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오빠 왔어요.”장명주가 돌연 손가락으로 한 방향을 가리키며 신나게 소리쳤다. 장소월도 고개를 돌려보니, 멀지 않은 곳에 하얀색 셔츠와 검은색 바지를 입은 스무 살 남짓한 대학생 같아 보이는 젊은 남자가 걸어왔다. 그가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엄마, 전 오빠한테 갈게요.”강만옥이 말했다.“그래.”그녀가 손에 힘을 풀자, 장명주는 곧바로 흥분하며 그를 향해 달려갔다.그 순간 장소월은 화들짝 놀랐다. 그의 모습, 특히 그의 눈과 눈썹이 지금 그녀 옆에 서 있는 남자와 무척이나 닮아 보였기 때문이었다.그렇다. 그는 전연우와 매우 닮아있었다.단지 다른 점이라면, 그에게는 전연우가 갖고 있지 않은 순진함과 청초함이 담겨 있다는 것이었다.강만옥은 전연우를 한 번 힐끗 보고는 자리를 떴다.그 후, 장소월도 떠났다.차에 오르니, 하늘에서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어젯밤 제대로 자지 못했던 탓인지, 장소월은 차 안에서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나와 강만옥 사이엔 아무 일도 없었어.”묘지를 떠난 지 10분이 지난 뒤, 전연우가 그녀에게 한 마디 말했다.아무 일도 없었다고?장소월은 줄곧 전연우와 강만옥 사이에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애증의 감정이 존재할 거라 생각했다.그녀는 전연우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말했다.“나한테 설명할 필요 없어.”아무 일도 없었다고 해도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그의 순결함을 증명해 주기라도 하는가?그런 말을 내뱉는다면, 그 자신조차 믿을 수 없을 것이다.장소월은 그의 한 마디, 한 단어조차도 함부로 믿을 수 없었다.별장에 돌아간 뒤.전연우는 아이를 안은 그녀에게 우산을 씌워주며 걸어갔다. 그의 한쪽 어깨는 이미 비에 젖어 흥건해진 채 말이다.그때 호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이 울렸다. 전연우는 발신자를 확인하고는 자리를 피해 전화를 받았다.극소수의 전화를 제외하고는, 전연우는 늘 그녀 앞에서 받곤 했다.그가 걸어 나가자 장소월은 틀림없이 좋은 일은 아닐 거라는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전화는
“누군지는 밝히지 않았어요. 목소리를 들어보니 나이는 별로 많지 않은 아가씨 같았어요.”장소월은 워낙 혼자 다니기를 좋아하고 인간관계에 신경 쓰는 데에 능하지 않으니, 은경애는 그녀가 참석할 거라는 말 대신 그저 알려주겠다고 대답했었다.장소월은 초대장을 열어보았다. 아래 적혀있는 이름을 보지 않아도, 위에 글씨만으로도 소현아라는 걸 알 수 있었다.몇 년이 지났어도, 그녀의 글씨는 여전했다.생일 파티?전연우가 밖에서 들어오며 물었다.“가고 싶어? 내가 같이 갈게.”“그때 가서 생각해.”장소월은 손에 들고 있던 금빛 초대장을 내려놓았다. 날짜를 보니 일주일 뒤였다.아마 허이준이 돌아와 알려줬을 것이다. 허이준을 제외하면 그녀의 귀국 소식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테니.장소월은 방에 돌아와 입고 있던 검은색 원피스를 갈아입었다.아이를 은경애에게 맡겨놓으니, 마음이 놓였는지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장소월은 침대에 잠시 누워 휴식을 취했다.전연우가 언제 침대에 올라왔는지 전혀 모를 정도로 깊이 잠들었다.하늘에 천천히 어둠이 내려앉았다.먼저 깨어난 전연우는 아직 꿈나라에 빠져있는 여자에게 이불을 덮어주고는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그때 복도에 있던 도우미가 말했다.“대표님, 저녁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전연우가 잠옷 단추를 잠그며 말했다.“잠시만요.”장소월은 아주 긴 꿈을 꾸고 있었다. 꿈속에서 그녀는 의자에 묶인 채 큰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사납게 번지는 불길은 조금씩 그녀의 피부를 삼켜버렸다. 한편 전연우는 문 어구에 서서 아이를 안고 있는 송시아와 함께 고통스러워하는 그녀를 외면하고는 매정히 떠나버렸다.그녀가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들어주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녀는 절망과 무력감에 휩싸인 채 자신을 집어삼키는 불꽃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꿈속에서의 그녀는 건강한 몸 상태였다...돌연 심장에서 전해져오는 강렬한 통증에 눈을 번쩍 떴다.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려 베개를 적셨다. 희미한 조명 아래, 전연우가 앉아있었다.
