억할게. 오빠는 오빠일 뿐이라고.”난리를 피우지도 떼를 쓰지도 않았다. 너무나도 평온한 나머지 아무런 생기 없는 인형 같았다.전연우의 어두운 눈동자가 빛나더니 얇은 입술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비웃음이었다. 그녀의 새로운 수작인 건가?전연우가 입을 열었다.“알았다니 다행이네. 밤새우지 말고 얼른 쉬어. 내일 데리러 올게.”그러고는 어른처럼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장소월은 피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고 수긍하는 듯 머리를 끄덕였다.돌아선 전연우의 눈에 부드러움은 찾아볼 수 없었고 차가움만이 남아 있었다.병실에서 나온 전연우는 주머니에서 하얀 손수건을 꺼내 장소월을 만졌던 손을 닦았다.엘리베이터 앞까지 걸어간 그는 옆에 놓인 쓰레기통에 손수건을 던졌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전연우가 지하 주차장으로 가는 버튼을 누른다.아우디 한 대가 라이트를 킨 채로 있다. 조수석에는 긴 파마머리를 한 여인이 앉아있다. 섹시한 옷차림에 손에는 담배가 들려있다. 야릇한 붉은 입술은 담배연기를 뿜어냈다.여자의 시선은 차에 타는 남자의 잘빠진 몸을 따라 움직였다.“잘 달래줬어?”전연우가 차에 올라 안전벨트를 했다. 그의 눈에 역겨움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곧이어 여자의 손에 들린 담배를 뺏아 창밖으로 던졌다. 그러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다시는 내 차 안에서 담배 피우지 마.”여자가 매혹적으로 웃어 보이더니 다리를 꼬았다.“안 피면 어린 아가씨 향수 냄새를 어떻게 덮어.”아이라인을 그린 예쁜 눈이 차 안에 놓인 핑크색 향수병으로 향한다. 거기엔 글자가 쓰여있는 스티커도 붙여져 있었다: 장소월 전용 좌석.그녀가 살짝 웃어 보이더니 말한다.“18살밖에 안되는 여자애가 점유 욕은 굉장히 강하단 말이야. 왜? 장가에 데릴 사위로 들어갈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