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안이 아무런 표정 없이 덤덤하게 말했다.“언니 엄마가 내연녀인 걸 알았을 때도 창피한 줄 모르더니만.”심연아는 화내기는커녕 오히려 웃으며 옷장을 어루만졌다.“너 기억나? 이 옷장 원래 내 방에 있던 건데 네 옷장이 더 이뻐 보여서 아빠한테 바꿔 달라고 했어. 이 집안의 모든 게 다 내 것인데 엄마가 내연녀면 뭐? 그래도 안주인이 됐잖아.”출발이 늦어도 충분히 다채롭게 살 수 있다.심지안의 어머니는 명문가의 규수였지만 심전웅과 함께하기 위해 부모님과 등까지 돌렸다. 그런데 결국 심전웅에게 배신당하고 말았다.“고작 옷장 하나 빼앗은 거 갖고 우쭐거리기는.”심지안은 그녀를 한껏 조롱하며 웃었다.“옷장 얘기하니까 오히려 내가 고맙다고 해야겠네. 새 옷장이랑 낡은 옷장을 바꾸는 바보가 어디 있어.”그녀는 강우석 같은 인간쓰레기를 마치 보물인 것처럼 아꼈다.심연아의 낯빛이 사색이 되더니 뭔가 떠올랐는지 이내 입꼬리를 올리며 가슴을 쭉 폈다.“자기가 가지지 못하니까 마음이라도 위로하려고 그러는 거 알아.”“그딴 건 가지고 싶지도 않아. 언니랑 언니 엄마는 똑같아. 대놓고 나설 수 없는 사람들이지.”드디어 화가 난 심연아가 손을 들고 그녀의 뺨을 내리치려 했다. 심연아가 손을 들 거라고 진작 예상한 심지안은 옆으로 피하면서 그녀의 머리채를 잡고 뒤로 세게 확 잡아당겼다.‘쾅쾅’ 하는 소리와 함께 책장에 꽂혀있던 책이 우르르 떨어졌고 심연아도 바닥에 넘어졌다.그녀의 머리가 잔뜩 헝클어졌고 예쁜 원피스에도 먼지가 묻은 모습이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심연아가 목적에 달성했다는 듯 간사한 웃음을 지었다.“너 이제 끝났어.”그러고는 곧장 심전웅에게 고자질하러 달려갔다. 방을 나가면서 방문을 잠그는 것도 잊지 않았다.심연아가 나가는 동시에 심지안은 민첩하게 창문을 열었다. 일부러 심연아의 화를 돋우어 그녀가 나간 틈에 도망치려는 계획이었다. 바닥 잔디와의 높이가 약 3m 정도 되었다. 심지안은 숨을 깊게 들이쉰 후 두 눈을 감고 펄쩍 뛰어내렸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으면 그렇게 생각해도 돼요.”심지안은 마음이 따뜻해지더니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평소에는 엄청 사납더니 이럴 때는 또 따뜻한 사람이네요...”“뭐라고요?”“아무것도 아니에요!”성연신이 호기심에 찬 눈빛으로 그녀를 힐끗 보았다.“방금 지안 씨를 쫓아온 두 사람이 지안 씨 부모님이에요?”“그렇다고는 할 수 없어요.”핸들을 잡은 성연신의 두 손이 멈칫했다. 심지안의 개인 정보를 알아본 바에 따르면 아버지는 계시고 어머니는 돌아가셨다고 했다. 아까 두 분이 아무래도 그녀의 아버지와 새엄마인 모양이다.그동안 집에서 잘 지내진 못한 것 같다. 하지만 집안일은 옳고 그름을 따지기 어렵다.차 안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심지안은 눈을 내리뜨리고 차 안에 조용히 앉아있었다. 마치 버려진 반려동물처럼 속상하지만 아무 소리도 내질 못했다.그런 그녀의 모습에 마음이 아파온 성연신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이내 화제를 돌렸다.“출근은 왜 안 했어요?”“갑자기 일이 생겨서요.”그녀가 씁쓸하게 웃었다.“다 찾은 일자리를 놓치고 말았어요.”“인터넷에 떠도는 것 때문에 그래요?”“연신 씨도 그 기사 봤군요...”심지안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할 짓이 없이 근거 없는 말로 남을 헐뜯는 사람이 참 많더라고요. 난 당당하니까 전혀 두려울 게 없어요. 난 고작 그딴 거 때문에 출근하지 않을 사람이 아니에요.”