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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작가: 노지혜
배주원의 차가 가까운 곳에 있는 미완성 건물 앞에 도착했다.

“X발 손정원 이 새끼가 어떻게 사람을 이딴 곳에 가둬 두냐고?!”

배주원은 주위를 쭉 둘러보았지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들리는 거라곤 본인의 메아리뿐이었다.

서도겸은 차에서 손정원을 끌어냈다. 그는 허둥지둥거리다가 겨우 제대로 섰다.

배주원이 앞으로 다가와 발로 툭 차며 물었다.

“말해! 하린 씨 어디에 가뒀어?”

“그건, 쟤네들이 숨긴 거라. 원래 그 쌍... 김하린 씨를 따끔하게 혼낼 생각이었어요. 돈 받으면 이 건물 폭발시켜서 박시언 목숨도 따내고 거액의 돈도 챙겨서 도겸 씨한테 공을 세워줄 생각이었는데 김하린 씨랑 도겸 씨가 아는 사이일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폭발시켜? 여길 폭발시킨다는 거야?”

배주원이 두 눈을 부릅떴다.

“설마 시한폭탄?”

손정원은 겁에 질린 채 머리를 끄덕이며 사시나무 떨듯 온몸을 떨었다.

서도겸의 눈가에 싸늘한 빛이 감돌았고 손정원은 두려움에 휩싸여 침을 꼴깍 삼켰다.

“주원아, 얘 꽁꽁 묶어둬. 폭탄 터지거든 얘부터 죽일 테니까.”

손정원은 황급히 바닥에 무릎을 꿇었지만 결국 배주원에 의해 사지가 묶였다.

미완성 건물은 구조가 매우 복잡했고 지금 서도겸은 김하린이 무사하다는 걸 확인했다. 급선무는 주변에 있는 폭탄을 제거하는 일이다.

바로 이때 검은색 벤틀리가 건물에 도착했다.

서도겸은 이 차 주인이 박시언이란 걸 한눈에 알아봤다.

“대표님, 여기 어디예요... 저 무서워요...”

소은영이 두려운 표정으로 박시언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박시언은 그녀의 손등을 톡톡 두드렸다.

“넌 차에 있어. 내려오지 말고.”

소은영이 머리를 끄덕였다.

배주원은 차에서 내리는 박시언을 보더니 코웃음을 쳤다.

“와이프가 납치당했는데 애인이랑 알콩달콩할 새가 있어요?”

“대체 누가 김하린 납치했어?”

박시언이 싸늘한 눈길로 서도겸을 쳐다봤다.

“내 기억이 맞다면 손정원은 서도겸 씨 부하일 텐데요?”

서도겸이 차갑게 쏘아붙였다.

“얘가 제멋대로 일을 벌인 거예요.”

배주원은 안절부절못하며 그들을 다그쳤다.

“이봐요, 두 분 지금 이러실 때가 아니라고요. 얼른 폭탄 제거해야죠!”

“폭탄이라니?”

박시언이 대뜸 긴장해 하며 되물었다.

“이 건물에 폭탄이 설치되었어요. 저랑 주원이는 폭탄 제거하러 갈 테니까 시언 씨는 하린이 찾는 대로 당장 여길 떠나요.”

서도겸의 말을 들은 손정원이 사지가 묶인 채 바닥에 움츠리고 앉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소용없어요. 제가 시체 훼손하고 증거 없애려고 건물마다 폭탄 세 개씩 설치했거든요. 게다가 15분 뒤에 바로 폭발할 거예요...”

“뭐라고?! 그렇게 중요한 걸 왜 이제야 얘기하는데!”

배주원이 손정원의 멱살을 잡고 당장이라도 이 개자식을 때려죽이고픈 심정이었다.

이미 된통 얻어맞은 손정원은 감히 머리를 쳐들 수가 없었다.

“폭탄 제거할 시간 없어. 얼른 하린이 찾아야 해!”

말을 마친 서도겸이 폐기된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배주원이 뒤를 따랐다.

박시언은 기사에게 분부했다.

“은영이 데리고 나가서 내 소식 기다려!”

“네, 대표님!”

기사는 곧장 차를 몰고 폐기 건물 밖으로 나갔다.

소은영이 참지 못하고 질문을 건넸다.

“하린 언니 지금 매우 위험하대요?”

“네, 은영 씨는 절대 함부로 움직이면 안 돼요. 여기 폭탄 설치했대요.”

소은영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미완성 건물을 힐긋 보더니 마음속에 갑자기 사악한 생각이 들었다.

‘김하린 그냥 여기서 죽어버리면 좋겠다!’

“김하린! 하린아! 내 말 들리면 대답해!”

미완성 건물 안에서 김하린이 어렴풋이 눈을 떴다. 귓가에 박시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연신 머리를 내저었다.

‘박시언이 어떻게 여기로 오겠어?’

그는 지금쯤 소은영과 알콩달콩한 시간을 보낼 게 뻔하다.

“김하린!”

줄곧 머리가 흐리멍덩했던 그녀는 서도겸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 두 눈을 크게 떴다.

‘서도겸?’

자세히 들어보니 배주원과 박시언의 목소리도 들렸다.

‘설마 박시언이 진짜 이리로 온 거야?’

김하린은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지금 이곳은 어두컴컴한 방 안이고 밖에서 희미한 달빛이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녀가 있는 곳에서 바깥의 전경이 훤히 다 보였다.

이곳은 미완성 건물이었다!

“읍! 으읍!”

김하린은 큰소리로 도움을 청하고 싶었지만 입에 테이프가 붙여져 있었다.

‘젠장!’

대체 누가 감히 그녀를 납치한 걸까?