“사람을 죽였으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지.”“어떤 일을... 오빠가 너한테 알려주지 않는 건, 네 세계가 더러운 흙탕물에 오염되지 않길 원해서야.”“장해진도 깨끗하지 않고, 나 역시...”장소월은 얼룩 한 점 없이 깨끗이 살아가야 한다.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다.장해진은 줄곧 나쁜 사람이었다. 학교에서 수많은 친구들이 그녀를 괴롭히고, 때리고, 욕설을 퍼부었었다...장소월은 소리도 내지 못한 채 그 괴롭힘을 견뎌내야 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장해진의 딸이었으니까...그녀가 이런 일로 장해진에게 도움을 청할 때면 장해진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그저 조용히 견디라는 대답만 할 뿐이었다.때문에... 장소월은 이를 악물고 참아낼 수밖에 없었다.장소월이 천천히 힘을 풀었다. 입술이 빨간 핏빛으로 물들었고, 어두운색 줄무늬 잠옷에도 선명한 핏자국이 묻어났다.“그래. 아버지는 벌을 받고 돌아가셨어. 그럼 넌? 넌 왜 안 죽는 거야?”“너도 수많은 사람을 해쳤잖아. 넌 왜 안 죽는 거냐고!”“아버지가 죽어야 마땅하다면, 너도 죽어야지!”감정이 머리끝까지 북받쳐 올랐다. 또르륵... 긴 속눈썹에서 눈물이 한 방울 떨어져 내렸다.전연우는 피로 물들어 더욱 유혹적으로 변한 그녀의 입술을 지긋이 쳐다보았다.그는 손가락으로 피를 닦아주고는 다른 한 손을 그녀의 머리카락 속에 집어넣고 품 안에 끌어당겼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의 체온을 느꼈다.“난 죽지 않아. 소월이는... 오빠와 함께 잘 살아가야 해.”“난 너랑 함께 있고 싶지 않아. 죽을 때까지.”“언젠간 너도 알게 될 거야.”“난 알고 싶지 않아. 대체 왜 나야? 왜... 내가 모든 피해를 안아야 하는데? 분명 난 잘못한 거 없잖아. 왜! 나한테 이런 고통을 감내하라고 하는 건데!”전연우는 장해진에 대한 모든 원한을 그녀에게 풀었다. 서철용도... 그녀의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던 오 아주머니 역시 마찬가지였다.다들 그녀를 지옥 불구덩이에 몰아넣는 것에 혈안이 되어 그녀를 죽음에까지 이르게 만들었
품에서 달콤하게 잠든 아이가 깰세라, 번개가 치자 장소월은 곧바로 아이의 귀를 막았다.전연우가 침대 옆 탁자 위에 놓은 컵을 집어 들자 장소월이 그를 멈춰 세웠다.“별이가 먹는 약을 탄 물이야.”전연우는 멈칫하다가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고는 눈썹을 찌푸리며 컵을 내려놓았다.“아이한테 약 많이 먹이지 마. 부작용이 있어서 몸에 안 좋아.”“목소리 낮춰. 금방 잠들었어.”오늘 밤엔 전연우가 그녀를 건드리지 않아 장소월은 모처럼 편히 잠들었다. 새벽, 장소월은 돌연 들려온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깼다.전연우는 핸드폰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무슨 얘기를 하는지 장소월은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통화는 얼마 지나지 않아 끝이 났고, 장소월은 이내 다시 잠들었다.다음 날 아침, 날씨는 여전히 흐리고 꿀꿀했다.그녀는 점심 12시까지 자고서야 깨어났다. 옆자리를 만져보니 차갑게 식어있었다. 깨어난 지 꽤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장소월이 깨자 별이도 연달아 잠에서 깨어났다. 그녀는 침대에서 일어나 간단히 씻은 뒤 아이를 안고 내려가 밥을 먹었다. 집안 어디에도 전연우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그녀는 소파에 앉아 아이를 눕혀놓은 뒤 기저귀를 갈았고, 은경애는 분유를 따뜻하게 데워 가져왔다.장소월이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나갔어요?”“누구요?”은경애는 곧바로 장소월이 누구를 말하는지 알아차렸다.“아, 대표님이요? 아침 일찍 나가신 뒤로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어요. 비서도 온 걸 보니 회사에 일이 있어 나가신 것 같아요.”장소월은 더는 말하지 않았다.은경애가 한 마디 덧붙였다.“곽씨 아주머니가 집에 급한 일이 있어서 며칠 휴가를 내고 싶다고 제게 말했어요.”“네.”장소월은 간단히 대답하고는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그렇게 떠난 전연우는 3일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저 가끔씩 안부 전화만 걸어왔다.그가 없으니, 장소월은 한동안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점심시간, 별이는 찬 바람을 맞아 감기에 걸렸는지 연속 며칠 동안 약을 먹여도 호전될 기