성연신이 그녀를 힐끗 보았다.“정말 그렇게 생각해요?”“아니면요? 그런 걸로 흔들릴 사람 같아요?”심지안이 두 눈을 깜빡였다. 처음으로 그녀가 달리 보인 성연신이 가볍게 웃었다.예쁜 여자라면 지금까지 수도 없이 많이 봐왔다. 그녀들은 대부분 연약하고 엄살이 심했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자신의 미모를 믿고 쉬운 방법으로 일을 처리하곤 했다. 하여 갖은 굴욕을 견디면서도 내연녀 자리를 포기하지 않았다.하지만 그녀처럼 근면 성실한 여자는 극히 드물었고 그런 여자들과는 아예 다른 과에 속했다.차가 집 앞에 도착하자 성연신이 시동을 끄고 차
심지안이 몸을 파르르 떨며 두 눈을 떴다. 흐릿하던 의식이 점점 또렷해지면서 이불을 걷어차며 벌떡 일어났다.“바로 나가요!”다행히 어젯밤 심하게 삔 게 아니라서 조금 통증이 있는 것 외에는 걷는데 이상이 없었다.그녀는 신속하게 씻은 후 여성스러운 원피스로 갈아입고 성연신 앞에 모습을 드러내며 머리를 뒤로 넘겼다.“어때요? 이 옷 괜찮아요?”성연신의 두 눈이 반짝였다. 오늘 이 옷차림이 예쁜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보리 원피스가 단아함을 자아냈고 거기에 옅은 메이크업까지 하니 생기가 감돌았다. 연한 레드색 립스틱을 바른 입술은 마치 젤리처럼 탱글탱글한 게 한입 맛보고 싶은 충동마저 생겼다.하지만 옷이 너무 저렴해 보였다. 만약 할아버지께서 보신다면 잘해주지 못했다고 뭐라 하실 게 뻔했다.성연신은 아무 말 없이 심지안을 끌고 드레스룸으로 들어갔다.“다른 걸로 갈아입어요.”옷장 안에 비싼 명품 옷들이 가득 걸려있었고 서랍에는 눈을 떼지 못할 액세서리와 화장품이 가득했다.심지안은 너무 놀라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릴 적에는 용돈이 적었고 대학교에 가서 돈을 벌 능력이 생긴 후에야 명품이라는 걸 만져봤다. 강우석도 비싼 명품 선물을 준 적이 있어 명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눈 앞에 펼쳐진 것들에 비하면 그야말로 명함도 못 내밀 정도였다.옷장에 걸린 옷만 해도 수억이 훌쩍 넘었고 비싼 액세서리까지 더하면 상상도 못 할 금액일 것이다.“원래는 지안 씨한테 직접 가서 사라고 할 생각이었는데 시간도 없고 다리도 불편하니까 그냥 가져오라고 했어요. 지안 씨가 어떤 스타일을 좋아할지 몰라서 아무거나 샀는데 한번 골라봐요. 여기 있는 거 다 마음에 안 들면 다리가 나은 후에 직접 가서 사요.”심지안이 숭배에 찬 눈길로 그를 쳐다보았다.“신이 씨 돈이 이렇게나 많아요? 연신 씨가 너무 좋아요!”가끔 모진 말을 내뱉는 것 말고는 강우석보다 훨씬 나았다. 전에는 귀신에게 홀렸나, 왜 강우석의 가족 중에 이런 훌륭한 싱글남이 있는 걸
10분 후, 더는 추위를 견딜 수 없었던 심지안은 성연신의 옷소매를 살며시 잡아당기며 억지 미소를 지었다.“나 너무 추운데 유리창 좀 닫으면 안 돼요?”그러자 성연신이 매너 있게 대답했다.“당연히 되죠.”그러고는 서백호에게 유리창을 닫으라고 했다.그의 두 눈에 비친 교활함이 이내 사라졌지만 심지안의 눈을 속일 순 없었다. 성연신이 일부러 그녀에게 장난친 걸 알아차린 그녀는 이를 꽉 깨물었다.‘나한테 옷 사준 걸 생각해서 참는다 내가!’두 사람이 온다는 연락을 받은 성수광은 진작 문밖으로 나와 지팡이를 짚은 채 목이 빠져라 그들을 기다렸다.차 한 대가 단독 주택 앞에 멈춰 섰다. 심지안은 눈앞의 으리으리한 저택을 보며 의아해했다.강우석의 삼촌이 돈이 많긴 하나 금관성에서 손꼽히는 부자는 아니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눈앞의 저택은 딱 봐도 수백억이 훌쩍 넘어 보였다.‘금융업이 돈을 이렇게나 많이 버나?’심지안이 나지막이 물었다.