밧줄을 풀려고 안간힘을 써봐도 삼끈이 아닌 나일론 밧줄이라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었다.

‘안돼, 김하린! 침착해야 해.’

그녀는 숨을 깊게 몰아쉬고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아까부터 ‘띠띠’하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순간 그녀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폭탄이야!’

김하린은 즉시 몸을 눕히고 밖으로 기어나갔다.

이 방을 나서자 밖에는 미완성 건물의 복도였다.

이곳은 얼추 십몇 층은 돼 보였다.

김하린은 머리로 옆에 있는 기둥을 들이받으며 박시언 일행이 소리를 듣길 바랐다.

곧이어 그녀는 또각또각 걸어오는 발걸음 소리를 들었다.

이 소리에 김하린은 화들짝 놀랐다.

이건 남자의 구두 소리가 아니라 하이힐 소리였다.

머리를 들어보니 소은영이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소은영은 음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방금 차에서 내려와 폐기된 건물 안으로 들어올 때 위층에 있는 김하린이 얼핏 보였다.

김하린만 죽으면 박시언 와이프의 자리는 비게 될 것이다.

김하린만 죽으면 그녀와 박시언 사이에는 더는 아무런 장애물도 없을 것이다.

소은영은 김하린을 아래로 밀어버릴 기세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김하린은 불길한 느낌이 들었지만 뭐가 잘못됐는지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었다.

이때 박시언도 그녀를 발견하고 황급히 달려왔다.

“하린아!”

박시언의 목소리를 들은 소은영은 재빨리 움츠리고 앉아 김하린의 입에 붙인 테이프를 뜯었다.

“언니 괜찮아요? 지금 바로 뜯어드릴게요.”

김하린은 걱정 어린 소은영의 눈빛을 바라보며 의아했던 마음을 잠시 묻어뒀다.

좀전의 불길한 느낌은 단지 그녀만의 착각이었기를...

“넌 왜 올라왔어?”

박시언은 소은영도 올라온 걸 보더니 미간을 구겼다.

“차에만 있으라고 했잖아.”

“저도 언니가 걱정돼서 함께 찾아보려고 왔어요.”

소은영은 살짝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이때 김하린이 말했다.

“여기 폭탄 있어. 도겸이랑 주원 씨는? 다들 얼른 도망쳐야 해!”

“가자.”

박시언은 김하린을 번쩍 안아 올리고 아직도 주변에서 그녀를 찾고 있는 서도겸과 배주원에게 말했다.

“하린이 찾았어요. 얼른 가요!”

두 사람은 박시언의 목소리를 듣고 서로 마주 보더니 재빨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배주원이 물었다.

“손정원 어떡해?”

서도겸이 차갑게 말했다.

“걔는 여기 남겨둬.”

배주원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게 왜 하필 도겸이를 건드리냐고?’

한편 소은영은 박시언을 뒤따라오며 그의 품에 안긴 김하린을 보고 있자니 질투가 저절로 차올랐다.

“앗!”

그녀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고 이에 박시언이 머리를 돌렸다. 소은영은 하이힐 굽이 부러졌다.

“미안해요, 대표님... 발목이 접질린 것 같아요.”

이를 본 김하린은 담담하게 말했다.

“나 내려줘. 이젠 괜찮아.”

“확실해?”

“응.”

박시언은 그녀의 대답을 들은 후에야 바닥에 내려주고 얼른 가서 소은영을 안았다.

마침 같은 층에 도착해 이리로 달려오던 서도겸이 이 광경을 지켜봤다. 그는 김하린의 발목에 난 상처를 한눈에 발견했다.

아마도 나일론 밧줄을 풀려고 몸부림치다가 상처가 난 듯싶었다.

서도겸은 두말없이 앞으로 달려가 김하린을 번쩍 안았다.

그녀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뭐 하는 거야?”

서도겸이 앞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너도 발목 다쳤는데 왜 말 안 해?”

“내 상처는 중요하지 않아.”

김하린이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게다가 박시언한테는 소은영이 더 소중하거든.”

박시언이 소은영에 대한 편애가 이미 남녀의 경계를 넘어섰다는 걸 모르는 이가 있을까?

김하린도 이 정도의 눈치는 챙겨야 했다.

“바보.”

서도겸이 그녀를 살짝 흔들었다.

“나 꽉 안아.”

김하린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지만 좀 전보다 서도겸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

“빨리 나가야 해! 폭탄이 곧 터진다고!”

배주원이 소리쳤고 서도겸은 그녀를 꽉 안은 채 마지막 순간에 폐기된 건물에서 뛰쳐나왔다.

한순간 거대한 폭파음과 함께 폐기된 건물은 온통 불빛으로 뒤덮였다.

“타!”

박시언은 소은영을 차에 앉힌 후 고개 돌려 김하린을 태우려 했는데 그녀가 이미 서도겸의 차에 올라탔다.

“대표님, 얼른 가요... 나 너무 무서워요.”

소은영이 잔뜩 겁에 질려 하자 박시언도 마지못해 차에 탔다.

한편 김하린은 나란히 차에 탄 두 사람을 지켜보며 이미 적응한 듯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돌아가는 길에서 김하린은 아무 말도 없었다.

배주원이 참지 못하고 그녀에게 물었다.

“누가 납치했는지 안 궁금해?”

“손정원.”

김하린이 넌지시 대답했다.

“어떻게 알았어?”

배주원은 놀란 듯이 물었다.

“그냥 맞춰본 거야.”

김하린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사실 그녀도 방금 손정원이 떠올랐다.