기성은은 검은색 우산을 들고 전연우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전연우는 검은색 정장에, 검은색 외투를 걸친 채, 서늘한 분위기를 풍기며 장소월과 통화를 하고 있었다.의사가 현관으로 들어왔다.기성은이 우산을 접고, 도우미가 전연우가 벗어 놓은 외투를 받아 옷걸이에 걸어놓았다. 기성은으로부터 무언가 지시를 들은 도우미는 계단에 서 있는 여자를 향해 걸어갔다.장소월은 그가 오늘 돌아올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그녀는 차갑게 굳어버린 얼굴로 그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핸드폰을 은경애에게 돌려주고는 아이를 안고 방으로 돌아갔다.별이는 열이 올라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고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서철용은 청진기로 아이의 상태를 점검했다. 어젯밤 별이를 데리고 정원 산책을 했던 탓일까.그저 일반적인 기침이라 생각했으나, 이틀이 지나도 전혀 나을 것 같지 않았다. 장소월은 그제야 걱정이 되어 병원에 데려가기로 결심한 것이다.서철용은 의미심장한 눈으로 전연우를 쳐다보다가 장소월에게 말했다.“아이는 괜찮아요. 보통 감기예요. 열이 내리는 주사를 하나 맞으면 돼요.”서철용은 가는 주삿바늘을 아이의 손등에 꽂아 넣었다.장소월이 의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보통 감기라면 약만 먹이면 되지, 왜 주사까지 맞아요?”서철용은 정신을 고도로 집중했는지 대답하지 않았다.전연우가 장소월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걱정하지 마. 철용인 틀리지 않아.”그때 서철용이 말했다.“마음이 놓이지 않으면 병원에 가도 돼요.”“마침 소월 씨 건강 검진 결과도 3일 뒤면 나오니, 그때 별이도 데려오면 되겠네요.”전연우가 말했다.“짐 챙겨. 병원 가자.”장소월은 이유 모를 불안감에 휩싸였다. 두 사람이 무언가 그녀에게 숨기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서철용과 전연우 두 사람이 입을 맞춘다면 그 간악함은 아무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장소월은 기진맥진한 얼굴로 그의 손을 뿌리쳤다.“나한테 집에서 나가지 말라고 한 건 너야. 그런데 이제 와 또 짐을
“움직이지 마.”돌연 전연우가 차갑게 입을 열었다. 프로젝트 책임자는 그대로 자리에서 얼어버렸다. 그를 제외하고도... 회의실 안 모든 사람들은 겁을 먹고 고개를 숙인 채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전연우는 직원들에게 엄격하고 냉정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사람이다.단 한마디 말로 회사에서 쫓아낼 수도 있는 사람이다별이는 얌전히 앉아있지를 못하고 작은 손으로 전연우의 머리카락을 잡아 뜯었다. 평소엔 웃음기조차 보이지 않던 냉혈한이 조그만 아이에게 잡혀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라니. 대다수의 사람들은 고개도 들지 못했고, 어쩌다 한 번 그 광경을 본 사람도 감히 웃지 못했다.단번에 쥐죽은 듯 조용해진 회의실에서 전연우가 이마를 찌푸리고 말했다.“계속해!”별이는 젼연우의 목소리에 버튼이 눌렸는지, 엉엉 울어대기 시작했다. 전연우는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바로 기성은에게 건넸다.기성은 역시 종래로 아이를 달래본 적이 없으니,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기성은에게 안겨 문을 나선 순간, 아이는 급기야 자지러지게 울음을 터뜨렸다.비서 휴게실.안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기성은의 귀에 들어왔다.“대표님이 데리고 온 아이는 누구 아이일까요? 설마... 그 꽃뱀 여자가 낳은 건 아니겠죠? 인씨 집안 아가씨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벌써 아이를 낳았을 리는 없잖아요.”“누가 알겠어요. 재벌 집에야 어지러운 일투성이죠. 돈 많은 사람 중에 바람을 피우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어요. 하지만 회사에서 일한 지 꽤 되었는데도 대표님께서 아이를 데리고 나오신 건 정말 처음 보네요.”“아이를 안고 있는 대표님 모습 참 보기 좋던데요? 대표님처럼 차가운 사람에게 그런 부드러운 면도 있는지 몰랐어요.”“맞아요. 저도 그렇게 느꼈어요.”그중 긴 파마머리의 여자가 바쁘게 커피를 타고 있는 사람을 보고는 못마땅한 듯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소민아 씨, 대체 뭐 하는 거예요? 커피 몇 잔 타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려요?”소민아가 급히 말했다.“다 됐어요. 지금 나가