“혹시 조상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 집이에요?”“네. 지금까지 5대가 여기에 살았어요.”성연신이 대답했다.“네...”돈 많은 조상이 이 집을 산 거라면 이해가 되었다. 수백 년 전에 금관성에서 이런 집이 그리 비싸진 않았을 테니까.철거 보상금으로 하루아침에 부자가 된 사람이 많았다. 그 덕에 자손 몇 대가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게 되었다.“아이고. 드디어 기다리던 손주며느리가 왔구나.”성수광은 심지안을 보자마자 눈웃음을 지으며 기뻐했다. 그의 모습은 한없이 자애롭고 다정했다.심지안은 성연신이 미리 준비한 선물을 건네며 활짝 웃었다.“할아버지, 이건 제가 준비한 선물이에요.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어요.”“암, 마음에 들고말고. 무조건 마음에 들어.”성수광의 입이 귀에 걸릴 정도였다. 그런데 심지안의 발목의 상처를 본 순간 낯빛이 확 어두워지더니 성연신에게 버럭 화를 냈다.“너 이 녀석, 혹시 우리 지안이 괴롭혔어?”“연세가 드시니까 눈도 잘 안 보이시나 봐요? 제가 지안 씨를 괴롭혔다면 이렇게 가볍
“쯧쯧.”성연신은 등을 의자에 기대고 기다란 두 다리를 티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채 조롱 섞인 말투로 말했다.“할아버지 참 대단하세요. 여자의 출산 기간까지 정하시다니. 차라리 의사가 되시질 그랬어요? 그러면 의학계에서 할아버지를 떠받들었을 텐데.”“뭔 개 풀 뜯어 먹는 소리야. 내가 이 나이에 증손자 좀 보겠다는 게 뭐가 잘못됐어?”성수광의 낯빛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그리고 너 제멋대로 지안이랑 혼인신고 하면서 예물도 안 줬고 결혼식도 안 올렸어. 다른 사람이 알면 지안이를 뭐라 생각하겠어!”성수광의 말에 심지안은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녀는 차 한잔을 따라 성수광에게 건네며 온화한 말투로 설명했다.“할아버지, 이건 연신 씨 잘못이 아니에요. 저희가 일이 너무 바빠서 제가 결혼식을 올리지 말자고 했어요. 서로를 아끼는 마음만 있다면 결혼식을 올리든 올리지 않든 상관없다고 생각해요.”“그래도 이건 아니지. 평생 한 번밖에 없는 결혼식인데 바쁘다는 이유로 치르지 않아서야 되겠어?”성수광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목을 축였다.그의 호의를 거절할 수 없었던 심지안은 난감한 얼굴로 성연신을 힐끔거렸다. 그런데 그가 그녀를 도와줄 기색이 없자 하는 수 없이 이렇게 말했다.“이 일은 저희가 잘 상의해볼게요. 일단 식사해요, 할아버지.”“그래. 최대한 빨리 상의해. 결혼식에 하객들도 많이 초대해서 거하게 치를 생각이야!”성수광은 오래된 전우들에게 성씨 가문의 손자가 이렇게나 예쁜 아내를 얻었다는 걸 자랑하여 그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싶었다.식사하면서도 성수광은 두 사람의 결혼 문제를 언급했고 아이를 몇 명 낳을지에 관한 얘기까지 나눴다. 심지안은 처음에는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다가 성수광의 눈가가 촉촉해지는 걸 보고는 마음이 복잡해졌고 죄책감도 밀려왔다.연세가 많으신 할아버지는 자신의 손자가 결혼하여 아이를 낳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런데 이 모든 게 다 가짜라는 걸 아시게 되면...‘차라리 그냥 내가 더 노력해서 연신 씨를 손에 넣으면 되지 뭐
