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야 정신을 차린 심지안은 수척한 얼굴로 컴퓨터를 끈 뒤 대답했다.“곧 할 거예요.”1층, 거실.성연신도 이미 옷을 갈아입고 소파에 앉아있었다. 헐렁한 남색 긴 팔과 긴 바지를 입은 그의 모습은 평소의 냉정함을 덜어내고 친숙함을 그곳에 대신 심어놓은 듯했다. 하지만 그의 검은 눈동자만은 여느 때처럼 불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방안에 틀어박혀 뭘 한 거예요?”“옷 갈아입었죠.”심지안은 그의 차갑게 굳은 얼굴은 본 순간 홍교은의 말이 다시 떠올라 괴로움에 사로잡혔지만 일부러 더 환히 웃으며 말했다.“연신 씨도 그랬잖아요.”두 사람에게는 집에 돌아오면 반드시 곧바로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하루 종일 입고 밖에서 돌아다니던 옷은 깨끗하지 못하다는 생각에 말이다.성연신이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옷을 갈아입는 건 5분이면 충분해요. 지안 씨는 안에서 42분이나 머물렀잖아요.”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조목조목 따지는 그의 모습에 심지안은 질투 때문에 생겼던 마음속 괴로움이 홀연히 가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성연신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건 좋은 일이다. 자신이 대타였음을 알고 힘들어했다니, 정말 홍교은의 술수에 말려들어갔나 보다.“피곤해서 잠시 쉬었어요. 그렇게까지 배고픈 건 아니잖아요.”“문제는 당신 태도예요.”성연신이 심지안의 어깨를 잡고 그녀로 하여금 자신을 쳐다보게 만들었다.“홍교은이 뭐라고 하던가요?”그는 홍교은이 다녀간 뒤 그녀의 태도가 변했다는 걸 확연히 알 수 있었다.심지안은 그 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그가 주동적으로 말을 꺼내니 한바탕 비아냥거려주고 싶었다.“뭐 별거 아니에요.”잠시 숨을 들이쉰 그녀가 성연신을 쳐다보며 말했다.“연신 씨의 첫사랑에 대해 얘기했어요.”성연신이 이마를 찌푸렸다.“첫사랑이요?”“네. 임시연 씨요.”말을 마친 심지안은 그의 얼굴을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단 하나의 표정 변화도 놓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였다.그 말을 들은 성연신은 눈썹을
심연아는 청순한 흰색 원피스를 입고 낯선 남자와 담소를 나누고 있다. 그녀의 날씬하고 어여쁜 자태에 남자의 얼굴은 붉어졌다.“제가 말씀드린 건에 대해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걱정하지 마세요.문제없습니다. 근데 되게 착해 보이시는데 진짜로 술을 마실 수 있나요...”“아주 쪼금은 마실 수 있어요. 변호사분들 평일에 아주 바쁘시다고 들었는데, 오늘은 그 스트레스 좀 푸세요.”“그럼 그러죠. 때마침 내리는 비 덕분에 이렇게 심연아님 같은 분이랑 함께하게 되어 영광이네요.”오고 가는 몇 마디의 짧은 대화로, 심지안은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그녀는 차가운 미소를 띠며, 피하는 기색 없이 그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심지안을 발견한 심연아의 얼굴은 금세 어두워지며, 그 자리에서 몸이 굳어버렸다.그런 그녀를 본 남자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왜 그러세요?”심연아는 입술을 깨물며 모깃소리로 답했다.“제 여동생을 봤어요.”그녀의 시선을 따라 남자의 시선도 심지안을 향해 멈췄고, 그는 경이로운 눈빛으로 심지안을 봐라봤다.조금 전까지 심연아가 제일 아름답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비교해 보니 훨씬 부족해 보였다.하지만 저렇게 예쁜 여자는 자신이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던지라,심연아같은 정도면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우영은 심지안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당신이 바로 말로만 듣던 그 배은망덕한 사람 맞죠?”심지안은 그 말에 대꾸조차 하기도 귀찮아 바로 심연아한테 말했다.“법원 소환장은 잘 받았지?”심연아는 겁에 질린 듯 불쌍한 척하며 말했다.“넌 내 동생이고, 우린 한가족인데 이렇게 까지 해야겠어?”“연기하지 마. 너랑 연기할 시간 없어. 불쌍한 척 연기 하려거든 27일 판사님한테나 해보시지.”그녀의 강경한 태도를 본 심연아는 소송에서 패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잠시 걱정이 들었지만, 우영도 명성이 높은 변호사이기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금관성에서 우영을 능가할 수 있는 변호사는 장학수뿐이었다.그녀는 심지안이 그렇게