김하린은 자신의 인맥이 아주 단순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게다가 누군가를 건드릴 일은 더더욱 없다. 최근에 있은 가장 큰 이슈는 바로 2조 원으로 그 부지를 낙찰한 것이다.

그녀의 기억이 맞다면 전생에 그 부지를 산 사람이 바로 손정원이다.

김하린은 지금 그의 돈줄을 막은 게 틀림없다. 하지만 손정원도 그 부지가 미래에 얼마나 가치가 있을지 모르고 단지 또 다른 의도를 품고 있을 뿐이다.

한편 손정원은 또 서도겸의 사람이다.

그러니까 서도겸도 제때 도착한 것이다!

김하린이 이 기회를 틈타서 물었다.

“서도겸 씨 부하가 날 납치했네. 이러면 계산이 어떻게 되는 거지?”

“일단 빚진 거로 할게.”

서도겸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배주원은 백미러로 서도겸을 힐긋 쳐다보며 이 친구가 대체 무슨 의도인지 전혀 갈피가 안 잡혔다.

손정원이 이렇게 하는 건 그와 전혀 상관없는 일인데 왜 굳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김하린을 구한 걸까? 게다가 되레 본인이 빚지다니?!

더 빌리지에 도착한 후 배주원이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박시언은 대문 앞에서 차에 있는 소은영을 안아서 내렸다. 그는 전혀 김하린을 기다릴 기색이 없이 소은영과 함께 나란히 집 안으로 들어갔다.

“나 갈게. 다들 오늘 고마웠어.”

김하린이 차 문을 열고 홀로 집 안으로 들어갔다.

배주원이 먼저 말을 꺼냈다.

“난 또 네가 하린이 기 살려줄 줄 알았는데.”

“걔 그렇게 나약한 사람 아니야.”

서도겸은 두 눈을 감았다.

“가자.”

더 빌리지.

박시언은 한창 소파에 앉아서 소은영에게 약을 발라주고 있었다.

김하린이 들어오자 소은영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니, 제가 발목을 접질려서 대표님이 약을 발라주는 것뿐이에요...”

말을 채 맺기도 전에 박시언이 싸늘하게 가로챘다.

“쟤한테 해명할 필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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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시언은 미간을 구겼다. 김하린이 이렇게 쉽게 단둘이 있을 기회를 포기한다고?!인상 속 그녀는 박시언이 소은영을 만나러 갈 때마다 화내고 난리를 피웠었다.“소은영 병원 데려간다며? 얼른 가보라니까.”김하린은 그가 일 초라도 빨리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었다.더 늦으면 서도겸이 휴식한다고 할까 봐 걱정됐고 내일이면 최미진이 또 무슨 계획을 세울지 모른다.“천천히 먹고 있어.”박시언은 상 위의 음식을 텅 비운 그녀를 보더니 별안간 가슴이 답답했다.어렵게 그를 집에 남겨뒀는데 밥만 먹는다고?박시언이 답답한 마음을 안고 집을 떠난 후 김하린은 재빨리 휴대폰을 꺼내 서도겸에게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 나 오늘 갑자기 일이 생겨서 시간이 늦어졌네. 지금 바로 갈게.”“급할 거 없어.”“이따 만나!”그 시각 배진 그룹 안에서 서도겸은 사무실 통유리창 앞에 서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배주원은 사무실 소파에서 뒤척이며 잠에서 깼다.“김하린은? 몇 신데 왜 아직도 안 와?”“일이 좀 생겼대.”“온종일?”배주원은 기지개를 쭉 켜다가 문득 뭔가 떠오른 듯 그에게 물었다.“너 설마 줄곧 여기서 기다린 거야? 까딱 움직이지 않고?”이 통유리창 앞에 서면 배진 그룹 대문 밖의 모든 상황을 똑똑히 볼 수 있다.서도겸이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이에 배주원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와, 살다 살다 별구경을 다 해보네! 왜? 일에 싫증 나서 이젠 사랑의 순애보가 되기로 한 거야?”“못 할 것도 없지.”배주원은 이런 표정을 짓는 서도겸을 전혀 본 적이 없다.그는 전에 항상 첫눈에 반하는 건 동화 속에서나 나오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똑같은 시나리오가 절친에게 벌어질 줄은 꿈에도 예상치 못했다.곧이어 김하린이 차를 타고 배진 그룹 문 앞에 도착했다.경호원이 그녀를 보더니 재차 확인한 후에야 앞으로 나섰다.“김하린 씨 맞으세요?”“네, 접니다.”김하린이 머리를 끄덕였다.“이쪽으로 모실게요.”경호원이 선뜻 그녀의 가방을 들어주며 엘리베이터 입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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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하린은 매우 진지했다.이 말은 진실 반, 거짓 반이다. 김씨 일가는 확실히 한때 위풍당당하던 김씨 일가가 아니다. 이 또한 전생에 박시언이 김하린에게 점점 더 냉랭해진 이유이기도 하다.박시언에게 이 결혼은 오직 이익 관계로 얽매인 결혼이다 보니 그녀가 모든 이용 가치를 잃으면 박시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전생에 김씨 일가는 철저하게 몰락했고 김하린은 박시언에게 쓰레기 취급을 당하며 가차 없이 버려졌다.“지금 네가 에반을 운영하겠다고? 농담하지 마!”배주원은 말을 끝맺기도 전에 서도겸의 곁눈질로 대뜸 입을 다물었다.그는 곧장 단어 사용에 신경을 썼다.“하린아, 내가 널 얕잡아보는 게 아니라 네 전공이 아예 금융 쪽도 아니고 회사를 어떻게 운영하는지 배운 적도 없잖아. 에반 홀딩스가 지금 아무리 빈껍데기 회사라고 해도 그 큰 가업을 네가 어떻게 감당하겠어? 수많은 임원진을 다 설득할 수 있겠어?”“그건 나도 알아.”“알면서 왜...”서도겸이 또다시 배주원을 째려봤다. 이에 배주원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네가 에반 홀딩스를 운영하는 건 너무 비현실적이야.”“에반은 우리 할아버지가 남겨주신 산업이야. 내가 반드시 지켜내야 해. 체계적으로 배우진 못했지만 나도 나름 방법이 있어.”“무슨 방법?”“학교 다니면 되지.”“학교?”배주원은 그녀의 사고방식에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박시언이 투자한 금융 학교에 가서 시험을 보는 건 괜찮을 것 같아.”“자신 있어?”“응.”김하린은 홀가분하게 대답했지만 사실 박시언이 투자한 그 학교는 국제 금융 학교라서 안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금융계 전문가들이다. 그녀의 말처럼 그리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이 학교를 설립한 수십 년 동안 오직 소은영만 빈곤 가정 학생 출신이다. 그녀도 높은 점수와 박시언의 추천으로 겨우 입학했다.한편 김하린은 이 방면에 대한 기초가 전혀 없으니 입학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배주원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인맥을 동원해서 들어갈 생각이야?”