“월급이라면, 그냥 내가 준 카드 쓰면 돼요.”심지안은 탁자 위에 놓인 프랑스어 문서를 보고 약간 멍해졌지만 가지런하고 흰 이빨을 살짝 드러내며 유난히 달콤하게 싱긋 웃었다.“연신 씨, 고마워요.”‘이젠 연신 씨 카드 쓸 때마다 눈치 볼 필요 없게 됐네! 어쩌면 연신 씨가 주는 돈을 쓰면서 내가 부담스러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마음의 짐을 덜어주려고 일거리를 구해줬을 수도 있어. 자세히 보면... 연신 씨는 섬세하고 다정한 면이 있단 말이야.’성연신은 눈썹을 들썩이며 따뜻한 미소를 보였다.“고마운 거 보답하려면 괴상한 요리 좀 만들지 말아줘요.”“요리 학원이라도 등록해야겠어요!”‘연신 씨 돈으로요!’심지안은 성연신이 갖고 온 문서에 금융과 관련된 전문 용어가 적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이 문서를 다 번역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두 페이지 정도 번역하고 나서 심지안은 책상에 엎드려 잠깐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 그런데 갑자기 보송보송한 털 뭉치 같은 것이 그녀의 얼굴에 닿았다. 삐쭉 나온 잔머리가 바람에 날린 줄 알고 머리를 귀 뒤로 넘기려던 그때, 갑자기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심지안은 눈을 뜨고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러자 작고 부드러운 아이의 얼굴이 그녀의 눈앞에 나타났다. 심지안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잔뜩 경계하며 그 아이를 쳐다보았다.“너 누구야?”“저는 성연신의 사촌 동생이에요.”오정연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심지안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바로 당신이 사촌 오빠랑 결혼한 여자인가요?”‘사촌 오빠? 강우석의 이모란 말이잖아!’심지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너 몇 살이야?”“저는 다섯 살이에요.”“아이고, 좀 더 크면 숙녀가 되겠는걸.”“그럼요!”오정연은 머리를 끄덕이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더니 또박또박 당돌하게 말을 이었다.“몇 년만 더 기다려서 어른이 되면 사촌 오빠한테 시집갈 거예요. 그러니까 그쪽을 언니라고 불러줄 수 없어요!”“성연신을
30분 후, 심지안이 오정연의 손을 잡고 사람들의 앞에 나타났다.이를 본 성연신의 눈에 의아함이 스쳤다. 오정연은 어려서부터 응석받이로 자라다 보니 유난히 낯선 사람들 앞에만 서면 착한 본성과 달리 버릇없이 굴 때가 많았기 때문이었다.‘그러고 보니, 지안 씨도 보면 볼수록 대단하네... 달래기 어려운 아이를 순한 양으로 만든 걸 보면...’곧이어 오정연은 여러 사람 앞에서 한 바퀴 빙 돌며 그녀의 새로운 헤어스타일을 자랑했다. 오정연은 사극에서나 볼법한 양 갈래로 틀어 올린 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가르마를 따라 머리를 두 갈래로 반듯하게 나누어 정수리 양쪽에 대칭되게 고리를 만든 다음 댕기 머리처럼 땋은 아랫부분을 돌돌 말아 올린 헤어스타일이었다. 이렇게 머리를 묶으니, 오정연은 앙증맞은 인형 같았고 매우 사랑스러웠다.“정연이 머리 좀 봐, 내 손자며느리한테 이런 솜씨도 있었어? 손이 아주 야무져!”성수광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그러네요, 연신이 마누라는 손재주도 좋네요!”“손이 야무지니, 요리도 잘할 것 같습니다.”“연신이는 앞으로 좋겠어요, 복덩이를 만나서!”