그녀의 말을 듣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화가 치밀어 오른 심지안은 낮은 목소리로 차갑게 말했다.“너 그러기만 해봐!”“내가 못 할 거 같냐.”심연아는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더니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이틀 뒤에 아버지 생신인데, 너 오면 진유진 사진 지울게. 우리끼리 얘기도 할 겸 어때. 우리 자매끼리 법정까지 가서 난리 피울 필요까진 없잖아?”“너 내가 경찰에 신고하면 어쩔 건데, 안 두려워?”그녀는 분노를 억눌렀고, 눈은 빨개졌다.“두렵지. 근데 충고 하나만 할게. 너 그 찰나의 순간 때문에 진유진 인생 하나 망칠 수도 있어. 여자애가 이러한 충격을 받으면, 자연스레 극단적 선택을 하기 마련이거든.”심지안은 눈시울이 붉어졌고, 눈을 질끈 감았다.그녀는 알고 있다, 그녀는 모두 알고 있다.만약 그 사진들이 퍼지게 된다면 진유진에게 얼마나 큰 타격을 안겨줄지 말이다.진유진은 어머니 외에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한 친구이다. 거기다 진유진은 결손가정이다...심지안은 그녀가 상처받는 걸 원치 않았다.심지안은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려고 노력했고, 고개를 들어 심연아를 바라봤다. 그 아름다운 얼굴은 마치 독사 같았고,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알겠어.”심연아는 머리를 쓸어 넘기며, 의기양양하게 걸어갔다 .심지안은 자리로 돌아가 술에 취한 진유진을 바라보는데,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심지안은 진유진을 집에 데려다주고 가는 길에 경찰서에 들러 그 사건을 신고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진유진의 전 남자친구는 바로 체포됐다.경찰은 그를 심문했고, 그는 진유진의 동의 없이 그녀의 몰카를 팔았다고 자백했다.그러나 불법 판매가 있었다는 사실은 절대 인정하지 않았다.심지안은 심연아도 신고했지만,심연아와 그가 직접 만났었다는 증거도 없었고, 두 사람의 은행 계좌 거래내용도 찾을 수 없었다.심지안은 입을 꾹 다물었다.심연아가 먼저 과감히 그 사건에 대해 말을 꺼냈다는 건, 역시나 걸릴 만한 증거 인멸은 다 해놓은 상태였다.결국, 진유진의 전
“저한테 복종을 안 하면 어느 외간 남자한테 복종하려고 그래요?”성연신은 자연스레 앞의 말은 무시하고, 그녀의 턱을 잡으며 차갑게 물었다.옛말에, 남자는 여자의 하늘이니, 여자가 남자한테 복종하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성연신은 순식간에 그녀를 몰아붙였다. 심지안은 침을 삼켰고, 그 기세에 살짝 쫄았다.“제 말은, 저희의 관계가 약간 불평등하기 때문에 서로 손님 대하듯이 존중해야 한다는 뜻입니다.”“가능하죠.지안씨 능력 수준이 저랑 비슷하다면요.”“제가 그 능력에 미치지 못한다고 해도 인간으로서 해야 할 도리는 서로 따져야 하잖아요. 저도 사람이고, 제 품위가 있어요! 매일 밥해 주고 원이처럼 당신 기분 좋게 해줘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원이가 되는 게 왜 싫죠?”성연신은 턱을 살짝 들며 말했다.“혹시, 지금 전 세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원이를 부러워하고 있는지 알아요?”심지안은 문 앞에 엎드려 있는 셰퍼드를 바라보았다. 그가 잠자는 곳은 해외에서 수백만 원에 구매한 것이며, 간식 또한 한 봉지에 몇십만 원에 달하였다. 평소 털 관리, 미용 손질, 잡동사니 비용 또한 일반 직장인의 월급보다 훨씬 높았다.심지안의 시선을 느낀 듯한 원이는 몸을 한번 털며, 느릿느릿 성연신을 향해 걸어갔다. 털이 부스스한 머리를 그의 손에 비비며, 마치 쓰다듬어 달라는 듯했다.심지안은 할 말이 없어 한숨을 내쉬었다.그렇다, 원이가 살고 있는 이런 생활은, 이미 많은 인간을 초월했다.그가 한 말을 인정하긴 싫었지만, 전부 반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었다.성연신은 일어서서 그녀를 내려다보며, 굳은살이 박힌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그의 검은 눈동자에는 소유욕이 가득했다.“착하지, 응?”그는 이대로 계속 지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 여자가 맹하긴 하지만, 그는 그게 싫지는 않았다.심지안은 그와 시선을 마주했고, 어루만져진 살갗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말을 더듬었다.“저…. 저 수저 정리하러 갈게요.
