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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소은영의 목소리가 너무 높아 주위에 순간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모든 이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

그중에는 박시언과 김하린도 포함돼 있었다.

뭇사람들에게 소은영은 그저 까칠하고 교양 없는 여자로만 낙인됐다.

허리가 구부정한 정원사는 쪼그리고 앉아서 바닥에 떨어진 장미를 주우며 쉴 새 없이 사과했다.

주위 시선을 느낀 소은영은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재빨리 미안한 척하며 말을 이었다.

“죄송해요, 제가 너무 경황이 없었어요. 괜찮으시죠 어르신?”

김하린이 가까운 곳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소은영은 이젠 더 이상 수습이 불가했다. 지금 이러는 건 오히려 가식적으로밖에 안 보였다.

그 시각 소은영도 박시언과 나란히 서 있는 김하린을 발견했다.

“쟤가 여길 왜 와?”

박시언은 미간을 구겼다.

김하린은 그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는데 정말 소은영이 올 줄 몰랐던 눈치였다.

그럼 설마 소은영 스스로 오게 된 걸까?

김하린은 침묵했다.

이 전개는 전생과 달랐다. 그녀의 기억대로라면 전생에 박시언은 소은영을 데리고 연회에 참석했고 그 자리에서 소은영은 서호철 어르신의 찬사를 받으며 순조롭게 출국길에 올라섰다. 졸업 후에는 박시언과 서호철 어르신의 후원으로 탄탄대로만 걷게 되었고...

김하린은 오늘 박시언이 소은영을 데려오지 않았으니 그녀가 연회장에 안 나타날 줄 알았다.

뜻밖에도 소은영은 끝까지 제 발로 찾아오고 말았다.

“대표님!”

이 비서가 연회장의 인기척 소리에 재빨리 달려왔다.

박시언은 이미 불쾌한 어투로 변했다.

“누가 얘 들여보냈어?”

“제가...”

이 비서는 고개를 푹 숙였다.

“소은영 씨가 대표님께 도움이 될 줄 알았어요.”

박시언은 미간을 문질렀다.

그는 전에 늘 소은영에게 관대했다.

하지만 이런 장소에 김하린을 데려온 이상 소은영은 나타나지 말았어야 했다!

“소은영 씨 모든 게 낯설 텐데 얼른 가봐.”

김하린이 무심코 샴페인을 한 모금 마시면서 말했다.

박시언은 당황해하며 어쩔 바를 모르는 소은영을 쳐다보다가 결국 혼자 내버려 두기가 안쓰러워서 가까이 다가갔다.

“잠깐 다녀올게. 금방 와.”

김하린은 아무 말이 없었다.

박시언이 다녀오는 건 예상 안의 일이다.

그는 항상 소은영을 내려놓지 못했으니까.

박시언은 앞으로 다가가서 질문했다.

“네가 여긴 왜 왔어?”

소은영이 속상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푹 숙였다.

“미안해요... 저는 그저, 한번 와보고 싶었어요.”

그녀가 나지막이 울먹이니 박시언도 더 심하게 몰아붙이지 못했다.

어쨌거나 그가 직접 후원해온 학생이었으니. 수년간 그녀가 얼마나 노력해왔는지 박시언은 잘 안다.

“이 비서더러 바래다주라고 할게.”

박시언이 떠나려 하자 소은영이 재빨리 그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대표님, 저 여기 남으면 안 돼요?”

박시언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전에 소은영은 말도 잘 듣고 분수도 잘 지키며 단 한 번도 주제넘은 말을 한 적이 없다.

그녀는 박시언의 눈빛을 마주한 순간 불만스러운 그의 속내를 바로 알아챘다.

“미안해요, 대표님... 저는 그저...”

소은영이 가여운 표정을 짓자 박시언은 끝내 독하게 마음을 먹지 못했다.

“있어 그럼. 이 연회는 네 출국에 도움이 될 거야.”

박시언의 말을 들은 소은영은 그제야 달콤한 미소가 번졌다.

“그럼 대표님과 함께 다녀도 돼요?”