사람들은 성수광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그의 체면을 세워줬다.칭찬을 들은 심지안은 얼굴이 발그레 달아올랐고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성연신의 옆자리에 바짝 붙어 앉아 현모양처의 역할을 잘 해내고 있었다.성연신은 연거푸 술 몇 잔을 들이켰다. 술상 위에 놓인 술잔을 또다시 비우고 나서 성연신은 위가 불편한 듯 얼굴을 찌푸렸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물 한 잔 따르려고 했다. 이때 심지안이 흔들림 없는 자세로 빨대가 꽂힌 요구르트 한 병을 그의 입가에 갖다 대며 자상하게 말했다.“요구르트 좀 마셔요, 위 점막을 보호할 수 있어요.”실내조명이 환하게 그녀를 비추었다. 성연신은 코끝을 은은하게 감도는 그녀의 향기에 흠뻑 취했다. 이어서 그의 깊고 그윽한 눈에 그녀의 눈동자가 비쳤다. 그 순간, 얼음장같이 차갑던 성연신의 얼굴은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심지안은 고장 난
“번거롭게 할 순 없어요, 택시 타면 돼요.”심지안이 그를 향해 싱긋 웃었다.“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진현수도 더 말하지 않았고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수요일에 만나요.”수요일은 다음 수업 시간이었다.“수요일에 뵙겠습니다.”심지안은 그가 멀어지고 나서야 들고 있던 짐을 내려놓고 택시를 잡았다.진현수는 지하 주차장 입구에서 강우석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외삼촌, 저 연아랑 다음 달 약혼하려고 합니다. 꼭 와주세요.”“연아 씨가 대학 때부터 사귀었던 여자친구인 거야?”강우석은 잠시 주춤하더니 천천히 말했다.“그게 아니라... 외삼촌, 걔랑은 이미 헤어졌어요.”청춘 남녀가 뜨겁게 사랑하다가 헤어지는 것은 흔하디흔한 일이니, 진현수는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그저 약혼식에 참석할 것이라고 약속했다.강우석은 통화를 마치고 옆에 있던 심연아를 보고 말했다.“외삼촌이 무조건 올 거라고 약속했어. 그날 외삼촌한테 너를 소개할 거야. 금융업계에서 아주 유명한 분이시거든!”심연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경에 찬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나도 너의 외삼촌의 명성을 들어본 적이 있어. 드디어 직접 만나 뵐 기회가 생긴 거네. 너무 긴장되고 설렌다! 하지만 약혼하기 전에 해결해야 할 일이 하나 남아있잖아...”“응? 어떤 일?”심연아가 그의 귀에 대고 몇 마디 하자, 강우석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이 일은 확실히 처리하기 쉽지 않았다.심연아는 그의 손을 꼭 쥐며 가늘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니면 내가 아버지한테 말씀드려 볼게. 네가 나서지 않아도 돼. 지난번에 지안이가 집을 나간 이후로 우린 모두 걔가 어디에서 지내는지 모르는 상황이야...”“찾아낼 거야! 꼭 찾아내야 해! 그건 강씨 집안의 물건이야. 심지안은 이젠 나랑 상관없는 여자가 됐으니, 반드시 그 물건을 찾아와야 해!”강우석이 그녀를 다정하게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그리고 너에게 성대하고 완벽한 약혼식을 선물할 거라고 했잖아, 실망하게 하지 않을 거야.”“우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