그 말을 들은 심지안은 마음이 따뜻해졌지만, 성연신의 소유욕이 강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어찌 되었든 간에, 이번에 그는 아주 주도면밀하게 생각했다.“네, 저도 성연신씨한테 고마움을 많이 느껴요.”정욱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호텔.많은 사람들이 화려하게 차려입었다.심전웅과 심연아는 문 앞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마치 강씨 집안과의 혼인이 취소되어도, 그들에게 있어서 그 정도는 별로 큰 타격까지는 아니라는 듯 말이다.심연아는 심지안을 보자마자 다정하게 그녀를 껴안으며 말했다.“우리 동생 왔네, 우리 같이 들어갈까.”심지안은 차갑게 뿌리치며, 무표정인 얼굴로 말했다.“나 혼자 들어갈 수 있어.”심연아는 멈칫하더니 눈에 띤 독기를 숨기며, 웃는 얼굴로 상냥하게 말했다.“그래, 우석도 이미 들어갔으니깐, 우석이랑 같은 테이블에 앉으면 되겠다.”심지안은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빈자리를 찾아서 앉았다.가까스로 강우석과의 관계를 정리한 거라, 더욱더 거리를 둬야 한다고 생각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속속 들어와 호텔 전체를 가득 채웠다.그중에는 비즈니스 파트너도 있고, 심씨 가문의 친척들도 있었으며, 심지어 언론 기자도 있었다.심지안은 주변을 한번 훑어봤다. 너무나 많은 언론 기자들 때문에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강우석은 이미 심지안을 보았지만, 그녀가 의도적으로 자신과 거리를 두는 걸 보니 마음이 우울해졌다.진현수는 생일파티 시작 5분 전에 도착했다.그는 강우석 옆에 앉으면서, 굵은 목소리로 말했다.“강씨 가문에서도 언론을 초대했어.”강우석은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어쩐지 밖에 기자들이 많이 와있더라고요.”“오늘 저 사람들 모두 단단히 준비하고 온 거야.”원래 생각으로는, 언론을 통해 압박을 가하는 방법으로 예단을 돌려받을 계획이었다.강우석의 현재 상황으로 보면, 예단비용 수십억은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두 사람의 관계가 정상적으로 깨졌으면 예단비를 돌려받지 않아도 상관없다.하지만 심
”그렇다고 해야죠. 그 사람은 저를 많이 도왔고 이제 되돌아갈 수도 없잖아요.”심지안이 입술을 살짝 깨물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계약서에 사인도 했기에 더 이상 반항해도 의미가 없었으며 그럴 바에는 차라리 순종적인 태도를 보이는 게 나을 것 같았다.심지안은 아무리 화를 내도 그 사람과의 말싸움에서 절대 이길 수가 없었다.그녀의 대답에 진현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저에게 얘기해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지안 씨가 자신을 힘들게 하는 걸 두고 볼 수만은 없어요.”“아니에요, 아니에요! 전 지금 꽤 잘 살고 있어요. 물론 저도 더 노력할 거고요.”삼 년이라는 시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다. 그녀는 아직 나이가 어렸기에 그녀에게 수많은 삼 년이 남아있었다.“저에게 내외할 거 없어요. 제가 성 대표님보다 돈이 많진 않지만 그래도 모아 놓은 재산이 꽤 있어요. 곤란한 상황이 생기면 언제든 도와줄 수 있으니까 자기 자신을 그렇게…”자기 자신을 막 대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끝내 그 말을 입 밖에 꺼내지 못했고 감동받은 심지안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저 진짜 괜찮아요. 현수 씨는 자신의 일에 집중하세요. 제가 그렇게 약한 사람이 아니거든요. 나중에 혼자 해결하지 못할 일이 생기면 그때 현수 씨에게 얘기할게요.”성연신은 갑자기 화를 내는 것만 빼면 그녀에게도 참 잘해줬다.여러 번이나 거절을 당한 진현수는 여기서 그만 멈춰야 했지만 언제 다시 심지안을 만날 수 있을지 몰랐기에 참지 못하고 다시 말을 건넸다.“지안 씨, 제가 지금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지안 씨를 좋아해서 그래요. 지안 씨는 참 좋은 여자예요. 전 그런 지안 씨를 좋아하고요. 당신 곁에서 당신을 지켜줄 기회를 주셨으면 좋겠어요. 성 대표님이 지안 씨를 도울 수 있는 건 저도 똑같이 도울 수 있어요.”심지안은 진현수가 이 타이밍에 고백할 줄은 몰랐기에 순간 멍한 표정이었다.그녀는 이미 결혼해서 누군가의 아내 신분이었다.“저희는 안 어울려요. 현수 씨는