  • 합의이혼 후 곧 재혼한 아내   제17화

    박시언은 병원에서 밤새 소은영과 함께 있었다. 오전에 갑자기 이 비서한테 전화가 걸려왔고 그는 미간을 살짝 구기며 전화를 받았다.“입시라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학교 측에서 오늘 갑자기 전화가 왔는데 입시 명단에서 사모님 이름을 보았다고 합니다. 실례지만 대표님, 사모님께서 혹시 대표님께는 미리 말씀하셨나요?”어제 김하린은 분명 최미진과 함께 쇼핑하고 있었는데 대체 언제 시험을 신청하러 갔다는 걸까? 박시언은 어리둥절해졌다.“알겠어요.”박시언은 전화를 끊은 후에도 인상이 펴지지 않았다.‘김하린 또 무슨 수작인데?’“대표님, 학교에서 전화 왔나요? 저 얼른 돌아가서 수업 들을게요.”소은영이 병상에서 어느새 잠이 깼다.“이 비서더러 학교에 얘기하라고 했어. 오늘은 병원에서 푹 쉬어. 방금 전화도 네 일이 아니야.”“그럼 무슨 일인데요?”소은영은 의아한 듯 박시언을 쳐다봤다.박시언은 학교에서 후원하는 학생이 분명 소은영 한 명뿐이었으니까.“김하린.”그는 머리가 아픈지 관자놀이를 문질렀다.“나 먼저 가봐야겠어. 푹 쉬고 있어.”소은영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박시언이 나간 후에야 그녀는 나지막이 구시렁댔다.“김하린이 우리 학교랑 무슨 연관이 있다는 거지?”그 시각, 김하린은 한창 A 대학교를 거닐었다. 그녀가 박시언의 와이프인 관계로 교장과 부교장이 옆에서 A대의 교육 시설과 일부 캠퍼스 환경을 소개해주고 있었다.김하린은 원래 예쁜 데다가 오늘 포니테일을 묶어 청순하고 풋풋한 대학생을 방불케 했다.주변을 오가던 학생들은 저도 몰래 김하린을 엿보며 그녀의 정체를 추측하고 있었다.곧이어 박시언의 차가 A대 교문 밖에 도착했다.안소이는 그 차가 왠지 조금 눈에 익었다.“가람아, 저기 좀 봐봐. 저 차 소은영 남친 차 맞지?”그녀들은 전에 이 차가 소은영을 픽업하는 걸 몇 번 본 적이 있다.“그러네. 어젯밤에도 은영이 저 차 타는 거 봤어.”유가람이 의아한 듯 물었다.“은영의 남친이 병원까지 실어준다고 하지 않았어? 이렇

  • 합의이혼 후 곧 재혼한 아내   제18화

    소은영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그녀는 전에 허영심에 차서 룸메이트들의 끈질긴 질문하에 박시언이 제 남자친구라고 거짓말을 둘러댔다. 만약 이 거짓말이 들통난다면 그녀는 감히 기숙사에 남아있을 면목이 없다!틀림없이 룸메이트들의 웃음거리로 전락할 것이다!소은영은 한참 망설인 후 답장을 보냈다.[알았어. 너희들은 일단 가만있어. 난 내 남친 믿어.]말을 마친 그녀는 이불을 걷고 문밖에 있는 간호사를 불렀다.“저기요, 저 퇴원할래요!”A대 밖에서 김하린은 박시언에게 끌려 차 안에 들어왔다.“설명해 봐.”박시언이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이에 김하린은 직설적으로 대답했다.“나 A대에서 금융을 배우고 싶어.”“안돼.”“네가 뭔데 안된다는 거야?”“난 네 남편이야. 그러니까 절대 안 돼!”박시언의 말투가 더 싸늘해졌다.“김하린, 네가 무슨 꿍꿍이인지 내가 모를 것 같아?”“뭐라고?”“은영이가 이 학교에 있으니까 일부러 따라와서 괴롭히려는 거잖아!”“박시언, 나 그렇게 한가한 사람 아니야. 착각하지 말아 줄래?”“하린아, 전에 네가 은영의 옷 스타일 따라 하는 거 나 아무 말도 안 했어. 그렇다고 이렇게 선 넘는 건 무례야. 말했잖아. 넌 영원히 내 와이프야. 아무도 네 자리 못 뺏어.”“진짜 아무도 못 뺏어? 시언아, 내가 만약 김씨 일가의 딸이 아니었다면 넌 나랑 결혼했을까?”김하린은 차가운 시선으로 박시언을 쳐다봤다.순간 박시언은 말문이 턱 막혔다.결국 그녀와 박시언 모두 이 문제의 답안을 잘 알고 있다.만약 이때 신분이 더 높고 박씨 일가 사모님 자리에 더 적합한 여자가 나타난다면 박시언은 여전히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와 이혼할 것이다.“A대는 네가 들어오고 싶다고 해서 바로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야. 내 와이프라고 시험 면제받을 생각은 꿈도 꾸지 마. 나도 절대 너 안 도와줘.”“오직 내 실력으로만 시험 볼 거야. 너한테 기댈 일 없어.”“고작 네가?”박시언이 차갑게 웃었다.“하린아, A대가 우스워? 쉽게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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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합의이혼 후 곧 재혼한 아내   제100화