박시언은 주위를 쭉 둘러보았는데 그녀 홀로 이 사람들을 상대하게 하기엔 실로 마음이 안 놓였다.

“그래.”

소은영은 아이처럼 좋아했다.

이 비서가 참지 못하고 질문을 건넸다.

“대표님, 그럼 사모님은...”

“이 비서가 함께 가 있어요. 지난번처럼 소란 피우지 못하게 해요.”

김하린은 연회에 자주 참석한다. 그녀처럼 금융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이런 곳에 오는 이유는 시간을 때우는 것밖에 안 된다.

지난번처럼 돈을 마구 쓰는 것만 아니면 뭐든 다 괜찮다.

박시언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김하린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 비서를 발견했다. 이 비서가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고민할 때 김하린이 먼저 말했다.

“소은영이랑 함께 있겠대요?”

“사모님, 소은영 씨는 우리 회사의 중점 육성 대상이에요. 그래서...”

“알아요. 당연히 이해하죠.”

김하린은 박시언과 소은영의 일을 아예 마음에 새겨두지 않는 듯싶었다.

이 비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의 착각인지 몰라도 사모님이 전보다 조금 달라진 것 같았다.

소은영은 박시언을 따라다니며 대기업 회장들과 담소를 나누었다. 김하린은 그 모습을 쭉 지켜봤다.

소은영이 아무리 학교에서 성적이 높아도 아직은 학생인지라 상업계에서 수년간 갈고 닦은 교활한 여우들 앞에서는 정말 하찮은 존재였다.

그분들도 박시언의 면을 봐서 소은영에게 겉치레로 칭찬을 하고 있었다.

다만 소은영은 곧장 한 외국인 어르신 앞에서 곤경을 치렀다.

김하린의 기억이 맞다면 이 사람은 아마 X국의 금융 거물일 것이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이 회장님이 모국어만 할 줄 알고 외래어를 모른다는 것이다.

또 마침 그의 옆에 통역사가 없었다.

“대표님...”

소은영은 입술을 깨물고 박시언을 쳐다봤다.

박시언이 난처한 상황을 수습하려 할 때 김하린이 다가와 유창한 X국 언어로 상대와 교류했다.

상대는 김하린의 말에 아주 흡족한 듯 그녀와 덥석 악수했다.

소은영은 그제야 김하린을 찬찬히 들여다봤다.

김하린은 그녀와 똑같은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김하린은 세련되고 우아하게 차려입었다.

그에 비해 소은영은 길거리의 싸구려 옷 같아 보였다.

소은영은 달갑지 않은 듯 주먹을 움켜쥐었지만 겉으론 여전히 미소를 지었다.

“언니 참 대단하네요. X국 언어까지 할 줄 알다니.”

김하린은 가볍게 웃을 뿐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한편 박시언도 김하린이 외국어를 할 줄 아는 걸 알지만 X국 언어는 흔하지도 않고 국제적으로 통용된 언어도 아니라서 아는 사람이 매우 적다. 김하린이 X국 언어를 할 거라곤 예상치 못했다.

“근데 언니 방금 스티븐 씨랑 무슨 얘기 했어요? 기분이 매우 좋아 보이시더라고요.”

김하린이 답했다.

“며칠 전 경매에서 낙찰한 동남해역의 부지가 대박 날 것 같다고 했더니 매우 기뻐하셨어요.”

“그 부지가... 대박 나요?”

소은영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 땅은 별 볼 것 없었으니 말이다.

“아마도요.”

김하린은 흘려넘기듯 대충 대답했다.

전생에서 그 부지는 확실히 괜찮은 가격에 팔렸다. 그쪽 해역이 갑자기 관광지로 개발되면서 그 부지에서도 관광업에 뛰어들었고 어마어마한 돈을 벌었다.

스티븐 어르신은 그 해역이 곧 개발될 것을 미리 알고 경매에서 땅을 산 듯싶다.

한편 소은영은 확실히 아직 그런 안목이 없다.

박시언은 김하린을 한참 쳐다봤다. 그의 시선에 김하린은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왜 그렇게 봐?”

박시언이 또박또박 물었다.

“그 부지가 대박 난다는 걸 네가 어떻게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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