심전웅은 은옥매 손에서 네모난 박스를 건네받아 심지안 손에 쥐여 주었다.“이 안에는 네 엄마가 나에게 부탁한 네 혼수가 들어있어. 유동 재산 1억과 가치가 4억이 넘는 옥 액세서리야. 전에 너에게 주지 않았던 건 네가 아직 나이가 어려서 돈을 함부로 쓸까 봐 걱정돼서 그랬던 거야. 하지만 이제는 달라. 너도 어른이 되었고 너만의 가치관도 생겼으니 이제 너를 믿고 너에게 맡길 수 있을 것 같아.”“지안아, 네 아빠를 너무 원망하지 마.”은옥매가 말을 보태자 곁에 있던 심연아도 한 마디 했다.“그래, 동생아, 우리 가족이 이렇게 오손도손 잘 사는 게 그 무엇보다 중요하잖아. 아버지는 내가 보살필 테니까 넌 아버지를 화나게만 하지 마.”바로 이때, 밖에 있던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와 “화목한” 가정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갑자기 터진 카메라 불빛에 심지안은 눈을 뜰 수가 없어서 뒷걸음질 치다가 우연히 심연아 목에 걸린 백옥 목걸이를 목격하게 되었다.그녀는 어이없을 정도로 파렴치한 심연아 일행을 보며 너무 화가 나서 웃음을 터트렸고 이내 진행자 손에 있던 마이크를 빼앗아 날카로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뭔가 잘못된 것 같네요. 제 어머니가 저에게 남겨준 혼수가 정확히 얼마였는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액세서리와 유동 자금이 이 정도밖에 안 될 리가 없어요. 더군다나 저희는 27일에 재판 싸움을 하지 않았나요? 그때 우영 변호사까지 선임했잖아요.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만천하에 얘기하는 건 돈 몇 푼으로 이 일을 덮을 생각인 건가요?”가장 적은 돈으로 좋은 평을 받으려고 하다니. 그것도 모자라 심지안을 철이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모든 책임을 그녀에게 떠넘길 생각인 듯했으며 나중에 문제가 생겨도 심지안의 문제로 어쩔 수 없이 재판까지 가게 되었다고 얼버무릴 계획인 게 분명했다.그야말로 일타쌍피인 셈이다.현장에 우영도 초대되었기에 사람들은 그에게 우르르 몰려 너도나도 질문을 던졌다.“우 변호사님, 저 여자 말이 정말인가요?”“세상을 떠난 어머니가 딸에
성연신이 정욱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정욱은 호텔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었다.“대표님, 심지안 씨는 아직 안 나왔습니다. 그쪽은 끝났나요? 여기로 오실 건가요?”“내가 그 사람 지켜보라고 했는데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싸늘한 목소리에 살기가 뿜어져 나왔고 그의 분노를 느낀 정욱은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대표님… 전 호텔 입구에서 한 발짝도 안 움직이고 기다리고 있습니다.”“누가 입구에서 기다리라고 했어? 입구에서 네가 뭘 볼 수 있는 거야 대체?”정욱은 너무 억울했다. 분명히 성연신이 입구에서 기다리라고 한 건데 갑자기 화를 내다니.“지금 당장 들어가 보겠습니다.”“그 안에 있지 못하게 해.”성연신은 심지안이 다른 남자와 붙어있는 모습만 봐도 짜증이 났다. 전화를 끊은 성연신은 노트북에 대고 외국어로 유창하게 몇 마디 하더니 다급하게 회의를 끝냈다.정욱이 호텔에 들어갔을 때, 심지안과 진현수는 심전웅이 찾아온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고 현장은 엉망진창이었다.“심지안 씨, 오늘 일부러 아버지에게 돈 받으러 온 겁니까?”“저희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심지안 씨와 아버지의 관계가 그렇게 나쁘지 않은 거 같은데 왜 거짓말을 한 겁니까?”“심연아 씨와 강 씨 가문의 도련님이 결혼을 파기한 게 심지안 씨가 끼어들어서 그렇게 된 거예요? 왜 두 사람이 만나고 있는 걸 알면서도 끼어든 거죠?”심지안은 개미 떼처럼 모여든 기자들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심연아가 당신들에게 돈을 얼마나 주었죠? 제가 2배로 드리겠습니다.”웅성거리던 기자들은 순간 조용해졌고 다들 뜨끔한 표정이었으며 이때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진짜요?”“당신들 다 자발적으로 온 거잖아요. 이상한 소리 하지 마세요! 제가 돈을 썼으면 당신들처럼 멍청한 기자들은 절대 부르지 않았을 거예요!”심연아가 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협박하자 조용하던 기자들이 다시 웅성거리면서 마이크를 심지안에게 가까이 대며 사진까지 찍었다.이때, 진현수가 심지안을 자신의 뒤로 숨기며 태연한 표정으로 일