    “김하린, 말을 꼭 그렇게까지 해야겠어?”박시언은 소은영을 보호하면서 냉랭하게 말했다.김하린은 귀찮아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기로 했다.“할머니한테 이 사진을 보여주기 싫으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해.”박시언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뭐 어쩔 건데?”“강한 그룹을 원래 자리로 돌려놔.”박시언한테서 사과받기란 불가능했다. 그저 입으로 하는 사과보다 실질적인 사과를 받고 싶었다.박시언이 냉랭하게 말했다.“그럴 수 없어.”“그럴 수 없다고? 그래. 그러면 할머니한테 이 사진 보여주면 되지. 네가 은영 씨를 만나기 위해 속인 걸 알면 무슨 반응일까?”김하린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난 상관없어. 오히려 은영 씨가 등록금과 생활비가 끊긴 마당에 할머니가 이 사진을 보게 되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 모르겠네?”소은영은 이 말에 얼굴이 창백해지고 말았다.“지금 날 협박하는 거야?”“맞아, 협박하는 거.”김하린은 별로 쓸데없는 말을 하기 싫었다. 어차피 증거도 가지고 있으니 충분히 협박할 수 있는 자격이 있었다.“대표님...”소은영은 박시언을 불쌍하게 쳐다보면서 눈물을 또르르 흘렸다.박시언은 소은영의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어떻게 하고 싶은데?’“강한 그룹이 본 손해를 두 배로 갚아줘. 그리고 이제부터 강한 그룹을 건드려서는 안돼.”“알았어.”김하린은 그가 소은영을 위해 흔쾌히 대답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소은영이 이미 충분히 불쌍한데 더 불쌍해지는 모습을 두고 볼 수가 없었다.“지금 바로 진행해. 오늘 내로 결과를 봐야겠어.”“김하린,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어?”“난 늘 이런 사람이었어. 우리가 하루 이틀 본 사이도 아니고.”김하린의 차가운 모습에 박시언은 한참 동안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결국 회사에 전화할 수밖에 없었다.소은영은 그의 뒤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다 저의 잘못이에요. 저를 만나러 오지 않았다면 언니한테 약점이 잡히지도 않았을 텐데... 저 때문에 잃는 게 너무 많은 거 아니에요?”김하

  • 합의이혼 후 곧 재혼한 아내   제99화

    “이놈이 정말 얍삽하더라고. 처음에는 경쟁사에서 한 짓인 줄 알았잖아. 요 며칠 얼마나 많은 회사에서 투자를 철수했는지 몰라. 내가 끈질기게 한 사람을 잡고 물어봤더니 그제야 박시언이 한 짓이라고 하더라고. 강한 그룹에 투자하는 사람은 걔 박시언을 무시하는 거라고 하면서!”강한나가 흥분할수록 김하린의 얼굴색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박시언이 어떤 성격인 줄 알았지만, 소은영을 위해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강한나가 강 씨이긴 해도 서호철의 손녀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강한 그룹을 건드렸다는 것은 서호철을 건드린 거나 다름없었다. 박시언은 아무리 멍청하다고 해도 강한나를 건드려서는 안 되었다.“잠깐만요. 제가 해결해 볼게요.”김하린은 전화를 끊었다.아까까지만 해도 박시언과 소은영을 어떻게 해볼 생각이 없었지만 인제 와서 보니 자신이 너무 착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시언은 강한나를 내버려 둘 생각이 없는데 말이다.‘이렇게까지 나오는데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없지.’김하린은 자리에서 일어나 이 둘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얼마 가지도 않아 박시언이 소은영을 위해 커피를 사다 주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소은영이 박시언을 끌어안는 틈을 타 김하린은 핸드폰으로 이 모습을 찍어놓았다.몰카를 당하고 있다는 느낌에 박시언은 김하린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역시나 김하린은 핸드폰을 흔들거리면서 도발하고 있었다.박시언은 김하린의 핸드폰을 뺏어오고 싶었지만 김하린이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어놓는 바람에 그럴 수 없었다. 쇼핑몰에 사람도 많아서 대놓고 뺏을 수도 없었다.소은영은 박시언의 팔뚝을 잡으면서 김하린을 향해 애원했다.“언니, 저는 이미 집에서도 쫓겨났는데 저희 대표님 좀 내버려 두면 안 돼요?”“그래? 그러면 넌 지금 뭐 하고 있는 건데?”소은영의 얼굴색이 창백해졌다.“저...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김하린이 질문했다.“돈이 없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는 거 아니고? 아니면 불쌍한 모습을 시언이한테 보여주고 싶었던 거야