그렇게 한두 명씩 모두 도망쳐버렸다.소민아는 마주 오는 사람을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기 비서님, 저들이 했던 말은 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전 새로 들어온 인턴이라 아무것도 모릅니다.”기성은은 오랜 시간 동안 전연우와 함께 있었던지라 전연우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와 흡사한 서늘한 분위기를 갖고 있었기에 회사 사람들 모두 그를 두려워했다.“아이 볼 줄 알아요?”“네?”순간 당황한 소민아가 되물었다.기성은의 눈썹이 찌푸려졌다.“아이 볼 줄 아냐고요. 못 알아들어요?”소민아가 곧바로 대답했다.“압니다. 압니다. 갓 태어난 아이부터 80세 노인까지, 보살피는 건 잘합니다.”그때 기성은의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울렸다.별이는 너무 울어 목소리까지 변해버린 뒤에야 간신히 울음을 그쳤다.소민아가 아이를 받아 안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기성은은 급히 자리를 떴다.낯선 냄새를 맡고, 낯선 이의 얼굴을 본 별이는 또다시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젠장, 그녀가 알긴 뭘 안단 말인가. 그저 상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한 말일 뿐인 것을.한 시간 뒤, 전연우는 회의를 끝마쳤다.12시 정각이었다.회의 시간은 본래 두 시간으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아이 때문에 최대한 시간을 단축했다.하지만 전연우가 간과한 점이 하나 있었다...그는 핸드폰을 꺼내 유일하게 저장되어 있는 번호에 전화를 걸었다.장소월이 낮잠을 청하려 침대에 누웠을 때, 도우미가 문을 두드리고 핸드폰을 들고 들어왔다.“아가씨, 대표님이 아가씨와 통화가 되지 않아 집 전화로 연락해 왔어요. 중요하게 할 말이 있으신 것 같아요.”“무슨 일 있으면 잠시 뒤에 전화하라고 해요. 전 지금 쉬어야 해요.”“하지만...”도우미가 난처한 얼굴로 아직 연결되어 있는 전화기를 바라보았다.장소월이 짜증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주세요.”“또 무슨 일이야?”그녀가 퉁명스럽게 말했다.전연우가 대표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며 말했다.“오늘 일찍 출발하는 바람에 분유를 못 가져
검은 구름이 걷히고 차도 양옆 나무 사이사이로 햇빛이 내리쬐었다.장소월은 전연우가 아이로 협박해 목적을 이루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안 오면 굶길 거야.”도우미가 곧이곧대로 그녀에게 전한 전연우의 말이었다.전연우는 그녀의 성격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이제 이 아이도 전연우가 장소월을 다루는 무기가 되어버렸다.그녀는 옷방에서 가방 하나를 꺼내 아이 물건을 챙겨 넣고는 들고 나왔다.분유를 잊어버린 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기저귀까지 가져가지 않으면 어찌한단 말인가...이쯤 되니 그가 일부러 놓고 간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흐렸던 날씨는 점차 맑게 개어가고 있었다. 한 시간 정도 지난 뒤, 장소월은 성세 그룹에 도착했다. 운전기사 아저씨가 입구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문 앞에 서서 성세 그룹을 올려다보니, 전생과 똑같은 모습이었다.그녀는 도저히 회사에 오고 싶지 않아 가까운 거리에 있는 로즈 가든에 가져다 놓겠다고 했지만, 전연우는 단칼에 거절해 버렸다.로비에 들어서자마자 프런트에 서 있는 익숙한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예전 남천 그룹에서 일했던 직원이었다.그녀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아가씨? 귀국하신 거예요?”장소월은 예의 있게 웃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안녕하세요.”“아가씨, 대표님 만나러 오신 거죠? 대표님께서 아가씨가 도착하시면 모시고 올라오라고 분부하셨어요.”“괜찮아요. 저 혼자 올라가면 돼요. 몇 층이에요?”“99층입니다.”“고마워요.”“별말씀을요.”프런트 직원은 장소월에게 99층 대표실로 향하는 전용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주었다.“아가씨, 잠시만 기다리세요. 엘리베이터가 곧 내려올 겁니다.”“네.”프런트 직원이 자리에 돌아가자 다른 직원 하나가 그녀에게 다가갔다.“아가씨요? 난 왜 한 번도 본 적 없죠?”프런트 직원이 장소월을 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저 사람이 바로 제가 저번에 말했던 장씨 집안의 따님이에요. 대표님의 여동생이 되기도 하죠. 그러니까 앞으로 저 사람을 보면 조심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