  • 합의이혼 후 곧 재혼한 아내   제98화

    “내가 A대 가기 싫은 거 가지고 협박하지 마. 난 이혼하면 그만이야. 어디 서로 물어뜯어 보자고!”김하린은 박시언이 고자질하는 것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 심지어 박시언은 김씨 가문에서 조금이라도 더 이익을 챙기려면 이 사실을 비밀로 해야 했다.박시언은 결국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도대체 어떻게 하고 싶은데?”“거래해. 내가 할머니한테 좋은 말하는 대신 너도 같이 연기를 해야 해.”“연기를 해?”박시언이 의심의 눈초리로 김하린을 쳐다보았다.“겨우 그거야?”“다른 사람이 봤을 때 넌 완벽한 남편이 되어야 해. 내 의견을 따르고, 내 체면까지 살려줘야 할 것이야. 그리고 적당히 내 편도 들어주고, 내가 믿고 의지할 만한 사람이 되어야 해. 얼마나 쉬워. 너한텐 손해 볼 일도 아니잖아.”김하린은 굳이 돌려서 말하고 싶지 않았다. 김씨 가문 쪽에서는 박시언의 연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며칠 전 최미진이 난리를 치는 바람에 박시언은 김하린이 더욱 싫어졌고, 좋은 남편인 척하기에는 불가능했다.박시언이 한참 동안 생각하더니 대답했다.“그래. 네 말대로 할게.”“그래.”김하린은 태블릿 PC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치마를 정리하면서 말했다.“할머니더러 저녁 식사하러 오시라고 해. 내가 직접 요리할 거야.”박시언이 미간을 찌푸렸다.“뭐 하려고?”“할머니 앞에서 서로 사랑하는 부부인척해야 할머니가 너를 풀어줄 거 아니야.”박시언이 피식 웃었다.“너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박시언은 그녀의 속을 훤히 뚫어보는 듯했다.김하린은 별로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오후, 이도하가 최미진을 픽업해 왔고, 김하린은 한창 주방에서 요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박시언은 옆에서 도와주고 있었고, 애써 서로 사랑하는 신혼부부인 척했다.이 장면에 최미진이 흐뭇해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식사하는 동안에도 박시언은 친절하게 김하린의 앞에 음식을 짚어주었고, 때로 서로 농담도 주고받았다.최미진은 그제야 안심이 되는 듯했다.“할머니, 저 내일 쇼핑하고 싶은데

  • 합의이혼 후 곧 재혼한 아내   제97화

    최미진은 박시언을 늘 엄하게 대했고, 박시언은 회초리를 피할 수조차 없었다.최미진이 젖 먹던 힘으로 때린 나머지 박시언의 몸이 시퍼렇게 멍들기 시작했다.김하린은 그저 우두커니 지켜볼 뿐이다. 박시언은 이를 꽉 깨문 채 아프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결국 회초리가 부러지고, 최미진이 냉랭하게 말했다.“그래도 사과 안 할 거야?”박시언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김하린은 박시언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맞고도 사과하지 않는 걸 보니 절대 사과할 마음이 없어 보였다.김하린이 말했다.“할머니, 화 푸세요. 저는 사실 시언이를 탓한 적 없어요. 얼른 의사 선생님이나 불러와야겠어요.’김하린의 이해 넓은 모습에 최미진은 그제야 화가 가라앉는 듯했다.박시언의 할머니로서 그가 어떤 성격인지 모를 리가 없었다.박시언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아까는 그저 김하린의 화를 풀어주려고 연기한 것이다.최미진이 김하린의 손을 어루만지면서 말했다.“하린아, 이제부터 할머니가 시언이를 잘 보고 있을게. 그리고 약속할게. 그년은 이제부터 우리 박씨 집안에 한 발짝도 들어오지 못해. 이 집안의 안주인은 너야.”김하린은 그저 웃을 뿐이다.바닥에 무릎 꿇고 있던 박시언은 차가운 눈빛으로 김하린을 쳐다보았다.날이 어두워지고, 최미진은 결국 이도하더러 의사 선생님을 불러오라고는 이곳을 떠났다.김하린은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고, 그제야 바닥에서 일어난 박시언은 싫증난 표정으로 말했다.“김하린, 연기 다했어?”김하린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박시언이 또 이어서 말했다.“이혼을 핑계로 할머니더러 은영이를 쫓아내게 해? 정말 대단해. 내가 너 우습게 봤어.”“마음대로 생각해.”김하린은 그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든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이때 마침 의사 선생님이 도착했고, 김하린이 말했다.“이따 약 바르실 때 너무 살살하실 필요 없어요. 박 대표님은 가죽이 두꺼워서 아파하지도 않아요.”의사 선생님은 고개 숙여 박시언의 눈치만 볼

  • 합의이혼 후 곧 재혼한 아내   제96화

    차에 올라타자마자 이도하가 참지 못하고 말했다.“사모님, 대표님께서는 절대 이혼하지 않을 거니까 이따 좀 부드럽게 말씀하세요.”김하린이 살며시 눈을 감으면서 말했다.“할머니께서는 언제 집에 오셨어요?”“오후요.”김하린이 예상했던 대답이었다.최미진이 지금까지 난리 치는 바람에 이도하가 이제야 픽업하러 온 것이다.성격이 불도저 같은 최미진은 절대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을 두고 볼 수가 없었다.이쯤이면 소은영은 이미 최미진한테 쫓겨났을 것이다.집에 도착했을 때 집 문은 열려있었고, 집 안으로 들어갔을 때는 최미진이 소파에 앉아있었다. 그 옆에는 유미란이 서 있었다.마지막에야 박시언이 바닥에 무릎 꿇고 있는 모습을 보았고, 방안에는 소은영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최미진이 냉랭하게 말했다.“짐은 다 쌌어요?”“네. 사모님.”유미란이 트렁크 하나를 끌고 나오면서 말했다.“이거 다 은영 씨 짐입니다.”최미진이 물었다.“도하 씨, 이 중에 시언이가 산 물건들이 어떤 거예요?’이도하가 머뭇거리면서 말했다.“대표님께서 계속 은영 씨 생활비를 대주고 있었기 때문에...”최미진이 피식 웃었다.“그러니까 이것들 전부 시언이가 사준 거란 말이에요?”이도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최미진이 유미란에게 말했다.“전부 버려요! 그리고 교장 선생님한테 오늘부터 소씨 가문과 연을 끊겠다고 말씀드리세요. 이미 성인이 되었는데 저희 도움도 필요 없을 것 같은데.”“할머니!”박시언이 미간을 찌푸렸다.“은영이는 그저 평범한 아이예요. 집안 형편도 안 좋은데 언제 돈을 벌어서 A대 등록금을 낼 수 있다고 그러세요!”“금융 전공이잖아. 그럴 능력도 못 된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괜히 후원해 준 거나 다름없어!”최미진이 냉랭하게 말했다.“그리고 네가 후원해 줘서 지금까지 우리 박씨 가문에서 뭐 섭섭하게 해준 거 있어? 독립할 능력도 안 되는 사람이라면 더는 그런 사람한테 후원해 줄 필요도 없어.”최미진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김하린을 쳐다보았다.“하린아,

  • 합의이혼 후 곧 재혼한 아내   제95화

    해성의 환경미화원이 출동한 덕분에 김하린이 구매한 오염 구역이 슬슬 정리되기 시작했다. 몇 달만 지나면 새로운 모습으로 변할 수 있었다. 김하린은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직접 움직이기도 했다.허가증이 내려온 덕분에 많은 기업들이 이곳에 투자하기 시작했고, 그 덕분에 자금이 충분했다.저녁, 배주원은 김하린이 한상 차린 테이블 위에 자료 하나를 올려놓더니 감탄하면서 말했다.“고작 보름 동안 몇십억 원의 투자를 받다니. 하린아, 정말 대단한 거 아니야?”서도겸이 말했다.“자금이 충분하니까 완공 전에 다른 사업에 투자해도 되겠어.”김하란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응. 그래서 이미 일부 자금으로 소소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어.”“소소한 투자?”서도겸이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했다.“몇백억 원이 나간 걸 봐서는 소소한 투자가 아닌 것 같은데?”김하린은 몇백억 원을 빼내 간 걸 서도겸이 알고있는 줄 몰랐다.처음부터 서도겸을 속일 생각이 없었다. 요 며칠 박시언과 티격태격하느라 많은 일들을 서도겸에게 맡겼기 때문에 서도겸을 속일 수도 없었다.“얼마? 몇백억 원?”강한나는 마시던 맥주를 뿜을 뻔했다.“무슨 투자를 하는 데 몇백억 원씩이나 들어?”‘이건 소소한 투자가 아닌데...’김하린이 말했다.“김씨 가문 명의로 된 프로젝트를 매수했어요.”“뭐라고? 너희 집 명의로 된 프로젝트를 매수했다고?”배주원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그럴 리가! 넌 김씨 가문의 큰딸인데 너희 집 명의로 된 프로젝트도 돈으로 사야 해?”김하린은 최근에 매수한 프로젝트 자료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전부 다 별로 쓸모없어 보이는 부동산 프로젝트와 투자 진행 상황이었다.배주원이 말했다.“어떤 건 수익이 나지도 않고, 어떤 건 심지어 손해를 보고 있는데 이것들 사서 뭐하려고?”“저가로 매수해서 괜찮아. 나중에 값이 오를 거야.”“지금 상황을 봐서 언제 값이 오르겠어!”김하린은 배주원이 나중에 값이 오를 거라는 말을 믿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전생에 박시언이 이

  • 합의이혼 후 곧 재혼한 아내   제94화

    김하린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곳을 떠났고, 소은영은 박시언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대표님, 언니가 홧김에 한 말일 거예요. 마음에 두지 말고 화 푸세요.”박시언이 손을 빼버리자 소은영은 멈칫하고 말았다.이때 그가 담담하게 말했다.“회사에 처리할 거 있으니까 공부하고 있어. 필요한 거 있으면 아주머니한테 말씀드리고.”“대표님...”박시언을 잡으려고 했지만 가차 없이 떠나버렸다.밖에서 마당을 쓸고 있던 유미란은 소은영을 향해 콧방귀를 꼈다.‘부부싸움 하는 것 가지고, 정말 안주인이라도 된 줄 알았나 봐?’유미란의 표정에 소은영은 화가 치밀어올랐다.김하린은 학교 맞은편에 있는 아파트로 돌아갔고, 점심이 되자 강한나가 방문했다.강한나가 흥분하면서 말했다.“정말 박시언한테 이혼하자고 말했어? 대답했어?”김하린이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했다.“대답 안 했어요.”“그러면 대답한 거나 다름없는 거지. 내 개인 변호사한테 이혼서류를 준비하라고 할게. 재산을 전부 뺏어서 빈털터리로 만들어 버리자고!”흥분한 강한나는 지금 바로 김하린을 끌고 변호사 사무실로 가고 싶었다.김하린이 고개를 흔들었다.“아마도 이혼 못 할 거예요.”“왜?”강한나가 멈칫하더니 말했다.“이혼할 마음이 있었으면 제가 먼저 말 꺼낼 필요도 없이 진작에 저랑 이혼했겠죠.”“그렇긴 한 데... 그런데 왜...”강한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처음부터 서로 이용하려고 맺어진 혼인이었어요. 박씨 가문과 김씨 가문은 아직 서로 이용 가치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가 이혼하면 안 되는 거고요. 시언이 할머니께서도 저를 손주며느리로 엄청나게 예뻐해 주셔서 은영 씨 하나 때문에 저랑 이혼하지 못하게 할 거예요.”김하린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오늘 집을 나서면서 일부러 유미란 앞에서 이혼을 언급한 것이다.유미란은 예전부터 최미진을 모셔 온 사람이라 이 소식을 꼭 알릴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면 소은영은 바로 더 빌리지에서 쫓겨날 것이었다.강한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 합의이혼 후 곧 재혼한 아내   제93화

    “사모님! 이제야 오셨네요!”유미란이 이 정도로 반기는 걸 보니 아주 서러운 모양인 것 같았다.“아주머니, 시언이 집에 있어요?”“네! 집에 계세요!”유미란이 머뭇거리면서 말했다.“그런데 소은영 씨도 있어요...”유미란은 소은영 생각에 이를 꽉 깨물었다.김하린은 그녀가 이곳에 있다는 말에 전혀 놀랍지 않았다. 그저 최미진이 왔다 갔는데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에 놀랄 뿐이다.‘할머니를 등질 정도로 은영 씨를 좋아하나 봐.’도어락에 지문을 갖다 댔을 때 불일치라는 알림이 떴다.그러자 유미란이 말했다.“어젯밤 도련님께서 돌아오자마자 비밀번호를 전부 바꾸라고 하셨습니다.”유미란이 대신 새로 바꾼 비밀번호를 눌러서야 김하린은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박시언은 거실에서 소은영에게 열심히 공부를 가르쳐주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마치 열애 중인 커플처럼 분위기가 좋아 보였다.“켁! 켁!”유미란이 마른 기침하면서 박시언에게 말했다.“도련님, 사모님 오셨습니다.”유미란은 일부러 ‘사모님’을 강조해서 말했다.박시언은 그제야 고개 들어 김하린을 낯선 사람처럼 차갑게 쳐다보았다.“누가 우리 집 들어오라고 했어?”박시언의 말투에는 불만이 가득했다.“대표님, 왜 화를 내요. 언니가 물건 챙기러 왔을 수도 있잖아요.”소은영이 김하린을 향해 웃으면서 말했다.“언니, 까먹고 챙기지 않은 물건이 있으시면 저한테 말씀하시지 그러셨어요. 그러면 직접 오실 필요도 없이 제가 택배로 보내드렸을 텐데.”김하린은 소은영을 냉랭하게 쳐다보고는 박시언에게 말했다.“오늘 회사 안 갔어?”박시언이 피식 웃었다.“네가 뭔데 날 감시해?”“내가 감시하는 게 아니라 도하 씨가 너 연락 안 된다고 전화 왔었거든. 출근하라고 말하러 온 것뿐이야.”김하린의 말투는 차갑기 그지없었다.박시언이 무심하게 말했다.“나 바빠. 시간 없어.”김하린은 한창 박시언의 수업을 받고있는 소은영을 보면서 말했다.“이래서 시간이 없는 거야?”소은영이 미안해하면서 말했다.“언니, 제

  • 합의이혼 후 곧 재혼한 아내   제92화

    서도겸이 담담하게 대답했다.김하린이 말했다.“과일 고르는 솜씨가 우리 집 아주머니보다도 나아.”서도겸이 피식 웃었다.차마 하나하나 먹어보면서 고르느라고 시간이 오래 걸렸다는 사실을 알릴 수가 없었다.윙-안방에서 미세한 핸드폰 진동 소리가 들려오자 강한나가 말했다.“누구 핸드폰이 울리는데?”이들은 서로 쳐다만 볼 뿐이다.배주원이 말했다.“내 핸드폰은 진동모드가 아니야.”서도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강한나는 핸드폰을 꺼내면서 말했다.“내건 여기 있어.”김하린은 그제야 어제 이도하의 전화를 끊고 귀찮은 마음에 진동모드로 바꿔놓은 사실이 떠올랐다.그래서 부랴부랴 안방으로 달려갔다.윙-발신자는 다름아닌 이도하였다.김하린이 황급히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이도하는 김하린의 목소리를 듣고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모님, 이제야 전화를 받으시네요.”“무슨 일 있으세요?”“대표님께서 어제 온 저녁 찾으셨어요. 서도겸 씨와 함께 클럽을 떠났다는 말을 듣고 화가 나서 전화를 끊어버리더라고요. 오늘은 출근도 안 하셨고요. 혹시 대표님 연락되시면 출근해야 한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까요?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저를 찾았다고요?”김하린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왜 갑자기 나를 찾는 거지? 내가 죽든 살든 관심이 없잖아.’핸드폰을 확인하자 정말 부재중 전화가 수십 통 와있었다. 하지만 새벽 3시쯤 되었을 때, 박시언은 더는 연락하지 않았다.“사모님, 그래도 대표님께서 많이 신경 쓰고 계세요. 대표님께 연락이라도 해보세요. 혹시나...”“알았어요. 고마워요. 도하 씨.”김하린은 박시언에게 문자를 보내려다 직접 전화하기로 했다. 전화 연결음이 울리자마자 전화기 너머에서 냉랭한 기계음이 들려왔다.“지금 거신 전화는 통화 중입니다.”김하린은 인내심을 가지고 박시언에게 문자를 보냈다.[어제 술을 마시느라 못 봤어. 날 찾았어?]문자를 보내자마자 갑자기 뜨는 차단 알림에 김하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박시언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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